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녀성/제19장
신혼여행
[편집]一
[편집]명랑한 햇빛이 풀솜을 둔 저고리를 입은것만치나 등어리를 폭온히 나려쪼이는 오후였다. 한강 인도교 아래에는 작난감 같은 낙거루가 단물생선의 비눌처럼 가벼운 바람에 잔물결 이 잡히는 강우에 네댓척이나 떠서 등싯거린다. 노들강변에 길로 솟은 버드나무 그늘로 눈이 부시도록 하얗게 '펜키'칠 을 새로한 뽀-트가 두어척 오리처럼 쌍을 지어 연두빛 신록 에 물들은 물우를 헤치며 돌아다니는 것은 고대로 한폭의 수채화다.
"엣샤 엣샤"
바람결에 불려오는 기운찬 소리에 삼개( )편짝으로 고개를 돌리면 힌 운동모자를 쓴 학생들이 기다란 경주용뽀-트를 웃적 웃적 저어 강한복판을 한일ㅅ(一)자로 가르며 앞서거니 뒤서거니 올라온다. '엣샤'소리와 함께 거리마의 발처럼 일 제히 폈다 옴으렸다하는 '오-ㄹ'( )에서는 물찬 제비의 날개 모양으로 물방울이 뚝뚝 덧는다. 오월의 태양은 씩씩한 청 춘들의 건강을 축복해주는 듯 그네들의 머리우에서 빙긋이 웃는 듯.
인도교 맨끝 난간에는 커다란 책보를 낀 여학생인듯한 헌 출하게 생긴 여자가 아까부터 누구를 기다리는 듯이 철교우 를 서성거리며 '뻐쓰'를 타고 나오는 사람을 일일이 살피고 섰다. 옥색숙고사 겹저고리에 '메린스' 검정치마를 입었는데 그치마 자락은 보드라운 강바람에 하얀 단솎옷이 들어나도 록 풀풀 날린다.
앞머리카락이 자꾸만 이마를 간지려서 물동이를 인 춘색시 의 손짓하듯 하는데 수수하게 '핀'만 꽂어서 틀어올린 머리 는 땋어 늘였든때가 얼마안되는 것처럼 숫이 많고 그 쪽진 맵시가 조금 어색해보인다.
그 여자는 연방 팔뚝 시계를 들여다보며 서울편짝에서 나 오는 사람을 기다리는 눈치더니 수원(水原)으로 가는 뻐쓰가 뿌-○뿌-○하고 닥처오는 것을 보고 그앞으로 달려간다.
그와 거진 동시에
"봉희씨!"
하고 부르며 차창밖으로 손을 내저어 보이는 청년의 벙굿 이 웃는 얼굴이 운전대로 내밀었다. 뻐쓰는 정거를 하였다.
봉흡는 반가운 웃음을 얼굴가득이 띠우고 세철에게 손을 잡혀 말없이 찻속으로 들어갔다.
뜻밖에 찻속은 부피지않어서 두사람은 맨 뒷자링 대절(貸 切)이나 한 듯이 나라니 앉을수가 있었다.
"퍽 오래 기다리섰지요?"
"아마 삼십분도 더 기다렸나봐요"
"차가 제 시간에 떠나긴 했는데 남대문안에서 구루마허구 충돌을 해서 한참이나 지체를 했세요"
나어린 차장의 '오라잇'소리와 함께 차는 떠났다. 둘이 나 라니 앉은 자리 밑바닥의 용수철이 들까부는대로 두 남녀의 몸은 닿었다 떨어졌다 하다가 용금루 앞을 끼고 돌때에는 봉희의 얼굴에 담박하게 한 화장수 냄새가 세철의 코밑에 향기를 풍겨 지칫하면 뺨이 서로 마찰을 할번하였다.
"호사 허섰군요?"
봉희는 그제야 상글 상글 웃으면서 세철의 아래 우를 자구 자구 훑어본다.
"호사가 다 뭐예요"
세철은 수집은 듯이 따러 웃으며 제앞을 굽어 본다.
