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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녀성/제18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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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왔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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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다. 인제는 완구히봄이다. 창경원에 밤사구라가 만발하 야 어제밤에는 입장자가 만명도 넘었다고 떠들고, 봄바람에 놀아나서 보찜을 싼 시골처녀가 하로도 몇씩된다고 신문은 흥청거려 제목을붓친다.

봉희는 그봄을 보지않으려고 눈을감었다. 그러나 길거리와 골목안에서 아이들이 가락을 넘기며부는 단조롭고도 애달픈 버들피리소리는 귀를거처 마음속을 간지린다. 눈을감고 피 리소리를 듣자니 봉희는 어느시인의 시한구절이 저절로 읊 어젔다.

내가 부는 피리소리 곡조는 몰라도 그사람이 그리워 마듸마듸 꺽이네.

길고 가늘게 불어도 불어도 대답없어서 봄저녁에 별들만 눈물에 젖네.

봉희는 그 시를 몇번이나 외다가 등창을 밀치고 문턱에 턱 을 고이고 앉어서 우유빛 같이 뿌유스름한 초저녁의 하늘을 우르러보았다. 조금있자 으스름한 보름달이 화초담우로 봉 긋이 체경속에 비취이는 제얼굴과 같은 달이 안개가 끼인듯 한 하늘 바다로 뚜렷이 솟느다.

그 달이 풀솜같은 힌 구름짱속에서 영롱하게 달려나오면 금새로 온누리가 환해지고 시컴언 구름짱이 꿈을거리다가 그달을 통으로 삼키면 봉희의 마음은 감옥속과같이 컴컴해 진다.

"아아 세철씨!"

하고 봉희는 한숨섞어 부르짖으며 미닫이를 탁 닫었다.

그러나 귀를 틀어막고 눈을감어도 마음속으로 자최없이 숨 어드는 봄을 어찌하랴. 잊어버리고저 하여도, 생각지말자 하 여도 그럴사록 저녁마다 밤마다 눈앞에 떠올으로 머리속에 서 어린거리는 사랑하는 사람의 환영을 무엇으로 지워보랴.

봉희는 애상(哀傷)에 좀써는마음을 진정할길없어서 다시금 미닫이를 홱 밀첬다.

달은 바로 봉희의 이마우에서 그 금가루같은 광채를 애달 픈 환상(幻想)과함께 뿌려서 정신이 활홀해지는 것을 스스로 깨닫지못한다.

(저달이 철창속에도 빛이겠지. 그럼 세철씨의 시선도 저달 속에서 내 시선과 마주치지 않을가 저 계수나무 그늘에서, 저 말러붙었다는 시냇가에서.......) 하고 두사람의 눈물에 어리운 두줄기 시선이나마, 창공을 가루질러 달을 초점(焦點)으로하고 그 끝이 마주닫는 듯 어 느듯'슈벨트'의 '성모, 마리아'가 제풀에 봉희의 입을새여 나 왔다. 나이 젊은 수녀가 깊은밤 십자가앞에 꿀어 엎들여 눈 물겨워 기도를 올리다가 청춘의 오뇌에 불타는 가슴을 부등 켜쥐고 성모마리아 외로운자의 어머니 서른자의 보호인 당신 빛난 보좌로부터 내 기도 드르옵소서 슬픔 따러오고 포악스런 임검들이 고통줄때에 성모마리아 성모마리아 마리아 우리 환란 당할 때 우리들이 죽을 때 우리에게 인내력을 주옵시고 도으심을 주시옵소서 ....... 아-멘 .....

하고 창백하든얼굴에 혈조를 띠우고 목에 정렬을 끌이며 신앙의 대상자의 이름을 연겊어 불르다가 '아-멘'소리를 길 고 가느다랗게 뽑고나서는 고만 기진맥진해서 쓸어지는 그 창자를 끈는듯한 노래!

봉희는 그노래의 '마리아'를 속으로만 세철의 이름으로 바 꾸어 불렀다.

집안 사람이나 담밖에 사람이야 듣거나 말거나 목청껏 불 르고 나서는 책상머리에 엎우러저 눈두덩을 부비면서 울음 섞어 기도를 올렸다.

