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녀성/제2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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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혼(離婚)[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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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숙은 방으로 들어와서 넉줄밖에 아니되는 편지사연을 두 번 세 번 읽어보았다.

"인제와서 이따위 소리를......"

하고 혼자 부르짖고는 편지를 방바닥에 내어던젔다. 될 수 있는대로 흥분하지 않으려하며

"제자식으로 인정할 수가 없다구?"

"부부관계까지 청산을 할 각오를 하라구?"

하고 입속으로 뇌까리다가

"흥, 마음대로 해보라지"

하고 천장을 쳐다보았다. 강보배ㄴ가 하는 계집과 살지를 못해서 핑계할게 없으니까 멀정한 저의씨를 남의자식이니 책임을 질수가 없다고 하는 심사가 오륙월 장마통에 썩어 문드러진 생선 배바닥같아서 인숙은 그편지에 침을 탁 배았 고 싶었다.

그나마 다른 리유를 붙인다면 모르거니와 저를 모함하는 것은 둘재요 세상밖에 나온지 얼마안되는 조그만 생명에게 까지 누명을 씨워가지고 리혼을 하자는 심ㅅ보가 어찌나 비 열한지 더러운 것을 보고 꾸짖는 것 같아서 분개할 가치도 없을것같다.

그러나 인숙은 아직까지도 봉환이가 참 정말 어린 것을 장 발의 자식으로 인정하고 제자식이아니라는줄은 꿈에도 모른 다. 다만 핑계꺼리를 생각다못해서 그따위 억지의 수작까지 부치는 것이어니 할뿐이다.

(어디 얼마나 몸이 달어서 애를 쓰나 두구보자) 하고 인숙은 치지도외를 하려고 들었다.

(날더러 리혼할 각오를 하고 기다리라고 누가 오래 기다리 나 두구 볼걸) 하고는 편지는 받은체도 아니하고 있었다. 실상 그 편지의 내용이 답장을 할 성질의것도 아니었든 것이다.

그날 저녁에 인숙은 어린애의 이름을 지었다. 어떠한 경우 와 부닥치든지 저의 혈속하나만은 놓지지 않고 제손으로 길 르려는 결심을 더욱 단단히 하였든 것이다.

처음에는 제가 '직'자 돌림이니까 그 아랬대의 항렬자로 이 름을 지어줄가하고 좋을듯한 글자를 초저녁부터 입에 올려 보다가 (항렬은 찾아 뭘허나) 하고 또다시 곰곰 생각해본 끝에 불르기쉽고 쓰기쉽게 일 남(一男)이라고 지었다. 이세상에 단지 하나밖에 없는 나의 아들이라는 뜻이다. 인숙은 무슨 보물이나 발견한 듯이

"일남이? 일남이!"

하고 입속으로 불러보다가 새근새근 잠이든 어린것의 손을 살그머니 잡으며

"얘야, 인젠 네이름이 일남이다. 일남아, 이-나, 일남아"

하고 얼러주다가

"이담에 누가 네성이 뭐냐구 그러거들랑 이(李)가라구 그래 라 응? 넌 네엄마가 혼자 길러주는 아들이지 응?"

하고 뺨을 대고 부비며 장성할때까지 일남이란 이름을 불 러주리라 하였다.

그뒤로 봉환에게서는 아무소식이 없었고 삼칠일이 되든날 오래간만에 봉희가 왔다. 가루우유 한통과 눈같이 희고 보 드라운 옷 한벌과 빨간 산모를 단 타레버선까지 제손으로 만들어 가지고 왔다. 인숙은

"아이고 작은아씨 궁금해 죽을번했는데 왜 그렇게 안왔수?

난 요것 때문에 꼼짝도 못하는줄 알면섬"

하고 십년만에나 만나는 듯이 반겼다.

"나두 어린애가 여간 보구싶지가 않었지만 외무대신이 출 장을 가고 없어서"

하고 봉희는 마음에없는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벌서 저렇게 고추 안우? 이리좀 주"

하고 봉희는 조카를 받어서 얼러주다가

"아-니 요녀석좀 보. 콧뿌리허구 입모습이 영락없는 오빠 로구려!"

하고 손가락으로 어린애의 코와 입을 꼭꼭눌러보며 신통해 한다. 인숙은 쓸쓸히 웃으며

"그럼 누굴 닮었겠수. 그렇지만 머리통하고 얼굴 전형은 날 많이 닮었지? 그렇지 않우?"

하고 '일남'이라고 이름까지 지어주었다는 말을 하고

"인젠 한학기만 지나면 작은아씨가 선생님이 되는구려. 서 울안으로 취임이나 했으면!"

하고 다른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앉었는데 대문깐에서

"편지 받우. 이인숙이 있소?"

하는 소리에 봉희가 대신 나가서 도장을 찍어달라는 편지 를 받어가지고 들어왔다.

그것은 우표딱지가 여럿이 붙고 내용증명이란 붉은 도장이 찍힌 편지다. 뒤딱지를 보니 어느 변호사의 주소와 이름이 박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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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증명의 내용인즉

<이 편지를 받은지 이주일이내에 귀하가 본인에게 사건을 위임한 윤봉환씨와 협의상 리혼을 승낙하지 않는 경우에는 부득이 민법 제 八一三조 제二호의 법규에 의하야 재판상 리혼청구 소송을 제기할터이오니 귀하의 신분과 명예와 또 는 쌍방의 장래를 십분 고려하야 급속히 해결지으시기를 권 고합니다. 만일 당사자간에 협의하기에 거리끼는 사정이 있 으면 당변호사에게 회답하여 주시어도 원만히 처결하겠습니 다>

라는것이었다. 민법제八백十三조제二호에는

<안해가 간통을 한 경우인데, 해석하면 안해가 남편이외의 남자와 관계한 사실이 있으면 강제로 당한 것이 아닌이상 단한번의 관계라도 또는 상대자가 안해가 없는 독신자라 하 드래도 그것을 이유로 남편은 리혼을 청구할수 있다>

라는 조문이다.

"대체 이게 웬일이요?"

놀라는 사람이 어찌 이 봉희뿐이랴. 인숙은 붉은 정간에 복사지로 꼭꼭 박어쓴 내용증명서를 한자도 빼어놓지않고 들여다보다가

"내가 승낙을 안해줄가봐서 미리 위협을 허는게지 뭐요"

하고는 이를 앙물더니 내용증명을 박박 찢어서 조각조각 내여서는 방 한구석에다 팽개를 첬다. 이제와서 인숙은 분 한것도 억울한것도 아무것도 없고 남는 것은 악밖에 없었다.

"전에두 리혼을 하자는 말을 비칩디까?"

봉희는 밝앟게 익는듯한 얼굴을 쳐들고 묻는다. 저의 친오 라비의 행동 때문에 저까지 일종의 수치와 인숙에게 대한 더할수없이 미안한 생각에 얼굴이 들리지를 않었다.

"그런말이래도 한마디나 허구서 이런짓을 허면 그래도 사 람대접을 허는셈이게. 요전번에 와서도 말한마디 못허구 가 서는 다시 오겠다구 가짓말만 하더니......."

하고 봉환이 대신으로 찢어던진 종이뭉치를 노려본다. 그 러고는 한참이나 숨만 가쁘게 쉬고 앉었다가

"그런데 민법 八백몇조니 허는건 도대체 뭐요? 혹시 자근 아씨가 아우?"

하고 묻는다.

"내가 그런걸 어떻게 아우. 변호사헌테 물어보기 전에야"

사실 봉희가 그런 법률조목을 보았을리도 없고 들었을리도 없다. 만약 그것이 간통한 경우에 해당한 조문인줄을 인숙 이가 알고 있었드면 당장에 큰일이 났을 것이다. 요행으로 인숙은 남편에게 순종치 않는다거나 시부모에게 불공하다는 그런따위 구실로 도리혀 소송을 걸수가 있나보다 하고 막연 히 생각할 뿐이었기 때문에 그래도 그만치나 냉정한 태도를 계속할 수가 있었다.

봉희는 (기왕 일이 이렇게 버러진바에야 숨겨두는 것이 도리어 정 의가 아니다) 하고 비로소 동대문밖에까지 나가서 식모에게 들은 이야기 를 사실대로 토파하였다.

"난 벌서 그런줄 알었수"

하고 인숙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입을 꼭 담으러 버렸다.

한참만에야

"미안허지만 편지를 쓸테니 오빠한테 전해줄수 없겠수?"

하고 책상앞에 돌아 앉어 또다시 한식경이나 머리를 짚고 생각을 해본뒤에

<거두 절미하옵고 변호사의 이름으로 보내신 편지는 받었 아오나, 하여헌 일이 있던지 그런 중대한 문제를 당자인 나 와는 일언반사의 의론도 없이 불시에 재판까지 하겠다는 것 은 끝까지 사람을 무시하는것입니다. 잘못이 누구에게 있든 지간에 이런 등사는 당사자간에 협의한 후에 처결하는 것이 사리에 마땅할줄 압니다. 리혼운운은 처음듣는 놀라운 말슴 이오나 그이유를 소상분명히 밝히지 않고는 어떠한 청구에 도 응할수 없을뿐아니라 무어라고 회답을 할수도 없습니다.

그러니 친히 오서서 피차 상의한 후에 귀정을 짓기전에는 내용증명쯤으로 위협을 당할 사람도 없는줄이나 알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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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이 지나고 열흘이 가까워도 어찌한 세음인지 봉환에 게서는 답장이 오지를 않었다. 회답을 독촉할 성질의 편지 는 아니것만 인숙은 아츰저녁 그편지를 기다리고 봉환이가 쫓어오면 최후의 담판을 하려고 별르다가 고만 병이나고 말 었다. 감기도 아니요 몸살도 아닌데 심화 때문에 생긴 울화 병이라고 할가. 젖을 내기 위해서 억지로 먹는 음식도 인제 는 입맛이 똑 떨어저서 수저를 들기가 싫고 입살이 바작바 작 타들어가도록 머리ㅅ속이 메말러서 이틀 사흘식 련겁허 눈을 붙이지를 못하였다.

