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녀성/제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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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시노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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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오(甲午)년 이후 이땅을 뒤덮는 풍운이 점점 험악해 가는 것을 보자 불원간 세상이 바뀌일 것을 짐작한 인숙이 아버 지 이한림(李翰林)은 선영(先塋)이 있는 과천(果川) 땅으로 낙향을 하였다. 그러나 과연 세상이 바뀐 뒤로는 그곳에서 촌보도 음겨 놓지 않었다. 세상을 론튼 친구까지 끓어지고 내였다.

과천땅은 은둔한 지사가 풍월로 벗을 삼을만치 산천이 명 미한 고장은 아니었다. 그러나 매우 한적하고 아직도 고풍이 남어있었다. 그곳 백성은 양반 상 인을 분간할뿐 아니라 볏백이나 하는 전장이 있었기 때문에 과천으로 나려가 여생을 보낼 결심을 한것이었다.

한림은 천생으로 서화의 특재가 있고 소시부터 음률에까지 출중하야 그중에도 거문고는 명수였다.

그러나 대(代)를 물려가며 어루만지든 거문고 복판을 주먹 으로 깨트리고 손때묻은 통소를 무릎으로 꺾어 버렸다. 그 후로는 오직 아침 저녁 필묵으로 벗을 삼어 하로 몇장의 종 이를 물드리는 것으로 무료한 세월을 보냈다.

가선대부(嘉善大夫) 하나에 일금 얼마요 능참봉(能慘奉)한 자리에 얼마니 하야 위조 지페같은 첩지 한장에 명정거리를 작만하든 판묵이었만 이한림은 그 진흙속에서 일즉암치 발 을 빼었든것이다. 자기 한몸이나 깨끗이 지조를 직히다가 선조의 발치에 욕된 몸이 파묻치리라 하였다.

한림은 누구에게 대한 충성의 표적과 같이 머리를 깎지않 고 관을 썼다. 외아들은 경직(敬稙)이는 학교공부를 시키기 는 커녕 상투를 틀린뒤에 사서삼경(四書三經)이며 좀이 썰어 가는 켸켸묵은 책이 길로 싸인 자근 사랑 한구석에다 무릎 을 꿀려 두었다.

『다 망현 세상에 신학문이란 무엇이고 행세란 다 무엇이 냐 옛날 성현의 글이나 읽고 앉았으면 너한몸이나 편헐테니 아예「개화」니「신학문」이니 하고 딴생각을랑 염두에도 두지말어라』하는 것이 한림이 아들의 청춘을 생으로 감금 시키는 구실이요 또한 입버릇같은 훈계었다.

인숙이는 그의 막내딸로 태어 났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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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딸인 인숙이는 한림 내외의 귀염을 독차지 않았다. 더 어렸을때도 재롱이 비상하였거니와 남유달리 총명하야 부모 의 논치도 제일 잘 채였다. 그래서 한림내외는 무엇을 보나

『우리 방울이 우리 막내딸 방울이』

하고『방울』이라고 별명을 불렀다.

이 무릎에서 저 무릎으로 굴러 다니듯하며 재롱을 부리는 것이 방울같고, 무어라고 재절거리며 안방 건너방으로 달랑 거리며 드나드는것이 방울같고, 총기가 똑똑떠는 새깜안 두 눈이 놀라면 회동그랗게 지는것이 방울같고, 새된듯하고도 가랑가랑한 목소리가 은방울을 흔드는것 같고 부침성이 있 어 누구에게나 착착 부치는것이 뀌여차고 싶도록 귀엽다고 해서 방울이란 별명을 지어 부른것이였다. (인숙이란 이름은 여러해 뒤에 어떠한 필요로 지은것이다.) 인숙의 어머니는 현숙하기로 소문이 높은 부인네였다. 말 하자면 너무 지나치게 얌전한 여자였다. 남편이 죽으라면 죽는 시늉까지는 하면서 시종이 열일하게 남편에게 순종해 왔다. 나이가 한림보다 세살이나 우인데 남편이 한참 혈기 가 왕성할때 친구 바람에 잠시 난봉이 나서 딸의 나이 밖에 아니되는 기생작첩까지 한일이 있었건만

『그 어린게 어디 제몸치장이나 헐줄 알어야지』

하고 시앗의 머리를 빗겨 주고 옷뒤까지 걷어 주었다. 귀 여만 허면 기어 오른다고 어떤 때에는 대수롭지 않은 일에 첩이 큰 마누라에게 불공한 말씨로 바락 바락 대드는것을 보다 못해서 한림이

『아서라 버릇없이 그리 못허는 법이니라 비천한 계짐으로 더구나 나이 어린 것이……』

하고 혀를 차고 꾸짖으면

『그만 두슈. 아직 철이 안나서 그렇구려. 제가 무슨 이문 목견이 있단말슴요』

하고 싸돌리고 험을 덮어주기까지 하면서 한집에 거느리고 지냈었다.

경직이 우에 아들이 있었건만 다섯살 때에 쥐통이 잃었고, 경직이와 인숙이 사이에도 두살터울의 딸 형제가 있었건만 그역 불행히 역질의 희생이 되어 하로 동안에 꿈같이 없애 였다. 그래서 경직이가 맏아들이 되고 인숙이가 막내딸이 된것이다. 그런 까닭으로 근년에 와서 한림내외의 사랑은 왼통 인숙에게로 쏠릴수밖에 없었다. 이미 장성한 아들보다 도 첫정이 들어가는 며느리보다도 방울이라면 사지를 목쓸 만치나 지나치게 귀여워하였다.

실상 귀양살이나 다름이 없이 무료한 세월을 보내는 한림 내외에게 유일한 위안거리요 우슴거리는 방울이밖에 없었든 것이다. 더구나 부모의 애를 태우지 않고 안숙이만은 무병 하게 자라는것이 더욱 신통하고 커갈사록 오라비보다도 죽 은 형들 보다도 재조가 비상해서 여간 대견해지지 않었다.

『계집애가 글을 허면 팔자가 사납다』는 말을 철측같이 여기든 한림도 이 막내딸만은 글을 가르첬다.

『계집애도 기성명은 헐줄 알어야 후일에 남편헌테도 없인 여김을 받지 않느니라』

해가며 아침이면 딸을 불러 내여 진서를 가르치고 저녁이 면 어머니는 반절을 가르쳤다. 원악문한가의 후손이라 혈통 관계도 있겠고 오라비가 배우는 글을 어깨넘이로 듣고 앵무 새처럼 외는것이지만 인숙이는 일곱살에 천자(千字)를 떼고 동몽선습(童蒙先習)을 읽었다. 달밤이면 마루끝에 걸터앉어 서 짧은 다리를 한들거리며

『마상에 봉한식하니 도중에 송모춘을 가련 강포망허니 불견납교인을』

하고 꾀꼬리같은 목소리로 당음(唐音)까지 졸졸 외였다.