"하나님! 저의사랑하는 세철씨를 하로바삐 그 어둡고 부자 유한 곳에서 나오게 해 주시옵소서. 그이에게 무슨 죄가 있 습니까? 그 건실하고 순직한 젊은사람이, 우리 민족이나 사 회에무슨 죄를 지었습니까? 그이는 어머니도 아버지도없이 자라난 외로운 사람입니다. 이 차디찬 세상에서 어려서부터 죽도록 고생만했습니다. 무엇이 부족해서 또 그런 참혹한 형벌을 그이에게 나리십니까? 하나님! 저이가 서로 사랑하 는 것이 잘못입니까? 저이들은 당신앞에 조금도 부끄러울것 이 없습니다. 당신은 저의들의 깨끗한 사랑을 왜 방해하십 니까? 하나님!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그이를 내일이라도 노 아주시옵소서. 지금 이당장에라도 내보내 주시옵소서!"

봉희는 생후 처음으로 하나님을 불렀다. 정성껏 기도를 올 렸다.

봉희는 전등을 껏다. 그러나 달빛은, 가슴속의 불길은 밤깊 도록 꺼질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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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판서집에서는 택일까지 해보내고도 이핑게 저핑게로 혼 인을 물려만 나간다고 하로바삐 성례라도 시키기를 성화같 이 졸랐다. 별당로인의 이종되는 뚱뚱마누라는 봉희의 할머 니의 곁을잠시도 떠나지안는다. 안잠재기처럼 자고먹고 주 인의 시중까지 들면서 새새틈틈이 혼인독촉을 한다. 한참판 집에서는 병신 자식을 둔 탓으로 행여나 펄펄뛰는 생선같이 성하고 함박꽃같이 탐스러운 봉희를 놓일가보아 겁이났든 것이다. '횟박'이 로인에게 세전하는 귀중한 물건까지 뇌물 로 가지고 찾어오는 것은 물론 나종에는 윤자작과는 겨오 면분밖에없는 한참판 자신까지 왕가의 자동차를 빌려타고 ××궁을 찾어왔다.

"새사돈감의 문병을 안헐수있나"

하는 것을 핑계삼어 왔다가는 주인대감이 안채에 누었기 때문에 전갈하듯 인사치례만 닷발이나해서 안으로 들여보내 고 돌아갔다.

"허- 그사람까지 몸소 오다니 이건 암사돈이 유세허군"

하고 잦가은 미안적에 역였다. 풍이 동했든 당시보다는 말 을 알어들을만치 하고 요새는 각갑하다고 화를 내면서도 방 안에서 기동을 할만치나 차도가 있었다.

"기왕 점잖은터에 정해논걸 두 번씩 물릴수야 없지. 나두 앉어서 새사위 절은 받을만허니 여름안으로 탁방을 냅시다"

하면 마누라는 그런말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암 그렇구 말구요. 학교구뭐구 제맘대루 댕기게 내버려 뒀 다간 또무슨 변괴가날지 알아요? 온 그정강마루까지 나오는 양복때기를 입고는 휘젔구 댕기는걸 보면 눈허리가 시어 서.... 요샌 실성헌 애처럼 밤중이면 소리를 빽-빽-질르니 하루바삐 치지않으면 큰일나겠습니다"

하고 맞장구를 첬다.

그네들은 벌서 셋재며누리는 잊어버렸다. 그런 오륜삼강에 버서나는 음행을한 계집에게 '아버님'이니 '어머님'이니하고 불리우는 생각만하여도 크나큰 모욕을 느끼는 듯 자기네들 은 물론이어니와 하인배들까지도 '셋째아씨'의 일을 입밖에 만 내면 눈이 빠지도록 꾸지람을 들었다. 그러고는 거의 봉 환을 볼때마다

"그게 다 네신수땜을 헌게다. 인젠 한바탕 악몽을 꾼셈만치 구 어떻게 속현을헐 도리를 차려야 허지않겠니?"

"난 몰으겠다. 이번엔 네 맘대루 참헌걸 하나 골르려무나.

