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녀성/제1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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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어진 烏鵲橋[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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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숙은 고독과 번민속에 싸여서 그날 그날을 보냈다. 장근 두달동안이나 남편에게서는 엽서 한장 오지아니하고 간신 간신히 변통해보내는 학비를 받고도 받었다는 회답조차 없 었다. 궁금한것을 참대못해서 쓰지않으러든 편지를 길게 쓰 고 탈없이 지낸다는 소식이나 전해서 안심을 시켜달라고 애 원을 하다싶이 해서 붙였건만 그역시 꿩구어 먹은 자리었 다. 돈이나 편지가 되돌아 오지 않는것을 보면 받는 사람이 있는것만은 분명한데 (그 계집때문에 나까지 영영 잊어버렸나? 모든것을 알고도 모르는체 허구 있는 내가 무얼잘못했길래햇 편지답장까지 안헐까?) 하니 무한히 섭섭한것을 지나처, 어느 정도까지 반감이 생 길지경이었다. 그러나 기다리지도 않고 긴치도 않은 장발에 게서는 한주일에 한번씩이나 편지가 왔다. 처음에는 봉희에 게 애틋한 사랑를 고백하고

『나는 가을날 황혼의 쓰르래미와 같이 봉희씨의 이름을 부르며 나홀로 애를 태우다가 죽겠소이다. 몇번이나 나의 정성을 다한 긴 글월을 보내도 종무소식이니 봉희씨의 너무 나 냉정한 태도에 내몸이 얼어붙는것 같습니다.』

하고 배달중증으로 까지 편지질을 하더니, 봉희가 제편지 를 뜯어보짇 않고 찢어서 코를 풀어 버리는것을 보기나 한 듯이

『당신의「지리가미」가 되어버리는 나의 필적을 조상합니 다. 그러나 기억해 두십시요 오는 봄방학에는 돌아가는대로 본처와 민적상으로 까지 깨끗이 리혼을 하고 나서 당신과 정식으로 약혼을 하고야 말 작정입니다』

하고 대단한 결심을 보였다. 그래도 봉희는 장발의 등기편 지를 받을때마다 인제는 찌어버리기도 수고스러운듯이

『온 별 추근추근 헌 녀석을 다보겠네 얘 체신국부조는 작 작 해둬라』

하고 겉봉도 아니뜯고 방바닥에 책상우에 아무데나 팽개를 첬다. 그러나 그편지는 봉희가 나간 사이에 인숙이가 뜯어 보았다.

『아무리 열병 앓는사람처럼 헡은수작을 허드래두 나종에 무슨 짓을 헐지 모르니 그런 생각은 아주 단념허라구 간단 허게 답장을 써보내구려. 그래야 이담에라두 귀찮은 일을 안당허지 않우?』

하고 시누의에게 회답하기를 권해도 보았다. 그러면 봉희는

『피 헐일이 없으면 낮잠을 자지』

하고 들은척 만척 할뿐이다. 그뒤로 장발에게서는 편지가 오지않고「근대의 연애관」이니「연애와결혼」이니 하는 따 위의책이 뒤를 달어왔다. 인제는 방침을 변경해서 연애학을 책으로 공부를 씨켜가며 실지로 시행해볼 계획인 모양이다.

봉희는 책제목에 끌려서 그런 책을 읽어 보면서도 연애나 결혼의 상대자로는 세철을 책상머리에다가 앉처놓고 생각하 는것을 장발이가 꿈에나 알리가 없었다.

책을 대여섯권식이나 보내도 여전히 감감 소식이니까. 장 발은 「이인숙씨친전」으로 만리장서를 보냈다. 그내용을 간단히 추려보면 「일생의 간절한 소원이니 봉희씨의 마음 을 돌리도록 힘을써 줍시요 다른 남자와 교제하는것을 삼가 도록 주의를 시켜줍시요. 그러면 인숙씨에게 결초보은 할날 이 올것입니다」하는 것이었다.

인숙은, 속으로는 웃으면서도 그 편지를 봉희에게는 보이 지 않었다. 그러나

『방학에 돌아오는대로 본처와는 이혼수속까지 하고 당신 과 약혼을 하겠소이다』

라고 써보낸 가장 중요한 편지는 봉희가 집어던진것을 주 서서 의거리 밑바닥에다가 감추어두었다. 그것을 다른생각 이 아니라 장발은 봉환과 가장 친한 사이니까 남편이 돌아 오면 그편지를 내어보이며 시누의의 의향을 간접으로 장발 에게 전하게 해서, 일이 더 버르집어 지기전에 단념을 시켜 보녀는 생각으로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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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듯 봄방학때가 가까웠다. 그동안 여러차레 봉희의 편 지를받고「또 병이생겨서 학교에도 못가고 치료를 받는중」

이라고 겨우엽서, 한장을 했던 봉환에게서 돌연히 전보가 왔다. 『XX일 XX시도착』이라는 간단한 전보였다.

뜻밖에 전보를 받은인숙은 불야 불야 문밖 별장으로 시부 모에게 사람을 내보내서 아들이 돌아온다는 기별을 하고 일 변 남편의 이부자리를 내털어 말리고 먼지 하나없도록 방을 치우고 저녁반찬 준비를 하느라고 잠시도 앉을틈이 없었다.

큰동서 자근동서도

『안직 방학은 했을리가 없는데 서방님이 어째서 별안간 나오신다나?』

하고 끄텟동서를 도아서 시동생을 맞는 준비를 거드는체 하였다. 큰동서는 여전히 골골 하며 겨우내 늙으니처럼 기침을 하느라고 워낙 칠칠하지 못한사 람이 바싹 바스러젔고 과붓댁은

『인젠 성교나 믿어야지』

하고 어느새버텀 천당길을 닦는다고 주일날이면 명동뽀죽 집 천주교당으로 예배를 보러다녔다. 불도를믿는 시할머니 의 눈을기고 몰래 다녔다. 친정에 천주교를 믿는 사람이 있 어서 수녀들과 왕래를 하다가 성세까지 받었다.

『이세상에서 날시비헐 사람이 누구야. 소망이 끄친나같은 여편네가 성교나 믿지 뭘허겠나』

하고 다니는 동안에 앉으나서나 땅이 꺼지도록 한숨을쉬는 버릇만은 떨어졌다. 그러나 남의 말이라면 신이나서 흔들빗 죽이 노릇을 하는 천성은 조금도 변함이 없다.

하루아침에 남편을 꿈결같이 작별한후, 단 하루도 마음을 놓지못하고 화조월석에 지나치게 그리워하던 인숙은 남편의 전보를 받고도 그닥지 반가운줄 몰랐다. 첫대 신병이 있다 니 집에와 치료를 하기위해서 급작이 나오는것 같어서 걱정 만 앞을섰다. 또는 막상 집에 돌아와보면 집안 형편이 떠날 때와는 딴판으로 군색하기가 비길데 없으니, 약한첩 마음대 로 못먹고 돌이어 심화나 내지 않을가 하는것도 미리 염려 가 되지않을수 없다.

그러나 그보다도 남에게 말도 하지못할 큰 의문이 가슴속 에서 꿈틀거리는 것을 억제할수 없다. 그석은 (그 일본계집애를 데리고 나오지나 않나?) 하는 추측이다.

인숙은 남편이 동경서 연애하는 여자를 다리고와서 지낼 여러가지 경우를 공상하다가 (설마 내가 있는데 조선까지 껄구야 올라구) 하고 남편을 믿어도 보았다. 더할수없이 의초좋게 지내던 몇해동안을 추억하고

『객지니깐 잠시 오입을 했는지 모르지만……』

하고 저와나라니 누어 원앙의꿈을 꾸던 수놓은벼개를 끄내 여 이를시치며 시간을 기다리는데 봉희가 학교에서 돌아왔다. 오라비가 급작이 귀환한다는 말에 그다지 놀라는 기색도 보이지 않고 반가워 하지도 않 으면서

『그럼 정거장엘 나가야겠구려. 새언니두 가치 나갑시다』

하고 책상우에다가 책보를 던진다.

『내가 뭘허러 나가우?』

『어쩐말요? 사랑허는 남편이 옵시는데 마중을 안가다 니……』

『그렇지만 이 모양을 허구……』

하고 인숙은 머리를 쪽지고 들어앉었던 터이라, 그모양대 로 정거정에 나가기가 안됐는데 또는 시부모가 시간전에 들 어오면 무어라고 할지 몰라서

『자근아씨나 나가우』

하니까

『그럼 머리를 틀어 올리구 나가구려. 내 틀어즐께』

하고 달겨들어서 반은 강계로 올캐의 머리를 학교에 다닐 때처럼 틀어 올렸다. 인숙은 체경을 들여다 보며

『아이 웨 이렇게 어설필가』

하고 뒷걸음을 대고는 비치개로 기다랗게 자란 목덜미의 솜털을 망건쓴사람 살쩍을 밀려 올리듯 하니까

『모양을랑 고만내구 어서 옷을 갈어입어요. 시간이 됐는 데』

하고 봉희는 팔뚝시계를 보고 어서 나가기를 재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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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밖 별장에 나갔던 하인은

『대감께서 감환이 계서서 마님께서도 들어오지 못한신 다』는 전갈을가지고 들어왔다. 용환에게도 아우가 귀환한 다는 통지를하려도, 전화료금을 못내지 통화정지를 다했기 때문에 큰 사랑에는 비인 전화통만 달려있었다.

『어서갑시다. 우리 둘이나 마중을 나가야지』

하고 봉희는, 어쩐지 정거장까지 나가기를 점직해하는 올 케를 억지로 일으켜 세웠다. 인숙은 여학생복을 차린것이 암만해도 어색해서 다시한번 체경앞에서 뒷모양을 비추어 보는데, 봉희

『글세 모양은 그만 보구 어서 나가요』

하고 앞을 서나간다. 인숙은 부억으로 들어가서 다시 한번 저녁분멀을 하고는 내키지않는 걸음거리로 봉희의 뒤를 따 러 전차길로 나갔다.

정거정에서 입장권을 사가지고, 마중을 나가는 사람들틈에 끼어 개찰구로 나가면서도 인숙은 무슨까닭인지 저도 모르 게 머리가 들려지지 않었다. 기차가 도착할 시간이 일분씩 삼십초씩 닥처 올사록 「프레트폼」기둥에 달린전기시계의 분침이 돌아가는대로 인숙은 공연히 조마조마하였다. 그다 지도 그리워 하던 남편의 마중을 나온것같지가 않고 동경보 다도 더 먼곳으로 전송을 하러 나온것같어서 철로길에 뻗어 나간 두줄기 평행선을 아득히 바라다보고 섰다.

(어떻게 인사을 헐가) (데리고 나오느 사람이 있으면 어떡허나) (무슨 병인지 걸어서 나릴만이나 헌가) 이러한 생각을 하고섰는데 철로바탕이 우루루하고 올리는 소리와함께 시꺼먼 이무기 대가리 같은 기관차가 가까히 달 려 들었다.

우렁한 기적소리는 인숙의 가숨속까지 진동을 시켰다. 마 중을 나온 수많은 사람들은 객차의 마다마디로 와르르 달려 들었다. 봉희는 사람의 물결을 헤치고 상등찻간으로 뛰어 올러갔다.

기차가 정거를 하자, 나리는사람과 마중을 나온 사람들이 뒤섞여서 눈망울이 핑핑 돌도록 어수선헌데 객차와 멀찌감 치 떨어저서 기둥에 몸을 반쯤 가리고 선 인숙의눈에는 봉 환이가 나타나지 않었다. 뛰어 올러갔던 봉희도 오라비를 찾지못하고 허둥지둥 나려온다.

(전보까지 치고 이차에 오지않을리는 없는데……) 하고 인숙은 봉희에게로 달려가며

『웬일이요?』

하고 물었다. 그러자 이등찻간의 창문을 밀러 올리며 밖앝 을 휘휘 내둘러 보는 중절모자를 옥으려쓴 청년의 시선과 인숙의 시선이 마주쳤다.

『옵바 저기 계시구려!』

하고 인숙은 급히 봉희의소매를 잡어다리며 봉환의 편을 가르쳤다. 봉희는 이등 찾간으로 뛰어 올라갔다. 삼등 차를 타고 오는줄만 알었고 학생모자를 쓴 사람만 찾었기 때문에 얼른 눈에 띠우지 않었던 것이다. 인숙은 가슴이 두근거려 서 한걸음도 옮겨 놓지못하고 섰는데, 봉환은 인숙이가 나 온것을 흘깃보자 보지못할것이나 눈에띠운듯이 고개를 돌리며

『아까보-』

하고 집을날르는 붉은 모자를 불렀다. 봉희는

『옵바!』

하고 안어나 달라는것처럼 두팔을 버리고 오라비의 앞으로 달려들었다. 봉환은 누이를 보고도 그닥지 반가워 하지를 않고

『응, 너 나왔니? 난 아무두 안나오는줄 알었구나』

하고 그제야 단장을 짚고 일어선다. 미술학교의 단초를 단 학생복을 입고 기다란

『스프링코-트』의 허리띄를 나나니 허리처럼 졸라 매었는 데 얼굴에는 혈색이 하나도 없고 두볼이 여위어서 얼른 알 어보지를 못할만치나 초체하다.

봉희는 손가압을 들고

『어서 나리서요. 새언니두 나왔는데』

하고 일어서기를 재촉하다가 바로 오라비의 앞자리에서

「핸드빽」의 거울을 들여다보며 분첩으로 콧등을 두드리는 양장미인을 발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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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희는 그 양장미인의 아래우를 곁눈으로 살짝 훑어보았 다. 서울서는 보지못하는 쟁미쫓문의를은은하게 놓은 연연 한 양보라양복을「이브닝. 뜨레스」와같이 기다랗게 느려입 고 살빛과 분간할수 없는「실크」양말에 배암껍질같은 구두 를 신었다. 잠자리 날개에 물을 들인것 같은 모자에 반쯤 가려진 얼굴에는 폭꺼진 눈두덩에도 훌쭉한 두뺨에 또는 조 그맣게 오무린 입술에도 엷게 또는 진하게 연지를 발르지않 은데가 없다. 그때문에 힌콧마루가 더 옷독해 보이고 새깜 언 눈동자까지 톡 붉어저 보이는것 같다. 양장한 미인도 봉 희를 힐끔 처다보고는

『이학생이 당신의 누의냐』

는듯이 봉환의 얼굴을 치어다본다. 봉환은 차창밖에서 남 편이 어서 나리가만 기다리고 서있는 인숙에게 눈짓을 해보 이며 봉희의 귀에만 들리도록

『너이는 먼점 들어가거라 어디좀 다녀서 곧 들어가마』

하고 짐은 다 아까보에게 들려보내고도 엉거주춤하고 나리 지를 안는다. 저와 마주앉인 여자와 동행이 아닌것같이 보 이려 함인지 또는 그여자의 눈에 창밖에 선 인숙을 보이지 않으려 함인지 그런 눈치를 얼는 채지 못한 봉희는

『왜요? 다른 사람들은 거진 다 네렸는데요. 새언니가 저 렇게 기다리고 섰는데……』

하고 오라비와 양장미인을 번갈러 보면 어서 나리기를 재 촉한다.

『글세 먼점 들어가!』

봉환은 눈살을 잔뜩 찌프리며 짜증을 더럭 낸다.

