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녀성/제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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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의 결혼[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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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숙이가 바느질을 배우고 음식 만드는법과 큰일 치르는 절차를 견습하고 한편으로는 규감(閨鑑)이니 내측(內則)이니 열녀전(烈女傳)이니 하는 책을 읽어 시집갈 준비를 허는동안 에 서월은 꿈결같이 흘렀다.

그동안 한림의 집은 집웅에 이끼(苔)가 더 끼어 덕개가 앉 고 기왓장 틈을 비집고 돋아난 잡초만 욱어젔다 시들었다 하야 해를 거듭할사록 집이 점점 후락해갈뿐 인숙의 신변에 는 별로 큰변화는 없었다.

사오년이나 두고 온세계가 들끓고든 구주대전(歐洲大戰)의 피비린내 나는 비바람도 한림의 집에는 무풍지대(無風地帶) 와 같이 조고만 여파도 끼치지 않었고 고양이의 눈동자처럼 시시각각으로 변해하는 세태와 조선의 환경에서도 몇만리나 떠러진듯 한림의집만은 대낮에 닭우는 소리를 듣는듯한 한 가 롭고 평화스러운 세월이 흘렀다.

그러나 이삼년전부터 한림의 집에도 풍랑이 일기 시작하였 다. 이집에 주춧돌이요 기둥이라고 할만한 외아들인 경직이 가 부모와 처자를(그는 그동안 딸을 하나낳었다.) 버리고 돌 연히 집을 떠났다.

『불초의 자식은 각오한바 있어 슬하를 떠나옵나이다. 이 제까지 지내온 소자의 생활이 감옥살이와 같았다하야 양위 분의 탓은 하고저 아니하오나 두번 돌아오지못할 청춘을 언 제까지나 과천구석에서 썩히기는 너무나 애석하야 여러해를 두고 고민하든 끝에 단연히 집을 떠나고저 결심한것이오니 소자의 고통을 통찰하여 주시압소서. 무슨 사업이고 성취하 기전에는 걸식을 하는한이 있드래도 귀가치 않겠사오니 내 내 내외분 기체후 만강하옵시기만 복망하압나이다. 한가정 의 부모보다 더큰 우리의 부모를 섬기기 위하야 일신을 받 치고저 하는것이 소자의 소원이로소이다. 』

대개 이러한 사연의 순한문편지를 유서처럼써서 문갑우에 얹어놓고 어느날밤 경직이는 과천을 떠나 종적을 감추었다.

윤자적의 사촌되는 양복입은 청년에게 크나큰 감동을 받은 그날밤 이흐로 경직의 마음은 달뜨기 시작하였다. 당장에 상투를 잘르고 관을 찢어버리고 길로 싸여 좀이써는 서책에 불을질을 용기는 나지않었을 망정.

(에잇 이구석에서 내가 영영썩는 단 말이냐) (다 같은 청년으로 누구는 민족을 위하야 몸을받처가며 일 을하며 사회에 나서서 명예있는 사업을 허는데 그래 나혼자 멀정한 사지를 동여매고 앉어서, 요모양으로 늙어 죽어야 옳단말이냐) 하고 밤쭝이면 일어나앉어서 주먹으로 가슴을 치고 방바닥 을 두드리며 부르짖었다. 그러는 한편으로 아버지몰래 작인 의 집에 부탁하여 신문을 보고 윤보영에게 간청하야 잡지며 새로운서적을 빌려다 읽었다. 그러나 윤자작이 생가의 외간 상을 당해서 한림의 대리로 누차 서울출입을 허게되자 경직 이는 그양복 청년의집에서 수일식묵고 나왔다. 그와 그의 친구들에게 감화를 받은정도가 깊어갈사록 경직의 마음에는 뜻하지 않었든 파도가 거츨게 일었다. 윤보영이는 몇백년이 나 묵어썩은 물이 고인 연목과같은 경직의 머릿속에다가 불 시에 큰 돌맹이를 던젔든 것이다.

그리하야 새로운 문명에대한 동경과 구름이라도 움켜잡을 듯한 위기와, 나서기만하면 무슨 사업이든지 일우워질듯한 허영심이 상투쟁이 청년하나를 충동여서 제고향과 부모처자 를 일조일석에 헌신짝과 같이 버리게 한것이었다.

아들의 편지를 본 한림은 너무나 뜻밖에 일이라 어안이 벙 벙하야, 얼마동안은 벙어리가 되듯이 말을못했였었다. 실신 한 사람처럼 멍허니 먼산만 바라다보고 앉어서 혓바늘이 돋 도록 애꿎인 담배만 태웠다. 그러다가는 아들이 죽어나 나 가듯이 애절 초절을 하는마누라를 불러앉치고

『내가 왜 진작 죽지를 못했드란 말요? 그해에 그친구가 사당에 고유하고 자결했다는 부고를 받았을때 왜내가 뭘보 자구 이목숨을 끊지못허구 구구히 살어왔드란 말요? 그자식 하나를 의지하고 우리내외가 늙다가……』

하고는 너무나 절통하야 목이메여 말을 닛지 못하고 몇번 이나 흑흑 느끼며 엎으러 젔다.

