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녀성/제7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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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貞操)[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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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들며 비가 왔다. 추녀끝에 다 삭어 떨어진 합석챙우 에 부딧는 밤빗소리가 요란하다.

『철아닌 비는 왜 올가 이렇게 방이 차서 어디 주무시겠우』

하고 인숙은 요밑에 손을 넣어보고 일어서 안부엌으로 들 어갔다. 그러나 땔나무라고는 불쏘시게밖에 없다.

『다달이 보내주는 나무는 안방에다만 처질터 땟나』

하고 인숙은 대문밖으로 나갔다. 마진짝 구멍가개로 손짓 을 해서 장작 두단을 들여다가 쪽마루밑에 쪼그리고 앉어서 찬 비를 마지며 불을 집는다. 늙으신 어머니의 쇠잔한 뼈가 차디찬 돌바닥에 얼어 붙을것 같어서 그대로 보고만 앉었을 수가 없었든것이다.

『얘야, 고만 둬라, 줄창 냉방에서 자는걸』

하고 어머니는 자꾸만 딸더러 들어 오라고 성화를 한다.

어머니는 더퍼놓고 참으라고는 하고도 딸의 일이 걱정이 되여서 눈을 붙일수없었다. 자기보다는 참을성이 많은대신 여모지고 결국한 딸의 성질을 잘 아는까닭에 사위에게 대한 마음이 졸연히 풀리지 않을것도 짐작이 되였든것이다.

(그애가 어느새 그런데 눈을 떠서 어떡허나. 한번 그런 버 릇이 생기면 졸연히 마음을 못 잡을걸) 하고 꿋꿋내 딸의 속이상할것이 애터러 웠다.

인숙은 불을 다 때고나서 몽당비를 들고 아궁이 언저리에 나무 부스러기까지 싹싹 쓸어 넣고 일어서는데 댓문 소리가 삐걱하고 났다.

(오빠가 들어 오는가보다) 하고 내다 보려니까

『새아씨 여기와 겝쇼?』

하고 싀어머니에게 말전주를 잘 하는 그 계집종이 비마진 쪽제비 꼴을 하고 들어온다. 인숙은 아궁이의 불빛에 비처 보고

『왼일이야?』

하고 물었다. 계집종은

『아이고 새아씨가 손수 군불을 다 때시네. 그런뎁쇼, 대감 께서……』

하고 가까히 닥어오더니

『어른헌테 간다 온다 말도 없이 친정으로 갔다고 걱정이 나립섰는데, 마님께서 완만허면 인력거라두 타구 오십시사 구 합셔서 왔습니다. 그러나 큰 걱정이 나리시면 어떡헙니 까』

하고 같이 가기를 재촉한다. 인숙은 방으로 들어가며

『나 안가. 몸이 아퍼서 예서 잘테야』

하고 문을 탁 다덧다.

가고 아니 가는것은 별문제로 치고래도 고자질을 잘하는 계집하인이 친정에까지 쪼처 온것이 여간 얄밉지가 않었든 것이다.

어머니는 밖에서 하는 말을 듣고

『얘야, 가거라. 속상허는 일이 있드래두 싀부모의 말슴까 지 거역허는 법이 어디 있니? 안가면 어른들헌테 불공헌 사 람이된다』

하고 떨니는 팔을집고 몸을 일으킨다.

『싫여요, 난 그집에 안가요! 누가 싀보모 바라구 쉬집엘 갔나요. 하나는 그지경인데 누굴보러 가란 말슴야요』

하고 인숙은 어머니 옆에가 쓸어저 버린다. 계집하인은 그 저 밖에서 비를 맞고 서서

『꼭 뫼시구 오라구 신신당부를 허섰는뎁쇼. 그러지 않어 두 아까 수복어멈이 들어와설랑 눈이 뒤집혔는지「겨울은 닥쳐 오는데 이렇게 없는 사람을 내쫓는 법이 어대있느냐」

구 마님께 더럭더럭 대들면서「그래댁의 아들이 헌짓이지 내가 그년을 붙어줬느냐」구 사뭇 몸부림을 했답니다 그래 서 대감마님께서……』

하고 주책없이 입을 놀리는데

『듣기 싫여! 입을 닥처두지 못허구……누가 여기까지와서 그따위 조동아리를 놀리랬어』

인숙은 듣다못해서 바람 소리를 질렀다. 한편으로는 안방 에서 그런소리를 들을가보아 여간창피스럽지가 않었듣것이 다. 그러는 판에 대문깐이 왁자짓걸하더니 두루미가 자락을 풀어 헤친 경직이가 인력거꾼에게 부축이되어 들어온다.

술이 진흙같이 취해서 헤갈을 하고 다니다가 인력거를 타 고 오기는 했으나 일력거 삭도 없이 무작정하고 탄 모양이 다. 래일 바드러 오라하거니 못허겠다거니 종문깐에서 한참 승강이를 하더니 경직이가 안방으로 들어가자

『돈이 어디있어요』

하고 무명을 찟는듯한 소리가 귀가 따갑게 들닌다.

인숙은 듣다 못해 마두끝으로 나가서 인력거삭을 달라는대 로 칠어 주었다.

경직이가 벌덕일어나 비틀거리며 나오더니 헤꼬부라진 소리로

『오, 윤집왔구나. 너마침 잘왔다 상덕은입어두 하덕은 없 다더니 난 가지 가지루 누의덕을 입으란 팔자야 허허허허.

그렇지만 나두한번 뽑낼때가 있다. 이걸 좀 봐』

하고 누의의손을 끌어다려 주머니에서 귀다란 봉투속에든 무슨서류와 지도 같은것을 끄내서 펴놓더니

『이게 광맥을 발견헌 지도란 말이다. 응 알겠니? 이게허 가만 나오면 너 금송아치 하나쯤이야 못사주랴. 그저 눈끔쩍허구 몇달 만 참어라. 너두 내게 아쉰 소리를 헐때가 있을지 누가 아 니 헛허허허』

하고 다시 누의의 손을 잡어다려 썩은 감냄새가 물큰 물큰 나는 입에다 부비댄다. 인숙은 오라비의 손을 뿌리치며

『인젠 오빠두 정신을 좀 차리서요!』

하고 한마디 매물스럽게 쏘아 붙이고는 건넌방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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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튼날 인숙은 싀집으로갔다. 싀아버지가 탈것까지 보 냈을뿐아니라 어머니가 밤새도록 달래고 타일르고 나종에는 빌다시피 해서

『어너닌 퍽두 성화를 허슈. 난 인젠 어머니헌테두 안올테 야요』

하고 마지못해 인력거를 탓든것이다.