이날의 세철은 과연 알어보지 못할만치 고학생의 주접을 떨어 버렸다. 중절모자를 새로 사쓰고 기성복인 듯 하나 회 색세루 '쓰메에리'양복을 입었는데 바지금이 칼날같이 서고 발에는 새구두가 번쩍 번쩍 한다. 그뿐인가 그 불밤송이 같 던 머리를 말쑥하게 깎어서 면도자죽이 선명한데 지꾸 냄새 까지 봉희의 코에 마춘다. 입성이 날개라고 그 궁ㅅ기가 뚝 뚝 덧든 한꺼풀을 활딱 벗어버리고 제힘것 몸치장을 하고나 니까 아무리 닥달질을 해도 원체 얼굴빛이 검어서 해곰한미 남자는 못될망정 혈색좋고 기걸한 호남자로는 누구에게나 인정 받을만하다.
(그러구보니 정말 잘 생겼네) 하고 봉희는 자못 만족한 듯이 처음 보는 사람처럼 할끔 할끔 곁눈질로 세철의 얼굴을 도적질해 본다.
"오늘 아침에 두시간이나 목욕을 했지요. 총각때를 말끔 씻 어 버리니까 좀 서운허든 걸요"
하고 세철은 저혼자 싱글 벙글 웃는다.
二
[편집]자작은 울화병이 겹처 나서 위석해 누어
"저년을 내쫓어라. 행실 부정헌 계집애 년은 되저두 좋다.
그년을 내눈앞에 띠우게 했다가는 내가 먼저 죽겠다"
하고는 사실상 딸과는 의절을 해버렸다. 어머니 조차 덩달 어서
"그년이 그애를 넘어 따르드니 물이 들었구려. 어쩌면 자식 마닥 골고루 저모양이 된단 말슴요"
하고 말끗마다 인숙의 탓을 하였다. 봉희는 대낮에도 이불 을 뒤집어 쓰고 덧문을 첩첩이 안으로 닫어 걸고는 이틀이 나 굶고 두눈이 똥똥 붓도록 울었다. 어머니까지 드려다보 지 않는 것이 어찌나 야속한지
"나하나 죽으면 고만이지. 내가 죽어 나가는걸 보서야만 시 원해 허실걸"
하고 몇번이나 '아다린'병을 끄내서 병마개를 잇발로 뽑아 가지고 그대로 목구녁에다 쏟아 너려고 들었다. 그러나 그 럴때마다 책상앞에 두눈을 무섭게 부릅뜨고 나타나는 것은 세철이었다.
"죽긴 왜 죽어요. 부모가 혼인을 반대한다고 그만일에 죽으 면 조선엔 젊은 여자가 씨두 안남께요. 세상에 자살허는것 버덤 더 어리석은 일은 없지요"
하고 꾸지저서 봉희의 손의 약병을 떠러트리게 하였다.
그러나 봉희는 햇빛도 보지못하고 며칠씩 굶어가며 그고민 이 극도에 달해서 참정말 죽어버릴 결심을 새로 하고 세철 에게 유언서같은것까지 써놓고 밤되기를 기다리는데 평시부 터 저를 따르든 행낭 계집애가 편지한장을 몰래 전하였다.
"피를 흘리지않는 전쟁처럼 싱거운 일은 없을것이외다. 그 러나 그이상 한방울의 피라도 우리의 혈관밖으로 쏟아서는 아니됩니다. 우리의 장래에는 연애 이외에 더 큰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을 얼마동안만 참고 기다려 주십시오.
내가 어디로 만나자고 통지를 할 때까지 안심하고 나를 전 과같이 믿어주시기만 바랍니다"
여자의 일홈으로 온 편지사연은 매우 간단하였다.
그편지 한 장에 용기를 얻은 봉희는 그날부터 밥을 먹고 편안치는 못하나마 잠을 잘수가 있었다. 그리고 두 번재 통 지가 오기를 고대하고 죽은체하고 제방속에 가처 있었다.
한편으로 세철은 복순과 의론하고 최후로 비상수단을 쓸 결심을 하였다.
"남의집 색시를 빼내올려면 나버텀 밥버리가 있어야지"
하고 위선 직업을 얻어야 할 것을 통절히 느끼고 십여일이 나 사면팔방으로 게구먹을 쑤시듯 밥버리할 자리를 차지며 돌아 다녔다.