" 되는대로 되렴으나"

하고는 마음을 눅히려고 애를 쓸사록 졸아붙는 등잔의 기 름처럼 온몸의 진이 빠지는 듯 인숙의 고민은 깊어만갔다.

일남이는 우유에 체했는지 간기기운이 있어서 그런지 밤이 면 목이 쉬도록 울고 보채서 더한층 어머니의 애를 태웠다.

그러다가는 간신히 잠이 들면 어머니의 빡빡한 두눈은 잠을 마튼 신(神)에게 사로잡힌 어린이의 얼굴을 언제까지나 직히 면서 기나긴 겨울밤을 천갈래 만갈래로 흐터지는 생각 때문 에 꼬박이 밝혔다.

"요것이나 생겨 나지를 않었드라면......."

하고 인숙은 몇번이나 입속으로 혼자ㅅ말을 하였다. 사실 절망의 깊은 연못속으로 빠저 들어가는 인숙의 생명의 줄을 붙잡고 있는 것은 일남의 조그만 손이였다. 하루도 열두번 자결이나 해서 모든 고민에서 해방되고싶은 생각이 불현 듯 이 날때마다 사랑의 결정인 어린것의 얼굴을 나려다 보면서

"일남아 나는 너 하나 때문에 죽을수도 없구나. 너 하나 때 문에 가엾고 불상한 너 하나를 길러 주기 위해서 내가 산 다. 욕됨과 분한 것을 참어가며 죽기 기를쓰고 살어야만 하 겠다"

하고 불합리한 결혼제도의 희생을 당하고 방종한 남편에게 유린을 당한 몸으로 다시금 일점의 혈육을 위해서 세 번째 제몸을 희생할 각오와 결심을 하는 것이 어머니로서의 신성 한 의무로 생각이 되었다.

헷바눌이 도다서 밤알이 모래같은 것을 젖을 내기 위해서 억지로 떠 넣으면 그것이 체하고 가슴에 언처서 무진 애를 쓰면서도 (복순이나 곁에 있었으면......) 하고 리혼문제에 대해서 의론이나 해볼 사람이나 있었으면 하였다.

(사회상 격난도 많이 한 사람이니 허의사나 찾어가볼가) 허다가도 (내일을 내손으로 해결을 못하고 남에게 하소연을 하러 다 니는것버텀 수치스럽다) 고 마음을 고처먹고 봉환이가 오면 저의 취할 태도와 대답 할말을 배멀미를 몹시하고 난것같은 머릿속으로 궁리하면서 또 다시 이를 사흘을 보냈다.

봉환이도 인숙의 편지를 받은 전날부터 병이나서 누었다.

강보배와 온천에서 며칠을 지낸뒤에 실성이 되어서 쌍화탕 을 먹을 병이 걸린데다가 강보배가

"늦어도 이달안으론 곳 장을 내주지 않으면 난 이걸 삼키 구 죽을테야요"

하고 일홈몰을 독약병까지 내 흔들어보이며 시위운동을 한 뒤부터는 죽짜구나 하고 폭음을 하고 헤질러 다녔다. 그러 다가 친분있는 변호사에게 미리 한턱을 단단히 내고 인숙에 게 내용증명까지 발송하든날부터 동대문밖집에가 누어버렸 다. 인숙의 편지는 받었지만 뜻밖에 그 태도가 강경한데다 가 경직이가 그저 있을줄만 알고 겁이나서 가려야 갈수도 없었든 것이다.

봉희는 오라버니에게 마즈막 충고를 하려고 찾어갔었다.

그리고 봉환은 혼자 뒤집어쓰고 누어서 신열이 사십도나 넘 은 듯 누의도 못알어보고 인사정신없이 앓고 있었다. 식모 더러 잘 간호를 하여달라는 부탁을 하고 전차길까지 나와서 (아무튼 의사나 한번 다려다 보여야 할텐데......) 하고 망사리고 섰는데 제가 타려는 전차에서 강보배가 나 렸다. 그 여자의 손에 약병이 들린 것을 보고 봉희는 문안 으로 들어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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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남은 약을 얻어먹은 뒤에야 신열이 나리고 기침도 덜하 였다. 아기 어머니역시 일어나지를 못하는 것을 보고 뚝섬 집이 허의사에게를 다녀다 주었든 것이다.

밤에는 허의사가 일부러 찾어와서 일남을 자세히 진찰해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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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애가 원체 기질이 좀 약헌데다 페염기운이 있으니 찬바 람을 쏘였다간 큰일나우. 요새 돌림병 때문에 야단들인데 단단히 조심을 해요"

하고 주의를 식힌뒤에 가재 해산을 하고 났을때버덤도 훨 신 여위고 혈색이 없는 인숙을 보고는 모든 증세를 뭇더니

"이거 신경쇠약이로구려. 밤낮 걱정을 그렇게 몹시허니 무 슨병인들 안나겠오 글세? 나종일은 운명에 마끼구서 턱 맘 을 놓고 지내라니까. 신경계통의 병이란 약을 먹어서 낳기 도 어려운걸"

하고 일어섰다.

"인숙은 무수히 고마운 인사를 한후 봉환에게서 내용증명 이 왔다는 말을 하고 허의사의 의견을 물어보려다가 (이렇게 추운밤에 일부러 와준것만도 고마운데......) 하고 그런말을 끄내서 바뿐사람을 붓잡기가 미안한 생각이 들어 다음날 조용히 의론을 하리라 하였다.

허의사가 다녀가서 안심이 된데다가 약효가 있어 인숙이도 이틀뒤에는 머리를 들고 일어날수가 있었다.

봉희가 잠간 다녀가서 봉환이가 대단히 앓는다는 소식을 듣고 저의 편지대로 찾어오지 못할줄은 알것만 밤임녀 밤마 다 꿈자리가 어수선스러웠다.

학교에 다닐 때 단체견학으로 방청을 갔든 재판소의 법정 이 눈앞에 나타났다. 간부와 부동을 하고 나어린 남편의 밥 에다가 양재ㅅ물을 타서 먹이려다가 목적을 달치 못하고 전 후죄악이 탄로가나서 법정에 서게된 푸른옷을 입은 피고(被 告).

"직계존속을 모살하려든 죄는 사형이 맛당하지만 미수임으 로 십오년 징역에 처할것이라"

고 추상같이 론고를 하든 검사의 날카로운 눈과 방청인들 이 침도삼키지 못하도록 긴장을 시키든 그 짜랑짜랑한 목소 리-그러다가

"아이고 하느님 맙시사"

하고 목소리를 지어서 까이-까이-울며 쓸어지는 것을 간수 들이 달려들어 용수를 씨어가지고 끌려 나가든 그 뒷모양- 인숙은 어렴풋한 꿈속에서 제가 그 여죄수로 변해서 법정에 가섰다. 수갑을 차고 용수를 쓸 죄가 있으릴 만무한것만 봉 환이와 시집식구들은 물론 변호사들까지도 원고의 편을 들 어 참아 귀에 담을수 없는 험언을 퍼붓고 거짓 증거까지 대 여가며 저 하나를 핍박한다. 어쩐일인지 봉희는 그림자도 나타내지 않어서 저 홀로 변명을 하며 악을 쓰다 못해서 입 으로 거품을 뿜고 고만 기절을 해버린다.

잠꼬대를 하다가 곁에서 일남이가 우는 소리에 잠이 깨면 은 인숙의 이마에는 식은 땀이 흘렀다. 어떤때에는 뭇사람 의 돌팔매를 맞고 쓸어저보기도 하고 또 어떤날 새벽녘에는 일남이를 안고 물에 빠저 강ㅅ가 모래사장에 떠밀려 나려간 저의 시체를 까막까치들이 쪼아먹는 꿈을 꾸고는 소스라처 깨여서 죽지않은 일남을 껴안을때도 있다. 그럴때마다 인숙 은 다시 살어난 것이 신기한 듯이 꿈속에서 흘린 눈물을 벼 개모소리에 부비며

<자장 자장 우리아기 잘두잔다.

자장골에 들어가니 그골에는 잠두 많어 검둥이두 자드란다.

센둥이두 자란다.>

하고 함치르르한 일남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자장노래 를 나즉이 불렀다. 그러면 일남이는 우름을 그치고 흑 진주 를 박은 듯이 새깜안 두눈을 두리번거리다가 사르르 잠이들 곤 한다.

인숙이가 이제까지 기억하고 불르는 자장노래는 옛날의 어 머니가 손녀를 재울때에 불르든 그말과 그 곡조를 부지중에 달믄것이었다.

(어머니가 나를 재우실때에도 이노래를 불러주섰겠지) 하니 어머니의 생각과 함께 그 자장노래가 더한층 애닮고 도 정다웠다.

