죽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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〇〇군 나는 이 집을 팔았소. 북한산 밑에 육년 전에 지은 그 집 말이오. 오늘이 집 값 끝전을 받는 날이오. 뻐꾸기가 잔지러지게 우오. 날은 좀 흐렸는데도 무성한 감잎사귀들은 솔솔 부는 하지 바람에 번뜩이고 있소. 오늘이 음력으로 오월 삼일、모레면 수리(단오)라고 이웃집 계집애들이 아카시아 나무에 그네를 매고 재깔대고 있소. 모레가 하지. 벌써 금년도 반이 되고 양기는 고개에 올랐소. 잠자리가 난지는 ── 벌써 오래지마는 수일 내로는 메뚜기들이 칠칠 날고、밤이면 풀 속에 벌레 소리들이 들리오. 아이들이 여치를 잡으러 다니오.

이 편지를 쓰고 앉았을 때에 어디서 청개구리가 개굴개굴 소리를 지르오.

저것이 울면 비가 온다고 하니 한 소나기 흠씬 쏟아졌으면 좋겠소. 모두들 모를 못 내어서 걱정이라는데、뜰에 화초 포기들도 수분이 부족하여서 축축 늘어진 꼴이 가엾소.

지금이 오전 아홉 시、 아마 이 집을 산 사람이 돈을 가지고 조금만 더 있으면 올 것이오. 내가 그 돈을 받고 나면 이 집은 아주 그 사람의 집이 되고 마는 것이오. 엿장수 가위 소리가 뻐꾸기 소리에 반주를 하는 모양으로 들려오오. 내가 이 집에 있으면서 엿을 잘 사 먹기 때문에 엿장수들이 나 들으라고 저렇게 가위를 딱딱거리는 것이오.

엿장수가 지금 우리 대문 밖에 와서 자꾸 가위 소리를 내이오. 아마 내가 낮잠이 들었다 하더라도 깨라는 뜻인가 보오. 그러나 나는 오늘 엿을 살 생각이 없소. 흥이 나지 아니하오. 엿장수는 최후로 서너 번 크게 가위 소리를 내이고는 가버리고 말았소.

어디서 닭이 우는 소리가 들리오. 앞 개천에 빨랫방망이 소리도 들리오.

담 밖에 밤꽃 냄새가 풍기오.

내가 이 집을 지은 것이 금년까지 육 년째요. 육년이 잠간이지마는 내 지나간 사십 팔년의 육분지 일이라고 하면 결코 짧은 동안은 아니오. 게다가 마흔 세 살부터 마흔 여덟 살 되는 여름까지라면、 내 일생의 상당히 중요한 시기를 이 집에서 보낸 셈이오. 그동안 줄곧 이 집에 산 것은 물론 아니오. 일년 동안 문 안에서 살았고、 또 일년 남짓은 감옥과 병원에서 살았으 니、실상 이 집에 내 몸을 담아서 산 것은 사 년밖에 안 되는 것이오. 그러나 평생 집이라고 가져본 뒤로부터 이 집이 가장 내가 사랑하는 집이었다 할 수 있는 곳에、 이 집에 대한 특별한 인연이 있는 것이오.

내가 이 집을 짓던 해는 내 평생에 가장 암흑한 시기 중에 하나였소. 내 어린것이 불행하게 세상을 떠난 것이나、 내가 평생을 바쳐 보려던 사업이 모두 실패에 돌아간 것이 이 해였소. 그뿐 아니라、나는 정신적으로 모든 희망을 잃어버려서 이제 내가 인생에 아무것도 바라는 것도 없고、할 것도 없으니、 이것이 내가 죽을 때가 된 것이 아닌가 하도록 나는 막막한 심경에 빠져 있었소. 내가 사랑하고 믿던 이들까지도 다 나를 뿌리치고 가버린 듯 하여서 나는 음침한 죽음의 근로에 혼자 버림이 된 혼령과 같이 붙일 곳이 없었소.

이런 심경에서 나는 아주 세상을 떠나버릴 생각을 하였던 것은 그대도 잘 아는 일이 아니오? 나는 아무도 모르게 산에 들어 일생을 마칠 결심으로 금강산으로 달아났던 것 아니오? 나는 거기서 며칠 지나서는 오대산으로 가려 하였었소. 오대산에를 간다고 방 한암 같은 이를 찾아서 도를 배우자는 것이 아니라、 그저 깊이깊이 산을 들어가서 세상을 잊고 또 세상에서 잊어버림이 되자는 것이오. 그때 한 가지 희망이 있었다 하면 제 죄를 뉘우치는 생활을 하여서 내가 평생에 해를 끼친 여러 중생、 은혜를 진 여러 중생을 위하여서 복을 빌자는 것뿐이었소.

그러나 내 인연은 아내와 어린것들의 손을 빌어서 나를 도로 이 세상으로 끌어 오게 하였소. 이 모양으로 끌려 와서 시작을 한 것이 이 집을 짓는 일이었소.

이 집 역사를 할 때에 내 생각은 여기서 평생을 보내리라 하는 것이었소.

변변치 못하나마 문필로 먹을 것을 벌어서 이 집에서 죽는 날까지 살자 하는 것이었소. 그래서 나는 애초에 초갓집을 짓고、감밭을 장만하려 하였소. 내 원고가 밥이 안 되는 경우면 감 농사로 살아 가자는 것이오. 그리고 내 아내는 닭을 치기로 하여 양계하는 책을 두서너 권이나 사 들여서 열심으로 양계 공부를 하였습니다. 이 모양으로 세상에 나가 다닐 생각을 끊고 숨어서 살자 하는 것이 이 집을 지으려는 동기였었소.

그랬던 것이 어떤 협잡군 청부업자를 만나서 싸게 지어 준다는 바람에 초가집 계획을 버리고 기와집을 짓게 된 것이데、 이것이 잘못이야. 예산이 엄청나게 많이 들어서、감밭을 사고 양계장을 마련할 돈이 없어졌을 뿐더러、 이 집이 기와집이기 때문에 탐내는 이가 많아서 마침내 이 집을 팔게 되었단 말이오. 만일 이 집이 조그마한 초갓집이더면 이번에 이 집을 산 이도 살 생각을 아니 내었을 것이니、 작자 없는 동안 이 집은 내 집으로 남았을 것이 아니오? 우스운 말 같으나 이것은 농담이 아니라 진정이고 사실이오.

어찌 하였으나 나는 이제 기껏 버티어야 앞으로 이주일 밖에는 이 집에서 살 수는 없이 되었소.

육 년간 추억 많은 이 집을 떠나게 되매 지나간 동안이 새로와져서 그대에게 이 편지를 쓰게 된 것이오.

이 집 역사가 아직 다 끝나기 전에 을연선사(兀然禪師)가 나를 찾아왔소.

그는 일주일 간이나 소림사(少林寺)에 유숙하면서 나를 위하여서 날마다 법을 설하였소.

이보다 전에 아직 이 집터를 만들 때에 운허법사(耘虛法師)가 법화경(法華經) 한 질을 몸소 져다 주셨는데、 이 법화경을 날마다 읽기를 두어 달이나 한 뒤에 을연선사(兀然禪師)가 오신 것이오.

운허(耘虛)、을연(兀然) 두 분은 무론 서로 아는 이이지마는 내게 온 것은 서로 의논이 있어서 오신 것은 아니오. 그야말로 다생의 인연으로、 부처님의 위신력、자비력으로 내게 오신 것만을 나는 믿소.

또 이보다 수개월 전에 나는 금강산에서 백성욱사(白性郁師)를 만나서 삼사 일간 설법을 들을 기회를 얻었소.

또 이보다 십이삼년 전에 영허당(映虛堂) 석감 노사(石嵌老師)와 금강산 구경을 갔다가 신계사 보광암(神溪寺普光菴)에서 비를 만나 오륙일 유련하는 동안에 불탁에 놓인 법화경을 한 벌 읽은 일이 있는데、 이것이 법화경에 대한 이생에서의 나의 첫 인연이었고、 또 그 전해에 아내와 같이 춘해(春海) 부처와 같이 석왕사(釋王寺)에서 여름을 날 때에 화엄경(華嚴經)을 읽은 일이 있었소. 또 우연하게 금강경(金剛經) 원각경(圓覺經)을 한 질씩을 사둔 일이 있었는데、 이 집을 짓던 해 봄에 그것을 통독하였소.

이 모양으로 이 집에 와서부터 법화경을 주로 해서 불경을 읽게 되었소.

여덟 살 먹은 어린 아들의 참혹한 죽음이 더욱 나로 하여금 사람이 무엇인가? 어찌 하여서 나는가? 죽음이란 무엇이며、죽어서는 어찌 되는가? 하는 문제를 아니 생각할 수 없이 하였소. 그러므로 나는 내 죽은 아들 봉근(鳳 根)도 나를 불도에 끌어들이기 위하여서 다녀간 것이라고 믿소.

관세음보살이、 혹은 비가 되시와 나로 하여금 보광암에 오륙일 유련하게 하시고、 혹은 아들이 되어、 혹은 운허법사、을 연선사가 되시와 길 잃은 나를 인도하신 것이라고 믿소.

또 예수께서도 그러하시였다고 믿소.

내가 신약전서를 처음 보기는 열 일곱 살적 동경 명치학원 중학부 삼년생(明治學院 中學部 三年生)으로 있을 때인데、그 후 삼십여 년 간 날마다 다 읽었다고는 못하여도 내 책상머리나 행리에 성경이 떠난 적은 없었거니와、 이것이 나를 불도로 끌어넣으려는 방편이었다고 믿소.

아무러나 나는 이 집을 지은 육년 동안에 법화행자가 되려고 애를 썼소.