마침 '라듸오'가 성풍이 류행할때라 저보다 이태나 먼저 전 기학교를 졸업한 제집에 돈푼이나 있는 사람이 라듸오 상회 를 열었는데 밖으로 다니며 주문을 맡어오고 헌 기계를 수 선도할 외교원겸 직공 한사람이 필요한 판이었다. 그래서 그방면에 전문지식이 있고 취미도 가질뿐아니라 사람을 건 실하게 보아오든 주인은 두말없이 세철과 함께 손을 잡고 어릿장사처럼 하게되었다.
그집에서 먹고 정말 월급이 삼십원인데 제가 주문을맡어 오거나 기계를 수선하면 주인과 리익을 노나 먹기로 작정을 하여서 부지런하게만 하면 한달에 사오십원 수입은 얻을만 하게 되었다.
세철은 며칠동안 일을 보아 주다가
"나 장가좀 들어야겠소. 당분간 거저 일을 해줄테니 석달치 월급만 닥어주어야 살림을 시작허겠소"
하고 주인에게 사정을 말하고 막 떼거리를 썼다.
그래서 홀어머니를 뫼시고 사는 주인의집 뜰아랫방을 빌어 서 제손으로 도배를 깨끗이 하고 복순의 손을 빌어 값싼 양 속으로나마 금침을 작만하고 솥이랑 사기 그릇이랑 당장 아 쉬울것만 사들여다 놓고 제옷까지 일슴을 해입은뒤에야 봉 희에게
"자- 인제 나오시오"
하는 통지를 버저시 하였든 것이다.
그리하야 몰래 빠저나온 봉희와 병원에서 둘이 만나가지고 따로 따로 나와서 뻐쓰를 타고 수원서 한시오리나 되는 시 굴에 있는 세철의 어머니의 무덤으로 성묘겸 신혼여행을 가 는 길이었다.
三
[편집]두 사람은 '뻐쓰'에서 나려 결혼식장에서 나오는 신랑신부 처럼 행인이 없는데서는 팔을 끼고 걸었다.
집안 사람의 눈을 피해나온 도망군이었만 봉희의 얼굴에는 조금도 겁을 내거나 불안해하는 빛이 보이지 않었다. 다만 오렛동안 감금을 당하다가 나와서 혈색이 전처럼 좋지못하 고 다리를 띠어놓는 것이 허전허전해 보일뿐.
"다리 아프지 않으세요?"
세철은 타박타박한 산골 꼬부랑길로 봉희의 손을 끌고 올 나 간다.
"왜 업어주실테야요?"
봉희는 이미의 땀이 송송난 것을 소매로 씻으며 정말 업어 나 달라는 듯이 버팅긴다.
세철은 바른편 팔로 봉희의 허리를 벗석 껴안어 번쩍 들듯 하고는 허청 거름을 걸린다.
"고만 노서요. 저기 누가 와요"
봉희는 제허리에 굳세게 감긴 사내의 팔을 푼다. 온몸이 근지러운 것은 줄재요 가슴이 두근거려서 숨이 가뻐 걸을수 가 없었다.
지계에 꼴을 한짐씩 지 목동들이 앞서오는 아이의 피릿소 리에 맞추어 노래를 부르다가 뚝 끊지고 두사람이 지나가는 것을 물끄럼이 바라다 본다.
새순이 파릇파릇하게 돋아나는 어린 소나무와 참나무숲 사 이에 여기저기 진다홍 치마를 입은 계집애가 쪼그리고 았인 것 같은 것은 응달에 늦게핀 진달래다. 어찌보면 봉희가 흘 린 핏빛 같이 석양에 물이 들어서 새빨개 보이기도 한다.
"아이 곱기도해라. 여긴 인제 진달래가 피였군요"
하고 봉희는 뛰어가서 진달래 꽃을 꺾어서 한아름이나 안 고는 졸졸졸 흘르는 시내를 몇번이나 건느고 얕은산 모통이 를 돌았다.
해가 설핏해서 축동의 열을 지여 선 버드나무가 새파란 자 리를 깐듯한 보리밭우에 그 그림자를 기다랗게 눕힐 때 두 사람은 어머니의 무덤이 있는 동리에 다달았다.
"아주머니가 그저 사시었는가? 벌서 돌아가섰는지두 몰으 는데......"
