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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녀성/제2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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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진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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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해요?"

허의사의 눈치를 살핀 인숙은 불길한 예감을 느끼면서 초 조히 물었다.

"열이 사십도나 되는걸"

의사는 혼잣말 하듯허며 알콤솜으로 주사기를 소독하면서

"산소흡입을 시킬테니......어서"

하고 간호부에게 준비를 명령한다.

인숙의 마음은 더욱 불안해젔다. 바작바작 타는 입술을 떨 면서

"무슨 병이야요?"

하고 주사기의 약물을 넣는 허의사의 얼굴을 쳐다보니까

"독감이 쇄서, 가다루성 기관지페염이 됐는데 급성인데다가 때가 늦어서 오늘 저녁이 제일위험허겠소. 글세 어쩌 자구 요 어린걸......"

하고 또다시 혀를차며 밤새도록 찬바람을 쏘이고 끌고다닌 어머니의 지각 없음을 꾸짖고는

"절대로 안정을 시키는게 필요허니까 입원을 해야겠소"

하고 허의사는 보호자의 승낙을 어들필요도 없다는 듯이 뒷채의 온돌방 하나를 치우라고 분부를 한다.

(아이고 또 어떻게 입원을 허나)

인숙은 세 번째나 허의사의 신세를 짓기가 진정으로 어려 웠다. 그눈치를 챈 의사는

"나 허라는대루 안허면 큰일나요. 개증만 났다가는"

하고 반은 강제로 일남을 입원 시켰다.

일남이가 주사를 맞는 것은 안타까워 참아볼수가 없었다.

바늘끝이 고 나근나근한 가죽과 살을찔을 때 인숙은 동침으 로 저의 염통을 꾀뚫는 것 같아서 고개를 돌렸다. 일남은 아픔을 견디지 못하고 사지를 음치러트리며 발발 떨고 울지 도 못한다.

새가심 같은 것을 헤치고 습포(濕布)를 하듯이 무슨 고약같 은 것을 발르고 산소 흡입을 시켜 보인뒤에 간호부는

"이 마스크를 너무 가까이 대지말구 이렇게만 줄곳 해주서 요"

하고 방법을 알으켜주고 나갔다. 웃으운 소리도 곳잘하고 남자처럼 쾌활하던 허의사는 일남을 진찰해 본뒤부터 엄숙 한 과학자의 태도로 변하였다. 사실 일남의 병은 자기로서 도 장담을 하지 못할만치 위중하였던 것이다. 사람의 생명 을 맛는 의사로서 무거운 책임을 느낄뿐아니라 일남이가 인 숙에게 있어서 다만 한줄기 생명선인 것을 잘알고 남유달리 동정을 해왔기 때문에 구세주와같이 신임을 받는 자기의 책 임이 너무나 무거웠다. 더구나 일남의 맥박이 일분간에 백 이넘는 위험한 상태에 빠진것을보니 말한마디 할여유가 없 을만치 마음이 긴장된 것이다.

인숙이 역시 일남의 병증세를 더 물어 보지 못하고 더러운 김을 내뿜는 아들의 조그만 입에 잠시도 끄치지 않고 산소 흡입을 시켜주면서

"일남아, 엄마가 잘못했다. 몹쓸 엄마 때문에 네가 이렇게 고통을 당허는구나. 오늘밤만 자구나면 났는다. 그렇지 오늘 밤만 잘자구 나면 전처럼 웃구. 옹알옹알허구 그러지? 응 우리일남아!"

하다가는 눈뚜덩이 뜨끈하고 솟아오르는 눈물을 몇번이나 마음속으로 소리없이 삼켰다.

허의사는 다른환자를 보다가도 틈틈이 들어와서 맥을 짚어 보고 손소 약을 먹이고 끊침없이 체온을 검사해 달라는 말 만 일르고 나간다. 돈을 버젓이 내고 입원을 한것도 아닌데 자기가 기거를 하는 뒷채의 온돌방까지 내여주고 성심성의 로 치료를 해주는 허의사의 친절에 인숙은 얼굴을 들수없었 다. 그가 다녀 나갈적 마다 궁금해서

"좀 어떱니까?"