마누라의 눈울겨운 위로로 간신히 마음을 가려 앉첬다가도 놀란듯 벌떡일어나 자근사랑 편으로 대고

『이놈 경직아!』

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부르짖고는 힌 머리털을 한음큼 씩 이나 쥐어 뜯었다.

그후로 몇달을두고 각처로 사람을 놓아 수소문을 하였건만 경직의 종적은 알길이 없었고 뒤를이어 또한가지 놀라운 일 이 탄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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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직이가 종적을 감춘지 얼마뒤에야 한림집 마름을 보는 사람이 맡아둔 동내곗돈 사백원이 없어진것이 탄로가 났다.

마름은, 저의집이 허술해서 큰돈을 맡어두기가 조심스럽다 고 얌전 하기로 소문이난 경직이를 신용하는 몰래 맡겨 두 었든 것을 몽땅 집어넣고 밤을타서 도망을 한것이었다.

『아이구 몹슬 자식!』

하고 한림은 복장을 삐었으나 아들이 공금을 횡령한 죄를 범하고 잡혀와서 징역살이를 하도록 내버려둘수는 없었다.

한림은 쉬-쉬-하고 그돈 사백원을 무리꾸럭하느라고 빚을얻 었다. 금융조합도 설시가 되지않었을때라, 일이 급하니까 읍 내서 고리대금을 하는사람에게 문전의 옥답 열마지기를 잡 히고 서푼변을 얻어 갚어주었다.

아들을 잃은데다가 갚을길이없는 큰빚을 진 한림은 뇌심초 사한 끝에 불과 일년만에 한 십년이나 나이를 곱질려 먹은 듯이 바싹 늙었다. 무뜩 무뜩 심화가나면 적덩이가 치밀어 오르는것처럼 아랫목에서 사뭇 굴르는 때도있다.

이좋은 마누라도 따러서 근력을 못차리고 자리보전을 하고 눕는 날이 많었다. 늦게 난 손녀가 귀여운줄도 모르고 나중 에는

『그애가 제집을 버리구 나간게 무엇때문인줄 아니? 내외 간에 의취가 맞질않어서 부모까지 버린게지 뭐냐?』

하고 그러지 않어도 밤이면 눈물로 벼개를 삼으며 벙어리 냉가슴 앓듯하는 며느리탓까지 하였다 원체 말이없는 경직 이의 댁은 오장이 없는 사람처럼 말대답 한마디 아니하고 속으로만 애매한 눈물을 흘릴뿐이었다.

마누라는 며칠걸려 식음을 전페하고 머리를 싸매고 누어서

『경직아 응 경직아!』

하고 잡고대를 허다가는 눈을 흡뜨고 일어나 앉어서는

『아이구 저애가 벌거벗고 피를 주루루 흘리구 쓰러젔구나 저 저것좀 봐』

하고 천정으로 대고 헛손질을 헐때 도 있었다. 그러면 인 숙이가 어머니를 껴안고

『어머니, 어머니! 정신 차리서요. 누가 피를 흘렸다구 그 러서요. 옵반 인제올걸요. 낼모랜 꼭 돌아올테니 제발 정신 을 차리서요』

하고 정싱껏위로를 해도 여전히 딴전을 하며 아들만 찾는 다. 인숙이는 보다못해서

『그러다간 옵바는 보지도못허구 어머니먼점 돌아가시겠 수』

하고 소리를 바락질을때도 있었다.

『자식 좋다는게 뭐냐 집안을 이지경을 만들어놓고 에이 몹슬놈, 어쩌면 일년이 넘도록 편지한장이 없단말이냐, 어디 가 죽었길래 그렇지』

할때마다 인숙이는 정말 시집이나 가고 싶었다.

집안꼴이 하도 말아니어서 뒤를려만 가는데 친 부모라도 너무나 지나치게 오라비 생각만허니까 나종에는 어린소견에 반감이 생길 지경이었다.

『진정이지 아버지 어머니 보기싫여 어디로 훨훨 가기나 했으면 좋겠어』

하고 올케에게 하소연을 하면

『자근 아씬 뭘 그러우. 나같은 사람도 죽지않고 사는데 내속이 얼마나 타는줄이야 이세상에 누구 하나나 알어주는 사람이 있는줄 아우? 그저 이 젖멕이만 없으면……』

하고 경직의댁은 어린딸을 재우다가도 포대기 자락에 뜨거 운 눈물을 쏘기도 한두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하로는 경직에게서 편지가 왔다. 우표딱지가 이상 한 등기편지가 왔다. 죽었든 자식이 살어온것처럼 집안은 발끈뒤집혔다. 식구마다 다투어가며 피봉을 뜯었다.