『도-시다노? 사 오리마쇼』

(왜 그러서요? 자 나립시다) 하고 양장미인은 일어서서 지리가미로 구두코를 닥그며 봉 환에게 일본말로 뭇는다. 봉환은 허등거리면서 제몸으로 차 장을 가리고서서

『아도까라 윳꾸리 오리다호-가 이이요』

(나중에 천천히 네리는게 좋와) 하고 역시 일본말로 댓구를 한다.

봉희는 빨근해가지고 획 돌아서「플래트폼」으로 뛰어나렸 다. 그제야 양장미인이 오라비가데리고 나온 여자인줄 알었 을뿐 아니라 정거장까지 마중을 나온 친누의와안해를 반가 워하지 않기는커녕 먼저 들어가라는 꾸중까지 듣고서야 그 자리에 섰을수가 없었든것이다.

봉희는 찾간에서 뛰어 얼굴이 쌔빩애가지고

『우린 어서 들어갑시다』

하고 올캐의 손목을 잡어 끌었다. 인숙은 아랫입술을 깨물 고 싀누의에게 끌려서 구름다리로 올라갔다. 층층대를 하나 씩 올려놋는 인숙의 발은 이리저리 헛놓여서 봉희가 부축을 하지않으면 쓸어질듯 하다. 조금심하게 형용을 하면 교수대 로 끌려 올러가는 사형수의 걸음걸이 같다고 할가.

누구보다도 민감한 인숙은 남편이 상상하든바와 같이 다른 여자를 데리고 나와서 하필 정거장에서 저와 마조칠가보아 겁이나서 문칫거리고 나리지를 않고 누의를 쫓어나려 보낸 눈치를 챗든것이다. 더구나 차창안에서 봉환이와 마조서서 어른거리는 양장미인을 먼발치로나마 유리가 뚤어지도록 똑 똑이 들여다 보았다. 모든것을 짐작한 인숙은 봉희가 껄지 안트래도 저 혼자라도 그자리를 피하려든 차였다. 인숙은 누가 등뒤에서 자꾸만 떠다미는것처럼 급히 정거장 구내를 버서저 나왔다. 죽기 기를 쓰고 참었든 눈물이 앞을 가려서 두언번이나 세멘트바닥에 곡그라질번하였다.

『아이고 내가 뭘허러 정거장엘 나왔든가』

하고 땅이 꺼지도록 한숨을 쉬면서도 저보다도 더 분해서 할닥거리며 말도 못하는 봉희에게 장님처럼 끌려서 전차에 까지 올라탓다.

한정류장쯤 가자 다른 승객들이 제얼굴을 드려다보는것같 어서 인숙은 차창밖으로 열굴을 돌렸다. 윤이 지르르 흘르 는 택씨한대가 바로 인숙의 눈앞을 달려간다. 신혼여행을 가는듯이 한쌍의 남녀가 어깨를 마주 부비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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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둘이만 들어오나?』

『서방님은 문밖으루 나가섰나?』

동서들은 마루끝으로 내다르며 맥이 풀려서 들어오는 인숙 을 보고 뭇는다.

『누이 아우? 정거정에서 바루 자동차를 타구 어디루 가나 봅디다』

하고 봉희가 구두를 버서서 댓돌에다 미여 불이니까 인숙은

『아무말두 마우 내 특청이니……』

하고 몸래 싀누의의 옆구리를 찔렀다. 정거장까지 나갔다 가 남편의 얼굴도 똑똑이 보지 못하고 쫓겨 들어온것을 동 서들에게 알리고싶지가 않었다. 제가 더 할수없는 창피와 모욕을 당한 까닭이 아니라 그래도 남편이 곧 뒤따러 들어 올 줄을 믿었든 것이다. 인숙은 조금도 이상한 눈치를 보이 지 않으려고 속으로만 무진애를 쓰며 제방으로 들어가 옷을 갈어입으려는데 동서들은 거기까지 쫓어와서

『그래 신병이 계시다드니 대단치는 않으시든가?』

하고 큰 동서가 물으면 자근 동서는

『병은 무슨 병. 오-라참 상사병두 병은 병이니까 아무튼 방이 식는데 어서 자리나 까어놓게』

하고 야비한 소리까지 해가며 인숙을 놀린다. 인숙은 무어 라고 말대답을 했으면 좋알았지 물으고돌아서서 치마를 갈 어 입는데

『왜 얼굴빛이 저런가? 넘우 반가워서 혈색이 다 없네그 려』

하고 과부댁은 체경속으로 동서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며 얄구께 군다. 봉희도 옷을 갈어 입으미

『새언닌 별안간 속이 거북허대서 간신이 데리구 들어왔데 어서들 나가요 편히 좀 눕기나허게』

하고 소리를 질르다싶이 해서 올캐들을 내보냈다. 봉희는 벽을 향해서 돌아선 인숙의 어깨를 집흐며

『새언니 넘우 속상해 허지마우』

할수밖에 무어리고 위로해줄 말이 없었다. 인숙은 벙어리 가 된것처럼 입을 꼭 다물고 오징어 썩는듯한 한숨과 함께 경대앞에가 펄것 주저앉으며 틀어올렸든 머리를 풀어 나린 다. 봉희의 눈에는 머리를 풀고 몰아앉인 인숙이가 두번재 상제가 된것같이 가엾고 애련해 보여서 고개를 돌렸다. 그 와 동시에 (내가 싀집이라구 기서 저런 경우를 당하면 어턱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이라는것이 몸서리가 처지리만치 무서운것같기도 하였다. 또 한편으로는 (나같으면 머리를 박박 쥐여뜨더가며 한바탕 통곡을 해도 시원치 않을텐데 새언니는 참 용허게 참는다) 하였다. 인숙은 전과같이 머리를 쪽찐 뒤에 저고리고름으 로 눈두덩을 누리고 일어서더니 행주치마를 둘르고 찬마루 로 나간다. 부억으로 나려가 뜬숫으로 풍로에 불을 피어 고 초장 두부찌개를 데우고 솥속에 너둔 밥이 식지않었나 하고 솥을 열고 손을 대여 보았다. 식성이 괴악한 남편은 동경으 로 가든날까지도 김치깍두기를 입에다 대지를 않어찌만 술 에 비위가 상하지도 않은사람이 얼근한 고초장찌개는 좋아 했었다. 그래서 오늘 저녁에는 송이버섯에 기름끼와 두부를 놓고 솜씨껏끌여놓고 나간 찌개가 식어서 다시 데우는것이 었다.

(늦드래두 집으로 와서 저녁은 먹겠지 몸도 불편헌데 며칠 동안이나 시달려 왔으니까 일즉음치 쉬겠지) 하고 남편이 그여자를 어디다가 데려다만 두고 즉시 집으 로 올것을 믿었다.

그러나 그다지도 외롭게 지내면서 일구월심에 돌아올 날만 고대하든 남편이었만 저를 따듯이 안어주고 지난 이야기로 긴밤을 짜르게 새워보리라고는 언감생심 바라지도 않었다.

(환장이 되기전에야 설머 집에까지 와서도 나를 맞본체하 랴) 하고 풀떡풀떡 퐁로에다 부채질을 하였다. 커다란 쥐한마 리가 우중충한 부엌 바닥으로 썰썰 기어갔다. 찌개는 보글 보글 끌어서 뚜껑이 조끔씩 들먹거리는대로 인숙의 마음은 바작바작 졸아 붙는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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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대분밖에서 자동차소리가 들렸다.

(인제야 오나보다) 하고 인숙은 오금에다 용수철을 댄것처럼 발딱 일어나 중 간문깐으로 나갔다.

동서들도 봉희도 따라나왔다. 인숙은 감히 제몸을 들어내 지도 못하고 문뒤에가 숨박굽질하듯이 가려섰는데

『사방님 오십니다』

하고 행낭계집애가 댕깃꼬리를 내저으며 먼저 뛰어들어온 다. 뒤를 이어 봉혼이가 손가방하나를 들고 단장을 집고 들 어오는데 조금 어기적거리는 걸음거리가 보통때와는 달은것 이 여러사람의 눈에 이상히 보였다. 소슬대문과 사랑대문과 큰 사랑 부연끝이며 마당 한복판에 까지 대여섯씩이나 외등 을 달어서 대낮같이 환하든 저의 집이 왜 이렇게 오중중한 가 하는듯이 사면을 둘려보며 들어온다. 그동안 전등료까지 몰려서 외등은 모조리 휴등을 한줄 알리가 없다.

『아이고 서방님 얼마나 고생을 허섰어요?』

제일 무관히 지내든 큰형수가 끝에 시동생의 손이라도 잡 을듯이 반겼다. 서로 말도 아니하고 시스럽게 지내든 자근 형수는 시동생을 보자

『그래두 산사람은 만날때가 있것만……』

하고 죽은 남편의 생각이 별안간에 났는지 치마자락으로 얼굴을 뒤집어 쓰고 소리를 내여 울면서 엎들어지며 곱들어 지며 저의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봉희는 정거장에서 무안 을 당한것이 그저풀리지 않어서

『어딜 갔다 인제야 오서요?』

하고는 쏘아부치듯이 한마디를 하고 따러 들어갔다.

봉환은 저를 바로 처다보지도 못하고 제 뒤를 따러 들어오 는 안해에게는

『잘 있어수?』

한마디도 아니하고

『할머닌 그저 별당에 계시냐?』

하고 봉희에게다 물어보고는 여전히 어기적거리는 걸음으 로 별당으로 올라간다. 별당노인은 더구나 근자에는 집안에 모슨 일이 있든지 알려고도 들지 않고 여승하나만 데려다 두고 지내는 터이라 손자가 오는줄도 몰으고 있었다.

할머니를 뵙고 나려온 봉환은 저의 방으로 들어가 옷이라 도 갈어입을 생각을 아니하고 어머니가 쓰다가 페방을 한 대방으로 들어가는것을

『아니 그방엔 겨으내 불을 안땟는데……』

하고 큰형수가 가까운 건넌방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시장 허실텐데 어서 진짓상 보아오게』

큰동서의 말이 아니라도 남편이 옷을 갈어입고 나면 저녁 상을 들여오려고 인숙은 다시 부엌으로 나러갔다. 봉환은

『저녁은 가치식당에서 먹었는데요』

어떠고 남의집에나 온것처럼 스프링코-트도 벗지않고 쭈그 리고 앉었는데 인숙이가 반찬은 여러 가지가 놓이지 않었어 도 깨끗하게 행주질을 친 밥상을 어른앞이나 되는것 처럼 공손히 받들고 들어왔다.

봉환은 제댁을 흘끔 처다보고는 무엇에 토라진 계집애 모 양으로 눈을 알에로 내리깐다. 인숙은 그제야 전기불빛에 남편의 얼굴을 똑똑이 보았다. 머리는 장발이 만치나 길러 넘겼는데 코날이 상큼하도록 얼굴이 여의고 중병을 알타가 퇴원을 한 사람처럼 피기가 하나도 없다. 인숙은 남편이 수 척해진것이 무한히 가엾기도 하고 마주 대하고 보니 참을수 없시 밉고 분한 생각이 폭발되여 당장에 밥상을 집어치우고 와락 달려들어서 몸부림을 해가며 목을놓고 실컨 울고나 싶 은 충동을 느꼈다. 그렇것만 (그저 참자 참는게 제일이다) 하고 혀끝을 꼭물었다. 콘동서는 내외가 이야기할 기회를 주려고

『원체 가려잡숫는 성미에 음식이 맞지않어서 퍽 어려우섰 지요?』

하고 주발뚝겅을 벗겨놓고는 일어서 나갔다. 봉환은

『아니요』

하고 먹는체라도 아니할수 없어서 수저를 들었다. 그러나 식성까지 변했는지 고초장찌개는 수가락도 대지않고 편기를 하든 계장도 밀어놓는다.

(아마 싱거운 일본반찬에 비위가 젖어서 별안간 짠거나 매 운것은 못먹나보다) 하고 인숙은 동치미보시기를 갔어놓으며 간신히 알어들을 만하게

『어디가 그렇게 편지않으서요?』

하고 남편의 얼굴을 처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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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환은 말대답 하는것 조차 귀찮은듯이

『가래톳이 서서……』

하고 말끝도 맺지를 않는다.

『넘우 걸으섰든게로군요. 그래 약이나 바르섰어요?』

인숙은 억지로라도 한마디 하지않을수 없었다.

봉환은 고개만 끄덕이며 숫가락을 놓는다.

『식당에서 잡수섰드래두 밤에 시장허실텐데……』

하고 혼잣말 하듯하고는

『숙늉 잡서와』

하고 동자치를 불렀다. 봉환은 숙늉도 마시지 않고 일어선다.

『양복이 거북허실텐데 옷을 갈어입으시지요』

하고 인숙은 남편의 앞을 서서 저의 방으로 나려간다.

『조선옷은 일없수』

『샤쓰나 있건……』

있고 안해의 뒤를 딿었다. 제댁의 방에는 들어갈 생각이 없것만 형수의 방에서 옷을 갈어입을가 없었든 것이다.

깨끗이 치어논 방 아랫목에는 두 내외의 자리를 나라니 펴 놓고 머리마테는 자릿끼까지 떠나 놓았다. 봉희가 시키지않 은짓을 해놓고 어디론지 나가 버렸든것이다.

『어느새 자리는 누가 펴놨어?』

하고 슬그머니 제가 한일이 아니라는 변명을 하고 삼층장 을 열고 와이샤쓰를 끄냈다. 조선옷은 남편이 언제오든지 입을수 있도록 몇벌씩 해서 차곡차곡 개켜두었것만 부득부 득 입으라고 할수는 없다.

봉환은 앉지도않고 기선과 차속에서 더러운「와이여샤쓰」

만 갈어입고「언제 저자리에서 둘이서 잣드냐」는듯이 아랫 목을 나려다보더니

『아버지헌테 나갈테요』

하고는 뒤도아니돌아다보고 나간다.

『지금 문밖엘 어떻게 나가서요 늦어두 들어오실테죠?』

인숙은 따러나가며 물었다.

『글세……』

하고 봉환은 우물쭈물하고 사랑채로 나갔다. 전화로 택씨- 를 불르려다가 사랑을 직히는 상노 아이가

『전화가 안됩니다』

하는 소리에

『전화까지 팔어먹었단 말이냐』

하고 큰형을 빗대어놓고 골을 더럭내고는 걸어 나갔다.

인숙은 자리우에다 엎들여 소리를 죽여가면서 울었다. 정 거정에서부터 참고 참었든 눈물이샘물처럼 풍풍솟는것을 막 을수없다.

남편이 아모리 마음이 변했기로서니 어쩌면 그렇게 냉정해 젔을까. 계집애같이 편성이라 너름새가 없는줄은 잘 알지만 다른 계집에게 홀려서 정신이 빠젔기로 제가 무엇을 잘못했 기에 남남간보다도 더 쌀쌀하게 굴까. 장모가 돌아가신 후 에 처음 만나는데 비인 인사라도 한마디 있어야 할것이 아 닌가. 그보다도 방에 들어와서는 잠간 앉지도 않고 자기의 아쉬운 일만 피고 언제들어오 자겠다는 말조차 분명히 해주 지 않고 저를 피해 나갈 까닭이 무엇인가.