인숙은 다시 그런 악몽에 사로잡힌가보아 한번 깨기만하면 일어나 일남을 안고 그 자장노래를 되풀이하면서 공장의 첫 뚜- 소리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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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남은 백날도 못되였것만 안고앉어 추슬르며 얼러주면 방 시ㅅ방시ㅅ 웃기를 시작하였다. 영양이 그다지 조치못해서 발육이 더디되는 대신에 감정은 일즉이 발달이 되어 제법 좋은 것을 느끼고 어머니를 알어나보는 듯이 조금씩 웃는 것을 볼 때 인숙은 어찌나 신통한지

"아, 일남이가 벌서 웃는구려 이것좀 와봐요. 어서 이것좀 와봐요"

하고 안방으로 대고 소리를질러 거짓말이라고 고지를 듣지 않는 뚝섬집을 불러다 보이기까지 하였다. 귀가 띠여서 주 발뚜겅덮는 소리에 깜짝 놀라 잠을 깨는 것을 볼때보다도 신기해서 인숙은 도모지 무어라고 일커를수 없는 기쁨이 복 바처 올랐다. 어린애를 안고 큰길로 뛰어가서

"이애가 웃는 구경을 허시오- 우리아기가 웃는걸 바주시오 -"

하고 가는사람 오는사람에게 광고라도 하고싶었다. 이제까 지 저의 반생을 두고 받어온 모든 고민과 설음을 금지옥엽 같이 길르는 어린것의 우슴을 보는 한 순간을 얻기위해서 참어온 듯 억만 사람의 어머니보다도 저하나만이 행복스러 운것같은 일남의 우슴은 날이 지날사록 확실해간다.

<은자동아 금자동아, 만첩산중 옥포동아, 은을주면 너를사며 금을 주면 너를 사랴>

하고 일어났다 앉었다하며 얼러주고 놀려주는대로 일남은 알어나 듣는 듯이 무어라고 옹알거리며 손가락을 입에 다문 채 웃고 또웃고 한다.

인숙은 미처날 듯이 기쁘다.

"그래도 내가 사는 보람이 있지. 요걸 나서 길르니......"

하고는 어린것의 뺨과 이마에 수없이 입을 맞추면서

"얘야 일남아 인제 엄마가 손다우 허면 요손을 납신줄테지.

도리도리를 해라하면 요머리를 살래살래 흔들테지. 또 조끔 만 있으면 따루따루를 허고 아장아장 것다가 말을 배느라구 참새처럼 재잘거리거든 그러구설랑 유치원엘 들어가지 않겠 니? 요입으로 창가두 허구, 요손을 폈다 오무렸다 허면서 유희두 곳잘헌단말야. 그러다가는 소학교엘 들어가서 조그 만 가방을 메구서 달랑거리구 댕기거든. 그러다간 중학교 대학교까지 떡 들어가서 우동첫지루 졸업을 허구는 머리를 갈러부치구서 아주 훌늉한 신사가 된단말야. 그러구나선 어 떡헐가. 참 꽃같은색시한테 장가를 들거든"

하고 혼자ㅅ말을 하며 손가락으로 입모습을 꼭 눌르니까 일남은 엄마의 말을 알어나 듣는 듯이 방그시 웃어보인다.

"아 요녀석아, 어느새버텀 장가를 든다는 말만들어두 조냐"

하고 놀려주면서 엄마는 손벽을치며 웃었다.

"아비없는 자식이면 어떠냐. 리혼을 당한들 무슨상관이 있 니? 너하나만 무럭무럭 자라나면 고만이지. 이세상에 겁날 게 뭐구 무서울게 뭐냐"

하고는

"그렇지? 일남아 우리 일남아!"

하고 인숙은 어린것의 뺨을 부비며 이번에는 기쁨에 넘치 는 눈물을 흘렸다.

그러는 동안에 또 여러날이 꿈결같이 지냈다. 인숙은 (병이 과히 대단치나 않은가.) (강보배가 입에 혀같이 간호를 해주겠지만......) 하고 그래도 봉환에게서 소식이 없는 것이 궁금하였다. 변 호사에게서도 다시 아모 통지가 없는 것을 보니 사건을 위 임한 당자가 아즉도 정신을 차리지 못할만치 알는것만은 추 측이되였다.

그러다가 어느날 아츰에 봉환에게서 편지가 왔다.

"내일 저녁뒤에 찾어갈터이니 기다려주기 바라오"

라고 황황히 연필로 갈겨쓴 단한줄기 사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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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돌방속에서 코끝과 귓뿌리가 얼든 치위도 한풀이 꺾여서 한강에는 어름이 풀리기 시작하였다지만 지난밤에는 영창 유리쪽에 서릿발같은 성애가 끼고 방웃목에 들여논 자리끼 에 살어름이 잡혔다. 이월에 대독이 깨진다고 며칠 눅였든 날개가 마지막으로 극성을 부리려는 모양이다.

인숙은 저녁때 일남의 세수를 깨끗이 시키고 가루분까지 토닥토닥 발러주었다.

일남은 천성으로 귀골이라 토실토실하게 살은 올르지 못하 였어도 씻기고 닦어노면 벌서부터 해사하고 재치있는 선비 의 풍도가 있는것같이 돗보기 안경을 쓴것같은 어머니의 눈 에는 보였다. 어찌보면 시집을 가서 처음보든 신랑의 얼굴 즉 열두살 때 봉환의 모습과 비슷한 인상과 차츰차츰 가까 워지는 것이 완연히 눈에 띠웠다.

인숙은 봉환을 기다리는 동안 저 자신이 생각하여도 이상 하리만치 마음이 동요되지 않었다.

(무슨 일이 있든지 끝까지 냉정한 태도로 대하리라. 이번에 야 말로 침착하게 내 속마음을 토파하고 말리라) 하고 봉환이가 올시간이 가까워올사록 출렁거리기 시작하 는 마음을 이지(理智)의 몽구돌로 눌렀다.

"얘야 일남아 조금있으면 네 아버지가 오신단다. 너 입때 아버지 못봤지? 오늘은 똑똑히 봐둬라. 응 어쩌면 너 아버 지를 다시는 보지 못하게 될는지두 모른단다"

하고 어린것에게 귓속하듯 속삭여 주기도 한다.

사실 인숙은 오늘에 한하여서는 먼곳에 여행을 하든 남편 이 첫아들을 낳었다는 기쁜소식을 듣고 오는듯한 기분으로 봉환을 맞이하고 싶었다.

봉환이가 와서 화평한 낯으로 어린 것을 얼러주고 안어주 고 전의 저의 잘못을 뉘우치는 기색이라도 보여줄것같으면 과거의 모든 것을 용서해주고 싶었다. 봄바람이 건 듯 불면 눈이 녹고 어름이 풀리듯이 온갓 설음과 억울함과 뼛속에 사모친 원한을 뒤숭숭한 초저녁의 한바탕 꿈으로 돌려보내 리라 하였다. 그러다가도 (아이고 내가 어쩌자구 이런 공상을 헐가. 일은 틀린지가 고려쩍인데...... 암만해도 어리석은건 여잔가보다) 하고 아직도 이생에 매디젔든 지겨운 인연의 줄을 드는 칼 로 선뜩 끊어버리지 못하고 마음속한 구통이에는 옛날에 첫 사랑을 속삭이든 남편에게 대해서 미련과 애착이 남어있는 것을 느낄 때 인숙은 스스로 얼굴을 붉히지 않을수 없었다.

저녁상을 일즉암치 물린후 인숙은 방까지 깨끗이 치워놓고 방석이 없어서 요를 둘에 접어서 아래ㅅ목에 깔어놓았다.

벌서 얼마전부터인지 창상과부가 된 듯 들여다보지않든 경 대앞에 앉어서 인숙은 얼굴에 분때를 밀고 머리에 군빗질을 하다가는 (온 우습기두 허지. 오늘은 웨 내맘이 웨 이래질가) 하고 쓰디쓴 미소를 지어보았다.

전등불이 들어온지 한참만에야 대문소리가 나고 마당에서 구두소리가 나고 창밑에서

"으흠 으흠"

하는 봉환의 기침소리가 들렸다.

인숙은 안고있든 어린애를 나려놓고 발닥 일어났다.

인숙은 잠잫고 방문을 열고 봉환이 역시 잠잫고 들어섰다.

백납같이 창백한 얼굴에 목에는 붕대를 칭칭감은 봉환의 입에서는 술냄새가 훅 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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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일생에도 중대한 문제를 해결하려고 오는사람이 술 을 먹다니) 하고 인숙은 위선 봉환의 입에서 술냄새가 나는 것이 불쾌 하였다.

봉환이가 여전히 어린애는 거들떠보지도않고 말없이 앉는 것을 보고

"그동안 편치않으섰다지요?"

하고 인숙은 거이 무의식적으로 물었다.

"몸살이 나서......."

마지못해서 하는 대답도 말끝을 여물리지 못한다. 제딴에 는 최후의 용기를 돋으기 위해서 술의 힘까지 빌려가지고 온 눈치나 인숙의 앞에 안고보니 어쩐지 준욱이 들린것처럼 기가 죽는 모양이다. 인숙이 역시 (만나기만 허면) 하고 두고두고 별렀든 온갓사설과 가진 푸념이 함봉을 당 한 듯 한 마디도 나오지 않었다. 저편에서 먼저 말을 끄집 어 내기전에 이쪽에서 이러니 저러니 입을 버릴 까닭도 없 다고 생각한 것이다.

봉환이가 웬만치나 활달한 남자면야 기왕 내용증명까지 보 낸터이니 노랗게 곪긴 뽀로지를 잡어떼듯이 탁 터놓고 설파 를 했으면 시원하렸만 애꾸진 담배만 부쳤다 껐다하고 앉었다.

두사람 사이에는 한 십분동안이나 무겁고 빡빡한 침묵이 흘렀다. 봉환의 태도가 혹시나 하고 기대하든바와는 딴판으 로 여전히 찬바람이 도는데 인숙은 다시금 열이 났다. 오긴 뭘허러 왔길래 (변변치 못하게 웨 말을 못해) 하고 가깝증이 나서 그이상 더 켱기고 있을수가 없었다.

"내용증명까지 허섰드군요?"

하고 참다못해 비꼬듯이 한마디를 던졌다.

"아는 변호사에게 의론을 해봤더니 그사람이 그렇게......"

하고는 제가 시킨일을 변호사에게다 떠다밀며 우물쭈물 한다.