나는 민족주의 운동이라는 것이 어떻게 피상적인 것도 알았고、십 수년 계속하여 왔다는 도덕적 인격개조 운동이란 것이 어떻게 무력한 것임을 깨달 았소. 조선 사람을 살릴 길이 정치 운동에 있지 아니하고 도덕적 인격개조 운동에 있다고 인식하게 된 것이 일단의 진보가 아닐 수는 없지마는、나 스스로의 경험에 비추어서 신앙을 떠난 도덕적 수양이란 것이 헛것임을 깨달 은 것이오. 내 혼이 죄에서 벗어나기 전에 겉으로 아무리 고친다 하더라도 그것은 의식에 불과하다고 나는 깨달았소.

스물 여덟 살 되는 겨울에 나는 도덕적으로 내 인격을 개조하리라는 결심을 하고 마흔 세 살 되는 봄、내 어린 아들이 죽을 때까지 십 오 년간 나는 이 개조생활을 계속하노라 하여 거짓말을 삼가고、 약속을 지키고、 내 책임을 중히 여기고、나 개인을 위하여서 희생하고、남을 사랑하고、존중하고、 몸가짐을 똑바로 하고、 이러한 공부들을 계속하노라고 하였으나、 스스로 돌아보건대、제 마음속은 여전히 탐욕의 소굴이어서 십 오년 전의 내가 그 더 러움에 있어서、 그 번뇌에 있어서 조금도 다름이 없음을 발견하였고、 앞으로 살아 나아갈 인생에 대하여 아무 자신도 광명도 없음을 스스로 의식할 때에 나는 자신에 대하여 역정이 나고 말었소.

문학을 하노라 하여서 소설권이나 썼소. 사상가 자처하고 논문편도 썼고、지도자 자처하고 나보다 젊은 남녀들에게 훈계 같은 말까지도 수천만 어를 하였소. 그러나 홀로 저를 볼 때에、

『이놈아、네 발뿌리를 좀 보아!』

하는 탄식이 아니 날 수가 없었소.

이러다가 나는 법화경을 읽는 자가 된 것이오.

이 집에 온 후로 육 년간 날마다 법화경을 읽은 자가 된 것이오.

그러면 지나간 육년 동안에 얼마나 마음이 깨끗하여졌느냐、 그대는 그렇게 물으시겠지요. 지금 너는 전보다 얼마나 나은 네가 되었느냐、 이렇게 물으실 때에、 그대는 아마 내게 대하여 일종의 경멸과 비웃음을 느끼시리라.

글쎄、별것 없지요. 별로 달라진 것 없지요. 나는 육년 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 더러운 중생이겠지요. 예와 같은 탐욕과 예와 같은 질투와.

그러나 사랑하는 그대여! 하나 달라진 것은 있소、지금 나는 부처를 향하고 걸어 가느니라 하는 믿음 말이오. 못나고 추악한 범부이기는 육년 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지마는、전에는 나는 언제까지나 이런 사람이고 마느니라 하던 것이 지금에는、나는 장차 완전한 성인이 되느니라 하고 스스로 꽉 믿게 된 것이오.

『네가 어떻게 성인이 되느냐? 너 같은 것이 어떻게 부처님이 되느냐?』

하고 그대가 물으시면 나는 이렇게 대답하겠소 ——─ 부처님 말씀이 나도 『성인이 된다고 하셨다. 법화경을 읽노라면 언제 한 번은 성인이 된다 하셨다. 나는 이 말씀을 믿고 그저 법화경을 읽을란다.』

그러나 그대가,

『나 보기에는 네가 육년 전보다 성인에 가까와진 것 같지 않다』 그러시겠지.

내가 보아도 그러하긴 그렇소. 그러나 나는 믿소. 나는 이렇게 평생에 법화경을 읽는 동안에 얼굴과 음성도 아름다워지고, 몸에 빛이 나서『衆生樂 見[중생락견], 如慕賢聖[여모현성]』하게 되고, 몸에 병도 없어지고, 마침내는 나고 살고 죽고 하는 것을 마음대로 하여서 삼십이응신, 백천만억 하 신을 나토아 중생을 건지는 대보살이 되고, 마침내는 십호구족한 부처님이 되어서 삼계 사생의 모든 중생의 자부가 되느니라고.

그 날이 언제냐고? 오늘부터지요. 또는 무량겁 되겠지요.

집 값을 다 받았소. 닷새 뒤면 내가 이 집을 아주 떠나기로 되었소. 동네 사람들이 왜 이 집을 팔았는냐고, 아깝지 아니하냐고 그려오. 그렇게 애를 써서 지은 집을 왜 팔았느냐고, 그렇게도 사랑하던 집을 왜 팔았느냐고. 게다가 너무 값을 적게 받았다고, 또 서로 정이 들었는데, 또 떠나게 되니 섭섭하다고 그러오. 다들 고마운 사람들이오.

『집보다 더한 몸뚱이도 때가 되면 버리고 가는 걸요.』

나는 웃고 이렇게 대답하였소.

실상 한 집에 한평생 사는 사람은 심히 팔자가 좋은 사람이오. 한 번 이사 하는 것이 한 번 화재 당하는 것과 같다고 하는데, 그것은 나만 경제적 손해만을 가리킨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오. 마음이 설렁하게 들뜨는 것이 큰 타격인가 하오.

더구나 떠나갈 데를 미리 장만해 놓지 아니하고, 있던 집을 먼저 팔아버린 때에 마음이 괴로움은 어간이 아니오. 게다가 제 집 한 간 없이 셋집 세방으로 돌아다녀서 여기서 쫓겨나고, 저기서 쫓겨나고 하는 심사는 실로 비길 데 없이 괴로울 것이오. 한층 더 떨어져서 세방을 얻을 힘이 없어서 남의 집 행랑, 곁방으로 식구들과 누더기 보퉁이를 끌고 다니지 아니하면 아니 될 신세야 말해서 무엇 하겠소? 그것은 차라리 천지로 집을 삼고 홀몸으로 돌아다니는 거지 신세보다도 애터질 노릇일 것이오.

한 곳에 떡 자리를 잡고 일평생 사는 것이 어떻게나 상팔자이겠소? 게다가 그 자리가 대단히 좋은 자리일 때에 그것은 인생에 최고 행복일 것이오. 대 대로 한 집에 사는 집을 명당이라고 하는 것이 이 때문이겠지요.

나는 지금까지에 한 집에서 십년을 살아본 일이 없는 사람이오. 한 집은커녕 한 고장에서 십년을 살아본 일도 없소. 내가 처음 나서부터 우리 아버지가 나를 끌고 내가 열 한 살 되기까지에 네 번이나 이사를 하셨고, 열한 살에 부모를 여읜 뒤로는 나는 금일동 명일 서로 표랑생활을 한 것이오. 서울에 엉덩이를 붙이고 사는지 우금 십구 년에도 집을 옮기기 무려 열 번이나 되오. 그동안에 여기서 일평생을 살자 하고 집을 짓기가 세 번이데, 이제 둘째 집을 파는 것이오.

발둥에 핏줄이 호형으로 돌아가면 한 자리에 오래 붙어 살지 못한다는 말 이 있지 않소? 내 발등이 그래. 그리고 사주를 보이거나 손금을 보이거나 고향에 붙어 있지는 못할 팔자래.

그러고보니 이것이 모두 전생의 업보요.

사람으로 집을 옮기는 것이 대개는 두 가지 이유가 있는가 하오. 빚을 지거나 기타 밖에서 오는 이유로 부득이 떠나게 되는 것이 첫째, 그리고 더 좋은 데를 찾아서 떠나는 것이 둘째, 부득이한 이유로 떠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지마는, 더 좋은 데를 찾아서 떠난다는 것도 벌써 그 사람의 팔자가 상팔자는 못 되는 표이오. 나는 두 가지 이유를 다 가지고 집 떠나기를 하여 온 것이오.

한 번은 내가 병이 중하여서 피접 나는 모양으로 집을 떠났고, 한 번은 일 평생 살아갈 집이라고 지어 놓고 옮아갔으니, 이것이 이를테면 내게는 가장 행복된 이사였고, 또 한 번은 아들을 좋은 소학교에 넣기 위하여서 그 일 평생 산다던 집을 팔고 떠났으니, 이것은 좋은 편이고, 한 번은 아들이 좋은 학교에 입학하려다가 죽어서 차마 그 집에 살 수 없다고 하여서 집을 떠났고, 한 번은 이제는 세상에서 숨어서 일평생을 산다하여 새로 집을 지었으니, 그것이 바로 어저께 집 값 끝전을 받은 이 집이오.

그리고는 아내가 의학공부를 더 한다고 하여서 동경으로 집을 옮겼으니 이것도 상당히 칭찬할 만한 일이었고, 그리고는 아내의 병원을 짓고 큰 사업을 하자고 큰 집을 지었으니, 이것은 제법 사회봉사의 의미를 가진 매우 중요성 있는 이사였소. 나는 이 이사가 크게 축복을 받아서 아내의 사업이 크게 흥왕하기를 바라오.

그런데 지금 팔려 넘어간 북한산 밑에 있는 집은 내가 홀로 숨어 있어서 일생을 보내리라는 생각을 바로 한 달 전까지도 가지고 있었으나, 행인지 불행인지 사자는 사람이 나서서 이것을 팔아버리게 된 것이오.

『그저 작자 없는 동안이 내 것이야.』

하던 어떤 친구의 말이 명담이오.

나는 이제 와서는 이런 핑계를 하오. 이 집이 내 별장으로는 너무 과해.

육천 원짜리 별장이 내게 당한가. 한 오륙백 원으로 초갓집을 꼭 삼 간만 짓고 살리라 ── 이렇게.

아직도 나는 더 나은데, 더 좋은데 하고 찾는 마음을 버리지 못하니 딱 한 사람이오.

『吉人住處是明堂(길인주처시명당)』 좋은 사람 사는 곳은 다 명당이오.

그것이 산골짜기거나 벌판이거나 시의 빈민굴이거나 움막이거나, 저만 도를 얻어 덕이 있는 사람이면 그 사람 사는 곳은 다 명당이랑 말이오. 이것은 내가 이 집을 팔고 어디로 가나 하고,생각하다가 문득 얻은 글귀오.

