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녀성/제17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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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의풍파[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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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숙은 그동안 저의 일로 며칠을 두고 구석구석이 비밀회 의가 열린줄을 깜앟게 몰랐었다. 봉희는 인숙이와 창자를 마주 이은것처럼 단짝으로 지낸다고 해서 절대로 알리지 않 기로하고 어른들끼리만 숙덕 공론을 하였다.

인숙의 흠을 잡어 생트집이라도 하지를 못해서 몸살이 날 지경이든 과붓댁이, 제옷에 묻어온 이상한 편지-'본처와는 리혼까지 한뒤에 당신과 결혼을 하겠다는 의미의 괴문서(怪 文書)를 발견하고도 이제까지 참고 있었든 것이 도리어 이 상한 일이었다.

"온 이런 망칙한 일이 세상에 있나. 남편이 류학을 간사이 에 이따위 편지를 받고 보물처럼 감춰뒀으니 내원 뒷문박 골목속에서 어떤 학생 허구 몰래 만나서 숙은 거리는때부터 수상하드라"

하고 제남편의 성묘를 인력거로 들어오든날 저녁에 어느 크다란 학생과 밀회를 하다가 들키든 생각을 하였다.

"이런 해괴한 일이 어디있어요? 글세 이 편지를 좀보서요"

하고 큰동서에게 몰래 그편지를 보였다. 큰동서는 속으로 놀라면서도

"아마 학교에 댕길 때 어떤놈이 작난을 헌게지. 여보게 자 네헌테두 두지말구 찢어버리게 그 얌전헌 사람이 설마 외간 남자허구 편지질이야 했겠나"

하고 처음에는 그런 것을 들추어 내어가지고 자기에게 까 지 보이는 동서의 경솔한 것을 나물 하듯하고 고지를 듣지 않었다. 그러나 과부댁은

"형님두, 새침덕이가 골로빠지는줄은 몰으시는 군요. 내눈 으로 똑바루 본게 있는데다가 이런 증거까지 들어났으니깐 형님께 먼저 의론을 허는거야요. 정말 그댁이 그런짓을 하 는줄 알구서야 어떻게 가만히 있겠어요? 이런 집안에서 그 런 창피한 일이 생겼으니 우리 얼굴에도 똥칠을 한게 아니 야요?"

하고 어떻게 든지 까닭을 내고야 말겠다고 서둘르는 것을

"앗게 여보게 도적놈도 앞으로 잡지 뒤로 잡는법은 없다네.

더군다나 그런말이 어른들의 귀에 들어갔다가는 대통 큰일 나네. 그런일이 있구 없구간에 일부러 꼬집어내서 말성을 일으킬거야 뭐있나"

하고 큰동서는 반신반의를 하면서도 말성스러운 것이 도시 귀찬어서 묵주머니를 만들자고 권고를 하였다. 그럴사록 그 런일은 발까집 어 내고야 직성이 풀리는 과부댁은

"그럼 내가 무슨 심사로 없는 일을 꿈여 내가지고 새댁을 잡으려고 드는줄 아서요? 형제간에 그런부정한 일이 있어도 눈감어 두기만 하면 제일이야요? 더러운걸 덮어둔다구 어느 때나 냄새가 안날줄 아서요?"

하고 저의 말을 얼는 믿어주지 않는데 열이 났다.

"아무튼 아버님이 병환이 대단하시구 작은아씨 혼인일로도 집안이 이렇게 분요한데 천천히 바람이 자거들랑 당자헌테 라도 정말 그런일이 있느냐고 조용히 물어 보게그려. 뭐 그 리 급한 일이라고 저렇게 서둘르나"

하고 또한번 동서의 경망스러운 것을 꾸짓듯 하였다. 과숫 댁은 눈고리가 비쭉해 가지고

"형님이 종시 내말을 안믿으시면 어머님께라도 엿줍고 말 겠어요"

하고는 그편지를 잃어버리면 큰일이나 날 듯이 허리춤에다 꼭꼭 접어넣고는

"이런편지가 한번두번 올줄아서요? 가는말이 있었길래 리 혼까지 하겠단 편지까지 왔겠죠. 작은아씨 혼인일만 해두 그러쵸.

새중간에서 훼방을 노는게 누군줄 아서요? 뒤에서 꼬드기 는 사내가 있어서 그댁이 뚜쟁이처럼 심부름까지 단기는 눈 치를 못챗서요? 아니 온 사람이 갑갑해 죽겠네. 작은아씨가 나갔든날 밤만해도 어데가 숨은줄을 어떻게알구 찾어가서 다려 왔겠어요?"

하고 바락바락 대들 듯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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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숫댁의 목소리는 점점 높아갔다.

"뭣들을 그러니?"

싀어머니가 변소에 다녀오는길에 건넌방문을 열어보았다.

"아-니 올시다"

큰며누리가 동서에게 눈짓을 하며 일어섰다. 눈짓을 어설 피게해서 싀어머니의 눈에까지 띠웠다.

자근며누리는 속이 쟁개비 밑바닥처럼 바그르 끌튼판이라

"아무려면 몰으서요? 어른을 속이면 죄루가지요"

하고 기회가 좋은김에 실토를 해버리려고 든다. 눈짓까지 하는 것을 본 싀어머니는 의심이 벗석 났다.

(봉희의 일 때문에 무슨 소리를 듣고 저이들끼리만 수근거 리는게 아닐가) 하고

"왜 무슨일이든 바른대로 말을 못하느냐. 내가 몰랐으면 몰 으거니와 너이들이 나를 기구서.... 어서 나두좀 듣자"

하고 뒷손질을 해서 문을닫고 자근 며누리에게 대답을 독 촉한다. 큰며누리는 얼굴빛이 변해가지고 어쩔줄을 몰으는 데 자근 며누리 역시 입살만 달싹 달싹한다.

"어서 말을해. 내가 그대로 나갈줄 아느냐"

싀어머니의 재촉은 성화같다. 자근 며누리는

"저 이런 편지가 새댁 의거리속에 들여었는데요, 하두 이상 스러워서 저이 둘이만 그이야기를 허는 중입니다"

하고 허리춤에서 증거물을 끄내어 싀어머니의 턱밑에다 치 바첬다.

창앞으로 가서 두눈ㄴ을 찌긋하고 편지를 들러다 보든 싀 어머니의 손은 수전증이 난것처럼 떨렸다.