"웨 그런 중난헌일을 나헌테 먼점 얘기를 못허서요? 변호 사가 무슨 상관이 있길래 재판까지 헌다는건 어디 당헌말이 야요?"

질문의 화살은 점점 날카로워 진다.

"..........."

봉환은 아래ㅅ목에서 새근새근 잠이든 어린애에게로 무심 코 눈이 가면은 커다란 버러지나 누은 듯 보기만해도 징그 러운것처럼 고개를 돌린다.

그 눈치를 곁눈으로 본 인숙은 땅속깊이 파묻혔든 분노의 불덩이가 차츰 차츰 분화구(噴火口)를 향하야 치밀어 올러오 는 것을 느꼈다.

"웨 대답을 못허서요? 이혼이 허구싶으면 순리로 말슴을 해도 덮어놓고 '네 그럽쇼' 하지는 않을텐데 여태 그런말은 비치지도 않었다가 불쑥 재판까지 허겠다구 얼러메면 누가 벌벌 떨줄 아섰어요? 한 십년부려먹든 종년이래도 그렇게 대접은 못허겠죠?"

인숙은 앞으로 닥어앉으며 아편쟁이같은 봉환의 얼굴을 똑 바로 쳐다본다.

봉환이도 무어라고든지 한마디 대꾸를 하지않을수 없게쯤 되었다. 혹을 떼러갔다가 하나 더 얻어부치고 간다는 격으 로 이혼을 하려고 간 사람이 이혼을 당하고 갈 형세다. 제 가 경솔히 잘 못해논일은 뉘우칠줄 모르고 인숙에게 꾸지람 을 듣듯하는데 자존심이 상해서 어깨로 숨을 쉬다가

"지난 일이야 잘잘못간에 여러말 헐게 없지않소. 나헌테두 그렇게 불평이 많은 담에야 꺠끗이 헤여지는게 상잭이니 까....... 이혼허는데 동의만 허면 고만이 아니요?"

하고 비로소 인숙의 발개진 얼굴을 흐려 쳐다본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어째서 이혼을 허자는거야요? 그 까 닭버텀 얘기를 해주어야 사리에 옳지않겠어요? 좌우간에 대 답을 헐수가 있지않겠어요?"

인숙의 추궁은 점점 급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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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환은 그 까닭을 말할 듯 말할 듯 하면서도 참아 입밖에 내지를 못한다.

"왜 말슴을 못허서요. 재판을 허드래도 어떻게 무슨죄를 젔 으니까 어떤 형벌을 받으라구 리유를 말해 주는 벌이 아니 야요? 그런데 여자헌테는 더군다나 내처지로는 일생에 제일 중난헌 일인데 그렇게 까닭도 몰으고 호락호락이 리혼에 동 의를 할뜻싶어요? 좀 바꿔서 생각을 해보서요? 나를 얼마나 만만허게 봐오섰는진 몰으지만 나두 생각해본것도 있고 또 는 이런 계제에 량단간에 귀정을 내려구 결심을 했으니 어 서 말슴을 똑똑이 해주서요?"

인숙은 될 수있는대로 흥분하지 않으려고 속으로 힘을 들 이는데

"아무튼 결혼이란 한편에서 싫으면 해소(解消)헐수가 있는 게 원측이니까 지금와서 그렇게 여러말헐게 없지않소?"

봉환은 간신히 떠듬떠듬 한마디를 하였다.

"아마 외국에선 그렇게 쉽사리 리혼을 허는지 몰으지만 그 네들과 우리와는 모든 경우가 달르지요. 아무튼지란 그런 모호헌 말슴이 어대있어요? 더퍼놓고 갈러서자는 그런 경계 가 어대있어요?"

하고 인숙은 목소리가 저절로 노파가는 것을 깨닫지 못하 다가

"리혼은 내편에서 먼저 청구 헐 리유가 만치요. 들어 보실 테야요?"

하고 인숙은 바로 봉환의 턱밑에서 종주목을 대며 조목조 목 캐기를 시작한다.

"부부간이란 남남끼리 모혀서 사는게니까 한편짝에서 사랑 이 식고 같이 살기가 싫은 바에야 일즉암치 깨끗허게 갈러 서는 것이 피차에 장래를 위해서 좋겠지요. 나버텀도 싫다 는 사람을 비릿비릿허게끔 같이 살자고 애걸복걸헐 여자가 아니야요. 그렇지만 봉환씨의........"

하고 처음으로 남편이라는 사람의 일홈을 불렀다. 옛날 어 른들처럼 '게서'라기도 안되였고 '당신' 이라기도 거북해서 ' 봉환'이라고 거침없이 불러버린 것이다.

".........첫재 봉환씨는 남더러 먼저 리혼을 허자구 헐 자격 이 없어요. 무슨 낯을들구서 그런 청구를 그나마 간접으로 위협하듯 하는지 그 태도가 넘우나 비겁허단 말슴야요"

하는데 봉환이가 얼굴을 붉히고 무슨말을 하려고 입을 버 리니까

"가만이 계서요 내말버텀 들으서요"

하고 손을들어 막으며

"정당히 장가를 든 안해를 내버려두고 연골에 난봉이 난것 이나 다른 여자와 세 번 네 번이나 련애를 허느라구 나를 무시허구 그동안 학대를 한것만해도 나헌테 리혼을 당헐 조 건이 단단이 되지요. 그래도 지금와서 그런말은 나버텀 끄 내기가 싫여요. 허지만 그 몹슬 병을 잠든사람에게 강제로 옴겨주고는 손톱만치 미안헌 생각이나 허섰어요? 그렇게 지 독히 욕을 보면서 한달이나 입원을 헌걸 뻔히 알면서 단한 번 드려다보섰어요. 발그림자나 허섰어요. 목석이 아님담에 야 그런 인정에 버서나는 일이 세상에 어대있어요?"

하고 숨이 갓버지는대로 말이 빨러지고 목소리는 철성을 띠워간다.

"그렇지만 그런건 다 용서할 수가 있어요. 죽기작정을 허구 오늘까지 참어왔어요. 그렇지만....."

여기까지 이르러 인숙은 가슴이 턱 마켜서 말을 잇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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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환은 머리도 감히 처들지 못하고 토죄를 당한다. 어려서 부터의 버릇으로 발끝을 달달달 까불며 소견좁은 계집애가 무엇에 토라진것처럼 입을 뾰족이 다물고 앉인 것이 어찌보면

(어디 네맘대로 실컷 짓거려보라) 는것같기도하고 (흥 네가 마지막으로 내게다 발악을 하는구나) 하고 비웃는듯한 태도같기도 하다.

그럴사록 인숙은 더한층 기가났다.

(이번에 놓첬다가는 언제 또다시 만날지 몰르는데)

하고는

"속시원하게 대답이나 좀 해보서요"

해도 봉환은 여전히 오만실이나 짭프리고는 말댓구를 하지 않는 것을 보고

"똑똑이 들어두서요. 봉환씨가 나헌테 리혼을 당할 제일 중 요한 조건이란 무어신고 하니요, 자기가 저질러논 일에 대 해서 책임을 질줄몰으는 사람이기 때문이야오. 알어 들으시 겠어요? 별안간 불같은 욕심이 치바처서 더군다나 취중에 그런짓을 하신거야 남자란 의례 다 그뻔샌가보다 허구 여자 된탓이나 할밖에 없지만 그결과에 대해서 달은사람이 헌짓 처럼 두눈 딱감고 몰은체를 헌다는건 부부간의 도덕상으로 커녕 인륜에 어그러지는 일이야요"

하고 인숙은 혀끝으로 불을 뿜듯하며 봉환이가 무어라고 변명을 할여유를 주지않는다.

"내가 그 뒤에 아이를 밴줄 아섰지요? 동전한푼 없이 입원 을해서 여자만이 당허는 더 할수 없는 고통을 받다가......."

하고는 곁에 누은 천사의 보드라운 날개로 고히고히 쓰다 듬어주는듯한 일남의 자는 얼굴을 가르치며

"조것을 낳었것만 자기의 피를 이은 것을 단한번 들여다나 봐줬어요? 어미가 미우면 미웠지. 조 천진난만헌 어린게 제 아버지헌테 무슨죄를 짓고 나왔길래 눈앞에 두고도 얼굴한 번 들여다 봐주질않느냐 말슴이야요. 아버지된 사람의 도리 야요?"

하고 인숙은 분한 것을 참지못하고 온몸을 바들바들 떨면서

"더군다나 더군다나.........."

하고는 애석해서 다시금 말문이 꼭 막혔다가.

"내가 싫여젔든지 달은 여자허구 아-니 강보배가 리혼을 해달라구 죽느니 사느니 허는데 내가 말을 들을것같지가 않 어서 재판까지 허겠다고 얼러메는건 봉환씨같은 남자가 헐 수 있는 짓인지는 몰으겠지만......"

하다가 다시 한번 일남의 편으로 얼굴을 몰려보히고는

"아 그래 하늘이 나려다보는데 조걸 자기의 자식이라고 인 정할수 없다는건 사생자를 만들려는 것......"

인숙의 얼굴에서는 참고 참었던 두줄기 눈물이 말대신에 주루루 쏟아젔다.

봉환은 그 눈물을 흘낏보자 고개를 홱돌리고 담배ㅅ진에 노라케 겨른 상아물뿌리를 빠드득빠드득 소리를 내여 깨물 다가

"헐말 다했소? 이젠 내말좀 들어보"

하고 무릎을 고치며 엎드려진 인숙의 앞으로 닥어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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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말슴해 보서요"

씿으려고도 하지않는 눈물에 어룽진 인숙의 얼굴이 봉환의 눈앞에서 번득였다.

봉환은 이때까지 상대자의 하는 꼴을 구경이나 하려는 듯 이 인숙의 말을 귀밖으로 흘려듣고있다가 짐짓 냉정한 어조로

"양심을 속이구서 그런말이 순순이 나오는거요?"