『온 조거 일남첩기(一覽輒記)거든 앙증스러 못보겠군.』

하면서 한림은 댓돌에 담배를 털고는 뒷짐을 지고 달밟으 며 안마당을 거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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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숙이가 여덜살 되든해 늦인봄 어느 날이었다.

『얘 점녜야』

개나리로 산울을 한 뒷곁 양지바른 장독대앞에서 인숙이는 행낭계집애를 보고 손짓을 까댁까댁 하였다.

『내애』

인숙이와 솟곱동무인 점녜는 부억뒤에서 바라진 대답을 하 였다. 뛸안을 돌아 모지라진 댕기믈팔랑거리며 인숙에게로 깡충깡충 뛰여갔다. 나이는 두살이나 더 먹었것만 덩치는 인숙이보다잔졸하다.

『자근아씨 도 각시노름 헐나우?』

『그-래』

『어적게 처럼 마님께 또 걱정을 들으면 어떡허우?』

『어니란다 어적겐 골무 만들라시는걸 잊어버렸으니깐 그 랬지 얘』

인순이는 장둑대 앞에다가 칠성단처럼 조악돌을 주서다 쌓 어노았다. 그 앞에다 암기왓장을 젯상처럼 고여놓고 그 우 에다가는 모시 조개 껍질을 색색이 헌겁으로 부전을 붙인 솟곱을 나라니 벌녀 노았다.

냉이나 소르쟁이 캐여다가는 어머니가 소시쩍에 차든 은장 도로 조고만 도마에다 썰어서 담어놓고 하로 한번식은 제사 를 지내는 흉내를 내였다. 일년에 여러차례 제사 지내는것 을 눈높여보았든것이다.

『얘 각시풀이 오늘은 왜 이렇게 뻣뻣허냐』

『소금불에다 더 한참 제려둘껄. 아무러면 어떠우』

하여 점녜는 자근 아씨의 시중을 든다. 인숙이는 쇠비름 뿌리를 캐여가지고 『신랑방에 불켜라 색시방에 불켜라』하 듯이 뻣뻣한 각시풀을 부비며 길을 들인다.

동백기름을 약간 발러 곱게 따어 느린 인숙의 머리는 햇빛 을 받어 할터논것처럼 윤이 흐른다. 타는듯한 다홍 댕기를 전반같이 들였다.

머리가 치렁치렁 허지는 목해도 숫이 적은편은 아니었다.

곱게 다듬은 노랑 저고리와 분홍치마를 입은 몸맵시가 엇듯 보면 벌서 색시꼴이 박이듯.

인숙이는 각시풀을 붓두껍에 끼어 점녜에게 붓들리우고 머 리를 따서 손가락에 돌돌 감어쥐며 쪽을 쩌보다가

『얘 오늘은 당최 잘 쪽저지기를 안는구나』

하고는

『너 좀 쪽저 봐라』

하고 점녜를 준다.

『난 손고락이 굵어서 잘 감겨져야죠. 머리 숫이 넘우 많 구만요』

하면서도 점녜는 쪽을 곱드랗게 쪽젔다.

『인젠 새옷을 입혀야지』

인숙은 조그만 색상자 뚜겅을 열고 차곡차곡 개켜둔 치마 저고리를 꺼낸다.

『아이 어쩌문 곱기두 해라』

간난이는 토끼처럼 깡충뛰여 오르며 손벽을 친다.

『어쩌녁에 밤새도록 꼬매서 인두질까지 쳤단다아』

이윽고 붓두껍은 파란 낭자를 언고 노랑 숙고사 저고리에 남 순인치마를 잘잘 끌리도록 입었다.

『아이 이뻐라 그런데 자근아씨 신날은 안만들었우?』

『갠 별소릴 다허네. 우리끼리만 놀지 그까짓 신랑은 맨드 러 멀허니?』

하고 인숙이는 각시를 제단 앞에다 세웠다.

『그럼 제살 지낼나우?』

『응!』

『누가 저렇게 색색이 옷을 업구 제살 지낸담. 새아씬 제 사 지내실 때면 꼭 옥색 초마 저고리를 갈어 입으시든데』

『각시노름이니깐 그러치, 그런 나두 안단다. 그럼 제산 지 내지 말구우 우리 혼인을 헐까? 네가 수모라구 절을 좀시키 렴』

『신랑두 없이 누군헌테 절을식힌단 말유?』

『그럼 이걸 신랑이라구 허자꾸나』

하고 인숙이는 나무때기에다가 솜방망이를 만들어 매고 헌 겁 조각을 아무렇게나 입혀서 꼬자노았다. 그 신랑이란것을 여불없는 논두덕에 슨 허자비 같어서

『아이 신랑이 왜 저렇게 껄렁껄렁 해애』

하고 점녜는 깔깔대고 우스면서 뻣뻣한 붓두껍 색시를 절 한번을 식켰다.

『얘야 색시절을 네번씩 허는 법이란다. 넌 그것두 모르는 구나 울언니 허는것두 못봤니?』

인숙은 담박 무색옷을 입고는 제사를 지내지 안는다고 한 점녜의 말에 오금을 박었다. 그러면서도 인숙이와 점녜는 각시 노름에 자미가 나서 얼굴을 마조 보며 방긋이 우섰다.

두 소녀의 머리 우에서는 참새들이 꼬랑지를 깝죽거리며 재절거렸다. 산울의 개나리는 한들바람에 시달녀 노-란 꽃 닢이 한닢 두닢 조그만 제단우에 삽붓삽붓 나려 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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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이 겨웁도록 각시노름은 꿋날줄 몰랐다. 밖같마당 대 추나무 우에는 까치들이 모여앉어서 깍깍깍 짖었다. 마루밑 에서 낮잠 자는 바둑이는 무엇에 놀란듯 대문 박그로 뛰어 나가며 컹컹컹 짖었다.

『누가 오나 보다』

인숙은 치마 앞을 털며 일어났다.

『오긴 누가 오우. 또사냥꾼이 지나가남』

점녜는 무심히 대답을 하는데 축동밖에서 떠들석하는 소리 가 들녔다. 개짖는 소리는 더욱 요란하다.

『얘 정말 누가 오나 보다』

『그럼 나가 볼가요?』

『그레 얼핏 들어와 응』

『내애』

점녜는 다시 댕기꼬리를 내저으며 밖같 마당으로 뛰여 나 갔다.

그때부터 인숙이는 담밖으로 나 다니며 놀면 어른의 꾸지 림을 들었든것이다.

밖같이 떠들석하니까 인숙이는 뒷곁으로 돌아 담보통이로 가서 앵두나무 가지를 휘여 잡고올라서서 담밖을 갸옷이 내 어다 보았다.

앞뒤패를 짙는 인력거 한채가 대문밖에 와 다었다. 휘장을 씨워서 탄 사람은 보이지 안는데 등내의 떡거머리 아이들이 큰 구경거리나 난듯이 인력거를 에워싸고 쫒어 들어오다가

『예-라 이놈들 물러꺼라』

하는 인력거꾼의 호통에 업드러지며 곱드러지며 쫓겨나갔다.