"온 이런 망칙헌 일이......."

하고 놀랍고 분함에 전신을 떨면서 말끝도 여물리지 못하 고 그편지를 발견한 경로를 두 번 세 번 다저뭇더니, 그편 지를 들고 쭈루루 대감에게로 건너갔다. 전후 이야기를 닷 발이나 불어서 자기 눈으로 셋재며누리의 추잡한 행실을 보 기나 한 듯이 일러바쳤다. 원악 주책이 없는 마누라는 남편 이 아무리 병중이라도 이러한 집안의 중대한 사건을 가장에 게 보고플 하지 않을수 없다고 생각을 하였든 것이다.

"자작은 그 편지에서 더러운 것이나 뭇을 듯이 손에 대지 도 않고 하도 어처구니가 없는 듯 얼어빠진 사람처럼 한참 이나 천장만 멀거니 처다보더니

"허, 인제 집안은 더 망헐나위 없이 망했오"

하고 방바닥이 꺼지도록 한숨을 내쉬더니

"마누라버텀 그런 말은 아예 입밖에두 내지를 마우 만약에 이런 소문이 내집밖에 퍼지기만 했다가는 내가 이나마 제명 에두 못죽을줄 아우"

하고 마누라의 헤푼 입을 단단히 봉해노았다.

자작은 며누리가 부정한 행실을 한 것을 분개하기 보다 먼 저 그런 소문이 파다하게 나고보면 혁혁한 가문을 더럽히고 자기의 대(代)까지는 한사하고 지키려는 궁가의 지체와 귀족 의 체면이 여지없이 깍길가 보아서, 또는 욕됨이 선조에게 까지 미칠가보아서 겁이 더럭 났든 것이다. 난 물어본다든 지 또는 꾸지람을 하고 섯불리 벌을 주려다가는 긁어 부스 럼이 되어 정말 창피스러운 소문이 퍼지고야 말것이 확실하 다. 그러니 혼자서 가슴을 짓찌면서도 묵살(?殺)을 시킬 수 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고 생각을 한 것이다.

그러나 마누라는

"제남편한테야 귀를 불어둬야지 몰랐으면 몰으거니와 나중 에 탓을들으면 어떡허나"

하고 몰래 봉환을 불러서 다른방으로 데리고 들어가서 일 장 설화를 좍-한뒤에 편지를 끄내 보였다.

봉환은 얼굴이 샛노래가지고 쌔근거리고 앉어서 처음부터 끝까지 말한마디 아니하다가

"나두 수상쩍게 생각허든 차예요"

하고 인숙이가 저에게 순종을 하지않고 점점 냉정히 가는 까닭을 그제야 똑똑이 터득이 된 듯, 니를 바드득 갈었다.

아들이 단단히 별르는 눈치를 본 어머니는

"얘야, 잘못 건들였다가는 큰일 난다. 아버지가 아시게만되 면 우리는 죽는날이다"

하고 말은 참지 못하고도 아들이 날뛰는 것을 보고 남편이 자결이라도 할가보아 겁이 더럭났다. 그래서 얼마동안만 몰 은체를 하고 있어달라고 두선을 썩썩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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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빚쟁이를 피해 다니는 용환이가 숨어들어왔다. 어 머니는

"아버지의 병환버덤 집안에 더 큰일이 생겼으니 어쩌면 좋 으냐"

고 다른사람은 몰라도 맏아들에게야 그런 중난한 일을 의 론하지 않을수가 없다고 닷발이나 불어서 이야기를 하였다.

용환은 처음에는

"설마 그럴 리가 있겠에요"

하고 평소에 얌전하게 보았고 개결한 선비였든 이한림의 딸인 끝엣 제수가 그러한 추잡한 행동이 있었으리라고는 믿 어지지 않었다.

"세상에는 오해를 받고 저도 모르는 누명을 쓰는수두 많으 니까요. 어머니버텀 그렇게 떠들지를 마시구 좀더 두구 보 시지요"

하고 난봉을 부린 대신에 속은 터저서 말만은 누구보다도 너그러웠다.

그러나 용환이 역시 그런말을 듣고서야 가만히 생각해보니 언젠가 정거장 식당에서 신문사 과고주들을 전송할때에 제 수가 어느 학생과 한구퉁이에 마주앉어서 사람의눈을 피해 가며 밀회를 하다가 둘이 함께 나가는것까지 보고 (저 학생이 누굴가? 일가나 친척같으면야 식당에까지 올라 와서 저렇게 거복허게 만날리가없는데......) 하고 수상적기도하고 재미적게도 생각하든 기억이 머리에 떠올랐다.

(오-라, 그때버텀 그런일이 있었구나) 하고 용환은 고개를 끄덕였다. 때지 않은 굴뚝에서 연기가 날리 없다고 내눈으로 본일도 있는데다가 적확한 증거까지 들어난 다음에야 저혼자 그럴 리가 만무 하다고 자꾸만 욱 이고 고집을 세울만한 리유와 재료가 없었다.

"아무튼지 남편도 없는사이에 학교엘 다니게 내논 것이 잘 못이예요. 까땍허면 부처님두 놀아나는 세상이 거든요"

하고 그러한 일이 있기도 십상팔구라고 슬그머니 어머니의 말을 시인하는 기색을 보였다.

그래서 처음에는 무조건하고 인숙을 두둔해주고 그런말이 퍼질가보아 겁까지 내든 인숙의 큰동서까지 남편의 눈치를 본뒤부터 (그런일까지 있으면서 어쩌면 저렇게 천연덕스럽고 앙큼스 러울가. 참 정말 저질을 사람이야) 하고 차츰차츰 자근 동서의편을 들게되었다. 그래서 대청 에서나 방문턱에서 인숙이와 마주치면 문칫하고 물러섰다.

십년이나 한솥에 밥을먹고 조석으로 웃는 얼굴로 대하든 끝 에 동서가, 별안간에 천년이나 묵은 여우가 인두깁을쓰고 달려드는 듯

"그댁허구 딱 마주치면 가슴이 덜컥 나려앉데그려"

하고, 무슨 큰 공이나 이룬 듯이 코가 높아진 자근동서에 게 말을 하게까지 되었다.

눈치빠른 인숙이었만 그런줄은 꿈에도 모르고 그저 (웨들 나를보면 말도안허고 비슬 비슬 피헐가) 하는 정도로 며칠을 지냈든 것이다.

