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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녀성/제1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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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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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공일날 오후였다. 봉희는 동무집으로 놀러간다고 교 복으로 갈어입으려는데

"별당마님께서 자근아씨를 잠간 올러오라 십니다"

하고 허리꼬부라진 안짬재기가 나려와서 일르고는

"좋은일이 있으니 양복은 벗구 조선옷을 곱게 입구오세요"

하고 얼굴에 주름을 잡으며 저혼자 웃고 돌아선다.

"할머니가 왜 나를 불으셔? 누가 왔어?"

하고 봉희는 교보을 버서 던지고 치마저고리로 갈어 입었 다. 봉희는 이틀에 한번이나 사흘에 한번, 그것도 마음이 내 켜야 할머니에게 문안을 하였다. 할머니는 정말 연화대로 갈날이 멀비 않었는지 앉어서도 염불이요 누어서도 염불이 다. 사바세계와 가족까지도 잊어버린 듯이 거들떠보지도 않 고 나무아미타불만 불으고 지내든터에 무슨일로 오늘은 손 녀를 불으는지, 봉희는 매우 궁금해서 별당으로 올러갔다.

별당댓돌에는 여자의 신이두어켜레나 노였다.

(누가 와서 나를 보자나?) 하고 봉희는 할머니의 방으로 들어갔다. 할머니의 좌우에 는 한 륙십이나된 뚱뚱한 마누라와 죽은깨가 닥지닥지한 얼 굴에 횟박을 뒤집어쓴것처럼 분을하얗게 바르고 옥색치마를 입은 사십남짓한 여자가 앉어서 들어서는 봉희를 처다본다.

늙은 마누라는 가끔할머니를 찾아오는 것을 본듯하나 눈알 맹이가 발같토록 분을 바른여편네는 처음이다. 할머니는 엄 지손가락으로 염주를굴리며

"이 어른 뵈워라"

한다. 봉희는 두여자에게 하고싶지 않은 절을 하였다.

"넌 나를 몰으리라만 나는 네할머니허구 이종사촌간이야.

좀 가까우냐마는 이젠 나다니기도 힘에 붙여서 자연 자주 오지를 못했다"

하고 곁에 여편네를 돌려보며

"낭자야 저만허면 극가 허지. 어떳소? 첫눈에 차오? 옛날처 럼 싀집을 일즉암치 갔드면 벌서 아들을 한 두엇이나 나았 겠오"

하고 봉희를물끄럼이 처다본다.

"나이룬 여간 숙성허지 않군요. 어글어글허니 참 맏며누리 감인걸요"

하고 '횟박'은 토끼눈같이 빨갓게 불거진눈을 치뜨고 봉희 를 면구스럽게 처다본다. 봉희는 그눈을 마주보기가 무서워 서 고개를 돌렸다. 머리도 기름항아리에다가 당것다 빼낸것 처럼 빤지르르하게 빗고 가루마를 분실까지 노아갈렀는데, 금비녀를 꼬자 느슨하게 떨어트린 쪽은 파리가 앉이면 낙상 을 할듯하다 (어쩌면 조런 깜찍스런 여편네두 세상에 있어) 하고 봉희는 그 여편네가 꿈에보일가 무서웠다. 할머니는 사방침에가 기대며

"저건 말괄양이야. 그저 굴레버슨 말처럼 뛰어나댕기지그래 언제 하루나 들어앉어 봤어야지 여태 제저고리 하나도 꼬매 입을줄 몰을걸"

하더니 머리를 폭 숙으리고 버선등만 굽어보고 섰는손녀를 처다본다. 뚱뚱마누라는 '횟박'을 가르치며

"참 이분은 너 첨이지? 저계동 한참판의 며느님인데 연분 이있으면 네가 싀어머니로 뫼실 분이다"

하고 배를 떨며 사내처럼 껄걸 웃는다. '횟박'은

"온 아주머님두, 어느새 그게 다 무슨 말슴이세요?"

하고 열병을 알는 사람같은 눈을 흘려 보인다.

(누가 와서 나를 보자나?) 봉희는 얼굴뿐아니라 손등까지 빨개 지는것같었다. 저의 선을 보러온 눈치는 벌서 채였것만 어린애처럼 난싫다고 도 망을 갈수도 없어서 허는양이나 구경을 하려고 섰자니, 얼 굴 가죽이 간지러워 견딜수가 없다. 더구나 저를 세워놓고 넘우 숙성허니 애를 둘이나 밋젔느니 하는데는 모욕을 느끼 지않을수없다. 게다가 '횟박'과는눈이 마주치면 소름이 쪽끼 처서 할머니를 보고

"학교서 운동 연습이 있어서곧 가봐야 하겠어요"

하고 장지를 탁닫고는입을 삐쪽하고 나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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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우스워 죽겠어, 난별꼴을 다 봤우"

하고 봉희는 대청에서 인숙을 붓잡고 '횟박'의 형용을 그리 면서 허리를 잡으며 웃는다

"나두 구경을 좀 했드면"

하고 인숙도 따러우섰다.

"그래두 저는 아주 장안에 제일가는 미인으로 알길레 나좀 봐달라는 듯이 낯작을 처들구 행길로 쏘댕기지 대낮에 도깨 비가 나왔다구 나같은 며누릿감들은 풍지박산을 헐걸"

하고 봉희는 발굼치로 마루바닥을 쾅쾅굴르며

"별당엔 올러가봐요. 내가 거짓말인가"

인숙의 등을 떠다민다.

"뭘보구 저렇게 우수?"

하고 큰오라범댁이 마루로 나오다가 그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오-라, 한참판의 며누리가 자근아씨 선을 보러 왔어?"

하고 고개를 갸우둥 하고 무엇을 생각하더니

"그 여편넨 삼취댁인데 그것도 근본은 진주라든가 어디 기 생 출신이래, 차리구 댕기는걸 보면 짐작 되지안우? 게다가 한참판의 아들은 아편쟁이로 몰으는 사람이 없는데 아마인 체 열댓살쯤 된 아들이있지. 죽은참판의 환갑때 어머님께서 다녀오셨는데 침을 질질 흘리는게 미거허디 머거허드래. 그 래서 동무들은 문여리란 별명을지어 불은단 말까지 들은법 해"

하고 자기생각에도 봉희와는 가당치도 안타는 듯이 픽웃고 는 찬마루로 나려간다.

"왜 머저리는 아니구 문여리야"

하고 봉희는 방으로 들어가 옷을 갈어 입었다. 인숙은 따 러 들어와서 봉희의 어깨에 손을 언지며

"그래두 넘우 우숩게만 생각허지 마우.

그런일이란 어떻게될지 알수없는건데, 아버님께서는 별당 할머님 말슴이라면 털끗만치도 거역을 못허시는걸 잘 알지 안우? 아무튼 선까지 보구갔으니깐 당신네끼리 턱 혼인을 정해버리면 어떡헐테요?"

하고 저자신이 병든 싀증조모가 증손부를 보고 죽어지라고 유언을 허다싶이해서 아모것도 몰으고 이집으로 싀집을 와 서, 오늘날 까지 속을 썩히고 지내든 생각을 하고, 싀누의 일이남의 일같지 않게 걱정이 되었든것이다. 봉희는 제일은 저의 마음대로 할 어떠한 자신이나 있는 듯이

"이란 심빠이 하게아다마"

(쓸데없는 걱정을 허면 대머리가 벗겨저요) 하고는 팔을 휘젓고 나간다.

"어디 가우?"

인숙은 쫓어나가며 물었다.