한림의 떨리는 손에 잡힌편지겉봉에는 상해(上海) 두글자가 뚜렷이 써있었다.

『어 자식이 상해로 갔구려』

한림은 다시금 놀랐다.

『상해라니요?』

마누라는 편지 겉봉을 아들의 얼굴이나 드려다 보듯한다.

편지 사연은 간단하였다.

「무단출가 하야 죄송한 말슴은 이로 형언할길 조차 없 다」고 한끝에

「만리 이역에 우연 득명하야 입원 치료코저 하오니 돈 이 백원만 급송화여 줍소서」

한것이 편지의 요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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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기막한 편지를 받은 한림의 내외뿐아니라, 온집안 식구가 초상난집처럼 모다 앉아서 고스란히 하로밤을 밝혔다.

이튼날 한림은 읍내로 들어갔다. 대서인에게 수속을 시켜 서 이번에는 들어있는 이십여간 기와집을 역시 고리대금업 자에게 단돈이백원에 잡혔다.

『네가 살어있다는 소식이나마 전하니 반가우나 운표만리 에 병보를 접하니 놀납기 측량없다. 병이 위중치않으면 돈 을받는 즉사로 귀국하라, 너의 어머니가 심려끝에 위석하야 식음을 전폐한지도 오래니 마지막으로 인자의 도리를 차리 기만 바란다』

는 편지와 돈표를 동봉하야 등기로 붙었다. 다심한 한림은 돈이 중도에서 슬뇔가 념려가 되어몸소우편국까지 가서 돈 받을 날짜까지 단단히 다진후에 땅이 꺼질듯한 한숨을 앞세 우고 간신히 지팽이를 의지하야 집으로 돌아왔다. 아들의 생사가 념려도 되거니와 풍년이 들어야 볏백이나 바라보는 처지에 륙백원이나 되는돈을 더구나 중변으로 덜컥 저놓았 으니 별안간 큰 바윗돌에나 업눌리는듯 어깨가 무거웠다.

한편으로 이러한 사정을 모르는 윤자작의 집에서는 안숙의 혼인재촉을 성화같이 하였다. 자작이 그동안 생가의 내외간 상을 연겁허 당해서 비록 집상은 친히 하지않았나 상중에 아들의 혼인을 시킬수는 없었다. 그러나 탈상을 하자마자 인제도 봉환이 성례를 시키지 않을테냐? 난 더 기다릴수가 없다』

하고 그동안 중풍으로 반신불수가 되여누어 지긋지긋이 목 숨을 끄러가는 대방마누라가 양손이 눈앞에 띠우기만 하면 봉환의 혼인 재촉을 한다.

그는 입까지 뻣두러저 말을 똑똑이 어울리지를 못하고 반 벙어리 모양으로 징징거리는 것이었다.

밥도 자기손으로 떡먹지못하고 누어서 뒤를 받어낸지도 오 래였다. 그리지 않어도 대소가의 말성이 많은 터이라 자작 은 몇번이나 한림에게 사람을 내보냈다. 보영이란 양복청년 이 다시 나갔을때는

『내 자식을 꼬여낸놈. 말쩡한 사람을 바람을 마친놈 그놈 은 내원수다』

하고 한림은 안으로 피해들어가서 보영이를 보지도 않었 다. 경직이가 보영이와 추측을 하든것을 나종에야 알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다시 한번 윤자작의 심방을 받고서야 경직이를 직접 상해까지 꼬여낸 사람이 보영이가 아니요 다 른사람이였든 것을 알고서야 오해를 풀었다.

윤자작이 시급히 혼인을 하여야만 할 사세를 누누히 말해 도 한림은

『자네두 알다싶이 시방 혼인이고 무엇이고 아무 경황이 없네. 단지 하나밖에 없는 자식의 생사조차 모르고 앉어서 막내딸 마저 내여놀수는 없네』

하고 친구의 간청을 구지 물니첬다. 그러면 자작은 입에 침이 말려서

『자네의 사정도 매우 딱허이만, 나역시 남의 집에 양자로 들어간터에 대소가의 시비가 시끄러울뿐아니라 다 늙게 불 효하다는 말을 들을수없고 시각을 다투는 로인의 마지막 소 원을 좃지 않었다가는 후회막급일게니 자 넘우 고집허지 말 게. 자제야 한번 풍성을 격것스니 곧 돌아올겔세』

하고 부득 부득 졸랐다. 그래도 한림은

『그뿐아니라 난 지금 빗덤이에가 올러 앉었네 혼수 한가 지 변변히 헐수없는 처질세. 그러타구 넘어 불성모양으로 할수도 없고……』

하고 여전히 고집을 세웠다. 자작은

『어째든 이거나 손소 전하고 가네』

하고 아들의 사주를 처맛기듯하고 들어갔다.