인숙이가 친정으로가는 전날밤에는 그일을 어떻게 처리할 가 하고 자작은 몸이 불편한중에도 밤을 밝혀가며 걱정을 한 끝에, 마누라를 시켜서 자근며느리가 감추어둔 그편지를 달래다가 손소 석냥을 그어태워버렸다. 그와동시에

"누입에서든지 그런말을 다시 내기만허면 생사람이 죽는줄 알어라"

하고 다시한번 단단이 집안 식구들의 입을 틀어막었다.

그러고나서는 자기역시 셋재 며느리를 한집에 더 두고 볼 수는 없었든지

"그애 헌테는 조금두 눈치를 뵈지말구 내일버텀 친정에가 있으라구 좋두룩 일러보내우. 봉환이 병이 더디났다는 핑계 를 허면 좋지않소"

하고 마누라에게 간접으로 축출명령을 하였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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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광이라면 앉인방이도 궁둥이를 들먹거리는 황금광시대 다. 그바람에 경직은 금광'뿌로커-' 로 나서서 광맥을 찾아 다니는 날탕패의 뒷배도 보아주고 한꺼번에 몇만금이라도 움켜쥐려고 허욕에 몸이 달뜬 얼간 망둥이를 충충여 앞장을 세우고 전주를 끌어대여 구문도 따 먹고해서 전보다는 심평이 좀피였다. 그리다가 사기사건에 걸려들어 두어번이나 유치장신세를 지기도 하였지만은 요행 으로 저만은 빠저나와서 강원도 어느금점판에 가있는중인데 한달에 한번쯤 집에 다녀가는 것이었다.

그래서 윤자작이 사준 삼청동 오막사리는, 잡혀먹기는 했 어도 팔어먹지는 않고 오늘날까지 부지를 해 왔다.

인숙은 어머니가 돌아가시든 건넌방에서나 얼마동안 거처 를 해볼가하고 갔건만, 건넌방은 삭을 세를 놓아서 드려다 보지도 못하고 마침 반간쯤되는 행랑방이 비여서 빈대피로 환을친 벽을 신문지쪽으로 발르고 우선 비바람이나 피하게 되었다.

오든날은 어린애를 둘이나 다리고 있을뿐아니라 인숙을 반 가워 하기는커녕

"만장같은 시집을 두고 뭣허러 이구석엘 와 있겠다는거야"

하는 눈치가 빤히 보이는 뚝섬집의 곁에서 새우잠을 잤다.

아버지의 제사는 지낼 꿈도 꾸듯 사람이 없거니와, 오라비 도 없는데 뚝섬집에게 오늘이 제삿날이라고 일깨고 싶지도 않었다. 그러나 그냥 지내기도 섭섭해서 (지방이나 써붙이고 허배라도 해여지) 하다가 (구차하게 형식은 가추어 뭘허나) 하고 이설음 저설음에 한바탕 싫건 울기나 하면 시원할 듯 한 것을 간신히 참었다. 뚝섬집은 이면치례로

"옵바도 안계신데 안방에같이 있으면 어때요. 애들이 수룩 을 해서 시끄럽긴 허지만"

하고 붙잡는체를 하는 것을 한방을 쓰면 서로 괴로운 일이 많다고 행랑방을 쓰기로 한것이었다.

궁가의 며느님이 졸지에 다 쓸어저가는 오막사리의 토굴속 같은 행랑방구석으로 기어들다니 인숙이 자신이 생각을 하 여도 참으로 무량한 감회를 금하기 어려웠다.

봉희는 이튼날 저녁때에 잠시 다닐러 와서

"단 며칠동안이래두 이구석에서 어떻게 지내우?"

하고 도배하는 것을 거들어주고는

"어저께 장발이가 두 번이나 찾아 왔었다우. 옵바가 없다구 따구서 만나 주질않으니깐 나를 찾드래. 그래서 나두 없다 구 그랬더니 뭐라구 두덜거리며 가드래요. 아 그런데 오늘 여길 올려구 나오다가 골목에가 귀신처럼 직혀 선걸 딱 마 주 첬구려"

"그래 어떡했수"

"가만히 생각허니깐 새언니 말대로 그대로 내버려둬선 귀 찮어서 못견디겠길래. 아주 딱 잘러서 말을 해버렸는데"

"뭐라구?"

"제가 말을 끄내기전에 '난 그동안 계동 한참판집으로 어른 들이 혼인을 정허섰는데 내달 초아흐랫날로 택일까지 했으 니 그날구경이나 와주세요'했더니 장발귀신은 입을 딱 버리 고는 말두못허구 얼빠진 사람처럼 뭘거니 섰겠지"

"그래서 용허게 붙잡히질 않었구려"

"마침 전차가 오길래 '그날 꼭 오서요'하고는 훠 잡어타구 와버렸는데 멍허니 전차를 바라보구 선 것이 퍽 가엾어 보 입니다"

하고는

"이런때나 계동 한참판집을 한번 써 먹거든"

하고 잔지러지게 웃는다.

봉희는 올케가 오라비와 무슨 일로 다투었을뿐 아니라 제 사를 지낸다는 핑계로 당분간 피해와 있는줄만 알고, 큰오 라비가 '아버지가 기동이나 허시게 되거든 혼인이고 무엇이 고 하자'고 억지로 욱여서 혼인을 연기한 바람에 그 기쁜 소 식을 전하려고 왔었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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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는 흠씬 풀려서 제법 봄날같이 포근하여젔다. 삼청동 만하여도 시내 복판과는 달러 일은아침부터 뒷곁 개나리산 울에서 참새들이 재절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장독대에서 까 치가 무엇이 반가운지 깍깍하고 우는 소리도 인숙의 머리마 테 들렸다.

인숙은 새들이 우짓는 소리를 듣고 홀로 누었으럄면 오래 잊어버리고 있었든 과천집 생각이 저절로 났다. 윤자작이 인력거를 타고 저의 선을 보러 나오든날 앵두나무에 올라서 서 담밖을내여다보다가 치마를 찌즌이후로 명색한 친정인 이 오막살이의 행낭방으로 쫓겨오다 싶이한 오늘날까지의 지내온일이 벽에붙은 신문지의 광고그림과같이 어수선 스러 히 눈앞을 지나갔다. 여자로서 거의 반생이라고 할만한 과 거가 주마등같이 눈앞을 달려서 바로 어끄제 지낸일같기도 하고 어찌 생각하면 한 백년이나 된 듯이 세월이 더딘 것 같기도 하다. 남편의 류학갈 돈을 변통해서 손에 땀이 나도 록 쥐고 뒷동산으로 올라가 솔밭속에서 새벽녘에 은하수를 바라다보며 애달픈 리별의 눈물을 흘리든때도 바로 이맘때 가 아니였든가.