"나 선보러 가우"

"아 누구를?"

"계동 한참판집 문여리를 보러"

"아이 우슴엣 소리만 허지말구..... 저- 그이헌테 가우?"

"그이가 누구요? 아이 새언니두..... 지렛짐작 매꾸레기라우"

하고 봉희는 상글상글 웃는다.

"오늘은 좀 늦게 들어 올른지 모루"

하고는 댓돌에 나려서서 양말을 치켜신고 나갔다.

.......마침 세철은 집에 있었다. 요새는 어떻게해서 학비를 내고 학교에를 다니는데 얼마아니 남은 졸업시험은 볼 생각 도 아니하고 제가 전문으로 연구하는 무선전신에 관한 책으 르 빌려다놓고 그것을 골독히 들여다 보며 '라디오' 기게같 은 것을 방안으로 하나를 벌려놓고 앉었다.

"또 지저분허게 늘어 노섰구면요"

하고 봉희는 제집처럼 문을열고 들어섰다. 세철은 귀에 대 였든 '레시버'를 떼며

"봉희씨 오는 소리를 난 단파(短波)로 듣고 있었지요"

하고 벙긋이 웃는다. 봉희는 세철의 앞에 늘어논 장난감같 은 것을 밀어 놓고앉었다.

"저..... 아주 반가운 소식하나 전할까요?"

"네? 별안간 반가운 소식이라니요 복순이가 나왔에요?"

세철의 눈은 금방 동그래진다. 봉희는 눈을 색시처럼 앞에 로 깔고

"나 약혼했어요"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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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철은 봉희의 얼굴을 물끄럼이 쳐다보더니

"네- 약혼을 했에요"

하고 처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인다. 봉희가 약혼을 하거나 결혼을 하거나 제게는 아무상관도 될것이 없다는 듯, 어떻 게 그다지 급작시리 혼인을 정했느냐는 말도 그상대자가 누 구냐는 말도 물어보려고 들지를않는다. 어둔밤에 홍두깨 내 밀 듯 그런말을 불쑥하면 갑작이 놀라서

"아 언제? 누구허구?"

하고 제게로 달려들줄만 알었든 세철이가 뜻밖에 너무나 냉정한 태도에 봉희는 탕개가풀려서

"아 남이 약혼을 했다는데 어쩌면 저렇게 들은척만척 허서 요?"

하고 빨끈해서 돌이어 세철에게로 달려들 형세를보인다.

"남이 약혼을 했다는데 내가 알은체를 헐게 있나요. 나이 찬 처녀가 시집을 가게되는게 이상할것두 없지요"

하고 세철은 여전히 느물거린다.

"난 갈테야요"

하고 봉희는 발딱 일어선다. 세철은 그 큰눈을 꿈벅꿈벅하 고 봉희를 쳐다본다.

"무에 그렇게 급해요? 정해논 사람이 어디루 도망을 갈까 봐 그래요? 나 국수 먹일날이나 알으켜 주구 가시구려"

"듣기 싫여요?"

봉희는 발을동동 굴른다.

"글세 한번 맘속으로 단단히 정해논 사람이 하늘로 올러가 거나 땅속으로 들어갈리는 없겠지요?"

"단단히 정해논 사람이 누구야요?"

"왜 금방 약혼을 했다구 자랑을 허군요?"

세철은 더한층 끈죽끈죽하게 묻는다. 봉희는

"난 안직 아무헌테도 정식으로 약혼은 안했어요"

하고 제풀에 다시 주저앉는다.

"이건 정신을 차릴수가 없군요. 약혼을 했댔다가 금세 또안 했댔다가.......

나를 놀리는 셈이에요?"

"놀리긴 누굴 놀려요 세철씨가 자꾸만 날놀리죠"

세철은 보든책을 접어책상에다 던지며

"초록은 동색 이라는데 어느 귀속의 찌끄럭지나 백만장자 의 맏아들이 눈을 꿈벅꿈벅 허구 봉희씨를......"

하고 또 이죽거리기를 시작하는데

"듣기 싫어요! 또 그런소릴 헐테야요?"

하고 봉희는 뒤로 달려 들어 손바닥으로 세철의 입을 틀어 막었다. 그래도 세철은 반벙어리처럼 입속으로 저할말을 다 하고야 만다. 봉희는 골이 꼭두까지 올라서

"뭐 내가 내맘대로 약혼을했다구 그랬나요. 아까 여기 오기 전에 별당할머니가 불르시길래 올러갔드니 깍지똥같이 뚱뚱 한 마누라쟁이허구 분을 횟박같이 뒤집어 쓴 여우처럼생긴 여편네허구 와앉어서........."

하고 거진 단숨에 말을몰아처서 경과를보고 하였다.

세철은 빙그레 웃으며 봉희의 이야기를 흥미깊게 듣고앉었 더니

"그러면 그렇지, 난 속으로 깜짝 놀랐지요. 우리 봉희씨가 맘에 없는 약혼을 했을 리가 있나요"

하고 차츰차츰 진실한 태도로 변한다. 봉희는 '우리봉희씨 가'한 '우리'하는 구절이 여간 의미깊게 들리지않었다.

(내가 저이헌테 너무 실없이 굴었나보다) 하고 뉘우치기도하고 새삼스러이 부끄러운 생각이 들어서 무슨 말을 할듯할 듯 하면서도 입밖에 내지를 못하고 고개 를 떨어 트리고 앉었다.

세철도 입을 꽉 다물고 한참이나 묵묵한 가운대 무엇을 생 각하더니 봉희의 앞으로 고처앉으며

"봉희씨!"

하고 무겁게 불른다.

"네?"

하고 봉희는 머리를 들었다.

"그럼 그런 일이 있었다구 내게 보고를 허러오신게 아니라, 정말 정식으로 약혼을 허러 오섰지요"

세철의 음성깊은 한마디는 봉희의 가슴 한복판을 찔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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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철은 모든 형식을 싫여하고 헡은 약속을 하지않는 성미 였다. 겉으로 사교적 탈을 뒤집어쓰고 의면치레를 번지르르 하게하는 사람치고 속속드리 진실한 사람을 보지못하였고, 입술에 발린 맹서를 아무에게나 훗두로 하는 사람치고 반듯 이 그행동이 말을 따르지못하는 것을 몇번이나 체험하였든 것이다. 비록 짧기는하나마 가장 어둡고 험난한 인생의 고 해를 헤염처온 세철은 세상의 가진허의(虛 )와 온갖 가식(假 飾)에 족므도 물들지 않고, 그따위 위선자들과 싸워 나가려 는 것이 그의 주의요 또는 봉희를맛날때마다

"우리는 라체생활을 헙시다. 빨가벗고 큰길을 걸어 다녀도 조금도 남부끄러울 것이 없이, 남의 눈을 가리지도 말고 제 맘이나 몸을 꾸밀 생각도허지말고 둘이 손을 단단히 잡고 뚜벅뚜벅 인생의 길을 걸어나갑시다. 지금부터 생활난과 싸 울 준비를 허면서 사회의 모순과 죄악을 상대로 싸워갈만한 건강과 용기를 기릅시다"

하고 귀가 젖도록 저의 주장을 선전해 왔었다. 봉희가 동 경유학이나 음악공부같은 것을 하려든 공상을깨트리고 사범 학교의 연습과를 지원한것도 세철이가

"음악이고 무엇이고 천재가 있드래도 잘해야 일년에 한번 쯤 연주회를 열어가지고야 입에밥이들어 가나요. 내말대로 보통학교훈도 자격이라도 얻어두세요. 봉희씨두 앞으로는 적으나마 경제적으로 독립을 허는 것이 더러운 부잣집으로 시집을 가는 것 즉 한평생을 계약하고 매음을 하는것버덤은 얼마나 신성헐지 모르니까요"

하고 누누히 권고를 하였든 것이다. 그와 동시에 이른바 귀족의영양의 탈과 시집가는 것을 기회로 놀고 먹으려는 관 념을 타파 해주기에힘을 드렸다. 봉희도 세철의 영향을 받 었다느니보다는, 그만지각이 날 나이도 되었고, 또는 저의 집 형편이 앞으로 밥을 굶을지경에까지 이를지도 모르는 터 이라, 저의장래에 대해서 적지아니 고민을 하고 짐을 편안 이 자지 못헐때도 많어서 그럴때마다 세철을 찾아와서 저의 사정과 고민을 하소연하듯하였다.

