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녀성/제6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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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혹[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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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원의 달은 기우러 별만 총총한 밤이었다. 금강석을 부수 고 빠어서 가루를 만들어 끼언진듯 하늘바다는 완통 별투성 이다. 그 별들은 서로 눈을 깜작이며 깊은밤 우주의 신비를 속산이는듯 인숙은 그윽한 나무그놀에 몸을 숨기고 서서 그 찬란한 별 나라를 우러러 보았다.

(어쩌면 저렇게도 아름다울까) 하고 서늘한 밤바람을 마시며 가벼운 탄식을 뿜었다.

인숙이는 이집에 들어온뒤에 오늘 저녁처럼 하늘을 조용히 우러러볼 기회는 별로 없었다. 싀집에 오자마자 퀴퀴한 냄 새가 배인 병실로 응달진 방구석에만 가처서 그늘진 그날그 날을 보내지 않었든가. 인숙은 과천집 생각이 불현듯이 났 다. 달밝은 여름밤 안 마루에 걸터앉어서 당음을 외든 생각 이 났다. 달빛을 밟으며 뒷짐을 지고 안마당을 거니시든 아 버지 생각이 났다. 지금 바로 눈앞으로 왔다갔다 하시는듯, 아버지의 그림자가 어른거려서 눈을 감고 천천히 머리를 쳐 들었다. 동시에 외로운 감정이 인숙의 몸을 갈안개처럼 휘 감었다.

인숙은 졸차에 신변이 호젔한것을 느끼고 가벼히 몸을 떨 었다. 봉환이가 들어오는것을 정찰하려든것도 잊은듯이 별 하늘을 보고 잠시 황홀하였다가 제정신으로 돌아오자 (어디로 들어올지도 모르고……이러다 누가 보면 어쩌나) 하고 모기장을 발른 덧문창살로 불빛이 새어나오는 별당 앞으로 발자국소리를 죽이며 가벼히 걸었다.

별당에서는

『똑딱 똑딱 또드락 똑딱』

하고 조고만 목탁을 뚜드리는 소리가 들닌다. 구언끝에 달 린 붕어풍경이 미풍에 불며 댕그렁댕그렁 목탁소리와 함께 여름밤의 정적을 고요히 깨트릴뿐. 인숙이가 가만가만 발을 움기자니 별당로인을 모시고자는 여승이 그저 잠을 안자고 념불을하는 소리가 가늘게 새여나온다.

잘잘 끌리는 인숙의 치맛자락은 운현끝에 밟힐듯 침침한 추녀밑으로 별당채를 돌아나오는데 돌연히 등뒤에서

『쿠-ㅇ』

하는 소리가 들리자 땅바닥의 진동이 인숙의 몸에까지 울 렸다. 소리가 난편으로 홱 돌려다 보는 인숙의 가슴도 쿵하 고 나려앉었다.

담우에서 떨어진 허연것은 그자리에서 잠시 주저앉었다가 일어나 설설 기듯 해서 담을 끼고 뒷문편으로 돌아가더니 빗장을 밀고 고리를 벗긴다.

인숙은 젖가슴을 움켜쥐듯하고 기둥뒤로 몸을 숨기고는 한 쪽으로 엿을보려니까 문소리가 삐걱하고 나더니 선득 들어 서는 것은 갈데없는 봉환이었다. 먼저 담을 뛰어넘은것은 수복이가 틀림없다.

봉환은 수복의 귀를 잡어다려 무어라고 수근수근 하더니 층대로 올라서 별당 옷간문을 살그머니 열고 들어 가려고한다.

『에햄!』

하고 인숙은 봉환의 귀에 들닐만치 기침을 하였다.

봉환은 소소라치듯 놀라 몸을 움치러트리며 인기척이 나는 편으로 훠고개를 돌닌다 인숙은

「이리오라」고 손짓을 하였다.

봉환은 어둑침침한 공간을 뚫을듯이 들여다보더니 지밀로 통하는 일각대문에 달니 전등불빛으로 인숙의 윤곽을 짐작 하고 앞으로 닥어온다. 죄지은 사람의 거름거리로 한발자국 두발자국

『어딜갔다 인제 들어오셔요?』

인숙은 일부러 눈을 나려깔고 물었다.

『입때 안잤수?』

봉환은 망상거리다가 대답할말이 없는듯이 입속말을 한다.

『어디갔다 오셨느냐니깐요?』

인숙은 봉환을 똑바로 처다보며 가까이 닥어서자 봉환의 입에서 술냄새가 조금끼첬다. 술냄새를 맛자 인숙은 제가 술이 춰한것처럼 정신이 아찔하였다. 대번에 얼굴까지 확끈 하였다.

봉환의 머리는 점점 숙으러진다.

『술 잡섰구먼요?』

인숙의 목소리는 날카로웠다. 봉환은 이렇게 들킨바에야 더 속이지 못할줄 각오한듯

『우미관에 구경갔섰수. 연속사진이 무척 재미있어』

하고는 구두뿌리로 대똘밑을 굽질하듯하더니

『동무들이 목이 말르다고 작구만 맥주 한병만 먹자구 그 래서 빙수집에서……』

하고 사실대로 고해 받치는데

『덜커덕!』

하고 문을 열어 제치는 소리가 났다.