인력거는 대문안에 들어와 섰다. 뒤에서 헐덕 꺼리며 딸아 오는 별배가 휘장을 거덧다. 오십이 훨씬 넘어보이는 수염 이 숫허게난 사람이 부대한 몸을 별배에게 부축이 뒤여 나 렸다.

인숙이는 그 사람들과 눈이 마조치자 급히 뛰어 나리다가 앵두나무 가지에 치마 앞자락을 부-ㄱ 찟겼다.

『애그머니 이를 어째?』

인숙은 가슴이 달랑하고 나려 앉었다. 지난 정초에도 널을 뛰다가 새치마를 밟어서 찟고는 종일 울다가 어머니에게 매 까지 얻어 마젔었다. 그래서 어머니에게 또 꾸지람을 들을 걱정을 하면서 새밝애진 얼글을 너덜거리는 치맛자락으로 뒤집어 쓰듯하고 뒬안으로 뛰어갔다. 그러다 마주 달녀오는 점녜와 마조첬다.

『아이 난 깜짝 놀랐다』

『아이구 저를 어째. 어쩌다 저렇게 치마를 찌젔우?』

『손님 오는걸 내가 보려구 앵두나무엘 올러갔다가 그랬단 다』

인숙의 목소리에는 우름이 섞였다. 구슬같은 눈물이 한방 울 발등 우에 뚝 떨어졌다.

『어쩌문 서울서 손님이 오시자 저렇게 치마를 찌즈 섰 담』

하고 점녜깐에도 보기에 딱해서 혀를 끌끌 찼다.

『그래 손님은 누구시라든?』

『무슨 대감이시래요』

『그래 나리마님이 나가섰니?』

『나가시긴 새레 손님이 오섰단 말슴을 들으시고 안으로 들어 오시든데요』

손님이 왔는데 아버지가 나가서 맛지를 않고 안으로 들어 왔다는것이 궁금해서 인숙은 어머니 눈에 들키지 않으려고 치마폭을 휩싸쥐고 마루 뒷문으로 살그머니 들어갔다.

『온 그 사람이 내집엘 찾어오다니 천만 뜻밖인걸』

마루로 나오는 한림은 갓끈과 알에 수염을 얼러서 쓰다듬 어 나리며 사랑으로 나갔다. 의관을하고야 볼 손님이라 안 에 들어와 지체를 하다가 나가는 모양이다.

인숙의 어머니는 손소 행주치마를 둘르고 반빗간으로 나려 스며

『별안간 손이 오니 멀루 대접을 한다니. 시골 처놓고 이 렇게 막막한데는 없을거야』

하고 며누리와 아랫것들을 지휘한다. 그리고 일변 읍내로 고기와 술을 사러 전인을 하느라고 안팟기 부산하다. 서울 서 있다금 손이 나려오기는 했어도 이번처럼 법석을 하는것 은 인숙이가 보기에도 처음이었다.

어머니는 안방 지게문에가 기대서서 실심을 하고 서있는 딸을 보고

『넌 왜 저렇게 실쭉해 서있니?』

하고 나무러듯 하였다. 실상 인숙은 치마를 찌즌것이 큰 죄나 진것 같어서 어머니 눈에 띠울가 보아 여간 겁이 나지 않았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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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을 잡고 수란을 뜨고 미나리 강회에 탄평채를 겻드리고 여간해서는 구경도 할수없는 생선까지 구해다가 회를 처서 내갔다. 주안상이 나간뒤에 사랑에서는 명랑한 우슴 소리가 들렸다. 노상 절간과 같은 한림의 집에서 그렇게 큰 우슴 소리가 터저 나오듯 하기는 오래간만이요 인숙의 기억으로 는 안에까지 들리는 아버지의 큰 우슴소리를 듣기는 처음이 었다.

그 대감이라는 손님을 모시고 온 인력거꾼과 하인들까지도 흐뭇하게 먹었는지 행낭채까지 떠들석했다.

인숙이는 손님 덕분에 고기 반찬을 해서 점심을 먹었다.

먹으면서도 치마 찢어진것을 들킬가보다 쪼그리고 앉아서 분주히 드나드는 어머니의 눈치만 흘끔할끔 보았다. 다른때 같으면 건넌방으로 건너가서

『언니 이것 좀 꼬매주』

하고 오라범댁에게 넌짓이 청을 해서 감쪽같이 꼬매 입고 나올터인데 그날은 손님 치다꺼리에 논코 뜰 사이도 없는 사람을 골아드려갈 재조가 업었다. 그래서 찢어진 치마에만 정신이 쏠려 옷간 한구석에가 한 걱정을 하고 앉었는데

『에헴 에헴』

하고 마른 기침을 하며 한림이 들어왔다. 평소에는 별로 질기지 않든 술이 건화하게 취했다. 얼굴이 뻙엏고 망건을 쓴 관자노리의 힘줄이 펄떡펄떡 뛰었다. 한림은 전에없이 화기를 띠우고

『여보 날좀 보오』

하고 마누라를 손짓해 불렀다. 내외는 안방으로 들어가서 무어라고 단 둘이서만 수근수근 한다 마누라는 연방 고개만 끄덕여 보이더니

『그럼 내보내조. 먼점 나가시구려』

한다. 한림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그 친구허고 세교관계로 보드래도 그만 소청을 안들을수 있오 옷이나 가러입혀 내보내우』

하고는 웃간에 도사리고 앉인 딸을 흘깃보고

『흥 옷은 미리 가러 입었구나』

하고 껄껄 웃으며 나갔다. 어머니는 옥간으로 대고

『방울아』

하고 딸을 불렀다.

『네?』

인숙이는 간신히 머리를 들었다.

『서울서 나려오신 손님이 널 좀 보자구 허신다는데 나가 뵈워라』

명령이 나리자 조그만 가슴이 또 달삭 나려앉었다. 역시 치마가 걱정이 되여서 (이꼴을 허구 어떻게 나간담) 하고 가슴이 나려 앉었는것이다.

『나가서 곱다랗게 절을 허구 얌전히 섰다가 들어가라고 허시건 들어 오너라』

어머니의 명령을 두번째 떨어젔다.

그러나 인숙이는 압만해도 치마가 찢어젔다는 말을 할 용 기가 나지 않었다.

『왜 그러구 앉었니? 어서 나가잖구』

하고 타일르듯 해도 안차게 꼼짝도 아니하고 앉었는 딸을 보고 어머니는 좀 역정이 나서 언성을 높았다. 그러자 인숙 의 눈에는 눈물이 갈상갈상하게 도랐다.

『아 얘야 손님이 보자시는데 방정마께 울긴 왜 우니?』

어머니는 꾸짖듯하며 딸의 손을 잡어 일으킬듯이 앞으로 닥거 앉는다. 마루끝에 섰든 점녜가

『마님 자근아씨가 초마를 찢었답니다』

하고 고자질을 하려다가 자근 아씨에게 눈총을 마질가 보 아 겁이 나서 입밖으로 굴러 나오는 말을 꼴딱 삼켰다.