하고 날카로운 눈초리로 인숙의 얼굴을 똑바로 노려본다.

밑도끝도 없이 불쑥 내미는 한마디에 인숙은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양심을 속이다니요?"

두사람의 네줄기 시선은 구름속에서 마주치는 번개처럼 바 지직 바지직 불이 일것같다.

"도대체 어느누가 양심을 속였단 말슴이야요?"

인숙은 채우처 물었다.

봉환은 의문에 빛나는 인숙의눈을 또다시 독이 올른 새매 와같은 눈초리로 말없이 노려보다가 깨였든 술이 다시 빨끈 올라서 눈동자에 핏줄이 질려가지고

"날더러 무책임허니 인륜에 어그러지는놈이니 하고 터진입 으로 꾸짖기전에 제행실이 부정했든건 어째 반성을 못허는 거요? 언제꺼정이나 누굴 속여볼 뱃장이요?"

이말 한마디를 듣자 인숙은 용수철 방석에가 펄석 주저앉 었든것처럼 펄썩 뛰어올랐다.

"아 뭐시 어쩌구 어째요? 내 행실이 부정하다뇨?"

"자-말헐가 내가 일본있는 동안에 장발이란놈허구 골목속 이나 정거장 식당까지 딸어다니며 아이비끼(밀회)를 허지않 었느냐 말야. 그것뿐이면 좋게 장발이헌테서 이혼을 허구 같이 살자는 편지까지 받어서 감춰뒀었지?"

"그편지가 들어나서 쫓겨나고도....."

하는데 인숙은 하도 어이가 없어서

"아-니 이게..... 본정신으로 허는 말슴야요?"

하고 말을 막으며 열이나케 주서성기는 봉환의 얼굴을 얼 빠진 사람처럼 물끄럼이 처다본다. 봉환이역시 부르터난김 에 아주 탁방을 지어버리려는 듯이

"그런 추악헌일이 있는줄 번연히 알었지만 첫재는 내가 창 피허구 둘재는 우리집 체면상 떠들지를 않구 쉬쉬해오니까 꽨듯싶어서 그래 되립따 누굴 잡으려고 드는거야. 저만치 똑똑헌체를 허는 여자가 제행실이 나뻤든것버텀 반성할줄 알어야지 남편있는 여자가 간음죄를 젔으면 이혼아니라 징 역을 가는법인줄은 알테지?"

하고 봉환은 침이 튀도록 소리를 질으며

"에익 더러운 것 빤빤스런 계집같으니라구. 아 이게 내자식 이란 말야!"

하는 호통과함께 봉환은 벌떡 몸을 일으키며 일남을 발길 로 거더차듯해서 웃목 편으로 떠다 밀었다.

세상을 몰으고 잠이 깊이 들었던 일남은 몹시 놀라 소스러 차 깨였다.

처음에는 불의의 타격에 새파랗게 질려 남생이를 발딱 재 처논것처럼 사지를 바둥거리다가

"까르르!"

하고 울음이 터젔다.

인숙은 감전이된 사람처럼 꼼짝못하고 봉환의 행동을 처다 만 보다가

"아이고 하느님 맙시사-"

하고 외마디소리로 부르짖고는 힉힉 느끼다가 두팔로 일남 을 끌어안으며 곡 그라지듯이 엎으러젔다. 방바닥에다가 격 분과 억울과 원한에 뭉치고 뭉친 검붉은 피를 덩이덩이 토 해 내 려는 듯이!

十一[편집]

인숙은 비로소 시집에서 쫓겨난 까닭을 알었다. 봉환이가 제자식을 인정치 않겠다는 원인도 그제야 짐작하게 되었다.

꿈에도 모르고 지내오든 인숙은 놀라움과 격분함에 전신의 피가 엎으린 머릿속으로 쏟아저나려서 뇌충혈로 쓸어진 사 람처럼 정신을 잃었다.

"작은아씨! 아 이를....... 어쩌면 좋우? 응 응 작은아씨!"

하고 손톱으로 장판바닥을 긁어다리며 기어들어 가는 목소 리로 실낫같이 부르지줄뿐......

안개깊은 밤중에 아득히 먼 항구에서 반짝이는 등대와같이 의식이 깜박깜박 하는중에 일남이가 목이 쉬도록 우는 소리 에 섞여

"인제두 할말이 있건 해봐 왜 일부러 죽은체하구 엎드렸는 거야? 저렇게 낯작두 처들지못하면서 그래두 리혼은 못하겠 다구 바락바락 대들테야"

하고 주먹으로 방바닥을 처가면서 개꾸짖듯하는 봉환의 목 소리도 인숙의 귀에는 모기소리만치 들릴락말락할뿐......

그럴사록 봉환은 더욱 기가 나서 한번 엎으러진채 인제는 아조 넑을잃은 듯이 어깨도 들먹거리지못하는 인숙의 머리 를 꾹꾹 쥐여질르며

"누굴 속이려구 앙큼스럽게 또 이러구 엎드린거야 내일이 래두 리혼수속을 해보낼테니 도장을 찍어 보내. 그렇지 않 으면 정말 간통죄로 고소를 할테니 콩밥이 먹기싫건 생각해 하란말이야"

하고 땅땅 얼러메다가 어린애의 힌포대기우로 방울방울 떠 러지는 피를 발견하였다.

꼭깨물은 인숙의 아랫입술이 터저서 턱으로 흘러나리는 한 줄기 새빨간 피를 보자 봉환은 자라처럼 목을 움치러트리며 물러앉었다.

봉환은 슬그머니 겁이났다. 어깨를 슬근슬근 건드려보아도 인숙은 감각을 잃은대로 엎으러진 채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 는데 어린애는 울다울다 지처서 경풍을 하는것처럼 깔닥깔 닥 딸곡질하듯한다.

봉환은

(이거 더앉었다간 큰 봉변을 하겠군)

하고 인숙의 모자가 이대로 죽으면 그 혐의가 저에게 씨워 지기나 할것처럼 모자를 집어들고 일어섰다. 궁둥이로 방문 을 밀고 뒷걸음질을 처서 마루로 나왔다.

어둠침침한 마루끝에서 대ㅅ돌을 더듬어 구두를 찾아서 꼬 이고 엉금엉금 기듯하면서 문깐으로 나가는데

"가긴 어딜까요 날좀 봐요!"

하면 천방지축 쫓아나오는 인숙의 헛김이 나는듯한 목소리 가 등뒤에서 들렸다. 방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칼끝같은 찬바람이 방안으로 쏟아저 들어가서 기절을 하다싶이 하였 든 인숙은 제정신이 홱 돌았든 것이다.

봉환은 뒤로 돌아다보지 못하고 캄캄한 골목속으로 뺀손이 를 첬다.

대문턱까지 맨발로 쫓어 나왔든 인숙은

"날좀 보서요 어디로 다러나요-"

하고 외마디소리로 외치다가 황급히 안으로 들어갔다.

방으로 들어가서는 포대기채 일남을 들어업고 나왔다. 안 방에서 뚝섬집이 내달으며

"글세 웬일들이요? 이 춥구 어둔데 어린앨업구 가는데가 어디요?"

하고 아무리 붙잡어 들이려고 빌다싶이 하여도 인숙은

"놔요 왜 이래요"

하고 서릿발같이 쌀쌀하게 뿌리치며 실성한 사람처럼 봉환 의 뒤를 따러나갔다.

十二[편집]

팽이를 가꾸로 세워논 듯 뾰족이 솟은 북악산꼭대기로부터 석벽을 깎으며 나려질르는 찬바람에 인숙은 숨이 턱턱 막혀 서 몇번이나 돌아섰다가가는 경복궁의 긴담을 끼고 갈팡질 팡 걸었다. 일남은 울음끝이 그저 끝이지 않었을뿐 아니라 자든 얼굴의 조그만입과 콧구녕으로 벅차게 안키는 밤바람 에 울지도 못하고 흑흑 느끼건만 사실로 실성을 한거와 다 름이 없는 인숙은 등에 업힌 어린애를 생각할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오냐 너구 나구 죽자! 그렇지만 길바닥에가 거꾸러저서 빳 빳이 얼어죽는 한이 있드래도 우리의 누명만은 벗어야 헌 다. 네가 장가의 자식이 아니라는 것을 변명해줄 사람은 네 어미밖에 없다"

하고 인숙은 딱딱 마주치는 아래웃니사이로 부르짖으며 돌 맹이도 밭길에 채이지 않는데도 없으러지며 고프러지며 안 동네거리까지 나려왔다.

(자근아씨 때문에 이렇게 된일이니까)

하고 정신이 없는중에도 봉희를 찾아서 응원을 청한다느니 보다도 봉환을 놓첬으니 갈데가 없기도하다. 봉환이가 어디 로 간줄을 모르는데 시집으로 불쑥 어린애까지 업고 들어갈 수도 없는 경우였다.

"자근아씨!"

소리를 간신히 하고 봉희의 집으로 들어서자

"아-니 이밤중에 새언니가 웬일이요?"

하고 막 첫잠이 들었든 봉희가 옷을 주서입고 문을 열었 다. 세철은 원산방면에 긴급한 볼일이 있다고 가서는 벌서 여러날재 돌아오지를 않어서 봉희 홀로 집을 직히느라고 꼼 짝도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전등을 켜고 인숙을 맞어드리는 봉희의 자든눈은 희동그래 젔다.

"아, 어린앨 업구...... 대체 이게 웬일이요?"

하다가 인숙의 입술에 엉기어 붙은 피와 저고리 앞섭에 흘 러나린 시뻘건 한줄기를 보고는 몹시 놀라서 입만 딱 버리 고 있다가

"그-예, 야단이 났었구려? 어서 말을 좀 허우. 그러니 이 추운 밤중에 어쩌자구 어린앨 업구 왔단말요?"