하고 묻고싶건만, 말도 감히 못하고 눈치만 볼뿐이다.

오로지 제가 잘못해서 일남의 병을 더치게한 것이 의사의 앞에 큰 죄를 지은 것 같기도 하였던 것이다.

일남의 신열이 더 올랐다 나렸다 하는동안에 해가 기울고 날이 저물고 바람소리 쓸쓸한 병원 뒷채에 밤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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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을 새울텐데 요기를 해야 허우. 우리 저녁 같이 먹읍시 다"

허의사는 겸상을 해놓고 인숙을 권하였다.

"밥생각 없어요"

인숙은 의사의 호의를 물리첬다. 몸도 몹시 괴롭거니와 아 침에 봉희에게서 콩나물국 몇목음 마시는체 한것밖에 입쩍 도 하지않어서 허기가 지다못해 배속에서 찬바람이 이는것 같고 어찔어찔해서 사람의 얼굴이 하나로 보였다 둘로 보였 다하건만 잠시 잠간도 일남의 곁을 떠나고 싶지가 않었다.

어쩐지 문밖에 나갔다만 들어와도 그동안에 누가 일남이를 머나먼 곳으로 데려갈것만 같아서 눈깜짝할 사이라도 머리 맡에서 일어나고 싶지가 않었다.

"일남아, 네가 나어서 엄마의 젖꼭지를 다시 물때까지 난 아무것두 안먹을 테다"

하고 인숙은, 극도로 흥분한 김에 앞뒤를 생각지못하고 성 치못한 어린 것을 업고 다녔던벌을 받는셈 치고 생으로 굶 었다. 굶기는커녕 살이찌끼고 뼈가 으스러저 가루가되는 한 이 있드래도 일남의병을 났게 해주기위해서는 그보다더 큰 고통이라도 참을것같다.

세간하나 놓이지 않은 방안은 무덤속같이 고요해지고 일남 의 숨소리는 높아만간다.

이미 치료를 받을때를 넘겨서 주사와 약효가 아직도 나타 나지는 않는가.

체온기는 삼십구도와 사십도 사이를 오르락 나리락하며 족 므도 몸은 식지않는다. 산소흡입을여전히 시켜주고 대야에 더운물을 들여놓고 수증기 기운까지 쐬여주는데도 일남은 금방 숨이 끊칠것같이 호흡이 거칠다. 갑갑하면 눈을 치뜨 고 팔을허공으로 내젔다가는 기저귀를 갈어 채울때처럼 두 다리를 쭉 뻗는다. 그럴때마다

(아이고 재가)

하고 인숙의 간은 콩알만 해진다. 몇번이나

"선생님 이앨좀....."

하고 의사의 방으로 뛰어가려다가 숨소리가 조금 가러앉는 것을 보고는 도로 앉고 하였다.

아들의 숨소리가 높아가면 어머니의 숨소리도 높아가고 조 그만것의 고통이 더해갈사록 어른의 마음은 몇곱절이나 아 펐다.

밤깊자, 인숙은 머리맡에 약병을 정안수삼어 그 앞에 꿀어 앉어 정성껏 기도를 올렸다.

"하느님 이세상에서 다만 하나밖에 없는 저의아들을 살려 주십시오. 그저 제가 잘못했습니다. 이 어미가 미첬었습니 다. 환장이 됐었습니다. 저것하나 길르는것밖에 소망이 없는 이 불상한 어미의 마지막 발원을 들어 줍시사 죄많은 저를 대신 잡어가 줍시사"

하고 짭짤한 눈물을 빨어가며 손바닥을 땀이나도록 부비면 서 빌었다. 인숙은 하느님이나 부처님이 아니래도 아무에게 든지 빌고 싶었다. 무당을 불러 굿이라도 하고 장님을 데려 다가 경이라도 읽히고 싶었다. 허다못해 죽이라도 쑤어다 길바닥에 버리고 삼신레를 지어놓고 열번 스무번절이라도 하고싶었다. 일남이만 살려준다면 어떠한 부끄러운 짓이라 도 서슴지 ㅇ낳고 할것같았다. 하고 싶었다.