『어둔밤에 사람두 안데리구 더군다나 간단 말두 없이 친 정엘 가는법이 어디 있느냐』

하고 싀부모는 뜻밖에 과히 걱정은 허지 않었다. 자기네 아들의 허물을 며누리에게 둘너 씨울수도 없거니와 항상

『무슨 일이든지 그저 무사 타첩이 제일이니라 하고 그 신 조를 직혀 오서 남들에게 태화탕이란 별명까지 듣는 싀아버 지가 이번일로 묵주머니를 만든 모양이다. 어쩌면 자기도 소시쩍에한 일이 생각이 나서 아들만 꾸짖을 용기가 나지 않었을뿐 아니라 남자에게는 그런일이 례사라는듯이 생각하 는지도 몰은다.

봉환은 또 어디로 갔는지 눈에 띠우지를 안는다. 제딴에도 제 색시의 얼굴을 대할 념의가 없는 모양인지 몸을 피한 눈 치다.

인숙은 동서들과 대면하기도 싫고 복순의 방에도 가기가 싫였다. 하인배까지 저를보고 소박댁이처럼 손가락질을 하 는것 같었다. 그래서 전깃불이 들어 올때까지 저의 방의 문 을 꼭닫고 앉어서 마음을 삭히너라고 바누질만 하였다. 봉 희가 학교에서 돌아와

『어쩌녁에 혼자 자느라구 아주 모서워서 혼났우. 쥐가 부 스럭거려두 가슴이 두근거리겠지』

하여도 인숙은 고개를 떨어트린채 싀누의말대답 조차 변변 히 하지를 않었다. 그러면서도 인숙은 봉환이가 또어디로 갔는지 궁금하였다.

(그 도화란 년허구 달아 나지나 않었을가) 하고 걱정이 되지않을수없었다. 둘이 손에 손을잡고 다니 는것을 상상만해도 입살이 깨물어젔다 불을 뿜어낸 화산처 름 마음이 조금 갈어 앉었다가도 문득 그 생각만하면 금방 가슴속에서 질투의 불길이 치밀어 올른다. 눈에 보이지 않 는 그불길은 짤막한 한숨으로나 몇방울의 눈불로는끝수가 없었다.

밤은 열시나 되었는데 별로 들어오지 않은 큰동서가 의미 깊은 우슴을 띠우며 들어왔다. 인숙은 조금 고처앉이며 여 전히 입을 다물고 있자니까

『자근 아씨 나좀 보』

하고 책상앞에 앉어 복습을 하는 봉희를 불러낸다.

(또 무슨일이 생겼나) 인숙은 버릇이 된것처름 또 가슴이 두근거렸다. 조금있자 봉희가 생글생글 우스며 들어오더니

『오늘버텀 난 딱지야』

하고 알엣목에 퍼놓았든 제이부자리를 것더니 마루로끌어 낸다.

『웬일이요? 자리를 가지구 어디로 가우?』

인숙은 발딱 일어나며 물었다. 봉희는 여전히 우스며

『사내 손님이 들어 오신다니깐 난 쪼겨 나여지. 새언니 잘 자우』

하고 힐끔힐끔 올케의 얼굴을 들녀다 보며 나간다.

『망칙해라. 사내 손님이 들어 오닥게』

하고 인숙이가 어리둥절해서 방문편짝을 바라보고 섰는데 큰 동서가 다시 들어오더니

『서방님 자리를 나려 깔게』

하고 알엣목을 가르치며 명령하듯한다. 인숙의 얼굴은 금 새 물감칠이나 한듯이 빩애젔다. 어쩐 줄을 몰라서 꼼짝도 못하고 섰으니까 큰동서는

『이건가? 이불보에 싼게 서방님 이불이』

하고 머릿장우에 싸어둔채 한번도 덮지 않은 자주빛 명주 차렵이불과 요를 끌어 나린다. 그 이주자리를 인숙의 자리 와 나라니 펴고 벼개까지 나려놓고

『첫아들 날 꿈이나 꾸게』

하고 나간다 큰동서와 교대해서 봉환이가 고개를 떨어트리 고 들어섰다. 그뒤에서

『어서 들어가 자거라 미거헌 자식같으니』

하고 봉환의 등을 밀어 방안으로 들려트리듯 하고 문을 닫 는것은 인숙의 싀어머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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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숙은 나무로 깍어세운 사람처럼 방 한구석에 가서 꼼짝 도 아니하고 섰다. 너무나 뜻밖에 일이다. 감정조차 나무때 기같이 굳어버린듯. 봉환이역시 어쩔줄을 모르고 인숙과 장 승처럼 마조섰다. 둘이다 고개를 들지못하고 눈이 마조치지 않으려고, 방바닥에 나란이 껄어논 자리만나려다본다.

봉환은 한참만에야 제 자리곁으로가서 펄석 주저 앉더니, 대님 허리띄만 끌르고는 이불속으로 들어간다. 이불자락으 로 얼굴을 뒤집어 쓰고는 달삭도 아니한다.

인숙은 봉환이가 덮고 누은 이불우로 시선을 떠려트렸다.

봉환은 자리가 거북한듯이 꿈틀 거리는대로 이불에 주름이 잡힌다. 몸을 바싹 오그린채 다리도 펴지못하는 모양이다.

인숙은 전등불을 바싹 비트러 껏다. 봉환이가 그러고 누은 꼴이 보기가 싫였든것이다. 그러고는 봉환과는 반대편으로 멀찌감치 가서 무릎을 얼싸안고 돌아 앉어서, 고개를 처들 고 아물아물하는 어둠속에서 눈을 커다랗게 떴다.

이제까지 아들이 며누리방에 들어가는것을 대기를하고, 조 금 오래만 앉었어도 큰일이나 날듯이 불러내든 시어머니가 아니었든가. 그 시어머니가 오늘저녁은 무슨 망령으로 싫다 는 아들의 등을 밀어가며 가축을 우릿간으로 몰아넣듯 하였 을가?