『게 누구냐?』

소리를 질르고 내다보는 사람은 인숙의 싀조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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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안에서 뜰아래로 쏟아저 나리는 전등불빛에 두사람의 그 림자는 사로잡히고 말었다.

『잠들 안자고 게서 뭣들을 허느냐』

시할머니의 꾸지람이 나리자 봉환은 층대로 뛰여올나가 방 으로 들어갔다.

홀로 남어선 인숙은 무어라고 대답을 해야 좋을지 몰랐다.

전등불빛에 또렷이 들어난 제몸을 갑작이 숨길수도 없고 시 조모의 내려쏘듯하는 시선을 피할 재조도 없어 제가 발을 부치고선 땅 바닥이 폭삭 꺼지기나 했으면 하였다.

시조모는 무어라고 중얼중얼 혼잣말을 하더니 덧문을 탁닫 었다.

(내가 괘니 나왔어) 하고 인숙은 발을 동동 굴렀다. 또 다른 사람에게나 들키 지 않을가 하고 담밑으로 바짝 붙어서 급히 지밀채로 들어 갔다.

제방에와 불을 끄고 누어서도 잠은 오지않었다. 봉환이가 활동사진에 반해서 저녁마다 담을넘어 다니는 것과 못된 동 무들과 얼려서 또 술을 마시는것을 알고 나니 어쨋던 궁금 증만은 풀렸다.

(수복이 녀석하고 둘이 짬짬이를 하고 댕기는걸 모르구서 뒤를 따러가 보라고 했으니 이를어쩌면 좋담 내가 헌 말까 지는 안했을가) 하고 적지아니 걱정이 되었다. 그보다도 별빛이 으스름한 밤쭝에 남편을 꼬여가지고 어둠침침한 후원에서 단 둘이 속 삭이다가 들킨 모양쯤 되었으니 내일 아침에 무슨 얼굴로 시조모를 대할가. 제가 꼬여낸것이 아니라고 발뺌을 하자면 도적놈처럼 밤쭝에 담을넘어 다니는 남편의 행장을 저저히 고해바처야만 할테니 그것은 더구나 헐수없는 일이 아닌가.

그러니 불가불나어린 남편을 유혹하듯해서 은밀한 짓이나 가르키다 들켰다는 혐의를 뒤집어 쓸밖에없다.

『오-ㄹ치 그래서 날마다 자정때나 돼야 들어와 잤군』

하고 시조모가 그런말을 시부모에게 나하면 제꼴이 어떻게 될가

『아이고 이를어쩌면 좋아』

하고 벼개에다 머리를 들부며도 시원치가 않었다.

두 눈이 뽀송뽀송하니 당초에 잠이 아니와서 별별 공상을 다 하다가 (이밤이 영영 밝지나 말었으면) 하였다.

이튼날 일은 아침 인숙이가 세수를 하는데 뜻밖에 봉환이 가 들어왔다. 인숙은 물묻은 얼굴에 수건질을 하며 일어섰다.

(무슨일로 이렇게 일즉암치 들어 왔을가 걱정을 단단히 들 었나보다) 하고 봉환의 기색을 살피다가

『엇저녁에 걱정들으섰죠?』

하고 먼저 묻지 않을수없었다.

『아-니』

하고 봉환은 고개를 흔들더니

『저-할머니가 둘이서 뭘했느냐구 그러시거든……』

하고는 한걸음 더가까히 닥어서며 인숙의 귀에다 입을대고

『봉희허구 공부를 허다가 졸려서 자는걸 여기서 자면 할 머니헌테 걱정을 듣는다구 자꾸만 깨가지구 억지로 데려다 줬다구 그러우 응』

하고 일르고는 뒤도 아니 돌아다보고 나간다.

인숙은 그제야 조금 마음이 놓였다.

(어쩌면 저렇게 능청스레 꾸며대기를 잘헐가) 하였다. 이번에는 다행히 모면을 하였거니와 다른때도 거 짓말하는것이 버릇이되면 어떡하나 하고 혼자서 고개를 흔 들었다. 인숙은 (그래도 걱정은 한번듣고야 말걸) 하고 아침 문안을 드리러 내키지않는 걸음 거리로 별당으 로갔다. 시조모는 눈을 지굿이 뜨고 손부를 쳐다보더니

『그애가 저녁마다 네방에서 늦도록 있다 오는 모양이니 공부를 허랴면 자근사랑이 있는데 하필 네방에서 허게하느 냐』

하고는 말을 멈추더니

『네 남편이 아직 철을 모르니 네가 조심을해라. 밤쭝에 숨어다니듯하고 숙덕어리니 아랫것들이 보드래도 모양이 됐 느냐』

하고 준절히 타일는다 인숙은 무어라고 대답할말이 없어 얼굴이 밝애가지고 물러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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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뒤로 봉환은 인숙의방에 자조 드나들지 못하게 되었다.

시조모가 며누리에게도 귀띰을 했는지

『인제버텀 자근 사랑에서 공부를 허고 일즉암치 할머니헌 테가 자거라』

하고 어머니는 아들을 불러서 일렀다. 인숙이더러도 들으 라는듯이 둘을 불러 나라니 세워놓고주의를 시켜서 인숙의 얼굴은 다시 한번 뜨거웠다. 그래서 이집의 어른들은 차츰 차츰가까워 지는 내외의 사이를 억지로 떼어놓았다.