그런지도 한달이나 지난뒤에 경직에게서

『불원간 귀국 하겠으니 로자나 보내달라』

는 편지가 왔다. 반가운 바람에 한림을 점잖은터에 넘우 고집을 할수없다하야 인숙의 혼인 택일을해서 문안으로 기 별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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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숙의 혼례는 경직이가 돌아온지 십여일 앞으로 다처왔 다. 아들을 본 한림내외는 폭양에 시들었든 풀닢이 단비를 맞난듯 조금생이가 났다. 그러나 경직이가 거적대죄를 하고

『인제는 내외분 생전에 집을 떠나지 않겠습니다』

하는 다짐을 받은뒤에도 한림은 아들이 머리를 깍거 바지 르르하게 갈러붙이고 아직도 이마의망건자옥이 지워지지 않 은것을 볼때마다

『 에잇대가리를 보기싫여』

하고 눈살을 찌프렸다. 양복을 입고 문안으로 혼수흥정을 허려 다니는것도 맛당치 않어서 외면을 하였다.

경직이는 거의 밑애동안이나 해외에 거츠른 바람을 쏘여서 귀국한 뒤에도 물우에 뜬 기름모양으로 마음의 안정을 잃고 지냈다. 윤보영의 친구의 검언리설로 큰 희망을 한아름 안 고 둘이 상해로 달어나기는 했으나, 경직이가 훔쳐낸 곗돈 사백원은 만저도 보지못하고 같이간 사람의 주머니에서 녹 아버렸다.

막상 상해에 다달어 형편을 살펴보니 듣는바와는 딴판이었 다. 무슨 운동이나 민족을 위하야 활동을 하겠다는 크나큰 공상은 집을떠난지 불과 몇달동안에 물거품보다도 허무하게 깨어지고 말었다.

눈앞에 닥처오는것은 기한인데 그곳에 재류하는 동표들에 게는「남산골샌님」이니「애늙은이니」하는 모욕에 가까운 별명을 얻었을뿐. 실제운동에 들어서 아모짝에도 쓸모가없 는 경직이를 상대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다 요행이 한 림과 교분이있는 ○○당거두의 집에서 식객노릇을 하였다.

그동안에 한 일이라고는 불란서공원 잔디밭에 누어서 날마 다 길고 짜른 한숨으로 벗을삼은것과 황포탄(黃浦灘)달밝은 밤에 고향의 하눌을 울어러보다가 몇번이나 물에 빠저죽을 생각을 한것과 국제도시의 번화한것이며 색다른 인종들이 활동하는 무대를 보아 마음이 한껏커지고 눈이 고작 높아진 것밖에 없다. 동시에 일해동안의 소속이라고는 홧김에 담배 와「마작」을 배운것과 불평객틈에 끼어서 술을 마시기 시 작하야 독한 배갈을 두어근이나 먹어도 꿋덱도 안활만한 주 량을 얻은것 뿐이었다.

경직이는 고생을 견디다못해서 병으로 입원하였다는 급보 를 하였으나 눈이까맣게 기다려도 집의소식은 꿩구어먹은 자리었다.

아버지의 노명이 편지한장으로는 풀리지 않어서 아들의 생 사조차 모르는체 하는것이어니하고 감시 재촉도 못하고 있 든차, 같은집에 류숙을하다가 종적을 감춘 청년으로부터

『동지여, 천만미안하나 동지에게 온돈 이백원은 마츰 내 가 받았다가 찾어 가지고 비행학교에 입학코저 광동(廣東)으 로 왔으니 결코 사사로히 소비하려는 것이 아니나 동지의 은혜는 후일가플날이 있을것이니 장래의 일꾼하나를 양성해 주는 셈치고 너그러히 용서하시요』

하는 편지를 받었다. 경직이는 열병에 걸닌 사람처럼 펄펄 뛰었으나 그돈을 찾을 도리는 없었다 그리하야 동지라는 칭 호한마디에 이천원보다도 더 긴 급히 쓸돈을 감쪽같이 빼아 끼고 만것이었다.

경직이는 집에 돌아와서 그말은 입밖에 내지도 못하였다.

그러나 한번 건공중에 뜬 마음은가러앉일길이 없었다. 집의 형편만 왼만하면 좀 더 큰돈을 움켜쥐고 다시 해외로 뛰어 나갈 결심을 하고 돌아왔기 때문이다. 두번째 웅비(雄飛)할 기회를 엿보는 동안에는 전보다도 더한충 부모에게 순종하 는 태도를 보이려고 애를썼다. 그래서 한림내외가 이래라 해도「네」하고 제래라 해도「네」하는 것이었다.

경직이는 오래 집을 떠나있었것만 돌아오든날 잠시 안해의 방에 들었다가는 줄곳 자근사랑에서 통니불을 하고 잣다.

안해와의 금실은 전보다도 더 나뻐젔을뿐 아니라 고물고물 하는 어린것까지 본체만체 하였다.