......"약혼을 허러 왔느냐"고뒤집어 씨우는 세철의 말에봉희 는 머리를 들지 못했다. 두사람사이에 약혼이란 말이 새삼 스럽기도 하려니와, 이제와서

"우리 약혼합시다"

하기가 피차에 쑥스럽기도하였다.

그러나 여자인 봉희의 생각에는 (아무 형식을 무시허는 사 람이기로 그래도 정식으로 약혼을허자는 말한마디 없는건 암만해도 을 찍지않은 문서같어) 하고 섬섬도 하야서 어떻게든지 아퀴 짓고 싶었다. 일생의 가장 중대한일을 남들처럼 형식은 가추지 않드래도 서로 똑 똑이, 또는 단단히 언약이라도 하고 싶건만, 세철은 약혼이 니 결혼이니 하는 말이나면 슬금 슬금 꽁문이를 빼며 딴전 을 붙여왔다.

"왜 대답을 못허세요?"

하고 세철은 돌이어 봉희의 대답을 재촉한다. 봉희는 치맛 자락에 붙은 솜보무라지만 배비작거리고 있다가 어느틈에 눈물이 갈상갈상해가지고

"그 고집 센 할머니나 완고한 아버지 어머니가 정혼을 했 으니 그리로 시집을 가라고 억지를 쓰시면 어떡해요?"

하고 응원이나 청하는 듯이 세철을 쳐다본다. 세철은

"거 걱정할거 없지요. 벌서 약혼을 했다구 하면 고만이 아 니에요"

하고 대수롭지 않게 대답을 한다.

"누구 하고요."

봉희는 세철과 무릎이 닷도록 바싹 닥어앉는다.

"저- 어미애비두 없구 상놈인지 양반인지두 모르는데 게다 가 피천한님 없어서 딱딱이를 치구댕기는 고학생허구 벌서 약혼을했다구 바른대루 말할 용기가 없에요?"

봉희는 귀를 막고 세철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않는다. 세철 은 심호흡을 하듯이 한숨을 내쉬며

"나역시 그런 말을 허구싶어서 허는게 아니예요. 아직까지 세상고생을 몰으구자란 봉희씨가 나같은 사람을 결혼의 상 재다로까지 생각을 허신다면 과연 앞으로 어떠한 고생이든 지 죽는날까지 같이 할 참는 힘이 있을는지가 의문이예요.

또는 나같은 사람의 어떠헌 점을 취해서 한평생의 운명을 맡기려는지, 난 아직 봉희씨의 속마음을 잘알지 못해요."

하고 매우 침착한 어조로

"봉희씨! 대관전 진정으루나를 사랑허세요?"

하고는 검붉은 얼굴이 대초빛이 된다. 봉희는 부끄럼없이 얼굴을 들었다.

"그건 무슨 새삼스런 말슴이야요? 왜 내가 맨첨에 편지대 신 적어보낸 시를 잊어버리섰에요 난 이세상 남자중에는 맨 처음 세철씨를 알었으니까 맨 나종까지 단한사람헌테만......

사랑은 둘이아니요 다만 하나뿐이니까요"

"그렇지만 나는 조금두 봉희씨의 사랑을 독점헐 아무 자격 이 없는 사람이요"

"내가 세철씨를 사랑허는것만큼 그 이상으로 세철씨도 나 를 사랑해주신다면 벌서 내 사랑을 받으실 자격이 생긴게 아니야요?"

하고 봉희는 세철의 말을반박하듯 하더니

"처음엔 세철씨가 이 천지간에 의지헐 사람이 없는외로운 사람이신데 무한히 동정을 했어요 그러다가 사괴어 볼수록 그렇게 지독한 고생을 해가시면서도 조금도 장래를 비관치 않으시는 것, 아무리 어려워도 털끝만치도 남을 의뢰허지 않으시고 누구헌테나 머리를 숙이지 않고 무엇이고 내손으 로 허구야 말겠다는 의지력(意志力)이 강철처럼 구드신데 탄 복을 했어요"

"아니아요"

봉희는 머리를 흔들며 굳세가 세철의 말을 부인하였다.

"내가 세철씨를 사랑허는건요, 저렇게 남성적으로 단련을 받으신 건강한 몸이, 그 온몸이 이 사회의 모순과 부정헌것 과 싸와나가려는 열정에 부글 부글 끓고 있어요. 세철씨 곁 에만 가면 내가 입때까지 공상허든것이나 전에도 노'히니꾸' 를허시든 처녀적인'쎈티' 헌감정이 그 정렬이 그 불길에 녹 아버리고 다른 세계가 눈앞에 환 하게 내다뵈는 것 같아요."

하고 푹 엎드리더니 세철의 무릎에 이마를 부비며

"난 몰라요. 그밖에 난몰라요. 왜 세철씨를 만나지 않구는 견딜수가 없는지.........

난 이렇게 한평생을 세철씨 곁을 떠나고 싶지않어요 난 아 무것도 몰으고 세상 경험도 없지만 몸이 으스러지는 한이 있드래도 무슨 짓이든지 해서 세철씨를 행복허게 해 드릴테 야요"

봉희의 목소리는 감격에 떨린다. 세철은 매우 침통한표정 으로 아래 입술을 지긋이 깨물고 봉희의사랑의 고백을 듣는 다. 봉희는 머리를 번쩍 들며

"왜 아무 대답도 않어서요? 세철씨는 나를 어떻게 생각허 서요?"

하고는 저만 먼저 고백을한 것이 분하기나 한 듯이 달려 들듣하며 세철의 대답을 재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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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철은 두꺼운 입술을 꽉담을고 팔짱을 끼고 앉어서 봉희 의 질문을 받고도 쥐오줌으로 세계지도를 그린 천장을한참 이나 처다보더니

"그땐 맨 첨으루 써보내신시를 날더러 잊었다구 하겠지요?

천만에, 잊어버렸을 리가 있나요. 구절구절이 이가슴에 색여 두었에요"

하고 븡그시 내민 저의 가슴을가르치더니

"사랑은 비뒤의 무지개처럼 사람의 감정과 리상을 무한히 끓어 올리는 가장 아름다운인생의 목표라구 했지요? 나는 그 사랑이라는 것을 생후에 처음으로 봉희씨 헌테서 느꼈에 요. 어디서 무슨 바람에 날려왔는지 모르는 이름도 없는 씨 앗 한톨이, 낙엽틈에끼어서 거츠른 벌판을 저홀로 굴러다니 며 아무헌테나 짓밟히다가 처음으로 단비를 촉촉히 마진것 같어요. 꺼풀만 남은 쭉정이가 그빗물에 불어서 싹이 도드 려구 하는 것은 그야말로 상상도 하지못했든 기적(奇籍)이예 요. 그 기적을 행한 요술쟁이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이 봉희씨니까요"

하고세철은 봉희의 손을덤석 쥐고 목소리를 조금높여

"봉희씨가 이 세상에서 처음 만난 남자가 나라구했지요. 그 와 마찬가지로 나두 지금은 얼굴두 잊어버린 어머니에게서 도 못하든 애정을 봉희씨에게서 느꼈에요. 그러니까 나헌테 있어서 봉희씨는 온 세계의 여성들이 나헌테 파견한 다만 한사람뿐인 사랑의 사도요, 대표자가 아니겠어요?"