돈을 보고 어린애와 같이 기뻐하든 그때까지도 여간 순진 하지가 않든 남편이 불과 몇해동안에 얼마나 변하였든가.

저에게 대한 향념이 과연 얼마나 달러젔는가 또는 저역시 남편이라는 사람에게대한 관념과 결혼생활에 대한 비판이 근본적으로 큰 변통이 생긴것도 사실이 아닌가.

하여간 남편과 별거를 하게되고 싀집의 골치아픈 분위기를 버서난 이번 기회는 인숙에게 아츰부터 저녁까지 과거를 고 요히 추억하고 현재를 랭정히 비판하고 또는 장래에 할 일 과 앞으로 나아갈길을 골독히 생각할 시간을 주었든 것이다.

(이렇게 모-든 누(累)를 훌훌 떨어버리고 홀가분하게 살어 보았으면) 하니 누추하고 좁다란 행낭방구석이 마음껏 공상의 날개나 마 필 수 있는 자유로운 천지 같기도 하였다.

"마음에 없는 결혼생활은 지옥살이와 같다. 끈임없는 싸움 을 되풀이 할뿐이다"

어느 잡지에서 본듯한 누구의 말인지 기억이 되지안는 구 절을 몇번이나 입속으로 뇌여도 보았다.

며누리를 보낸지 사흘이 되고 나흘이 지나도 싀집에서는 하인도 한번 보내보지않었다.

(아주 몰은체를 하는구나) 하고 섭섭한것만 이편에서는 보내볼 사람이 없어서 싀부모 에게 문안편지도 하지못하고 있었다. 실상은 (들으면 무슨 좋은 소식이 있을라구. 무소식이 호소식이지) 하고 그다지 궁금 할것도 없었다.

그러다가 닷새되는날 아츰때부터 인숙은 아랫배와 그 근처 에 적지아니한 고통을 느끼기 시작하였다. 그 중세는 짐짓 자세히 적기를 피하거니와 그 고통은 점점 형용할수 없이 심하여젔다. 하로도 여러차레 배설하는 기관에 고통을 느끼 는 것은 말할것도 없거니와, 이수도가 순순치 못하고 동시 에 아랫배는 소화기에 병이 난것과는 딴판으로 아펐다. 심 할때면 아프다느니 보다도 뱃살이 땅기고 송곳으로 쑤시는 것 같다가는 사뭇 톱으로 창자를 써는 것 처럼 복통이 심해 서 안절 부절을 못하고 한참씩 쩔쩔 매였다. 이런병을 한번 도 알어본 경험이없는 인숙은 나날이 더 심해가는 그 지독 한 고통을 혼자서 입살을 깨물고 참었다. 육체상의 고통도 참기 어려운데다가 (이게 그병이 아닌가. 그예 그 못된 병을 옮은것이나 아닌 가) 하는 정신상고민으로 머릿속이 졸아붓는 것 같었다.

그러나 제짐작에도 남편의병이 전염된 것이 확실하다고 인 정이 될사록 부끄러운 생각이 앞을 서서 의사의 진찰을 청 할수도 없었다. 또한 의사의 치료를 받을돈이 없는것도 사 실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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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혼자 알타가 죽으면 고만이지, 구차허게 치료는해뭘해"

하고 인숙은 제살을 쥐어뜨드며 참을 수 없는 고통을 참었 다. 뚝섬집은 하로한두번쯤 나와서 머리만 들여밀고

"저래서 어째요? 횟밴게로군"

하면서도 탕약한첩 지어다줄 생각은 아니하고

"암만 아퍼두 곡기를 아주끈어선 큰일나요. 어서 오빠나 오 서야 헐텐데..... 싀댁에선 왜 사람 하나 안보낸대요?"

하고 미음인지 숙늉찌끼인지 몰은 것을 쑤어다가 예방을 하듯이 문턱에다 놓고 들어갔다. 속으로는 팔자에 없는 송 장을 치울가보아 겁이 나는모양이다.

인숙은 하도 몹시 아프고 괴로우면 (내가 무슨 소용이 있는인생이라고 차라리 얼는 죽어나버 렸으면) 하고 마지막가는 생각이 들어서 한번 드려다 보아 주지도 안는 남편이 야속하지도 않었다. 봉환이가 빙글빙글 웃고 덤비는 악마와같이 징그러워서 이생에서는 무슨 업원으로 맞났거니와 저승에까지 지긋지긋이 쫓아 올가보아 겁이 날 지경이었다.

남편이 아플적에는 끼니때에 먹지도 못하고 며칠식 밤을 새워가며 정성을 다해서 간호를 해 주었다.

(내가 대신 알허 누었으면) 하는 말이 부르지저질만치 피곤이 심할때도 있었다.

그러나 제가알어 주어 남자보다도 몇곱이나되는 고통을 당 할때에는, 비렁방이가 몇차레씩 중문깐에 찾어와서 다 죽어 가는 소리는 한바탕씩 들려주고 나갈뿐......

인숙은 참 정말 굶어 죽고 알어죽을 결심을 하였다. 제가 이대로 세상을 떠난대도 설어해줄 사람하나 없을 것을 생각 하니 제 신세가 더한층 외로웠다. 온세상이 화장터의 새벽 과같이 쓸쓸하였다. 그럴때면 인숙은 (남들처럼 아들이나 하나 낳어보았드면) 하고 일점의 혈육도 끼치지못할것이 원한이되였다.

여자로서 가장 기쁘고 자랑스러운 어머니노릇을 한번해보 지 못한 것이 설기도 하였다. 그러다가도 (그사람의 씨를 받아서 무엇에 쓰게. 부전자전이면 두고 두 고 뉘속을 태우겠기에) 하고 지금 길러나가는 아들이 벌서 싹수가 노란것처럼 수 태한번도 못해본 것이 도리어 다행한 것 같었다.