산소(酸素)가 물속으로 방울을지며 통해나오는 소리만 뽀글 뽀글 그러나 인숙의 귀에는 그소리가 들리지 않었다.

자정때나 되어서 허의사는 침의를 입은채 들어왔다. 일남 의 경과를 한참이나 보더니

"인젠 한가지 수단밖에 없소"

한다.

"네?"

인숙의 정기없는 눈은 동그래 젔다.

"수혈 밖에는"

"수혈이라뇨?"

"피를 뽑아 넣보는건데...."

그말을 듣자, 인숙은 기다리고나 있었든것처럼 선뜩 팔을 걷어 내밀었다.

"이 피를 뽑으서요. 다 래두 뽑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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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깊은 허의사는 모자의 피를 조금씩 뽀아서 혈액의형 (型)이 맞고 안맞는 것을 시험관에 넣고 그반응(反應)을 검 사해 본뒤에 인숙의 팔에서 수십 '그람'의 피를 뽑었다.

젖먹이에게 수혈을 하기는 익숙한 의사로서도 가장 어려운 일이요, 또한 고작 위급한 경우에 마지막으로 취하는 수단 이었다.

인숙은 눈한번 깜작어리지 않고 피를 뽑혔다.

묵묵히 간호부를 지휘하는 허의사는 이마와 코ㅅ등에 땀이 내배이도록 긴장이 되어 병마와 싸우다가 지처늘어진 조그 만 환자에게 무사히 수혈을 하였다. 그동안 주사기를 쥔 허 의사의 손끝이 떨리는대로 인숙의 가슴도 떨렸다. 어머니의 산피를 즉접으로 받는 일남의 실고초같은 혈관도 지극한 모 성애에 가늘게 떨렸으리라.

"인젠 경과가 조와야 헐텐데......"

하고 허의사는 거진 반시간동안이나 일남의 얼굴을 살펴보 고 숨소리를 들어보고 하다가

"얼마동안 안심을 해두 좋으니 단 한시간이래두 눈을좀 부 치우"

하고 피를 뽑혀서 더구나 햇슥해진 인숙의 얼굴을 처다보 고 자기방으로 도로 나갔다. 인숙도 비로서 조금 마음을 놓 고 일남의 곁에가 쓸어젔다. 자기의 핏속의 혈구(血球)가 일 남의 전신을 돌아다니며 병균을 하나씩 물어박질을 것을 상 상하면서 그러나 잠은 오지않었다. 꿈도 아니요, 생시도 아 닌 경계선에서 몽롱한 정신이 들락날락하는데 온몸은 마비 된것처럼 감각을 잃어서 제살을 꼬집어보고야 아직도 살어 있는 것을 깨달을만한 정도였다.

한 십년이나 되는듯한 기나긴 겨울밤이 밝었다. 일남의 조 그만 육체를 사로잡은 병마도 인숙의 지성에 감동이 된 듯, 그날밤에는 더 극성을 부리지 않었다.

인숙은 다리를 뻗지 못헌채로 한 두어시간 눈을 부치고 나 서, 아츰에 우유를 마시고 기운을 차리고 허의사 역시

"이대루만 가면 천행이요. 허지만 그동안 젖한목음 안먹어 서 극도로 쇠약하니까 안직 안심은 못허우"

하고 자기의 인술(仁術)이 효과가 나타남에 만족한 웃음까 지 띠었다. 인숙은

"선생님! 이 하늘같으신 를........"

하고는 무한히 감사한뜻을 대신해서, 서리마진 풀님과같이 시들고 바래인 입술에 가득핀 웃음을 담어 보였다.