인숙은 어른이 허는일이라 그다지 불평스러울것은 없었지만 (그래도 내가 뒤를 보아 주어야지 사랑에서 무슨작란을 허 는지 알기나 허시나 독선생을 앉혔대야 그건말뿐이지 당초 에 말을 안듣는걸) 하고 봉환의 신변에 주의를 겨을리하지 않었다. 「우미 관」이 어딘지도 모르고 활동사진이란 환등같은 것인가 보 다 하면서도 (그렇게 막 자미를 부친걸 억지로 못하게 하면 되나 실컨 보아서 실증이나면 고만 두겠지) 하고 어느날 인숙은 옷을 갈어입으러 제방에 들어온 봉환 을 보고

『구경을 가시려건 인제 그렇게 몰래 다니진 마서요 오실 때쯤해서 수복이나 행랑아범더러 가만히 문을열어 달라면 될걸요』

하고는

『그렇지만 또 술을 잡숫기만 하면 내 아버님께 여쭐테야 요』

하고 웃음을 띠우면서 슬그머니 겁이 날만치 얼려메었다.

『인전 구경두 못가우. 누가 돈을 줘야지』

하고 봉환은 입을 삐죽이 내밀며 볼멘소리를 한다. 지금까 지는 할머니의 주머니를 뒤지거나 청직이에게 찌그렁이를 부처서 잔돈을 얻어쓰다가 요새와서는 그것도 못얻어 쓰게 된 눈치다.

인숙은 한참이나 무엇을 생각해보고 나서 반다지를 열고 수주머니속에 꼭꼭 뭉처두었던 지전 한장을 끄내주며

『그럼 이걸 드리께 동무들을랑 끌고 다니지 마서요』

하고 넌즛이 봉환의 손에 쥐어 주었다. 봉환은「이게 웬떡 이냐」는듯이 얼른 지전을 집어넣고는 뛰어나갔다.

그뒤로 봉환은 인숙의 주머니가 화수분이나 되는것처럼 하 루 걸러큼 들어와서는「아이스쿠리를 사먹느니 돈치기를 허 다가 뺏꼈느니 하고 별별 핑게를 하면서

『삼십전만 주』

『오십전만 주』

『인전 또 안달랄께 응 응』

하고 사뭇 어린애처럼 졸랐다. 인숙은

『정말 이것밖에 없어요』

하고 나종에는 주머니 미천까지 톡톡 털어 주었다. 혹시 시부모가 화장품이나 사라고 주거나용돈 차레가오면 그것은 모도 친정에 갈때에 어머니에게 고기나 사잡수시라고 드리 고 왔었고 다음에 갈때에는 빈손으로 갈수가 없어 그동안 푼푼이 모아두었던것을 봉환에게 싹을 보였던것이다.

그러니 인숙의 주머니속이 넉넉할리가 없었다. 허나 인숙 은 참아 돈이 없다고 하기도 어렵고 봉환이가 내밀었던 손 을 부끄러운듯이 옆구리에 찔르고 돌아서나가는것도 보기에 딱해서 나종에는 봉희의 사천까지 늘여주마고 꾀어서는 봉 환이가 구경을 가고 작란감을 사는것같은 객적게 쓰는돈을 대어 주었다.

그럭저럭 여름 방학이 다가고 새학기가 닥처오는 어느날이 였다. 아침뒤에 봉환이는 대문밖에서 행랑아이들과 뛰염박 질을 하다가 별안간 무엇에 놀란듯 질겁을해서 안으로 뛰여 들어갔다. 인숙의 방문을 호닥닥 열고 들어서며

『아무헌테두 나 여기 있다구 말허지 말우』

하고 손을 내저어 보이며 세간을 들여논 반침속으로 들어 가 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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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환은 저의 반의 담님선생이 오는것을 먼 발치에서 흘깃 보고 선생에게 붓잡히면 큰일이나 날듯이 거름아 날살려라 하고 뛰여들어가 숨은것이다. 돗수기픈 무테 안경넘어로 생 도를 노려보는 그 선생의 눈이 사같과같이 무섭고 마조 보 기가 싫였든것이다.

나이가 삼십남짓한 봉환의 담님 선생은 주인 대감과 인사 가 끊난후

『학교 당국에서 정성것 생도를 가르키는 것은 물론이요.

자기 역시 다른집 자제와는 달러서 한학기동안 무진애를 써 가며 자제를 지도했으나 낙제 점수를 마진과정이 서넛이나 되어 도저히 보아줄 여지가 없어 미안하였다.』

는것과

『그러나 본시 자녀의 교육은 학교에서 뿐아니라 가정에서 더욱 주의를 해서 규측적으로 복습을 시켜야 좋은 성적을 얻을것인데 말슴하기는 어려우나 댁에서는 귀한 자제라고 너무 방임을 하시고 제마음대로만 하는 습관을 길러주섰기 때문에 선생까지 초개처럼 없우히 역이고 당초에 말을 듣지 않는데야 손을 대여볼도리가 없다』

고 해서 봉환의 성적이 나쁘고 조행이 좋지못한것을 가정 교육이 글러서 그렇다고 뒤집어 씨웠다. 그러고는 끝으로

『그러나 도화 한 과목에는 천재가 있으니 찰아리 그 방면 의 공부를 일즉암치 전문으로 시기 는것이 문제가 조금도 걱정이없는 자제의 처지로는 장래를 위해서 돌이어 좋은 방 도일뿐 아니라 인제는 미술가도 상당한 사회적 대우를 받는 다』

하고 나서 할말은 다했다는듯이 주인이 권하는 차도 마시 지않고 일어섰다. 자작은 지체가있는 자기앞에 절도 아니하 고 닷자곳자 담판이나 하려는듯 빳빳이 달려드는 선생의 태 도가 자못 교만해서 젊은 사람에게 모욕을 당한듯 불쾌하였 다. 슬며시 네가 가정교육을 잘못시켰다는것과 남의 자질을 맡어서 가르치는 학교의 즉접 책임자로서 제가 담님한 학생 의 성적이 불양한 책임을 전혀 학부형에게만 뒤집어 씨우고 저만살짝 빠지려고 하는데 분개하였다.