하고 세철은 십년이 넘도록 못와본 저의 고향을 찾어 들어 오니 무량한 감개에 가슴이 벅찼다. 이세상에서 저와 가까 운 사람이라고 다만 하나뿐인 고모가 그저 이 동내에 살어 있는지가 의문이었다. 합병하든해에 '시베리아'로 망명해서 아직도 생사조차 몰으는 아버지의 친누님이 되는 고모의 집 에서 어머니가 돌아갔다. 기미년이듬해에 복순이와같이 병 이들어 나와서 이고모의 집에서 앓다가 돌아가서 그 뒷산에 묻힌 것이다.
그러나 세철이가 산기슭에 다 쓸어저가는 초가집으로 찾어 들어가서
"아주머니!"
하고 몇번이나 불렀을 때
"아 네가 누구냐"
하고 허급지급 마루끝으로 나온 것은 아직도 살어있는 고 모였다.
앞니가 젖먹이 어린애처럼 몽땅 빠지고 안질이 나서 눈이 짓물짓물한 고모는
"아이고 이게 누구냐. 응 이게 누구냐? 세철이가 나를 찾어 오다니 생시같지가 않구나"
하고 못알어보도록 건장하게 자란 조카의 등을 어루만지며 뺨을 부비면서 눈물을 질금 질금 흘린다. 재작년에 남편이 돌아가고 아들은 신작로 닦는데 십장으로 다니느라고 집에 없다는것과 그동안 얼마나 고생을 하고 이만치나 튼튼하게 잘았느냐고 세철이가 대답할 사이도없이 합죽새 같은 입을 놀리며 물퍼붓듯한다.
세철은 구두도 끌으지않고 마루 끝에 걸터앉어서 그동안 지낸 이야기를 대강하고 장가를 들고 어머니 성묘를 하려고 동부인해 왔다고 하고는 그저 대문밖에서 서성거리는 봉희 를 불러 들여 상우례를 시켰다.
"아이구 온 어서 이렇게 모란꽃 같은 색시를..... 녀석이 엉 큼두 스럽지. 어려서 버텀 네가 뱃장이 크드니라"
하고 고모는 봉희의 손을 잡고 놀줄을 몰은다.
두사람은 집뒤의 잡목림사이를 헤치며 어머니의 산소로 올 라갔다. 서향으로 야트막한 언덕우에 사초도 아니하고 석물 도 없는 고총앞에서 세철은 모자를 버섰다. 봉희는 (아이구 어쩌면 이렇게 내버려뒀을까) 하면서 들고 올나간 진달래꽃 한묵끔을 조심스러히 봉분 앞에 바쳤다.
머리를 순이고 묵묵히 선 세철의 어깨가 점점 떨니더니
"어머니!"
하는 소리와 함께 푹 엎으러지며 어린애처럼 엉엉 소리를 내면서 목을 노아 운다.
四
[편집]"고만 끝이서요. 네 고만요"
하고 세철을 안어 일으키면서 봉희도 눈에 손수건을 대었 다. 그러나 세철은 어머니마저 여의고 오늘날까지 가진 고 생을 다 하면서 참어 오든 설음과 일만가지 감회가 일시에 끌어올라서 장마통에 물밀 듯이 터저 나오는 울음을 억제할 수 없었다.
조금있자 고모까지 꼬부랑 지팽이를 집고 올러와서 조카와 마주 붓잡고 울다가
"이얘 고만 내려가자. 시장들 헐텐데 어서 저녁 요기를 해 여지"
하고 조카 내외(?)를 다리고 나려갔다.
세철은 봉희와 겸상을 해서 밥을 먹으면서도 그저 마음속 으로 우는 듯 억지로 울음을 끝인 어린애처럼 가슴을 떨며 흑 흑 느낀다. 봉희도 무어라고 위로해줄 말이 없어서 잠자 코 밥을 떠너었다. 그러나
"여기선 이십리밖에 장이나 서는날이라야 고기구경을 헌단 다. 서울 색시가 이런 찬없는 밥을 어떻게 먹나"
하고 고모가 간장만 찔끔 처서 무처다주는 고비와 고사리 나물과 달래를 넣고 끌인 된장찌개는 여간 맛이 있지 않었다.
저녁뒤에 두사람은 헌 돗자리 하나를 들고 다시 산소로 올 라가서 어머니 무덤앞에 나라니 앉었다.