세철의말은 점점정렬을 띠우고 봉희의얼굴은 점점 혈조(血 潮)를 띠운다.

"봉희씨! 그렇지만 사랑이라는 것이 아모리 그 본질은 신성 한것이래도 두남녀끼리만 독차지를 하는 가장 리기적(利己 的)이요 배타적(排他的)인 연애가 돼선 못쓸줄알어요. 우리 돌이서만달큼한 연애의 꿈을꾸고 지낼수있도록 이 조선의 현실이란 편안치가 못하니까요. 또는 심술사납고 작난꾼인 운명(運命)이라는 것이 우리두사람에게만 연애를향낙할 시간 과 여유를 주지도 않을테지요"

여기까지 잠자꼬 듣고앉었든 봉희는 일종의불안을 느끼며

"그럼 리기적이 아닌사랑이란 어떤건가요?"

하고 고개를든다. 세철은아래웃니를 꽉물고 뜸을드리는데 숨소리가 차츰차츰 높아진다.

"우리의 사랑은 폭포수같어야해요. 바위를차고 모래를 짓찟 고 천길이나 나려치는 폭포수같이 거침없이 나가야 해요..

우리두사람의 가슴속에서 끓어오르는 사랑은 어느때를 맛나 면 화산처럼 폭발하여서 의분에 타는시뻘언 분로의불길을 분화구처럼 뿜어내게 해야만해요. 그시에도 그러지 않었에 요"

'사랑은 의를 위해서붉은피로 역사를 물들인다'고 세철의 얼굴의 근육은 찢어질 듯이 긴장하고 전신의피는 머리로 끓 어 올으는 듯이 상기가 되었다.

세철은 봉희의 손을놓고 물러앉으며 이제까지 한 말의 결 론을 짓는다.

"봉희씨! 나는 당신을사랑하기 때문에 극진히 사랑하기 때 문에 약혼은 할수없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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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그게 무슨 말슴이야요?"

봉희는 놀라지 않을수없었다. 이제와서 약혼을 할수엇다고 딱 잡어때듯할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하였든 것이다. 세철은 졸지에 냉정한 눈초리로 동그라진 봉희의눈을 똑바로 들여 다보며

"봉희씨를 둘도없이 진정으로 사랑하기때문에 약조는 할수 없에요!"

하고 말의 구절마다 힘을들여서 되풀이 하였다.

봉희는 그말 한마디를 따저묻자 고만 낭판이 떨어저서 돌 팔매를마진 실과나무가지처럼 머리를 떨어 트렸다.

두사람 사이에는 거진 십분동안이나 무거운 침묵이흘렀다.

창밖에는 날이 저물어, 전등도 없는 방안은 안개가끼듯이 점점 침침해 온다.

"그게 진정이세요?"

하고 간신히 이마를 들고 나즉이 뭇는 봉희의 목소리는 울 음에 떨렸다.

"내가 그런 중난한 일에 거짓말을 할 듯 싶어요?"

세철은 여전히 냉정한태도로 반박하듯한다. 두 번 다시재 처 물어서 약혼을 거절당한 것을 확실히 안 봉희는 무안하 다든지 무색하다는 말로는 허용할수 없을만치 머릿속에서 때아닌 폭풍우가 뒤세레는 듯 당장에 어지러뜨릴것같었다.

(사랑하기 때문에 약혼까지는 할수 없다구? 그런말이 어딧 서? 바루 나한테 마땅치 않은점이 있다구 솔직하게 말을하 는게옳지 그려.) 하고 봉희는 자존심을 상해서 제가 먼저 사랑을 고백하고 결혼까지 할 약속을 해달라고 재촉 비슷이 한 것을 뉘우첬다.

(내가 어리석지. 남의 속은 똑바로 알지도 못하구서 그런 말을 먼저 했으니.....) 하며 세철에게 농락을 당한것처럼 슬그머니 분한 생각까지 들었다. 그러나

"왜 내가 당신허구결혼할 자격이 없어요? 당신의 눈에 뭐 부족해요?"

하고 빠득 빠득 달려들며 약혼까지는 할수없다는 이유를 미주알 고주알캐고 앉었술수도 없다. 봉희는 얼굴이 붉었다 햇슥해젔다 하다가 (내가 뭘하러 저이 앞에 마주 앉었서) 하고는 금새로 제 얼굴과 몸둥이 까지도 세철에게 더보이 고 싶지 않었다.

(창피하게 뭘 바라고 턱을처들고 앉었는거야) 하고 남의 말하듯하고 막일어서려 하는데 홀연히 별당에서 보든 '횟박'이 환등처럼 눈앞에 나타난다. '횟박'은 제게로 오라는 듯이 손직을 까 한다. 그의 등뒤에서는 장구통같은 머리에 헌데가 덕지덕지 해가지고 저고리 앞자락 을 질질흘 리는 실랑감이 제앞으로팔을 버리며 지척지척 걸어온다. 봉 희는 눈쌀을 잔뜩 찌프리며 고개를 홱 돌렸다. 세철은 손작 란처럼 '라듸오'에 쓰는 철사를 엄지손가락에다 돌돌 감고 앉어서 겻눈으로 흘금 흘금 봉희의눈치만 살핀다. 봉희는 급작스리 세철이가 능글마진 것 같어서

"난 가요!"

하고 발딱 일어서며 치마자락을 털었다. 세철은 물끄럼히 봉희의 얼굴을 처다보더니

"게 앉으세요"

하고 방바닥을 가르치더니

"저녁때가 지내서 배가 고픈데...... 나 밥좀 지어주구 가시 지요"

하고 위엄있게 명령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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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희는 슬그머니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달은 일이면 몰 으되 시장허니 저녁을 먹게해 달라는 사람을 떼치고갈수는 없었다. 또 한편으로는 세철이가 밥을 먹게해달라는 것이 정답기도하고 둘이서 이제까지 사괴어 오는동안 한끼도 음 식을 같이 먹어 본적도 없어서 약혼일절은 어찌되였든 저녁 이나 함께 먹어 보고도 싶었다.

(돈이나 가지고 왔드면 뭐나좀 식켜다 먹을걸) 하고 서성거리다가

"밥을 어떻게 지어요?"

하고 물었다.

"밥을 어떻게 짓다니요? 밥을 지을줄 몰으는 여자두 있나 요? 쌀을 삶으면 밥이 되겠지요? 저 궤짝속의 신문지 봉지 에 쌀이 들었으니 꺼내세요"

하고 세철늠 턱으로 밖았 툇마루에 놓인 석유궤짝을 가르 친다.

"쌀만 있으면 어떻게요?"

봉희는 밥을 어떻게 지을지도 겁이 나는데 반찬거리가 걱 정이 되어서 물었다. 세철은

"간장이나 소금만 있으면 넘어가지요"

하고 양복바지 주머니를 훔척훔척하더니 십전짜리 백통전 한푼을 끄내주며

"자 이걸루 솜씨껏 반찬을 맛나게 해보세요. 난 오늘 저녁 안으로 이기계를다 맞추어 놔야겠어서......"