『얘 좀 일어서라』

어머니는 역정을 더럭내며 딸의 겨드랑이를 잡어 일으키자

『어머니 치마……』

하고 인숙이는 목멘 소리로 말끝을 맺지못하고 폭 엎드리 며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울었다.

『아-니 어쩌나 오늘 아츰에 같이 입은 치마를 또 찢었단 말이냐』

어머니는 딸의 치맛자락을 들추어 보더니 뜻밖에 크게 걱 정은 아니하고 머릿상에서 다른 치마를 꺼내던지며

『어서 갈어 입구 눈물이나 씻구 나가거라』

하고 어서 나가기만 재촉한다.

인숙이는 홀작꺼리며 일어섰다. 어머니는 딸의 머리에 군 빗질을 하고 눈물흔적을 지워주고는 치마까지 입혔다.

인숙이는 마당으로 나러셨다. 저고리옷고름으로 작고만 눈 물을 부비며 내키지 않은 거름거리를 사랑으로 나갔다.

어머니는 무슨 일인지도 몰으고 나가는 조그만 딸의 뒷모 양을 마루끝에서 나려다 보고

『온 재가 하필 오늘 또 치마를 찢고 저럴가』

하고 눈쌀을 찦으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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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옥간에는 경직이가 양수거지를 하고 서있다가 미다지 를 열고 누이를 맞어드리였다.

『너 이 어른께 절해라』

아랫목에서 아버지가 곁에 앉인 손님편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버지 보다도 더 뻙엏게 술이 취한 뚱뚱한 손님은 눈 을 흐릿하게 뜨고 인숙을 건너다 본다.

인숙이는 나비같이 곱다랗게 절을 하고는 고개를 다소곳이 숙이고 조금 물러섰다.

손님 반백이 된 옷수염을 쓰다듬어 올리며

『어 매우 숙성허군』

하고 술취한 눈이 몽롱하야 인숙을 자세히 뜯어 보려고 연 방 눈시울을 꿈벅꿈벅 한다.

『나이는 열살이나 가까운게 온 미거해서 아즉 아무 분간 이 없네』

『첫만에, 겸사의 말이지 그야 아직 나이가 있으니까……

허나 잠시 보매두 퍽 총명해 보이는군』

주객은 어린 인숙이를 눈앞에 세워놓고 번차례도 품평을 한다.

『계집애가 재조가 있으면 뭘하겠나만 저건 글재주 하나는 맨낭 허거든. 당음 한권을 졸졸 외니까』

아버지는 슬낌에 어느듯 막내딸의 칭찬이 나왔다.

『허 이건 자화자찬(自畵自讚)일세 그려』하고 손은

『헛 허허허허』

하고 너털 우슴을 내놋는다. 그러고는

『좀체로 문밖엘 나서지 않는 내가 설마 벌러서 이번 출입 에 헛 거름이야 허겠나』

하고 주인을 돌아보며 자못 만족한 우슴을 웃는다.

『글세 자네처럼 안고(眼高)한 사람이 한미안 내딸이 눈에 차겠나』

하고 한림은 손을 놀린다.

『허- 그사람 또 그런 소릴 허네 그려. 오늘의 부귀라는게 내게는 다 욕다운걸세. 본심에 없는 대감을 받치게된 사정 을 자네가 다 아는 바에 구구히 변명은 해 뭘 허겠나만 어 쨌든 규수는 극가허이. 두말할게 없네』

손은 다시 눈을 큼벅인다. 눈뜨기가 거복하니까 문갑우에 버서 놓았든 연경을 집어 콧등에 느슨히 걸고 망원경 속으 로 내다보듯이 인숙의 아래우를 또다시 흘터본다.

『고만 데리구 들어 가거라』

한림은 여전히 두 손길을 마조 잡고 서 있는 아들을 처다 보며 눈으로 딸을 가르첬다. 인숙이는 무슨 영문인지도 모 르고 고개를 다소곳이 수그리고 서 있다가 다시 절을 납신 하고 돌아섰다. 손은 인숙이가 들어가는 거름 거리며 뒷맵 시까지 유심히 보느라고 다부튼 목을 자라처럼 내밀었다.

그러자 장죽에 담배를 부치는데 팔이 모자라는것을 보고 경직이가 넹큼 나려와서 석냥을 그어 대었다. 손은 담배를 퍽퍽 빨며

『규수는 눈에 차네만 인젠 내 자식놈도 자네 눈으로 바야 허지 않겠나. 아직 숙맥물변일세만』

하고 주인을 돌아다 본다.

한림은 그런 말을 할줄 알었든것처럼

『보나 마나 어런하겠나. 내야 한평생 문안에 발을 들여 놓지 않기로 결심한 사람이니까…… 개천에서 용이 날줄만 믿을밖에』

하고 친구의 무릎을 가벼히 치며 껄껄껄 웃는다.

『허 며누라 감을 보러왔다가 봉욕을 했군』

손도 주인을 딸이 그 독특한 헛청 우슴을 웃었다.

해가 저물도록 주객은 술상을 물리지 않고, 그리웠든 회포 를 풀었다. 행낭채에 저녁 연기가 두어 줄기 서리어 오르고 참새들이 추녀 끝으로 날려들어 짖어귈 때야 앞두패를 질은 인력거든 한림의 집 대문깐을 굴러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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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림의 집을 찾어 왔든 손은 윤자작이었다. 그는 한림과 서울 회동(會洞)서 이옷을 하야 자라났다. 어려서부터 그는 한림의 아버지에게 십여년이나 글을 배웠고 장가까지 한림 과 같은 해에 들어을뿐 아니라 피차의 선비 시대에는 자기 가 상합하였다. 그야말로 죽마고우다. 막연하게지내든 사이 였다.

한림의 선친도 아들의 동접을 매우 사랑하야

『윤 아무개는 위인이 제법이거든. 언제든지 제 구실을 허 구말게야』

하고 일상 칭찬을 하였었다. 그당시 윤씨의 가세는 청빈한 것을 지나 조반석죽도 간데온데가 없을때가 많았다. 그럴사 록 그는 열심으로 수학하야 약관(弱冠)을 겨오 지나며부터 문필이 얌전하다는 소문이 높았다. 외화도 준수하거니와 대 인 접물에 매우 신중하고 사소한 가정사를 처리하는데도 남 자의 도량이 보여 누구에게나 흠모를 받았다.

그 소문을 들은 왕가의 근척인 ○○궁의 윤판서는 오십이 넘도록 무후하든 터이라 예를 후히하야 양자를 삼았다. 물 론 동성동본이나 촌수로 따지면 근 이십촌이나되는 먼 일가 였다.

윤판서는 양자를 한지 불과 삼년만에 세상을 떠났다. 그가 생전에 받았든 작(雀)이라, 그의 양자가 습작을 하게되였다.

