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녀성/제1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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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역의깃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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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희는 전신의 신경이 고막(鼓膜)으로 몰렸다.

"사주를 가져오다니?"

하는 소리가 저절로 입속에서 부르짖어졌다. 기하(幾何) 문 제를 풀든 연필을 집어던지고 일어서서 대청으로 통한 장지 를 빠금이 열고 인숙이와 눈이 마주치기를 기다려 손짓을했 다. 인숙은 시누이가 부르지를 않드래도 한씨가에서 사주가 왔다는 중대한 소식을 전하려고 틈을 엿보고있든터였다. 인 숙은 뒤를 돌려다보고 방으로 들어와 매우 긴장한 표정으로 시누이의 눈치를 살피며

"벌서 알었구려?"

한다.

"방에 꼭 들어앉은 사람이 알긴 뭘 알우!"

봉희는 더 자세한 말을 자어내기 위해서 일부러 아무 소리 도 못들은 체를 하였다. 인숙이 역시 그 눈치를채지 못한 것은 아니었만

"저...... 그 한씨가에서 사주가 왔는데 아버님께서 별당으로 가지구 올러가섰다우. 당장에 택일까지 허시려는지......."

하고 봉희의 속마음과 집안사정을 잘아는 인숙은 조심스러 운 듯이 저의 의견은 비최지를 않고 단순히 사주가 와서 시 아버지지가 양어머니에게 의론을 하러 올러간듯싶다는 보고 만을 하는데 끄첬다. 봉희는 얼굴이 딸기빛이 되어가지고

"난 알지두 못허는데 어떤놈이 사주를 보냈단말요?"

하고 폭백하듯하며 애매한 인숙에게로 달려든다. 인숙은 조금 물러서며

"낸들 아우"

하고 조금 물러 났다가는 다시 시누이의 앞으로 닥아서며 목소리를 나추어

"밖에서 누가 들으리다. 이버덤 더헌일이 닥처오면 어떡 헐 라우? 허기야 벌서 일이 급허겐 됐지만........"

하고 평상시보다도 더 정다히 타일르듯 한다.

"아 사주까지 왔으면 벌서다 된일이 아니요? 난 죽든 살든 어른들허구 단판 씨름을 해볼테요. 입때까진 허시는 대루 내버려 뒀지만 이젠 가만이 있을수가없수"

하고 인숙이가

"이러질 말구 참우. 오늘저녁만 더 생각을 해보구나서 어떡 허든지 해야지. 어른들이 역정을 내시면 되려 일만 커지지 않겠수?"

하고 한사코 붙잡는 것을

"나두 생각이 있으니 놔요!"

하고 뿌리치고는 한다름에 별당으로 올라갔다.

"너 마침 잘 올러왔다. 그러지 않어두 할머니께서 막 너를 부르라구 허시는데"

하고 아버지는 딸의 심상치않은 얼굴을 쳐다본다. 어머니 까지 올러와서 웃묵에가 시립을 하고 있다. 여간해서 웃는 법이 없든 할머니는 의미깊은 웃음을 띠우고 두눈을 찌긋하 고는 손녀를 쳐다보더니

"너 이년 인제 얼마안있으면 어른이 될테니 제발 적선에 왜장녀같은 저몽당치마는 벗어버리구 새색시답게 차리구 있 거라. 정혼 헌집에서 누가 와보든지허면 모양이 됐느냐"

하고 자기가 혼인을 정한 것을 공치사나 하듯한다.

"정혼요? 아 누가 혼인을 정했어요?"

봉희는 분함에 떨리는 목소리로 반역의 첫 번 화살을 던젔다.

"계동 한참판의 집으루 내가 정했다. 웨?"

할머니는 뜻밖 인 듯이 한마디를 하고는 손녀를 노려본다.

"어째서 할머니맘대로 제혼인을 정허서요?"

거침없이 새되게 쏘아대는 딸의 말에 어머니 아버지의 눈 은 둥그래졌다. 어떻게든지 터저나오는 딸의 입을 틀어막기 는 해야할텐데 창졸간이라 그야말로 어안이 벙벙한 모양이다.

"뭐야? 어째서 네혼인을 내맘대루 정했느냐구?"

하고 할머니는 금새 이통증이 생긴것처럼 옷간편으로 귀를 기우린다.

아버지는 형세가 재미없는 것을 보고

"엣 고년, 그게 무슨 말버르쟁이냐"

하고 딸에게 눈을 흘긴다. 봉희는 못본체하고 더한층 목소 리를 높여

"저허구 더 가까운 아버지 어머니두 맘대루 못허실텐데 할 머니가 무슨 권한으로 제 혼인을 맘대루 정허시느냐 말슴야 요?"

하고 어깨로 숨을 몰아쉰다.

그눈은 마주볼수가 없도록 매서운광채를 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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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는 안석에 반쯤 기대였던 뚱뚱한 몸을 벌떡 일으키며

"뭐시 어쩌구 어째? 너 이년 그게 할미헌테허는 말버르쟁 이냐? 이 주제넘은년 같으니. 할미가 손녀혼인을 맘대루 정 한 권한이 없단말이냐"

하고 손바닥으로 방바닥을 치면서 호령을한다. 그러더니

"내가 네아비를 낳은 친어미는 아니다만 그래 너까지 나를 등신대접을 해야 옳단말이냐"

하고 금세 어린애처럼 비죽비죽 운다. 그러지 않어도 친어 머가 아니라 자작은 양계모를 받들기가 한평생 어려웠고 노 망이난 뒤부터는 더구나 자격지심을 가지고 '내속으로 난 자 식같으면 그럴 리가 있느냐'고 매사에 노염을타고 걸핏하면 울기까지하는 노인의 분을 돋은 것이 송구스럽고 또 한편으 로는 시비곡직은 막론하고도 딸이 할머니에게 바득바득 대 들듯하는데 아버지로서의 책임감도 느껴저서

"발칙헌년 같으니 어른앞에 말을 삼가지 못허구 그렇게 터 진 입으루 함부로 짖거리는 법이어디 있느냐 게 섰지말구 냉큼 물러가!"