날이 갈사록 인숙의 몸은 점점 쇠약해가고 병은 자꾸만 깊 어갔다. 원악 성미가 결곡한 인숙은한번 결심한대로 병으로 자살을 하려고 냉수 한목음 마시지 않고 꽁꽁 알타가 이따 금 정신이 깜박 깜박할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봉희 한사람만은 가끔와서 들여다보아 주련만 그야말로 세 철의 유언을 직히듯 시기가 늦인 것을 억지로 부비고 사범 학교 연습과에 입학을 하였는데 학교만 다녀오면

"혼인까지 정한 계집애가 굴레버슨 말처럼 뛰어 다닌다"

고 사설이 나려서 꼼짝못하고 집에 가처있었다.

천만 뜻밖에 인숙의 일이 생긴뒤에 그영향이 봉희에게 미 처서 유치장 이상으로 어른들의 감시가 심해 진 것이다.

"혼인은 연기했다면서 그동안 집이 들어앉어서 멀해요 마 지막 소청이니 중간에 고만 두드래도 학교나 더 댕기게 해 주세요"

하고 할머니에게 울며 떼를쓰고 말을 안들어주면 죽어 버 리겠다고 위협까지 해서 간신히 반허락은 얻었든 것이다.

그것도 한참판의집 문열이에게로 두말없이 싀집을 간다는 조건알에서, 덧들리지 않게하기위한 수단으로 승낙을 하였 든 것이다. 그러나 유치원에 다니는 어린애 모양으로 학교 에 가고 올때에 하인이 붙어 다녔다. 그래서 하학하고 나오 는 길에는 매우 궁금은 하것만 인숙에게 들릴수가 없었다.

또 며칠이 지낸뒤었다. 밤깊도록 인숙은 업드려서 벼개를 물어뜨드며 지독한 고통을 참다가 고만 까무러첬다.

거진 두어시간은 의식을 잃은채 벼개넘어로 머리를 떨어트 리고 업흐러젔다가 이마와 손등에 선뜻한 촉감을 느끼고

"으응"

하는 신음성과함께 머리를 조금 처들었다.

[편집]

"아이고 이게 누구요?"

인숙의 흐릿한 눈은 놀라움에 커지며 실낫같은 목소리로 부르짖었다.

"대체 이게 웬일이야요? 어떡허다가 여기서 혼자 이렇게 몹시 앓는단말슴요??"

복순의 얼굴도 얼른 알어볼수없이 수척한데 푹 꺼진 눈두 덩을 꿈적어리는대로 콩알만한 눈물이 인숙의 손등에 두어 방울이나 떨어졌다.

인숙은 비얄모퉁이에 미끄러저 떨어진 사람이 나무뿌리를 휘여잡고 기어올르려는 듯이

"나를 좀....."

하고 복순의 손을 힘껏 끌어다리여 몸을 일으키려고 한다.

그러나 아랫배가 땅겨서 다시 쓰러저 버린다.

"누어 있어요. 움즉이지말구 가만히 누어있어요"

복순은 동정에 겨워 흑흑 느끼기까지 하며 인숙의 머리를 안어 다시 눕히고 벼개를 반드시 비여 준다.

"언제 나왔소? 내가 여기 있는줄은 어떻게 알구........"

인숙은 말을 하는데도 허리구가 켱기는 듯 고통을 참느라 고 눈쌀을 찦으려 가며 억지로 한마디씩한다.

"......."

대답하는 대신에 못알어보도록 파리한 복순의 얼굴에는 다 시금 두줄기 눈물이 쭈루룩 흘러나렸다. 여자로서는 참을 수 없는 고생을하고 돌아 다니면서도 조금도 비관을 하는법 이 없든 복순의 눈에서 쉴새없이 눈물이 쏟아 지는것을보 자, 인숙의 벼개에도 다시금 두줄기 뜨거운 눈물이 좌우로 흘러나렸다.

복순은 (나까지 이래서는 안되겠다) 는 듯이 짭짭한 눈물을입술로 빨어드리다가 소매로 눈두덩 을 부비며 닥어앉더니

"내 얘기는 밝는날 차차허지요. 나두 병이 나서 죽을자리를 찾어 나왔더니....."

하고 바른편짝 가슴을 부둥켜 쥐며 인숙의 곁에 푹 엎으러 지며 말을 못한다.

복순은 원산 경찰서에서 취조를 받을때부터 급성 늑막염에 걸려서 다 죽게 되어가지고 감옥으로 넘어갔었다. 병감에서 감옥 의사에게 두 번이나 갈빗대의 룰을 빼었것만 종시 차 도가 없었는데근일에는 폐염까지 병발이되여 오늘 내일할 지경으로 위중하였었다. 몇번이나 보석을 청하였것만 보증 금을 바칠수 없을뿐아니라, 예식중의 중요한 피고를 맡어줄 사람이 없다고해서 속절없이 옥중의 고혼이 될 수밖에없었다.

그러다가 복순의 사건을 자진해서 맡어주고 사상범인의 편 의를 잘 보아주는 어느 변호사에게 면회를 청해서 그의 특 별한 호의와 주선으로 보석이되여 나온 것이다.

노자만 간신히 얻어가지고 기차속에 모두 쓰러저서 서울까 지 오기는했으나 다른 동지도 말끔 붙잡혀 가고없어서 세철 과 인숙에게 밖에 의지할사람이 없었다.

전신에 식은땀을 흘리고 송곳끝으로 쑤시는듯한 가슴을 부 등켜 쥐고 세철에게를 찾어갔다.

그러나 둘이서 자취를 하든방에는 벌서 다른학생이 들어있 지 않은가.

주인마누라에게 비로소 세철이까지 검거를 당한줄 안 복순 은, 고만 맧이 풀려서 툇마루에가 쓰러젔다가 두어시간만에 야 깨여났다.

지옥의 밑바닥을 헤매듯해서 ××궁문앞까지 왔것만 얼굴을 아는 행낭어멈은

"셋재아씨는 친정댁에 가 계세요"

하고 제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아이고 이젠 길바닥에서 죽었구나!"

하고 복순은 소슬대문의 문지방에가 거꾸러질번하다가 (그래도 하롯저녁이나마 나를 편허게 뉘여줄사람은 그밖에 없다) 삼청동까지 엎드러지며 곱드러지며 기여올러왔다가 밤중에 문을 흔드는소리에 금광에 가있는 남편이 온줄만 알고 버선 발로 뛰어나온 뚝섬집에게서 인숙이가 행낭방에 알어누은줄 을 알었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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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숙과 복순은 둘이다 새벽녘에야 정신이 조곰 나서 피차 에 그동안 지낸 일이며 세철과 봉희의 관계까지 자초지종을 이야기하였다.