그러나 그는 원체 빈한한 선비의 후예일뿐 아니라 여러가지 의미로

『내가 자작이로라』하고 귀족행세는 하지 않었다. 다만 주위에서『작자』이니『대감』이니 하고 떠 받드는대로 내 버려 두었을뿐이었다.

그의 양가에는 팔십이 넘은 조모와 륙십이 가까운 계모가 있었다. 로대방마누라는 아들을 앞세우든 해부터

『아니고 인제 증손부나 하나 더 보고 죽어야 할텐데 ……』

『내가 이생의 마지막 소원은 그것뿐일다』

하고 양손을 보는족족 성화를 하였다. 나중에는 로망이 나 서 몸이나 좀 불편하면 콧물을 졸졸 흘니는 망내 중손자 봉 환(鳳煥)이를 불러다 앞에 앉치고

『네가 장가드는걸 못보구 내가 죽는구나』

하고 질금질금 올기까지 하였다. 그러면 계모도 덩달어

『어머님께서는 날로 엄엄허신데 중손부 하나 맞어 보시기 를 저다지 소원이시니 속히 흔처나 정해 뒤야지』

하고 마조 성화를 하였다. 자기역시 콘손부 자근 손부가 눈에 들지 않어서 하로바삐 막내손부의 자미를 보고 싶었든 것이다. 그럴때마다 자작은

『졸시에 의합한 혼처도 없지만 인제 겨우 여섯살먹은 걸……』

하고 우물쭈물 시원한 대답을 아니하면

『아 네 어른이 살었드면 입대 있을줄아니? 내생전에 성례 는 시킬려고 들었을게다』

하고 대방마누라는 역정을 더럭내며 밥상을 받았다가도 수 저를 던질때 까지있었다.

자작은 더 고집을 세울수가 없었다. 자기의 자식을 가지고 자기의 마음대로 못할것은 아니로되 남의 집의 손을 이어주 기위해서 들어온터이라 부득부득 자기의 주장을 세울수도없 는 형세였다.

자작은 생각다 못해서 사람을 놓아 각처로 아들의 혼처를 구했다. 그러나 마츰 동문수학을 하든 리한림이 막내딸을 두었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 친구와는 장근 십년이나 격조 하엿든 터이라 낙향을 한인사도 못한사과도 할겸, 손소 심 방하야 즉접으로 통혼을 한것이었다.

한림은 원체 성미가 깔끔할뿐더러 아직도 서울서 「대감」

을 받지고 호화로운 생활을 하는 자기에게 대해서 자격지심 도 가지고 있을것이 틀림없으리라하야 자작은 처음부터 자 신을 가지고 찾어간것은 아니었다. 그렇것만 한림은 의외로 옛친구를 반겼다. 대접이 자못 융숭하였다. 머리에 백발이 거듭할사록 인생의 적막을 느끼든 한림은 천만의외에 막역 하든 친구를 대하니 무조건하고 반가웠든것이다. 지나간 옛 날의 회포가 가슴에 가득하야 일절금하든 술을 취도록 대작 하였다. 뿐만아니라 어찌되였든 자기보다는 지위가 높은사 람이 몸소 먼길을 전위해서 와준것이 고맙기도 한김에 두말 없이 친구의 소청을 들었다.

『인제부턴 내딸을 자비 며누리로 알겠네』

라고까지하야 단밖에 약혼을 허락을 하였든것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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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밤 인숙이는 잠결에 이러한 이야기를 어렴푸시 들었다.

『그렇지만 조걸 어느새 내놀수는 없어. 조것마저 내노면 더 쓸쓸해 살수가 있나』

하고 한림이 로후의 적막을 탄식하면

『어느때구 한번은 남의 자식이 되고말걸 그러게 딸자식이 란 앨써 길터도 크나 작으나 남의 존일이죠. 허지만 정혼만 했지 어느새 혼인 재촉이아 헐라구요』

하고 마누라가 위로하듯하면

『하여간 일은 잘됐오. 장성한 딸을 두고 치지를 못해서 애를 쓰는 사람도 많는데 좋은 자리에 일즉 암치 작정이 됐 으니까. 구헌들 그만자리를 골르기가 쉽소. 제 평생 의식걱 정은 않헐테니 그만해두 제복이지』

『아무럼요, 윤씨가의 양반은 부러울게 없죠만, 재가 아모 견문이 없어서 크낙현집에 들어가 층층 시하에 숭이나 잡힐 가 보아 지금 내털 걱정인걸요』

『그야 마누라가 다잡어 잘가르치면 될게 아뇨. 위인은 총 명허니까……』

『아직은 제 버선하나 기워 신을줄 모르는걸』

『그럼 여덜살 먹은게 제아무리 숙성허면 도포나 창의를 지을줄 알겠오?』

『뭐구뭐구간에 당자는 한번 보서야 허지 않겠어요』

『보나 마나지. 그 친구가 병신자식을 가지구 내게 청혼을 하러 왔겠오? 남편감을 잘 만나고 못만나는거야 인젠 제팔 자 소관이지』

『그래도 백판 얼굴도 못보구서 혼인을 허게되면 우리가 넉넉지 못허니까 감지덕지해서 허는 줄만 알지 않겠어요?』

『그럼 회사두헐겹 경직이나 한번 드려보냅시다 그려. 그 땐 매부재목을 보여주겠지』

『막상 성례를 허게 된대도 걱정이예요. 우리집엔 아무 준 비도 없는데』

『압다. 마누라는 별걱정을 다 허는구려. 혼인이란 신랑있 구 색시 있으면 되는게지 기구있게 차례보낸 딸이 더 잘 산 답디까? 우리네 규모에 아주 불성모양만 아니면 흡족허지』

『허긴 그래요. 딸은 형세난데로 보내는게 좋긴허지요. 며 누리는 없는집 색시래야 쓰지만……』

인숙의 머리맡에서 한림내외의 주고받는 말은 밤이 이슥하 도록 끊치지 않었다.

인숙이는 졸시에 이마가 선득 헌것을 깨닫고 이불속에서 몸을 응승그렸다. 아버지가 사랑으로 나가다가

『방이 너무 더운가 보우』

하고 땀이 촉촉이 난 딸의 이마를 찬 손으로 짚어보았든것 이다.

인숙이는 머리맡에서 두런두런하는 이야기소리를 꿈속같이 들었다. 듣기는 들었어도 무슨뜻인지는 알듯하고 모를듯도 하였다. 저를두고 허는말 같기는 허나 똑똑이 귀에 들어 가 지도 않었거니와 귀담어 들었다 손치드레도 설마「내가 혼 인을 허게 되나 보다」하는 짐작조차 하였을리가 없었다.

다만 의식이 몽롱한 가운데 (오늘밤엔 어머니 아버지가 무슨 이야기를 저렇게 허시나) 하고 조름이 들낙날낙 하는대로 어른들의 목소리가 가까워 젔다 멀어젔다 할뿐이었다.