"그런소린 뒀다 허우. 나없는새에 개중이나 나지 마어야 할 텐데"

하고 급한 전화를받은 그는, 간호부에게 무어라고 일르고 문밖으로 왕진을 나갔다.

저녁때까지 허의사는 돌아오지 않었다. 몇십리 밖으로 두 어군대나 다녔거니와 ××보육학교의 교의 노릇까지하는 그 는 나간김에 오후의 생리학시간을 보고 오느라고 그날은 늦 게야 돌아오게 된 것이다.

그동안 일남은 얼는 보기에 혼곤이 잠이 든것같었다. 어머 니는 혹시나 잠이 깨일가보아 건드리기는커녕 숨소리까지 죽여가며 그곁을 직혔다. 그러나 일남은 경험이없는 저의 어머니가 몰으는 겨를에 고요히 고요히 숨을 거두웠다. 다 시는 깨어나서 그어머니의 얼굴을 치어다 보지못할 잠이, 깊이깊이 들고 말었다. 깜찍하고 안타까운 저의 임종을 보 이지않는 것이 저하나로 말미암어 그다지도 애를 태운 어머 니에게 대하야 처음겸 마지막인 효도나 되는것처럼- 어머니 의 피ㅅ기운이 가시자, 그름을 타서 극도로 쇠약해진 저의 조막막한 심장이 병마의 침노를 받었던 것이다.

허의사는 돌아오자마자, 맨먼저 병실문을 열고 '슬립퍼'를 신은체 들어서며

"좀 어떠우? 아까 전화를해보구 별탈은 없을줄 알었지 만....."

하고 묻는말에

"그저 자나봐요"

하는 것이, 실눈을 뜨고 누었다가 벌떡일어 나며 하는 인 숙의 대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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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애가"

일남의 맥을 집허보던 허의사는 안경을 고처쓰며 부르지젔다.

"왜요?"

그제야 인숙은, 유리로 만든 눈알맹이를 박어논것처럼 천 장을 울어러 흐릿하게 뜨고있는 일남의 눈동자를 들여다본다.

"왜라니?"

허의사는 인숙의 말을 입속으로 뒤받으며 일남의 가슴에 손을 대어보고 심장의 고동이 끝이고 숨이 끊친 것을 확실 히 알자, 금새 그의 얼굴에는 소낙비가 쏟아지려는 하늘처 럼 시껌언 구름이 낀다.

"선생님! 이애가 이게 왼일이야요?"

인숙은 누가 날카로운 침으로 찔르는 듯 팔쩍 뛰어 올랐다.

허의사는 눈을 나려깔고 자기가 성심으로 보아주던 어린환 자의 명복을 빌어주듯이 잠시 침묵하다가, 입을 버린채 다 물지도 못하고 일남의 얼굴을 들여다 보는 인숙의 어깨에 손을 얹이며

"아우님, 넘우 낙심허지마우. 나 헐대로는 다 해봤소만......"

하는데, 냉정한 과학자의 눈에서 한방울의 눈물이 떨어저 안경속에 번진다.

허의사가 일남의 눈을 쓰다듬어 나려 감겨 주고 조그만 두 손을 가슴으로 모아서 올려놓고 긴 한숨과 함께 일어서 진 찰실로 나간뒤까지 인숙은 꼼짝못하고 말한마디도 못하였 다. 말을 못할뿐아니라, 전신에 거미줄같이 럭힌 신경줄이 한가닥 두가닥씩 끊어지는 듯, 차츰차츰 감각을 잃어간다.

그의 얼굴에는 아무러한 표정도 나타나지 않는다. 놀라움도, 슬픔도 분함도 애처러움도- 설음과 괴로움으로만 가득찬 인간세상에 잠시 태어났다가, 어머니의 얼굴을 간신히 알어본것과, 그의 따뜻한 가슴에 안켜 젖을 빨어본 기쁨밖에는 아모것도 몰으든 일남의 영혼 은 나면서부터 그 몹쓸 명마에게 사료잡혀 들복기든 조그만 육체를 영원히 버렸다. 지금 어머니의 영혼은 그뒤를 딸으 는것이나 아닐까. 일남의 영혼의 고향으로 허위단심 쫓아 가느라고 온몸의 감각을 잃고 있는거나 아닐까.