(하필 도화란년과 그런일이 있자마자 식구마다 짜가지고 들어와서 자리를 펴고 나가다니) (큰동서는 왜 나를보고 전에 없든 비웃는듯한 우슴까지 띠 우고 들어와서 자리까지 깔어주고 나갔을가. 인숙은 그 까 닭을 알기가 힘들었다) (아들이 무슨식을 다니며 허는지도 모르고 내버려 두었다 가 그년허고 가진 못된 작난을 다허든 사람을 억지로 붙잡 어다가 첫눈같이 깨끗한 내몸을 짓밟을 기회를 지어 주는 가) 생각할사록 인숙은 시어머니의 심사를 리해하기 어려웠다.

그러다가는

『옳-지 도화란년과 사이를 떼어놀양으로, 인제야나헌테 정을 붙이게 헐양으로 이런 수단을 쓰는게로구나』

하니 인숙은, 다시금 분통이 끓어 올랐다. 저에게있어서 이 세상에 다만 하나밖에없는 진주는 도야지 울이 속에서 굴르 지 않었든가. 그다지도 제품에 안기려고 하든 백옥같은 몸 둥이는 조고만 독사에게 칭칭 감겨서 그 깨끗한 동정(童貞) 의 피를 빨리지 않었는가.

(아아 그것이 누구때문이냐 안해인 나 이외인 여자에게 내 남편의 정조를 빼았기게 한것이로 대체 누구의 탓이야) 인숙은 시부모가 형용할수없이 미웠다. 이제 와서와 한번 더럽힌 진주르 억지로 제입을 어기고 물리려하고 이미 금이 간 보옥을 강제로 제품에다 안겨주려하는 시부모의 심사가 미웠다. 그네들의 심부름을 하고

『첫아들 날 꿈이나 꾸게』

하고는 놀리듯 하고 나간 동서까지 얄미워 젔다.

(이대로 앉어서 밤을 새면 고만이지) 하고 인숙은 봉환의 곁엣 자리에는 눕지도 않으리라 하였 다. 어떠한 수단으로든지 이집 식구들에게 봉환과 한방에서 자지도 않었다는 표적을 보여주리라 하였다.

인숙은 미닫이를 열고 덧문을 밀치고 툇마루로 나갔다. 졸 지에 밤기운이 차서 오싹하고 몸이 오그르젔다. 밖앝은 달 도 별도 없는 침침 칠야다. 인숙은 그어둠속에다 더운 한숨 을 내 뿜었다 천길이나 되는 바닷속같은 어둠이 제몸을 빨 어 들일듯이 좁혀드는것 같아서 졸지에 무서운생각이 들었 다. 봉희가 자는방으로나 가볼가하고 일어서는데 등뒤에서 달고 나온 미닫이가 푸시시 얼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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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숙은 찬물을 등어리에다 끼얹는듯 놀라서 두어깨나 옷삭 올라갔다.

『왜 그저 안자우?』

하고 문지방을 더듬으며 엉금엉금 기여 나오는것은 봉환이다.

봉환은 숨이 막힐듯이 갑갑한것을 참고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었으나 잠이 오지 않었다. 인숙이가 어떡하나 하고 귀를 기우려도 아무 기척이 없어서 이상스럽든 차에 문을 열고 나가는 소리를 듣고 (어디로 달아나지나 않을가) 하고 살그머니 일어나서 문을 얼었든것이다.

지난밤에 어머니가 걱정을 하든끝에

『그것봐라, 네가 그까짓 짓을하니까 네댁까지 몰래 도망 을 갔다』

고 하는바람에 슬그머니 겁이났든터이라, 그래도 제가한깐 은 있어서 저색시가 정말 도망을 가는줄알고 따러나간 모양 이다.

『춘데 들어갑시다』

그 목소리는 무엇이 속에서 끓어 다리는듯 들릴락말락하다.

『…………』

인숙의 꼭 담은 입은 봉해논것처럼 떠러지지 않는다.

『어서, 누가 또 보면 어떡허우』

봉환은 지난 여름에 별당뒤에서 할머니에게 들키든생각이 난 모양이다.

『…………』

인숙은 벽에가 기대서서 여전히 꼼짝도 아니한다. 봉환은 어둠속을 더듬어 인숙의 손을 찾아 쥐고

『어서. 감기 들우』

하고 응석조로 졸르듯 한다.

『놓세요!』

인숙은 제몸에 봉환의 살이 닷는것조차 징그럽고 꺼림찍한 듯이 손을 뿌리치며

『어서 들어가 주무서요. 누가 내걱정까지 허시래요』

하고 두어걸음 비켜섰다.

봉환은 무릎으로 기어가서 인숙의 다리에 매어달리듯 하며

『인젠 행랑방에 나가서 놀지 않을테유. 수복이 녀석이 자 꾸만 활동사진 처럼놀아보자구 계집엘 데리구와서……』

하는 목소리는 콧소리로 변한다. 어둠속이라 보이지는 않 으나 눈물까지 흘리는 모양이다.

『왜 남의 탓을 해요?』

인숙의 목소리는 여전히 날카로웠다.

『참 정말 이제 안그런다니깐』

봉환이가 어린애 처럼 매달려서 울음을 섞어가며 진심으로 저의 잘못을 뉘우치는것을 볼때아무리 여모지게 마음을 먹 었든 인숙도, 조금은 돌리지 않을수 없었다. 남편의 항복을 받고 다시 아니 그러겠다는 다짐을 받는댔자, 조금도 시원할것은 없 지만, 봉환은 얼마전까지 친동생처럼저를 따르지 않었든가.

제앞에서만은 아무것도 속이지 않든 사람이 아니었다든가.

그 사람이지 금 제앞에서 무릎을 꿀코눈물을 흘려가며 회개를하지않는 가.

인숙은 한참인 아랫입술만 지근자근 깨물고 섰다가

『먼저 들어 가서요』

하고 휘감긴 봉환의 팔을 풀었다.

인숙이가 조금 숙으러지는 눈치를 채인 봉환이는 두발로 기둥을 벗딩기여

『어이 추어, 나하고 같이 들어가야 잘테유』

하고 치맛자락을 잡어다린다.

인숙은 못이기는체하고

『이건 놓세요. 들어갈게시리』

하면서 끌려 들어 가 제자리우에가 곡 그라지듯이 쓸어졌다.

봉환은 덧문을 닫어걸고나서 그제야 마음이 놓인듯 부스럭 부스럭 옷을 벗더니 닷자곳자 인숙의 이불속으로 기어든다.