다른 여자를 데리고 오는줄 알고 정거장에 나간것도 아니 요 그저 창가를 들지 않었다고 저를 산송장을 만들어 놓고 그여자를 속여가지고 나온것이 아닌담에야 안해가 남편 마 중을 나간것은 정당한일이 아닌가.

인숙은 모든것이 분하고 야속한것보다도 귀로 들은것 눈으 로 본것까지 도모지 몰으는체하고 그늘에서 눈물을 흘리는 것이 몹시도 어리석은 생각이 들었다.

(울면 뭘해 나를 동정해줄 사람두 없는걸) 하고 진저리를 치며 일어나는데

『옵바 또 어디루 갔수?』

하며 봉희가 들어왔다.

『누가 아우』

하고 울든 얼굴을 보히지 않으려고 고개를 돌렸다.

『어쩌면 그렇게 남남간 같어젔수? 남자들은 걸핏하면「바 람에 불리는 갈대와같이 변하기 쉬운 여자의 마음」이라구 노래까지 지어 불으지만 아마 사내의마음은 고양이 눈깔만 치나 잘변허나봐』

하고 책보를 미리 싸들고 큰 오리비댁의 방으로 건너갔다.

『밤은 깊어 새로 한시들치고 두시를처도 꿈결같이 다녀나 간 봉환은 돌아올줄 몰랐다. 인숙은 얼이 빠진 사람처럼 앉 진채 주인없는 벼개머리를 직히며 밤을 밝혔다.

大變의 靈前에 내가 너를 爲하야 쓰는 글 조차 이것 으로 마금 하는가 하 면 다시금 마음이 설레인다.

우리집의 花草이든 (집안에서 부르든 熏의 別名) 너는 보이 지 않건만 너 좋와 하든 菊花는 때를 차저 滿開 하였구나!

너 한번 가드니 一年이 지나도록 편지 한장 없으니 이 더 러운 世上과 아조 絶緣을 하였는가?

月前 月夜에 그 씩씩한 네 音聲 내 귀에 들렸으나 靈界에 서 라듸오로 放送 함인지 눈 뜨곤 볼길 없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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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 큰거리에 있는 '싸롱 파리'에는 저녁때부터 손들이 모 여든다. 손들이란 대개는 별로 하는일이 없이 룸펜처럼 어 슬렁거리고 돌아다니는 장안의 '모-던뽀이'들이다. 파산을당 한 백만장자의 아들의 낮잠터도 되고 귀족의집 서방님들이 커피-한잔을 놓고 마냥느리잡고 앉어서 지난밤늦도록 카페- 나 요리집에서 유흥하든 끝에 피곤을 푸는곳도 근자에 길거 리마다 생기는 이른바 '싸롱'이라는 차파는 집이다.

저녁때가 되어 해만 설핏하면 어디로선지 '짜켙'치레를한 운동선수, 코가 빗뚜러지려는 도중에있는 권투선수 주머니 속에는 한잔값도 없으면서도 류행의 첨단을 걸으려고 애를 쓰는 가가지 복색의 남녀배우들 또그리고 세월맞난 '레코- 드'회사의 이른바 전속 예술가들이며 간판쟁이도 못되는 화 가와 신문기자가 구름과같이 모여들어 십전짜리 사교판이 버러진다.

한편에서는 배우축들이 레코-드를 틀어놓고 '카운터'까지 끄러나려 억지로 껴안고 '폭스토릇'을 추느라고 뒤법석을하 고 먼지를 풍겨서 맨구석 '테-불'에서 친구들과 '코코아'를 마시고 앉었든 봉환은 몇번이나 눈쌀을 찌프렸다.

"동경서는 저런 일이 없어 찻집이 이렇게 난잡해서야 점잖 은 사람들이 들어와 조용히 쉬겠나? 차두이게 뭐야. 커피라 구 맥물처럼 허길래 코코아를 달랬더니 이건 사탕물일세 그 려"

하고 봉환은 사시로 차를저어 입맛을 보다가 내던진다.

"그야 은좌(銀座)같은 데서 한잔에 일원씩이나 주구마시는 찻맛만 헐수가 있나"

하는것은 박귀양이란 봉환의 친구로 봉환의 아버지에게 빗 을 물려 파산지경에 이르게한 박남작의 서자다.

두친구가 오래간만에 길에서 맞나서 잠시다리를 쉬려고 들 어왔든 것이다. 적서는 두 사람은 같은 귀족의 아들이요 순 전한 서울태생이라 어딘지 몰으게 친한 사이로 아버지들 끼 리는 절교를 하고 지내는것과는 딴판으로 의취가 서로맞었 다. 손발이 여자와같이 조그만박귀양은 응달에서 핀 옥잡화 같이 흰 얼굴을처들고 '나두 이봄엔 꼭 가구야 말텔세'하며 동경이야기며 그 곳화단의 형편을 무렀다. 저보다 먼저가서 공부를 하는것보다도 첨단적생활을 하는 것이 여간 부럽지 가 않은눈치다.

이야기를 하는동안에 맞나자는 약속도 없는데하나 둘씩 친 구들이 모여들었다.

"요-언제 왔나?"

"아, 이거 윤군 아닌가?"

"예서 맞나긴 뜻밖일세 난엽서한장 못했네만 그래재미 좋 았나?"

하고 달려들어 봉환의 손을 쩔레쩔레 흔들었다. 그중에는 연전 미술전람회때에 함께입선이 되어 축하회에서 싸움을 하든 '꼴덴'바지도 왔고 게란 한 개에다가 모필로 글자를 일 천 오백자나 석해알보다도 더작게 쓰는 재주를 가저서 고리 삭다고 곤달걀이라는 별명을듣는 친구도 의외로 맞나게 되 었다.

여러친구들은 봉환을 둘러싸고 차를마시며 담배를 피우며 동경이야기로 꽃이피였다. 봉환은 그동안에 제고장말은 잊 어바리기나 한 듯이 조선말은 간신히 양념같이 쓴다. 곤달 걀은

"허- 저사람두 어지간이 변했군"

하면서

"장발군이 요전번 왔을 때 들었는데 자네는 동경가서 공부 하는 재미뿐이 아니데그려"

하고 돗수깊은 안경속으로 눈우슴을 치며-뭇는다.

"넘우 재미가 좋아서 얼굴이 다못됐네그려. 윤군은 원체 미 남자니까....."

하고 봉환이보다도 색골로 생긴 박귀양이가 곤달걀의 말을 거들었다.

봉환은 그 말을 듣고

"아 참-"

하고 무엇을 잊어버린것처럼 급히 일어서 전화실로 들어가 더니 어느 일본여관의 전화번호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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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환이가 전화를 걸러 간동안에 박귀양은 저도 봉환의 비 밀을 안다는듯이

"장발이가 나헌테두 몇번놀러 왔었는데 윤군이 '모텔'중에 제일 육체미가 있는 여자허구 죽자사자 허는사이가 됐다네 그려. 그런데 이번에 데리구 왔기가 쉬울걸"

하고 자못 부러운 듯이 여러친구의 귀에다 속삭였다.

"거 참 '스피-드'시대로군"

하고 곤달걀도 매우 감심한다.

"실 한오래기두 감찌않은 라체미인을 제눈앞에다 세워놓구 보다가 수십명 수백명중에서 하나를 골른게니까 아마 동경 서두 대표적 육체미인일걸 아마튼 윤군은 행복자야 일본 계 집애들두 귀족의 아들이라면 무조건허구 녹거든 녹아"

하고 '꼴덴'바지 역시 입에 침이 말러서 육체미인을 찬미하 는데 봉환이가 전화실에서 나왔다. 봉환은 얼굴이 더핼쑥해 가지고 뒤통수를 긁으며

"난 먼저 가봐야겠는데-"

하고 친구들의 양해를 구허니까

"여보게 오늘은 자네를 주빈으로 모실텔세 가는데가 어딘 가? 두말말구 앉께앉어"

하고 끄러다 앉치니까

"었다가 엿을 붓쳐놓구 온게지. 압다 이사람이 데리구 온 여자가 그동안에 어디루 달어 나겠나?"

하고 곤달걀이 어림만치고 넘겨지펐다 봉환은 금새 얼굴빛 이 변해서

"그게 무슨 소린가? 데리구 온 여자라니?"

하고 짐짓 놀라 보인다.

그러나 별명이 곤달걀이니만치 사람이 고리삭은 대신에 그 런등사에는 체험도 많었다 눈치가 빠른 안경잡이는

"압다 이사람아, 우리가 몰으는줄 아나? 아마 지금 어느 일 본여관에다 전화를 걸었지"

하고 봉환의 얼굴을 노려보니까

"여보게 좋은수가 있네. 자네가 가지를 말구 자네의 '고이 비도'를 이리루 모셔오게. 그래야우리같은 서울뚜기두 동경 미인을 배알허는 영광에 목욕을 해보지 않겠나?"

하고 귀양이가 한술을 더뜬다.

그제야 봉환은 계집애처럼 얼굴이 밝애저 가지고

"그건 어떻게들 알았어"

하고 다시 한번 뒤통수를 긁는다. 저의 짐작이 쩍말없이 들어마진 것이 몹시 유쾌해서 곤달걀과 박귀양은 야구응원 이나 하듯이 궁둥이를 처들며

"히야 히야"

하고 손뼉을 쳤다.

"어서 일어나게 전화를 걸구 '택씨'하나만 보내면 오분안에 뚜루루 올게 아닌가"

하고 귀양은 봉환의 양복소매를 잡어다리며 사뭇 졸라댄다.

"가만 있게, 예비 지식이 있어가지구 미인을 대하야 더감흥 이 생기지 않겠나 자 우리윤군의 '로맨스'를 먼저 듣세"

하고 이번에는 '꼴덴바지'가 제안을 하였다.

"그두 좋아"

하고 여렀은 또다시 찬성의 박수를 하였다. 형세가 이야기 를 아니하고는 견디여 내지를 못할 것을 각오하고 봉환은

"로맨스란 별거있나, 와다 라는 화가의 집으로 그림을 그리 러 다니다가 서루 눈이 맞었다구 헐가? 나두 '사비시이'허게 지내는 판이니까 같이 산보두 댕기구, 구경두 가구, 딴스홀 에서 서루 춤두 추구, 그러다가 그담엔 자네들의 상상에 마 기네 동경이란 젊은사람들이 살기란 참 정말 자유로운 데니 까 그러다 '아파-트'에서 동거를 허다가 집에 볼일이 있어서 나오게 됐는데 첨엔 나혼자 올생각을 했더니 정거장까지 전 송을 나와서는 별안간 저두 조선구경을 허구싶다구 따러서 네 그려. 제돈으루 표까지 사가지구 뛰어 올으는걸 어떡허 나 아 그러나 경성역에서 뜻밖에 혼사이(본처)허구 딱 마주 첬네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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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저런, 그래서 어떡했나. 외나무다리에서 만났네그려 맨 첫번 됐던 '모델'허구 두 번째 '모델'이 충돌을 햇구면 염복 두 오복에 들는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자넨 행복헌 사람일세"

하고 친구들은 번차레로 봉환을 위여댄다.

"아닌게 아니라 신구'모델'이상우례를 헐번했네. 집에다 전 보는 처놨지만 그사람이 정거장까지나올줄은 몰랐거든. 하 나는 그걸 모르구 부득부득 네리자네 그려"

"그래서?"

귀양이가 자꾸만 의자를 들고 닥어앉는다.

"마츰 내 누이가 올라왔기에 먼첨들 들어 가라구 소리를 질렀지 이 핑계 저핑게를 해서 간신히 뒤떨어저 들어왔네만 아주 똥이 끓었었네. 하나는 거머리처럼 잠시잠깐두 떨어저 주지를 않으니 어떡허나 글세 집안에 들어 엎들였지 뭣허러 정거장까지 나왔느냐 말야. 온어찌나 밉살스러운지 그땐 소 리없는 총이있으면 놓구싶데"

하고 생각만 해도 불쾌한 듯이 봉환이가 눈쌀을 찦으리니까

"앗게 여보게, 자네부인이야 현숙허기루 소문이 난부인넨데 옛날생각을 허기루서니 구박을 해서는 못쓰느니"

하고 곤달걀이 낫살이나 먹은사람의 말을한다. 봉환은 담 배를 재떨이에다 부벼끄며

"그 머리를 틀어 올리구 통치마에 구두를 신은 꼴이란 어 찌나 어색헌지 새빨간 댕기를 들여서 곱게 쪽지구 파-란 비 취비녀를 꽂구서 긴치마를 입었을땐 그래두 그럴듯해 보였 어"

하고 몸에 배지않은 여학생 복색을 급히 차리고 나갔던 인 숙의 자태는 눈앞에 그려보기도 싫은 모양이다.

"암 미술가의 눈이란 그렇게 날카로워여지 더구나 그동안 눈이훨신 높아젔네 그려. 그렇지만 우리집 여편네란 물건은 여학생복색을 한번해보기가 평생 소원이라네"

하고 귀양이가 연방 봉환의 비위를 마춘다.

"아 자네 '고이비도'가 본처가 있는줄을 모르나?"

한구퉁이에가 턱을 고이고 앉었던 '꼴덴바지'가 딴청을 부 쳤다.

"그까짓건 말헐 필요가 있어야지. 그렇지만 내가 누이까지 들여쫓는걸 보구 무슨 눈치를 챘는지 '이모-도상'을 웨 먼점 들여보냈느냐구 자꾸만 물어서 꾸며대느라구 땀을 흘렸네"

"그럼 오든날밤에두 자네부인의 그리든 회포를 풀어주지 못했네 그려?"

"처음 온걸 더군다나 여관에서 혼자 자게 헐수가 있어야지"

그말을 듣자 곤달걀은

"그게 될말인가. 열계집 버리는법은 없지만 본마누라를 괄 시허는건 반댈세. 일부함원이면 오월비상이거든. 오입을 허 다가 들어가두 본처의 그늘이 안식처(安息處)니 번연이 딴짓 을 허구 들어온줄 알면서두 된장찌개나마 구수허게 끓여 주 려구. 애를 쓰거든 허지만 자넨 워낙 편성이 돼놔서......"

하고 코밑에 까무스름한 수엽을 꼬아올린다.

귀양은 무엇을 공상하느라고 두눈만 깜박깜박 하고 앉었다가

"아 잔소리를 그만허구 우리 일치단결해서 '동경의 여왕'을 모서오두룩허세. 여보게 윤군 어서 여관에 전화를걸게 어서 어서"

하고 성화같이 재촉을 한다.

"참 얘기바람에 도끼 자루가 썩을번했네 그려. 자 나같은 사람은 위험성이 없으니 안심허구 모서오게"

하고 곤달걀도 슬그머니 부축인다. 봉환은 친구들에게 제 미인을 보여주고 자랑하고 싶은생각도 없지않어서

"그럼 내가 장가를든 사람이란 것은 눈치두 보이지 말어야 허네"

하고 뒤를 다지고 일어섰다. 귀양은 봉환의 뒤를쫓어 일어 서며

"가만 있게, 내'택시'를 불러주께 자네가 타구갔다 오게"

하고 앞을서서 단골로 부르는 자동차부에 전화를 걸었다.