『天地皆向我[천지개향아],無事不太平[무사부 태평].』이것은 일전 꿈에 얻은 글인데, 천지도 다 나로 말미암아 있으니 무엇은 태평이 아니랴, 그런 소리인가 보오. 두 글귀가 다 내게는 큰 교훈이 되오. 하필 경치 좋은 곳을 찾을 것은 있느냐? 하필 새로 집을 지을 것은 있느냐? 어디든지 내 분에 오는 대로 이 몸을 담아 두면 그만이 아니냐 ── 이 뜻이겠으나, 진실로 이런 심경을 가지고 살게 된다면야 제법이지요. 닥치는 대로 먹고, 입고, 닥치는 대로 자고, 그리고 마음이 늘 화평하여서 아무 근심이 없다면야 벌써 성인지경 아니오? 그러나, 그것은 내 따위로는 엄두도 못낼 일이오. 어떤 중의 글에,

『오랜 옛날부터 육도 두루 돌았으나, 좋은 것 하나 없고, 걱정 소리 뿐일러라.』하는 말이 있소.

이것은 내 생명이 나고 죽고 나고 죽고 하는 동안에 천상, 인간, 아수라, 지옥, 아귀, 축생 여섯 가지 세계에 아니 가 본 데가 없지마는, 어디를 가 보아도 모두 근심 걱정 뿐이요, 살기 좋은 데는 없더라 하여 중생에게 염불을 권하는 글이오. 네 이 세상에서 아무리 좋은 데를 찾기로니 좋은 데라는 것이 어디 있느냐, 아미타불의 극락 세계에나가야 비로소 좋은 데를 보리라는 뜻이오.

그대여, 이 세상 한 세상 살아가기가 그렇게 어렵구나. 아침에 나왔다가 저녁에 죽는다는 하루살이도 그 하루 생명을 부지하여 가기가 매우 어려운 모양이오. 요새 이 집에도 모기가 많이 나왔는데, 내가 모기장을 치고 자니, 여러 십 마리가 모기장 가으로 앵앵하고 돌다가 돌다가 벽에 붙어서 자니, 필시 굶어서 자는 것 아니오? 이것을 사람의 말로 번역하면 생활난이야. 그들의 대부분은 그 조그마한 배도 채울 수가 없어서 굶주리다가 굶주리다가 죽는 모양이야. 그들이 앵앵거리는 것은 과연 비명이 아닐 수가 없소. 내 집 창 앞에 와서 우는 참새들도 산새들도 까치들도 또 아마 창경원에 집을 잡고 있는가 싶은 따오기 왁새들이 내 집 위로 아침 저녁으로 날아다니는데 그들도 무척, 생활난이 아닌가 하오. 아마 요새에 어린 자식들을 두고 먹이를 찾느라고 수색, 일산 등지의 논으로 돌아다니는 모양이오.

그들이 인왕산 뒤를 넘어서 북악을 넘으려 할 때는, 더구나 다 저녁때에 너풀너풀 날아 돌아올 때에는 무척 지친 모양이오. 그러다간 황혼이 다 된 때에 또다시 서쪽으로 날아가는 것은 아마 밤 사냥을 나가는 모양이오. 카페 색시들이 밤에 벌이를 나가는 모양이겠지요.

또 뻐꾸기가 우오. 응, 그 꾀꼬리도 우오.

『뻐꾹 뻐꾹.』

『비조비비 지 오비, 지 오리지오리비.』

이 모양으로 울고 있소.

밤이면 또 쑥덕새가 우오,

『쑥덕쑥덕쑥덕쑥덕, 딱딱딱딱.』

그들은 암컷을 부르는 것이라오. 하루 종일 부르고 날마다 불러도 좀체로 짝을 만나지 못하는 모양이오. 요사이에는 밤이면 청개구리가,

『개굴 개굴 개굴, 개굴 개굴 개굴.』

하고 세검정 개천 버드나무 밑에서 밤 늦도록 우오. 아마 밤새도록 울겠지.

그들도 암컷을 찾는 것이라오.

수일 전부터 반딧불들이 셋, 넷, 감나무 밭 위로 오르락내리락, 조그마한 번뇌의 푸른 등을 깜박깜박하면서 헤매오. 그들도 짝을 찾는 것이라 하오.

그래도 쉽사리 못 만나는 모양이오.

우리집 이웃에는 스물 다섯 살이나 난 총각이 얼굴에 여드름이 잔뜩 나가 지고, 날마다 지게를 지고는 벌이하러 문안으로 들어가거니,해 지게 돌아와서는 밥을 먹고는 새 고의적삼을 입고 옥색 조끼를 입고는 세검정 네거리 쪽으로 내려가오.

『어디 가나?』

『말 가요.』

하고 그는 웃소. 세검정쪽으로 내려가면 술집 갈보가 있소. 그는 일찍 갈보 하나를 데려다가 한 사오일 동안 놀이를 한 일이 있었는데,그 때 장가들 밑천이라고 모아 두었던 돈 일백 팔심 원을 몽탕 써버렸다고 하오. 그 돈을 다 빨라먹고는 그 갈보는 마치 피 빨아먹은 모기 모양으로 다른데로 그 갈보는 마치 피 빨아먹은 모기 모양으로 다른데로 가버리고 말았소. 요새에는 그 총각은 하루에 기껏 일 원 남짓 버는 터이니, 갈보 팔목 한 번 잡아 볼 재력도 없을 것이오. 그가 밤에 세검정 네거리로 내려가더라도, 유리창을 통하여 그 뚱뚱한 갈보를 우두커니 바라보다가 오거나, 기껏해야 막걸리 한 잔 사 먹고 농담 한 마디나 붙여 보고 올까?

이 동네 처녀들은 모두들 공장으로 갔소. 열댓 살 먹어서 동네 총각들의 눈에 들 만큼 되면 공장으로 달아나 버리고, 동네에 남아 있는 계집애라고는 코흘리는 어린 것들 뿐이오.

모두들 생활난이오. 벌레나 새들이나 사람들이나, 먹을 것 없을 것 없어 생활난, 시집 장가 못가서 생활난, 그런데 대관절 무엇하러 이렇게 살기 어려운 세상에 살고 싶어하는 것이오? 그나 그 뿐인가. 저도 살기 어려운 세상에 애써서 왜 새끼를 치자는 것이오? 그것이 생명의 신비지요. 아마 생물 자신들은 의식 못하면서도 그 속에 우주의 목적이 ── 어떤 방향을 가게 하려는 목적이 있나보지요.

『到處無餘樂[도처무여락].唯聞愁嘆聲[유문수 탄성].』

그래서 옛날 중이 이러한 한탄을 한 것이오.

그렇다하면,이 사바 세계에서 어디를 가기로 편안한 고장이 있겠소? 사바 세계란 말이 본디 참는 세계라는 뜻이랍니다. 참고 견디고 살아갈 만한 세 계란 말야. 그러니까 괴로운 세계란 말인데, 그렇다 하면 잘 참는 사람이 오직 행복된 사람이 되는 것이오. 행복은 추구함으로 얻을 것이 아니라, 제 번뇌 ── 모든 욕심 말이지요 ── 를 뿌리째 뽑아버린 때에 비로소 사바 세계에 행복이 있단 말이지요.

『願人槃城[원인 반성]』

그 중은 이 말로 끝을 막았소. 원컨대 열반성에 들어 지이다 ── 삼계 육도를 두루 돌아도,

『到處無餘樂[도처무여락].唯聞愁嘆聲[유문수탄성]』이니까 다른 데 좋은 데를 찾을 것 없이 내 번뇌를 다 불살라버리자는 말이오. 열반이란 욕심을 떠난 경계라니까.

그런데 그대도 저번 편지에,

『여보시오, 나는 도저히 이 생활을 더 견딜 수 없소.

나는 이 자리에서 뛰어날 수밖에 없소. 나는 더 나를 속이기를 원치 아니하오. 이런 생활을 계속할 바에는 차라리 죽어버리고 싶소. 여보시오, 내가 어떻게 하면 좋소?』

이러한 말씀을 하셨거니와, 나는 그 편지에 여태껏 답장을 아니 하고 있거니와,(무슨 말로 답장을 하겠소? 할 말이 없지 않소?) 그것은 그대가 지금 어디 있는지를 잊어버린 까닭이오. 그대 있는 곳이 어딘고 하니 사바 세계요. 그대의 생활이 뜻대로 아니 되고 괴로움이 많은 것은 사바 세계 중생으로 태어날 때에 벌써 그럴 줄 알고 온 것 아니오? 그대가 그중의 말과 같이 열반성에 들거나 그까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아미타불님께 매달려서 극락 세계에라도 가기 전에는 그대는 괴로움은 벗어날 수가 없는 것이 아니오? 그대가 이 자리에서 벗어나다니 어디로 벗어난다는 말요? 손오공이 모양으로 힘껏 재주껏 달아난대야 다 가고 보면 또 거기가 거기요. 죽어? 죽으면 어디로 가오. 죽어도 또 거기가 거기요. 사람이 죽어서 모든 괴로움을 벗어날 확신만 있다고 하면, 금시에 자살할 사람이 무척 많을 것이오. 그렇지마는 죽으라하고 보면 죽음의 저편이 도무지 마음이 아니 놓여. 죽어서 지금보다 더 괴로운 데로 간다면 차라리 이자리에서 참고 있는 것만도 못 하거든. 그게 걱정이한 말이요.

또 까치가 깍깍거리오. 여러 놈이 함께 깍깍거리는 품이 어디 뱀이 나왔다 보오. 뱀들이 요새에 새새끼들을 노리고 돌아다니는데, 아마 어떤 뱀이 까치 집을 노리는 모양이오. 그 뱀이 까치집 있는 나무를 찾아 기어 올라가서 아직 날지도 못하는 까치 새끼를 잡아 먹는 것이오. 그러나 뱀편으로 보 면 까치 집 하나 얻어 만나기가 아마 극히 어려우리다. 그럴 것이, 이 동네에도 까치 집이 모두 열이 될락말락하는데, 뱀은 아마 수만 마리가 있을 모양요. 또 땅에 붙어 기어다니는 놈이 멀리서 까치집 있는 데를 바라보고 달려갈 수도 없는 노릇 아니오?