이십안 자식이요 삼십안 천량이라는대...... 남같으면 적어도 삼남매는 낳었겠다. 자손이 귀한집안에 큰형도 계집질만 허 면서 여태 자식하나 못낳어 들여오니 그러다간 이집에 손이 끝이겠구나"

하고 아들이 상처한거나 조금도 다름없어 어서 어떠한 암 컷이나 수태잘할 것을 끌어드려서 씨나 받기가 급하였든 것 이다. 그러면 봉환은

"민적이 그래두 있는데 요새 계집애가 첩으로 오려구드나 요. 그것버텀 까닭을 내야지요"

하고 그러지않어도 여기저기 물색을 하는중이라는 눈치를 보였다. 그와동시에 아직도 이혼까지는못하는 법으로만 역 이는 부모를 슬그머니 얼러메는 것이었다.

봉희는 봉희대로 이런말 저런말은 간접으로 귀담어듣고 다 시금 초조와 불안과 머리가 터질듯한 고민에 그탐스럽든 두 볼이 쪽 빠젔다. 인숙이도 없어 제 설음을 하소연 할곳쪼차 없는 것이 더욱 설었다. 밤마다 잠을 못잔다는 구실로 '아다 린'이라는 최면제를 몰래 사들여다가 그약을 두서너개씩이나 먹고야 잠이 들었다. 잠이 들려는것보다도 여차직하면 그약 한갑을 통으로 삼키고 영원한 잠이들려는 결심을하고 책상 설합속에 넣고 잠것다.

제힘으로는 어떡할 수 없는 위급한 경우를 당하면 봉희는 이 마지막가는 수단을 쓰는수밖에 없다고 마음을 다부지게 먹었든 것이다.

그러다가 하로아츰에는 봉희가 학교에 가려고 구두를 신는 데 머리도 안비슨 행낭 계집애가 치맛자락에 바람을 풍기며 두눈이 회둥그래서 뛰어 들어오더니

"자근아씨!"

하고 숨이 턱에 다어가지고 봉희를 부른다.

"왜?"

봉희는 댓돌에 허리를 꾸푸린채 고개만 돌렸다.

"저- 그전에 언젠가 한번왔든.........."

"아 그래?"

"그 학생있죠?"

"뭐? 그래 어쨋단말이냐?"

"그 학생이 아까버텀 대문깐에서 왔다갔다허드니...... 자근 아씨를 잠깐만 나오시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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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희는 한짝발에는 구두단추도 미처 끼지못하고 한다름에 뛰어 나갔다. 가슴속에서 두방망이질을 하고 얼굴가죽이 뜨 겁도록 확근 확근 달건만 전후를 돌아볼 겨를이 없었다.

여전히 단벌 학생복을 입고 모자도 안쓴채 대문간과 중문 간 사이를 팔장을 끼고 왔다갔다 하는 것은 과연 세철이었다.

세철은 등뒤의 구둣소리에 홱 돌려다 보고는 수척한 얼굴 에 빙그시 웃음을 띠우며 뚜벅뚜벅 앞으로 닥어온다. 봉희 는 숨만 갓부게쉬며 인력거를 두어든 헛간 모퉁이에가 비켜 서서 몸둘곳을 몰라한다. 반가움에 겨우니까 말도 눈물도 나오지않는 듯 온몸을 오들오들 떨고만섰다. 그러나 중행낭 채에 세를든 사람들이나 문간방에서 내여다 보는사람만 없 으면 대뜸 세철에게 달려들어 그 넓다란 가슴에 머리를 파 묻고 흐느껴 울었을는지도 몰은다.

세철은 여전히 남자다운 웃음을 띠우고 교복을 입은 봉희 의 알에위를 훌터보다가 한거름 벗쩍 닥어서더니 서슴지않 고 봉희의 두손을 덤석 잡으며

"아직 시집은 안가섰군요"

한다.

봉희는 세철에 뜨거운 피가 단단히 잡힌 두손을 통해서 저 의 전신으로 쏟아지듯이 흘러들어 오는것같어서 쓰러질번하 도록 정신이 앗질하였다.

봉희는 잡힌손에 힘을 꼭 주었다가 살그머니 빼어내며

"언제 나오섰세요?"

하는말과 함께 그제야 두줄기 눈물이 주루루 교복앞 자락 으로 흘러나렸다.

"다리는 좀 어떠서요?"

하고 재분참 물을때에는 벌서 그 목소리는 울음으로 반죽 이 되었다.

"반가운 사람보고 우는법이 어디있어요. 다리는 이렇게났지 요"

하고 세철은 버선등에 눈이나 터는것처럼 북어 대가리같이 앞뿌리가 헤여진 구두를 신은 두발을 탁탁 굴러보인다.