하면서 입이 얼어붙은것처럼 말도 못하고 사시나무떨듯하 고 선 인숙의 등에서 일남을 끌어 나려 뜨뜻한 아렛묵에다 눕혔다.

"아이고 이를 어째. 어린애가 아주 얼음덩이로구려!"

하고 봉희는 일남의 꽁꽁얼은 두손과 뺨을 손가락으로 부 비며 입김을 쏘여주다가

"온 갑갑해 죽겠구려. 어서 속시원허게 얘길좀 해요"

하고 인숙의 손을 끌어다린다.

인숙은 펄석 주저 앉으며

"난 참 정말 물에라두 빠저 죽을 수밖에 없수"

하고 깜으러첬다가 피어나는 사람처럼 후유-하고 숨을 돌 리더니

"오빠가 날더러 장발이허구......."

하고 한숨반 울음반 섞어가며 봉환이가 하든 말을 간신이 옴겼다.

봉희는 인숙에게 지지않을만치 놀랐다. 얼굴이 하얘젔다 발개젔다 하다가

"내-개, 그럴줄 알었수. 그럴줄 알었어? 그러니 이를 어쩌 우. 이를 어째. 생사람을 잡어두 분수가 있지. 그걸 입때 우 리만 모루구 지냈으니....... 아아 나 때문에, 나하나 때문에 새언니가 그런 누명을 쓰구....."

하고 펄펄 뛰다가 엎들어저 인숙의 무릎에 이마를 들부비 며 울더니

"갑시다 가! 내몸이 열조각에 나는 한이 있드래도 내가 변 명을 해주구야 말테요"

하고는 벌떡 일어서 발을 동동 굴르며 재촉을 하다못해서

"일어서우 어서 일어서요"

하고 인숙의 소매를 잡어다려 일으켜 세웠다.

十三[편집]

봉희가 인숙을 친정으로 끌고 가는 것은 먼저 장발이가 한 편지가 제게로 온것이었다는 것부터 당자를 세워놓고 변명 을 해주려는 것이다.

"아무튼 나버텀 바보지 오빠가 다른 생각을 먹구 새언니를 친정으로 보냈거니 허구만 지냈으니 이런 기막힐일이 어딧 단 말요"

하고 봉희는 일종의 의분과 저 때문에 애매히 돌에 치인 인숙에게 대해서 무한히 미안한 생각이 들어 몸둘곳을 몰라 한다.

"그저 나만 딸어오. 새언닌 잠자쿠 있어요. 내가 다 변명을 해줄테니"

하고 봉희는 울지도 못하고 할딱할딱 숨을 몰아쉬는 일남 을 폭 싸서 인숙에게 업혀주고는 앞장을 서서 나갔다. 인숙 은 얼이 빠진사람처럼 그뒤를 딸었다.

××궁 산정채에는 아직 불이 꺼지지 않었다. 충충한 큰 사 랑 모통이로 돌아 들어가는데 모자를 폭 눌러쓰고 외투 주 머니에 손을 찔르고는 도적놈처럼 좌우를 돌려다보며 걸어 나오는 봉환이와 마주첬다.

"어빠 어딜 가우?"

뜻밖에 누이의 새된 목소리를 듣자 봉환은 문짓 하고 물러 섰다.

"마침 잘 맞났우. 나구 들어갑시다. 나구 들어가요"

봉희는 닷자곳자 오라비의 외투소매를 잡어다린다. 인숙이 가 어린것까지 없고 따러온 것을 흘깃본 봉환은

"놔라"

하고 누이를 뿌리친다.

"아 오빠 때문에 생사람이 죽게됐는데 가는데가 어디요?

어서 들어가 내 얘길좀 들어요"

봉희는 오라비의 등을 떠다밀다못해서 허리를 껴안허 깍지 를 끼고 뒷거름질을 시켰다.

봉환이가 누이의 힘을 당하지 못할 것은 아니었만 앞을 막 어선 인숙의 어둠속에서 이상한 광채를 발하며 저를 노려보 는 홉뜬듯한 두눈이 무서웠다. 제가 만일 피해 달아날것같 으면 인숙은 그 자리에 걱구러저서 피를 토하고 죽을것만 같어서

"너까지 왜이러니? 놔라 놔"

하면서도 못익이는체하고 붓들려 들어갔다.

"어머니"

하고 봉희가 문을 홱 열어제치는 바람에 자리ㅅ속에 든 자 작 내외는 깜작 놀라 일어났다.

"아 네가 왼일이냐?"

하는 말에 대답도 아니하고 봉희는 오라비를 놓질가보아

"사람의 목숨이 둘씩이나 죽고 사는게 오늘저녁에 달렸는 데 편안이들 주무신단 말예요"

하고 일변 봉환의 팔을 끌어 아랫간으로 들여밀고는

"새언니두 들어와요"

하고 마루끝에가 등신처럼 서 있는 인숙을 끌어들였다. 리 성(理性)을 잃은 봉희의 행동은 흡사히 병실에서 뛰어나온 열병환자와 같다.

"아-니 너이들이 이 밤중에 왼일이냐. 응, 왜 이 야단들이 야?"

봉희의 어머니는 벌벌 떨리는 손으로 치마를 둘른다. 여전 히 기거를 마음대로 못하는 자작은 아랫목에 누은채 눈만 휘둥그렇게 뜨고 세사람의 얼굴을 번갈러 처다보며 말도 못 한다.

"이집 식구들은 다 모여요! 다들 이리 들어와요!"

하고 부르짖으며 봉희는 아랫채로 뛰어나려가서 두 오라범 댁까에 후두들겨 깨워가지고 올러왔다.

十四[편집]

그리하야 림시로 가족회의가 긴급이 열렸다.

여러사람은 잠시 말이 없었다. 동서들은 어찌된 영문인지 를 몰라서 어리둥절하고 어린애를 업고 한구석에가 머리를 숙이고 돌아선 인숙을 벌갈러 곁눈질을 해볼뿐....

"대체 이게 왼일들이냐"

찌저질 듯이 긴장된 방안의 공기를 자작의 목소리가 깨트 렸다.

봉희는 숨만 가뿌게 쉬며 말을 끄내지 못하다가

"왼일이라뇨 저 새언니를 무슨까닭으로 내쫓이섰어요?"

하고 부모의 앞으로 닥어앉는다. 자작은 묵은 문서를 들출 것이 없다는 듯이

"인제와서 그건 네가 알어 뭘허느냐?"

그목소리는 노염을 띠웠다.

"알어서 뭘허다니요 털끗만헌 죄두 없는 사람을 여자헌테 는 제일 더러운 이름을 씨워서 내쫓인게 누구야요? 하늘을 처다보지 못하게 만든게 도대체 누구냐 말슴야요?"

"누가 일부러 내쫓았단 말이냐"

이번에는 어머니가 말을 받었다. 봉희는 고개를 돌려 자근 오라범댁을 노려보면서

"그 편지를 내노. 당장 내놔요. 나헌테 온 편지를 몰으로 싀부모헌테 갔다 밧처서 새언니를 뒤잡은게 누구냔 말요?

인제두 내가 몰을줄 아우?"

하고 달려든다.

자근오라범댁은 눈고리가 샐쭉해가지고

"별안간 편지가 무슨 펴지란말요"

하고 새침을 뗀다.

인숙은 그제야 낯을들고 자근동서의 얼굴을 한참이나 잠자 코 쏘아보다가

"나허구 전생에 무슨 원수가 젔읍디까?"

한마디를 간신히 하고 다시금 고개를 떨어트린다. 그말 한 마디는 백마디 천마디 보담도 더 아프게 상대자의 가슴을 찔렀으리라.

그러나 자근동서는 빨끈해서

"자네 그게 무슨소린가? 터진입으로 말이면 다허는줄 아 나?"

하고 종시 편지를 발각식힌 사실을 딱 잡아떼려고든다. 인 숙이가 다시 머리를들며 무어라고 하려니까

"새언니 가만히 있어요? 나허구 즉접 관계가 되는일이니까 나버텀 흑백을 가릴테요"

하고 봉희가 가로막더니

"그래 정말 리혼을 헐테니 나와 결혼해 달라는 봉투도 없 고 편지받을 사람의 이 름도 쓰지않은 편지조각을 본일이 없단말요? 무슨 큰 보물이나 찾어낸것처럼 이사람 저사람헌 테 보이고 뒤떠들어서 말쩡헌 새언니를 생으로 잡은 것이 달은사람이란 말요? 그래두 영영 바루 대지를 못헐테요?"

하고 사내처럼 팔을 거드며 라부댁의 멱살이라도 추켜잡을 듯이 달려드는 서슬에

"얘야 그애가 무슨짓을 했든지 네가 왜 저렇게 기가나서 날뛰느냐"

하고 어머니가 일어나 딸의 치마자락을 잡어다리니까

"노세요. 그편진 장발이란 오빠의 친구가 나헌테 헌 편지야 요. 그 얼간망둥이가 나헌테 반해서 쫓어다니다 못해서 새 언니까지 새중간에 넣구 귀찮게 군거야요. 아무튼 내노서요.

그 편질 내노서요. 그녀석이 등경가 있으니까 편지를 해봐 두 알테니, 어서 그증거품을 내노서요"

하고 부모에게 육박을 한다. 자작은 듣다못하야

"그 편지는 내가 태워버렸다. 그러니 어쩔테냐"

하고 호령이라도 할 형세를 보인다.

"그런걸 왜 없애버리섰어요? 어떻게된 까닭도 몰으시고 얼 토당토않은 사람을 십년이 넘도록 순종허구 나중엔 종처럼 며누리를 내쫓이시는 법이 어딧서요? 그것두 어른들이 잘허 신 일이서요?"