하고 알록알록한 실로감은 철사를 얼레같은데다가 나르고 앉었다. 봉희는 잠자코 쌀봉지를 들고 툇마루로 나가며 (이를 어쩌면 조와. 밥을 한번이나 지어봤어야지) 하고 팔을 것고는 설거지도 아니해서 밥풀이 눌어붙은 조 그만 양솟을 가시고 이남박을 찾다가 없으니까 쪽떨어진 박 아지에다가 돌섺인 쌀을 손으로 주물러 대강일어서 앉처 놓고 (그래도 무슨 국물이 있어야지. 심부름할 애도 없으니.....) 하고 뜰아래로 나려서서 올지갈지를 하다가 (이왕이면 못할게 뭐야)하고 큰 결심을하고 십전 한푼을 들 고 골목밖으로 나가서 고기오전어치에 두부한채와 파한뿌리 를 사가지고는 누가볼가보아 다름질을 해서 들어왔다 길을 것다가도 고기관앞을 피해다니든 봉희가 찌개고기 오전어치 를 사러 그고기관으로 들어가서

"오전어치만주"

하지 않을수없었다.

숫이 떨어저서 군불을 때나 남은 장작을 화덕에다 집히고 후 후 불고 애를쓴다. 세철이가 봉희의 하는양을 보느라고 미닫이를 열고내어다 보는데, 봉희는 줄줄흘르는 눈물을 교 복 소매로 씻고 앉었다. 세철이가

"웨 그렇게 서러서 울어요?"

하고 핀잔하듯 하니까

"울긴 누가 울어요. 연기가 매우니깐 그렇지요"

봉희는 벌개진 눈을 부비며 울지 않었단 변명을하듯이 웃 어 보인다.

이윽고 쥐코밥상이 들어왔다. 봉희가 신혼한 가정의 주부 처럼 무릎을 꿀고 앉어서 공기에 밥을 담어 올리는데 밥에 서 단내가 물큰하고 끼친다. 밥은 삼층으로 되었는데 밑바 닥은 시껌엏게 눌어붓고 중동은 젯밥처럼 되다랐코 우층은 골끌어서 쌀알이 고대로 있다. 간장만 들어부어서 우루루 끓인 것은 국도 아니요 지지미도 아니요 그렇다고 찌개도 아니다. 국물만 장마통의한강처럼 흥건한데 승덩승덩 썰어 넣은파잎새만 뗏목처럼 떠돌아 다닌다.

세철은 으직끈하고 돌맹이를 깨물었다.

"이거 치과병원엘 가야겠군"

하고 비꼬는 말에 봉희는

"이남박 하나 없으니깐 그렇조"

하고 눈을 살짝 흘겼다.

"아무튼 밥하나 지어먹을줄몰으는 여자는 시집을 갈 자격 이 없에요"

하고 세철은 봉희가 첫 번시험에 훌륭히 낙제를 한 것을 면대해서 발표하였다. 봉희는 얼굴을 붉히며 말을못하면서 도 세철이와 서로 담어주어가며 먹는 밥이 여간맛이 있지 않었다.

오늘저녁처럼 찬없는 밥을먹어보기도 생후 처음이요, 제손 으로 지은 그 찬없는 밥이 그다지 맛이 있어보기도 또한 생 후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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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후에 세철은

"그래두 정성껏 지어주신 밥이라 퍽 맛있게 먹었에요"

하더니

"인제 난 갈테야요. 집에서 기다릴텐데....."

하고 봉희가 일어서는 것을 처다보며

"집에서 누가 기다려요? 한참판집에서 사주나 와서기다릴 까요"

하고 씽긋 웃더니 툇마루에다가 그릇을 늘어논 것을 보고

"우아 설거지는 날더러 허란말이지요?"

하고 그 그릇을 포개담어서 봉희에게 내여민다.

"같이 먹었으니깐 같이 치어야 공평 허지요"

하면서도 봉희는 나가서 그릇을 대강 치어 놓고 들어왔다.

자꾸 빈정거리기만 하는 세철을 붓잡고

"그래 약혼이야기는 우물쭈물 허구 말셈이야요?"

하고 한마디를 다지고 싶은 것을 (어디 얼마나 자기혼자 사낸체를 허나 두구볼걸) 하고

"이젠 참정말 갈테야요"

하고 마루끝에서 작별을 하였다. 이번에는 세철도 더붓잡 을수가 없었다.

"래일이래두 또 오실테지요?"

"또 와선 뭘해요. 밤낮 '히니꾸'빈정거리기만 허시는 걸요"

"그러치만 내 '히니꾸'가 약이 될 날이 있을걸요. 아무튼 급 헌 일이 있거든 내게 알려나 주세요"

하고 세철은 문박까지 봉희를 작별하였다.

행길에는 전등이 들어온지도 오래였다. 봉희는 사실 인숙 이밖에는 그다지 기다려 줄사람도 없는 집으로 향해서 급히 걸으면서도

"사랑허기 때문에 약혼을 못허겠다구? 지극히 나를사랑허 기 때문에......."

하고 여배우가 '세리후'를외듯하면서 저녁을 다른데서 먹고 들어 가는 것이 죄되는 듯이 머리를 들지못하고 집으로 돌 아왔다.

인숙은 마루끝으로 나오며 여전히 시누의를 반겼다.

"어디서 인제 오? 퍽 시장허겠구려"

하고 밥상을 차리려는 것을

"나 저녁 먹구왔우"

하고 봉희는 세철에게서 밥을 지어 먹고 왔다고 바른대로 고백을 하였다.

"아이고 별일이지, 자근아씨가 손수밥을 다 지여보고......

연습을 톡톡이 허는구려"

하고는 혹시나 누가 들을가하고 좌우를 둘러보며

"난 첨버텀 자근아씨가 그박씨헌테 다니는걸 반대는허지 않고, 내가 참견을 허는걸 싫여허는 줄두 알지만 개수통에 손한번 당거보지 않코 자란난 자근아씨가 그렇게 아무것도 없는사람허구 너무걸맞지가 안는구려. 빈정거리긴 잘해두 것헐렁이 속든든이지만....."

하고 제일과 다름없이 걱정을 해준다.

"우리집은 뭬 있을줄아우 빗만 산뗌이 처럼 지구 앉어 서.......

빗 한푼 없는사람이 되려부자가 아니요? 그렇지만 오늘처 럼 속이 상해선........ 난 인제 그이헌테두 안갈테야"

"왜? 너무 가까우면 틀리기두 쉬운법이라우"

하더니 인숙은

"잠간만 기다류"

하고 저의 방으로 들어갔다가 나온다. 무엇을 소매속에다 가 감추어가지고 나오는 것 같어서 봉희는

"그게 뭐요?"

하고 닥어서며 울었다. 인숙은 눈짓을 해서 사람이 없는 대방구석으로 시누의를데리고 들어가서

"만지장서가 또 왔구려. 글세 이걸 어떡허면 좋우? 요행 이 번에두 편지가 내손에 들어 왔는데 오빠헌테두 그런말은 비 치지두않었으니 무슨 말을 했는지 혼자서 뜨더보구 찌저버 류"

하고 넌짓이 주는 것은 피봉글시만 보아도 눈에 익은장발 의 편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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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뭐라구 미친여석. 암만 편지를 해보라지"

하고 봉희는 여전이 장발의 편지를 뜨더볼 생각도 아니하 고 인숙의 손에다가 도로 던진다.