『아빠 아빠』

하고 팔을 버리고 달려들어도 남의자식처럼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인숙이가 어린애를 안고나와서

『어-디 아버지허구 어디가 달멋나 보-자』

하고 얼러주면 경직이는 딸의 얼굴을 물끄럼이 들여다 보 다가

『제 어미 달멋지 누굴달멋겠니?』

하고 일어서 홱 나가 버리군 하였다.

경직의댁은 원악 남편보다 삼년이나 손위지만 돌아와보니 벌서 늙을 고비에 든것처럼 밧삭 바스러젔든 것이다. 그러 나 안해가 그동안 누구때문에 얼마나 속을 썩혔는지 무엇때 문에 그렇게 까지 늙었는지 경직이는 그까닭을 알녀고도 아 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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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숙의 혼인날은 아침부터 부슬비가 나렸다. 사랑마당가에 외따로 선 벽오동 나무가 촉촉이 비에 젖어서 나무껍질이 초록색 물을 끼얹인듯. 고목이 다 되어 구렝이 꺼풀같은 감 나무 가지에도 새잎새가 파릇 돋아났다. 그러나 낮이 겨우 면서부터 복풍이 일어서 봄날답지 않게 음산해젔다.

안팎으로 모여드는 손들의 옷자락이 비를 마저 후줄군하게 늘어젔다. 안마당이 질척 어려서 부엌에서 떡시루를 들고 나오는 더부살이가 미끄러지며 고만 깻박을 첬다.

『애 그머니』

하고 점례는 질그릇 깨지는 소리와 함께 무명을 찢는듯한 소리를 바락질렀다. 그통에 안방에서 성적을 하든 인숙이도 놀라서 감었든 눈을 반짝 떴다.

『왜 조심들을 못허구 저걸 어쩐단 말이냐? 떡 한시루를 다 버렸구나』

주인 마누라는 쌍창을 열고 내다보며 꾸지람을 한다.

『그만 둡쇼 마넴. 오늘 같은날 사위 스럽습니다.』

『어서 줘들 담어. 하필 신랑상에 놀 꿀편을……』

하고 수모와 유모가 번차레로 혀를 찼다.

머리에 커다란 낭자를 얹고 분을 횟박같이 뒤집어쓰고, 새 빨갛게 연지 곤지를 찍고 품과 화장이 넓은 할옷을 입고 눈 을 곱게 감고 앉인 인숙이는 멀리서 보면 여불없는 인형이 었다. 몇해 전까지 뒷곁 장독대에서 점례와같이 만들어서 절을 시키든 각시보다 덩지만 큰 각시였다.

『그러구 앉었으니깐 아주 엄전허구나. 제법 새색시다운 걸』

『이건 신랑도 오기전에 눈을 감고 앉었나?』

『초례청에서 누가 웃기드래도 웃지마라』

하고 일가마누라와 젊은댁들이 옷켜도 인숙이는 입을 꼭 다물고 앉었다. 수모가 불들어 일으키면 일어 서고 붙들어 앉치면 앉고하야 두번이나 습례를 하였다. 밖에서는 한림이 죄불안석을 하며

『낮이 겨웠는데 어째 그저들 안나오누』

하고 문안의 소식이 궁금하여 몇차레나 신작로로 사람을 내보냈다. 그러자 둥네가 떠들석 하더니 쌍우산을 받고 등 롱꾼을 앞세운 사인교와 그뒤를 따르는 인력거 서너대가 축 동밖에 나타났다.

『내 형세로는 억지로 허는 혼인이니 될 수 있는대로 제례 를 허세』

하고 한림이 사돈과 약속을 단단히 하였기때문에 혼행도 간단히 차례가지고 나왔다.

여러사람의 눈은 경직의 팔머리로 들어와 전안을 하고 나 서 초례청에 올라선 신랑에게로 쏠렸다. 사모와 목화는 커 서 헐렁 렇렁 해보이나 조복에 관대는 따로마친듯 몸에 마 젔다. 키는날 신하게 커서 열두살로는 매우 숙성해 보이는 데 얼굴은 밑동자처럼 히다. 온실에서 자라난 화초라할까.

응달에서 큰 버섯같다고 할까 한군데 마친구석이 없다.

그러나 두리번 거리며 사람을 둘러보는 깜안 눈동자에는 영채가 돌아 총기가 있어 보인다.

한림도 사위재목을 대하기는 처음이라, 유난스럽게 들여다 보는체는 아니하면서도 슬금슬금신랑의 얼굴을 이모조모 뜯 어보았다.

『어쩌면 저렇게 분을 파고 넌것 처럼 살결이 힐까』

『자근 아씨 버덤은 두살이나 아래라는데 키는 더큰가분 데』

『저것봐 빙글 빙글웃네』하는것은 마당에선 사람들의 소 근거리는 소리다.

이윽고 신부가 수모에(부축이 되어 긴치마 자락을 끌고 나 왔다. 이번에는 마루우와 뜰아래에 가뜩이 들어선 사람들의 시선이 신부에게로 몰렸다.