그뿐아니라

『학교에는 암만 다녀도 공부를 잘할 싹수가 보이지 않으 니 애진작 그림공부나 시켜서 환장이로나 내세우라』

하고 충고까지 하고 일어서는데 대감의 처지로서 매우 자 존심을 상하였다.

『온 아니꼬운놈 같으니. 별꼴을 다 보았다. 그래 네놈의 학교가 아니면 보낼데가 없다드냐』하고 일종의 반동심 까 지 생겼다.

『봉환이 어디 갔느냐 당장 찾어 오너라』

하고 애꾸진 상노에게까지 역정을 내었다.

인숙의방 반짐속에서 땀을 흘리며 숨어 앉었는 봉환은 아 버지앞으로 꺼들려 나왔다. 자작은 언성을 높여

『너 이놈 이담 학기 버텀 학교 고만 두어라. 이목구비 멀 정헌 자식이 왜 남만치 공부를 못하고 아비까지 욕을 뵈느 냐』

하고 눈을 부르뜨며 호령을 하었다. 봉환은 고개를 떨어트 리고 섰다가

『이게 왼땡이냐』

는듯이 안으로 뛰여들어갔다. 무슨 걱정을 듣든지 그당장 만 모면하면 고만이라는듯이 다른식구들을 보고는 부끄러워 할줄을 몰랐다.

대감은 그것만으로도 화가 풀리지 않어서 밥만먹으면 낮잠 으로 세월을 보내는 가정교사라는 명색을 불러세우고

『자네두 인젠 가게. 사람이 염치가 있지. 남의 자식을 맡 어가르친다고 그지경을 만들어 놓고 무슨 낯작을 처들고 내 집에 밥을 먹는단 말인가』

하고는 당장에 가정교사를 내보냈다. 원체 식객비슷한 대 우들받은 가정교사는

『흥 자식이 무슨짓을 허는지도 모르면서……안되면 조상 탓이라구 어디 어니 놈이 와서 잘 가르치나 보자』

하고 두덜두덜 군소리를 하며 집을 쌓다. 어버지와 담임선 생과 가정교사가 서로 책임을 떠다미는 서슬에 봉환은 아조 굴레벗은 말이 되고 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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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이 다녀간지도 일주일이나 되었다. 진종일 마당에 나 려쪼이든 볓치 산정의 누마루 난간으로 기어올라 유리창이 눈이 부시도록 반사하는데 안으로 통한 협문으로 여학생같 은 젊은 여자가 들어온다. 인숙은 알엣채 툇마루에서 침모 와 미조 앉어서 아버지의 모시 두루마기를 다리다가 그여자 가 들어 오는것을 정면으로 보았다.

그 여자는 양산도 들지않고 옷보통이 같은 책보를 꼈는데 툭툭한 검정 모사치마를 입었다. 굽이 다달은 구두를 신고 조금 절늠거리며 들어온다. 댓돌앞까지 들어오니까

『어서 오너라』

하고 산정마님이 반색을 하며 발을 걷어 올리며 난간으로 나온다. 그 여학생이 들어간지 한참만에야 시어머니는 큰 며누리를 불렀다.

『이얘가 오늘버텀 와있게 됐으니 침모가 쓰는 방아랫간을 치우고 거기서 거처를 하게해라』하고 일렀다. 인숙의 맛동 서는 시앗을 보아 심화도 낫거니와 고질인 속병이 도저서 그동안 거진 달포나 누었다가 일어나서 살림을 보살핀지가 며칠 아니되였다.

인숙은 싀어머니의 분부대로 뜰 아랫방을 치우라고 일으려 고 나려온 맛동서를 보고

『그 여학생이 누구예요?』

하고 물었다. 큰동서는 전에도 몇번 그여자를 본듯

『참 자네는 오늘 첨 받겠네그려 어머님하고 친정에서 동 무처럼 같이 자라난 계집종의 소생이라네』

하고 하치않은 여자라는듯한 눈치다. 인숙은 (나허구 점녜허고 자라나듯 허섰든게로군) 하고는

『여학생같어 보이든데요』

하고 다리미에 부채질을 하며 동서의 말을 자어 내었다.

용환(봉환의 큰형의이름)의 댁은 재티가 날러오는것을 피해 서 방으로 들어가 문지방을 격해 앉이며 산정편을 흘깃보고는

『그 계집종이 기집애 쩍에 동내 총각녀석허구…… 그래서 난 것이라네. 사내놈은 소문이나 니깐 겁이나서 도망을했대.