인숙은

『이건 내자리야요』

하고 봉환의 알몸둥이를 떠다 밀듯하는데, 봉환은

『왜 이 자리에선 못자우?』

하면서 슬그머니 인숙의 팔을 끌어 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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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숙은 참다 못해서 힘껏 봉환의 얼굴을 떠다 밀었다. 얼 떨김에 한손은 봉환의 턱미를 쥐어질렀다.

『이게 무슨 짓이야요? 내가 기생인줄 알아요!?』

하고 인숙은 발딱 일어나 옷묵으로 가서 쪼그리고 앉이며 할딱 할딱하고 갓분 숨을 몰아쉰다.

제입에 도화의 침이 무든것 같어서 혓침을 배앝으며 소매 로 입살을 북북 문질렀다. 어둠속이기에 망정이지 만일 불 이 환하게 켜진 다면 이순간의 둘의 표정이 과연 어떠하였 을가. 봉환은 한참만에야

『고만 둬!』

하고 한마디 별르고 나서는 제자리로가서 이불을 뒤집어 쓰고 누어 버린다.

인숙은 머리를 쥐고 뜯으며 울었다. 봉환의 귀에도 들일만 치나 소리를 내여 느껴울었다. 아마 두세 시간이나 계속해 서 울었스리라.

그러다가 극도로 흥분 되였든 마음이 조금 갈어안고 열병 에 걸려 펄펄 뛰는 사람처럼 몸이 식어가지 (내가 넘우 맵살스럽게 굴지나 않었나) 하고 봉환의 얼굴에 손까지 댄것이 뉘우처 젔다. 그러다가 어느날저녁엔가 복순이가 연애가 어떻고 결혼이 어떻다는 이야기를 허다가 이런말을 한것이 번개같이 생각이 났다.

『남자나 여자가 사람은 똑같은데, 왜 여자의 정조만 소중 히 녁이는지 몰라요. 어째서 남자는 결혼허기 전버텀 별별 짓을 다 해도 그것은 돌이어 례사로 알고 더구나 젋어서 오 입못해본 남자를 병신치부를 하면서 왜 우리 여자더러만 깨 끗하게 정조를 지키다가 제게다만 바치라니, 그런리기주의 (利己主義)가 어디 있어요? 남자가 안해되려는 여자에게 처 녀성을 절대로 요구 하는것과 마찬가지로 우리 여자들도 남 편이 되려는 남자의 동정(童貞)을 절대로 요구할 권리가 있 지요. 결혼한 뒤라도 남자도 여자와같이 마조 정조를 지켜 야 마땅허지 하면서 복순이가 주먹을 쥐든것과

『법율로 사내들이 제게만 편허도록 만들어 놓고 사회라는 것도 저이들끼리 살기좋게만 꿈여 놨으니, 세상에 그런 모 순(矛盾)이 어디 있어요? 남성에게 가진모욕을 다 당해가면 서 그저 죽여줍시사 허구 살어가는 우리 조선 여자야 말로 불상하지요. 노예와 한가지지요』

하고 얼굴에 핏대를 올려가며 분개하든. 복순의 말의 구절 구절이 생각났다.

『그렇지않구 그말이 옳지. 더군다나 누가 억지로 그런일 을 당한담』

하고 인숙은 제가 봉환에게 넘우 과하게 허지나 않었나하 고 뉘우첬든것을 다시금 뉘우첬다.

창틈의 문깍시는 깊어가는 가을밤을 울었다. 여자로 태어 난 설음과 참기 어려운 청춘의 오뉘(奧惱)는 인숙의 가슴을 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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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튼날 인숙은 집안식구 누구 앞에거나 얼굴을 들지못했 다. 남들은 예사로 보것만 인숙은 제얼굴을 보는사람만다 지난밤에 봉환이하고 격근일을 상상하면서 유심히 제 얼굴 만 처다 보는듯 여간 면구스럽지 않었다. 제몸에 처녀를 잃 어버린 무슨표나 불은것처럼 의미깊은 우습을 며우고 제아 플 지나가는 등서들이나

『새언니 얼굴이 밤새 환해젔구려』

하고 제얼굴을 빤히 처다보며 놀리는 봉희보다도, 시부모 의 앞에 서기는 더욱 부끄러웠다.

(누가 어쨌나. 나버텀 괜이 그런 생각을 허지) 하고 앉인대로 밤을 새워 눈이 빡빡하고 금방 쓸어질것같 이 조름이 폭 폭 오것만 조금도 피곤한 빛출보이지 않으려 고 머리를 더곱게 비섰다.

한편으로 시조모는 자기의 허락이 없이 합례를 시겼다고 펄쩍 뛰었다.

『나두 벌서버텀 그만 생각이 있어서 합당헌 일진까지 꼽 아놓고 앉었는데, 누가 제맘대로 그 방엘 들여보냈단 밀이 냐』

하고 며누리를 불러다 세워놓고 꾸지람을 하였다. 인숙은 아츰 문안을 들이러 별당으로 올라가다가 댓돌우에서 귓결 에 그말을 듣고는 되 돌아섰다.

『자근애가 그모양이니 정신들을 좀 차려야지. 제지각이 날랑 먼것을 가지구』

하고 나서 혀를 끌끌차는 소리까지 인숙의귀에 들렸다.

인숙은 시집은 뒤로 처음으로 그날은 시조모에게 아츰 문 안을 궐하였다.

봉환은 인숙의 존재가 제머릿 속에서 살어진것처럼 냉정해 젔다. 세수를 할때나 아츰상을 받고나서나 옆에 있는 인숙 은 거들떠 보지도 않었다. 지난밤일을 생각하고 무색해서 그러는게 아니라 마음속으로 인숙이가 미인진것이 확실하였다.

인숙은 전과 조금도 다름없이 시중을 들러주려 하것만 아 쉬운 일이 있으면 봉희를 중간에 놓고 심부름을 시켰다. 아 츰만 떠먹고 나가면 온 종일 지밀에도 들어 오지를 않는다.

인숙은 틈틈이 제방으로 들어가서는 울었다.

(내가 누구를 바라고 이집엘 왔기에 그러나) (어쩌면 계집애처럼 그렇게 소견이 좁을가 왜 걸핏허면 틀 리기를 잘해. 자기가 잘못한 생각은 손톱만치도 못허나봐) 하면서 체경속으로 제 얼굴을 빚어 보며 몇번이나 눈두덩 을 부였다.

그뒤로 시조모는 봉환의 감시를 더 엄하게 하였다. 혹시나 자기가 꼽아논 날자전에 또 색시 방에 들어기 잘가보아, 손 자를 초저녁부터 불러 들였다.