아무려나 까치들은 선천적으로 뱀을 무서워하는 모양이오. 반드시 한 번 혼난 경험이 있어서만 까치들이 뱀을 무서워 하는 것은 아닌상 싶소. 그러나 까치들은 뱀 안 사는 곳에 집을 지을 수가 없구려. 뱀이 살 수 없는 곳이면 까치 살 수도 없는 곳이란 말요. 그러니까 까치는 될 수 있는 대로 뱀이 없을 듯한데다가 집을 지어 놓고,

『제발 뱀이 오지 말게 합소사.』

하고 비는 수밖에 없을 것이오.

내 이 집을 사가지고 오실 부인이 나를 보고,

『여기 뱀 없어요? 지네 같은 것?』

이렇게 물읍디다.

그래 나는 빙그레 웃었소. 왜 웃었는고 하니, 바로 일전에도, 아마 지붕 기왓장 밑에 친 참새 새끼를 먹으러 왔던 게지요. 젊은 뱀 내외가 대낮에 담을 넘어 들어오는 것을 우영이랑 환이랑 나랑 셋이서 우리 면이 다니는 소학교에 표본으로 보냈거든요. 그 아내 뱀이 태중이더라오. 남편이 먼저 들어와서 잡혔는데, 아마 아내가 혼자서 기다리다가 걱정이 되었던지, 무거운 배를 안고 따라와서 같은 유리 병에 들어간 거요. 근래에는 사람에도 드 문 열녀야.

또 우리 사랑 아궁이 옆에도 분명히 살무사 한 쌍이 산대. 환이 보았노라니 정말이겠지요. 둘이 가지런히 대가리를 내어밀고 혀를 날름날름 하고 있 는 것을 환이가 보았다오. 이런 것을 생각하니 그 부인이 묻는 말이 우습지 않소? 그래서 내가,

『세상에 뱀 없는 데가 어디 있어요? 지네, 그리마, 노래기 이런 것도 바위 있는 산에는 없는 데가 없읍니다.』

그랬더니 이 부인은 대단히 입맛이 쓴 모양입니다.

『난 뱀, 지네, 그런 것 싫어하는데.』

그리고 양미간을 찡깁니다.

뱀, 지네, 그리마, 노래기, 쥐며느리, 거미, 송충이, 이런 것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소. 빈대, 바퀴, 벼룩, 모기, 파리 이런 것 다 싫은 것 아니 오? 길가다가 하루살이 그런 것 다 싫지요. 또 우리 몸을 파먹는 모든 벌레와 미생물들, 회충, 촌백충이, 십이지장충, 요충, 결핵균, 임질균, 매독균, 기타 파상풍 일으키는 균, 패혈증 일으키는 균, 트라홈, 옴, 무좀, 이런 것 다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내 밥을 지어 주는 집에서 닭을 서너 마리쳤소. 숫놈 한 놈, 암놈 세 마리. 그놈들이 풀숲으로 돌아다니고 울고 하는 것도 재미있으려니와, 하루에 두세 알씩 알을 낳는 거요. 이게 재미야. 그런데 이놈들이 부엌이나 마루에 똥질을 하고 화초와 채마를 녹이고 한다고 그 집에서 성화를 하더니, 그놈들이 이가 끓어서 그것이 방에까지 들어와서 견디다 못하여서 다 잡아 없애고 말았는데, 그 닭이 깔고 잇던 섬거적에도 이가 있다고, 이 이는 삼년이 가도 아니 없어진다고 하여서 솥에다가 물 한 솥을 끓여서 그 섬거적에 붓고도 그래도 끓는 물에도 아니 죽는 놈이 있을까 보아서,마치 염병 앓다가 죽은 사람의 이부자리 모양으로 그 섬거적들을 길가 풀숲에 내어버렸는데, 올적 갈적 그 섬거적을 보면, 번번이 마음에 섬뜩한 것이 생긴단 말요. 한 중생세계가 그 모든 욕심과 기쁨과 괴로움 속에서 살다가 망해 나간 폐허를 보는 것 같아서.

닭 주인은 다시는 닭은 아니 친다는 거요. 차차 닭백 마리나 쳐서 양계를 해 보려고 희망이 가득 하더니, 아주 닭의 이 통에 진절머리가 난 모양이오.

『풍파에 놀란 사공 배 팔아 말을 사니, 구절양장이 물 두곤 어려워라 이후란 배도 말도 말고 밭갈기나 하리라.』

하는 옛 노래가 있지 않소? 그러나, 밭갈기는 쉬운가?

그 사람이 만일 말을 팔아서 밭을 샀다면,

『밭 갈아 기음 매기 풀 뽑기와 벌레잡기,』

가물면 가물어서, 비 오면은 물이 날까, 가을 밤 우뢰 번개에 잠 못 이뤄.』할 것이오.

꽃 한 송이를 보자면 벌레 백 마리를 죽여야 하오.

이 글을 쓰고 있노라니 삼철이라는 영등포 방직공장에 다니는 이웃집 계집애가 찾아 왔소.

『너 어째 왔니? 공일도 아닌데.』

『몸이 고단해서 하루 말미를 얻었어요.』

『어디가 아프냐?』

『그저 몸이 나른해요. 팔다리가 쑤시고.』

하며 그는 눈을 뜨기도 힘이 드는 듯이 나를 쳐다보오.

이 애는 열 여섯 살에 공장에를 들어가서 금년이 열 아홉 살이오. 지금은 감독이 되었노라고. 그래서 일은 좀 헐하지마는, 그 대신 다른 아이들한테 미움을 받노라고.

『여섯 시부터 여섯 시까지 줄창 섰는 걸요. 피가 모두 다리로만 내려가서 발등이 소복소복 부어요.』

『노는 시간이면 모두들 잔디밭에 모여 앉아서 눈물을 떨구기가 일이죠.』

『그래도 소박데기나 과부나 그런 이들은 우리 같은 계집애를 부러워들 해요 ── 우리도 처녀 같으면 한 번 다시 시집 가서 재미있게 살아 보련만 ── 이러구요.』

삼철이는 뽀얗게 화장을 하고, 하얀 모시 적삼에 누르스름한 교직 치마를 입고 앞치마를 두르고, 머리에 빈들을 여기저기 꽂았소.

『그럼 무엇해요? 암만 있으니 여기 월급이 몇 푼 돼요? 옷 해 입고 화장품 사고, 먹고 싶은 것 잘 사먹지도 못하지요.』

『모두들 화장들 하니?』

『그럼요. 자고나면 모두들 화장들 하지요. 화장하는 게나 재미지, 또 무슨 재미있어요?』

나도 한숨을 지었소. 보아줄 남자들도 없는 여자만의 나라에서들 화장들을 하는 과년한 계집애들의 모양이 눈에 뜨이오. 그들은 화장하고 작업복 입고 공장으로 들어가는 것이오.

『잘 때에는 모두들 곯아 떨어져서 이를 갈아요, 잠꼬대도 하고. 이를 가는 것이 참 못 견디겠어요. 그리고 다리들을 남의 배 위에 척척 올려놓지요.

열 두 시간이나 내려서니깐 다리가 저리거든요. 좀 올려놓으면 참 편안해요. 그래도 남의 다리가 내 위에 와 얹히면 참 싫어요. 그래서들 싸우지요.』

『회사에서는 돈이 막 남는대요. 그래도 월금은 영 안 올라요. 먹을 거나 좀 낫게 해주어도 좋으련만.』

『아버지도 인재는 늙으셨어요. 오늘도 허리가 아프시다고 누워 계셔요. 어머니도 늙으시고요. 통 눈이 안보인대요.』

『오라버니는 마음은 착하건만 술 때문에 걱정야요. 언니는 병으로 그저 그 모양이고요.』

삼철이는 이런 이야기를 하다가 갔소. 소학교에도 못 다녀 본 그연마는, 공장에 가 있는 동안에 지식이랑 말이랑 늘었소. 그의 말은 모두 한 번 들으면 아니 잊히는 말이오. 그것은 인생의 시가 아니오? 슬픈 시가 아니오?

삼철이도 제 장래를 그리고 있겠지요. 그대나 내가 수 십 년 전에 그리하였던 것같이 그는 지금의 가난한 신세를 한탄하면서도, 좋은 남편과 깨끗한 집과 이러한 모든 좋은 것을 상상할 것이오. 그러길래 그가,

『집이나 하나 깨끗하게 짖고 살았으면 좋겠어요 ── 초갓집을요.』한 것이오.

이제는 시집도 가고 싶을 때 아니오? 아이도 낳고 싶을 때 아니오? 그러나 그렇게 알맞게 술 안 먹고 노름 안 하고, 일 잘 하고, 또 될 수 있으면 돈도 좀 있고, 또 될 수 있으면 얼굴도 잘나고, 또 될 수 있으면 마음 도착해서 처가족을 소중히 여기고, 첩을 얻는다든지 도박을 한다든지 그러지 아니하고, 그러한 안성마춤 신랑이 나서 줄는지. 그리고 그가 그렇게도 소원하는 깨끗한 초갓집 한 채가 그의 몫이 되어 줄는지. 이것은 물론 이 아이의 몫에 오는 제비를 펴 보아야 알겠지요. 그러나 한가지만은 확실하지 아니하오? 괴로움 없는 생활은 없다는 것은. 그러니까 이 아이도 사바 세계의 뜻을 알아서 참는 공부를 하여야 할 것이겠지요.

『어려서 좀 고생을 해 보아야 해요.』

삼철이는 어른스럽게 이러한 말을 하였소. 그것은 대단히 기특한 말이지마는,

『사람이란 일생에 고생할 것을 깨달아야 해요.』

하는 말은 아직 이 애 입에서는 나올 때가 아니겠지요.

왜 그런고 하면, 열 아홉 살 난 처녀의 생각으로는 필시,

『내가 고생할 날도 며칠 안 남았다. 며칠만 더 지나면 나는 고생을 떠나서 재미만 쏟아지는 살림을 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생각할 것이오.