그러니 아비두 없이 자라난 셈이지 먼가. 어른들이 행실부 정한 계집애년을 집에 들수없고 배가 불른 기집애를 내쫒이 시는걸 마침 어머님께서 서방님(둘재아들을 나으시러 친정 에 가섰다가 인생이 물상타구 말리섰드라나. 그러군 몰래 밥그릇까지 끼고 다니면서 먹이섰다네』

『어머님께서 아주 은인노릇을 허셨군요』

하고 인숙은 동서의 논치를본다. 침모도 종일 다림질을 하 느라고 하품만 나든차에 이야기꺼리가 생겨서 흥미있는듯 기우린다.

『그러니깐 오늘 온 학생이……』

『그렇지, 바로 이름도 모르는 총각놈의 딸이야. 이제나 저 제나 어머님이 어린애를 좀 귀어허시남. 그래서 그 어린애 를 아람치로 삼어 길러 주시다싶어 허섰는데 그뒤에두 노상 그계집애를 못잊읏서 모녀를 먹여 살리섰대. 그렇다 그 어 미가 딴 서방을 해가서 친덕군이로 자라는걸 학교에까지 너 주섰는데』

『그래서 학교엘 다 댕겼군요?』

『들어보게. 그러나 나이가 차니깐 어느시골 토반의 후취 로 들여보내 주었드니만 아 고만 얼골이 박색이라구 소박을 맞구 왔드라지』

『그래서요?』

인숙과 침모는 다리미에 옷이 눗는지도 모르고 이야기하는 사람의 입만 처다본다.

『그러니깐 그게 벌서 한사년됐나보이, 그때 어머님께와서 나두 곁에서 봐섰네. 그래설랑 어머님이「이왕 봐주든터이 니 혼자 살어도 굶어죽지나 않게 공부나 시켜주마」허시구 마지막 소청을 들으서 고학생 무슨 회라든가 하는데 댕기게 허섰네 그려. 아마 작년봄에 졸업을했지. 생김생김은 한군데 보잘것이 없어두 속은 여간 똑똑허구 영악허지가 않대. 제 근본은 그래두 우리헌테두「아씨」소리를 잘 않는다네』

하고나서 용환의댁은

『남의 이야긴 해 뭘허나』

하고 한숨을 쉬더니

『그것만 다 대리거든 방이나 말끔 치어놓게』

하고 침모보고 일르고 일어선다. 인숙은 (팔자가 퍽 사나운 여자로근) 하고 혼자 고개를 끄덕이다가

『그럼 어디 선생노릇이라는두 헐텐데 여긴 뭐허러 데려다 두신대요?』

하고 물으니까

『모르겠네. 낸들아나. 쓸데없는 식구 작만만 작구허시니 까』

하고 큰동서는 시어머니가 하는일이 못맏당한듯이 돌아서 다시 산정으로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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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튼날 아침 인숙이가 문안을 들이러 산정으로 올라가니까 시어머니는 옷묵에가 고개를 숙이고 앉은 그 여학생을 턱으 로 가르치며

『넌 첨 보리라만 이애는 내가 길러내다 싶이했다. 인제버 텀 한집안 식구처럼 지내라』

하고나서

『석재 아씨허구 인사해라』

하고 며느리를 소개한다. 여학생은 반쯤 몸을 일으키며 음 푹한 눈으로 흘깃 인숙을 쳐다보고는

『박복순이예요』

하고는 도로 고개를 숙이고 툭툭한 광대포 적삼의 앞섶을 만진다. 인숙은 남은 이름을 대는데 무어라고 할지 몰라서 잠자코 머리를 조금 숙이는체 하였다. 복순이란 여자를 가 까히 보니 나이는 스물서넛이나 된듯 살결이 검으스름하고 젖가슴이 버러진것이 튼튼하게는 생겼으나 손발이 상스럽게 큰것이 맨먼저 눈에 띠였다. 기름이란 한번도 발러보지 못 한듯한 머리털은 주황빛이요. 코는 찌그러진듯이 넙적한데 두꺼운 옷입술은 건순이 저서짧은인중을 말어올렸다. 어느 모로 뜯어보아도 여자답고 어여쁜 구석이라고는 한군데도 발견할수없다. 그러나 동서에게 복순의 과거를 대강들은 인 숙은 속으로 (어쩌면 여자가 저렇게 생겼을가) 하고 복순의 외양을 숭보기전에 (어려서버텀 고생에 찌들어서 저렇군. 아비없는 딸자식이라 고 구박만 받고 기를 펴보지 못하고 자리서 저모양인가보 다) 하고 먼저 동정심이 갔다 시어머니가 무엇을 하려고 데려 왔는지는 모르나 (이 큰집에서 우리 식구를 이 사는걸 보니까 기가 줄어서 저렇게 머리를 떠러트리고 앉었담) 하고 마조 보기가 계면쩍었다.

시어머니는 양철간죽에 쇠털같은 서초를 담으며 그는 요새 로 봉환이 때문에 화도나고 심심해 견딜수가 없다는 핑계로 양추질을 해가며 담배를 배우는 중이다.

『봉환이가 학교엘 안댕기게 된걸 너두 알겠지?』

하고 묻는다.

『네』

『그러니 집에서 놀릴수야 있니? 선생이란 오는 족족 낮잠 만 자다 나가구…… 그래 이번엔 여자면 좀 어려워할가 해 서 저애를 일부러데려왔다』

하고 방바닥을 더듬어 석냥을 찾는다. 인숙은 잠자코 담배 통에 불을 그어 대였다. 그러나 속으로는 (하필 종의딸을 데려다 내 남편을 가르처 주다니) 하고 조금 놀랐다.