하고 공박을 하고나서 그편지를 남편에게 보이고 친헌 친 구니까 말성없이 조처를 하도록 의논을 하려고 인숙이가 간 직해 두었던것과 자기가 지은죄가 없으니까 그 편지를 집행 당하는 통에 일어버리고도 찾이려다가 신지무의하고 내버려 두었다는것과 오라비의 이불을 전하기 위해서 인숙이가 장 발을 맞났고 정거장까지 나간것만해도 저를 위해서 저의 특 청으로 그자에게 단념을 시키려고 대신 맞나보게 했었다는 것이며 장발이가 제 뒤를 쫓아다니며 성화를 바치든 것은 지금의 제 남편인 세철이까지 보아서 증인을 설수 있다는 것을 하나도 빼어놓지 않고 물퍼붓듯 하였다.

十五[편집]

봉희의 도도한 열변에 방안에는 말대ㅅ구를 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 자작 내외는 딸의 변호가 조리가 닫고 옴니압 니가 꼭꼭 들어마저서 그럴사-하는 표정을 짓고 빨앟게 상 기가 된 딸과 반쯤 고개를 떨어트리고 돌아 앉인채 입을 봉 하고 있는 인숙의 흩으러진 머리카락에 어리운 창백한 얼굴 을 번갈러 볼뿐.

인숙을 음해한 장본인인 둘재댁은 그이상 무릅마침이나 시 길가보아 어느틈에 꽁문이를 빼고 큰댁은 그저 오도가도 못 하고 표정없는 얼굴로 웃목에가 멍하니 섰다.

봉환은 사추리에다가 머리를 틀어박듯 하고 앉어서 또다시 인숙의 폭백이 나올가보아 꿈쩍도 못하고 앉었다. 처음부터 장발이란 자는 주책이 하나도 없는 위인이요 동경으로 떠날 때 정거장에서 맨처음 누이를 본 이후로 저에게까지 죽겠느 니 살겠느니 하고 비대발괄을 하든 터이니까 청대신에 닭이 나 쓴다는 격으로 인숙의 뒤를 쫓어다니는거나 아닌가 하였 다. 그런데 제 안해라는 사람의 조행이나 품성을 보드래도 결코 그런자와 추잡한 관계까지 있으리라고 믿어지지는 않 으면서도 강보배와의 문제가 급박해오기 때문에 리혼의 구 실을 삼기위해서 제 양심을 눌러가며 최후의 수단으로 협박 을 하려든 것이다. 그러든 것이 전후사실이 더 올가넣을나 위 없이 들어나고보니 겁많고 심약한 봉환은 일분동안이라 도 빨리 이 자리를 버서나고만 싶었다.

봉희가 또다시 이말저말 주서 성기니까 인숙은 반쯤 머리 를 들며

"그만두. 이꼴이 된바에야 구차스럽게 변명은 해 뭘허겠우 모든게 내 팔자소관이지"

하고 기신없이 한마디를 간신히 하고는 긴 한숨과 함께 다 시금 머리를 떨어트린다.

봉희가 이번에는 오라비의 앞으로 대들었다.

"오빠, 오빠두 인정이 있구 의리가 있는 남자오? 이 새언니 를 첨버텀 얼마나 속을 태워주구 애를 먹여왔우? 난 누구버 덤두 잘 알구있으니까 말이지 그래 한여자의 반생을 두고 간장을 말리고 속을 지지리 태워주다가 뭐시 못맛당해서 리 혼을 허자는거요? 그동안 적지아니 은혜를 입어온 생각을 허기로서니 인제와서 리혼을 허자는 말이 순순이 나옵디 가?"

하고 오라비의 턱을 치바치듯 하다가 벌떡 일어나 인숙의 등에서 죽었는지 살었는지 숨소리쪼차 없는 일남을 부둥부 둥 끌어 나려놓고는

"자-다들 이애의 얼굴을 자세자세 들여다보서요 이 코ㅅ뿌 리허구 입모습허구 귀ㅅ바닥까지 똑똑이 보서요 그래 이애 가 다른놈의 자식이란 말오? 오빠 미술가니까 다른사람버덤 두 눈이 더 밝겟구려"

하고 일남을 안어 봉환의 눈앞에다 드리밀더니

"자 어머니두 아버지두 다같이 보서요 이애를 장가의 자식 이라니 바른날 벼락을 마질일이지"

하고 부모의 눈앞에다가 일남을 반듯이 눕혔다.

일남은 목구녁속으로 가래를 끌이며 자몽을 한 듯이 눈을 감고 있다.

자작은 안보는체 하면서도 겻눈으로 손자를 흘려보며 담배 를 퍽퍽 피우는데 할머니는 눈곱이 낀 눈을 부비며 손자의 얼굴을 요모조모 뜨더본다. 심지어 아들의 얼굴도 번차레로 치여다보고 나려다보고 하다가 슬그머니 대감의 무릅을 꾹 찌르며 의미있는 눈짓을 한다.

"그러자 자작이 피우는 독한 담배연기에 일남은 콜록콜록 하고 기침을 몹시 하다가 큰목소리로 울기를 시작한다.

"고만 좀 담배를 끄슈"

하면서 할머니는 어린애의 얼굴에 서리는 담배연기를 날려 주며

"어쩌자구 이 밤중에 어린걸 없구 돌아다닌단 말이냐"

하고 일남을 않으며

"우애? 아가 배가 곺으냐? 응 배가 곺아?"

하고 얼러준다.

十六[편집]

자작내외는 손자가 욕심이났다. 혈통이 끄칠지경으로 자손 이 귀한 집안이라 아비를 고대로 달믄 것을 보아 불의의 자 식이 아닌 것이 적확해지자 막내아들의 첫 번낳은 혈속을 자기네의 손으로 길르고싶은 생각이 불현 듯이 난 것이다.

파산을 당한뒤에 더구나 슬하가 고적한 두 늙은이는 자기네 가 죽기전까지의 위안거리를 삼기위해서라도 인숙에게서 손 자를 빼아서 하로밧비 재롱을 볼 생각은 굴뚝같건만 당장 ' 그애는 내손자니 두고가라'는 말은 참아 나오지 않는 눈치 다. 할머니는

"젖을 먹여야지 배가 납작허구나. 기저귀두 서젓는데 갈어 챌 것 갖어오너라"

하고 자기가 받어서 길러오든것처럼 일남을 안고 부산을 핀다. 자작은 눈을 딱 감고 수염을 나려쓰다듬으며 한참이 나 무엇을 생각하다가

"넌 나가있거라"

하고 아들에게 명령을 하였다. 그러지않어도 나종일은 어 찌되던지 그 자리를 빠저 나가려고 꽁문이를 들먹거리던 봉 환은

(옳다꾸나)

하고 일어서 밖으로 나갔다. 지금 그의 머릿속에는 어디서 든지 술이나 흠씬 마시고싶은 생각밖에 없다.

봉희는 속사포를 놓다가 탄환이 떨어진것처럼 열변을 토한 끝에 피곤을 느끼고 머리가 아픈 듯 이마를 집고 앉었는데 자작은 다시 담배를 부치며 인숙을 향하야 헛기침으로 목소 리를 가다듬더니

"얘야 알구보니 너를 볼 나치없다. 네남편이 왼만한 허면야 그런 창피한 말까지 떠돌았겠느냐 허나 네신수가 불길해서 그런 누명까지 쓴게니 어른들이 경솔했든건 용서해다구"

하고 진심으로 사과를 하더니

"사람이 한세상 살랴면 별별경우를 당허는니라. 그 편지만 해도 일이 공교롭게만 되느라고 내손에까지 들어와서......"

하고 셋재며누리앞에 백발이 성성한 머리를 숙인다. 늙은 안해는 대감의 말에 부연을 달 듯이

"그렇구 말구 여부가 있어오. 저애가 열네살버텀 우리집엘 들어오자마자 할머님의 병구완을 저혼자 했지만 참 정말 오 늘날까지 우리한테두 좀 극진이 했어요? 어느 친딸인들 부 모의 봉양을 그우에 더 어떻게한단 말슴요"

하고 봉희를 흘낏 보더니 인숙의 앞으로 닥어앉이며

"이애야 네 시아버니께서도 그렇게 간곡히 말슴을 하시니 오늘저녁버텀 예서 자구 전처럼 같이 지내자. 우리는 무슨 죄를 저ㅅ기에 저승길이 멀지않은 늙은이들이 이렇게 술하 쪼차 고적허게 지낸단말이냐. 난 이 어린걸 못내놓겠다"

하고 울상이 되어서 누가 채ㅅ드려가기나 하는것처럼 일남 을 끌어안는다.

인숙은 시부모의 간청을 못들은 듯이 여전히 고개를 떠러 트린채 대답을 아니한다. 자작내외는 몸이 달이서 번차례로 며누리더러 다시 들어오라는 것 버덤 손자를 맡어서 길르겠 다고 빌다싶이한다.

"인숙은 터질 듯이 아픈 머릿속으로 대답할 말을 곰곰 생 각해보았다. 그러나 아모리 호의로 해석한대도 십여년동안 이나 맺어오든 고부관계를 출처도 분명치못한 다만 한조각 의 편지로 말미암어 내어쫓인 뒤에 이제까지 생자간 돌아다 볼 생각도 아니하다가 자기네의 핏줄이 다흔 어린 것을 보 고서야 불시에 욕심이 동해서 손자하나를 얻기 위해서 저에 게 사과까지 하는 것이 아닐가? 저 자신을 중심으로 볼 때 목을 배어놓고 재를 뿌려주는 동정이나 호의로 밖에 생각이 되지 않었다.

어찌보면 그네들은 가난한 사람의 고혈을 빨아먹는 고리대 금업자의 같이 남이야 어찌되였떤제 리속만 차리는 것 같어 서 손자만 탐하는 시부모의 심ㅅ보가 몹시 밉기도 하였다.