한참만에야 인숙은 제정신이 돌아온 듯

"일남아!"

하고 제귀에다 들리지 않을만지 부르짖고는 아들의 시체를 끌어 안흐며 엎으러젔다. 온기가 거처 싸늘한 일남의 뺌을 부비는 어머니의 얼굴의 탄력없는 근육은 목소리와 함께 떨 린다.

"일남아! 일남아! 눈을떠라 이 엄마를 좀봐다오 한번만, 한 번만 응 우리일남아!"

달래듯 타일르듯 아모리 애원을 하여도 허의사의 손에 곱 게 감긴 일남의 눈이 떠질리 없다.

"네가 정말 갔니? 나를 버리구 참 정말 갔니? 엄마 소리두 한번 못해보구......"

그제야 말러붙었던 어머니의 눈물이 일남의 하-얀 이마와 배내짓으로 오물거리든채 잠이든듯한 입모습에 방울 방울 떨어젔다. 그눈물은 구곡간장에서 울어나는 것이 아니요 원 한과 비통에 사모친 뼈ㅅ속에서 골수(骨髓)를 뽑어내는 것이 었다.

봄비아닌 어머니의 눈물이 아모리 쏟아진들 한번 시들어버 린 일남이가 소생할수 있을건가 하로아츰에 구만리 창궁으 로 포르르 날러간 조그만새를 다시금 제보금자리에 돌아올 날을 기약할 수 있을것인가?

아모리 생각해 보아도 거짓말 같은 일남의 죽엄이 인력으 로는 어찌할 수 없는 엄숙한 사실인 것을 깨닫자 눈물에 저 젔던 인숙의눈은 점점 무서운 광채를 발하더니 어쭐줄을 몰 으고 방안을 헤매다가 일남의 시체를 끌어안고 벌덕 일어섰 다. 진찰실로 뛰어나가 테-불앞에 머리를 집고 앉인 허의사 앞에 하연 포대기에 싼 것을 치밀며

"이앨 누가 죽였어요? 아 어떤사람이 우리 일남일 죽였느 냐 말야요?"

하고 인숙은 거품을 끓이며 연겁허 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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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가 없는 동안에 당부한대도 자조 병실에 들어가보지 않었다고 간호부를 몰아세우고 난 허의사는, 그러지 않어도 자기의 책임을 느끼고 우울히 앉은터에 인숙에게 그러한 칭 원을 듣고보니 무어라고 대답할 말이 없었다.

그러나 '누가 내 아들을 죽였느냐'는 인숙의 뼈에 사모친 부르짖음이, 반드시 의사의 탓을 하는것만이 아닌 것을 이 해치 못할 허의사도 아니었다.

"이러지 마우. 아우님, 맘을 진정을 허우. 의산들 천명을 어떡 허겠소"

하고 그는 그 자리에 쓰러질듯한 인숙의 얼굴빛을 유심히 살펴보더니

('히쓰테리'의 발작이로군)

하고 간호부와 둘이서 인숙을 부축해서 병실로 데리고 들 어갔다. 가진 소리로 위로해주는 말도, 인제는 귀에 들어가 지 않는 듯, 인숙은한눈을 팔 듯이 눈을 멀거니뜨고 있다가 일남을 누가 빼아서 갈것처럼 본능적으로 꼭 끌어안고 쓰러 졌다.

전기ㅅ불이 들어오기 조금전, 황혼은 우중충한 병원을 에 워싸고 병실의 유리창으로기어든다.

허의사는 일남의 시체를 다른방으로 옮기고 밤안으로 내가 게 하려고 인력거꾼에게 준비를 명령한뒤에 간호부를 병실 로 들여보냈다.