하고 조모 이상으로 손을들어 후려때릴 시늉까지 하면서 소리를 질렀다.

"재가 오늘은 아마 제정신이 아닌가보우. 졸업시험을 치른 다구 며칠 밤을 새드니만........"

하고 어머니는 안질 앓는사람처럼 연방 눈짓을하며 어서 나가자고 딸의소매를 껀다. 봉희는

"놓세요"

하고 어머니의 손을 뿌리치며

"웨 내가 제정신이 아니얘요? 결혼을 잘허구 못허는 문제 가 저 한평생엔 제일 중대허구요, 더군다나 여자한텐 죽고 사는 문제와 마찬가지니깐 아주 정신을 똑똑이 차리구 엿줍 는 말슴이야요"

하더니 할머니는 문제도 삼지않고 저의 부모에게로 발갛게 익은듯한 얼굴을 돌리며

"저를 낳어서 길러주신 부모가 혼인까지 정해주시는건 마 땅한일이겠죠. 그렇지만 정말 시집갈 당자한텐 한번 의향을 물어보지도 않으시고 쉬 쉬 허구서 당신네 맘대루두 못 허 시고 저 옛날 어른이 허라시는대로 혼인을 정허시는 법이 어딋어요? 제가 아주 어린애래도 그럴수가 없을텐데 그래 코백이두 구경을 못헌 지금두 침을 질질 흘린다는 병신녀석 헌테로 억지로 처 맡기시면 속시원허실게 무엇예요? 그런 못헐 노릇이 어딋어요? 백죄 그런...... 그버덤 더헌 죄악이 세상에 또 있는줄 아서요? 전 옛날 예법을몰라두 이렇게 사 지가 멀정허게 자랐어요 병 병신은 아니야요!"

하고 발을 동동 굴르는데 말이 목구녁에서 토혈을 하는사 람의 핏덩이처럼 컥컥 막혀서 부모앞에가 푹 엎으러지더니

"전 죽으면 죽었지 그런데룬 안갈테야요!"

하고 울음이 터진다.

"이년 나가거라! 냉큼 일어나 나가지 못허니?"

아버지는 정말 분이 허연 머리끝까지 올랐다. 딸의 말이야 옳건 그르건 자식을 여러 남매를 길러 보았으나 오늘날까지 정면으로 반항을 하거나 더구나 폭백하는 것을 받어보기는 처음이라 절대의 위엄을 가진 아버지로서의 자존심을 더할 수없이 상하였든 것이다. 할머니는 분을참지못해서 목에 가 래를 끓이며 말도못하고 어머니는 어쩔줄을 모르고 벌벌 떨 고만섰는데

"이년 발딱 일어서지 못허느냐"

하는 호령과함께 아버지는 벌떡 일어서며 봉희에게로 달려 들어 엎들여서 흐느끼는 딸의 머리를 두어번이나 쥐어박는 다. 봉희는 눈물이 주루루 흘러나리는 얼굴을 처들며

"아버지! 아버지가 저를 죽이실수는 있을는지 몰라도 억지 루 시집을 보내실수는 없어요!"

하고 부르짖으며 겁없이 아버지를 똑바로 쳐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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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에게 끌려서 별당에서 나려온뒤에 봉희는 눈이붓도 록 울며 밤을밝혔다. 어머니가 달래고 타일르다 못해서 나 종에는

"할머니가 돌아가시기전에는 아버지나 내가 말슴을 거역할 수가 없으니 겉으로 정혼만 해두고 슬슬 밀어가다가 좋은 자리가 나서면 파혼을 못허는법도 아니니까 그때봐서 조토 록 허잣쿠나 콩으로 메주를 쑨대도 고지를 듣지 않으시고 당신 고집만 세시는 할머니 성미를 번이 알면서 불공스럽게 달려들면 어쩌잔 말이냐"

하고 빌다시피 하였다. 그러나 봉희는 무슨 일에든지 한평 생 자기 주장을 한번도 세워보지 못하는 개성(個性)이없는 어머니하고는 상대도 하고싶지 않어서 일일이 말댓구도 아 니하고 저혼자 머리를 쥐어 뜨드며 울다가

"정 어른 유세들을 허시구 고집을 허시면 나두 내맘대루 헐테야요. 자녀의 결혼을 강제로 시키려는 부모는 넘우나 무리허지만요, 장성헌 여자가 제 남편감을 제눈으로 골가 가는건 천지 리치에 조곰두 어그러질게 없으니깐요. 난 어 머니 아버지가 낳섰지만 어머니 아버지가 당신네 체면만 세 느라구 맘대루 헐 수 있는 무슨물건이 아닌줄만 알어두시면 고만야요"

하고 입을 꼭 다무러 버렸다.