지난일은 어떠튼, 인숙은 봉환의 감정을 풀어 주려고 조용 이 이야기 할 기회를 엿보았다. 서로 소 닭보듯하면서 지내 가는것이 여간 마음괴롭지 않었든것이다.

(하로 저녁만 들어 와 자게 됐으면) 하고 시조모가 택일한 날자가 돌아 오기만 고대하였다. 이 번에는 어떠한 요구든지 들어 주리리 하였다.

그러나 그 기회는 졸연히 와주지 않었다. 날이 갈사록 봉 환의 태도는 점점 냉정해 저서 옆에만 가도 찬 바람이 도는 듯. 갈어입을 때가지나서 옷 주제가 사납것만 제방에는 발 낌도 아니한다. 그러나 그 반면으로 다행한일이 생겼다. 그 것은 봉환이가 죽어라하고 실여하든 공부를 하게 된것이다.

벌제위명(伐齊爲名)으로 하로 두어자례쯤 다녀 나오든 복순 의방을 자조 드나들게 되였고 한번 들어가서는 여러시간이 나 있다가 나오게되였다.

(인전 공부에만 착심을 하나보다) 하고 인숙은 봉환이가 제방에 자조 드나드는것보다도 복순 의 방에 오래 들어가 있는것을 돌이어 다행히 녁였다.

그러다가 어느날 저녁때였다. 인숙은 하도 울적 해서 (복순이 한테나 가서 이야기나 듣다가 올가) 하고 댓돌에 봉환의 신이 노히지 않은것을 보고 침모의 방 으로 나려가서

『뭘 해요?』

하고 살그머니 문을 얼었다. 인숙은 금방 얼굴이 흙빛이 되여가지고 얼른문을 탁 닫었다. 천만 뜻박에 제눈으로 보 지못할것을 보았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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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환이가 복순의 무릎우에 올라 안지 않었는가. 복순이역 시 봉환의 허리를 얼싸안듯 하고 있지않은가.

미다지가 열니며 들여미는 인숙의 얼굴은 보자 한몸똥이가 되였든 두사람의 얼굴은 뜨거운불이나 끼얹인듯이 화닥닥 떨어젔다. 사실 놀라움에 빛나는 인숙의 시선은 전기만치나 뜨겁고 찌르르 했을 것이다.

인숙은 너무나 뜻밖에 일에 정신이 앗득 하였다. 툇마루에 가, 쓸어질것 같은것을 간신히 지탱하고도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 어디로가야 좋을지 몰라서 잠시 쩔쩔 매다가 마진짝 에 부엌 문이 열닌것을 보고 그속으로 뛰어들갔다. 일시가 급하게 위선 제몸을 감추고싶었든것이다.

이번에는 눈물도 나오지않었다. 분한지 어쩐지도 물랐다.

그저 실신한 사람처럼 머-ㅇ 허니 어응한 아궁이속만 들여 다 보고 앉었기를 한참이나 하였다. 차차 제 정신이 돌자 찬물에 빠젔든 오리처럼 몸을 떨었다.

『난 꼭 죽어야해』

하는 한마디가 저절로 부르짖어 젔다.

(그런꼴을 또보고 어떻게 살어) (앞으론 무슨 욕을 더 당헡지 아나) 하고 부엌 천청에 가로 걸친 대들보를 처다 보았다. 산정 뒤에 충충헌 우물이 있는것을 생각하였다. 이팔청춘에 세상 자미란 털곳만치도 보지못하고 싀집살이 삼사년에 속만 무 진 태우 다가 급기야 생목숨을 끊고야말 생각을 하니 이가 빠드득 빠드득 갈렸다.

그러나 그 분하고 절통한것보다도, 목을 매달어 혀를빼물 고 늘어진 꼴이나 물에 빠저 퉁퉁불어오른 저의시체를 봉환 이와 복순이와 또는 도화의 눈앞에 보여주고 싶었다. 완고 하고 미신 덩어리인 싀조모와 싀부모에게도 보여주고 싶었 다. 즉어도 령혼은 살어있다니까 (그네들은 내 무참한 시체를 보고 어떻게들 할까) 하고 그 허는양을 보면서 한바탕 실컷 비웃어 주고싶은 충 동을 익일수 없다.

(아아 이젠 죽는길 밖에없다…) 인숙은 침침한 부엌속에서 다시한번 부르짖었다. 오즉제 목숨을 끊는 최후의 행동이 그들에게 대해서 유일한 복수의 수단이 될것만 같었다. 생각할수록 그못생기듸 못생긴 복순 이가 제남년을 끼고 앉었을줄은 참정말 꿈밖이었다. 그것은 도화와의 경우와도 달르지 않은가. 남편의선생이 복순이- 저에게는 그다지도 친절히 굴고 무어 한가지라도 아르켜 주 려고 애쓰 그진실헌 복순이가 아니었든가. 남편의 가정교사 라느니 보다도 선생이요 앞으로도 지도해줄 사람으로 역이 기 때문에, 싀어머니의 종의 딸인줄 알면서도 존대로 해주 고 제정성껏 대우를 해오든 사람이아니었든가.

(오-라 네가사내 생각이나서, 밤낮 한숨만 들이쉬고 내쉬 고 했구나) (내 남편이 해끄무레 하니깐 나허구 틀닌줄까지 빤히 알구 서 그 틈을 부벼 보려고 일부러 꼬였구나) 하고 인숙은 저의 추측이 틀림없으리라 하였다. 열길물속 은 알수있어도 단 한길 사람의 속은모른다는 말이 여기두고 마첬구나 하였다.

그런 생각을 할수록 요전보다도 몇갑절이나 분하였다. 거 의 본정신을 잃은 정도까지 다시금 흥분이 되였다.

부엌문 밖에서는 누가 군불을 때려고 들어오는지 신발 끄 는 소리가 가까히 들여온다. 머리를 쥐어뜯고 앉었든 인숙 은 기급을해서 발닥 일어서 누가 불잡으러 나오는듯이 부엌 뒷문을 열고 산정뒷곁으로 다름질을 하였다. 어떻게 왔는지 도 모르게 우물가에 까자왔다. 대여섯 길이나 됨즉한 우물 속에는 걸네나 빠는 더러운물이 충충하게 괴였다.

인숙은 당장 뛰여 나릴듯이 몸을 앞으로 숙이여 그 물속을 들여다 보았다. 그 찰나에 물속에서 어른어른 하고 떠 오르 는것은 눈물에 젖은 제 얼굴이 아니요 힌 머리 카락이 얼크 러진 초취한 어머니의 얼굴이다.