달은 아직 뜨지 않었서도 초저녁 하늘에는 새파란 별들이 총총하다. 마을 한복판을 뚫고 흘르는 한줄기 시내는 그별 빛을 은은히 반사하는데 이따금 먼촌에서 컹컹컹 개짖는 소 리가 아득히 울려올뿐. 숲속에 깃드렸든 새들이 날개를 푸 득이는 소리에도 놀랄만치나 천지는 괴괴하다.
"봉희씨!"
하고 적막을 깨트리고 나즉이 불으는 세철의 목소리는 전 에 없이 은근하다.
"네!"
저역시 이런생각 저런 생각에 머릿속이 죄어드는 것 같어 서 눈을 나려감고 앉었든 봉희는 천천히 머리를 들었다.
세철은 봉희의 손을 힘있게 잡으며
"봉희씨 난 봉희씨헌테 여간 미안허지가 않어요"
하고 무슨 사과나 하듯한다.
"그게 무슨 말슴이야요? 새삼스레 뭬 미안허다구 그러서 요?"
"허구많은 남자중에 하필 나같은 푸로(없는사람)을 만나서 화려헌 결혼례식도 못해보구 면사포도 한번 못써보구서 이 런데루 껄려왔으니 속맘으론 여간 섭섭허지가 않으실걸요"
"누가 껄려와요? 내 발로 걸어왔지요. 내일생중에 가장 귀 중헌 제일보를 내발로 내디뎠지오. 쑥스럽게 그까짓 면사포 는 써뭘해요. 그렇지만 그 대신 자동차는 싫건타지 않었여 요?"
"신혼려행은 '뻐쓰'를 타고...... 바루 시의 제목가꾼"
"그러군 싀어머니한테꺼정 찾어와서 진달래꽃으로 폐백까 지 들이지 않었어요? 대추도 붉고 진달래꽃도 붉으니까요.
호호호"
봉희는 잡힌손에 힘을 주며 명랑이 웃는다.
"그 버덤 더 붉은게 있지요. 그게 먼줄아세요?"
세철의 뭇는말에 봉희는 머리우의 별처럼 두눈을 깜박이다가
"우리의 정성 우리들의 뜨거운사랑........"
하고는 부끄러운 듯이 몸을 기대며 세철의 가슴에 머리를 파묻는다. 세철은 그 굵다락 두 팔로 여자의 상반체를 버쩍 끄러안으며
"정성버덤두 사랑버덤두 더 붉은게 있지요. 새빨간게 있지 요. 그날 봉희씨가 아버지 앞에서 흘린 피! 그피 몇방울 때 문에 그값으로 우리가 최후의 승리를 얻은게지요. 인생의 제일 행복허다는 오늘 저녁을 단둘이서만 눌이게 된게지요"
하고서 세철은 목소리를 한층 높여
"그렇지만 봉희씨! 내가슴에 손을 대보서요. 이 염통속에서 끌는 피는 내전신의 혈관속을 핑핑 돌면서 갑있게 흘릴때를 기다리고 있에요!"
하고 봉희의 손을 끌어다가 저의 왼편 젖가슴에다 누른다.
그와 동시에 봉희는 아버지의 담배통에 터진 자리에 아직 도 반찬고를 부치고 있는 이마에 뜨거운 남자의 입술을 느꼈다.
五
[편집]한참만에야 두사람은 굳세인 포옹의 팔을 풀었다. 봉희는 숨을 가뿌게 내쉬면서
"내가 정말 세철씨 헌테 여간 미안허지가 않어요. 난 입때 아무것도 헐줄 몰으는데다가 배운것도 없어서 앞으로 세철 씨를 어떻게 도아 들일는지 벌서버텀 큰 걱정이었에요. 그 렇지만 뭐든지 내힘껏은 허께 넘우 구박을랑 허지 마서요 네?"
하고 애원하듯 한다.
"누구는 뱃속에서 버텀 살림살이 허는거나 사회에 나서서 일허는 법을 배워 가지구 나왔나요. 그저 성의껏 어려운걸 참구 해나가면 되지요. 우리가 몸만 튼튼허구 사랑만 변허 지 않으면 조곰두 겁날게 없세요. 이세상에 어려운것두 없 구요"
"그렇지만 우리처럼 결혼을 허는 사람은 별루 없을걸요?"