신랑은 (저게 내색신가) 하는듯 두눈을 말똥 말똥뜨고 제앞으로 조심스러히 닥어오 는 신부의 얼굴을 바라본다. 무슨색스러운 물건이나 구경하 는듯 호기심에 빛나는 눈으로-- 그러자 안방에서 끼-룩 끼-룩하는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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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당살이 장모에게 다허서 장모는 굴뚝뒤로 가 숨었는데, 초례가 지나면 들어와서 국수를 먹이려고 안방 아랫목에 시 루를 씨워 두였든 전안기러기가 뜨거운 방바닥에 꽁문이를 데웠는지 푸드득 거리며 끼룩거리는 소리었다.

유모는 기러기를 끄내서 기럭아범에게 내어 주고 초레청으 로 나왔다.

신부는 활옷소매를 모아 먼저 큰절 네번을 곱게 하였다.

그래도 신랑은 신부가 하는양만 빤히보고 섰으니까

『압다 새아씨 얼굴에 구녕이 뚫어지겠구려 한평생 두구 보실걸 고만 쳐다보구 절이나 허슈』

하고 수모가 위였다. 신랑의 후행으로 온 자작의 큰아들도 구식혼인을 했건만 저역시 어려서 지낸 일이라 어찌했으면 좋을지 절차를 모르고 뻣뻣이 서있다가 수모의 말을 듣고 서야 아우의 팔을 거들어 절을 시켰다.

신랑은 껍죽껍죽 절 두번을 하였다. 이번에는 청실홍실로 끈을 꾄 나무술잔이 신랑의 입에서 신부의 입 으로 왔다갔다 한다.

『이술 한잔을 잡수시면 아드님 일곱에 고명딸 셋을 나시 고 백세동락을 하시리다』

하고 수모가 신랑의 입에다 술잔을 대고 호르륵 소리를 내 니까 신랑은 그 술한잔을 홀딱 드리마셨다.

『어이구 새서방님이 이태백이를 닮으서서 글을 잘허시겠 군』

하고 수모가 또 놀렸다. 마루우의 여러사람도 웃었다.

수모는 초렛상에 놓인 대초와 생률을 집어서 신랑의 소매 에 넣어주고하야 그럭저럭 초례는끝이났다.

신랑과 신부를 신방으로 꾸며논 건넌방으로 안내하야 모본 단 방석우에 잠시 앉첬다가 신부가 나간뒤에 신랑의 사모관 대를 벗겼다. 신랑은 제손으로 옷을 훌떡훌떡 벗으며

『어이 갑갑해 죽을번했네』

하고 평복으로 갈어 입었다. 사랑으로 나가서는 책상다리 를 하고 앉으며 형더러

『언니 나 배고파 응 아침에 국수조금밖에……』

하고 조르듯하니까

『얘 가만있어』

하고 형이 아우의 말을 가로 막으며

『인제 큰상나온다. 초례청에선 일른대로 곳잘 허더니 만……』

하고 귓속으로 한다. 곁에섰는 경직이가 돌아서며 씩웃었다.

『자 그럼 장인을 가뵈야지』

하고 큰사랑으로 데리고 가려니까 신랑은

『언니 그이 보구두 아까처럼 또 절을 허우?』

하며 일어섰다.

『아무렴 허구말구』

경직이와 후행이 앞을섰다. 봉환이는 아랫묵 보료우에앉인 한림에게 절을 덥벅 하였다. 초래청에서 하든대로 절을하고 나서 또 한번을 하려고 허리를 꿈으리는 것을 보고 형이

『한 번만 허는법이다』

허니까 신랑은 엉석조로

『아까처럼 하느냐니깐 그러라구 그러구선』

하고 입을 삣죽해보인다. 형은 말없이 얼굴을 붉혔다.

『게 앉어라』

장인은 우슴을 띠우며 점잖이 자리를 가르첬다.

봉황은

『네』

하고 넉살좋게 펄석 주저앉는다.

『온 너무 미거해서……』

하고 봉환의형이 손을 부비니까

『나이가 있네그려. 너무 숙성하면 되려 못쓰느니 대기(大 器)는 만성(晩成)하는 법이거든』

하고 한림은 사장의 체모를 차린다.

『그래 너의 어르신네 안녕하시냐』

『네』

『대방에서 병환이 계시다는데 근자엔 좀 차도가 계시냐』

『우리 지밀할머니요? 날더러 자꾸만 장가를 들라구 우서 서…… 그래서 왔에요』

하고 서슴지않고 시키지 않은 말까지 한다. 한림은 그만 입을 담으렸다. 할말이 없어서가 아니라 만좌중에 어린사위 의 입에서 무슨 주책없는 말이 또 새여 노올는지 몰랐든 것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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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상을 받은 실랑은, 국수한그릇을 감치듯 하였다.

『거 식품이 좋군』

장인이 칭찬을 해주는 바람에 봉환은 실과 접시를 닦어놓 고 밤이랑 사과랑 걸터듬을 해서 어기어기 먹고 나서는 어 린애가 턱뱃기를 털듯 휘건 자락을 턴다.