十一[편집]

봉환이가 못이기는체하고 택씨-를 타고 간뒤에 남어앉은 청년화가들은 저이가 사랑하는 애인이나 기다리듯 마음을 조리며 봉환의 두 번째 '모델'을 기다렸다. 그중에도 귀양은 변소로 가서 거울앞에서 얼굴에 손수건질을 하고 머리에 빗 질을해서 여자처럼 똑바로 가리마를 타고는 넥타이까지 고 처매고 나왔다. 그러고는 일본여자의 예찬(禮讚)이 버러졌다.

"어느모로 보든지 조선여자 버덤은 낫단말야 위선 그 '후리 소데'의 우미헌거라든지, 된기마다 변허는 옷감의 색채라든 지 됐거든 됐어"

"겉모양은 그만 두구래두 남편 비위마치는데는 고만이지.

참정말 입에 혀같거든 살어주는 날까지는 절대복종이니까. ' 바이올린'허는 김군이 더리구 온 여자허구두 술을 다가치 먹 어봤ㄴ만 사내헌테 '써-비쓰'잘허기룬 일본여자가 세계제일 일거야 좀 나근나근허구 싹싹헌가 참감칠맛이 있지"

귀양이와 '꼴덴바지'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찬미를 허니까 곤달걀도지지 않으려는 듯이

"그뿐인가 일본여자는 허다못해 인바이(매춘부)까지두 날마 닥 목욕을 해서 부승 부승 허단말하는데 '꼴덴바지'가 손을 들어 말을 가루막으며

"여보 우리 여편넨 일년에 한번은커녕 십년을 가치살었는 데 단 한번두 목욕허는걸 못봤소"

해서 여러사람을 웃켰다. 봉환이가 간지 반시간만에야 자 동차가 돌아왔다. 여러친구가 기대허든것과는 의외로 봉환 이만 혼자 타고 왔다.

"우리 다른데루 가세. 여기는 재미가 좀 적어서"

하고 친구들을 자동차에다 태우고 본정으로 가서 '명치제과 '로 들어갔다. 봉환은 조선사람이많이 모여드는곳에 색다른 여자를 데리고 들어오기가 싫였던 것이다.

'명치제과'우층 구석자리에는 과연 오늘의 여주인공이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봉환은 여러친구에게 차레차레로 인 사를 시켰다.

귀양은 정말 여왕앞이나 되는 듯이 구십도이상이나 허리를 굽히여 은근히 인사를 하였다. 봉환은 귀양을 화가요 박남 작의 아들이라고 특별히 소개를 하였다.

'사요꼬'라고 부르는 여자는 여러사람이 상상하든거와는 딴 판으로 양장을 하지않고 문의가 혼란한 일본옷을입고 왔다.

단발을 한 목덜미에 살결이 분을따고 넌 듯이 힌데 바짝 조 려맨 '오비'우로 부프러 오른듯한 젖가슴이며 잔허리로부터 다비를 신은 발뒤굼치까지 흘러나린 곡선이 그런데는 매우 민감한 귀양의 눈을 뇌살시킬만치나 육감적이다. 간단히 화 장을 한얼굴은 그다지 두드러지게 특징은 없으나 말을할때 마다 표정이 변한다. 조금 크고 새까만 두눈동자는 야광주 처럼 요염한 빛을 발하고 일년감같이 빨간입술을 새여나오 는 순전한 동경말에는 애교가 똑똑떤다. '사요꼬'는 '슈-크림 '을 들며 (조선에도 저렇게 해끔허게 생긴남자가 있나) 하는 듯이 귀양과 주고 받는 말이 많었다. 곤달걀과 '꼴덴 바지'는 안중에 없는 듯이 이과(二科會)가 어떠니 제전(帝展) 에 출품된 작품이 어땟느니 하고 될 수있는대로 미술에관한 고상한 이야기를 끄집어 내였다. 그러자 전깃불이 들어오니까

"우리 저녁 먹으러 가세. 조선음식을 대접허구 싶은데 어디 가 좋을가?"

하고 귀양이가 모자를 집으니까 사요꼬는 반색을 하며

"아라 우레시이와 아다시죠센노 오꼬지소- 다베데미다갓다 노"

(아이좋아라 조선음식을 먹어보구 싶었어요) 하고 허리를 납신하며 미리부터 귀양에게 치사를 한다.

다섯사람은 국일관에서 저녁을먹었다. 곤달걀은

"우리야 시종무관두 아니구 온멋적어서"

하고는 저아는 기생을 불러서 조선의명물인 '기-생'을 사요 꼬에게 보여주었다. 사요꼬는 모든 것을 호기심에 빛나는눈 으로 보았다. 귀양이가 작난으로 권하는 새빨간 깍두기를 입에다 넣었다가 얼굴이 깍두기 빛이되여 눈불을흘리며

"마루데 바꾸단다와"(사뭇 폭발탄 같군요) 하고 배앝었다. 여러사람은 허리를 잡으며 웃었다.

귀양은 술이 얼근히 취해가지고 자정때까지나 사요꼬를 붙 잡고 봉환의 눈치를 보아가며 춤까지 추었다. 봉환은 기생 을 껴안고 '딴스'를 하는체허다가 그만두었다.

어쩐일인지 술은 입에대지를 않었다.

十二[편집]

봉환은 집에 보고 싶은 사람이 있어서 돌아온 것이 아니라 저혼자 몰래 나와서 돈변통도 할겸 병도 고치려고 사요꼬에 게는 친환이 있어 잠간 다녀오겠다는 핑게를 하고 떠나 다 가 발목을 잡혀나온 것이다.

둘이 아파-트에서 동거를 하는동안 집에서는 청구하는대로 돈을 부처주지 않어서 저의 체면을 유지하지 못하리만치 군 색하게 지냈다.

"집에야 돈이 있지만 아버지가 완고해서 학비이외에는 보 내주지를 않으니 즉접 나가서 변통을 허면 한일년 놀고도 생활헐 돈쯤이야 변통할수 있다"

고 거짓말을 하고 사요꼬가 '모텔'노릇을 해서 모은 돈까지 수백원이나 집어 썼다.

사요꼬는 봉환이가 조선귀족의 아들이라 그만 돈이야 저금 한거버덤 튼튼하리라 하고 두말없이 생활비를 대여왔다. 그 것을 봉환은 무작정 하고 더끔더끔 집어써서 지금와서는 서 로 연애를 하고 동거하는 여자라느니보다 사요꼬의 체무자 가되고 말었다.

"집에만 가면 어머니를 졸라서래두......"

하고 믿었으나 전등 전화를 끊고 지낼 정도로 집안형편이 말슴아닐줄은 참말 뜻밖이였다. 오든 이튼날은 아버지 어머 니에게

"이지경으로 가다가는 밥을굶게 될는지두 몰으니 너도 정 신을 버쩍 차리고 그림공부니 뭐니 다 집어치우고 이왕 돌 아온김에 어디 취직이나 헐 생각을 해라"

하고 한나절이나 연설말슴을 들었다. 그러고보니 아무것도 몰으로 놀러만 다니자는 사요꼬의 처치도 곤난하거니와 일 본려관중에도 상등려관에가 무턱대고 들어노았으니 하로에 도 십여원씩이나 나는 비용을 감당해낼 도리가 없는데 사요 꼬의 주머니도 인제는 빈털털이다.

봉환은 짜증밖에 나는 것이 없었다. 그래도 돈구처를 하려 면 큰형에게 밖에 말을 해볼데가 없는데 용환은 신문사도 내놓고 어디로 종적을 감추어 콧백이도 어더볼수가 없었다.

그러나 돈 때문에 당하는 정신상 고통보다도 봉환에게는 남 몰래 받는 육체상 고통이 더컸다. 그것은 사요꼬와 관계를 한 이래 악성의 임질이 전염되어서 여간 심한 고통을 받지 않았다.

사요꼬는 여러번 그런병을 알어서 인제는 아주 만성이 되 었기때문에 이따금 도지기만 하면 병원에를 다니면서

"이병을 알어보지 못허면 남자의 자격이 없다"

고 아퍼서 쩔쩔 매는 봉환을 돌이어 놀리기 까지하며 탄평 으로 지낸다. 그러나 처음으로 그런 고질에걸린 봉환은 자 살이라도 해버리고 싶도록 저혼자 여간 고통을 받는 것이 아니다. 주사를 맞고 약을먹고 별별 짓을 다해도 특효약이 없는 그 병은 완치가될 가망이 없다.

"아아 이못된 병을 평생두구 앓는단 말이냐"

하고 하로도 몇번씩 한탄을 하였다. 몸똥이를 불에다 태워 버리기 전에는 없어 질것같지 않은눈에도 보이지않는 수억 만개의 병균이, 전신의 세포속으로 파고들어서 혈구를 물어 뜯고 거미줄같은 혈관을 통해서 그독을 퍼트리는듯 그런생 각만 해도 몸서리가 저절로 처젔다. 날마다 밤마다 극도의 불안과 우울과 공포에 싸여 지내면서도 그럴수록 거의 하로 저녁도 사요꼬를 가까히 하지 않을수가 없었다. 참을수없이 육감적인 사요꼬의 유혹을 이길수도 없거니와 여자에게 불 만을 주어서 다른남자에게 빼앗길가 보아 겁도 났든 것이다.

"나를 원망치 마서요. 그대신 난 당신헌테 무어든지 다 마 처오지 않어요"

하고 잠시도 떨어지지 않는 여자를 진데기처럼 떼여버릴 용기는 나지 않었다. 그러다가 (뜨듯헌 온돌방에서 한약이나 먹으면 차도가 있을가) 하고 병을 조리하러 나온다는 것이 앞뒤가 절벽인 산골속 에가 빠지게 된것이였다.

어느날밤 봉환은 별별궁리를 다 하든 끝에 남의 여편네를 보듯이 집안사람의 눈을기어 인숙의 방에를 들어갔다.

十三[편집]

봉환은 그동안 하루 한번쯤 집에는 손님처럼 다녀나가서 인숙에게는 말한마듸 걸어볼 기회조차주지않었다.

밤이면 밤마다 눈물로 벼개를 삼으면서도 딴계집을 데리고 와서 저를 못본체하는 남편을 미워할줄은 몰랐다. 무한히 섬섬하고 야속한 것이야 숨길 수 없는 감정이었만 어쩐지 남편이 미워지지는 않었다. 가래톳인지 무엇인지는 몰으지 만 몸에 병이 있는사람이 더구나 돈도 여간 군색허지가 않 을텐데 려관잠을 자고 얼굴이 노래서 다니는 것이 보기에 딱하고 가엾었다.

"아무튼 자네는 딴 오장을 가진 사람일세. 나같으면 서방님 을 방속에다 몰아놓구 한바탕 몸부림이라두 치겠네"

하고 큰동서가, 선동을 하듯하면

"그러면 뭐 시원허겠어요? 제가 뭐랬다가 덧들리면 하루한 번 얼굴 구경두 못허게요"

하고 쓸쓸히 웃었다.

"남편이 딴계집을 보드래두 아예 시기를 허지마라. 참고 기 다리면 돌아오는 날이있느니라"

하고 간곡히 타일르시든 돌아가신 어머니의 유언과같은 말 슴을 시시때때로 생각하고 또는 젊어서는 외입을 허섰어도 돌아가시는 날까지 어머니와 서로 의지하고 해로를 하시든 아버지 생각을 하고는 제마음을 눌렀다.

"난봉을 부리려면 일즉암치 부려서 싫건 속아봐야 본마누 라가 고마운줄을 아는법이야"

하는 경험있는 사람들의 말을 귀담어 들은적도 있어서 (참을수 있는대로 참어 보자, 눈딱감고 나헐 도리나 허면 마음을 돌리는 날이 있겠지) 하고 저의생각이 틀리지 않을 것을 막연하게 나마 믿기 때 문에 집안식구에게 눈물을 보이지 않고 지낼수가 있었다.

???뜻밖에 남편이 들어온 것을 보자, 제자리하나만 동그마 니 펴놓고 앉어서 봉희가 보든 잡지를 뒤지고 앉었든 인숙 은 깜짝 놀라 일어났다.

"왼일이서요"

하는 말이 부지중에 나왔다.

(남편이 안해의 방엘 들어오는데 어째서 놀랄가?) 하고 인숙은 금방 '왼일이서요?'말을 뉘우쳤다.

봉환은 앉이려고도 아니하고 방안의 세간만 휘휘 둘러보더 니 한참이나 머뭇거리다가 도적놈처럼

"??????돈 있수?"

하고 불쑥한 마디를한다. 그순간에 인숙은 남편이 장가를 들든 이듬해엔가 공을차다가 수채구녕에 빠저 바지에 구정 물을 주루루 흘리고 들어와서 '나 옷주'하고 맨처음 말을 건 느든때 생각이 뭇득났다. '나 옷주'와 '저 돈 있수'가 말의의 미는 딴판이면서도 그 국축된 어조는 비슷하였던 것이다.

인숙은 '없어요'하는 말이 차마 나오지 않았다. 남편은 동경 으로 떠날 때처럼 돈 변통을 하는 재주가 저에게 그저 있을 줄 믿는 눈치나 복순에게 잡혀 쓰라고 돌려준 금불이도 그 저 찾지 못하고 있는 줄은 그 누가 알아 주랴.

"지금은 없지만...... 얼마나 소용이 되세요?"

인숙은 무작정하고 금액을 물어 보았다.

"우선 한 백원만."

봉환은 백원이 몇 원 밖에 안되는 적은 것처럼 쉽게 불렀 다. 인숙은 하도 엄청나서 (아이구 백원?) 하고 입이 딱 벌어졌다. 그러나 좌우간 대답은 안할 수가 없어 무엇을 잘못하고 사과하듯이

"내게 웬 돈이 그렇게 있겠어요?"

하고 머리를 숙였다. 봉환은 툭명스럽게

"그만 두" 하고 돌아서 나가려 한다.

"나 좀 보세요"

하고 인숙은 봉환의 앞을 막아섰다.

十四[편집]

봉환은 문고리를 잡은채 인숙을 돌아다본다.

"돈은 내 힘껏 돌려볼테니 며칠만 기다려 주세요"

하고 우선 안심을 시킨 뒤에 인숙은

"얘기 할 일이 좀 있는데 잠간만 앉었다 나가세요"

하고 남편의 양복 소매를 잡았다.

"얘긴 무슨 얘기요?"

하고 봉환은 마지못해 주저앉는다. 그것도 돈을 변통해 주 마는 바람에 잠시 하라는대로 해보는 것이다.

인숙은 남편의 앞에가 마주앉으며

"어째 그 동안 하구 싶은 얘기가 없겠어요? 그렇지만 속에 쌓인 얘기는 꺼내지도 않을테야요"

하고 아랫입술을 꼭 깨물고 흥분을 새긴 뒤에

"저 특청 하나 할게 들어 주시겠어요?"

한다.

"무슨 말인지 어서 하우. 내게 특청을 할게 뭐란 말요?"

봉환의 말씨는 여전히 부드럽지가 못하다. 인숙은 조금 다 가앉으며

"다른 때와도 달라 신병이 계시다면서 일본 여관에서 조섭 이 되시겠어요? 신색이 아주 말씀이 아니신데...... 큰 사랑 작은 사랑이 텅 비었는데 집에 와서 조섭을 하두룩 하세요 네?"