"그래두 또 무슨 소리를 했는지 몰으니 뜨더는 봐야허우"

하고 인숙은 편지를 처치하기가 거북해서

"그럼 내가 뜨더봐야 괜찮우?"

하고 싀누의의 양해를 구한다.

"난 몰루. 뜨더보구려"

봉희의 승낙을 받고 인숙은 편잔를 뜨덧다. 편전지로 십여 장이나 되는 사연은 판에 박은듯한 연애 타령으로 편지마다 되풀이를 하는것이나, 끝에가서 '봄방학이 며칠남지 않어서 귀환하겠다는것과 그때는 무슨 일이 있든지간에 저에게는 생사가 달린 약혼문제를 해결하고야 말 결심이니 미리 각오 를 하고 기다려 달라'는 반은 위협적인 강경한 문구였다. 인 숙은 적지않게겁이나서 자꾸만 그 자리를 피하려고 드는 싀 누의를 붓잡고 편지 끝 구절을 읽어들렸다.

"어쨋든 한편에선 몇해를두구 이렇게 죽느니 사느니 허는 데 넘우 무심허게 내버려 두다간 정말 큰일이 버러 질는지 누가 아우?"

"글세 큰일은 무슨 큰일이난다구 그리우? 새언니두 겁쟁이 로구려. 여러말헐게 있우. 벌서 정혼을 헌데가 있다면 제가 어쩔테야"

"그래두 이렇게 주책없이날뛰는 사람은 잘못 덧들려놓면 선불마진 증생처럼 덤벼드러서 이담에라도 자근아씨헌테 어 떤 위험헌 짓을 헐지 누가 안답디까 아무튼 장발이는 오빠 허구 친허게 지내든 친구니까 이 편지를 오빠헌테 한번뵈구 서 의론을 헙시다."

하고 인숙은 그 편지를 다시 소매속에다가 감춘다.

만사에 조심성스러운 인숙은 이집의 누구보다도 정이 들고 친동생과 같이 사랑하는 싀누의의 신변에 무슨 위헌한일이 시시각각으로 닥처오는것같은 불안을 느끼든 것이다. 어떤 학생은 실연을당하고 원한에 떨리는 칼을 휘둘으며 결혼식 장으로 뛰어들어가서 신부를 찔으려다가 목적을 달치못하고 현장에서 포승을 지는 불상사를 일으켜 신부의 가슴에 한평 생 뽑지 못할 못을 박은 사실도 있고, 또 어떤 시골총각은 어려서부터 한 이웃에서 자라나서 꼭 제사람이 될줄알고 외 기러기 짝사랑을하듯 색시를 동무에게 빼아끼고 극도로 흥 분한 끝에 혼인날 미처나서 마른날이나 구진날이나 밤중이 면 도깨비처럼 그 색시가 살님을하는 새집을타리 밖으로 구 슬푼 노래를불으며 돌아 다녀서 그 색시가 일홈몰을 병에걸 리더니 꼬치꼬치 말러죽고 말었다는 이야기를 바로 제귀로 들은터이라, 누구에게나 적원을 질것이 아니라고 평시부터 남의일같지 않게 생각하여 왔든 것이다.

(오늘 저녁에는 남편의 눈치를 보아서 의거리 밑바닥에 감 초 둔아 편지까지 끄내서 보여주고 장발에게 약혼일절은 단 념을 하라고 좋은 말로 미리 편지나 써붙이게 하리라) 하고 인숙은 제방으로 드러갔다. 그러나 그동안 저의 극진 한 간호로 심신의 안정을 얻어서 병도 매우 차도가있든 봉 환은 인숙이가 들여다보지않은 불과 한시간동안에 얼굴빛이 변해가지고 정신이상이 생긴것처럼 바람벽에다가 머리를 쾅 쾅 부딧다가는 무서운 눈초리로 인숙을 흘깃 처다보고

"나가 있어!"

하고 소리를 벽력가치 지른다. 방안을 살피니 방바닥에는 쪼각쪼각 찌저던진 종이조각이 흐트러젔다. 그동안 상노가 엽서 한 장을 전하고 나갔었는데 '부산' 우편국 일부인이 찍 힌 엽서에 연필로 갈겨쓴 사연은 매우 간단하였다.

<오랫동안 신세를 많이 젔습니다 당신의 덕택으로 뜻밖에 조선까지와서 진기한 구경을 잘하고 다시 현해탄을 건너갑 니다. 아모조록 몸조섬을 잘하십시오 곁에서 박귀양씨가 안 부를전해 달라고 합니다.

연락선에 오르며 사요꼬 >

十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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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은 점심때나 거진 되었는데 비어둔 사랑채가 떠들석 하더니 상노가 황당히 뛰어들어와

"이런 사람들이 찾어와서 주인어른을 보자구 헙니다"

하고 귀다란 명함을 봉환에게 준다. 명함에는 경성지방법 원소속인 집달리의 일홈이 박혀있다. 봉환은 적지아니 놀라며

"이집 주인은 안게시다구 그래라"

하고 화를 더럭 내며 명함을 도로 내던진다. 상노가 나간 후 조금있자 바루 안중문깐에서 집달리와 상노가 승강이를 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집에 주인이 없다면 명함을 보고 도 로내여보낸 사람은 누구냐"느니 "자근서방님은 계서도 병환 으로 누섰다"느니 말이 순순치않게 오고가는데

"죽을 병이 들지 않었으면 저의집 세간의 집행을 당허는데 내다 보지두 못헌단말야"

하고 으루딱딱거리는 소리가 봉환의 귀에까지 들렸다. 집 행을 당한다는 말한마디가 안으로 굴러 들어가자 안식구들 의 얼굴은 금새 흙빛이 되었다. 용환의댁내는 옷을다리다가 다디미를 던지고 성경책을 보고앉었든 과수댁은

"아 집행을 당허다께 이게 무슨 소리요"

하고 책을 떨어트리여 눈이 희동그래진다. 인숙은 찬간에 서 남편의 점심을 차리다가 동자치에게 그소리를 듣고 다리 에 맥시 풀려서 간신히 마루우로 올러왔다.

횡덩그런 집안의 공기는 사형집행과같이 살기를 띠우고 수 성 수성해젔다.

"이집에 밖앗 주인 좀나오시오"

하는 굵다란 목소리가 들리자 시컴언 양복을 입은사람이 서넛이나 안마당으로 우적우적 들어선다.

"누가 남의집엘 함부로 들어와"

소리와 함께 봉환은 샤쓰바람으로 미닫이를 발길로 걷어차 듯하며 내달었다.

검정'쓰메에리'에 반백이된 머리를 박박 깎은 집달 리가 두 어거름 봉환의 앞으로와서 동산가차압명령서를 내보이며

"당신이 이집 호주인 ○○○의 아들이요?"

몇십년을 직업적으로 그런일만 다니며 해먹어 이골이난 늙 은 집달리의 말과 태도는 어름과같이 차다. 봉환은 저의 아 버지의 일홈을 함부로 불르는 것을 이제것 들어본적이 없든 터이라 속으로는 더할수없이 괘씸하나 툭명스럽게라도

"그렀오"

하고 대답을 아니할수 없었다.