『난 김치 안먹어요』

하고 냄새도 맞기 싫은듯이 김치그릇을 밀어논다.

『이얜 식성이 괴팍해서 장조림하고 생률만 먹는답니다』

하고 후행이 변호하듯한다. 봉황이는 더 어려서부터 김치 나 깍뚝이를 먹으면 구역을해서 고기와 과일만을 먹고 자라 났다. 그래서 집안에서 다람쥐라는 별명까지 들었다. 경직이 는 매부가 왼만하면 데리고 앉어서 수작도 부치고 남매간이 되였으니까 정다히 이야기도 하겠지만 제가보기에도 봉환이 는 몇해전에 보든때처럼 콧물만 흘리지 않을뿐이지 여전히 구생유취로 보였다 그래서 실실 웃기만하면서 저역시 철나 기전에 장가를 들러가서 향방없이 굴든것과 첫날밤에 색시 옷을 벗기다가 낭자를 떨어트린것과 여편네들이 창구녁을 뚫고 드려다보며 낄낄대든 생각이났다. 그렇게 혼인을 한결 과가 지금와서는 큰 고통거리인것을 생각하고

『은 조 어린것을 어느새 장가를 들이지 못하야 성화를 할 필요가 어디있나, 이게 무슨 망할놈의 습관인고』

하고 눈앞에 촐랑거리고 앉인 어린 매부가 딱하기도 할 한 편으로는 가엾어도 보았다.

경직이와 마찬가지로 오늘아우의 후행을온 봉황의장형도 외국까지 가서 신학문을 닥고 돌아온 사람으로 이러한 인형 노름같은 결혼을 불때마다

『어잇 다시한번 망헐 장본이다. 인간을 장난감으로 취급 하는 야만의 제도다』

하고 경직이 이상으로 분개하면서도 아버지의 명령을 거역 하지 못할 사정이 있어서 처음에는 반대를 하다못해 아우를 데리고 나온것이었다. 그 사정이란 어느신문사에 관계를해 서 행세를하고 싶는데 그신문사의 주(株)를 적어도 몇천주가 량은 사야만 떡버티고 앉일만한 지위를 차지하게된다. 그래 서 만일 아버지의 비위를 건드렸다가는 큰계획이 깨여지고 말것이라 그역시 표 면으로 부모에게 순종을 하는것이었다.

날이 저물자 초저녁부터 신랑은 신방에 들었다.

『먼길에 어린애가 휘돌려와서 고단할테니 일즉암치 재우 도록 해라』

하고 장인이 명령을 하였든 것이다. 후행왔든 형은 그날밤 서울에 긴급한 볼일이 있어서 저녁전에 문안으로 들어갔다.

『언니 나두 같이 가아. 응 언니이』

하고 봉혼이가 따러 일어서는것을

『내일 꼭 나올테니 일는대로 잘해. 숭잡히지 말구. 그러구 음식 조심 해라. 배탈날라』

하고 형은 몇번이나 타일렀다. 처남도

『오늘은 우리집에서 자야허는 법일세』

하고 봉환이를 간신히 불들어 앉첬다.

밤잠이 지난후 뻔쩍뻔쩍하게 닦은 유기 촛내에 홍초가 거 진 반이나 달은뒤에 신부가 들어왔다.

『성적을 지으니깐 새아씨가 더 이뿌시죠』

하고 수모는 신랑과 신부를 마조 앉첬다. 신부는 실눈을 곱게 떠서 나려깔고 그림같이 앉었다 가도 밀기름까지 발러 서 왼 종일 감었든 속눈섭이 뻑뻑해서 안질이 난것처럼 작 구만 눈을 꿈벅이다. 낭자가 무거워 고개가 아프고 머리카 락이 땅겨서 여간 거북하지가 않은 눈치다. 성적을 지은 민 얼굴이 초례청에서 보는것과는 딴판이라, 신랑은 두눈을 깜 막 깜막하고 색시의 얼굴을 처다본다.

『자 인제 오늘밤 비텀 두분이 백년 해로를 허실테니 첫아 들 나실 이야기나 허시구려』

능갈진 수모가 허는양을 보려고 말을 건느니까, 신랑은

『우리집에서 아무말두 허지 말랬어, 괘-니 남숭 불려구』

하면서 신랑은 수무에게 눈을 흘긴다. 신부는 (어쩌면 저이집에서 허지말라 말꺼정 다 헌담)하고 속으로 웃었다.

『그럼 새아씨를 데려 내갈테요』

하고 수모는 번언히 합레를 시기지 않을줄 알면서도 짓굳 게 한마디를하고 신부를 일으켜 세웠다.

신랑은 옷도 제손으로 잘벗지 않는것을 경직이가 꾀송꾀송 하야 데리고 잣다. 밤이 깊으며 바람은 더일고 비가 주르룩 주르룩 쏟아젔다. 대문 중문이 삐걱거리고 신방의 덧문이 왈카닥거리는데 방안에서는 훌쩍어리며 우는소리가 들렸다.