"그럼요. 우리들의 흉내는 아무나 다 못내지요"
하고 세철은 하늘을 우러러 껄걸 웃더니
"실상 우리의 결혼이야말로 신성허지요. 보세오 '로맨틱'허 게 생각을 허면 저 하늘에 영원무궁히 반짝이는 수억만개의 크고 적은 별들이 우리들의 결혼을 보증해 주지않어요? 변 함없는 희망의 파-란 우슴을 끼언저 주지 않어요? 더구나 등뒤에 계신 우리 어머니는 령혼이나마 살어계시면 얼마나 기뻐 허시겠어요? 돌아가실때에두 내일홈을 세 번씩 불르다 가 숨이 끈치신 우리 어머니가 얼마나 우리를 신통이 녁이 시고 만족해 허시겠에요? 난 아까버텀 어머니가 이 봉분을 헤치고 나오셔서 우리를 등뒤에서 얼싸안어 주시는 것 같어 서 여간 든든 허지가 않어요"
하고 정말 어머니가 살어 나오기나 하는 듯이 미풍에 잔디 풀이 가늘게 흔들리는 무덤을 흘금 흘금 돌려다 본다.
"참 그래요. 정말 배꽃처럼 하-얀 옷을 입으시고 웃으시면 서 나오시는 것 같아요. 아무튼 신랑신부의 일홈도 똑똑이 기억을 못허는 목사가 직업적으로 하느님을 찾고 입에 발린 축복을 해주는 결혼식 버덤은 얼마나 깨끗허구 신성헌지 몰 라요"
하고 사실로 조금도 섭섭하지 않은 눈치를 보인다. 세철은
"그래두 친아버지 어머니 생각은 날걸요. 그렇지요?"
하고 봉희의 속마음을 찔러본다.
"아-뇨. 우리의 결혼을 진심으로 축복해주는 사람이 한분 만 계셔도 만족헐텐데 저- 어머...님 이외에도 복순씨도 있 고 우리 새언니도 있지 않어요. 새언닌 오늘 밤을 새우면서 기도래도 해줄껄요"
두사람은 다시금 머리를 숙이고 묵상에 잠겼다. 마진편 산 골짝이게서 뻑꾹새가 잠꼬대를 하는 것 처럼 뻑꾹 뻑꾹 뻑 뻑꾹하고 두어마디 울면서 잠자리를 옴겼다.
"고만 나려갑시다. 이슬이 이렇게 네리는데......."
세철은 봉희의 거드랑이를 겨들어 일으켰다.
봉희는 이제까지 깜아케 잊어버리고 앉었든것처럼 형용하 기 어려운 흥분과 처녀로서의 육체에 대한 불안을 느꼈다.
(오늘이 첫날 저녁이로구나!) 하는 의식이 머리속에 떠올르자 제 어깨를 얼싸안고 나려 가는 세철이가 무서운 생각까지 들었다. 건장한 남자에게서 옴겨드는 체온에 저의 라체를 새털로 간지리는듯한 수치감 (羞恥感)을 느껴 소름까지 옷삭돗는 것 같었다.
건너방에는 으스름한 불빛이 밭전(田)자 들창의 창호지를 배여 나온다.
방문을 열고보니 고모는 가느다란 촛불을 켜놓고 그앞에서 돗뵈기 안경을 쓰고는 벼개잇를 시치고 앉었다가
"인제들 나려오니? 한평생 두구두구 헐 이야기를 오늘 저 녁에 아주 봉을 빼려는구나"
하고 오무러든 입모습의 근육을 눈가장자리까지 꿀어올리 며 우서 보인다.
아랫묵에는 어린애 포대기같은 이불을 그것도 한채만 동그 마니 펴놓았다.
"아주머니"
"왜?"
"조 좁다란 이불 한채를 덮구 어떻게 자우?"
"압따 별소릴 다 허는구나. 삼척냉돌에서두 봄바람이 일텐 데.... 그것두 널지 뭘"
하고 고모는 조카에게 벼개를 던저준다. 나가다말고 웃목 에가 머리를 숙이고 반쯤 돌아선 봉희의 얼굴을 찌긋이 들 여다보며
"그렇지!"
하고 젊은 여자처럼 눈우슴을 처보이고는 지계문을 살그머 니 닫고 나갔다.
조금있자 건넌방의 문고리를 안으로 거는 소리가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