두여자는 서로 불행하고 억울한 체지를 동정하고 새로운 눈물을 흘렸다.

둘이 함께 고통을 참어가며 하소연하듯 한마디 두마디 주 고받는 동안에 번차레로 흥분이되여서 눈물에 젖은 눈과눈 은 가정과 사회에대한 저주의빛으로 번득였다.

"앞으로 무슨일이 또 닥처오든지 우리 둘이 다 하루바삐 건강을회복헙시다. 우리를 죽이지못해허는 무리가 있는동안, 우리는 지긋지긋이 살어가면서 끈기있게 싸워나가는 것이 북수이야"

하고 복순은 저 스스로 용기를 돋군다.

"누가 아니라우. 혼자서 이런 병을 앓다가 죽긴 참 정말 원 통해"

하고 인숙이 역시 입살을깨물고 앙까님을 쓰며 일어나앉었다.

"자- 그럼 우리둘이 다 병을 고칠때까지 다른 걱정은 조곰 두 허지맙시다"

하고 복순은 쑥방석같은 머리를 짚고 앉어서 한참이나 무 슨궁리를 한다.

"장안에 병원이 수두룩헌데 이렇게 손끝맺고 앉어서 죽어 야 옳단말요? 잇다가 내 의사하나를 붙잡어 올테니 위선 진 찰을 받구 치료를 헙시다"

"피천 한닢두 없이 어떻게 의사를 불러와요? 환자버덤 돈 을 먼저 보는 의사를 부작정허구 데려다가 어떡허자구"

"압다, 걱정 말어요. 한 사년전에 ××회 집행위원으로 나허 구 같이 일을 허든 허정자가 여의면허를 밭구 개업을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설마 나헌테 진찰료야 받을라구요. 궁허면 통헌다구 그래두 솟아날 구녁이 있겠지"

하고 복순은 아침때 뚝섬집이 끓여내온 밥물을 마시고 기 염기염 밖으로 나갔다.

두어시간만에야 복순은 정말허의사를 다리고 왔다. 나이가 사십쯤되고 안경을쓴 여의는 진찰 기구가 든 가방을 손소들 고 전차를 타고 끌려왔다. 다른 사람의 면을 보아서라도 옛 날의 동지를 괄시 할수 없었든 것이다.

인숙은 의사가 남자가 아니고 여자인 것을 매우 다행히 녁 이여 반가히 맞어 진찰을 받었다.

허의사 역시 같은여자가 아니고는 묻기 어려운 말까지 물 어보고 거진 반시간 동안이나 자세히진찰을 해보더니

"임독 때문에 일어난 자궁내막염인게 확실해요"

하고 진단을 나렸다.

남편이 강제로 병을 옮겨준 것을 분명히 알자, 병마와 싸 우느라고 수척해진 인숙의피가 끓였다. 환자의 눈치를 채인 허의사는

"그렇게 흥분허면 못써요. 아직 시초가 돼서 다행이 난소까 지는 병균이 침범허지 않었으니까 여러 가지 방법으로 치료 를 받으면 아즉 완치헐수가 있으니 안심허세요. 그렇지만 당분간은 입원을 허서야 되겠는데....."

하고 입원을 하면 돈이 상당히 든다는 뜻을 슬그머니 비친 다. 복순은

"그럼 오늘버텀이래두 입원을해여지. 아무튼 사내놈들을 말 끔 한데다 묶어놓구......."

하고 히떠운 소리를 한다. 인숙은(나중에 뒷갈망을 어떻게 허려구 저렇게 큰소리를 허나) 하고 복순을 쳐다본다. 복순은

"입원비용이야 받어 낼데가있으니 걱정말어요. 나두 덧부치 기로 얼마동안 병원신세를 질텐데 쓰기소에(간호하는사람)하 나를 둔셈만 치구료"

하고 뱃심을 부렸다.

그리하야 그날저녁에 내과와 산부인과를 겹처보는 허정자 의 병원에는 진찰료도 받지못하는 환자가 둘이나 입원을 하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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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와 환자가 함께 열심히 치료를 해주고 치료를 받고하 여서 인숙의 병은 상상하든것보다도 속히 차도가 있어 과히 심한 고통은 받지 않을만치나 되었다. 그러나 세척이나 좌 약을 할 때에는 별로 괴로움을 몰라도 팔에 정액줄기가 잘 들어나지를 않어서 주사를 마질때면 참을수없이 아펐다. 나 종에는 주사기를 들고 들어오는것만 보아도 전신의 신경이 바들 바들 떨렸다. 날카로운 주사침이 살속에 파묻힌 혈관 을 찾느라고 이리 찔러보고 저리 쑤셔보고 할 때에 악마와 같은 봉환의 얼굴이 눈앞에 나타나서 이를 갈며 진저리를 첬다. 병원에 와보니 그런 환자도 많어서 그병을 옮겨준 것 이 아조 남에 없는일은 아니라손 치드래도, 봉희가 밤중에 몰래 빠저나와서 삼청동으로 갔다가 입원을 했다는 소식을 듣고 놀라 한다름에 와서 간호도 못해준다고 울기까지 하고 갔으니까, 남편의 귀에도 제가 몹시 앓는다는 말이 들어 갔 을터인데, 발그림자도 한번하지 않는 것이 여간 야속하지가 않었다. 야속하다느니 보다도 제가 뼈아프게 간호해주든 생 각을 하니 여간 분한 것이 아니였다. 남편이란사람이 그러 허니 달은 식구들을 말할 나위도 없다. 한십년 제집에 두고 부려먹든 종년이라도 앓어서 입원까지 했다면 오다가다래도 인정간에 한번 들여다 볼것이 아닌가.

이런생각을 할 때마다 인숙은 말없는중에 얼굴빛이 변하고 흥분이 될 때마다 (어쩌면 인심들이 그럴가 세상에 누구를 믿고 사나) 하고 새삼스러히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는

"왜 남을 바라고 살어. 나혼자는 못 사나. 사랑이 없는바에 야 그까짓 남편이 다 뭐야. 시집이다 뭐야. 남만두 못허지.