그러나 그대는 이미,

『인생이란 고생이다.』

하는 진리를 깨달을 날도 되지 아니하였소? 이 세상에서 아무 데를 가더라도, 무엇을 하도라도, 거기가 거기요, 그것이 그것이라고 깨달을 때가 되지 아니하였소?

『내가 태어난 곳은 사바 세계다. 참고 견디는 세계다. 내가 받는 것은 모두 다 내가 받을 것을 받는 것이다. 이것을 안 받으려고 양탈하는 것은 마치 나이를 아니 먹으려고 뻗대는 것과 같다. 그것은 어리석음이오. 그 뿐 아니라 앞날의 악업을 더 저지르는 것이다.』

그대는 이렇게 생각하지 못하오?

이런 소리를 하는 나도 실상은 이 집보다 더 나은 집을 가지고 싶어 하오.

이보다 더 경치 좋은 곳을, 그러면서도 이보다 더 교통이 편한 곳에, 산색뿐 아니라야색까지도 볼 수 있는 곳에, 이 집보다도 더 내 취미에 맞는 집을 지어 볼까 하는 어리석은 욕심이 있어서 벌써 거간한테 터 하나를 골라 달라고 말까지 하여 놓았소.

그렇지마는, 이것은 물론 헛된 공상이요. 첫째로 이 집을 팔아서 빚을 갚아 버린면은, 새터를 사고 새집을 지을 돈이 남을 것이 없는 것이오. 그러면서도 집을 하나 지을 필요가 있다, 꼭 하나 지어 보자 하는 어리석은 생각을 버리지 못하고 있으니, 진실로 내가 가련하고 우준한 중생이 아니오?

또 설사 내게 돈이 넉넉히 있기로니, 뱀도 지네도 없는 집터는 어디 있으며, 꼭 마음에 들어서 언제까지나 마음에 들 집은 어디 있소? 있을 수 없는 것 아니오? 죽자 살자 하고 서로 사랑하여서 만난 내외도 몇 해 함께 살아 보면 시들해지는데, 천하에 어디 암만 오래 살아도 마음에 드는 집터나 집 이 있겠소? 그러니까,

『吉人住虛是明堂[길인주허시명당].』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오.

하필 집만이랴, 만사가 다 그렇겠지요. 내외간도 그럴 것이오. 사람의 욕심이란 제풀로 내버려 두면 대추나무 뿌리 같아서 한없이 뻗어가는 것이오.

이 여자를 아내를 삼으면 저 여자가 더 좋은 것 같고,이 남자를 남편으로 삼으면 저 남자가 더 잘난 것 같단 말요. 그러고 보면 결국 제게 태인 남편을 가장 좋은 남편으로 알고, 제 아내가 된 여자를 가장 으뜸 가는 여자로 알아서 그로써 만족하는 것이 상책일 수밖에 없는 것인데, 욕심이라는 심술 궂은 마귀가 사람의 눈을 가리워서 이 분명한 진리를 못 보게 하고서리, 자꾸만 더 나은 것을 찾아서 헤매게 하는 것이오. 이래서 저로는 번뇌가 끝이 없고, 세상으로는 죄악이 그칠 줄을 모른단 말요.

『不求大勢[불구 대세불]. 及與斷苦法[급여 단고법]. 深入諸邪見[심입제 사견]. 以苦欲捨苦[이고 욕사고]. 爲是衆生故[위시 중생고].而起大悲心 [이기 대비심].』

석가여래께서 수도하신 동기가 여기 있노라고 하셨소. 인생의 괴로움을 벗 어나는 길이 힘이 많으신 부처님의 가르치심을 따르는 길밖에 없는데 ── 다시 말하면 제 욕심을 따르는 이기욕을 버리고 자비의 생활을 하는 길밖에 없는게 ── 이 길이야말로 진리의 길인데,이 길을 찾지 아니하고 사특한 (잘못된, 그릇된, 진리 아닌) 길을 걸어서 괴로움을 버리려고 하니, 그것은 도리어 점점 더 괴로움을 걸머지는 것이란 말요.

세상을 둘러보면 모두 괴로운 사람들 아니오? 얼른 보기에 행복된듯한 부자들이나, 권세 있는 자들도 그 속을 들어보면 모두 걱정 근심이여. 그런데 나이가 많은 사람일수록 더욱 고생이 심하고 걱정 근심이 많은 모양이오.

그 사람들은 일부러 걱정 근심을 찾아서 걱정 근심을 하는 것은 아니겠지요. 다들 평생에 자고 나면 걱정 근심을 면하고 행복을 찾으려고 애써 온 사람들이언마는, 한 살 두 살 나이가 먹을수록 찾는 행복은 점점 멀어가고, 면하려는 고생만 지긋지긋이도 따라오는 거야. 이것이 인생의 진상이 아니 오?

하룻밤 자고나서 이 편지를 계속하오.

날이 밝고 바람도 없소.

『찌배, 찌배, 찌배, 찌배,』

솔새 소리가 나오. 두 뺨이 하얀 새요. 솔밭에 산다고 솔새라 하고 두 볼이 희다고 하는 놈이오. 아침 저녁 솔새가 내 창 앞에 와서 우오.

어제는 비가 올 것 같더니, 제법 오기 시작까지 하더니, 무슨 생각이 났는 지 씻은듯 부신 듯이 희오. 뜰에 심은 화초 포기도 축축 늘어졌소. 며칠 지나면 나는 이 집을 떠난다 하면 화초에 물을 주자는 정성도 떨어지오. 부끄러운 일이지요. 그래서 억지로 제 마음에 채찍질을 하여서 물을 주지마는, 워낙 가무니까 이로 당할 나위가 없소. 감들도 모처럼 많이 열린 것이 수분 이 부족해서 떨어지기를 시작하오. 삼남 지방에는 기우제를 드린다는데, 어 제가 단오, 오늘이 하지건마는, 모들을 못 내었으니 큰일 나지 않았소? 만주서 온 편지에도 가물어서 금년 농사가 걱정이란 말이 있소. 어떤 수리조합에는 저수지까지 말랐다니, 큰 걱정 아니오?

『공전은 안 오르는데 쌀값만 껑충껑충 뛰니, 이런 제길.』

하고 돌산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게두덜거리오. 그렇지만 하느님이 다 알아서 작히나 잘 하시겠소?

하지만 내가 지은 이 집에 결점이 많아서 늘 불만하던 모양으로, 또 내 몸이 늘 병이 있고 아름답지를 못하고 또 내 마음이 지저분하고 의지력이 약하고 도무지 마땅치 아니한 모양으로 이 사바 세계란 것이 약하고 도무지 마땅치 아니한 모양으로 이 사바 세계란 것이 결코 최상 최성(Best Possible)은 아닌 모양이오.

그래서 예로부터 이 세상은 안전한 이데아의 세계의 그림자라고 한 이(플라톤)도 있고, 이 세상은 본디는 완전 무결하였지마는 사람이 죄를 짓기 때문에 이렇게 껄렁껄렁이 되었다는 이(예수)도 있고, 애초부터 하늘 나라 보다 못하게 만들어진 것이라(희랍 신화)고 한 데도 있고, 또 이 세상이란 아무렇게나 되는 대로 되어 먹은 것이라고 한 이도(쇼펜하우어)도 있고, 또 이 세상은 점점 완전을 향하고 걸어 가는 생성(Becoming)의 도중에 있다는 이(진화론적 우주관을 가진 이들)도 있고, 또 이 우주 간에는 우리 세상같이 껄렁이도 있지마는, 이보다 좀 나은 세상, 더 나은 세상, 좀 더 나은 세상, 더 더 나은 세상, 더 더 더 나은 세상, 그러다가 마침내는 고작 나은 세상이 있고, 또 그와 반대로는 우리가 사는 세상보다 더 껄렁이, 더 더 껄렁이, 이 모양으로 수 없는 계단을 내려가서 말할 수 없이 흉악한 껄렁이 세상이 있으니, 그것은 다 그 속에 사는 중생의 인연업보와, 원력과 불, 보살의 원력으로 이루어진 것이니라, 이렇게 가르치는 이(불교)도 있지 아 니하오?

그러기도 할 게요.지금 이 편지를 쓰고 앉았는 이 동네로 보더라도, 불과 오륙십 호 되지마는 집마다 다르거든, 이 중에서는 고작 나은 집, 좀 못한 집, 움집. 나라들로 보아도 그렇고 그런데, 이러한 집들이 다 그 집에 사는 사람들의 업보인 것이야 틀림없지 아니하오? 다시 말하면 다 제가 들어 있을 만한 집에 들어 사는 거야. 그러다가 나 모양으로 그만한 집도 지닐 형편이 못되면 남의 손에 넘기고, 또 지금보다 형편이 펴이면 지금보다 나은 집을 옮아갈 수 있고.

아무러나 이 세상이 그렇게 가장 좋은 세상이 못 된다고 보셨기 때문에, 법장비구(아미타불전신)가 괴로움 없는 가장 좋은 세계를 건설할 원을 세우고 조재 영겁에 수행을 하신 결과로 우리 사바 세계에서 십만억 세계를 지난 서쪽에서방정토 극락 세계를 이룩하신 것이 아니겠소. 거기는 악이란 하나도 없고,

『諸上善人具會一處 [제상선 인구회 일처].』

하여서 오직 즐거움만을 누리게 되었다 하오. 우리 사바중생들도 아미타불 부처님의 이름을 부를, 그 세계에 나기만 원하면 반드시 다음 생에 거기 태어날 수가 있다고 하오. 거기는 꽃도 좋은 꽃이 많이 피고, 앓는 것도 없고, 죽는 것도 없고, 얼굴들은 다 잘나고, 마음들은 다 착하여서 오직 사랑만이 있을 뿐이라 하오. 거기는 내 집을 사는 분이 걱정하시는 뱀이나 지네도 없고, 내가 제일 좋아 않는 파리나 모기나 송충이도 없고, 또 집을 팔 것도 없고, 집이 없어서 걱정도 없고, 무론 남편을 불안히 여겨서 다른 남자를 탐내는 여자도 없고, 아내가 싫어져서 다른 여자를 가지고 싶어 하는 남자도 없고, 아무러나 현재에 이 우주 간에 있는 세계 중에는 가장 잘 된 세계라고 하오.