하고 간청을 한다.

봉환은 손톱여물만 썰며 잠자코 앉았다. 속으로는 (나혼자 어떻게 와 있으란 말야. 남의 속도 모르고...) 하면서도 (같이 온 여자는 어떻거란 말요?) 하는 말은 차마 입 밖을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그 눈치를 채지 못할 인숙이가 아니다.

"보시다시피 집안 형편이 이 지경인데 첫째 여관 비용은 뭘루 대신 예산이세요?"

하더니 잠간 무엇을 생각해 본 뒤에

"내가 있어서 거북하실테니까 신병이 나으실 때까지 우선 혼자만 와 계셨으면 좋겠는데요, 그러면 아버님 어머님께서 두 좀 좋아하시구 맘을 노시겠어요? 그래두 조선 사람한 텐......탕약이 맞나보던데 아무튼 보약이라두 몇 제 잡수셔야 겠어요. 저렇게 혈색이 하나두 없으셔서."

인숙의 말은 애원하는 조로 변하였다. 봉환은 머리를 떨어 뜨리고 앉아서 여전히 말대답을 못한다. 실상 봉환은 제 댁 의 간곡한 소청이 아니라도 사요꼬와는 얼마 동안 떨어져 있고 싶었다. 그 병에는 자극성이 있는 음식보다도 여자를 가까이 하는 것이 대기인데 지금처럼 찬 다다미방에서 고다 쓰(이불 속에 넣고 자는 화로) 대신으로 사요꼬와 한 이불 속에 들게 되면 도저히 병 생각만을 할 수가 없게 된다. 그래서 사요 꼬에게 피동적으로 충동을 받는 기회나 회피해 보았으면 하 였다. 뜨뜻한 온돌 방에서 사지를 뻗고 누워서 한 열흘 동 안만 마음 놓고 약을 먹으면 당장의 고통을 받는 것보다는 훨씬 차도가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나와 사요꼬의 사이를 떼어 노려고 집에 와 있으라는 게 지. 말은 안해도 빤히 다 알구 있으면서......) 하고 정성껏 권하는 인숙의 진정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모양이다.

"좌우간에 대답을 해주세요. 내일버텀이라두 사랑을 말끔 치어 놀께요"

하고 인숙은 대답을 재촉하고 나서

"이왕 여기까지 따러온 사람이야 어디루 달어날라구요"

하고 한 마디 부연을 달고는 안나오는 웃음을 억지로 입모 습에 담아 보였다. 봉환은 마지 못해 고개를 쳐들며

"이러구 저러구 먼첨 돈 변통이 돼야지"

하고 일어선다. 인숙은 그 이상 말을 삼가고 손님을 작별 하듯이 어기적거리고 나가는 남편을 우중충한 중문 밖까지 따라나갔다. 별빛이 새파란 이른 봄의 밤 하늘에서 쏟아지 는 듯 바람은 쌀쌀하였다.

十五[편집]

그날 밤 인숙은 자리가 더 쓸쓸한 것 같았다. 간신히 잠이 들어 외로운 꿈을 맺다가는 누가 바늘로 찌르기나 하는 것 처럼 깜짝 놀라 눈을 떴다.

(백원탐이나 어떻게 구처를 하나) 하고 돈 때문에 걱정이 되어서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입술이 타도록 조바심을 하였다.

(이번 소청은 어떻게든지 들어 주어야 할텐데) 하고 별별 생각을 다 하던 끝에 값나가는 물건은 없지만, 제가 가지고 있는 것은 모조리 잡히기로 결심을 하였다. 지 금 인숙에게 귀중품이라고는 혼인 때 어머니가

"옛날 물건이 돼서 모양은 없다만 이담에 고쳐서 두구두구 무슨 때에나 끼어라"

하고 함 속에다 깊숙히 넣고 잠거까지 주신 여덟 돈중이나 되는 순금 가락지 뿐이었다. 그 가락지는 외할머니가 물려 주신 것이라 삼대째나 기념품으로 내려오는 것으로 (이것만은 아무리 급한 일이 있든지 내 손에서 내지를 않 으리라) 하고 남편이 동경으로 떠날 때에나 어머니 상사를 당했을 때도 없는 셈만 치고 꺼내지를 않았던 것이다. 그뿐만 아니 라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이 나면 밤 중에 일어나서 봉회도 몰래 어머니의 손때가 묻은 금가락지를 꺼내서 어루만지고 끼어보고 하면서 몇 번이나 눈물을 짓던 물건이다. 그 다만 하나 밖에 없는 소중한 물건을 내놓을 수 밖에 없는 생각을 하니 인숙은 무한히 섭섭한 생각을 금할 수 없었다. 더구나 그 인자하시던 어머니의 마지막 유언이나 거슬리는 것 같아 서 여간 죄송하지가 않았다. 그러나 얼마 전만 같아도 수 십년이나 이 집에 드나드는 방물장사를 다리를 놓아서 월수 돈도 얻어 쓸 수 있었건만 이제 와서는 빚 얻을 데를 진권 해 줄 사람도 없어 잘잘못간에 남편의 발등에 떨어진 불똥 을 꺼주려면 그 금가락지를 잡히는 도리 밖에 없었다. 금값 이 올랐다니까 막 팔아버리면 적어도 오륙십원은 받을 것 같으나 그것은 할 수가 없었다.

이튿날 저녁에 인숙은 어둡기를 기다려 장발에게 이불을 이어 보내던 행랑어멈을 시켜서 시집에서 해준대로 차곡차 곡 개켜 둔채 한 번도 입어 보지 않은 옛날 비단 옷에 모본 단 채단이며 예물로 받았던 피륙까지 말끔 몰아다가 가락지 와 함께 잡혀 왔다. 행랑어멈이 다녀와서

"좀 더 내라구 쌈싸우듯 해둡쇼 육십원 밖엔 더 못주겠다 니 어떻겁니까"

하고 식구들 몰래 하는 중난한 심부름이라 얼굴에 땀까지 흘렸다.

"시세가 그 밖에 안되는걸 억지루 어떻게하나"

하면서도 인숙은 이왕이면 남편이 청구한 액수대로 백원을 채워주고 싶었다. 작은 동서에게는 사천이 있는 줄을 아나 말을 붙이기도 싫고 사정을 한댔자 들어 줄리도 없다. 봉희 를 새중간에 넣고 말을 해볼까 (작은 아씨 저금한 것까지 죄다 써버렸는데.....) 하고 심부름을 시킬 염의조차 없었다.

(그래두 한 번 말이나 비쳐 볼까) 하고 인숙은 이튿날 아침 봉희와 상을 겸해서 밥을 먹으면 서 사정을 해 보았다.

봉희는 올케의 말을 듣자

"새 언닌 참 딴 오장을 가졌구려 나 같으면 돈이 누렁머리 를 앓어두 안주겠우. 없는 사람한테 적선을 하면 고맙단 말 이나 듣지 그래 새 언닌 그렇게 모른체를 하면서 무슨 얼굴 로 뻔뻔스럽게 돈을 얻어 달란단 말요"

하고 얼굴에 핏대를 올려가며 오라비를 꾸짖는다. 인숙은 멀쑥해서

"누군 좋아서 돈말을 하는줄 알우? 몸에 병만 없으면 나두 모르는체하겠우만......"

하고 일어섰다. 그러나 그날 저녁 봉환은 저 혼자 약속한 대로 빚쟁이와 같이 인숙의 앞에 나타났다.

十六[편집]

어떻게 변통을 하였느냐는 말도, 번번이 미안하다는 말도 없이, 봉환은 제가 맡겨 두기나 했던 것처럼 그돈 육십원을 받아 양복 바지 꽁무니에다가 찌르고 나갔다. 도리어 인숙 이가 백원을 채우려다 못해서 미안하지만 급한대로 씨달라 는 것과 다만 한 마디

"내일 저녁버텀이라도 집으로 들어오실테지요?"

하고 뒤를 다지듯 물어보았을 뿐이다. 봉환도

"글세 의론해 봐서......"

하고 겨우 한 마디를 남기고 나가 버렸다. 그러나 인숙은 아내로서의 무거운 의무를 다한 듯이 또는 큰 빚이나 같은 듯이 마음이 거뜬한 것을 느꼈다.

이튿날 인숙은 이른 아침부터 작은 사랑을 말끔히 치어 놓 도록 상노에게 당부를 하고 불을 지피게 한 뒤에 아직도 외 풍이 세어서 병풍을 내다 두르고 손수 나가서 머리맡에는 방장까지 쳤다. 집안 식구들이 무어라고 하든, 그런 것은 거 리낄 것이 없다는 듯이 이부자리를 끌고 나가서 보료 위에 다가 폭신폭신하게 깔아았다. 겉에서 보기에 인숙은 몇 해 외국으로 여행을 던 남편을 맞이하는 정성스러운 아내와 같 았고 사실 숙이 자신도 그러한 기분으로 방을 치우고 남편 이 아오기를 기다렸다.

봉환은 인숙의 성의에 감복하였다느니보다 제 몸하도 괴롭 고 현상태로만 지나가다가는 생명이 위험 지경이니까 사요 꼬에게 양해를 구했다.

"암만해두 조선 약을 먹어야겠는데 탕약을 먹고는 운 방에 서 취한을 해야 하다고 아버지 어머니가 간 걱정을 하시지 않어서 당분간 집에 가서 조리해보겠다"

고 빌다시피하였다. 그러니까 사요꼬는

"그럼 집이 넓을텐데 나 조선 집에 들어가서 지내고 싶어 요"

하고 내달았다. 봉환은 하는 수 없이 (아직 조선 가정은 퍽 완고해서 정식으로 결혼올기 전에는 동거생활을 허락하지 않을 뿐 아니라 식도 '폭발탄'처럼 맵 거나 짜서 되려 여간한 고통 아닐 것이라) 하고 여러 가지로 핑계를 하였다.

사요꼬는 봉환의 속을 뚫고 들여다보려는 듯이 한참이나 빤히 쳐다보더니

"모오 아다시가 이야니 났다노? 도오데모 이이와"

(고만 내가 싫어졌어요, 아무래도 좋아요) 하고 눈을 흘기고 토라져서 봉환은 하는 수 없이 이를 밤 이나 사정 사정을 하고 일주일 작정을 한 뒤에 집으로 들어 왔다.

집에 돌아와서도 봉환은, 인숙은 가까이 오지를 못하게 하 였다. 무슨 약인지 모르는 약을 한 제나 지어 가지고 들어 와서 달여 달라고 들여보낸 뒤에 약 시중은 상노아이를 시 켜서 밤에도 인숙에게는 작은 사랑에 나올 기회를 주지 않 았다. 인숙도 (집에 와 누운 남편이 인제야 어디로 가랴)하 고 안심이 되어서 병원에 음식을 나르듯이 맵고 짜지 않은 반찬을 만들어 하루 세 끼를 내보냈다.

그러나 하루는 저녁을 한 술 뜨는체만 하다가 들여보내서 (몸이 더 불편한가?)하고 몹시 궁금한 김에 인숙은 약을 달 여 들고 신발 소리도 내지 않고 작은 사랑채를 나갔다. 분 합마루로 사뿟이 올라서 방 안의 동정을 살펴본 뒤에 아무 도 없는 줄을 알고 살그머니 미닫이를 열었다. 봉환은 병풍 을 향하고 누워서 훌쩍훌쩍 울고 있었다. 인숙은 도로 나가 려다가

"약 잡수세요. 그런데 왜 저녁은 안잡수셨어오?"

하고 들릴락 말락하게 물었다.

"뭣 하러 나왔우? 들어가우"

하고 봉환은 짜증을 더럭 내며 돌아누운채 뒷손질을 한다.

인숙은 남편이 무슨 생각을 하고 혼자 누워서 우는지 알 수 없지만 심화를 돋아 주지 않으려고

"약 여기 있어요"

하고는 백지로 덮어 쟁반에 받쳤던 약 보시기를 문갑 위에 다 가만히 놓고 나가려 하는데 마당에서

"윤군 있나?"

하는 남자의 목소리와 함께

"고꼬까라 하이룬데쓰까?"

(이리로 들어가요?) 하는 일본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十七[편집]

상노아이에게 물어보아서 봉환이가 작은 사랑에 누운줄 안 귀양은, 들어오라는 말도 듣기 전에 사요꼬를 데리고 분합 마루로 우적우적 들어온다. 귀양은 봉환이가 여관에 없는 사이에 찾아갔다가 심심해 죽겠다는 사요꼬와 단 둘이 마주 앉아서 온종일 '트럼프'를 하고 저녁까지 같이 먹은 뒤에

"밤에는 보는 사람이 없을테니 봉환에게로 놀러 갑시다. 온 입때까지 한 번 가보지를 못했다니 말이 되나요"

하고 그렇지 않아도 자꾸만 가보고 싶다고 조르는 사요꼬 를 충동여 가지고 왔던 것이다.

인숙이보다도 먼저 귀양과 사요꼬의 목소리를 알아들은 봉 환은 딴 정신이 번쩍 나는 듯 홱 돌아누우며 황급히 방 안 을 휘휘 둘러보더니

"여보, 저리루 들어가우. 어서 어서"

하고 발치의 반침을 가리킨다. 인숙은 금새 상기가 되어서 가도 오도 못하고 쩔쩔매는데 바로 장지 밖에서

"윤군, 벌써 자나? 들어가두 괜찮은가?"

하는 귀양의 목소리가 창호지 한 겹을 격한 지척에서 들린 다. 봉환은 말도 못하고 얼굴이 샛노래가지고 허둥대며 어 서 반침 속으로 들어가라고 인숙에게 연거푸 눈짓을 한다.

그 순간이었다. 인숙도 저 자신도 예상치 못하던 용기가 솟았다.

(내가 왜 숨어? 무슨 나쁜 짓을 했니. 정당한 내 남편의 약 을 가지고 나왔는데 누가 무서워서 창피스럽게 반침 속으로 들어갈 필요가 어디 있어) 하고 남편의 비굴한 태도에 분개하는 동시에 일종의 항심 이 끓어 올랐다. 봉환은 눈고리가 샐쭉해 가지 제 말에 얼 른 복종치 않는 인숙을 독이 오른 수리처 노려본다. 인숙은 남편의 눈치를 힐낏 보자

"내가 나가면 고만이죠!"

하고 정면의 장지를 열고 웃간에 섰는 귀양과 그 등에 섰 는 양장을 한 사요꼬에게 '들어오세요'하는 이 조금 머리를 숙여 보이고 나갔다. 사요꼬는 남치를 길게 늘이고 분합마 루로 태연히 걸어 나가는 히 걸어나가는 인숙의 뒷모양을 한참이나 유심히 바라보더 니 방으로 들어오자 대뜸

"아노히도 다-레? 기레이나 히도네"

(저여자가 누구야요 퍽 예쁜데요) 하고 감심한 듯이 묻는다. 몸을 반쯤 일으키고 안석에가 기대앉었는 봉환은 뜻밖에 인숙의 안차고 깐깐한 태도에 성 미도 났거니와 사요꼬와 정면으로 마주친 것이 형용할수없 이 불쾌해서 쌈닭을 떼어논것처럼 할딱거리며 대답을 못한 다. 전후 눈치를 약빨리챈 귀양이가

"이거 온 실례가 많으이그려"

하고 앉으려니까

"자네가 뭐라구든지 꾸며대게. 난 말두허기 싫으이"

하고 봉환은 사요꼬 몰래 눈짓을 해보였다. 사요꼬는 앉으 려고도 아니하며

"왜 내가 묻는 말은 대답을 않허구 조선말로 들만해요?"