"너 그럼 누구허구 언약이래두 헌일이 있니? 응 얘야. 봉희 야! 있거든 있다구 바른대루 말을 허렴으나. 어미가 알면 누 구더러 말을헐줄 아니? 응 봉희야"

하고 딸의손을 끌어다리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자애깊은 어머니답게 뭇다가 딸이 영영 입을 버리지 않으니까

"네가 이럴줄 몰랐다. 어미헌테까지 속을 안줄줄은 참 정말 몰랐구나"

하고 찔끔찔끔 울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이런 자리에서 어 머니가 꾀송꾀송 뭇는다고

"네 아무개허구 약혼까지 했어요"

하고 경솔이 속을 뽑힐 봉희도 아니였다.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화가나서 반주를 두주전자나 마시며

"에이 괘씸헌년"

"양반의 집이 망허면 곱게두 못망허구 딸자식까지 부모의 말을 거역허니 늙은건 진작 죽어야지. 에이 죽일년"

하고 혼자 노발대발 하다가 술이 건화하게 취하니까 마음 이 조금 풀려서 평생처음 홧김에 딸에게 손지검을 한 것이 마음에 걸리고 맘에없는 싀집가기 싫다고 애걸복걸 하든 것 이 가엽슨 생각도 슬그머니 들어서 시중을 하고선 셋째며누 리 더러

"얘 네 시뉘를 좀 불러라"

하고 분부를 나렸다. 봉희는 막무가내로 안가겠다고 뻣대 기는 것을 인숙이가 별별소리를 다해서 대방으로 부축을 하 다싶이 하고 더리고 갔다.

"온 미거헌 자식같으니. 아비가 좀 꾸짖었기로 쪽쪽 울다니 그래 넌 잘헌냥싶으냐. 어서 게 앉어라"

하고 매우 화평한 낯을짓는다. 그러나 아버지가 열마디 스 무마디 되풀이를 하는말은 옛날버텀 자녀는 무조건하고 부 모의 명령에 순종하였다는 것과 더구나 문벌이높은 집안의 규수는 어른이 시키는대로 좋으니 언잔으니 말은커녕 사색 도 보이지못하는 법이니 털끗만치도 거역을 허지않어야 귀 하고 착한내딸이라고, 어름어름 구슬리는 수작이였다.

봉희는 (어쩌면 저렇게 캐캐 묵은 말슴만 자꾸 허실가) 하고 가슴이 답답해서 금방 터질 것 같것만 (이런 기회에 단단히 내 생각을 말해버려야지 울고만 있을 때가 아니다) 하고 공손한 말씨로

"다른 일은 무어든지 어른들의 말슴대로 순종을 허겠어요.

그러치만 혼인만은 아버지나 할머니 맘대루 못허실줄 아서 요. 첫째 아버지허구 저허구 사는 시대가 달르니까요. 제가 아버지 시대에 살수도 없구, 아버지께서 제시대에 사실수두 없으니까요. 따러서 저이들의 생각이 로인네들의 생각허구 는 달를게 아니겠어요?"

하고 이번에는 아프지않게 두 번째 반역의 깃발을 들었다.

아버지는 술이 일시에 올르는 듯

"헛 고년, 그래두 조동아리를 닥치지 못허구. 보기싫다 나 가 이년, 오늘버텀 애비허구 의절이다!"

추상같은 호령과 함께 들었든 술잔을 내던젔다. 술잔은 바 로 봉희의 이마를 마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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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희는 이마를부비며 일어서 아버지의 앞을 물러나왔다.

어더마저도 아픈줄도 몰으로 부녀간 의절을 하겠다는 말을 들어도 그다지 겁나지도 않었다.

(혼인문제는 당자가 더 걱정이되고 싀집이 가구싶으면 내 가 더 급할텐데 왜 저렇게 어른들이 야단스럽게 서둘느실 가. 의절을 한다고 마즈막가는 말슴까지 하시며 펄펄 뛰실 필요가 어디있어) 하고 돌이어 우수운 생각이 들었다. 봉희는 몹시 흥분된중 에도 당신네들에게 무슨리속이 있기에 죽어라고 싫다는 것 을 죽어라고 싀집을 보내지 못해서 극성을 부리는 옛날양반 들의 심리를 도모지 리해할 수가 없었다.

"어디 누가 이기나볼걸"

하고 저와 어른들을 두편에 갈러가지고 편쌈꾼 벼르듯하고 제방으로 들어갔다.

한편으로 인숙은 제가 즉접 당하는 것 만치나 싀누의의 일 이 딱하고 걱정이 될뿐아니라 (그성미에 저러다가 무슨 동티나 나지않을가) 하고 어떠한 불길한 조짐이나 보이는 듯이 마음을 조렸다.

(그 못난 물열이헌테로 싀집을 가느니 버덤은 차라리 장발 이 첩이 되는게 낫지) 하는 생각까지 슬그머니 들었다. 그러나 가만히 눈치를보 면 정면으로 반항을 하고 어른들과 사못싸우려고 달려드는 용기가 나는 것이 암만해도 세철이와 구든약속까지 있는 것 이 틀님없으리라고 짐작이 되었다. 그러나 그런말을 입밖에 내기만했다가는 저부터 이집에서 쪼껴날것이 분명하다. 그 터니 어떡했으면 봉희의 소원대로 성취를 시켜줄는지 당초 에 묘책이 나서지를 않었다 싀누의의 속마음을 알고 무한히 동정을 할사록 저에게는 그를 도와줄 조그만 힘도 없는 것 이 한탄이 될뿐.