인숙은 제가 우물속으로 뛰여들면 어머니의 얼굴이 천조작 만조작에 깨여질것같다. 우물 전더구니로 한거름 더가까히 닥어서자 조그만 돌맹이 하나가 굴러들어가 풍당하고 빠젔 다. 찬바람이 쏴-하고 지나가더니 서리를 마저 누-래진 미 류나무 잎사귀가 인숙의 머리우로 우수수하고 떨어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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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대로 죽으면 어머니가 오즉이나 설어 하실까) 하고 인숙은 우물 언저리에서 두팔을 집구서서 돌맹이가 출렁거려 논 물속을 물끄럼이 보았다 생각해보니 이생에서 다만 한가지 못잊어지는것은 가엾고 불상한 홀어머니 한분 뿐이었다. 그어머니가 애절초절을 하시든끝에 아버지처럼 생목숨이라도 끓으시고 제뒤를 따러 오실것만 같어서 인숙은 (어머니 한테다 만지장서로 불초의 여식은 세상을 떠날수 밖에 없다고 설은 사정이나 쓸가) (이대로 즉으면 내가 어떠한 누명을 뒤집어 쓸지 누가 아 나) 하고 인숙은 고개를 떨어트리고 이러한 생각에 잠겨있는데 등뒤에서 억개를 가벼히 집는사람이 있다. 전신의 신경이 옴치라드는듯 놀라서 돌녀다보는 인숙의 시선과 마조친 것 은 야릇한 웃음을 띠운 복순의 넘적한 얼굴이었다.

『여기서 뭘 허구 섰어요? 저리루 갑시다』

복순은 인숙의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덮어놓고 팔을 잡어 끈다.

인숙의 감정은 다시 돌맹이를 던진 물결 처럼 출렁거렸다.

더구나 그따윗 짓을 하다가 들키고도 무안한빛이 없이 돌이 어 싱그레 웃는 그 얼굴은 여간 흉물스러워 보이지 않었다.

『놔요!』

소리와 함께 인숙은 잡힌팔을 힘껏 뿌리첬다.

『이럴게 아니라, 나두 헐말이 있으니 어쨌든 같이 들어 갑시다』

복순은 사뭇 강제로 인숙의 팔을 끌어다리다 못해 허리를 껴안고 떠나 밀면서 거름을 걸닌다. 인숙은

『왜 이래. 죽어봐 내가 들어가나』

하고 한사코 벗딩기며 발버둥질을 처도 남자처럼 억세인 복순의 힘을 당할수없다.

『저기 봐요. 마님이 나오시는구면』

하고 복순은 거짓말까지 해서 인숙을 억지로 끌고 제방으 로 들어갔다.

두사람 사이에는 한참동안이나 말이 없었다. 복순도 먼저 뭐라고 입을 열어야 좋을지 몰랐다

『보기 싫드래두 날좀 봐요 난 지금 새아씨가 우물에가 빠 저 죽으려고하는 그속을 잘 알고 있어요』

하고 처음으로 남들이 부르는 흉내를 내듯 인숙을 새아씨 라고 불렀다.

『소리없는 총이 있으면 나를 쏘고 싶도록 밉고 몹시 분허 게만 됐지만 그거 다 오해야요』

그 말을 듣자 인숙은

『저런 뻔뻔스런년좀 봐』

하는 말이 입밖으로 튀어 나오는것은 참었다. 복순이가 이 죽이죽 하고 말을 끄내는것이 저를끌 어다 앉처놓고 일부러 골을 올리는것 같어서

『듣기 싫다는데 무슨 여러 말이야』

하고 일어서다가 인숙은 또 붙잡혀 앉었다.

『글세 나허구 영영 원수가 되드래두 내 말이나 몇마디 못 들을게 어디있어요. 그동안 지내든 정분으로라두요』

하고 복순은 문을 막어 앉더니

『난 봉환씨와 도화란 겨집애의 관계두 알구요, 또 저번날 저녁에 봉환씨허구 한방에서 자면서두 봉환씨를 가까히 허 지못하게 헌것두 당자헌테 들어서 알고 있어요』

손톱여물을 썰고있는 인숙은 봉환이가 그런말까지 복순에 서 했다는 말에 얼굴이 확근해젔다.

『남의 일같이 않어서 나두 그 일을 만히 생각해 봤지요.

어떻게 했으면 두분이 원만히 지내게 될수가 있을까허 구…』

복순은 잠시 말을 끓고는 인숙의 눈치를 본다.

(그래서 제가 새중간에서 남의 사랑을 챗드렸다 말인가) 하고 인숙은 듣고 불사록 더 복순의 소위가 괘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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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이서 그러구 앉었는데 문을 펄석 열었으니까 내가 변 명을 한댔자 고지가 들리지 않겠지만 실상은 그런게 아니야 요. 보다시피 못생기기로 유명짜헌 나헌테 봉환씨가 정말 생각을 달니 먹고 덤비는게 아닌줄을 누구나 다 알게 아니 야요? 저런꽃같은 자기색시를 두구… 내가 아무리 이렇게 홀로 지내기로서니 그래 봉환씨를 유혹헐 여자두 아니구.

어쨌든 남자가 봉환씨 나이쯤 되면 얼거방이두 찍이방이두 천하의 미인으로 보이는때두 있는지 모르지만…』

하고 복순은 입모습을 끄러 올녀 그 독특한 우슴을 웃고 나서는

『원악 봉환씨 같이 귀족이나 부자집의 아들은 그런방면에 는 일즉 눈을 뜨나봅디다. 더구나 도화란 계집애 헌테 일테 면 실제 경험까지 어떳거든요. 그맘때는 여자라면 물불을 사리지 않고 맹목적으로 덤벼들때인데, 그런걸 억지로 떼어 놓았으니 가만이 있겠어요. 그래서 손을 대기가 어려웠든 자기 색시헌테 그 숭내를 내보래다가 뜻밖에 거절을 당하고 보니까 자기딴엔 어쨌든 분허긴 허거든요. 남자란 로소간에 그런 경우에는 제가 잘못한것은 아주 징어 버리나봅디다.