한참만에 인숙은 돌아 앉이며

"이리 주십시오"

하고 두팔을 내밀었다. 시어머니는 조금 머뭇거리다가 젖 을 먹이려는줄만 알고 일남을 내 주었다.

인숙은 일남을 젖가슴에 꼭 끄러 않으며

"이 어린애 한테는 아무나 손가락하나도 대지 못헙니다"

하고 그제야 자작내외의 얼굴을 정면으로 보며

"제가 시부모만 뫼시고 살려고 이댁으로 시집을 왔든 것이 아니니까 다시 들어올수도 없고요. 저혼자 낳은 자식은 끝 까지 제손으로 길르겠습니다. 아무도 이애를 달라구 헐 권 리가 없으니까요"

하고 포대기를 둘러 일남을 안고 일어섰다.

十七[편집]

"아 자정이 넘었는데 어딜 간단말이냐"

"앉어라 앉어. 그러잖어두 몸이 더운 어린걸 데리고 이 춘 데 촉상이 되면..... 너 네정신이 아니로구나"

하고 시부모는 한사코 인숙을 부뜰었다. 그러나 인숙은

"염려마십시오. 갈사람은 가야만 헙니다"

하고 냉정히 한마디를 남기고 여러사람의 손을 뿌리치며 나왔다. 봉희까지 쫓아나오며

"어린애가 조심스러우니 하롯밤만 자구 가구려"

하고 만류를 하여도 인숙은 쌀쌀히 고개만 흔들며 고집을 세웠다.

"죽거나 살거나 어린것과 함께 하겠다"는 여모진 결심이 무언중에 곁에ㅅ사람에게도 보여서 시부모는 감히 손을 대 지 못하였다. 대문깐까지 나오자

"그럼 우리집으로 갑시다. 지금 삼청동으로 어떻게 올러간 단 말요"

하고 봉희는 저의집으로 인숙을 끌었다. 세철이가 집에 없 는 것을 안 인숙은 미상불 일남이가 염려가 되어서 마지못 해 봉희의 집으로 끌려갔다.

아직도 명의상 남편이란 사람의 태도가 웬만만하면 인숙은 하로저녁쯤 시집에서 잤을는지도 모른다. 원악 성치않은 것 이 그 치운 바람을 쏘이고 꺼둘려 다녀서 기함이 된 듯 울 지돔소하는데 아무대서나 하로밤 뜨듯이 재우고는 싶었다.

그러나 불과 몇시간전까지 죽일년 잡드리를 하고 못할소리 없이 펄펄 날뛰던 남편이란 사람이 누이의 말에 대답한마디 못하고 사추리에 머리를 틀어박고 앉었다가 꽁문이를 빼는 그 비겁하고 못나디 못난 행동에 꺼젔든 불이 다시금 인숙 의 가슴속에서 타올랐다.

남편과의 장래를 단념한지는 이미 오래지마는 봉희의 변호 로 청천백일 아래에 깨끗한 몸이 되었다 손치드래도 자선사 업을 하듯이 또는 개구녁바지처럼 일남을 그집에다가 들여 밀수는 없었다.

하로밤을 자면 이틀밤을 자게되고 사흘 나흘 붙잡히고 보 면 인제는 지내기도 말슴이 아닌 시집에서 다시금 문서없는 노예의 생활을 계속하게 될 것은 번한 사세다. 그러면 과연 제꼴이 무엇이 될것인가. 이제까지 그러한 환경에서 벗어나 기 위해서 죽을애를 써 온 것이 물거품으로 돌아가고 말것 이 아닌가. 남편이란 사람이 모든 것을 회개하고 마음을 잡 고 형식적으로나마 부부 생활을 할 희망조차 절망이 된바에 야 잠시 잠깐이라도 그집에 머므를 까닭이 없지않은가.

이런 생각을 하고 인숙은 두 번째 기어들었던 함정에서 빠 저 나온것처럼 몸서리를 쳤다.

봉희는 인숙의 모자를 아랫목자리에 눕히고는 불을 더 집 히고 들어와 저역시 몹시 흥분했던 끝에 머리가 아프고 몸 살이 날것처럼 오슬오슬해서 세철의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 었다가 잠이들었다.

인숙은 봉희보다 곱절이나 몸이 괴로웠다. 괴롭다느니보다 도 앞머리가 쪼개지는 것 같고 팔다리가 사뭇 송곳으로 쑤 시는 것 같어서 제몸이 어디와 누었는지 모를지경이다. 초 저녁부터 겪은 일이 저승에서 몇십년 부대낀 것 같어서 정 신이 들락날락 하는채로 잠이 들지를 않는다. 젖은 통통이 불었것만 젖꼭지를 대주어도 일남은 빨지를 않는다. 젖빠는 것을 잊어버린 듯이 입술을 다문채 어머니보다도 더 괴로운 듯 눈쌀을 찦으리고 할딱할딱 숨만 가쁘게 쉰다.

새벽녘에 일남이가 몹시 우는소리를 듣고 인숙은 깜짝놀라 눈을 떴다. 이마를 짚어보니 부닷듯이 뜨겁다. 온몸은 땀에 촉촉이 젖었는데 콜록콜록하고 기침을 한바탕 할 때에는 얼 굴이 새빨개젔다가, 숨이 막히는 듯 소리를 내여 시원히 울 지도 못하고 무엇에 놀라는 듯이 사지만 바둥거린다.

十八[편집]

일은 아침에 봉희가 끓여주는 콩나물국을 인숙은 입맛이 소태같어서 몇목음 마시는체만 하였다. 제몸이 괴로운 것 보다도 일남의병 때문에 걱정이 되어서 혓바닥에 백태까지 하얗게끼었다.

"내가 미첬었지 성치도못헌걸 어쩌자고 끌고 다녔든가"

하고 몇번이나 후회가 될 때마다

"누구때문이냐? 다 너의 아버진가 허는 사람때문이지"

하고 즉접 간접으로 봉환의 탓을 하지 않을수 없었다.

"열이 대단헌데 어서 약을 먹여야 허지않우?"

봉희역시 적지아니 염려가 되어서

"병원에 다려다 주리까?"

하고 교복으로 가러입는다. 남편은 없는데 혼자서 끓여먹 으랴 집을 지키랴 봉희는 학교에도 성실히 다닐수가 없었 다. 졸업시험이 며칠 안남었것만 그준비를 할 경황도 없이 그렁저렁 어수선하게 지내왔었다.

"고만두 내가 다녀오리다"

인숙은 봉희가 너무 애를 쓰는 것이 미안스러워서 흩으러 진 머리를 쓰다듬어 올리며 일어서는데 대문소리가 나더니

"누구 손님 오섰수?"

하고 세철이가 마당으로 들어선다. 그의 손에는 함경도 명 산인 정어리한두름이 들렸다. 봉희는 뛰여나가 남편을 맞어 들이며

"아 오늘이야 겨우 오서요? 밤차를 타섰군요? 어쩌면 엽서 한장두 안허구......."

하고 일부러 입을 뾰족이 내밀어보이다가

"혼자서 적적하길래 엇저녁엔 새언니허구 잤어요"

하고 남편의 구두를 끌르고 외투를 벗겨준다. 인숙과 세철 은 간단히 인사를 주고 받었다.

봉희가 아침상을 보려고 부엌으로 나려간 사이에 인숙은 일남을 안고 나왔다. 아직도 신혼의 단꿈이 깨지않은 두 젊 은 내외가 여러날만에 만났고 단간방에서 옷도 가라입고 그 동안 그리웠든 이야기도 하여야 할텐데 앓는 어린애까지 데 리고 한구석에가 우두커니 앉었을수가 없었던 것이다.

봉희는 그 눈치를 채고도

"그애를 또 안구 어딜가우? 여기 있으면 어떠우?"

하고 겉으로만 붙잡는체한다. 세철이도

"웨 그렇게 가세요? 이거 미안허군요"

할뿐. 실상 인숙의 모자를 붙잡기도 어려웠다.

"병원엘 데리구 가봐야겠는데 틈있건 올러오우"

하고 인숙은 병원에 다녀서 바로 삼청동으로 올라가겠다는 뜻을 보였다.

(아무래도 자기의 남편이 더 소중허지 나같은 사람이야.....)

하고 인숙은 될 수있는대로 빨리 두내외의 앞을 비켜 나왔다.

허의사가 아침을 먹는동안 인숙은 병원 대합실의 아직 피 지도않은 난로앞에서 삼십분동안이나 떨었다. 일남은 숨이 막히도록 폭 싸 안었는데도 목구년에 가래를 끓이며 신음하 는 소리가 들린다.

허의사는 진찰을 해보기도 전에 밤중에 어린애를 업고 돌 아다녔다는 말을 듣고

"아-니 어쩌자구 그랬단말요? 온 큰일 날짓을 했지 그러지 않어두 요새 독감 때문에 생떼같은 애들...... 온 그만 지각이 없단말요?"

하고 아이어머니를 나무러더니 한참이나 손을 부벼 녹혀가 지고 인숙의 앞으로 닥어앉더니 일남을 진찰해 본다.

체온기를 넣고 맥을 짚어보고 자꾸만 우는 입을 버려 혓바 닥까지 보고나서 조그만 가슴을 허치고 는 청진기를 대고 한참이나 듣더니 눈쌀을 찦으리고 찟저 쩠저 하고 혀끝을 찬다.

"어때요? 대단친 않어요?"

인숙은 전신의 신경을 의사의 입으로 모으며 떨리는 목소 리로 간신히 물었다. 허의사는 여전히 잠잣고 체온기를 빼 어서 수은주를 창에 비추어보고는 홱 뿌리치더니 천천히 머 리를 좌우로흔들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