하고 쇠면서 바짝토라젔다. 봉환은 그말은 짐짓 못들은체 하고 일본말로

"손님처럼 굴지말구 어서 앉기나 해"

하고 간신히 한마디를 하였다. 귀양은 깜안 눈동자를 깜박 거리며 여자처럼 생글생글 웃더니

"조선서 이집과같이 왕가와 가까운 궁가에서는 내인이라는 여자를 두구 시중을 들리는 법인데 늙은 사람두 있지만 대 개는 젊은여자들이 약 신부름 같은 것을 허는법이요. 사요 꼬상은 첨 보니까 그렇지 알구보면 뭐 이상할게 없지요"

하고 군색하게 꾸며대었다. 사요꼬는 귀양의 빤들빤들한 얼굴을 말끄럼이 보더니

"조선의 젊은 양반들은 퍽 행복허군요. 그런 미인들이 곁에 뫼시구 있으니깐 결혼헐 필요두 없겠는데요"

하고 한마디를 비꼬아 던젔다.

十八[편집]

사요꼬는 샐쭉해 앉었다가 겻눈으로 방안을 둘러보며 일부 러 조선가정의 례법과 풍속에 관한 것을 귀양에게 물었다.

귀양도 사요꼬가 화제를 돌린 것을 다행이 역이는 눈치를 보이면서 친절을 다해서 말대꾸를 해준다.

봉환이가 왼만치 마음이 너그럽고 능갈친 남자같으면 그런 경우에 임시처변으로 그럴듯하게 휘갑을 치련만, 사요꼬를 다리고 온 귀양이보다도 일부러 정면으로 충돌을한 인숙의 소위가 미워서 그저눈쌀을 펴지못하고 누었다.

"자 고만 가십시다"

하고 사요꼬는 귀양이와 같이 가자고 눈짓을 한다. 어찌보 면 귀양과 사요꼬가 동부인을 해서 봉환이란 친구의 병위문 을 온것같기도 하다. 그것은 더욱 신경과민이 된 봉환의 눈 에 그렇게 보였을 것이다. 봉환은 몸을 일으키며

"여기서 자구 가구려. 온돌방에서두 한번 자보는게 좋지않 어"

하고 권해보지 않을수 없었다. 사요꼬가 같이 있자고 아주 들어 붙을가 보아 적지아닌 걱정이 되면서도, 사요꼬가 귀 양이와 어깨를 겻고 나가는 것은 더군다나 길을 몰으니까 사요꼬가 혼자있는 려관까지 데려다 주고 또 '잠간 앉었다 가라'고 권하는대로 올라가서 마냥 넉장을 부리고 앉었다.

이런생각을하니 아무리 거북한 경우가 있드래도 오늘밤만은 사요꼬를 내놓기가 싫였다. 사요꼬는 일어서며 비웃는 듯이 봉환을 나려다보며

"간호부가 둘씩은 필요가 없겠지요? 그렇지 안아요?"

하고는 당분간 만나지 못할 사람처럼

"부디 잘 조섬이나 허서요"

하고 입에 발린말을 흘리듯 하고 하느적거리고 나간다. 귀 양은 두사람의 눈치를 번갈러보며

"난 집으로 바루 갈텐데 오늘 저녁엔 여기서 쉬시지요. 밤 두 늦었는데......"

하고 외면치례로 자꾸만 사요꼬를 붓잡는체 하였다. 그럴 수룩 사요꼬는

"나 혼자두 넉넉히 찾어 갈테니 걱정 마서요"

하고 양말을 치켜 신고 나가버렸다. 봉환은 귀양이와 같이 가지안는데 안심이 되어, 사요꼬를 더 붓잡지 않고

"그럼 큰길로 나가서 택씨를 불러타구 가라고 일러보냈다.

귀양은 봉환의 대리나 보는 듯이 대문깐까지 따러나가서 사 요꼬와 무어라고 귓속까지 하고 들어왔다.

봉환은 여전히 오만 살이나 찦으리고 누었는데 귀양은

"여보게 당장에 꿈여대느라구 진땀을 흘렸네. 하필 외나무 다리에서 마주 첬으니 거 모양이 됐나? 그런줄 몰으구 들어 온 내 불찰두 있지만, 이사람아 사세가 급허니 저 반침속에 라두 들어가 숨으시라구. 그렇지"

하고 촐랑거린다. 봉환은 눈을 무섭게 뜨고 귀양의 얼굴을 똑바로 처다보며

"자네가 데리구 오구선 무슨 딴 소린가?"

하고 소리를 버럭 질른다. 귀양은 그말에 양심에 찔려서 움찔하였다. 실상 귀양은 사요꼬와 단 둘이서 이런 이야기 저런이야기를 주고 받은 끝에 봉환에게 버젔한 안해가 있다 는 것을 긴한체하고 밀고 하였든 것이다. 사요꼬는 눈이 방 울처럼 뚱그래저서

"아라 마 소?"

(아 정말 그래요?) 하고 얼는 고지를 듣지않는 것을

"그야 지금 이래두 가보면 알걸요. 내게는 조금두 거짓말을 헐필요가 없으니까요"

하고 귀양은 제말이 확실하다는 증거를 즉접 보이기 위해 서 '입때 한번두 안가 보다니 그게 말이되느냐'고 사요꼬를 다리고 왔든 것이다. 공교히 이숙이와 마주치지를 않었드래 도 눈치빠른 사요꼬는 봉환의 신변의 무엇을 보고든지 봉환 에게, 안해가 있는낌새를 채였을 것이다. 귀양은 얼굴이 발 개 가지고

"내가 헐일이 없어서 자네 '고이비도'를 일부러 껄구 댕기 겠나. 그러다간 자네신경쇠약에 걸리겠네"

하고 간사스런 우슴을 웃어보이며 살금살금 꽁문이를 빼었 다. 그러나 큰길로 나온 귀양의 발길은 저의집으로 향하는 것이 아니었다.

十九[편집]

그날밤 인숙은 매우 흥분이 되어서, 오라비가 온뒤에혹시 들어와 잘까하고 다른방에가자는 봉희를 찾었다. 봉희는 벌 서 그러한 이야기의상대도 되려니와 새삼스러히혼자 자기가 쓸쓸하였든 것이다. 그러나 봉희는 방방이찾어보다도 집에 는 없었다.

전에는 졸업만하면 동경으로 가서 음악을 배우느니 고등사 범에를 들어가느니 하든 봉희가 급작이 마음이 변해서 사범 학교 연습과에 들어간다고 시험준비서를 사드리고 하더니 요새 며칠은 어디 야근이나 하는것처럼 저녁이면 집에없었다.

"세철이 헌테를 다니지나 아늘가? 넘우 가까히 다니면 재 미가 적은데......"

하고 속으로 매우 염려들하면서도 인숙은 그야말로 제코가 석자나 빠저서 시누의의 일을 염려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인숙은 전등불을 끄고 홀로 누어서 분한김에 취한 저의 행 동이 경솔하지나 않었나 하고 반성해 보았다. 생각해 볼사 록 저의 태도가 떳떳하다고 스스로 인정 될 때, 아무리 절 대로 복종을해오든터이기로 넘우나 몰염치한 남편의 태도에 다시 한번 분개하지 않을수가 없었다.

"대체 나를 뭘두 아는거야? 안해라는 것 버덤두 사람대접 을 안허는거지, 눈가리고 아웅허는 셈으루 자기 체면만 생 각허구 여자의 인격은 아주 무시허는 거지 뭐야"

하고 혼자서 뇌까렸다. 그러다가 지금은 원산경찰서에 그 저 있는지 그동안 감옥으로 넘어갔는지 소식조차 끝인 복순 을 생각하였다. 복순이가 이야기 끝에 결혼문제만 나면

"결혼이란 남녀간에 달큼헌 애정보다도 서루 인격을 존중 헐줄 알어야만 정말 부부애가 생기는 법이지요. 그렇지만 우리 조선여자를 가만이 보아요. 결혼허는날 버텀 제 자유 와 인격을 박탈 당허구서 남자가 지배허는 가정이란 감옥속 에 가처서 한평생 압제와 굴복의 쇠사슬을 차게 된단말이 요. 더구나 안해라는 사람이 남편보다 지식정도가 야튼데다 가 경제적으로 동전한푼 벌어들일 재주가 없으니까 곡 종노 릇밖에 헐게 없거든요, 그러니깐 자식을 낳어주는 도구는 될지언정 낳어논 자녀의 교육문제라든지 한거름 더나아가서 결혼문제 까지라도 입을 벌릴 권리가 없지 않겠어요?"

하고 나서는

"그러길래 나같은 사람은 얼굴두 못생겨서 탐내는 사내놈 두 없지만 되지두 못헌것들이 남편인체 허구 제여편네라면 윽박질르고 앞제버텀 허려고 덤비는 것이 아니꼽살머리 스 러워서 이대루 혼자 늙을 작정이야요"

하고 긔염을 토하는말을 구절구절이 기억을 자어내가면서 곰곰 생각해 보았다. 처음에 그런말을 들을때에는 원악 복 순이가 풍을잘떨고 감격하기 잘하는 여자라 (제가 행복헌 결혼생활을 못허니까 괘니 남자만 헐뜻구 욕 을 허는게지) 하고 인숙은 복순의 말에 그다지 실감을 느끼지 못했었다.

그러든 것이 요새와서는 차츰차츰 (복순이의 헌말이 참말 이로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남편이란사람이 진심으로 저를 사랑해 준때가 있었든 가? 아무꽃이나 탐하는 봉접과같이 춘기발동기에 저를 희롱 하였을 뿐이었다. 그러면 남편은 안해로서의 저의 인격을 존중해주는가? 번연히 장가든 여자를 곁에두고 행낭계집 애 에게 동정(童貞)을 빼앝기고 가정교사인 복순에게까지 기어 올르지를 않었든가 엄연한 안해의 존재를 무시하고 살어있 는 사람을 없는 것처럼 거짓말까지 해서 일본계집애를 다리 고와서는 거짓말이 탄로날것이 겁이나서 나를 더러운 걸레 나 헌세간처럼 반침속에까지 틀어너려고 들지를 않었는가?

"아아 결혼? 결혼생활!"

하고 인숙은 어둠속에서 진저리를 첬다.

二十 그런일이 있은후 봉환은 자근사랑의 덧문을 닫은채 누어서 교통이 차단된 상태로 지냈다. 사요꼬는 그날밤 잔뜩 토라 저서 간뒤에는 발그림자도 아니하고 인숙이 역시, 병화를 돋아줄가 염려가되여서 사랑에는 나가지를 않었고 급한일이 없이는 나가기도 싫였다. 집안사람들이 보기에도 몸도 성하 지 못한남편을 바치느라고 자꾸만 사랑으로 드나드는것같은 눈치를 보이고 싶지도 않을뿐 아니라 남편의 감정이 저절로 풀리기전에 제가 먼저 구차스러히 변명을 하지 않드래도 저 편에서 먼저 머리를 숙이고 아쉬운 말을 할날이 있으리라고 그때를 기다렸든 것이다.

그러나 봉환은 그병에는 극해인 술을 몰래 사다 마시고야 밤이면 잠이 들었다. 술도 소주보다도 더지독한 '휘스키-'를 병나발을 불고 나서는 혼자 웃고 혼자 울고 하다가 열병환 자 모양으로 방속에서 펄펄 뛰며 세간을 와지끈 부수기가 일수였다.

돈을 쓰지 못하는 화, 병의 고통을 이기지 못하는 화 인숙 에게 대한 미움, 사요꼬를 귀양에게대한 질투의 불길이 화 살같이 터저올라서 땅땅 몸부림을 하는것이었다.

그러다가 어느날밤에는 거진자정때나 되었는데 행낭계집애 가 안으로 뛰어 들어오더니

"아 서방님이 사랑덧문을 발김로 거더차구, 풀대님을 허신 체 큰길루 뛰어 나가시드니만 인력거를 타구 전차길루 나가 섰어요"

하고 제가 감시하고 있든 정신병 환자나 노친 듯이 호들갑 을 떤다.

이숙은 막 자려다가 놀라서 치마를 둘르고 일어나 앉었다.

(별안간 일본여관엘 가구싶든게지) 하면서도 인숙은 머릿속이 뽀송뽀송해저서 잡은 천리만리 나 달어났다.

(차라리 그계집헌테나 갔으면 맘이 놓이지만 화김에 달은 데로 가서 위헌한 짓이나 허지 않을까?) 하고 여간 염려가 되는 것이 아니였다. 학교서 낙제를하고 처음으로 술을 먹고 들어와서 애를멕이든때는 아득한 옛날 같으나 그래도 그때는 저역시 나이가 어려서 어른들의 운에 따러서 걱정을 했을뿐이었다. 그러나 지금와서는 걱정이 되 느니보다 저의 신변에 즉접으로 위험을 느꼈다 병화까지 잔 뜩난 사람이 게다가 술이취해서 미친사람처럼 뛰어 나갔다 니 어떠한 낭패스러운 짓을 할는지 저 때문에 사요꼬와 말 다툼을 하다가 그팔팔한 성미에 칼부림까지라도 하면 어떻 걸까 다행이 그런일은 없다드래도 몸이 여간 쇠약허지가 않 은데 술이취해 정신을잃고 돌아 다니다가 개굴창에라도 틀 어박히면 이밤중에 누가알기나 할까.

인숙은 남편에게 대한 이제까지의 불평과 불만을 까마케 잊어버린 듯이 안절부절을 할수없을 정도로 염려가 되었다.

그러나 어디로 갔는지도 몰으로 헛청 사람을 보내볼수도 없고 저 자신이 일본여관으로 찾어 나설수도없는 형편이다.

거기까지 쫓어 간다손치드래도 저 때문에 더 풍파가 일고, 어찌면 활활 나는 불에다가 기름을 끼얹는 결과를 지을것이 분명하다.

"이를 어쩌면 조와. 이럴수도 없고 저럴수도 없고"

하고 혼자서 가슴을 찟타가 큰 동서의 방으로 가서

"자근아씨-"

하고 오늘도 늦게야 들어와서 자는 봉희의어깨를 흔들었 다. 봉희는

"아이 왜이러우? 막 잠이들려는데......"

하고 귀찮은 듯이 반대편으로 돌아누어 버린다. 인숙은 무 안해서 시누의에게도 더손을 대지못하고 맥없이 얼어서 나 왔다.

二十一 인숙은 방으로 마루로 들락 날락하며

"서방님이 들어오시거든 곧내게 알려라"

하고 행낭계집애를 대문밖에다 세워놓고 봉환을 기다렸다.