여자 같으면야 누구헌테 하소연두 못허구 꾹 참지만 사내콥 백이는 되려 반동심이 생겨서 마음대로 안되는 그여자의 눈 앞에서 일부터 다른 여자를 농락하는것을 즉접 보게하거나 그런 눈치래두 채게해 가지구 그 여자의 질투심을 밧작 일 으키게하거든요. 그런뒤에는 그 심리를 교묘하게 리용해 가 지고 거센첫 허는 그여자를 제 손아귀에다가 넣고야 만단 말슴야요 그것이 피를 내지않고 복수를 허는 수단이거든요.

내말을 알어 들으시겠어요? 그러길래 남자란 나이가 어려두 그런등사에는 맹낭허지요 여자를 다르는 재조만은 뱃속에서 타구 나오는 모양이야요』

하고 복순은 여전히 우스며 연방 인숙의 눈치를 흘끔흘끔 본다. 그래도 인숙은 오해를 풀지 못하는듯 알엣 입살만 자 근히 물고 앉어서 제 얼굴은 거들떠 보려고도 하지 않는것 을 보고

『쉽게 말허면 내가 팔자사납게 잠시 리용을 당했단 말슴 이죠. 나이가 사십이나 먹은 팔난봉의 후취노릇두 해 보았 구 이래뵈두 한참 당년엔 죽여주 살여주 허면서 따러 다니 는 남학생허구 연앳개나 해봐서 남자들의 심사를 대강이라 두 짐작허는 나니까 『흥 나를 리용해 보려는 거보구나』허 구 첫박세 눈치를 챌수가 없었지요』

여기까지 말을 하든 복순은. 인숙이가

『그런줄까지 알면서 왜 내남편허구 단 둘이 서루 끼고 앉 었었느냐 말야. 저두 내숭스런 생각이 들어서 그리구선 암 만 발뱀을 해봐 누가 고지를 듣나』

이리하고 속으로 그런 질문을 하고 있는것을 짐작한듯

『아니게 아니라 처음엔 호기심이 나서 봉환씨를 퍽 동정 허는 태도로 두분의 사이를 뭇기도 허구, 슬그머니 넘걱집 허두 봤드니 사실대로 다 토설을 허드군요 어째든 내소박을 맛낸듯 헌것이 몹시 분허기두 했든가 봐요. 『내 두구 볼 걸』허구 별르는 품이 대단 허길래 『여자란 피동적(被動的) 이 되여서 그런 동시엔 생각이 남자와 달르다』는 것과 정 당한 자기 색시에게 그렇게 강제적 수단을 쓰려구 들었으니 첨엔 어느 여자나 다 싫여 허지요. 그러니깐 아무리 부부간 이라두 서로 호의로 결합이 되여야 합넨다』허구 타일으기 까지 허지 않었겠어요. 아 그랬더니 내방엘 자조 드나들면 서 작구만 남녀 관계에대헌 이야기를 해달라는구려. 그러다 가 나를 어떻게 봤는지 그 어느 순간에 흥분이 되여서 그야 말로 내가 절세의 미색으루 보였든지, 도화란 계집애헌테 허는 숭내를 내려고 듭디다그려. 하두 어처구니가 없어서 잠간 허는모양을 보려구 허는대로 내버려두구 있는데, 일이 우습게 되느라구 마침 그때 문을 열었든 게야요』

하고 닥어 앉더니

『알구 보니 시원허죠? 그래두 오해를 풀지 못허겠어요?』

하고 복순은 인숙의 손을 덥석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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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두 설마 그렇기야 허랴 했지만……』

하고 인숙은 그제야 입을 얼었다. 자초지종을 듣고보니 똘 똘 뭉쳤든 마음 한구퉁이가 조금식풀리기 시작하는 모양이다.

『사실 내가 봉환씨를 꼬여내기나 했다면 그야 분허구 여 부가 없겠죠. 송편으로 목을 따구 두부로 배를 갈러두 시원 치가 않을노릇이지요 호호……』

복순은 일부러 인숙을 웃켰다. 인숙도 웃는것을 보이지 않 으려고 손등으로 입을 막었다.

『인젠 안심허서요. 그렇게 움물에가 빠지려고 허도록 속 을 상허게 헌 대신에 내가 중간에 들어서 좋도록 해 볼테 니. 어떤 수단을 쓰든지 그건 내게다만 마껴두서요. 틀니기 전버덤두 더 정답게 지내도록 힘을 써볼게요. 그렇지만 이 번엔 그렇게 쌀쌀스럽게 굴어선 안돼요. 다른 여자허구의 관계는 알면서두 모르는체 허는게 상책이거든요』

인숙은 (제발 그렇게 됐으면 오죽이나 좋을가) 하고 애원 하는듯 복순의 얼굴을 처다본다. 복순의말을 듣 고본즉 제가 오해를 했든것이 돌이어 부꾸러워서 다시 고개 를 처들수 없었다.

복순은 벌서부터 그런일로 속을 썩히는 인숙이가 새삼스러 히 가엽서 보이는듯 무룹이 마조닷도록 닥어 앉이며 자못 은근한 목소리로

『어느새버텀 그런일로 저렇게 애를 태우는게 다 누구 탓 인줄 아서요? 그건 봉환씨의 잘못두 아니구, 더구나 새아씨 의 불찰두 아니지요. 나는 벌서 버텀 이런 비극이 일어나기 시작허는 그까닭이 우리 조선의 결혼 제도-그중에도 조혼을 시기는 나뿐 습관때문이라구 생각해요. 이런문제는 우리동 지들 끼리는 벌서 토론을많이 했구, 그런 옛날의 묵은 제도 를 타파 허려구 애를 쓰는 중이지만 안직두 이 원수같은 결 혼 제도 때문에 한평생 희생을 당하는 여자가, 조선안에는 얼마든지 있어요. 위선 여기앉인 나버텀 그 피해자의 한사 람이지만 새아씨두 벌서한 목슬 끼게된게 숨김없는 사실이 지요. 남녀간에 나이가 지긋 해서 첫째 건강허구 이상이갖 구 취미가 맞구 경제적으로 자립을 해서 좋은 사업을 헐수 가있는 조건을 가춘 상대자라야만 비로소 결혼을 할것이라 는 것은, 오히려 둘째 셋째 문제이지요. 그보다는 맨먼저 타 파 해야 할것은 그 야만의 조혼 제도야요. 조선의 부모는 자녀가 장성허니까 합당한 이성(異性)과 배합을 시켜줄필요 가 있어서 혼인을 시키는게 아니라, 며누리나 손부를 보기 위해서, 즉 자기네의 노리개를 작만 허기위해서 또는 가족 의 구색을 마추기 위해서 콧물을 흘리는 것들을 성례라구 시키거든요.