인숙은 밤늦도록 바누질을 하며 곰곰 생각을 해본 끝에 누 의의 일은 아는체도 아니하고 아직도 사요꼬를 빼아낀 것이 분해서 자다가도 이를 뿌드득 가는 남편이 잠이들기를 기다 려 살그머니 일어서 삼층장문을 열었다. 그래도 그런일을 의론해 볼사람은 남편밖에 없고 아무리 누의의 일쯤은 염두 에 없는터이라도 하여간 친남매간이요 이집의 누구보다도 그만 리해는 해줄상싶으나 무두 무미하게 그런말을 하느니 보다는 장발의 편지를 미끼삼어서 밝는날 아츰에라도 이야 기를 끄내보려고 의거리 밑바닥을 더듬었다. 그러나 집행당 하는 통에 자근동서의 옷과 뒤석거놓은 의거리속은 미처 손 을 대지도못하고 내버려둔채로 있다. 자근동서가 차압이 풀 리든날 누가 제옷가지를 팔어나 먹을줄 아는지 벼락같이와 서 뭉처가지고 간뒤라 '이혼이라도 하고 당신과 다시 결혼을 하겠다'고 일홈도 안쓰고 보낸 그편지는 간곳이 없다.

"이를 어쩌나 어디루 갔을가?"

하고 인숙은 공연히 가슴이 덜컥 나려앉어서 전등까지 들 여대고 의거리속을 구석구석 삿삿치 뒤저보았다. 옷을 죄다 꺼어내놓고 석해잡듯 옷갈피를 뒤저도 여전히 편지의 행방 은 묘연하다

"옷을 싸갈제 무더갔담"

하고 인숙은 자근동서의 방으로 갔다. 자근동서는 벌서 불 을 끄고 잠이든 모양이다. 인숙은 밤중에 유난스러히 자는 사람을 깨울수도 없어서 (혹시 자근아씨나 뒤저 보고 없애지나 않었나) 하고 봉희더러나 물어보려고 요새 봉희가 쓰는 알에 방문 을 소리없이 열고 들어섰다. 알에 목에 자리는 깔렸는데 봉 희는 그림자조차 없다.

(이게 또 왼일일까?) 하고 인숙은 눈이 둥그래저서 툇마루로 불을밝혔다. 그러 나 노 버서놓는 자리에 봉희의 구두까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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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희는 제방으로 돌아와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무한히 고 민을 하든 끝에 (죽어나 버렸으면)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분합마루우에 시컴어케거른 대들보 를 처다보고 한강으로 스켙을 하러다니며 보든 시피른 어름 구녕을 한눈앞에 그려도보았다. 어느 유치원보모가 본처있 는 남자와연애를하다가 그남자가 마음이 변한데 분개해서 쥐잡는 약을먹고는 병원에서 응급치료를 받다가 참혹한 죽 엄을한 신문기사와 그여자의 사진이며 창자를 끊어내는듯한 고통을 받으면서도 박정한 남자에게 써보낸 유언서까지 신 문에 박혀났든 것이 눈앞에 또렷이 떠올랐다.

봉희는 그와는 사정이 달르면서도 몸서리를 첬다. 죽엄의 공포가 온 몸을 엄습하는 듯 앉었을수도 누었을수도 없어 철창속에 가친 동물처럼 방안을 왔다갔다하며 마음을 갈어 앉지려고 무진 애를 썼다. 그러다가

"급헌 일이 내게와서 의론을 허세요"

하든 세철의 말한마디가 번개불같이 번쩍하고 머릿속에 떠 올랐다. 봉희는 일초동안도 망사리지 앉고 발딱일어섰다. ' 세-타'하나만 걸치고 나려가 중문대문의 빗장을 소리없이 벗기고 큰길로 뛰어나갔다. 세철에게로 도망군이처럼 다름 박질을 해서오는 동안 봉희는 숨이 갓분지도 몰으고 어느겨 를에 왔는지도 몰랐다.

(오늘밤 안으로야 어떻게든지 단단히 귀정을 짓지않고는 길바닥 에서래도 밤을새울걸) 하고 마음을 다부지게 먹고 세철에게까지 왔다. 다 와서 생각을하니 딱딱이를 치러 다니는 세철이가 집에 있을시간 이 아니다.

(혹시나) 하고 봉희는 세철의 방문을 두드렸다. 불도 켜지않은 덧문 을 더듬어보니 조그만 맹꽁히 잠을쇠가 채여있지 않은가.

봉희는 그만 낭판이 떠러젔다. 한데서 언제 까지나 기다릴 수도 없고 어데로 싸 댕기는지를 몰으는 사람을 더퍼놓고 찾어나갈수 없는데 그렇다고 집으로 도루 돌아가기도 싫였 다. 봉희는 오도 가도못하고 침침한 툇마루에가 걸터앉었다 가 안채에 든사람에게 세철이가 몇시쯤 나갔나 물어보려고 중문깐을 기웃거렸다. 그러나 불은 꺼지지않었는데도 벌서 잠들이 든 듯 아모 인기척이 없다. 봉희는 고만 땅바닥에가 서 펄석 주저앉어서 어린애처럼 엉엉 울고 싶은 것을 간신 히 참고 다시한번 (혹시나) 하고 잠거논 방문의 잠을쇠를 비틀어 보았다. 요행으로 잠 을쇠는 딸깍하고 열렸다.

세간도 없는 방을 번번 잠글 필요는 없으나 그래도 그대로 나가기는 허순하든지 방임자는 잠을쇠를 채워두는 체만하고 나갔든 것이다. 덧문을 살그머니 연다는 것이 배목이 헐거 워서 덜컥 소리를 내며 문짝이 활딱 열리는 바람에 봉희는 도적질을 하려고 남의방에 겻쇠질이나 하든것처럼 가슴이 두근거렸다. 주인없는 밖았방문이 요란히 열리는 소리를 듣 자 안채에서

"누구요"

하는 새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조금있자 잠없는 늙은 마누라가 치마끈을 매며 쫓어 나와서 봉희를 얼굴가죽이나 벗길 듯이 들여다 보더니

"응 왔오!"