(여자라구 되려 없인여기구 더 말을 안들으면 어떡허누) 하고 복순이가 봉환과 입씨름을 하다가 구박이나 마질 생 각을 하니 벌서부터 걱정이 되었다. 무슨일에나 무심한 시 어머니가 그래도 아들의 공부를 다잡어시키려는 (실상은 시 어머니가 핑rPt김에 자기부치를 데려다 먹여 살리려는것이 지만) 생각을 한건만해도 다행한 일이었다. 시어머니는 봉환 을 불러다 세워놓고

『오늘버텀 저애를 선생으로 알구 하루 두차레씩만 글을 배라』

하고 타일르듯 하였다. 아버지도 그렇지만은 어머니는 더 군다나 아들이 무엇을 배워야하고 어느 정도로 공부를 시켜 야 할지 모른다. 다만 막연하게「공부」를 시킨다는 것으로 부모의 의무를 다한듯이 만족하고 독선생을 앉첬다는것으로 남에게 자랑을 삼을뿐.

봉환은 전에도 몇번 본듯한 복순의 얼굴을 흘금흘금 쳐다 보드니 누마루편으로 휘적휘적 나가면서

『난 싫여. 그까짓 여편네헌테 누가 글을 밴담』

하고 군소리를 한다. 마루끝에 섰든 인숙은 복순이가 그 말을들었을기 보아 얼굴이 발개 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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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순은 온지 며칠안돼서

『중학교과정은 배우기는 했어두 여학교와 달러 어려워서 못 가르치겠어요』

하고 옷보통이를 꾸르지 시작하였다. 평생 신세를 지은 주 인이 신신부탁을 하고 이기회에 만분의 일이라도 그신세를 갚어보려고 복순은 제성미를 죽이고 가르처 보려했으나 당 자가 뜻밖에 저를 깔보고 책을 떠드러보기도 싫여하는데야 제 재주로는 어떡할수가 없었든것이다. 그러면인 숙의 시어 머니는

『그애가 어디갔느냐. 어서 불러 오너라. 그래두 네말은 듣 는모양이니』

하고 며느리를 꾸짖듯한다. 인숙은 새중간에 끼어서 얼쩔 줄을 몰랐다. 피해다니는 봉환을 붙잡고

『그렇게 어른의 말슴을 안들으시면 큰 걱정 나게요. 그사 람이 무안해 할생각도 허서야지요. 어서 가서 앉었기라두 허세요. 네 얼맛동안 배우는척 허다가 가을에 다른 학교에 들어 가면 고만일걸요』

하고 빌다싶이해도

『죽어두 싫다는데 왜 자꾸만 가라구 그러우. 그까짓 여편 네가 뭘안다구』

하고 막무가내로 뻗딩기며 말을 아니 들으면 인숙은

『난 몰라요. 나두 여편넨데 그런 말슴이 어디 있어요?』

하고 일부러 얼굴을 붉히고 톡 쏘아 부치며 돌아섰다. 그 러면 봉환은

『제-기. 별년의걸 다 데려다놓구……』

하고 두덜거리며 푸주깐으로 들어가는 황소걸음으로 공책 을 끼고 산정으로 간다. 이래저래 인숙에게는 쥐어 지낼수 밖에 없고 그만 제댁의 말을 아니 들었다가는 아쉬운 일도 많은 터이라 봉환은 울며 겨자먹기로 인숙의 말을 듣는것이 다. 그래서 복순의 앞에가 앉었다가 나오는것이다 그러는것 을 보고 시어머니는

『인젠 그애가 공부에 재미를 부치나 보다』

하고는 공부를 너무 허면 복중에 휘진다고 하로 걸레큼 연 계를 고아서 복순이까지 먹인다. 그것은 제자식을 먹일 젖 을많이 짜어내기 위해서 유모를 잘 먹이는것과 다를것이 없 었다.

복순은 천생이 그러 한지 무엇을 보나 도모지 쓰다달다 말 이없다. 언제나 첩첩한 근심에 싸인듯 웃는 얼굴은 볼수가 없다. 산정 뜰아랫방에서 침모들과 같이 자면서 신문을 갔 다가 보고 잡지나 책만 들여다 본다. 그러다가는 북창문지 방 턱을 고이고 오락 가락하는 구름을 쳐다보고 앉어서 한 참씩 공상을 하다가 땅이 꺼지도록 한숨을 쉰다. 어려햇동 안 버릇이 된듯 일어서다가도 한숨이오 앉으면서도 한숨이다.

『젊은 사람이 저렇게 청승스레 한숨만 쉬니까 팔자가 사 납지』

하고 첨모나 안짬이 입을 비쭉거리는것을 인숙은 몇번이나 보았다.

인숙은 틈만 있으면 복순의 방을 드려다 보았다. 복순은 인숙을 쳐다만 보고 들어 오라는 말도 아니하건만

『무슨 책을 그렇게 착심해보서요? 재미있는 소설이야 요?』

하며 들어가면 복순은 보든책을 뒤로 감추며

『그저 심심 소일로 보지요 하고「네가 보면 무슨책인지 아느냐」는 태도다.