"그러면 지금부터 법규대로 처분을 헐텐데 세간집물을 현 재 있는대로 하나도 빼어 돌리거나 하면 처벌당헐 것을 각 오하시오"

하고 같이 온 젊은 집달리에게 눈짓을 한다. 젊은집달리는 커다란 장부책같은 것을 펴들고 구두를 신은채로 대청으로 올러서려는 늙은집달리의 뒤를 따른다. 봉환은 얼굴이 샛노 래가지고 팔을버리고 앞을 막어서며

"안돼. 난 립회헐수 없오. 우리 형님의 채무는 있는지 몰으 지만 형님이 호주가 아니니까 함부로 집행은 못허오"

하고 버티니까 집달리뒤에섰든 신사양복을 입은 변호사 사 무원인듯한 안경잡이가 간교한 우슴을 띠우고 봉환의 앞으 로 닥어오며

"아무리 백씨의 채무래두 댁의 동산 부동산이 아직두 전부 춘부장의 명의로 있는이상 헐수 없는 일이니 로형이 아른체 헐게 아니요"

하고 채권자에게서 위임을맡은 서류까지 내여 보인다.

"어쨋든 우리 아버지는 일푼도 남의 빗을 진일이 없으니까 아들의 빗으로 차압을 허는건 비법이 아니요?"

"그건 로형이 법률을 몰으는 말이지 그렇다면 아들이 호주 의 승낙이 없이 도장을 첫거나 문서위조를 해서 아버지의 재산을 잡혀 먹은게 틀림없으이까 아들을걸어서 고소를 헐 밖에 도리가 없으니...... 거기까지야 궁가의체면상......."

하는데 늙은집달 리가 눈살을 잔뜩 찦으리며

"당신이 무슨 여러말요?"

하고 변호사 사무원에게 핀잔을주고나서 올라서기만 허면 발길질이라도 할 자세를취하고버티고선 봉환을 처다보고

"우리는 재판소 명령대루만 허는사람이니까 경관을 불러다 가 입회를 시키구래두 집행을헐 권한이 있오. 만일 우리헌 테 폭행을 허는 경우에는 공무집행 방해죄로 삼년이하의 징 역을 갈테니 그쯤 아시오"

하고 눈을 부라리며 단단히 얼러멘다.

十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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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환은 삼년이하의 징역을 간다는 말에 슬그머니 겁도났거 니와 가차압을 한 대도 당장에 경매를 하는 것이 아니요, 일정한 기한안에 이의를 신립할 수가 있다는 말을 듣고

"기왕 창피를 당헌걸 여러말슴허시면 뭘해요 어른들이 알 어 허실걸 어서 들어가세요"

하고 등뒤에서 인숙이가 신경이 과민해진 남편이 무슨일을 저질를가 보아 오들오들 떨면서 소매를 끌어다려서 못이긴 체하고 제방으로 들어가 누어버렸다. 집달리들은 나종에 말 성이 생길가보아 순사까지 불러다가 입회를시키고 대청에서 부터

"뒤주가 하나-"

"삼층 찭아이 한쌍-"

하고 불르고 적고 하면서 빨안 쪽지를 부치며 들어온다.

봉환이가 마루끝에서 집달리와 시단으랗고 순사가 오고 하 는 동안에 안에서는 수라장이 된 듯 야단법석을 하였다. 그 중에도 과부댁은

"아이고 이를 어쩌나. 아이고 이걸 어따 좀 감춰야지"

하고 갑나가는 저의 비단옷과 금부치며 죽은 남편의 옷까 지 한뭉텡이를 싸들고 짤짤 매면서 이구퉁이 저구퉁이로 허 둥지둥 돌아다니다가 이집에서 제일구석진 인숙의방으로 뛰 어들어가서는

"이것좀 저 의거리속에 넣주게 응 어서 어서"

하고 호들갑을 떤다.

"그사람들이 이방엔 안오나요"

하면서도 인숙은 마지못해서 채 끈도 매지 못한 옷보퉁이 를 의거리 속에다 틀어넣는?로 내버려 두었다.

과부댁은 그래도 미심한 듯 의거리속에서 와르르헤어진 옷 과 패물등속을 두손버무리를해서 인숙의 것과 뒤섞어놓고 제손으로 잠을쇠 까지 채고 나갔다. 난리가 나면 화를 당하 기는 일반 인데 촌사람들이 이동내서 저동내로 서로 개아미 쳇바쿠 돌 듯이 뺑뺑 돌면서 피난을 다니듯이 옷 보퉁이를 끼고 와서 허둥지둥 하는 동서의 하는꼴이 분요중에도 웃우 워서 인숙은(저렇게두 제것만 아까울가)하였다. 그러면서도 집안을저혼자 알뜰살뜰이도 망해 놓는다고 큰형을 개꾸짓듯 하고앉었는 남편이 밖으로 또 뛰어나가지나 않을가하고 감 시를 하느라고 다른 생각을할 경황이없었다.

봉환이가 안으로 들어와누은뒤에 자근형수는

"흥 차차 내꼴이 돼가는군 저렇게 둘이만 밤낮 부터있으면 병조섬은 잘될걸"

하고 저에게는 털끝만치도 상관없는 일에 동서를 빈정거리 고 괜이 잡어 흔들었다.

아직까지도 제가 넘우 남편을 바처서 아들이 죽었다고 인 정을하는 시부모에게대한 불평을, 만만한 인숙에게다 풀어 보려는 뜻이 나날이 '히스테리' 증세가 심해갔었다. 그렇것 만 인숙은 (암만 그래보래지 한편생한집에서 살기야 헐라구)하고 치지 도외를 해오다가 집행을 당하는 서슬에 급하니까 제방으로 뛰어온 사람을 내쫓일수도 없어서 허는대로 내버려 두었든 것이다.

집달리들은 봉환의 태도에감정이 상해서 사당채와 별당채 만 간신히 건드리지 않고는 부엌으로 들어가 부정기와 물독 에까지 깡그리 쪽지를 부치고는 봉환의 도장을 내오래서 차 압물 보관서에 도장을찍은후

"차압이 해제가 되는때까지 표를 부친 물건을 쓰거나 자리 를 옴겨놓지도 못허는 법이니 그런줄 아소"

하고 위엄을 부리며일부러까다랍게 굴다가

"귀족의 집 세간에두 쪽지가 곳잘 붙는군"

"아마 이번까지 이런집이 네 번째지"

하고 저이끼리 중얼거리며나갔다.

그런지 한오분만이다. 안채대방근처에서 난대없는 시껌은 연기가 뭉게뭉게 지붕우로 서리어 올러간다. 조금있자

"불야!"

하는 철성을 띤 여자의 목소리가 사랑채까지 짜랑짜랑하게 울렸다.

十三

[편집]

용환의 댁은 집달리들이 대청으로 웃적 올라설 때 가슴이 덜컥 나려앉어서 기절을 할번하였다 원체 심약한 사람이 노 상 골골하고 잔병치례를 하든 끝에 평생처음으로 불시에 그 런 놀라운 일을 당해서 고만 본정신을 잃었다 더군다나 자 기의 남편 때문에 점잖은 집안에 그런 불상사를 일으키고 죄없는 동서들까지 더할 수 없는 창피를 당하게 한생각을 하고 몸둘 곳을 몰라하였다. 그러다가 자기의 눈에는 지옥 의 사자같은 집달리들이 건넌방을 열어제치고 진발로 들어 와서 속옷한벌 버선한짝까지 꺼내지를 못하게 봉해놓고 나 가는 것을 보고는 어찌나 분하고 절통하든지 발작적으로 흥 분이 되어서

"네놈들이 손을댄옷을 더럽게끔 내몸에다 다시붙일줄 아느 냐."