인도에 용수(龍樹)라고 대단히 큰 학자로서 또 대단히 큰 불교의 중흥자가 되어서, 보살이라는 칭호까지 받은 어른이 일생에 생각다 생각다 못하여서 마침내,

『世尊我一心[세존아일심]. 歸命盡十方[귀명진 십방]. 無礙光如來(무애광 여래래). 願生安樂國(원생 안락국).』

이라고 부르짖었소. 무애광여래란 아미타불이시오, 안락국이란 극락 세계란 말요.

그러므로 적어도 법장비구의 사십 팔 본원 속에 안겨서 극락 세계에나가기 전에는 괴로움 않는 인생이란 없는 것이오.

그러면 어찌 할까? 제게 태운 집에 만족하는 것이야. 쓰러져 가는 초갓집 한 간이라도 내 집이라고 있는 것만 고맙게 생각하는 거야. 빈 땅이 있거든 꽃포기나 심읍시다그려. 아침 저녁 물 뿌리고 깨끗이 소제나 합시다그려.

종잇장도 바르고, 그림장도 걸고, 내 힘에 미치는데까지 깨끗하게 아름답게 꾸밉시다그려.

『아이고,이런 집에 어떻게 살아.』

하고 낯을 찡기고 앙탈하는 것은 손복할 일야. 내가 과거에 한 일이나 현재 에 먹는 생각을 살펴보면 이런 집도 황송해. 이렇게 생각하여야 옳지 않소?

그러다가 내 값이 높아지면 저절로 나은 집에 가게 되는 거 아니겠소?

집만 그런가? 남편이나 아내에 대하여서도 마찬가지 아니오?

어리석은 사람들은 제 낯바닥이 잘 생겼거니 합니다. 제 낯바닥이 남만 못 하거나 하는 사람은 대단히 지혜로운 사람이오, 또 성인에 가까운 사람이오. 그러길래 사진사는 사진을 수정할 때에 본 얼굴보다 낫게 해 주어도 속인들은 불평을 하오.

『이게 무엇이야? 아이고 숭해라.』

사진관에 사진을 찾으러 오는 사람들은 다 이렇게 불평하는 것이오. 이때에 사진사는 그 본 얼굴을 바라보고 웃지 않겠소? 본 얼굴은 사진 얼굴보다도 훨씬 못하거든.

사람들은 석경에 제 얼굴을 비취어 보고 스스로 수정을 하고 변호를 하오.

코가 작은 사람은 코가 자그마한 것이 예쁘다고 보고, 얼굴 긴 사람은 얼굴 길음한 것이 으젓하다고 보오. 그러나 제삼자의 냉정한 눈으로 보면 코는 돋다가 말고, 상판대기는 궁상스럽게도 길다,그럴 것이 아니오?

그렇지만 어떡하오? 전생 업보로 그렇게 생겨 먹은 낯바닥은 이생에서는 고칠 도리가 없지 않소? 그나 그뿐인가, 제가 이렇게 못생긴 것을 누구를 원망하오? 부모인들 못난 자식 낳고 싶어서 낳았겠소? 천하에 제일 잘난 자식을 낳고 싶은 것이 부모의 마음 아니겠소. 결국 제 업보로 그 만큼밖에 못 타고난 것을 누구를 원망하오? 또 사실 제 소갈머리를 들여다보면 그 낯바닥도 과해.

그러니 타고난 이 낯바닥은 죽는 날까지 세상 사람들 눈앞에 들고 다닐 수밖에 없소그려. 나는 이렇게 못난이오. 이렇게 전생에 악업이 많아 덕은 엷고 복은 적은이오 하는 것을 모가지 위에 높이 들고 다니지 아니하면 아니 되니, 참 냉혹한 벌이라고 아니할 수 없지요. 만일 사람이 이런 줄을 깨닫는다면 어디 사람 없는 곳에 꼭 숨어서 나오지를 못할 것이오.

그렇지마는 어떡하오? 아무리 흉한 얼굴이라도 들고 나와 다니지 아니할 수 없으니. 그러니까 언제나 소곳하고 조심성스럽고 겸손하지 아니할 수 없지요. 아무쪼록 남의 눈에 아니 뜨이도록, 더 흉하게나 보이지 아니하도록 조심조심 할 것 아니오? 『이것 보시오들!』하는 듯이 그 못생긴 낯바닥을 내두르는 것을 차마 못 볼 일이 아니오?

하니까 여자면 분도 좀 바르고, 사내면 이발이나 자주하고, 게다가 냄새나 아니 나게시리 목욕과 빨래나 자주하고, 또『얌전』이나 좀 바르고, 이렇게 될 수 있는 대로는 남에게 불쾌감이나 아니 주도록 닦을 수밖에 없지 아니 하오?

쓰러져 가는 초갓집에도 꽃나무 하나가 있으면 운치가 있어서 그림장이들 이 그림이라도 그리고 싶어 합니다.

하물며 그 집에 덕이 높은 사람이 살면 여러 사람이 그 집을 찾아오고, 신 문사 사진반도 그 집을 사진 박습니다. 그 모양으로 얼굴이 흉해도 덕이 높거나 무슨 좋은 재주가 있거나 돈이 많거나 벼슬이 높거나 하면 사람들이 그를 우러러봅니다. 같은 애꾸라도 도둑질이나 하면 『그놈 애꾸놈이』그러지마는, 나라를 위하여서 큰 전공이라도 세우면 『독안룡』이라고 하여서, 눈 둘 가진 사람보다도 더 존경하지 않아요? 이것이 정말 화장술이 아니오?

이것이 우리가 이 세상, 한세상 살아 가는 길 아니겠어요.

저 못난 줄을 진정으로 깨달은 사람일 것 같으면,사람에게 대하여서나 물건에 관하여서나 제 팔자에 대하여서나 불평 불만은 없을 것 아니오? 나는 이것만은 믿게 되었소. 이것이 내가 이 집에 온지 육 년 동안의 소득이지요.

『그 아까운 집을, 그렇게 애써 지은 집을 왜 파우?』

하고 이웃 사람이나 친구들이 다 말하지마는, 인제는 팔 때가 되니까 파는 것이다,나는 이렇게 믿소. 그리고 이 집에 그렇게 애착도 가지지 아니하오.

만나는 자는 떠날 자가 아니오? 떠날 때에 애착을 가시면 무엇하오? 가는 구름같이, 흐르는 물과 같이, 구름 가듯이 물 흐르듯이 걸리는데 없이 슬슬 살아 가는 것이 인생의 바른 길이라고 나는 믿소.

이 집을 팔고나서 앞으로 어떠한 집을 몇 번 가지게 될는지 내가 아오? 누구는 아오? 몰라! 내일 일도, 다음 순간 일도 나는 몰라! 다만 이것만은 확실하오 ── 내가 게으르거나 허랑방탕만 아니하면 죽을 때까지 방한 간 차지는 되리라, 또 내가 내 양심에 어그러지는 일만 아니하면 죽어서 다시 태어나더라도 이 신세 이하로는 아니 되리라, 내가 만나는 사람마다에게 정성껏 대접하면 나도 남의 괄시는 받지 아니하리라 ── 이것만은 확실하지 마는, 그 이상은 도저히 내가 알 바가 아니오.

앞 개천에서 빨래질 소리가 들리오. 세검정 빨래란 자고로 유명하다고 하오. 날이나 밝은 아침이면 밥솥과 장작과 빨래 보퉁이와 빨래 삶을 양철통과를 사내가 걸머지고, 여편네는 잔뜩 한 임이고 코 흘리는 아이를 데리고 자하문으로 주렁주렁 넘어오는 것이 봄부터 가을에 걸쳐서 이 고장의 한 풍경이오. 그들은 개천가 빨래하기 좋은 목에다가 진을 치고 점심을 지어먹어 가며 빨래질을 하는 것이오. 저 보시오. 개천가에는 홑이불, 욧잇, 치마, 모두 널어 말리고 있소. 남편은 아내를 도와서 방망이질을 하다가 버드나무 그늘에서 젖먹이를 안아 재우고 있소.

그들은 다 문안 잘 사는 집들의 행랑 사람들이오. 그들이 빠는 것은 물론 제 것은 별로 없고, 주인 나리, 이씨, 도련님, 아가씨네의 의복들이오, 좋지야 않소? 그들이 남이 입어서 더럽힌 옷을 빨아 줌으로써 내생의 공덕을 쌓고 있는 것이오. 아마 다음 생에는 더러는 지위가 바뀌어서 지금 빨래하고 있는 「행랑것」이 주인 아씨나 서방님이 되고, 지금 빨래를 시키고 놀고 앉았는 서방님이나 아씨가 무거운 빨래를 지고 지하 문턱을 넘게 되겠지요. 한 편은 전에 하여 놓은 저금을 찾아 먹는 패, 한 편은 새로 저금을 하는 패가 아니겠소? 요새에 저 자고난 자리도, 저 밥 먹은 상도 아니 치우려는 신여성들은 필시 다음 세상에는 행랑어멈이나 애보개로 태어날 것이오.

그래서 온 집안 식구가 먹은 밥상을 혼자 서릊고, 남이 낳은 아이를 잔등이 물도록 업고 다닐 것이오. 그래야 공평한 것이 아니오?

나는 이 세상이 지극히 공평하다고 믿소. 천지의 법칙이 어디 사람의 법률에만 대일 거요? 추호불차라고 믿소. 빈부 귀천이 없는 것이 공평이 아니라, 있는 것이 공평이란 말요. 공덕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이 똑같이 잘나고 똑같이 잘 산대서야 그야말로 불공평이 아니오? 이런 말을 다른 사람들은 아니 믿더라도 그대야 믿어 줄 것 아니오.