"어적게 밤에 나왔는데 병원으로가서 복순씨가 누은 침대 밑에서 자구왔세요. 복순씨가 나살든 집주인헌테 일러뒀드 군요"

하고는

"그동안 속좀 상허섰지요"

하고 이죽거리면서도 누가 나올가보아 조금 켱기는지 뒤를 돌려다 본다. 봉희는 더군다나 어룬들이 둘이 만나는 광경 을보고 들어간 행낭것에게 듣고 쫓어 나올가보아 간이 콩알 만 해지는 것 같어서

"그럼 지금 병원으로 갈테니 그리루 오서요. 그동안 지낸 얘기를 이 문깐에서 어떻게 다 허겠어요"

하고는 안채로 대고 눈짓을하였다.

"엇저녁에 마침 인숙씨까지 병원에서 만나서 그동안 지낸 얘기를 자세히 들었에요. 즉접 듣지않어두 봉희씨 속은 내 가 제일 잘 알지요"

"그럼 여기서 어디루 가실테야요?"

"모처럼 찾어온 사람을 왜 자꾸만 쫓지를 못해허세요? 처 가가 될집엔 못오는 법인가요?"

봉희는 다시금 얼굴이 확끈하고 달었다. 뱃심을 부리고 선 사람더러 가라고 할수도없고 더구나 들어 가자고 할수도 없 어서 어쩔줄을 몰르고섰는데

"오늘은 봉희씨를 보러온게 아니구 봉희씨 아버지를 좀 만 나라 왔세요"

"네?"

붉어진 봉희의 눈은 꽈리처럼 똥그래젔다.

"즉접으로 단판을 허러 왔세요. 무슨 한참판집의 문여린가 하는자 헌테 봉희씨를 빼았길 나두 아니니까...... 밤새도록 생각해보구 왔으니 뒷일은 내가 다 담당허게 염려말구 어서 학교에나 가세요"

하고 세철은 어서 가라고 봉희의 등을 더다밀듯한다. 봉희 는 세철의 얼굴만 멍하니처다보다가

"안돼요. 되려 덧들리면 큰일나요"

하고 들어가지를 못하게 세철의 앞을 막어서는데 봉환이가 무슨소리를 들었는지 개나쫓이려는 듯이 단장을 휘둘르며 대문깐으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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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요?"

"나 박세철이란 사람이요"

"뭣허러 왔소?"

단장을 뒤로 짚고 버티고서서 곁눈으로 세철을 깔보는 봉 환의 태도는 자못 오만하다. 세철은 (이자가 봉환이로구나) 하면서도 남의이름만 물어보고 저의 성명은 대지를 안는것 부터 아니꼬아서 쥐구녕이라도 있으면 들어가랴는 듯이 고 개를 폭 숙으리고 오도 가도 못하고 선 봉희편으로 얼굴을 돌리며

"오라버닌가요?"

하고 봉환을 눈짓으로 가르치며 묻는다. 봉희는 입속으로만

"네"

하야 보인다.

"넌 들어가 있어. 창피스럽게 문깐에서 무슨 얘기냐"

오라비의 목소리는 매우 점잖다. 세철은 저를 엿보는 숨은 시선을 전후좌우에 느끼며

"나두 좀 창피스러우니 저리루 들어갑시다"

하고는 주인의 허락도 없이 두어걸음 앞을 서서 사랑채로 들어간다.

"여보 어딜 들어 가는거요?"

봉환은 황급히 뒤를 따라 들어오며 걸객을 내쫓는듯한 어 조로 외치며 세철의 앞을 막으려한다. 그러나 가슴을 내어 밀고 들어가는 세철이가 저보다는 몇곱절이나 건장해보이고 모자도 안쓴머리카락이 밤송이처럼 일어선것과 부리부리한 시컴언 눈이 어찌나 감떼가 사나워 보이는지 감히 손을 대 지는 못하고

"저게 누구냐?"

하고 그제야 누이에게 호령하듯 묻는다.

"왜 지금 인사하지 않었서요?"

봉희의 말씨도 순순치가 못하다. 기왕 일이 이렇게 벌어진 바에야 저 역시 망설이고 있을때가 아니라고 용기를 돋우고 만약 오라비가 거절을하면 제가 앞장을 서서라도 아버지를 만나게해서 단판씨름을 할기회를 주랴고 결심을 한 것이다.