하고 부르짖고는 딱지를 잡아떼고 의복을 말끔 끄내서 앞 마당에다 풀풀 던젔다. 그러고도 분이 풀리지를 않어서 버 선발로 나려가 죽은사람의 옷처럼 흩으러진 것을 끄러뫃더 니 석냥불을 확 그어대여 불을 질렀다. 남편이 딴계집을 두 고 평생 자기를 돌아다 보지않는 원한과 부인네의 속옷까지 차압을 당한 분노가 시껌엏게 서리어올르는 연기속의 불길 과 같이 활활 타는 듯 자못 통쾌하였다. 그것을 본 과부댁은

"애고 이를 어째. 형님이 금방 맘이 변하섰나. 이걸어떡하 나"

하고 마루끝에서 허둥거리다가 (불야!) 소리를 외첬든 것이다.

불을 보자 집안사람들이 총출동을 해서 물을 끼언고 이불 을 뒤집어씨우고 하야서 불을 잡었는데도 용환의 댁은

"내버려 둬. 재두 남기지 않구 말끔 타버리게 내버려둬"

하고 소리를 질르며 신이올른 무당처럼 이리뛰고 저리뛰고 하면서 불을 끄지못하게 하느라고 죽을힘을 드려 훼방을 놓 는 것을, 인숙이와 아랬것들이 간신이 붙들어 올렸다. 그 몇 분동안의 용환의댁의 행동은 평상시에 그다지 조신하고 누 구에게나 인종(忍從)을 해오든 사람으로는 누구나 상상할수 없을만한 최후의 발악과 같았다.

집행을 당했다는 급보를 받은 자직내외는 그 이튼날에야 문안으로 들어왔다.

용환은 황해도 어느 온천에가 들어 누어서 화를피하고 청 직이까지도 도망을가고 없는터이라 화로저녁 방바닥을치고 통곡을 하며 밤을밝힌 자작은, 손소 친척들을 찾아다니며 힌 머리를 숙여 위선 차압당한것이나 풀게해달라고 사정사 정을 하였다. 아직도 제앞이 넉넉한 일가들은

"거 안됐구료. 그런말은 안들으니만 못헌걸"

하고 헛 입맛만 다서보이고는

"대감두 알다싶이 내집형편두 역시......"

하고 자기네의 설궁을 갑절이나 한다. 자작은 하는수없이 죽기보다 싫건만 절교를하고 지내든 귀양의 아버지 박남작 을 찾아 갔다.

"노형의 자식이나 내자식이나 한데 묶어서 단매에 따려주 여야 헙넨다. 아 귀양이란놈은 '포천'있는 제징조의 위답을 몰래팔어 가지구 일본으루 도망을 갔구려"

하고 별르고 잇었든것처럼 친구에게다 화풀이를 하러든다.

자작은 마지막으로 왕가의 사무소로 가서

"자식을 잘못둔 죄로 욕이 선조의 사당에까지 미칠지경이 니 다시 한번만 흥대하옵신 처분이 나리도록 해줍시사"

하고 고두백배를 하며 눈물을 흘려가면서 탄원을 하였다.

그래서 요행으로 기차압을 당한지 일주일만에 세간집물만은 해제를 받게 되었다.

十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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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의 급한문제가 겨우진정 되자 봉희의 혼인문제가 다시 머리를 들었다.

"등신이래두, 우리가 집에들어와 있어야지 이대루 내버려 두었다가는 집채를 떠 메여가두 모르겠구나"

하고 대감은 다시 문안으로 들어와 있기로 하였다.

어느날 올해로는 처음으로 봄비가 촉촉이 나리는 아침에 별당노인에게 불려 올러갔든 자작은 입맛을 쩍쩍다시며 나 려왔다.

"어머니께서 덮어놓구 봉희를 한참판집으로 정혼을허라구 그러시니 어떡허면 좋소? 노망이나신 어른의 말슴을 종잡을 수는 없지만 당신이 벌서 허락을해 놓섰는데 일간 사주까지 가저나오라구 허섰다니 일이딱하지 않소?"

하고 마누라에게 의론을 한다.

"글세 어머님두 떡허시지. 지체두 우리집하구 댈때가 아니 지만 사윗감이나 합당해야지. 그나마 내눈으로 보지나 않었 으면 모르지만 그못나빠진것헌테 우리 봉희를 맡기기는 참 정말 아까워요."

"그야 도야지에게 진주를 물리는수두 많으니까.......사윗재 목이 너무 똑똑하면 되려 걱정입넨다 툭 하면 리혼을 당하 구 쫓겨 오는 세상에 되려 제 계집이 제일인줄만 알구 엎들 어지는 못난듯한 놈을 맡겨버리는것두 안전지책은 되거든.

한가의집 아들과 연분이 닷는지도 누가아우? 봉희란년이 제 나이로는 너무 지나치게 숙성해서 올봄에는 어디로든지 처 치를 해야지 말만한게 인젠 중해봬서......"

하고 자작은 막내딸을 한참판의집 문열이와 정혼을하는 것 을 반대하는셈인지 모를 소리를 한다

"글세 대감말슴이 옳기두하지만......"

마누라역시 요령을 잡을 수 없는 대답을한다. 그들은 딸을 훌륭한 사람을 골라맡겨서 그 장래의 행복을 도모해 주려는 부모로서의 의무보다도, 장성한 식구하나를 속히 처치하는 것이 급한 문제였다. 그것을 금년의 연중행사중의 한 부분 으로 정하고 한번 남에게 떠맡긴 뒤에는 그저 나중에 문제 가 없도록 소박을 맞고 쫓겨 오지나말고 아들딸 낳고 소리 없이 살어서 친정부모의 속이나 썩히지 않도록 빌고 바랄뿐 이다.

또 한가지 봉희의 혼인문제를 속히 결정할 필요가있었다.

그것은 다른 까닭이 아니라 ○○궁이 아주 거덜이나서 신주 밖에 남은 것이 없다는 소문을 듣고, 옛날같으면 감히 생의 도 못할 자리에서 직접 간접으로 통혼이 들어왔었다.

"지금은 적서의 구별이 없는 세상이니......."

하고 첩의자식과 혼인을 정하자고 전인을 한 친구도 있었 고 아레대에서 모물전을해서 돈을 모은 중인의 집에서와 뱃 놈소리를 듣는 한강어느 더러운 부자까지 양반에 걸신이 들 려서 지체탐을하느라고 혼인비용은 얼마든지 당할테니 봉희 로 맏며느리를 삼어지라고 애걸을 하다싶이 하는 자리도 있 었다. 그런 말을 들을때마다 자작은 큰 모욕을 당한 듯이

"괫심한놈들 같으니, 아무리 천지가 뒤집혔기로 소뼉따귄지 말뼉따귄지도 모르는것들이 염체 내딸을 달래? 다시는 내앞 에서 그따위 소리를 하지마라"

하고 중간에 든 사람을 호령을 해 보냈었다. 그래서 자작 은 한번이라도 더 그러한 모욕을 당하기전에 뼈대만 과히 나쁘지 않은 가정에서 통혼이 있기만 하면 '옛소'하고 봉희 를 내여주랴 든 판이었다.

한편으로 봉희는 요즈음 졸업시험을 치르며 연습과에들어 갈 준비까지 겹처 하느라고 세철에게도 가지못하고 학교에 다녀만 오면 제방에 꾹 들어 앉어서 아무 소리도 뜯지못하 고 지냈다.

그러다가 어느날은 저녁뒤에 어스례 할땐데 대청이 수성수 성 하더니

"자근아씨 사주가 왔다지?"

하는 인숙의 목소리가 귓결에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