조금있자 간호부는 두눈이 빨개가지고 나왔다.

"전 떼내올수가 없어요"

하고 돌아서며 소독복 소매로 얼굴을 가리며 훌쩍인다.

허의사가 들어가 전등을 케고보니, 인숙은 가슴을 헤치고 시체의 입가에 젖을 물리듯하며 품고 누어서 자장가를 부르 는 구조로 무어라고 중얼중얼 혼자말을 하고 있지 않은가.

그 광경을 한참이나 나려다보자, 의사역시 참아 손을 대지 못하고 눈을 꿈적이며 돌아서 나왔다.

(이러다간 어머니마저.....)

하고 그는 다시 들어가 인숙에게 잠자는 약한봉을 억지로 먹이고 강심제 주사를 놓아 주었다.

그러나 인숙은 잠이들리없었다 삼청동으로 올라갔던 봉희 가 뚝섬집과 가치 달려왔을 때, 인숙은 여전히 아들의 시체 를 붙안고 앉었다.

몇시간전에 병원으로 전화를 걸었으나 '퇴원했어요'하는 간 단한 간호부의 대답을 듣고, 안심을 하고도 어쩐지 누가 끌 어 다리는 것 같어서 삼청동으로 올라갔던, 봉희와 (인전 시 집에 다시 들어가 있게 됐나보다)하고 다행히 녁이고 있던 뚝섬집은, 의사의 말을 듣자, 깡충 뛰어올르며 손벽을 치며 놀랐다. 그들은 병실로 들어가서 둘이 함께 인숙의 모자에 게 엉기어 붙듯하고 울었다. 봉희는 죽은 애의 이름을 연겊 어 부르며 무어라고 사설까지 해가면서 눈두덩이 퉁퉁 붓도 록 울었다.

얼마있자 간신히 울음을 진정하고 가늘게 흐느끼기만하는 봉희의 귀에는,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기절한 듯이 쓰러젔다가 혼몽이 잠이 든 인숙이가 손을 끄덕여 일남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시늉을하면서잠꼬대하듯 아들을 얼러 주는 소리었다. 그목소리는 말을 알어들을 만치나 똑똑하다 가 다시 입속으로 기여 들곤 한다.

"얘야, 일남아! 인제 엄마가 손다우 허면 요손을 납신 줄테 지..... 따루 따루를 허구. 유치원엘 드 드러가설랑 창가 두...... 유희두 허구. 소학교에 가방을 메구 다니지? 우등첫 지 허구. 응응 일남아 우 우리 일남아!"

하다가는 눈먼사람처럼 더듬 더듬 어린애를 찾는다. 그러 다가 자기가 유치원에서 유희나 하는 듯이 보모처럼 손가락 을 폈다 오무렸다 하면서 다시금 어렴풋이 창가하는 임내를 낸다.

봉희와 뚝섬집은 참아 그 소리를 들을수 없어 눈물을 앞세 우고 잠시 피해 나왔다. 그동안이었다. 염라국의 사자와 같 은, 껌정 하삐를 입은 인력거꾼은 '지까다비'를 신은채 병실 로 성큼성큼 들어와 인숙의 곁에서 허-연 뭉치를 슬그머니 빼았어들고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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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시체까지 빼았긴줄 안 인숙은 정말루 히쓰테리가 발작이되여, 일남이를 내놓라고 다리를 버둥거리며 머리를 쥐어뜯으며 눈에 띠우는 사람마다 달려드는 것을, 여럿이 간신히 붙잡고 진정을 시켰다.

허의사는 자동차까지 불러주어서, 봉희와 뚝섬집이 인숙을 삼청동으로 데리고 갔다.

안방문을 열고 들어서다가 뚝섬집은

"이게 누구야?"

하고 새되게 소리를 질른다. 주인없는방 웃목에는 보지못 하던 마누라 쟁이가 쭈그리고 앉었던 것이다.

"저 셋재아씨께 엽줄 말슴이 있어서!"