인숙은 나도 쉬운것은 알아본다는듯이

『나 좀 봐요?』

하고 감추는 책을 떠들어 보았다. 새빨간 표지에 눈에 서 투른 글자로 박은 책인데「가다까나」로「뿌르조아」니「푸 로레타리아」니 하는 글자가 거진 장장이 눈에 띠웠다. 그 러나 인숙은 읽기는 해도 그 처음 보는 글자가 무슨뜻인지 몰라서 알고도 싶건만 물어보려고도 아니하였다.

그러다가 어느날 저녁이였다. 인숙은 시어머니의 분부로 아무도 모르게 복순의 옷한벌을 해가지고 그것을 책보에 싸 들고 복순의 방으로 건너갔다. 복순은 혼자 아랫목에가 앞 드렸다가 일어난다. 불빛에 얻듯 보기에도 눈두덩이 푸석푸 석 한것이 울고있었든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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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 몸이 거북해요?』

인숙은 옷보재기를 등뒤로 밀어놓며 물었다. 복순은 푸석 푸석한 눈두덩을 부비며

『속이 좀거북해서요?』

하고 인숙이가 가지고 들어온 보재기를 흩깃돌려다 본다.

인숙은 그것을 끌어다려 끌으며

『저 어머님께서 갈어입으라고요』

하고 옷을 끄내놓았다. 조금 굵기는해도 모시 적삼과 치마 며 속옷까지 일습을 얌전히해서 차곡차곡 개켜가지고 온것 이다.

입은 옷 한벌밖에 없는 복순이었만 그닥지 고마워하는 눈 치도 보이지않고

『미안 허구면요. 이렇게 신세만저서……』

하고 옷을 떠들어 보지다 않고 밀어 놓는다.

인숙은 남이 이틀동안이나 더위를 참고 앉어서 재봉틀과 씨름을 해다바친것을 몸에 대여보는 체도 아니하고 밀어놓 는데 조금 무색하였다. 처음부터 생색을낼 생각은 없으면서 도 조금 실쭉해지며

『어디 바누질 솜씨가 있어야지. 본보기도 없이 눈어림만 치고 해서 맞지 않을것 같은데』

하였다. 복순은 그제야 제옷을 인숙이가 손소 지어가지고 온줄 알었는지

『온 별말슴을 다……앨써해도 주신거니까 잘맞겠지요』

하며 다시 옷을 끌어다려 적삼 소매와 치마기리를 입고 앉 은옷에대여 보는체 한다.

『난 가나오나 남의 신세만 지라는 팔잔지. 입때 내손으로 는 옷 한벌 변변히못해 입었세요. 그래 이걸보니까 괘니 맘 이 좋지 않어서……』

하고 말끝을 아물리지 못한다. 복순은 저의 태도가 너무나 무뚝뚝 했던것을 뉘우치고 부지중에 저의 속생각을 하소연 하듯 한것이다. 인숙은 일부러 생글생글 웃으며

『이까짓 옷한벌에 뭘 팔자 논란을 다 해요? 팔자가 좋길 래 바누질 안허구두 입게되죠』

하고 반쯤은 집짓 명랑한 웃음을 지어 웃었다. 복순도 따 러서 옷는척하며 노상 찦으리고 있는 양미간을 펴보인다.

복순은 처음 인숙을 볼때 그다지 호의를 갖지못했다. 아직 도 애티가 벗지못했는데 커다랗게 머리를 쪽진것이 눈에 서 툴렀다.

(저 어린사람을 벌서 혼인을 해서 시집사리를 시키다니 너 도「노라」의 후신이로구나) 하였다. 한편으로는 인숙이가 몸가지는거나 긴치마를 잘잘 껄고 다니며 나이가 갑절이나 되는 아랫사람들에게 따라지 게「해라」를 허거나 반말로 불벌을 하는것을 보고는

『흥 너도 양반의 딸이로구나. 귀족의집 며누리로구나』

하고 일종의 적개심(敵愾心)과 같은 감정으로--즉 계급의 식의 색안경을 쓰고 인숙을 흘려보았다. 그러다가 차차 두 고볼스록 인숙은 이집의 큰며누리나 다른 식구들처럼 마음 이 교만해서 사람을 깔보거나 업신녁일줄 모르고 아직도 처 녀다운 순진한 마음을 잃어버리지 않은것을 발견할수있었 다. 사람이 영리하고 누구에게나 친절할뿐아니라 매사에 녑 녑한것은 볼때에 (이런집 구석에서 인형노릇을 시키기는 아까운걸. 학교에나 다녀서 새로운 교육을 받았으면장래 한몫을 단단히 볼걸 그 랬어) 하고 차츰차츰 인숙에게 호감을 갖게되었다. 그와 반대로 봉환이가 공부는 비상같이 알고 자란에만 눈이 벌건것을 보 고는

『저걸 남편이라고……너도 속상헐날이 멀지 않었다』

하고 인숙을 동정도 하였다. 아직도 대문밖을 모르는 인숙 이가 저의 처지를 이해하고 가엾이 녁이는듯한 눈치를 볼때 복순은 자격지심과 모욕을 느끼면서도 두여자의 마음이 나 날이 가까워지는것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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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오기 전에는 점녜밖에 말동무 하나도 사괴어 보지못하 였던 인숙은 생후 처음으로 복순이와 교제를 해보가 된것이 다. 남편의 가정교사라는데 무조건하고 호의를 갖거니와

『저렇게 공부를 헌 여자와 잘 사괴면 배울것이 많겠다』

하고 틈이 있는대로는 복순과 가까히 지내보려고 하루도 몇번씩 산정 아랫방으로 드나들었다 복순이가 이집에서 거 처하기에 조금도 불편한것이 없도록 해주려고 애를썼다.