저 복순이만 두 못허지"

하고 모든 것을 단념하려고 하면서 옆에 침대에 누어서 제 가 없었든동안에 보지못한 신문잡지를 얻어다 보기에 정신 이 없는 복순을 겻눈질을해 보았다.

(살도 뼈도 닷지안는 복순이가 아니었드면 어쩔번했나) 하는 생각을 할 때마다 복순이가 목숨의 은인인 듯 고마웠 다. 그야말로 결초로 그은혜를 갚고 백골이 되도록 그 신세 를 잊지 않으리라 하였다.

더구나 인숙은 복순에게서 그동안 겪거온 여러 가지 참아 듯기어려운 경험담을 듣고 이세상에는 얼마나 불행한 사람 이 많고 또는 주의를 위해서는 무엇도 사양치않는 기개있는 사람이 많은 줄을 알었다. 그와동시에 진정한 사랑이나 우 애나 또한 동정이라는 것은 같은계급에 처해서 꼭 같은 리 해관계가있고 서로함께 고생을하는 사람끼리만 주고받을수 가 있는것인줄을 깨달었다.

(내 귀중한 청춘을 얼마나 헛되히 보냈든가. 불없는 화로와 같은 시집을 위해서, 이시대에는 송장과 달음없는 어룬들을 섬기기 위해서, 계집생각밖에 동적이나 사회에 대해서 아모 러한생각조차 없는 방탕한 귀족의 아들 하나를 위해서 남어 지 반생을 보내야 옳은가) 병실 유리창에 잠못일우는 방을 봄비가 뿌리치고 옆에방에 서 병든 어린애가 보채는 애처러운 소리를 들으며 쓸쓸한 침대우에서 눈감고 누었으려면 인숙은 아니해보는 생각이 없고 못해보는궁리가 없었다.

더구나

"나는 병이 속히 나서는 안돼요. 낳기가 무섭게 예심판사의 구인장이 나오면 또 콩밥신세를 지어야 헐테니까 그저 이대 로 죽지만 말구 누었어야 햇빛이나 맘대로 쏘여보지요."

하고 며칠만큼씩 형사가 찾어와서 잡어갈때를 기다리고 기 웃거리는 복순을 볼 때, (그래두 나는 저 사람보다 몇곱절이나 행복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복순은 병이 낳어도 낳어간다고 자랑조차할 자유가없는 여자다. 그동안 페염은 낳었으니 늑 망염이 낳기만 하는 날이면 더한층 비참한 운명이 그쇠약한 육체를 올가 가려고 문밖에 줄을 느리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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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원한지 삼주일만에 의사는,

"뜻밖에 속히 낳어서 인젠아주 완치가 되었으니 퇴원을 허 서도 조와요. 그렇지만 앞으로는 각별히 조심을 해야지 만 약 재발이되는 경우엔 참말 큰일날줄 알어요"

하고 감옥의 전옥이나 교회사가 출옥하는 죄수에게 훈계를 하듯이 금후로는 남자를 경계하라고 인숙에게 친절히 주의 를 시켰다. 허의사는 복순에게서 인숙의 사정을 자세히 들 었을뿐아니라 저역시 매사에 조심스럽고 영리한 인숙이가 마음에 들었다. 그래에 회진하러 들어와서는 나이 사십이되 도록 독신으로 지내는 저의사정 이야기를 하고

"나두 한번 어느 남자헌테 단단이 손을 데어서 그런지 인 젠 사내라면 냄새두 맛기싫구료. 아무튼 여편네두 따루 벌 어먹구 사는게 제일이야. 여간 편허지가 않거든"

하고 한바탕씩 늘어놓기도하고 어느때는 일부러 찾어와서 밤이늦도록 밤참까지 한턱을 내며 이야기판을 버리다가

"그렇지만 나이를 먹어가니깐 자꾸 쓸쓸허구 외로운생각이 들어요. 인숙씨 우리 의형제를 맺입시다. 또 앓으라는 말은 아니지만 이담버텀 약값은 안받을테니 우리 그렇게요 으응"

하고 인숙의 어깨를 두르려주면서 남자처럼 껄걸 웃고 나 갈때도 있었다.

그러나 인숙은 입원비와 주사료며 그밖에 모든 비용으로 적어도 한 이백원이나 가저야 퇴원을 하겠는데 더구나 복순 의 치료비까지도 치러줄 생각을 하니 참으로 난감하였다.

처음에는 복순의 바람으로, 또는 (위선 병버텀 고처놓고 볼일이다) 하고 엉터리 없이 두사람씩이나 입원을 했으나 병이 차츰 차츰 차도가 있어갈사록 (그 엄청난 돈을 어떻게 치르고 나가나) 하고 어찌나 걱정이 되었는지 밤에도 잠이 아니왔다. 복순 은 처음부터

"돈걱정은 말아요. 계산서를 가지구 봉환이를 찾어가서 '자 -네가 병을 옮겨줘서 네 색시가 이렇게 고생을 허지 않었느 냐. 너이는 인정을 몰으는 목석들이니까 한번 들여다보기는 커녕 죽었는지 살었는지두 몰으구 지냈지만 내가 주선을 해 서 입원비용이 이만큼 났으니 물어낼테냐 안낼테냐'허구, 처 맡기구 오면 저의집의 체면을 봐서 상감 감투사러가는 돈이 래두 안내구는 못박일걸. 온 걱정두 팔자요"

하고 팔을 걷고 나서려는 것을

"왜 털끗만치라도 그집에 신세를 또 진단말요? 난 죽으면 죽었지 구구허게 시리 치료비를 그이헌테다 물리긴 싫어요."

하고 그런말은 아예 빛이지도 말라고 얼굴까지 붉혔다. 봉 희는 며칠에 한번씩 몰래과일이나 과자를 싸가지고 와서는 ' 입원비용을 어떻게 하느냐'고 한참식 비인걱정을 해주다가 갔다. 또어떤때 와서는

"아 장발귀신이 편지를 했는데 피눈물을 뿌리고 다시 현해 란을 건너가지만 나는 영원히 당신을 저주한다구 그랬겠지.

아주 앓든니 빠진 것 만치나 시원해."

하고 여전히 올캐가 무슨일로 저의집에서 쫓겨난줄을 몰으고

"집안에선 새언니를 아주 잊어버렸나바. 글세 새언니말은 당최 입밖에두 못내게 허는구려. 옵바는 그저 얼굴이 노래 가지구 취직운동을 헌다구 나댕기든데 어쩌면 여긴 한번두 안들여다본단말요?"