저 빨래하는 행랑 사람들이 아마 금생에는 도저히 이 댁 서방님 아씨와 지위를 바꾸기는 어려우리라. 아마 안댁 서방님 아씨가 남의 빨래 짐을 지고 자하문 턱을 넘을 날은 있기도 하지마는, 저 아범과 어멈이 서방님 아씨가 되기는 졸연치 아니하리다. 굴러 떨어지기는 쉬워도 기어 오르기는 어려운 이치 아니오?

그대나 내나 다 행복된 사람은 아니지요. 첫째 건강이 없고, 둘째 돈이 없고, 세째 얼굴이 잘나지를 못하고, 네째 마음에 번뇌가 많고, 늘 불평 불안을 가지고 있고, 게다가 그런 주제에 눈은 높고 뜻은 하늘 위에 있단 말요.

그러나 그대여, 그것이 다 공평입니다. 아니 공평보다 한층 더 나아가서 우 리는 우리 값 이상의 삯을 받고 있읍니다.

그대여, 내가 이 집을 판다고 아깝다고 그러지 마시오. 그것은 대단히 황송한 생각이오. 어떻게 생각해야 옳은고 하니, 이만한 풍경이만한 집에 육 년이나 살게 된 것이 고마워라, 또 그것을 육천 원이나 되는 큰 돈을 받고 팔게 된 것이 고마워라, 그 돈으로 오래 못 갚던 빚을 갚게 된 것이 고마워라, 이 집을 팔고도 내가 몸담아 살집이 있으니 고마워라, 크신 은혜 고마우셔라 ──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옳겠지요.

나는 아까 마당에 풀을 뽑고 화초에 물을 주었소. 모레 글피면 떠날 집인지라 그리하였소. 나는 새 주인의 손에 이 집을 내어맡길 때까지 이 집을 사랑하고 잘 거누지 아니하면 아니 될 것이오. 아니, 어디 그런 법이 있단 말이 아니라, 내 마음이 허하지를 아니하단 말요.

조선 풍속에(지나 풍속도 그럽디다) 떠나는 집을 반자와 창과 도배를 모두 찢어 놓고 어지러 놓는 대로 치우지도 아니하고 간다는데, 이것은 복이 따라오지 않고, 그 집에 떨어져 있는가 보아서 그러는 것이라오. 그러나 그 복이란 어떻게 생긴 것인지 모르나, 만일 내가 복일 양이면 그렇게 뒤에 올 사람의 생각을 할 줄 모르는 위인은 따라가려다가도 고만 두겠소.

이 집 뜰에 심은 화초를 파갈 생각을 하였으나, 새로 오는 주인이 적막할 것을 생각하매 차마 못하여서, 여러 포기 있는 것만 한 포기씩 몇 가지를 뽑아서 분에 담아 놓았는데, 그것도 탐욕 같고, 내 뒤에 오는 이에게 대한 무정 같아서 부끄러웠소.

어저께는 손님들이 찾아오셔서 더 못 썼소. 화성이 벌겋게 북악 가슴패기로서 올라오는 것을 보고 잤소. 직녀성이 파란빛을 발하고 있는 것도 보았소. 스코르피온의 염통 별이 덜 붉다 하는 생각도 하였소.

아침에 일어나니 날은 흐리고 바람이 부오. 양자강의 저기압이 오나 보오.

천기 예보에 말하기를, 일간 한 장마가 오리라고, 와야 아니하겠소?

마루에 전등을 켜 놓고 잤더니, 나는 벌레들이 많이 들어와서 더러는 벽에 붙어서 자고, 더러는 마루에 떨어져서 죽었소. 조그만 놈, 큰놈, 동글한 놈, 길죽한놈, 옥색, 비취빛, 노랑이, 얼룩이, 참말 가지각색이어서 두 놈도 같 은 것은 없는 것 같소. 그중에도 비취빛 나는 나비가 참 가련하오. 손을 대면 깜짝 놀라서 그 보드라운 날개를 팔락거리고 서너 걸음 날아가오. 그러나 밤새 번뇌에, 애욕의 기쁨과 설움에 지쳐서 기운들이 없는 모양이오.

마루에 죽어 떨어진 시체들은 비로 쓸어도 가만히 있는데, 그중에 어떤 나비는 아직도 생명이 조금 남아서 파딱파딱하다가 도로 쓰러지고, 어떤 놈은 기운을 내어서 날아가오. 그러나, 그들은 다 제가 할 일을 하고 이 몸을 벗어버리고 간 것이오.

나는 전장을 생각하였소. 그저께 수와 토우(汕頭[산두])가 점령이 되었는 데, 적국이 내어버린 시체가 육백, 우리 군사 죽은 이가 스물둘 상한 이가 사십 명이라오. 내 눈앞에는 피 흐르는 시체가 보이고, 붕대 동인 군사가 보이오. 나는 머리를 숙이고 눈을 감고 그네를 위하여서 빌었소.

백합이 오늘 아침에 한 송이 피었소. 호박빛 백합이야. 꽃에 코를 대어 보았더니, 벌써 향기는 다 나갔어. 아마 해 뜨기 전에 피어서 벌써 그 향기를 바치는 아침 공양이 끝났나 보오. 나는 이 한 송이 꽃을 멀리 전장에서 죽은 병사들의 혼령께 바치노라 하였소.

백합이 또 한 송이는 아마 내일 아침에는 필 것 같소. 내일은 내가 이 집을 떠나는 날야. 백합 ── 내가 여름내 물 주어 가꾼 백합이 내가 이 집을 떠나기 전에 피어 준 것이 고맙소. 장미는 거진 다졌어.

금전화가 아마 내일 아침에는 서너 송이 필 것 같소. 그것이 알맞이 내일 아침에 피거든, 백합과 아울러서 아침 공양을 하고, 이 집을 떠나게 되겠소. 부처님께와 여러 신님께와 전장에서 죽은 여러 용사님께와, 이 집에 나와 함께 살았으리라고 생각키는 여러 중생들께와.

분에 심은 봉숭아 두 나무, 빨강이 하나, 흰 것 하나가 웬 일인지 어제 오후로부터 시들기 시작하여서 오늘 아침에도 깨어나지 못하고 아주 죽어버렸소 대단히 싱싱하였는데. , 웬일일까. 잎사귀 겨드랑이마다 꽃봉오리를 달고 날마다 모락모락 자라더니, 고만 그 꽃을 못 피우고 말았소.

내가 아침마다 지팡이를 집고 세검정 가게에 우유를 가지러 가는 것이 가엾던지, 어제부터 그 동네 아이가 우유를 갖다 주오. 고마운 일이오. 오늘 아침에 내가 세수하는 동안에 갖다가 놓고도 말도 없이 가버렸는데, 아마 그 아이겠지요. 말도 없이 가버린 것이 더욱 고맙소.

그저께는 개천가 집 영감님이 앵두 한 목판을 손수 들어다가 주셨소. 나는 여태껏 그 어른께 아무것도 드린 것이 없는데.

또 그 전날은 앞집 황이 아버지가 빈대떡을 부치고, 되비지(두부 빼지 아 니한 비지)를 만들고, 술 한 병을 사가지고 와서 말 없이 나를 대접하였소.

아마 송별의 뜻이겠지요.

또 어저께는 삼철이 아버지가 일부러 오셔서,

『떠나시는 날, 짐 한 짐 져다 드리겠어요.』

하고 가셨소. 허리가 아파서 요새에는 일도 잘 못 간다는 노인이. 나는 거 절도 못하고 받지도 못하고 황혼에 어리둥절하였소.

또 지난 공일날 밤에는 뒷집 숙희 아버지가 맥주 두 병을 사가지고 와서 나를 대접하였소. 그는 날마다 아침 여섯 시에 나가서 저녁 일곱 시에야 돌아 오는 이인데, 앞뒷집에 살면서도 한 달에 한 번 면대하기 어려운 이오.

섭섭하다고, 내가 떠나는 것이 섭섭하다고 수없이 섭섭하다는 말을 하였소.

나는 아무리 하여서라도 뜰에 섰는 나무 세포기는 파가지고 가야 하겠소.

오늘 비가 오면 파내려오. 한 포기는 자형화(紫刑花)라는 것인데, 이것은 봉선사 운허대사가 지난 청명날 철쭉, 진달래, 정향, 무궁화와 함께 위해 보내어 주신 것이오, 또 하나는 사철나무인데, 이것은 앞집 영감님(그는 벌써 사 년 전에 돌아가셨소)이 갖다가 심어 주신 것이오, 또 하나는 월계와 해당인데, 이것은 뒷집 숙희 할아버지가 갖다가 심어 주신 것이오. 돈 값을 말하면 등 네 포기, 목련 두 포기가 많겠지만, 이것은 새로 오는 이에게 선물로 드리고 가려오. 그렇지마는, 남이 정성으로 내게 준 기념물만은 아니 가지고 가는 것이 죄송한 듯하오.

또 가지고 가야만 할 것이 돌옷 입은 돌멩이 몇 갠데, 이것은 황이네 삼형제가 그 더운 날 땀을 뻘뻘 흘리며 져다 준 것이오. 열 여덟, 열 다섯, 열 세 살 먹은 삼형제가. 그들을 다 가지고 가자면 세 마차는 될 것인데, 다는 못하여도 예닐곱 개는 가지고 가지 아니하면 그 세 소년에게 대하여서 미안할 것만 같소.

끝으로 크게 감사하지 아니하면 아니될 집이 하나 있소. 그 집은 점숙이네 집인데 점숙이란, 그 집 여덟 살 먹은 계집애 이름이오. 지난 팔월에 내가 병원에서 이집으로 나와서 지금까지 있는 동안에 두어 달을 빼고는 그 집에서 내 식절을 맡아 하여주셨소. 양식 값 반찬 값은 드렸지마는 하루 삼지 지성으로 나를 공궤(供饋)하여주신 후의는 참으로 뼈에 새겨서 잊을 수가 없는 일이오. 무엇 한 가지라도 맛나게 먹어지라 하고 정성을 들인 것이 분명히 보이지 아니하오?