한다. 전번에 봉희가 와서 밥을 지어 먹는 것을 문틈으로 내다보고 담넘어로 넘겨다보고 하면서 안집 식구들이 깔깔 대고 우슨일이 있어서 그 마누라도 봉희를 눈녁여 보아 두 었든 것이다.

"이 방에 있는 학생이 몇시쯤 나갔어요"

봉희는 될 수있는대로 제몸을 으슥한 구석으로 감추면서 나즉이 물었다. 마누라는 봉희의 앞으로 벗석 닥어서며 귓 속하듯

"아 몇시에 나간게 뭐요 그적게 새벽녘에 형사들이 우루루 달려 들어서 막 묵거갔는데 그때에 우리두 어떻게 눌랐는지 십년감수는 했오"

하고 허풍을 떤다. 봉희는 금방 머릿속이 팽 돌아서 툇마 루에가 펄석 주저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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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봉희의집은 발칵 뒤집혔다. 인숙은 새로 두시 세시 가 되도록 봉희가 돌아오기만 깜앟게 기다리다가 시누의가 집에 없는줄을 저혼자 알면서 몰은체 하고 눈감어 둘수도 없고, 생후 처음으로 아버지에게 어더맞기까지해서 분을참 다 못해서 좁은 생각에 고만 마지막가는 길이나 밟지 않었 나 하는 의심이 용솟음치듯 하였다. 몇시간을 저혼자 드나 들면서 간을 조리며 기다리다가

"아 자근아씨가 집에 없습니다"

하고 만사태평으로 잠이 든 시어머니에게 급보를 하였든 것이다.

"응? 개가 집에 없다니 그게 무슨 소리냐"

하고 시어머니는 벌떡 일어나 단속곳바람으로 이방 저방 돌아다니며

"어서들 일어나거라 봉희가 어디루 갔다는구나"

하고 식구들을 두드려 깨웠다. 자작은 술이 잔뜩 취해서 천장이 울리도록 코를 골다가

"뭐! 봉희가 어딜갔어?"

하고 지게미가 낀 눈꼽을 손등으로 부비면서 비틀거리고 대청으로 나왔다. 방방이 껏든 전등을 켜고서 구석구석 빈 틈없이 뒤저도 생쥐아닌 사람이 있기만하면 눈에 띠우지 않 을 리가 없다. 나중에는 솜방망이를 만들어 석유를 끼얹어 가지고 뒷겻 우물속에까지 장때를넣어보고 헛광이며 사랑방 까지 열어보았것만 봉희는 그림자나마 얼씬도 할 리가 없 다. 자작은 누가 찬물이나 끼얹인 듯이 벌벌 떨면서

"별당에나 있나 올나가봐라"

하고 셋재며누리에게 명령을 한다.

"조금 아까두 제가 올러가봤는데 거기도 없습니다"

하고 인숙은 파출소로 수색원을 제출한다고 자리옷을 입은 채 나가는 봉환을 중문깐으로 쫓어나갔다.

"내가 혹시나 허구 생각나는데가 한군데 있는데요"

"어디란말요?"

"힝나케 다녀올테니 내가 갔단말을 해선 큰일나요"

"그럼 진작 그런 말을 허지"

"꼭 거기 있을는지 어떻게 알구 미리 말을 내요. 아무튼 행 낭아범하나만 내뒤를 쫓어 보내서요"

하고 말끝도 채 맺지 못하고 골목 밖으로 살어진다. 봉환 은 어떤 영문도 몰으로 튼튼한 아범을 깨워 급히 딸어보냈다.

인숙은 그동안 꼭 들어앉었든 오금에서 자개품이 나는 듯 어찌나 급히 걸었는지 속옷에 땀이 다 축축이 배였다. 정신 없이 세철이가 있는집 근처까지 와서는 하인이 집을 알지못 하게 하느라고

"거기 잠깐 기다리게"

하고는 골목밖에다가 멀찍암치 세워놓았다. 학교에 다닐때 에 복순을 찾어 여러번 와본집이라 골목안이 어둡고 매우 소삽하것만 인숙은 서슴지않고 세철의 방문앞까지 찾어들어 올수가 있었다. 봉희는 세철의 이불을 말어논데 가서 까무 러친 듯 엎드렸다.

"자근아씨-"

하고 인숙은 봉희의 어깨를 흔들었다. 봉희는 대답이 없을 뿐아니라 온몸이 꼼짝도 아니한다. 의심스러웁게 빛나는 인 숙의 눈은 황급히 방바닥과 책상우를 달렸다. 세철의 책상 우에 잉크병으로 놀러논 한조각 글발- 인숙은 그종이를 움 켜쥐듯 집어들었다.

"세철씨- 당신과 처음 만나든 이방에서, 당신과 사랑을 고백하든 이 방에서 나는 떠나지 않겠습니다. 영혼은 떠난 육신만이라도 당신이 붙잡혀 가시는날까지 덮으시든 비인 자리를 부둥켜 안고 놓지않겠습니다. 나는 오늘 저녁에야 비로소 사랑이라 는 것이 얼마나 괴롭고 가슴쓰라린 것인줄을 깨달었습니다.

그와 동시에 그목석과같이 완고한 우리 부모는 벌서 정신상 으로 나의 어버이가 아닙니다.

이제와서는 의지할곳없는 이몸이 마지막으로 당신을 찾어 왔으나 당신마저 포승지고 나보다먼저 떠나섰읍니다그려.