그러다가 인숙이는 인력거를 탔다. 새언니처럼 족도리를 쓰고 새옷을 입고 바퀴가 뻔쩍뻔쩍허는 인력거우에 올러앉 었다. 점녜는 아랫바탕을 탔는데 동내 아이들이 벌떼처럼 모여들어서 끌어다리는 놈에 뒤를 떠다미는 놈에

『예라 이놈 몰러꺼라』

하고 호령하는 숭내를 내며 밖았마당은 야단법석이다.

인력거는 대문밖으로 뚤뚤뚤 굴러 나간다. 처음 타보는거 라 놉다라케 올라앉인 인숙이는 어질엇질 해서 점녜의 저고 리 뒷고대를 움켜쥐었다. 그러나 앞에서 껄든 작난꾼아이가 발끝에 돌뿌리가 채여 무릎을 꿀코 엎드러지며 인력거체를 놓쳤다. 인력거는 앞채가 번쩍 들니며 홀떡 뒤로 넘어 박히 려한다.

『애고머니나!』

하고 인숙이가 새되게 외치자

『얘야 무슨 잠을 이렇게 험하게 자늬?』

하고 겉에 누었든 어머니는 잠꼬대를 하며 이불 밖으로 튀 어 나온 딸을 안어다 눕히고 이불을 다시 덮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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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럭저럭 한달이나 지났다. 어느날 경직이는 한림의 대신 으로 문안 출입을 하였다. 윤자작의 집을 심방하야 매부감 의 선을 보고 나왔다. 경직이는 서울 태생이나 과천에 나려 와 장성하였을 뿐아니라 아버지와 함께 두문불출을 하였기 때문에 문안에 들어가서는 그야말로 촌계관청격으로 어릿어 릿하였다. 그러나 아버지에게

『그런 궁가에서는 눈이 여렀이라 보는 구석이 많으니 행 여 실수허지 말어라』

하고 이리저리 허라는 부탁을 단단히 받은터이라 매사에 각별히 조심 하였다.

그래서 경직이가 다녀 나간뒤에 윤자작이

『행동거지며 언어 범백이 제법이야. 시체 젊은 애들과는 달르거든. 제 어른만못지 않겠는걸』

하고 늙은 청직이를 들아다 보고 입에 침이 말르도록 칭찬 을 하였다. 경직이는 그만치 사돈될 집에가서 행세를 얌전 히하고 나왔다.

경직이는 비록 신학문에는 근처도 가보지 못하고 새로운 풍조(風鳥)와는 담을 쌓고 지냈것만 한림의 내력으로 재조가 있어서 매우 해사한 선배의 풍도가 있었다. 비록 달련은 없 으나 여간내기가 상투쟁이로 알고 없우히 녁였다가는 코를 떼일 만치나 내명(內明)하고 경위가 분명한 청년이었다. 아 래 옷수염을 자라는대로 내버려두어서 스물이 넘은지 몇해 안되였것만 한삼십이나 된듯 매우 로성해 보였다.

『그래 대관절 네 매붓감이 어떻든?』

하고 한림 내외는 아들이 마루에 올러 서자마자 물었다.

『인제 겨우 여섯살이니까 무슨 분별이야 있겠에요만 어뜻 보기에도 퍽 총기가 있어 보이드군요. 인물은 방울이 버덤 두』

하고는 말끝를 무질르고 무슨 이야긴줄 않는듯 모르는듯 눈을 깜박 깜박하고 오라비의 얼굴을 처다보고 앉인 누의를 흘갓 보고나서

『나으면 낳지 못허든 않겠에요. 내후년에는 학교엘 들여 보낼테데 그전에 한문공부를 시켜야 한다구 지금 독선생을 앉었드군요. 저의 어른신네가 부르시니깐 큰 사랑으로 더펄 거리고 들어 오더니 시기지도 않은 절을 넙신허구는 연방 두손버무리로 콧불을 씻는 것을보고「저게 매붓감인가」허 구 속으로 웃었에요. 그저 흙장난을 허는지옷 주제하구 ……』

허니까

『얘야 도련님 주접은 재상가에두 있단말을 못들었니? 선 모슴애들이란 다 마찬가지지』

하고 어머니는 여섯살먹은 사윗감을 두둔하듯한다.

경직은 점심대접을 평생첨으로 떡 버러지게 받었다는것과 사장재목이 꼭 지켜않어서 권하는 바람에 거북해 죽을번 했 다는것과「날이 저물면 난가기 어려우니 묵어가라」고 구지 만류하는 것을

『시하정지로 이제껏 하로도 혼정신성(昏定晨省)을 걸르지 않었다』고 자작에게 작별인사를 올렸다는것과 한사코 마다고 해도 자 기가 타는 인력거에 구중까지 딸려 내보내는걸 넘우 고집을 세우면 어른 대접이 아니기에 타고 나왔다는 보고를 저저히 하였다.

한팀은 만족한듯이

『그러면 그렇지, 그사람이 너를 걸려 내보내겠느냐. 하여 간 잘 다녀나왔다』

하고 담뱃대를 들고 사랑으로 나왔다.

아버지가 나간뒤에 경직이는 어머니를 보고

『아 그집은 대궐처럼 넓은데 식구두 숫허게 많읍디다. 안 채 밖앝채에서 우굴우굴 끓는데 이구석 저구석에서 수군거 리며 내다보는게 온면 구스러워서. 더군다니 그 사람들이 모두 내가 그저 상투를 튼걸보구 손고락질을 허는것같어서 창피해 죽을번했에요. 제1기 나혼자 이 시 굴구석에서 여태 머리두 못깍으……』

하고 새삼스러히 평소의 불평을 토한다.

『남 못가지는 귀물을 달고 새사돈집엘 갔으니 오죽이나 자랑스러우냐』

어머니는 아들이 시골서 썩는 불평을 말할때마다 상투를 귀물이라 불르고

『한문이 귀해가는 세상이니까 네앞에 와 무릎을 꿀을 사 람이 있을테니 두구봐라』

하고 위로를 해주는것이었다. 실상 경직이는 그날 누이와 일생 배필이 될 매부재목을 보러가서 하로종일 상투달린 고 민과 수치만 느끼고 나왔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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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로는 저녁때 인숙이가 올케가 바누질을 하는 건넌방에서 조각보를 모고 앉었으려니까 점녜가 달랑거리고 들어왔다.

점녜는 그동안 자근 아씨와 마주앉어 놀기는커녕 이야기할 사이조차없이 지냈다. 한림의 집에는 대엿마지기 재미로 짓 는 문전의 논이 있어 벌서 그 농사 뒷바라지를 할때가 되였 고 안에 사람이 없기때문에 점녜는 부엌구석이 아니면 들판 으로 밥을 해날르느라고 안에 들어와 놀틈이 없었다.

점녜는 오늘이야 인숙이가 혼인을 정했다는 말을 주서듣고 반가운듯 조금 놀리는듯한 말씨로

『자근아씨 혼인 정했다죠? 참 조시겠구려』

하고 인숙의 얼굴을 턱밑에서 처다본다. 인숙이는 얼굴을 조금 붉히며「왜 너 샘나니?」하고 톡 쏘았다.