저혼자 어대로 몸을 피하는것도 비겁하거니와 세철의 등에 지남철기운이 있는 듯이 꼼짝못하고 끌려들어가는것도 사실 이다.

세철은 큰사랑채 댓돌아래 까지와서 우뚝 섰다.

"여보 남의 집엘 함부로 들어오는법이 어디있소?"

뒤쫓아 들어온 봉환의 옹구바지를 땅에 껄리도록 입은 다 리는 분해선지 겁이나서 그런지 벌벌 떨린다.

"나는 저 봉희씨허구 약혼한 사람이요. 그러니 이집이 아주 남의집두 아니겠지요"

"뭐? 약혼을 하다께?"

놀라움에 빛나는 봉환의 눈은 사실이고 아닌 것을 질문함 이 아니라 질책하듯이 멀찌감치 선 주의를 쏘아본다. 그눈 치를 챈 봉희는

"누가 거짓말을 하는줄 아서요?"

하고 얼굴을 똑바로 처든다. 봉환은 말문이 꽉 맥혔다.

"봉희씨 아버지를 잠간 뵈러 왔는데요"

세철은 침착한 어조로 여전히 봉환의 존재는 인정치 않으 면서 다만 상노나 청직이에게 말하듯주인대감에게 안내를 청한다.

봉환은 누의의 대답이 하도 어처구니가 없거니와 너무나 저를 무시하는 세철의 태도에 고만 빨끈해서

"안돼 아버진 병환중이시니까"

하고 반말지거리로 팩 쏘아부친다.

"병환이 계시니까 위문을 하랴는게 아니요?"

"한번 안된다면 안돼는게지, 여러말할 필요가없어"

"아버지 병위문을 하겠다는데 일부러 찾아온 사람을 거절 하는 법은 어딧소? 난 뵙구야 가겠소"

세철은 구두끈을 끌르고 사랑으로 올라가려 한다. 봉환은 얼굴에 새빨갛게 독기가 올라가지고

"게 아무두 없느냐!"

하고 샛되게 소리를 질른다. 형세가 위헌한 것을 본 봉희 는 오라비의 곁으로 달려가서 파랗게 질린 입술을 떨면서

"옵반 우리일에 참견 마서요! 옵바가 사람을 내쫓일 권리가 어딧어요?"

하고 대어들 듯 한다. 집안일에는 더구나 아무 정신이 없 건만 그래도 새시대의 물을 먹어서 누의의 강제결혼을 반대 하든 봉환이었만 너무나 뻣뻣한 세철과 그편을드는 누의에 게 잔뜩 반감이 생겨서

"무엇이 어쩌구 어째?"

하고 단장을 둘러멘다. 막버리꾼 같이 험상스러운 행랑아 범과 구중이 서넛이나 달려왔다.

그러자 안채로 통한 문깐에서

"뭣들을 그러느냐"

하는 주인대감의 노기를띠운 목소리가 울려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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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환은 아버지의 앞으로 달려갔다.

"안문턱에서 무어라고 고해바첬는지 자작은 아들의 어깨를 집고 노기가 등등해서 두눈을 부릅뜨고 사랑마당으로 지척 거리며 나온다. 대문깐에서와 사랑마당에서 둘이 승강이를 하는것을본 아래것들은 뻔질나게 안으로 드나들며 밖에서 서방님이 욕을당한다고 몇곱절이나 불어서 긴급보도를 하였 다. 그래서 아들이나 딸의 신변에 무슨 위험이 닥친줄알고 불인한몸을 일으켜 손소 쫓어 나왔든 것이다.

안문깐에서는 대방마님과 큰 아씨가 모두들 끓어나와서 와 들와들 떨며 밖앝을 내여다본다. 행랑채와 이웃집에서까지 무슨 큰 구경꺼리가 난 듯이 여편네 사내 할것없이 수십명 이나 이구석저구석에서 숙덕이며 사랑마당을 기웃거린다.

"무슨 구경이야? 저리들 가!"

봉환은 소리를 빽 질르며 싸움꾼을 따러와 파출소 앞에 뫃 여든 구경꾼들을 몰아내듯이 단장을 휘둘르며 내 쫓는다.