인숙은 바람부는 소리까지 귀를 기우리며 가슴을 조려가면 서 기다리자니 슬그머니 저의 남편이 가엾은 생각이 들었 다. 부모가 있다하나 문밖으로 피신을해서 집에서는 밥을 해먹는지 죽을 쑤어먹는지 몰은체하고, 동기인 큰형과는 남 남간처럼 본체만체로 지낼뿐더러 아버지가 보내는 돈을 중 간에서 잘러쓴 때문에 서로 불상견으로 지낸다. 누의동생인 봉희조차 오라비를 부랑자로 지목을 하고 무슨 나쁜물이나 드는 듯이 가까히 하려고 들지도 않으니 사실 따지고보면 남편의 신세가 여간 의로운 것이 아니다. 더군다나 지차의 아들로 어려운 것을 조금도 몰으로 자라난 사람이 남처럼 분재를 해서 단졸한 살님을 해보기는 고사하고 용돈한푼 얻 어쓰지 못하고 계집의 뒷치닥거리를 하지못해서 쩔쩔매는 터에 몸에 심상치 않은 병까지 가젔으니 잘잘못간에 처지를 바꾸어보면 남편의 사정이 여간 딱하고 가엾은 것이 아니 다. 이렇게 생각을 고처 할사록 (그이를 위해주고 밧드러 줄사람은 그래도 세상엔 나하나 밖에 없다. 어디가서 객사를 하드래도 그다지 설어해줄 사 람조차 없지않은가) 하니 제몸에 어떠한 욕이 닥처오든지 뼈가 으스러지는 한 이있드래도 이생에 연분이있어 이제껏 저의 모든 것을 마처 온 이천지간에 다만 하나인 남편을 위해서는 무슨일이든지 하리다 하였다.

(자기야 무슨 짓을 허든지 나만은 꾸준히 나헐 도리나 차 리리라) 하고 두번세번 마음을 고처 먹었다. 인숙은 새로 두시 세 시가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충충한 중문깐에서 달 달떨고 서서 기다렸다.

??????봉환은 술기운을 빌어 간신히 잠이들었다가 비몽사 몽에 사요꼬가 귀양이와 신혼여행을 떠나서 어느온천 여관 에서 묵고있는 광경이 환영으로는 너무나 똑똑히 보였다.

더구나 귀양의 득의 만만한 태도의 저를 비웃는듯한 표정이 바로 눈앞에서 보는 듯 하였다. 평상시에도 (계집이라면 회를 처먹을려구 드는 조놈의 자식이 암만해 두 눈치가 달러) 하고 저없는 사이에 여관으로 사요꼬을 찾어다니는 것 까 지 짐작을 하고 속으로 잔뜩 치의를하고 있는터이라 꿈인지 생시인지도 몰으로 정신없이 뛰어나갔든 것이다. 그야말로 몽유병자(夢遊病者)와같이 나가서 인력거를 타고 사요꼬가 있는 여관에 인력거를 대었다. 여관의 문은닫처서 초인종을 눌으로 문을 발길로 차며

"고엔나사이"

를 연겊어 불러도 대답이 없다가 한참만에야 하녀가 눈을 부비며 나왔다. 봉환을 잘아는 눈치빨은 하녀는 현관에서 무릎을 꿀고

"이라샤이마세"

하다가 무슨생각을 했는지 깜짝 놀란 듯이 발딱 일어나 우 층으로 황급히 뛰어올러간다.

(사요꼬에게 내가 왔다는 통지를 허려면 저렇게 근두박질 을 해서 올라갈 리가 없는데) 하고 봉환은 더욱 의심이 더럭나서 구두를 버서 던지며 하 녀의 뒤를 비틀거리며 따러 올라갔다.

'스립퍼'도 신지않은 봉환의 발자국소리가 우층 복도에 쿵 쿵 거리고 나니까 맨끝엣방의 장지가 열리더니 하녀가 마주 나오며

"사요꼬상은 감기가 들어서 온종일 누어계섰는데....... 저 신열이 높아서 '가제삐링'을 사다 잡숫구........"

하고 봉환이가 얼는 들어가지를 못하게 앞을 막어서서 갓 분 숨을 참어가며 잔소리로 방패막이를 한다. 봉환은

"노께-"

(비켜-) 하고 방문을 홱 밀어 제첬다.

二十二 방안에는 전등에 파란 삿갓을 씨어놓아 으스름달같다.

사요꼬는 한복판에 자리를 피고 이불을 얼굴까지 덮고 누 었는데 봉환의 코에 맨먼첨 훅끼친 것은 담배연기였다.

봉환은 전등삿갓을 홱벗겨던지며 방안을 휘휘 둘러보았다.

별안간 대낮과같이 눈이 부시도록 환해진 '다다미' 바닥에는 찻그릇과 과일을 벗겨먹은 껍데기와 코를 풀어던진 '지리가 미'가 너저분하게 늘어 놓였다.

봉환은 아무말도없이 닷자곳자 사요꼬가 덮고누은 이불을 활딱 벗겼다. 연분홍 자리옷을들른 두부와같이 흰 반라체가 들어나자 사요꼬는

"이게 무슨 짓이 야요?"

하고 소리를 빽 질르고 발에 밟힌 굼벵이처럼 몸을 옴초라 트리며 모루 눕는다. 희동그랗게 뜨고 처다보는 눈은 매섭 도록 독기가 똑똑덧는다.

봉환은 머리맛유리창을 열어제치면서

"오드꼬 구사이쟈 나이까?"

(사내냄새가 물큰 나는구나) 하고는 '도꼬노막( )에가 걸터앉어서 흐트러진 단발을 손가 락으로 비서넘기며 이불을 끌어안는 사요꼬를 노려본다.

사요꼬는 말끄럼히 봉환의 눈치를 살피다가 금시 태도를 변하여 매춘부와같은 요열한 우슴을 띠우고

"이밤중에 웬일이서요? 난 누구라구, 깜짝 놀랐지요. 난 이 렇게 밤마닥 혼자서 쓸쓸하게 자는데 참 왜저렇게 화가 잔 뜩 나섰어요?"

하고 일어나 봉환을 얼싸안어나 주려는 듯이 팔을버리고 걸어오다가 요밑에 도두룩하게 소슨 것을 맨발로 밟고 쓸어 질번 하다가 일어난다.

"그게 뭐야?"

소리와 함께 봉환은 달려들어 요밑에 감추어 둔 것을 끄집 어냈다. 그것은 권연을 피우다가 반토막씩 부벼 끈 것이 수 두룩하게 담긴 사기재털이였다. 봉환은 또다시 얼굴빛이 변 한 사요꼬의 앞으로 그재털이를 밀어 던지며

"손이 많이 왔었군"

하고 힛쭉 웃어 보았다. 그우슴속에는 칼날이 품긴 듯 사 요꼬는 문칫 물러서더니

"저....... 아까 당신의 친구들이 놀러왔다가 나혼자 있으니 깐 집으로 가서 맞나겠다구 갔는데요......."

하고 말끝을 입속에다 넣고 얼버무린다. 조금전에 하녀가 올라와서 허둥지둥 방을 치울때에 급한김에 재떨이를 요밑 에다가 파묻고 나려간줄을 사요꼬도 모르고 있었든 것이다.

"응 그래"

하고 봉환은 랭정한 표정을 짓느라고 힘을들이며 띠끝하나 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이 방안을 자주만 들러 본다. 사요 꼬역시 될 수있는대로 평상시와 조금도 다름이 없는듯한 태 도를 지으려고 속으로 무진 애를 쓰면서도 앉지도 눕지도 못하고 허둥댄다.

"난 감기가 들어서 누울텐데"

하고 사요꼬는 다시 이불속으로 들어간다. 봉환은 잠자코 일어서서 '다다미'우를 왔다갔다 하는데 이불을 넣어두는 오 시이레(벽장)곁으로 가까히 가기만하면 사요꼬가 바눌끝으로 찔리는것처럼 움찔하고 눈을 감는 것을 봉환은 흘겨나려다 보았다.

"오늘밤엔 여기서 잘테니 내자리를 끄내서 펴줘"

하고 봉환은 남편다히 명령을 하였다. 사요꼬는 몸을 반쯤 이르키며

"아이 언젠 딴자리에서 잤어요? 어서 이리 들어와요"

하고 일부러 교태를 지으며 봉환의 소매를잡고 이불속으로 안어들이려고 든다. 봉환은 사요꼬의 손과 온몸이 조금씩 떨리는 것을 느꼈다. 봉환은

"딴소리 말구 자리를 꺼내!"

하고 다시한번 소리를 질렀다. 그와동시에 제손으로 이불 을 꺼낼 듯이 '오시이레'편으로 닥아서니까

"유난스럽게 찬이불은 끄낼게 뭐있어요"

하고 사요꼬는 발딱 일어나 봉환의 허리를 껴안고 뒷거름 질을 시킨다.

봉환은 눈이 실쭉해지며

"저리가!"

하고 계집을 힘껏 뿌리치며 벽장의 두껍다지를 홱 열어제 첬다.

아랫두리는 버슨채 양복저고리를 뒤집어 쓰고는 쭈그리고 앉어서 물에빠진 생쥐처럼 부들부들 떠는 것은 틀림없는 귀 양이었다.

二十三

"요눔아, 요 쥐새끼 같은 자식아!"

하고 봉환은 소리를 질르며 귀양의 머리를 꺼둘러 '다다미' 바닥으로 낙궈첬다.

귀양은 깩 소리도 못하고 매를든 형사앞에 좀도적 모양으 로 끌려 나왔다가 엉금 엉금 기여서 벽장속으로 들고 들어 갔든 바지를 끄내어 훔척 훔척주서입는다. 그꼴을보자 봉환 은 눈에서 불이나는 듯 것잡을 수 없는 분노에 전신을 벌벌 떨면서

"너 요놈의 자식, 누구더러 반침속으루 들어갔으면 좋겠다 구 그랬지? 너좀 또들어가봐라"

하고 고함을 치며 귀양의 허구리를 죽어라 하고 발길로 서 네번이나 거더차다가 그럴로는 분이 풀리지 안늦듯 달겨들 어 귀양의 목덜미와 어깨를 물어뜻는다. 귀양은

"아야야 이사람 잘못됐네. 놓게 놔"

하고 비명을 질르며 사요꼬에게 구원이나 청하는 듯 몸을 뒤틀며 뒷손질을 한다.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서 어쩔줄을 몰으고 달달 떨고섰든 사요꼬는 봉환의 팔에가 매여달리며

"이게 무슨 야만의 짓이야요"

하고 둘을 떼어노려고 든다.

"뭐야? 누가 야만이냐? 네 조둥아리루 그런말이 나오느냐 이 헐렛개같은 년놈들 같으니라구"

하고 봉환은 사요꼬에게로 달렫르어 단발한 머리를 덤썩 움켜쥐고 눈에서 불이 뻔쩍나도록 귓사대기를 두어번이나 후려갈겼다. 사요꼬는 배암과같이 독이올라서

"누굴 처요? 아 누굴처요"

하고 앙살을 하며 나를 처죽이라는 듯이 마주 달려 들며

"당신이 나헌테 손을댈 권리가 어딨어요? 내가 당신혼자 마터논 여편네도 안해도 아닌담에야 내가 어떤짓을 허든 무 슨상관이야요? 아 누가 먼저 가짓말을 했길래 멀쩡헌 장가 처가 있고도 나를 감쪽같이 속였죠? 대문깐에 전등하나도못 달고 지내는 주제에 조선의 귀족장이랍시고 집에만 가면 그 런 돈쯤은 문제가 없다고 살살 발러마치고는 내돈을 오백원 이나 사기를 해먹었죠? 뭇 사내들앞에 새빨가벗고 '모델'을 서서 번돈을 냐금냐금 다 발러가고 무슨 낯작을 처들고 나 를 때려요? 아글세 말을 좀 해봐요!"

하고 사요꼬는 물퍼붓듯 하면서 바락 바락 달려들더니 더 한층 열이나서 봉환을 노려보며

"나가요 어서 나가요 그까진 돈몇백원쯤 외입에 내버린 셈 만 칠테니 냉큼 내방에서 나가요"

하고 서양 여배우처럼 손을 들어 문을 가르치며 발을 굴른다.

"만일 당신이 구축축허게 또찾어오거나 딴소릴 허면 난 사 기결혼이나 정조유린죄로 고소를 헐테야요"

하고 발악을 한다. 봉환은 분을 참느라고 이를 뽀드득 뽀 드득갈고 섰다가 정조 유린이란 말에 분통이 터저서

"뭐 어쩌구 어째? 정조유린? 화류병을 태독같이 올린 네까 진 매음녀가 정조가 다 무슨정조냐?"

하고 사요꼬의 가슴을 떠다밀었다. 사요꼬는 자리우에 쓰 러지며

"아-니 날더러 병을 옴겨줬다구 탓을 허는거야? 하하하.

병정이 전장엘 나가서 죽지않으면 훈장을 타는법이거든 당 신같은 귀족의 아드님은 미인국에서 돈도 안드리고 훈일등 을 탓스니 ㆀ광을 내개다 돌려요 핫하하하"

하고 어꺠를 떨며 간드러지게 웃는다. 봉환은 하도 어처구 니가 없어서 말댓구도 못하고 눈을딱 감고 섰는데

"어서 가서 옥상허구 따듯헌 온돌방에서 주무서요. 나야 당 신말따나 매춘부 한가지니까 복상도 좋고 긴상도 좋으니까 요. 오늘 저녁엔 저복상허구 잘테니 빨리좀 나가줘요"

하고 결박이나 당한것처럼 사추리에다 머리를 틀어 박듯하 고 앉인 귀양을턱으로 가르친다.

二十四 새로 세시나 되도록 남편은 돌아오지 않었다. 인숙은 중문 깐에 기대여서 오들오들 떨면서 기다리다못해 자근사랑으로 들어갔다. 함부로 거더차고 나간 요이불을 털어서 다시 펴 놓고 방안에 흩으러논 것을 말쩡히 치어놓았다. 이구석 저 구석에 버서던진 속옷을 들여다 빨려고한데 꾸 그러놓고는 요밑에 손을넣어 보았다. 초저녁에 불을땐 방바닥은 싸늘하 게 식었다.

(방이 이렇게 차서 감기까지 들면 큰일나게) 하고는 석냥을 찾어들고 캄캄한 부엌으로 더듬어 나려가서 신문지로 불쏘시개를 해서 몇 개피안 되는 장작을 집혔다.

아궁이속을 들여다보며 (저불길처럼 내몸이 활활 타버리기나 했으면) 하고 앉었는데 밖에서 무엇이 부스럭 부스럭한다. 가뜩이 나 휘젓해서 불을 그러모으고 얼는 나오려든 인숙은 머리끝 이 쭈삣하였다. 숨을 죽이며 가만히 귀를 기우리니 밖에서 부스럭 거리는 것은 쥐도 아니요 사람도 아니요 추녀밑에 쌓어논 입나뭇단에 방울방울 뿌리는 밤비소리였다 (처량스럽게 비는 왜 오누) 하고 인숙은 부지깽이를 던지고 비를먹음은 음산한 바람속 에 함숨을 섞으며 일어섰다. 다시 사랑으로 올러가려고 막 댓돌에 신을벗는데 대문깐에서 떠들석하는 소리가 들렸다.

인숙은 정신이 번쩍나서 밖으로 달려나갔다. 봉환이가 자동 차를 타고왔는데 같이 타고은 카페- 여급같은 계집이 말도 못하도록 술이 억망으로 취한 봉환을 붙잡고

"글세 봐요. 당신두 염치가 있죠. 여기까지 껄구와설랑 돈 이 없다면 난주인 헌테가서 뭐라구 헌단말요"

하고 악을 쓰면서 따로 서지도못하고 비실비실하는 사람의 멱살을잡어 흔든다.