『아이 자근 아씨두』

점녜는 무색해서 고개를 숙였다.

『너 그렇게 자근아씨를 놀리는법이 어디 있니? 그건 말을 들었드레두 계집애가 들은척 만척허는게 아니라』

이번에는 경직의 댁이 바눌을 노며 점녜를 나무랬다.

경직의댁은 나이가 남편보다 세살이나 우인데 얼굴에는 아 모 특색이 없으나 키가 멀쑥허게 컷다.

그래서 경직이는

『키는 멀먹자구 저렇게 왜 장녀처럼 커』

하고 입버릇처럼 숭을 보았다.

그는 시집온지가 벌서 여러해었만 당초에 말이 없는 여자다. 겨오 벙어리란 말을 아니들을 만큼 입이 무겁다. 그것은 선천적으로 말수효가 적기도 하지만 친정의 문벌이 한림의 집보다 야튼것과 형제가 없어 시집에서 싸데려오듯 한것과 또 한가지는 자손이 귀한 집안에 아직 자녀간 생산을 해받 치지 못한것과 또 그리고 남편과 금술이 조치못한 여러가지 원인이 경직의 안해로 하야금 시부모와 남편앞에 머리들지 못하고 생으로 벙어리가 되게한것이다.

이 가정에 있어서 그와 지위는 반비가치나 침모의 조금 웃 길로 누구나「이레라」하면 이러고 「저래라」하면 저럴뿐 이었다.

그날로 점녜가 한 말을탄한것이 아니었지만 평소부터 점녜 가 자기에게도 넘어 무랍없이 굴든터이라 시누의에게 한 말 이 귀에 거칠어서 한마디 한것이었다.

경직의 댁은 미다지를 열어 안마당에 해가 기운것을 보고 바누질 하는것을 주섬주섬 거더 반지고리에 담은뒤에 행주 치마를 들르고 저녁쌀을 내터나것다.

오라범댁이 나간뒤에 인숙이는

『너 성냈니?』

하고 닥어 앉이며 뽀로통해 앉인 점녜를 달래듯 했다. 점 녜가

『아-뇨』

하니까

『언닌 괘니 그러드라』

인숙이는 밖으로 대고 입을 삐쭉해 보인뒤에

『얘 그런데 인젠 각시노름두 못하게 됐단다. 어머니가 자 꾸 바누질만 배라구 하시니 어떡허니? 난 각갑해 죽겠다』

『그래두 자근아씬 새옷입구 가마타구 남들이 죄다 치다 보구 헐테니 참 좋지 뭘 그래요』

『듣기 싫다. 내가 언제 혼인 허겠니? 아버지허구 어머니 허구 작구만 수군수군 허시더니만, 접대는 어머니가 머리를 빗기면서 인제 넌 몇해아니면 시집을갈테니 몸을 조신허게 가지구 점녜허구 작난두 말구서 날마다 바누질을 배라구 허 시겠지. 그러니 날마닥 바누질만 어떻게 허니? 난 싫여 난 시집 안갈테야』

하고 고개를 살래살래 흔든다.

『그래두 자근아씬 좀 조우 이댁 버덤두 더큰 부잣댁이라 든데』

하고 점녜는 인숙을 밧대어놓고 제 신세를 한탄허듯 한다.

『그건 또 어서 들었니? 그렇게 부럽거들랑 네가 대신시집 을 갈렴』

『아이 자근하씨두 그런댁에서 내까진걸 데려나간답디 까?』

점녜의 조고만 얼굴에는 금세 수심이 낀다.

『정말이다 너 먼점 가거라, 그렇게 혼인이 허구싶거들랑.

난 뒷다뒷다 갈께 응』

두 소녀가 귀등대등 한참이나 이야기를 주고 받고 앉었는 데 앞마당에서 두런두런 마루밑에서 바둑이가 컹컹 짖다가 중문간으로 내달으며 길길이 뛴다.

인숙에게 가장 반가운사람이 왔든것이다.

十一[편집]

『유모!』

하고 외치며 인숙이는 한다름에 마루로 내달었다. 유모는 마주 달녀와서 버선 발로 뛰어 나리려는 인숙의 늘렸을 덤 석 쥐고

『자근아씨 잘 있었우? 그 동안이 한 일년이나 된것 처럼 어떻게 보고 싶은지 눈이 짓물을번 했다우』

하고 마루우로 올러와 식구들에게 수인사를 한다.

『왜 인제 왔우? 꼭 열밤만 자구 온다드니』

인숙이는 반가움에 겨워 눈물까지 갈상갈상 해젔다.

『그래 집엔 별고나 없든가? 당최 소식이 없어서 퍽 궁금 했었네』

하고 주인 마누라도 반가히 맞는다.

인숙의 어머니는 막냇딸을 난뒤에 젖이 없어서 이 유모를 대였다 유모는 본시 인숙의 외가에서 자라난 사람이라 한집 안 식구와 다름이 없었다. 근자에는 인숙의 뒤나 거두어주 고 안잡재기 노릇을 허여 주인과 같이 늙어가는 터였다.

인숙이는 어머니 보다도 이 유모를 더 따랐다. 유모는 그 동안 과천서 한 오십리밖에 사는 아들의 집에를 다니러 갔 다가 달포만에야 왔든것이다.

인숙이는 안방 옷간에가 앉인 유모의 무릎으로 깡통 뛰여 오르며 큰 자랑이나 한듯

『유모 나 혼인 정했다-누』

하고 금세 눈을 커다라케 뜨는 유모의 얼굴을 처다 본다.

『뭐요? 혼인을 정했다꾸?』

유모는 놀라며 고개를 하랫목으로 돌여 마님의 눈치를 본다.

『그랬다네』

주인의 말이 끝나기 전에

『어디룹쇼?』

하고 유모가 재처 물으니까 인숙이가

『서울 ○○궁이래. 아주 큰 부자라겠지』

하고 어머니가 말허려는것을 가로 채어가지고 대답을 한다.

『어쩌면 그동안에 혼인을 정하시다니! 그래 신랑되실 도 련님을 누구 들어가 보섰겠읍조?』

하니까 인숙이가 여전히 막어 앉이며

『읍바가 들어가 봤는데 나이는 저- 인제 여섯살이구 그저 콧물을 줄줄 흘니드라나. 예이 더-러』

하고 콧마루를 찌프린다.

『온 계집애두 조신허지가 못허구 저렇게 부끄러운줄을 몰 라서 어떻거니?』

어머니는 속으로 옷으면서도 혀를 끌끌 차 보인다.

『부끄럽긴 뭐 부끄러워. 어머닌 싀집 안오섰담? 울아버지 허구 혼인을 했으니깐 날 낳지 뭐』

하고 인숙이는 고개를 외로 꼬더니

『유모가 없으니깐 어머니가 요샌 작구 걱정만 허신다우.