하고 오라비를 꾸짖기도하고 또 어느때 와서는

"참 그 문열이 어머니가 여전히 횟박을 뒤집어 쓰구서 두 번이나 왔다갔다우. 혼인은 여름방학때 허기로 또 택일 했 다나"

하고는 인숙의 귀에만 속삭였다. 그러나 세철이가 나오기 를 얼마나 은근히 기다리고 있다는 말을 복순이가 들을가보 아 눈치도 보이지 않고 일어섰다. 그러나 올때마다 올케의 벼개밑에다가 살그머니 일원도 넣어주고 이원도 넣어주는 것을 잊지않었다.

그러나 이제와서 인숙은 의사가 나가라는 말까지 하는데 퇴원을 할수도 없고 안할수도 없는 가장 난처한 처지를 당 하였다.

十一[편집]

인숙은 생각다못해서 금광에 가있는 경직에게 편지를 하였 다. 붓이 나가지 안는 것을 생후처음으로 어려운 사정을 하 고는 혹시나하고 하회를 기다렸다. 동전한푼도 싀집에는 물 리기가 싫다는 말을안듣고 가서 사뭇 협박을하고 돈을 빼아 서 오랴는 복순의 형세를 보고서 그래도 골육을 낳논 친오 라비에게 처음겸 마지막겸 말이나 해보는수 밖에 없었든 것 이다.

그러나 답장이 올때가 지나도 경직에게서는 아모 소식이 없었다. 몸을 앓는 고통이 덜리자, 인숙은 병원에서 몸을 빼 내일 돈 때문에 여간 조바심을 하지 않었다. 성심성의로 치 료를 해준 의사나 간호부까지도 마주볼 면목이 없을뿐 아니 라, 려관에서 밥값에 붓잡혀 앉인 협잡꾼 같어서 어찌나 창 피한지 같은 환자들 앞에서도 얼굴을 처들 수 없었다. 그와 반대로 복순은 유산태평이다. 륵막염도 거진 나아가것만 염 체는 불고하고 밥걱정 잠자리 걱정을 아니하는 병원에가 만 양 늘어붙어야만 단 하로라도 감옥살이를 연기해 나갈수 있 기 때문이다.

인숙이가 하도 근심을하야 이번에는 울화증이날 지경이니 까 복순은 자꾸만 우순 소리만 실실한다. 그러나 인숙은 겉 으로나마 웃는체할 조그만 마음의 여유조차 없었다. 그래서 두사람은 육장하든 이야기를 자꾸만 되풀이를 하게된다.

"글세 나가면 무에 속시원한 일이 있겠다구 저렇게 속을 바작바작태구 앉었다우? 위선 당장에 가있을데두 만만치 않 으면서......"

"왜 갈데가 없어요. 버젓한내 친정이 있는데 대가댁 행낭방 에 더부살이가 없어서 쓰나"

하고 인숙은 쓸쓸이 웃는다.

"참 정말 싀집에서 또 오라면 갈테요"

이것은 복순이가 몇번식 다저뭇는 말이다.

"내가 새끼에 맨 돌맹인줄 아남. 오랄 사람두 없지만 그집 으로 무슨꼴을 더 보자구 끌려 간담. 싀집살이구 뭐시구 인 젠 잇새에서 신물이 나는데......"

"그럼 나가선 어떡헐테요?"

"글세 바누질품을 팔어서래도 다시 학교엘 댕기겠다니까 고지를 안듣는구료?"

인숙은 입원해 있는동안 열번 스무번 생각한 끝에 새로운 결심을 단단이 하였든 것이다. 복순은 뒤늦기는 했으나 인 숙이가 다니든 학교를마치고 하다못해 재봉틀 회사 외교원 노릇이라도 해서 완전히 독립생활을 하게되기를 바라면서도 인숙이가 거기까지 용단을 할는지가 종시 의문이었다. 그래 서 그 결심을 더 굳게 하기위해서 그런 말만나면 일부러 충 동을시키는 것이었다.

인숙이가 무슨 일이 있든지 두학기만 더 다니면 고등과를 속성으로 졸업할 수 있는 학교에기어히 다시 들어갈 결심을 단단히 하고 며칠을더참고 있는데 경직에게서 가격표기로 돈이왔다. 인숙은 방가움에 겨워 복순을 보고

"그러면 그렇지, 금송아치를 사준다는 우리 오빠가 누의 하 나쯤이야"

하고 소녀처럼 침대에서 깡충 뛰어나렸다. 어느틈에 눈물 이 갈상갈상하게 괴였다.

"네 사정은 짐작하나 금광에와 있기로 남의 뒤를 따러 다 니는 사람이 무슨 큰돈을 만저보겠느냐. 그동안 백방으로 주선하다가 전주에게 내몸을 전당 잡히듯하야 겨우 오십원 밖에 부치지 못하니 남어지는 후일 갚어주도록하마, 금후 조섬잘하고 위선 삼청동집 건넌방에 사람을 내보내고 내가 귀가할때까지 거처하기 바란다."

오라비의 편지를 끌어안고 인숙은 처음으로 남매간의 우애 를 느끼며 어머니 아버지 생각까지 겹처나서 눈물이 앞을 가리것만 일시가 급한 듯이 현금이든 봉투채들고 아래층 진 찰실로 나려갔다. 허의사는 돈을가지고와서도 참아내어 놓 지를 못하는인숙을 안경밖으로 물그럼히 보더니

"의 동생한테야 무슨돈을 받는담. 허지만 나두 환자가 없어 서 쩔쩔매는 판이니까 실비의 반만 받지"

하고 손을 내밀었다가 오십원밖에 못되는돈이나마 송도리 째 가지고 나려와서 받어달라는 말도 못하는 인숙이가 몹시 가엾어 보이던지

"동생의 돈을먹다가 목에걸리게. 당장 나가서 어려울줄도 뻔히 아는데......"

하고 십원짜리 석장만 설합에다 넣고 고래를 들지못하고 선 인숙의손에 남어지 두장을 억지로 쥐여주며

"가끔 찾어 오우. 학교엘 또 댕길 결심을 했다니 내가 셈만 좀 피면 도와주리다"

하고 일어나며 인숙의 한편손을 힘있게 잡는다.

인숙은 '또아'의 손잡이를 붙들고 돌아서서 온몸을 감격에 떨며 흑 흑 느껴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