이것이 다 우리가 이조선에 태여난....... 그러나 나혼자만은 죽어도 당신의 방을 영원히 직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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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잡을수 없는 흥분과 불안과 초조에 지글지글 조리든 봉 희의 조고만 가슴은 또다시 천만 뜻밖에 세철이가 검거를 당한 것으로 말미아마 너무나 낙심이되어서 자진방아를 찧 든염통이 덜커덕나려앉는 듯, 떨리는 손으로 세철에게 유언 서 같은 것을 두어장쯤 써놓고는 고만 이불우에가 폭엎드린 채 깜박하고 제정신을 잃었든 것이다.

인숙이와 행랑아범에게 좌우를 부축받어 큰길로 나와 인력 거를 탈때까지 봉희는몽유병자처럼 눈을 멀거니 뜨고 길거 리의 전등을 꿈속처럼 바라다 볼뿐. 집안식구들은 대문밖까 지 내달어 야단법석을 하면서 봉희를 떠메듯하고 제방으로 데려다눕혔다. 봉희는 벙어리가 된 듯이 입을 다문채 인숙 의손을 꼭쥐고 조금머리를 흔들어 보인다. 그눈은 감사와 애원하는 빛으로 가득 찼다. 인숙은 잡힌 손을 꼭 쥐어주며 조금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봉희의 애원하는듯한 눈속에는

"내가 그이 헌테 갔었다는 말을 허지 말어주" 하는 말이 들었든 것이다.

자작은 대청 분합마루에서 안절부절을 못하며

"저년을 누가 데리구 들어왔느냐 둘다 내쫓어라. 내자식이 아닌담에야 길바닥에가 거꾸러저두 좋다"

하고 야단을 치는 것을 마누라가 소매에 매어달리여

"아이고 대감, 제발 들어가 주무십시다 내일 아침에 불러다 가 죽이든 살리든 허시구려. 초벌은 죽어 들어와서 얼이빠 저 누었는걸......"

하고 고만 들어가자고 애걸복걸을 해도, 자작은 찬장속의 술병을 손소끄내여 찬술을 드리키고나서는 한바탕씩 호령을 한다. 대청한구석에가서 응승거리고 섰든 봉환이가 보다못 해서

"아버지, 고만 들어가 주무세요. 봉희가 뭬 잘못헌게있다구 그러세요?"

하고 누의의 역성을 들었다.

"뭐야? 이놈 무엇이 어쩌구 어째? 봉희가 잘못헌게 없다니.

아비의 말을거역허구 죽으러 나간 자식이 잘했단 말이냐"

봉환은 고만 빨끈하였다.

"그런 말슴은 백번천번 거역을 해두 좋와요! 맘에없는 혼인 을 억지루 허는것버덤은 진작 죽어버리는게 났지요"

하고 계집애처럼 팩 쏘았다. 부자간에까지 싸움이 버러질 형세를 보자 어머니는 울상이 되어서

"얘야 너마저 이러느냐 어서 들어가거라. 몸두 성치못헌 게...... 어서 내 청을들어라"

하고 아들의 허리를 껴안고 걸려서 제방으로 나려보냈다.

인숙은 바들바들 떨면서 남편의 뒤를 따렀다.

자작은 아들이 자기앞에 없는지도 모르고

"너 이놈 네 행실은 내가 모르는줄 아느냐. 일껀 그림공분 가 발금쟁인가 헌다구 아비몰래 도망을 가더니 너 이놈 계 집질 허는공부버텀 허구 나왔드구나. 이 단매에 처죽일것들 같으니라구 죽어두 좋다니 아 그래 터진입으로 말이면 다허 는줄 아느냐"

하고 보꾹이 얕어라고 펄펄 뛰더니 금방 풀이 죽어서 목소 리를 떨어트리며

"여보 마누라 마누라나 내가 자식들헌테까지 이꼴을 당허 구 더살어 뭘허우? 죽읍시다. 욕을 더 보기전에 우리둘이 한끈에 목을매구 자결헙시다"

하고는 두 늙은이가 마주붙잡고 울었다. 먼동이 틀때까지 잔주를 하다가는 자기가 이집에 양자로 들어와 죽을날이 가 까운 사람이 파산을해서 가진 창피를 다 당하고 자녀들까지 모조리 자기에게 정면으로 반역을 하는생각을 하고는 어찌 나 분하고 절통하든지 마루바닥을 주먹으로 치며 사뭇 통곡 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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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튼날 봉희는 온종일 굶고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어서 울 었다. 졸업시험을 보다가 제일 중요한 과목만 남기고 결석 을 하는 것이 분하였다. 그러나 낙제를하든 졸업을못하든 그것은 도리어 몇재가는 문제요, 불시에 검거를당한 세철의 소식이 여간 궁금하지 않었다.

(무슨일로 잡혀갔을가) (얼마나 고초를 겪을가) (지금 경찰서 유치장에 있을가. 대번 감옥으로 넘어가지나 않었을가) 하고 별의별생각을 다하여보았으니 제가 나가서 돌아다니 며 알어본다드래도 극비밀리에 붙였든듯한 사건이 알어질 리가 없을것같아서 (이런때 복순이나 나왔으면 사면으로 돌아다니며 수소문이 나 해다줄걸)하다가 참(복순이 때문에 또 원산으로 붙잡혀가지나 않었나) 하고복순의 탓도하여보았다. 아무튼 세철이가 붙잡혀가서 사람으로서 견디기어려운 고초를 당할생각을하니 지금 제가 받는 마음의 번민쯤은 아주 약과였다.

고만 일어나 정신을 차리구 어디가 있는걸 알어봐서 밥이 나 차입을 해 줘야지 하다가도 이런기회에 한 대엿새 굶어서 아버지의 기를꺾고 파혼을 하겠다는 항복을 단단히받고야 말리라 하고 이를 꼭 깨물고 냉수 한목음 아니 마시랴 하였다.