그 광경을 내다본 인숙은 쫓어나가 남편의 앞을막어서며

"술값이 얼마요?"

하고 물었다.

피묻은 여우의 주둥이처럼 '구찌베니'를 진하게 발른 여급 은 인숙의 알에우를 훌터 보더니

"'뿌란데'값만 팔원이나 간조가 났는데 닥치는대로 그릇을 부서논게 십원어치도 넘어요"

하고 허리춤에서 종이쪽을 끄낸다. 인숙은 그 종이를 받어 들었다. 비녀가 가락지같은 금부치라도 몸에지녔으면 당장 에 빼어주고 욕을면하고 싶으나 그도 헛생각 뿐이라 말이나 오지 않는 것을

"이건 내가 맡을테니 안됐지만 낼아침에 보내 주리다. 돈이 있기로서니 어룬들이 주무시는데 이 밤중에 어떻게 꺼내겠 소"

하고 빌다싶이 사정을 해보았다. 여급은 자동차운전수와 귓속을 하더니 얼는 보내도 품위가 있어보이는 인숙을 신용 하는 듯

"그럼 내일아침에 안보내면 창피 당할줄 알아요"

하고 여급은 돌아서며

"재수가 없으니깐 별꼴을 다보겠어"

하고 헛침을 탁탁배았고는 자동차로 올러간다. 인숙은 화 로곁에 양초처럼 늘어지는 남편을 업다시피하고 자근 사랑 으로 들어갔다. 저역시 저녁도 몇술 떠먹는체만 한데다가 긴긴밤을 넘우나 애를태우며 드나들든 끝이라 잔약한 두어 깨에 턱실리는 봉환의 몸은 천근같이 무거웠다. 댓돌을 올 러갈때에는 몇번이나 곡 그라질듯한 것을 죽을힘을 다해서 안까님을 써가며 업어 들였다 인숙은 요우에가 쓸어진채 송장이 다된 남편의 옷을 벗기 느라고 진땀을 흘리는데

"넌 누구냐? 응 넌 이년 누구야?"

하고 봉환은 눈알맹이가 뒤집힌것처럼 힌자위를 아래로 굴 리며 인숙에게 발길질을 한다.

"나얘요. 아무 생각도 마시고 어서 고만 주무서요"

하고 인숙은 작구만 헛손질을하는 남편의 팔을 느슨히 눌 렀다.

"오- 난 누구라구. 우리직녀성 이로구나-"

하고 혀꼬부러진 소리를 하며 벌떡일어 나더니 두팔을 버 리고 인숙을 덤석 끌어안는다.

二十五

"이러지 마시고 어서 누서요. 병생각은 안허시고 저렇게 술 을 과허게 잡서서 어떻게요"

하며 인숙은 자꾸만 덤벼드는 남편을 가벼히 뿌리치여 조 츰조츰 물러앉는데 봉환은

"이리와, 나허구 자응. 오래간만에........"

하고 말을 얼버무리며 인숙의 허리를 껴안고 이불속으로 끌어드리려고 든다. 인숙은 가슴이 울렁거리고 얼굴이 화끈 하고 달어서 몸을 뒤틀다가 (이러다가 정말 큰일 나겠구나) 하고 남편을 힘껏 떠다말고 오뚜기처럼 발딱 일어났다.

봉환은 눈자위가 한번 무섭게 변하더니

"내가 싫여! 내말을 안들을테야?"

하고는 인숙의 치맛자락을 잡어다린다. 치마주름은 죽뜯어 젔다.

"제 남편 싫어하는 여자가 어딨겠어요. 그렇지만 오늘저녁 엔"

하고 트더진 치마를 휩싸쥐고는 방안을 둘러보며

"참 자릿기를 안떠다 놨군요. 이따 물을 찾으실텐데...... 내 떠가지고 나오께 기다리지말구 주무서요"

하고 자릿기를 떠온다는 핑계를 해서 간신히 떼치고 줄다 름질을 해서 안으로 들어왔다.

인숙은 제방으로 들어가 차디찬 자리우에가 펄썩 주저앉었 다. 인숙은 몸이 몹시 피곤한것도 허기가 지도록 속이 쓰린 것도 몰으고 마음은 불시에 기쁨으로 충만하였다.

(비록 취중이나마 남편이 인제야 마음을 돌리지 않었는가 평시에 먹은 마음이 취중에 나온다고 그래도 아주 잊어버리 지 않고 옛날생각이 나길래 나를 직녀성이라고 불렀지 안직 도 속으로는 내가 싫지가 않길래 같이 자자고 끌어댕기기까 지 했겠지) 하니 가슴속에서 용솟음치는 기쁨을 참을수없다. 공든탑이 문허질리 없어 그동안 모든 것을 참고 기다린 보람이 있는 듯, 남편이 열계집 스무계집을 보드래도 저하나만 잊어버려 주지않기만 바랐다. 설사 다른 여자에게 빠저서 몇해씩 돌 아보지는 않드래도 저를 안해로 대접만해주면 그걸로 만족 할상 싶었다. 정당히 결혼을 한 본처로서의 명예와 자랑만 이라도 가지고 싶었다.

(그만 잠이 들었을까 정말 물을 찾으면 어떻거나) 하고 그동안에 궁금도 하려니와 거짓말을 한 것이 후회가 나서 인숙은 치마를 갈어입고 자리끼리를 쟁반에 바처들고 는 다시 사랑채로 나갔다.

사랑채 양실집웅에 떨어지는 빗소리는 아궁이앞에서 듣든 때와 딴판으로 조금도 처량치가않고 인숙의 귀에는 동당동 당하고 피아노를 치는소리와 같이 들렸다.

봉환은 이불도 아니덮고 요에다 허리를걸치고 가꾸로 누어 서 잠이 들었다. 그렇나 머리맡으로 뻗은 팔은, 저를 불들려 다 놓친채 떠러트린대로 있다. 인숙은 자리우로 봉환의 몸 을 조심스러히 굴려서 눕히고 이불을 덮어주었다.

그리고는 한참이나 머리맡을 직히고 앉어서 입으로 더운김 을 뿜으며 숨결거칠게 잠이든 남편의 해쓱한 얼굴을 나려다 보다가 저를 붙잡으려고 뻗었든손에 제빰을대고 흐느꼈다.

사철 외로움에 떨든 인숙은 죽은사람과 같이 감각을 잃은때 가 아니면 그다지도 그리워하든 남편을 가까히할 생의조차 못하지 않었나 남편이 저를 억지로 끌어다릴때는 병이 들고 알콜에 제정신이 빼앗긴뒤가 아니였든가. 인숙은 기뻐하는 것도 잠시오, 하소연할길 없는 서름이 복바처서 뻣마디가 들어나도록 여윈 남편의 손등을 눈물로 부비며 소리를 줄여 울었다.

동창이 뿌옇게 먼동이 터올때까지 인숙의 눈물은 끝이지않 고 창밖에 빗소리도 끝일줄 몰랐다.

二十六 이튼날 인숙은 간밤에 눈도부처 보지못한 사람으로는 누구 나 알지못하도록 평상시보다도 더 깨끗이 분세수를 하고 머 리를 곱게 쪽젔다. 사랑으로 사람을 내보내 보아 남편이 그 저잔다는말을듣고 안심을하고 (술에 비위가 깩기고 입맛도 깔깔헐텐데) 하고 움파와 닭알을 들여다가 국을끓여 놓고 상노가 남편 이 일어 났다고 통기하기만 기다렸다 아침뒤에 인숙은 지난밤에 사랑에서 꾸그려가지고 들어왔 든 남편의 속옷과 사루마다를 들고 귓겻 움물로 갔다. 두레 박질을해서 물을 푸다가 남편이 도화란 계집애하고 처음으 로 그런일이 있은후 복순이까지 오해를하고 빠저죽으려고 충충한 움물속을 들여다보며 울든 생각이 났다.

(그때는 내가 왜 그랬든지 몰라. 참말 어린애였어) 하고 넘우나 편협하였든것과 참을성이 없고 앞뒤생각을 못 했든 것을 새삼스러히 뉘 우첬다.

아직도 빨래까지는 손소하지 않지만 인숙은 남편의살을 즉 접 대었든 속옷은 남의손에 빨리고 싶지가 않었다. 그래서 인숙은 잠을못자서 머리가 힝하고 현기가 나는 것을 참고 속옷을 부벼빨다가 뜻밖에 '사루마다'마다 피고름이 묻은 것 을 발견하였다.

"이게 웬일인가?"

하고 인숙은 눈이 동그래젔다. 더러운 것을 뒤적거려보자 동그래젔든 눈은 저절로 찌프려지지 않을수 없었다.

(가래톳이 났다드니.......) 하고 인숙은 몇번이나 고개를 비꼬다가 벌서 오래전에 유 모의 아들이 나쁜병에 걸려서 피고름을 흘리며 지독히 고생 을해서 유모가 숫기와장의 이끼를 벗겨다 먹이느니 무슨 약 품을 구하러 다니느니 하고 애절을 하고 돌아다니든 생각이 났다.

"옳지, 그래서 짠 것 매운것도 안먹고 거름도 잘 못것고 다 녔군"

하고 인숙은 혼자서 고개를 끄덕이다가

"아 그 몹쓸병-"

하고 속으로 부르짖었다. 더구나 촌수는 멀어도 봉희의 아 주머닛벌되는 안악네가 딸을 낳었는데 림독으로 두눈이 뽀 얗게 먼 것을 병원에 가는길에 안고 왔는 것을 본생각이 나 서, 인숙은 몸서리를 첬다. 그무서운 병균이 금방 저의 손으 로부터 전염이 되는 듯 인숙은 간신히 속옷을 빨어널고 몇 번이나 빨래비누칠을 해서 손을씻고 또씻고 하였다.

(어쩌녁에 말을 들었드면 참정말 큰일날번 했지. 그러니 아 무리 취중이기로 어쩌자구 염체 그병을 가지고 내게 달렫르 면 어쩔 작정이야) 하고 제욕심만 동하면 한치앞도 생각을 하지못하고 물불을 살이지않는 남자가 어떤것인지를 비로소 알어지는 것 같었다.

(그렇지만 잘 조섬을 허면 났는일이 있겠지. 첫대 술을 못 먹게허구 일본 여관에를 못가게 해야 헐텐데......) 하고 일어서며 (이를 어쩌면 조와 가까이 헐수도 없고 혼자 내버려 둘수 도 없고.......) 하면서 아모튼지 즉접이거나 간접이거나 조성을 다해서 위 선 그병을 고처놓고야 말리라하고 다시금 단단히 결심을 하 였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는데 병치고 못 고치는 병이 어디있어"

입속으로 말하면서 꼭 제손으로 고처줄 자신까지 생겼다.

인숙은 뒬안으로 돌아 들어가는데 행낭계집애가 거기까지 마주찾어 나오더니

"서방님이 기침을 허섰는뎁쇼. 아씨더러 나옵시사구 엿줍니 다"

하고 인숙의 앞을질러 뛰어나간다.

二十七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는밤에는 몰라도 대낮에는 사랑으로 드나들기가 싫건만, 인숙은 남편이 불은다는데 아니나갈수 도 없었다.

봉환은 자리에 누은채 인숙을 흘낏 처다보드니

"거기 앉우"

하고 다 죽어가는 사람이 유언이나 하려는것처럼 머리맡을 가르친다. 인숙은 어쩐지 가까히 가기가 서먹서먹하고 무서 운 생각까지 들어서 될 수있는대로 멀지감치 앉이며

"오정때가 됐는데 시장허지 않으서요. 아침을 내올까요?"

하니까

"배창자를 사뭇 훌터내는 것 같어서 이다가 갈분이나 좀 쑤어주"

하고 봉환은 눈두덩이 폭꺼진 두눈을 정기없이 뜨고 물끄 럼이 인숙을 처다보더니

"이리좀 닥어와 앉구려"

하고 손을 내민다. 인숙은 (누가 들어오지 않을까) 하고 밖으로 통한 장지를 빠끔이 열어보고 남편의 앞으로 닥어앉었다. 가까히 앉기는 하였어도 숫색시처럼 공연이 수 집은 생각이 들어서 얼굴이 살짝 붉어젔다. 봉환은 인숙의 손을쥐고 눈을 딱감고 무엇을 한참이나 생각하더니

"난 인제 그 일본계집 허구는 아주관계를 끊었소. 내가 어 리석은 놈이지, 고귀양이라는 놈이 벌서......."

하고는 지난일을 생각만해도 분떻이가 왈칵 치밀어 올르는 듯이 입살을 깨문다. 인숙은 잠자코 있다가

"무슨일이 있었는지 난 몰으지만 아무튼 병이 나실동안은 아무생각도 허지 마서요"

하고 사요꼬와의 일절을 자세히 알지도 못하거니와 짐작허 는 것이 있드래도 일부러 몰은체를하였다. 남편이 못처럼 저를 불러내다가 다정히 손까지 잡고 진심으로 후회하는 빛 을 보여주는것만해도 고마운데 부질없이 이러니 저러니 긴 말을 늘어놀 필요가 없었든 것이다. 뿐만아니라 가뜩신경이 칼날같이 과민해진 남편이 저의말을 어떻게 오해할는지도 미상불 몰을일이다. 봉환은 잡었든 손에 힘을주며

"미안허우. 넘우 몰은체를해서 졸연이 났지못헐 병까지 걸 려가지구......."

하는데 봉환의 눈에는 눈물이 번득였다. 새가 죽어도 짹 소리는 하고 사람이 죽을때는 그말이옳다더니 봉환은 저의 신세가 넘어나 고단하고 외로워 지니까 비로소 진정을 바치 는 안해라는 사람이 고맙고 넘우 홀대를 한 것이 미안한 생 각까지 들었든 것이다.

인숙은 봉환을 마조 붓잡고 실컨 울고 싶었다. 그러나 꿀 꺽참고

"미안허긴 뭐 미안허다고 그러서요. 다른사람헌테 말슴 허 시듯허면 되려 섭섭허지 않어요? 모든게 맘에 들지 않으시 는데다가 이렇게 혼자 나와 누섰으니까 병구안도 맘것 못해 드려서 내가 여간 미안허지 않은데요"

하고는 남편이 어떠한 병을 앓는다는 것은 빤히 알면서 아 는체도 아니하였다. 남편의 자백을 받는 것이 돌이어 마음 괴로운 일이요. 제가 아는 것이 부끄러워서 데면 데면하게 굴것같기도 하였다.

"오늘 저녁버텀 난 안으루 들어갈테요. 텅비인 사랑채에서 혼자 자니까 밤엔 자꾸 가위가 눌리구 넘우 휘젓해서 무엇 에 홀릴 것 같구려"

하고 봉환은 의례히 들어가 있어야할 제댁의 방으로 들어 가겠다는 양해를 구한다.

"나도 벌서버텀 그런 생각은 있었지만......."

하고 인숙은 그말이 반갑기는 하면서도 들어오라는 말이 얼는 나오지를 않었다.

"만일 반항을 쓰다가......"

하고 겁이 앞을 섰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