하고 마누라쟁이는 어름어름하고 일어서더니 건넌방으로 건너 간다.

"할멈, 어째 왔어?"

인숙을 눕히려고 요를 나려깔던 봉희는 할멈을 알어보았 다. 친정어머니의 시중을 드는 안짬재기였든 것이다. 할멈은 어리둥절하며

"저 마님께서 애기허구 셋재아씨를 모시고 오랍서서......"

하더니 허리춤에서 마님의 친필을 끄내놓는다. 자작내외는 며칠을 두고 손자를 데려올 의론을 하다가 봉환이까지 불러놓고

"분명헌 제자식을 눈뜨고 잃어버리는 그런 빈충마진놈이 어디 있느냐. 위선 제핏줄이 닿은건 찾어놓고 볼일이지"

하고 애어미야 나종에 어떻게 처치를 하든지 손주새끼나 데려다 길르자고 결의를하고 손소 편지를 써서 안짬재기에 게 보냈던 것이었다.

봉희는 어머니의편지를 보지도 않고 밀어 던지며 한숨만 길게 내쉬었다.

인숙은 할멈의 얼굴을 한참이나 똑바로 쳐다보더니

"누가 애길 데려오래? 응? 재주껏 데려가 보라지"

하고 벌떡 일어나며 소리를 질르는 것을

"이러지 마우 새언니 고만좀 잊어버류"

하고 봉희가 붙들고 빌다싶이 하야서 인숙을 억지로 자리 에 눕혔다.

"애기는 먼저 데려간 사람이 있다구 가서 엿줘"

하고 눈짓을하야 할멈을 돌려보냈다.

.......봉희까지 곁을 떠난후 인숙은 하로밤 하로낮을 오직 슬픔과 탄식속에 보냈다. 눈물은 끊임없이 벼개를 적시고 빨릴데없는 젖은 통통이 부러서 요ㅅ바닥을 척척이 적시었다.

일남의 숨이 끊지자 그와동시에 인숙의 인생에 대한 희망 도 끊어졌다. 완전히 끊어지고 말었다.

다만 한가닥인 인숙의 생명선을 움켜쥐고 있던 조그만 손 은 그 줄을 탁놓아 버렸다. 영영 놓아버리고 말었다.

층암절벽에서 요행으로 휘어잡었든 한줄기 나무뿌리가 세 찬바람에 흔들려 송도리째 뽑히는 찰라에 깊이 몰을 바다속 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 인숙의 운명이었다.

이튼날 저녁 최후의 결심을 한 인숙은 책상앞에서 흩으러 진 머리를 쓰다듬어 올리고 정신을 가다듬었다.

<자근아씨! 일남이가 불러서 나는가오. 고 어린 것이 황천 길을 저혼자 걷는데 어미가 어떻게 따러가 보지를 않겠소.

그애의 손을 잡고 그길을 가치걸을 생각을 허니 여간 기쁘 지가 않구려.

봉희씨 이 세상에서 이몸을 가장 사랑해주고 극진히 두호해주던 우리 봉희씨! 봉희씨는 아들딸 많이 낳고 오래오래 오복을 누리다가 오우. 우리 저나라에서도 이생에서처럼 둘이 의좋 게 지냅시다.

아아! 이제와서야 누구를 원망하고 무엇을 한탄하리까. 다 만 까마귀 골에서 더럽힌 이몸을 창파에 조히씨으려 할 뿐...........

년 월 일 당신의 영원한 '새언니'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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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상에서 골육을 가치녾은 다만 한사람인 경직에게와, 담밖을 모르는 구식여자였던 저에게 새로운 사상과 변해가 는 시대의 정신을 넣어준 복순에게와, 또 그리고 일남의 최 후까지 정성껏 치료를 하여준 크나큰 은혜를입은 허의사에 게, 인숙은 각각 간단하고도 의미깊은 유언장을썼다. 자획하 나 틀리지 않게 써서 책상우에 압정으로 꼬자놓고 일어섰다.