저녁때가 지나서야 인숙은 봉희의 방으로 나려갔다.

"이렇게 생으루 굶으면 어떡허우? 오늘내일 무슨일이 있을 게 아닌데 졸업시험을 안보면 어떡 하려우? 아까부텀 네려 오려두 어른들이 이상스럽게 아실가 봐 인제야 간신이 빠저 나왔수. 그러잖어두 어머님께선 자꾸만 자근아씨가 어디가 있는지 어떻게알구 네가 데려왔느냐구 물으서서 그저 제일 친헌 동무집에 갔을 듯 허길래 찾아갔다가 요행으로 만났다 구 엿줍긴했지만......"

하고 봉희의 이마우에 흩으러진 머리카락을 쓰다듬어 올려 주더니

"엇저녁에 옵바가 자꾸만 물으시기에 그말을 했수. 그래두 이집의 누구버덤 옵바는 자근아씨를 동정허는 것 같길 래......"

하고 무슨 잘못이나 한 듯이 빌다싶이한다.

"이젠 아무래두 겁날게 없수. 난 조금두 양심에 부끄러울게 없으니까....... 참 신문 그저 안왔수?"

하고 봉희가 몸을 일으키는데 때마침 담밖에서 신문의 방 울소리가 딸랑딸랑 들렸다.

"신문좀 갔다주. 어서"

하고 봉희는 이불을 거더차고 일어 앉는다.

.......신문사회면 첫머리에는 제일 큰 활자로

<비밀결사인 사회과학연구회 조직중에 탄로되어 고학생수 십명 검거>

이란 제목이 맨먼저 봉희의눈을 동그렇게 하였다.

그리고 '재작일 새벽부터 ××서가 아연 활동을 개시하야 부내 원동 ××번지 경성전기학교오학년생 박세철 ( )을 위 시하야 각처에 잠복한 고학당 생도 십여명을 검거하고 방금 엄중취조중인데 취조의 경과를 따러서 사건은 더욱 확대될 듯 하다고한다'라는 간단한 기사가났다.

봉희는 기계기름냄새가 코를 찔르는 신문지를 뚫을 듯이 드려다 보다가

"아이구 여간 해서 나오긴 틀렸수. 예심에만 부트면 의례 잇해 삼년은 걸리든데......"

하고 신문지가 날러가도록 한숨을 내쉬더니

"새언니, 난 죽을테요. 인젠 참 정말 죽는수밖에 없수!"

하고 인숙의 치마자락을 쥐어뜯어가며 느껴느껴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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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반에서 가장 성적이 좋았고 '빠스켙뽈'선수로 전교에서 선생이나 생도간에 모르는 사람이 없든 윤봉희가 마지막 시 험을 보는 도중에 무단히 결석을 하니까

"윤봉희가 급작이 병이 나기전에는 결석을 할 리가 없으니 너이가 가서 다녀오너라"

하고 담임선생이 몹시 궁금해서 동급생을 서넛이나 집으로 보냈다. 졸업식날 내빈의 축사에 봉희가 답사를하기로 작정 을 하고 있었고 사은회나 기타 여러 가지 일을 맡은 책임자 가 돌연히 그림자를 감추어 버려서 동창생들도 적지아니 걱 정이 되었던 것이다. 봉희는 동무들을 반기면서도

"독감차레가 왔는지 며칠죽도록 앓었단다."

하고 거짓말을 하지 않을수 없었다. 제일 친하게 지내든 동무들헌테 저의 사정을 이야기하고는 싶것만 발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고 소문이 쫙 퍼질가보아 겁이먼저났다. 담임선 생에게는 솔직한 고백을해서 그의 지도를 받고 가정방문이 라도 해서 결혼문제를 반대해 주도록 힘을 빌고 싶은 생각 은 간절하였다. 이런 경우에 누구보다도 저를 잘 이해 해주 고 장래를위해서 힘을 써 줄사람은 선생밖에 없을뿐 아니라 선생 역시 결혼시기에 이른 남의 귀중한 딸들을 맡은터이니 까 학과만을 가르치는 것으로 책임을 다하는 것이 아니였 만, 봉희는 그것도 단념을 하지않을수 없었다. 담임선생이 조선사람이래도 그런말을 입밖에 내기가 여간 어렵지 않겠 는데, 조선가정의 전통과 인습과는 아무 이해와 견문조차 없는, 더구나 남자선생에게 그런 일을 의론한댓자, 저의 가 정의수치를 폭로하는것밖에 다른 효과가 없을상 싶었든 것 이다.

그러나 봉희는 다시 학교로 가지 않을수없었다. 인숙의 간 절한 권고도 있었거니와

"내가 어떡허든지 너 좋도록 해줄테니 어서 일어나 밥을 먹고 학교에 가거라"

하는 어머니의 언질을 잡고서야 일어났다. 그러자 동창생 들이 십여명이나 떼를 지어 우루루 몰려와서 봉희를 떠메듯 해가지고 갔다.

평상시에 성적이 좋았으니까 시험을 다보지 못했드래도 봉 희가 낙제를 할 염려는없지만 한사람은 지금 철창속에서 햇 빛도 쏘이지못하고 가첬는데 저혼자 여러사람앞에 나서기가 싫고 무사히졸업장을 받는것까지도 저만 호강을 하는 것 같 어서 양심에 거리끼었다. 그래서 남들이 영광스럽게 역이는 일은 구지 사양을 하였다.