더군다나 조숙하는 대신에 일즉 늙은 여자의 나이가 남자 조다 이삼년, 심허면 사오년이나 우인 경우가 많으니 그것 이 모든 가성비극의 시초지요. 이런귀족의 집이나 소위 양 반의 가정에서두 별별 추잡헌 일이 많이 생기지만, 가난허 구 무식헌 계급에 처헌 남녀 사이에는 그런일이 쉽게 표면 으로 나타나거든요. 왜 가끔 신문에두 나지 않어요? 과년헌 여자가 나어린 제남편과는 만족할수 없어서 외간 남자와 간 통을 허는것쯤은 되려 약과게요. 간부와 간부가 서로 짜고 서 본부의 밥에다 양잿물을 타먹이거나, 목을 매여 죽이고 꽃다운 청춘에 교수대의이슬이 된 여자가 여간 많지 않어 요. 일전에두 신문을 보니까 조선여자의 범죄중에 십분의팔 활까지는 남녀관계 때문이요, 더구나 여자로서 사형을 받는 것은 전부가 치정관계로 그런몸서리가 처지는 범죄를 허는 것인데 그런악독한 여자의 범죄가 많기로는 조선이 세계에 제일이라구 났드군요』

하고 저홀로 흥분이 되여서

『그나 그뿐인가요, 나이 어린 사내가 정말 부부의 생활을 허려는 때에는 그안해는 벌서 늙을 고비에 들지 않겠어요.

그러니까 무슨 짓이 든지 마음대루 헐수가 있는 자유를가진 남자는 외입을 허구 소첩을 얻게돼서 대대로 나려가면서 가 정비극의 씨를 뿌린단 말야요』

복순의 말은 점점 열을띠워온다. 인숙은 저녁문안을 들일 때가 지난줄도 모르고 전등불이 들어온뒤 까지 연애와 결혼 문제에 관한 복순의 열변에 귀를 기우렸다.

十一[편집]

그런일이 있은지도 한 보름쯤 지난뒤였다. 그날은 봉환의 오대조할아바지의 제사날이라 새로두시나 되여서 음복이 끝 나고 식수들은 각기 제방으로 헤여지는데 봉환의 어머니는 산정으로 올나가 자려고 가는길에 며누리의 방에 들렸다.

졸린것을 억지로 참고 제사참사를 하였다가 제방으로 들어 가 하품을 하며 도포틀벗는 아들을 보고

『너 그렇게 졸립건 여기서 자렴』

하고 나거더니

『할머니께서는 야기를 쏘이기 싫으시다구 지밀에서 주무 신단다. 봉희는 가서 할머니를 모시구 자거라』

하고는 역시 하품을 깨물며 막 자리를 나려 펴려는 딸에게 까지 일르고 나간다. 인숙은 동서들과 제기를 참겨두느라고 대청으로 찬마루로 왔다갔다하는 사이에 시어머니가 들어 왔던 것이다 봉희는

『내 옵바 자리 펴주리까?』

하고는 놀리듯 하더니 오라비 내외의 자리를 나라니 깔고 오라비의 얼굴을 살짝 흘려보고는 지밀로 갔다.

그 동안 복순은 몇칠을 두고 봉환의 마음을 풀어주기에 남 몰래 애를 썼다. 그날저녁 인숙이가 그닥지 냉정하게 군것 은 봉환의 잘못이 있었기 때문이라는것과, 그뒤로 인숙은 남편의 뜻을 쫓지못한것을 여간 후회 하지 않고 눈물로만 세월을 보내니 딴 생각말고 전보다도 더 의초 좋게지내야 한다는것으로 허풍을 처가며 누누히 타일르듯 하였다.

한편으로는 누구보다도 제말을 잘듣는 산정마님에게 그동 안에 지낸일을 이야기하고 그대로 내버려 두었다가는 아들 이 영영 마음을 바로잡지 못할뿐 아니라, 며누리까지 잃어 버리기가 쉽겠다고, 당장 무슨 일이나 날듯이 격동을 시켜 놓았던것이다.

그러나 인숙의 시어머니는 모발이 허연터에 자기의 시어머 니에게 꾸지람을 듣기도 싫고 도시 말성 스러운것이 귀찮어 서 기회만 엿보고 있었다.

제방으로 돌아온 인숙은 처음에는 시누의가 먼저 자나보다 하고 무심히 옷를 벗다가 제결에깔린 자리가 달른것과 발치 에 벗어논 옷이 봉환의것인줄 알고 놀랐다.

(이게 웬일이야) 하고 머리맡으로 돌아가보니 이불을 반쯤 뒤집어 쓰고 실 눈을 감고는 자는체 하고 누은것은 봉환임에 틀림없다.

인숙은 전날저녁에 봉환과 가치 지내던 생각을허니 새삼스 러히 가슴이 두근거리고 얼굴이 화끈하고 달었다.

(하필 제삿날 밤에…) 하고는 머리맡에 체경에 제얼굴을 비처보고 저고리 고름으 로 얼룩이가 진 곳등을 자근자근 눌르면서 장차앞에 닥처을 일을 공상하다가 (난 물라, 어떨허든지 인젠난 몰라) 하고는 살그머니 치마를벗고 제자리로 들어가려다가 (참 문두 안걸었네) 하고 단속곳 바람으로 일어나서 방문고리를 걸고 돌아와 봉환의 반대편으로 얼굴을 돌리고 누었다. 그러나 제가 문 고리를 걸려고 속곳만 입고 일어선 저의 뒷모양을 봉환이가 이불자락을 떠들고 더적질을 해 본줄을 알리가 없었다.

방안은 제가 쉬는 숨소리가 들릴만치나 고요해졌다.

인숙은 이제까지 느껴 보지못하던 야릇한 흥분에 몸을 가 늘게 떨면서 이불밖으로 하얀 이미만 내여민 봉환의 편으로 고개를 돌리며 쥐도 알어듣지 못할만한 목소리로

『주머서요』

하였다. 봉환은 일부러 꿈결에 어렴풋이 무슨 소리를 들은 것처럼

『으응?』

하고는 돌아 눕더니

『아니 눈부셔』

하면서 인숙의 이불 자락을 슬그머니 끌어다린다.

인숙은 벗어놓았던 치마로 앞을가리고 일어서서 전등불을 탁껏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