구경꾼들은 와르르 헤어젔다가는 그 수효가 더 늘어가지고 금새 쭉 모여든다.

"이년 안으루 들어가거라"

아버지의 호령이 나렸다. 그러나 봉희는 한편짝으로 돌아 만서며 냉큼 말을 아니듣는다.

세철은 자작의 앞으로 닥어서며

"죄송합니다"

하고 공손히 머리를 숙였다. 자작은 두손길을 마주 붙잡고 능청스럽게 고개도 들지못하는 세철을 잠시 눈아래로 깔어 보고는 미친놈이 아닌것만은 확실한 듯 조금 마음을 놓는눈 치다.

자작은 상노와 봉환에게 부액이되어 큰 사랑으로 들어갔 다. 세철을 만나보랴는 것이 아니라, 구경꾼들이 자기의 주 위로 꾸역꾸역 모여드는 것을 보고 대감의 체면상 너무나 창피스러워서 잠시 가까운데로 몸을 피하랴고 들어간 것이다.

봉희는 사랑뒷곁으로 돌아들어가고 세철은 (옳다쿠나) 하고 자작의 뒤를 따러 올러갔다. 안석과 사방침에 비스듬 이 기대여 숨이차서 헐떡거리는 노인을 바라보고 세철은 너 부죽이 엎드려 절을하였다. 그러고는 다시한번

"병환이 계시다는데...... 여간 죄송하지 않습니다"

하고 거북상스럽게 꿀어앉었다. 주위의 형세가 저 때문에 위룽튀룽한 것이 재미적은데다가 애초부터 무슨 싸음바탈을 차리려고 온것도아니요 노인의 화를 이 이상더 돋구는 것이 도리어 제일에 불리한상 싶었다.

(위선 늙은이 대접은 하구나서 슬슬 구슬리는게 상책이다) 하고는 호령이 나리든 이마에 날벼락이 떨어지든 두눈 꼭 감고 앉인 것이다. 자작도 세철이가 공손이 절을하고 꿀어 앉인 것을 보고 (그래도 인사는 아는놈이로군)

"도대체 네가 누구냐?"

하고 조금 목소리를 나추어가지고 묻는다.

"박세철이올시다"

"박가?"

"네-"

"어딧 박간고?"

"밀양이올시다"

자작은 밀양이라는말에 (상놈은 아니로구나) 하고 몸을 조금 일으키여

"그런 화개동 박보국집과 어떻게되노?"

하고 귀양의 아버지 박남작 생각이 언 듯 나서 그당내나 아닌가하고 허허실실로 무러본 것이다.

"전 그런거 모릅니다"

세철은 빵꼬난 양말사이로 삐죽이 나온 발가락을 꼼지락거 렸다.

"모르다니? 제 일가와 계촌도 할줄 모른단 말이냐"

하는 말속에는 (그래도 양반끝으머린줄 알었더니 말정한 상놈이로구나)하는 의미가 포함되었다.

"아버지가 일즉 돌아가셔서 일가가 어디 있는줄도 모르고 자랐습니다"

"응 그래"

자작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장판바닥에다 커다란눈을 나려 깔고 꿈벅꿈벅하고 앉인 세철을 이모저모 뜯어보고는

"내딸과 약혼을 했느니 어쨌느니하구 동네가 다 떠들석하 니 그게 대체 웬소리냐"

하고 얼굴을 불쑥 내민다. 세철은 뒤통수를 극적극적 하다가

"그말슴이 옮습니다"

하고 무릎을 고처 꿀으며 저역시 닥어앉는다.

"그말이 옳다니?"

자작의 언성은 또시다 높아젔다.

"네, 혼약을 했다구 하신 어르신네 말슴이 틀림 없습니다"

세철의 대답은 다시 물어 볼나위없이 똑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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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네'란 말 한마디는 자작의 비위를 몹시거슬렸다. 누 구나 자기 앞에서 '대감'을 개올리는데 귀가 젖어온 늙은 귀 족은 뉘집자식인지도 모르는 젊은 자에게 '어르신네' 소리를 듣기는 평생 처음이라 (발칙한놈을 다 보겠꾼) 하고 속으로 꾸짖으며 눈살을 잔뜩 찦으리고 외면을 해버 린다. 실상은 세철이가 '대감'이라는 존경사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저역시 평생한번도 입밖에 내보지않은 말을 자작 의 비위를 마치기위해서 '대감 대감'하기는 '계집의식'이 허 락을 하지않었든 것이다. 그래서 '어르신네'란 말을 고작가 는 존칭으로 쓴것이었다.