하루 종일 바누질만 허라서서 아주 각갑해 죽겠어. 이걸 좀 보우 골무 하나가 다해젔어』

인숙이는 손가락에 끼고 있든 골무를 보이면서 유모에게 엉석 비슷이 하소연을 한다.

『아이 가엾어라 마님께서두 이담에 바누질 솜씨가 있으라 구 그러시지 안우』

하고 유모는 인숙의 손가락에서 피나 난것처럼 흐-흐-하고 입김을 쏘여 준다. 그러고는 끼고온 보통이를 끌르고 신문 지에 싸 왜떡 한봉지와 석냥 한통을 끄내놓며

『큰 자식두 이제나 저제나 셈 펄날이 없어오니까. 저이 식구 입치닥거리나 간신이 허니까 어디 용돈이나 달랄수가 있어얍죠』

하고 궁설을 핀다.

『그렇겠지 남의 땅마지기나마 그래두 오래 붙잡구있으니 다행이지 응색한데 뭘 그런걸 다 사가지구 왔나?』

주인마누라는 몇푼어치 안되는것이 나마 유모가 사가지고 온것을 미안적게 생각 허는데 인숙이는

『이건 아버지 드리구 이건 어머니 목시구 요건 옵바주 구……』

하면서 반기를 논듯 왜떡을 노느기시작 한다.

그러자 저녁상이 들어왔다.

『나리마님 진지 엿줘라 서방님은 점심두 변변이 안먹었는 데』

『내-』

부엌에서 점녜가 긴 대답을 하고 사랑으로 나갔다. 한참만 에야 점녜가 허급지급 뛰어 들어오더니

『사랑에 손님이 오서서 이야기를 협서요』

한다. 마님은 쌍창을 열고 내다보며

『다저녁때 누가 왔누? 첨보는 솜님이드냐?』

『양복을 입구 뻔쩍뻔쩍 허는 안경을썼는데 아마 서울서 나오셨나 봐유』

인숙이는 점녜의 말을 듣고

『누가 나허구 또 혼인을 허자구 왔남!』

하고 유모의 넘적다리를 속고락으로 꼭 찔렀다.

十二[편집]

『서울서 저물게 손이 왔으면 누가 왔는지 알아서 저녁 대 접을 해야 허지 않니? 나가서 서방님 좀 들어 오시래라』

인숙의 어머니는 점녜를 또 사랑으로 내보냈다. 조금있자 경직이가 들어오더니

『저 윤자작의 사촌되는 사람이 왔는데요. 내일이 자작의 생일이라나요 그래서 새사돈될분 허구 아침이나 같이 먹고 싶다고 아버지께 꼭 들어와 줍시사는 편지를 가지구 나왔구 먼요』

한다.

『그래 들어 가신다든?』

『장인이 들아가서도 안가신 어룬이 사돈재목 생일엔 들어 가시겠에요』

『어쨌든 저녁 대접은 해야지 얘 거기 있니?』

하고 며누리를 찾는다.

『오늘은 못들어갈 모양이니 천천이 나허구 겸상을 해 내 보내시구려. 동경까지 가서 공부를 허구 나왔다는 양복쟁이 라 온 수작허기가 거북해서……』

하고 경직이는 관을 바로 잡어 쓰며 나갔다.

손을 자근 사랑에서 하로 저녁을 묵게되었다. 청좌를 받은 한림은

『그와같은 성언에 나같은 사람까지 청한것은 감사하나 근 일 고질인 변두통이 심하야 바람을 쏘이지 못하고 구십춘광 을 창밖에 두고 침울한 방안에 침거한 몸이라 형의 뜻을 드 대지 못하오니 천만 미안하다』는 순한문 편지를 간지에 정 중히 써서 손소 윤자작 사촌되는 사람에게 주고 안으로 들 어갔다. 아버지가 들어 오는줄을 모르고 인숙이가

『그것봐 나구 혼인하자는 집에서 나왔지? 그렇지 유모?』

하고 출랑거렸다. 한림은

『엣 고년. 계집애년이 잠자쿠 있들 못하구서. 온 저 철없 는걸 혼인을 정허다니』

하고 다른 사람이 한일 처럼 혀를 끌끌 채며 아랫목으로 내려가 저녁상을 받았다. 인숙이는 얼굴이 밝애가지고 돌아 앉었다. 조고만 입을 뽀족하게 내밀었다.

그날밤 자근 사랑에서는 윤보영이라고 불르는 양복쟁이와 경직이가 흐릿한 등잔불을 격하여 앉아서 밤 늦도록 이야기 를 하였다. 「넥타이」를 매구『하이칼라』를 한 신식의 대 표자와 아직까지 상투를 달고 관을 쓴 구식의 대표자가 나 이는 자칫 동갑이다. 그러나 두 청년의 사이에는 적어도 이 십년이나 되는 거리가 앞서고 뒤떠러진 만치 기분과 이야기 가 서로 어울리지를 않었다. 양복쟁이는 신문명의 공기를 저혼자 호흡한듯한 자랑과 자존심을 가지고 안경밖으로 상 투쟁이를 넘겨다 보고 상투쟁이는 완고한 가정에 태어나서 우물안 개고리로 자처해서 자격지심과 국축된 가정으로 양 복쟁이를 대헐밖에없었다.

경직이는 무슨 이야기를 들으나 그저

『네 네』

하고 앉아서 손의 일동일정을 살펴 불뿐이었다.

경직이는 서울 이야기와 동경의 얼마나 번화허드냐는것과 세상이 돌아가는 형편을 두손길을 부비며 공손히 물었다.

보영이란 청년은 평생에 볕을 한번도 쏘여보지 못한듯이 얼굴이 히고 손도 허물 버슨 계발같이 가느렀다. 금년봄에 동경 어느 대학의 법과를 졸업하고 왔다는데 처음에는 경직 이를 깔보는 태도가 분명했으나 차츰차츰 수작을 해보니 경 직이가 사람이 매우 똑똑할뿐 아니라 세상총편을 열심으로 알려고 들고 새로운 지식에 목말러하는 순진한 태도에 감동 이 되었다. 그래서 제가 견문한대로는 자세히 이야기를 해 들려주었다.

『어쨌든 지금 세태가 나날이 험해가고 대낮보덤두 더 밝 어가는 판인데 이렇게 시골 구석에 들어 앉어서 캐캐 묵은 유교사상(儒敎思想)에 젖어서 양반노릇만 하고 들어 앉었을 때가 아니요 앞으로 몇해만 지나면 로형이 이렇게 들어앉어 있고 싶어도 있을수가 없게되리다. 벌서 늦었지만 지금부터 라도 묵은 탈을 벗을 단단한 각오를 허지않으면 크게 후희 할날이 멀지 않으리다』

하고 격동을 시켰다. 경직이는 그사람의 말을 구절구절이 머리에다 새겼다. 크게 흥분이 되여 앞논의 개고리 소리를 벼개삼고 누어서 엎치락 뒤치락하며 별별 궁리를 다허다가 느진봄의 짤은 밤을 길게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