졸업식 전날밤 봉희는 덧문을 첩첩이 닫고 밤을 새워가며 짜멭을 짰다. 털실을 살 돈이 없고 달라기도 싫여서 제가 둘르든 목도리와 '세-타'의 실을 풀어서 남자가 입을 짜켙을 짜기 시작하였다. 손까락이 부르터 오르도록 대바눌을 재빠 르게 놀리면서 철창속의 세철을 생각하고 문초를 당하는 장 면을 상상하니 몸서리가 처졌다. 그러다가는 눈물이 어리워 서 바눌 코를 넘기고 다시 풀기를 몇번이나 하였다. 지난 겨울에 (내손으로 짜켙이나 하나짜서 선사를 해야지) 하고 외투도 못입고 야기를 쏘이고 다니는 사람이 조음 추 울가 하고 꼭 짜주려고 별르기만 하다가 졸업준비 입학준비 로 틈을 얻지못하고 오늘내일하고 밀어 왔었다.

(낮에는 봄날같어도 아침저녁에는 안직두 겨을 처럼 쌀쌀 헌데 그 마루방속에서 이부자리도없이......) 하고 아직 구경은 못하였으나마 유치장속에서 그 단벌밖에 없는 얄다란 교복 한껍데기만 입고 응승그리고 앉어서 우들 우들 떠는 세철이가 바로 눈앞에 보이는 것 같었다.

앉은자리에 녹아버릴 듯이 심신이 피로한데 꼭박꼭박 졸린 것을 대바눌끝으로 살을꼭꼭 찔러가며 고스라니 밤을 밝혔 것만 짜켙은 반의반도 짜지지를 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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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식날 봉희는 고아원에서 자라난 학생과같이 외로웠다.

다른 동무들은 부모는물론, 친척들까지 새옷을떨처 입고와 서 기쁨에 충만한 얼굴로 대강당이 빡빡 하도록 앉었것만 봉희는 맨뒷줄에가서 낙제생처럼 풀이 죽어서 머리를 들지 못하였다.

혼인문제보다도 세철이가 검거를 당한것보다도 봉희에게는 당장에 큰 근심이 또하나가 생겼든 것이다. 그것은저의 혼 인 때문에 부르터 올른심화로 곡기를끊고 매일 술만 퍼붓듯 하든 아버지가 풍이동해서 밤새로 반신불수가 된 것이다.

어머니가

"아이고 대감이 돌아 가시나보다"

고 소동을 해서 큰 아들에게 전보까지 치고 평시에는 양의 를 싫여하것만 급하니까 의사를둘씩이나 불러다가 주사를놓 고 하느라고 가뜩이나 정돈되지못한 집안은아주 난가를 이 루웠었다. 의사는 중풍의 유전이 있고없는 것을 물은후에

"몹시 흥분 되었던 끝이나 알콜중독이 심하면 동맥이 경화 되가가 쉬운데 일조일석에 완쾌되기가 어려운병이니 아무조 록 안정을하시도록 하라"

는 주의를 시키고 간뒤에야 시각대변이 있지는 않을 것을 안심하고 잠간 식장에만 다녀가려고 빠저 나왔던 것이다.

봉희가 집에 없는동안에 문밖에발한번 내딛지않든 별당노 인까지 나려와서 아들의 문병을 하였다.

"이거 온 큰일 났구나. 어머님 내력이란 말인가 입이다 삐 뚜러지고 왼편 팔다리가 불인헌게 증세가 똑같구나"

하고 이러다가 아들이 자기 앞을 설가보아 그말은 참아 입 밖에 내지는 않어도 입맛을 쩍쩍다신다.

"아무튼 기동은 못해두 정신은 멀정헌 병이니 봉희 혼인만 은 하루바삐 해 치워야겠는데 암만꼬바봐두 이달엔 마땅헌 날이 없구나"

하고 인제는 택일을 하지못해서 성화가 났다.

"내달엔 초아흐렛날이 닿는데는 없지만 길진은 못되거든.

저편에선 어저께도 사람이 와서 이달안으로 해버리자고 온 종일 졸르다 갔는데 혼사란 오래끌면 자미가 적은법이야"

하고 죽기전에 사위나 보게 해 주어야 하겠다는 듯이 봉희 를 성례라도 시키자고 독촉을 한다. 자작은 조모가 중풍으 로 삼사년이나 지긋지긋이 끌든 생각을 하고 고만 처량한 심회를 참치못하고 눈물로 벼개를 적시면서도

"난 모르니 어머니께서 맘대루 허세요"

하고 어룰한 말씨로 띠염띠염 의사표시만 하고는 푸-하고 긴한숨으로 웃수염을 날린다.

(난 이병으루 죽구만다) 하고 모든 것을 절망하면서도 자작역시 (딸자식이라고 망내로 그것하나뿐인데 머리를 올리는거나 보구 죽어야지) 하고 봉희 하나만 성례를 시키지 못하고 죽는다면 크게 유 한이 되어 눈을 감지못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봉희의 어머니 역시 남편의 머리맡에서 훌쩍 훌쩍 울면서 앞일이 난감해 하다가도

"어쨌든 대감생전에 제 임자를 맡겨야 시름을 잊겠세요"

하고 "내가 어떡허든지 좋도록 해줄테니......." 하고 딸하고 찰떡같이 언약을 한 것은 까맣게 잊어버렸다. 별당노인은

"그럼 내달 초아흐렛날로 아주 정해 보낼테니 그런줄이나 알구 과이 상심허지 말어. 그 병에는 심화를 내선 못쓰느니"

하고 손부들에게 부액을하고 자기처소로 올라갔다.

집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는 봉희는 졸업장과 사진 첨을 싸들고

"아버지가 그동안 돌아가시지나 않으섰나"

하고 길바닥에가 쓰러질 듯이 엇질엇질 한 것을 간신히 참 고 총총이 걸어 집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