『나 우리집에 갈테야. 할머니 허구 잘테야』

하고 봉환이는 자다말고 일어나서 수병풍을 북북굴그며 울 었다. 나종에는

『할머니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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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튼날도 신랑은 아침도 안먹고 집으로 보내달라고 더럭 더럭떼를썼다. 장모와 유모와 수모가 번차례로 달래고 타일 러도 막무가내로 어머니 할머니를 불으면서 울었다. 장인이 보다 못해서.

『아침이나 먹어라 곧 들어가게 헐게시니』

하고 빌다싶이 하야 입매만 시긴뒤에 경직이를 불러 세우고

『네 매부를 데리고 들어가거라. 사돈에게 삼일을 치루지 못한 사유를 고하고 후일 재행이나 더려다 오래있게 하겠노 라고 엿줍고 나오너라』

하고 분부를 하였다. 그래서 봉환이는 하롯동안 주접만 떨 다가 집으로 들어갔다.

인숙이는 생으로 장님이 되여 아즉 한번도 신랑이 어떻게 생겼는지 보지를 못했건만 신랑이 넘우 미거허게 울기만헌 다는 말을 듣고 (말뿐이 아니라 제귀로도 남편감이 엉엉우 는 소리를 들었다)

『울긴 왜울어 어랜애 처럼 누가 뭐랬나』

하고 유모를 보고 어른처럼 혀차는 흉내를 내였다.

『그렇게 자근아씬 시댁에 들어가 백사에 정신을 차려서 칭찬을 받으서야만 허우. 나두 따러가겠지만』

『그럼 허라는 대로야 못헐라구』

하고 인숙은 고개를 외로꼬며 시집살이 잘할 자신을 보인다.

사흘 되는날도 아츰부터 날이 구젔다. 일즉암치 신부례를 시길 차비를 다차려놓고도

『날이 저렇게 꾸물거리는데 길에서 큰비나 만나면 었저 우』

하고 인숙의 어머니는 잠시라도 딸을 더데리고있고 싶은듯 이 붙잡으니까

『어째든 드려 보냅시다. 늦기는 했지만 들어가다가 날이 저물드래드 오늘안으로 현구고를 시겨야 하지 않오?』

그말을 듣자 마누라는 새삼스러히 더 섭섭한듯 질금 질금 울기를 시작하다.

한림은

『마누라버텀 저러면 어떡한단 말요? 시집살이를 허러가는 조 어린것도 있는데』

하고 위로한다. 한림내외는 딸을 불러 앉치고

『원악 지체가 높은 사람의 집이요, 층층 시하라 견눈이 적은 네가 실수하기 쉬우니 첫재 어른들께 공손하고 매사에 조심하라. 옛날 범절을 잘아는 유모를 안동해 보낼터이니 무엇이 든지 유모더러 물어봐라…』

하고 점잔은 딸에게나 일으듯 하기도하고

『친정 사실이 난다고 지각없이 쪽쪽 울기나 허면 아랫것 들 헌테도 숭을 잡힌다. 남편이야 아직 어리니깐 차차 나이 먹으면 위할줄 알겠지만……』

하는 어머니는 남편의 말에 부연을 달었다. 인숙이는

『네 네』

하고 입속으로만 대답을 하면서도「네 남편」이니「네신랑 이니」하는 말이 귀에 거칠다느니 보다도 듣기에 거북하고 이상스러웠다. 「새아씨」니「새댁이니」하는 말도 저를 가 르치는것이 아니요 옳게나 그렇지 않으면 다른집 색시를보 고 하는말만 같았다.

『남편? 내신랑? 새댁?』

하고 인숙은 입속으로 뇌여도 보았다.

인숙이는 저녁때나 되여서 저를 나어서 길러주신 부모와 십여년이나 정이든 고향산천을 뒤에두고 마의 사람이 되는 첫거름으로 사인교를 탓다.

인숙이가 집을 떠나는데 제일 섭섭해 하는사람은 어머니보 다도 아버지보다도 경직이 댁이였다. 그는 사인교 채를 붓 잡고

『자근 아씨 잘들어가우』

하자 눈물이 비오듯 쏟아저서 소매로 얼굴을 가리고 들어 서며 흐느껴 울었다. 남편이 거들떠보지도 않어서 갓득이나 외롭게지내는 경직이댁은 이 시누 맞어 보내고는 쓸쓸해서 살수가 없을 것 같았든 것이다.

점례는 행주치마 자락으로 연방 눈을 부비면서 신작로까지 따러 나왔다. 바둑이까지 꼬리를 살래 살래 흔들며 행렬의 앞장을섰다. 그러나 인숙이는 일살을 꼭다물고 눈물 한방울 아니흘리다가 한강철교를 건느다 달빛을 울어러 보자 참고 참었든 울음이 터젔든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