그리고 장문을 열고 입던 옷가지와 아직도 월부를 다 붓지 못한 재봉틀과 공부하던 책이며 그밖에 모든 것을 찬찬이 정돈해 놓고나서 경대앞으로 앉었다.

인숙은 요새 며칠동안에 한십년이나 닦어늙은 듯이 초취한 저의 얼굴을 한참이나 물끄럼이 들여다 보았다.

흐렸다 개였다 하는 거울속으로는, 제가 한평생 지낸일이 어제러듯 바루 오늘인 듯, 환등과같이 비최었다가는 활동사 진처럼 훠훠 달린다.

과천집 뒤곁에서 점녜와 각시노름을 하고, 달빛을 밟고 마 당을 거니시는 아버지의 곁에서 당음을 외고, 인력거를 타 고온 사람을 구경하려고 앵도나무에 올라갔다가 치마를 찌 끼고 어머니에게 꾸주을듣던 소녀시대로부터, 꿈에도 생각 지못헌 누명을쓰고 리혼을 당하게되고 나종에는 일점의 혈 육마저 참척을보아 마지막가는 길까지 밟지 않을수 없게된 오늘날 이때까지에 지내오고 격거온 모-든 것을 한 장의 유 리조각을 통하야 들여다 볼 때 돌려다 볼 때,

"아아 여자의 일생이란 이다지도 박행한것일가?"

하는 오장이 썩는듯한 탄식이 저절로 터저 나왔다.

"나와같은 운명에 빠저서 허덕이는 여자들도 과연 이세상 에는 얼마나 많을가"

하니 저처럼 자결을할 결심조차 못하고 사람으로서는 참을 수 없는 온갔 고통과 가진설음을 죽는 날까지 참어가면서도 지긋지긋이 살어가지 않을 수 없는 그네들이 무한히 가엾고 불상하였다.

그러자 인숙의 눈앞에는 두어줄기 글발이 나타났다.

"행여 여자의 몸으로 태여나지 말라. 평생의 고락이 남의손 에 달렸느니라"

이것은 옛날 시인의 말이나, 남편이 도화란 계집애와 첫 번난봉이 나서 화낌에 친정으로 갔을 때 어머니가 한숨섞어 들려주신 말슴이였다.

인숙은 그 자리에 업드려 어머니와 아버지의 령혼에게

"두분께서 끼처주옵신 신체발부를 종신토록 고히 직히지못 하는 불효막심한 여식의 흉중을 굽어 살피소서"

하고 공손히 북창을 향하야 머리를 숙인뒤에 찬찬히 일어 섰다.

인숙의 눈에서는 한강의 시푸른 물결이었다. 폭풍우가 지 난뒤처럼 한숨도 거치고, 다만 눈앞에 훤하게 열리는 것은 한강의 시푸른 물결이었다. 철교 아래에 어름장과 함께 흘 러나리는 충충한 물이, 그의 마음과 육체를 유혹할뿐.........

물속에 잠긴 둥근 달과같이 인숙의 눈아래에서 어른거리는 것은 일남의 얼굴이다 엄마가 얼러주는대로 벙글 벙글 웃던 바로 그 얼굴이다.

일남은 얼는 딸어 오라는 듯이 고사리같은 손을 까댁이며 부른다. 벙글벙글 웃으며 어머니를 불러 낸다.

인숙은 일남이가 누었던 자리를 몇번이나 돌려다보면서 두 루마기를 입고 목도리를 돌렸다.방문을 살그머니 닫고 마루 로 나와 안방편으로 귀를 기우린뒤에 대문소리 조심스러히 잠깊은 길거리로 달려 나왔다.

기울기 쉬운 달빛을 딸어 꺼지기 쉬운 아들의 환영을 쫓는 어머니의 거름은 급하였다. 그마음은 더한층 바뻣다.

-그리하야 인숙은 붉은 전등을 켠 한강행 전차를 타게된 것이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