"아버지 고만 들어가시지요"

세철의 등뒤에 보호병정처럼 시립을 하고 섰든 봉환이가 더 아니꼬운 꼴을 당하지 맙시사는 듯이 아버지의 기색을 살핀다.

자작은 비대한 몸을 일으키려고 움즉이면서

"아직 쇠양보양한 젊은 애들이 공부나 착실히 할것이아니 라 남의집 처자의 뒤를 따라다니며 연애를허느니 약혼을했 느니 허는건 불량패류나 허는짓이야. 그런일은 다 부형되는 사람이 알어헐께니까....... 좋도록 말할때에 내집을 썩 나가 거라"

하고 준절히 꾸짖어 보내려한다.

세철은 얼핏 그말끝을 챗드렸다.

"네 지당허신 말슴이십니다. 그렇지만 저는 남의집 색시의 뒤나 쫓어 다니는 불량자는 아니올시다. 우연헌 기회에 댁 따님과 만나서 오래사괴여본 끝에 서로 사랑허는 사이가 되 었구요, 저이들끼리는 결혼헐 것을 약속까지 했습니다. 그렇 지만 지금 말슴허신대로 부모되시는 어른께 양해를 받는 것 이 도리혀 옳을줄알구서 정당헌 수속을 밟으려구 온 것이 올시다"

하고는 무릎으로기어서 자작의 앞으로 더 닥어앉으며 목소 리를 높여

"저이들은 열렬허게 사랑허구 있습니다. 저는 제몸에 어떠 헌일이 닥치든지 한번 굳게 맹세한 따님을 놓치지 않겠습니 다!"

하고 목소리까지 떨어가며 저의 굳은 결심을 토파하였다.

"안돼! 너이끼리 맹서했다는것도 종잡을 말이 못되거니와 그애는 벌서 정혼을 했으니까 여러말 헐께없다"

자작은 딱 무질러 버리고 아들에게 손을 잡혀 일어선다.

세철은 어쩔줄을 몰랐다. 저혼자 아무리 간청을 해본댓자 믿어주지도 않을뿐아니라 참정말 미친놈 구슬이되고 말겠는 데 봉희를 불러다가 무릅마침을 하잘수도없는 노릇이다.

그러는 판에 뜻밖에 봉희가 수청방을 돌아서 나왔다. 옷을 갈어입고 아버지의 담뱃대와 쌈지를 들고 들어와서 얼굴에 억지로 화색을 띠우고

"아버지 담배 태워 드려요?"

하고 일어서 나가려는 아버지의 소매를 잡으며 응석하듯 한다.

봉희는 제방으로 들어가 문고리를 안으로 걸고 손톱녀물을 썰며 생각하든 끝에 (자꾸만 반항하듯허면 역정만 더내실테니 될일도 안돼) 하고 아버지가 저를 고명딸로 제일 귀여하든 터이니까 마 지막으로 어리광이나 부려서 위선 노염이 풀리시도록 한뒤 에 죽자꼬나 하고 매달려서 떼를 써볼 작정으로 한꾀를 내 였다. 그래서 담뱃대를 무기삼어 들고도 다리가 떨리것만 (죽으면 고만이지)하고 대담스러히 나온것이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딸을 흘깃보더니

"이년 죽일년 같으니 어딜나오느냐"

하는 호통과 함께 성한손으로 담뱃대를 홱뺐더니 죽어라하 고 봉희의 머리를 후려갈겼다.

"애고머니!"

하는 비명과함께 봉희의 관잣노리에서 새빨간 피가 대줄기 같이 뻗치다가는 오른편 뺨으로 주루루 흘러나린다. 그피는 자작의 저고리앞섶에 까지 튀였다.

세철은 벌떡 일어섰다. 고꾸라지려는 봉희를 부등켜안고 손바닥으로 그 이마를 눌르면서

"피, 피를 보서야겠습니까? 그-에 우리들의 새빨간 피를 보서야 시원허겠습니까!"

하고 주먹을 쥐고 부르르떨며 목청껏 부르짖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