이것 저것 모두 생각하니 모두 고마운 일들이오.

응, 또 하나 춘네 집이라고 있소. 내 집에서는 한참 떨어져 있는 집인데, 내가 이 동네에 와서부터 춘이 아버지, 춘이 언니, 춘이 누나, 모두들 나를 일가같이 대접하여주셨소. 어린애 돌남이라고 떡도 가져오고, 과일 철이면 과일도 가져오고, 내가 병원에서 나왔다고 모두들 와서 위문하고.

나는 이 동네에서 많은 신세를 지고 떠나오.

내가 지팡이를 끌고 어디 나가는 것을 보면,

『면이 아버지. 어디 가셔요?』

하고 불러주고 싱그레 웃어 주고 따라와 주던 경히, 정히, 대복이, 명순이, 이러한 모든 어린아이들.

『진지 잡수셔겝시오?』

이 모양으로 만나면 읍하고 인사하여 주던 이름도 잘 모르는 동네 젊은이들.

그네들은 모두 나를 위해 주고 기쁘게 하여 주었소. 나는 그이들에게 아무것도 하여 드린 것이 없는데. 허기야 모두 형제들이 아니오? 자매들이 아니 오? 한 등불 밑에 한 집에 한 젖을 먹는 식구들이 아니오. 한 등불이란 해 말요. 한 집이란 이 지구말요. 한 젖이란 땅에서 나오는 물과 모든 곡식말요. 내 코에서 나온 공기가 그대 코로 들어가고, 그대의 살 냄새가 내 코에 들어오지 않소?

지구라야 조그마한 티끌 하나 아니오? 이를테면 이 무궁한 우주라는 큰 집의 조그마한 방 한 간 아니오? 우리 지구상에 사는 인류란 이 단간방에 모여 사는 한 식구야. 그러니 얼마나 정답겠소? 얼마나 서로 불쌍히 여기고 서로 도와야 하겠소.

짐승도 그렇지요. 새도, 벌레도, 나무, 풀도 그렇소. 다 마찬가지야. 나와 한 집 식구야. 나와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소, 기뻐하고 슬퍼하고, 나고 죽고. 그의 살이던 것이 내 살 되고, 내 살이던 것이 그의 살 되고. 이것은 범망경(梵網經)까지 아니 보더라도 얼른 알아지는 것 아니오?

내 창밖에 와서 울고 간 새가 어느 생에 내 아버지였는가 내 어머니였는가?

밥상에 파리가 덤비면 나는 날리오. 날리다가 화가 나면 파리채로 때려 죽이오. 얻어 맞은 파리는 바르르 떨다가 죽어버리고 마오. 나는 파리하고 같은 음식을 다툰 것이오. 내가 먹으려는 것을 파리도 먹으려는 것이오. 같은 것을 먹고 사는구려. 한 어머니 젖을 먹고 사는구려 ─ 파리와 나와.

내 밥상에 놓인 푸성귀는 벌레들 좋아하는 음식이 아니오? 오이 호박은 두더지가 좋아하는 것이오. 하필 송아지 젖을 얻어 먹는 것만 가리켜 말할 것 없지요. 내가 먹는 물, 내가 받는 햇빛을 받아서 저 한련과 백합이 피지 아 니하였소? 그런데도 한련은 한련이오, 백합은 백합이오. 나는 나란 말요.

같은 살로 되고 같은 것을 먹고 살지마는, 네요, 대요 가른 것이 있단 말야. 이것이 하나 속에 여럿이 있고, 여럿 속에 하나가 있다는 것이오. 무차별 속에 차별이 있고, 차별 속에 무차별이 있단 말요. 색즉시공 공즉시색, 색불이공 공불이색(色即是空, 空即是色, 色不異空, 空不異色)이라는 것이겠지요.

우리가 이렇게 차별 세계에서 생각하면 파리나 모기는 하나 죽일 수 없단 말요. 내 나라를 침범하는 적국과는 아니 싸울 수가 없단 말요. 신문에서 보는 바와 같이, 우리 군사가 적군의 시체를 향하여서 합장하고 나무아미타 불을 부른다는 것이 차별 세계에서 무차별 세계에 올라간 경지야. 차별 세계에서 적이오, 내 편이어서 서로 싸우고 서로 죽이지마는, 한 번 마음을 무차별 세계에 달릴 때에 우리는 오직 동포감으로 연민을 느끼는 것이오.

싸울 때에는 죽여야지, 그러나 죽이고 난 뒤에는 불쌍히 여기는 거야. 이것 이 모순이지, 모순이지마는 오늘날 사바 세계의 생활로는 면할 수 없는 일 이란 말요. 전쟁이 없기를 바라지마는, 동시에 전쟁을 아니할 수 없단 말요. 만물이 다 내 살이지마는, 인류를 더 사랑하게 되고, 인류가 다 내 형제요, 자매이지마는 내 국민을 더 사랑하게 되니, 더 사랑하는 이를 위하여서 인연이 먼 이를 희생할 경우도 없지 아니하단 말요. 그것이 불완전 사바 세계의 슬픔이겠지마는 실로 숙명적이오. 다만 무차별 세계를 잊지 아니하 고 가끔 그것을 생각하고 그리워하고 그 속에 들어가면서 이 차별의 아픔을 줄이려고 힘쓰는 것이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이겠지요.

이런 생각들을 하면 무척 마음이 괴롭소. 이 세계가 왜 극락 세계가 못될 가 하고 한탄이 나오. 그러나 검은 흙만인 듯한 땅도 자세히 찾아보면, 금 가루 없는 데가 없는 모양으로, 얼른 보기에 생존 경쟁만 하고 있는 듯한 중생 세계에도 자세히 살펴보면, 샅샅이 따뜻한 사람의 불똥이 숨어 있어.

이 지구가 온통 금덩이가 될 수가 없는 줄 아시오? 금이나 흙이나 다 같은 피요 같은 살야 이, . 중생세계가 온통 사랑의 세계가 못될 줄 아시오? 일순간에 변화할 수 있는 것이오.

나는 이것을 믿소. 이 중생세계가 사람의 세계가 될 날을 믿소. 내가 법화경을 날마다 읽는 동안 이 날이 올 것을 믿소. 이 지구가 온통 금으로 변하고 지구상의 모든 중생들이 온통 사랑으로 변할 날이 올 것을 믿소. 그러니 기쁘지 않소?

내가 이 집을 팔고 떠나는 따위, 그대가 여러 가지 괴로움이 있다는 따위, 그까진 것이 다 무엇이오? 이 몸과 이 나라와 이 사바 세계와 이 온 우주를 (온 우주는 사바 세계 따위를 수억 억만 헤아릴 수 없이 가지고 있었고 있 고 있을 것이오) 사랑의 것으로 만드는 일이야말로 그대나 내나가 할 일이 아니오? 저 뱀과 모기와 파리와 송충이, 지네, 그리마, 거미, 참새, 물, 나무, 결핵균, 이런 것들이 모두 상극이 되지 말고, 총친화(總親和)가 될 날을 위하여서 준비하는 것이 우리 일이 아니오? 이 성전(聖戰)에 참예하는 용사가 되지 못하면 생명을 가지고 났던 보람이 없지 아니하오?

오정이 지났는데 아직도 비가 오지 않소. 흐르기는 흐렸는데 바람만 부오.

그러나 올 때가 되면 비가 오겠지요. 성화하지 마시오. 이 천지는 사랑의 천지요, 공평한 법적의 천지가 아니오?

우물 앞 그 화단에 봉숭아가 두 송이가 피었소. 불그스레한 것이 갓난이 모양으로 잎사귀 겨드랑에 안겨서 피었소. 봉숭아는 조선 가정 꽃의 대표가 아닐까요? 뒤꼍 장독대에 핀 봉숭아는 계집아이들이 가장 사랑하는 꽃이오.

그 순박하고도 어리석한 모양이 좋은 게지요. 그 꽃이 처음 필 때에는 너무도 반갑고 소중하여서 감히 손도 대지 아니하지마는, 가지마다 축축 피어서 늘어진 때에는 계집애들은 그중 빨간 것을 골라서 고양이 밥이라는 신 풀잎사귀와 섞어서 으깨어서 새끼손가락과 무명지의 손톱에 싸매고, 하얀 헝겊으로 감고 밤을 자고 나서 아침에 끌러보면 손톱이 빨갛게 물이 들지 않았소? 그것이 금강석이나 홍옥보다도 아름다운 것이 아니었소? 그렇게 빨갛게 물든 손톱을 보며,

『구름 간다, 구름 간다 구름 속에 선녀간다.
선녀 적삼 안고름에 울금대 정향을 찾다.
꽃밭에서 말을 타니 말발굽에 향내난다.』

하는 노래를 부르지 않았소? 그 고름에 향을 찬 것은 처녀 자신이겠지요.

꽃밭에서 말을 타는 이는 그의 짝이 될 남자겠지요.

시편 백 편을 적어서 이 편지를 끝냅시다 ——─

『모든 나라들아, 기쁜 소리로 임을 찬송하라.
기쁨으로 임을 섬기고 노래하며 임의 앞에 나올 지어다.
임은 하느님이시니, 임아니시면 뉘우리를 지으셨으리?
우리는 임의 백성이오, 그의 목장에 길 되는 양이로다.
감사하면서 임의 문에 들고, 찬양하면서 임의 뜰에 들어갈 지어다. 임을 고맙게 생각하고, 그 이름을 칭송할 지어다.
대개 임은 자비하시고, 임의 은혜는 영원하며, 임의 진리는 만대에 변함이 없으실새라.』

그대여, 인생을 이렇게 볼 때에 기쁨과 노래밖에 또 무엇이 있겠소? 무슨 근심, 걱정이 있겠소?

나는 기쁨으로 이사 짐을 싸려 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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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에서 1977년 사이에 출판되었다면 미국에서 퍼블릭 도메인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미국에서 퍼블릭 도메인인 저작에는 {{PD-1996}}를 사용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