인숙은 저녁뒤에 다시 복순의 방으로 찾어왔다. 복순이가

『나두 심심허니 저녁마다 놀러 오세요』

하였던것이다. 봉환은 식전과 저녁때에 겨우 삼십분쯤 다 녀 나갈뿐이라 방속에가처 앉어서 책만 들여다보며 긴긴해 를 보내기는 너무나 지루하였다.

그러나 둘이 서로 만나면 피차에 무어라고 불러야 할지 몰 라서 여간 거북허지 않었다. 복순은 이집에 다른 식구들처 럼 인숙을 새아씨라고 부르지않었다. 주인 마님의 종의 딸 이면서도 마님소리가 나오지 않어서 아쉬인때에야 마지못해 마님이라고 부른다. 봉환이도 새서방님이라고 부르지않고

「봉환씨」라고 그나마 씻자도 부치는둥 마눈둥해서 불렀다.

인숙이 역시 면대해서 복순의 이름을 부르기가 거북했다.

경우에 따러 그저 어물어물 하여왔다.

복순은 보던책을 접어놓며

『참 이름을 뭐라고 부르서요? 임대 이름두 몰라서』

하고 묻는다. 인숙은 수집은 태도를 지으며

『난 이름 없어요. 아명밖에는……』

『그럼 자근아씨나 새아씨가 이름이 됐군요?』

『그런 셈이죠』

『민적엔 뭐라고 든지 적혔겠지요?』

『그것두 몰라요. 아마「아기」나「간난이」라고나 적혔겠 죠』

하고 인숙은 상글상글 웃는다. 「방울」이란 별병같은 아 명은 알으켜 주기가 부끄러웠던것이다.

(인숙이란 이름은 혼인한지 다섯해 뒤에야 결혼신고를 할 때 임시로 지어서 개명신청까지 한 이름이다) 인숙은 꼭 알고 싶어묻는것도 아니면서 말을 자어내기 위 해서

『박복순이란 이름은 민적 이름이겠죠?』

하고 물었다. 그말을 듣자 복순의 고개는 숙으러졌다. 얼굴 까지 조금 붉어지는것을 보자 인숙은 (괜시리 그런 말을 물었나보다) 하고 금방 뉘우치며 무안에 취해서 마조 머리를 숙였다.

복순은 무슨 생각을 골돋히 하다가 한참만에야 얼골을 들며

『내「이름」좋지요? 박복순!』

하고 제 이름을 한숨섞어 불러보더니

『내 신분엔 꼭 알맞는 이름이지요. 가지가지로 박복헌 나 헌테 박복순이란 이름이 붙어 댕기니……』

하고 임모습만 조금 끌어올리며 쓸쓸해 웃는다.

인숙은 무어라고 말대답을해야 할지 몰라서 눈을 나리깔앗 다가

『웨 시위스럽게 그런 말을 해요? 끝엣 글자가「순」자 니 까 앞으로는 아주 순하게 운이 터질걸』

하고 위로하듯 한마디를 꾸며 대었다.

『난 그런 앞날의 운수도 바라지 않어요. 내 팔자가 이렇 게 사납다구 탓을 헐사람두 없으니까……』

『참 집엔 아무두 없어요?』

인숙은 알면서도 물었다.

『난 어머니 얼골도 모르구 자라났다우. 더군다나 어버지 는 누군지두 모르구……민적에두 내 이름이 빠젔으니깐 일 테면 난 조선사람이 아니구 땅에서 솟았거나 하늘에서 떨어 진 사람이죠. 그렇지 않어요? 그래서 내 떨거지라고는 이세 상에 하나두 없으니깐 여간 홀가분치가 않거든요』

하고 복순은 그 두틈한 입살을 말어 울려 누루스름 한 닛 발을 들어 내며 웃는다. 그러나 그 표정은 웃는것이 아니라 울려는것 같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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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숙은 이야기를 끓고

『있다가 저녁에 또 오께요』

하고 일어섰다. 부질없이 이런말 저런말을 끄내서 복순이 가 가장 쓸아리고 아퍼하는 상처르 일부러 건드릴까닭이 없 었든것이다.

『나두 저녁 먹구는 어딜좀 것이었다 와야 겠어요』

하고 복순은 방을 치우기 시작현다. 인숙은

『동무집에?』

하고 다리하나를 문지방에 걸치며 물었다. 복순은

『글세요』

하고 고개를 꼬며말을 할가말가하고 망사리는 눈치더니

『일주일에 서너번뭐 우리끼리 모이는 회가 있는데 내가 책임자니깐 무슨 일이있는지 꼭 가야 만해요. 여기온 뒤에 두번이나 빠저서 동지들헌테 여간 미안허지가 않어서……』

『무슨 횐데?』

『그건 차차 알지요. 참 어머님께나 다른 식구에겐 그런말 을 마서요. 그저 각갑해서 동무집에 다녀온다구 나갔다구만 그러서요 꼭이요』

하고 뒤를 다지는품이 (공연이 너헌테도 그런말을 입밖에 냈구나)하는 뉘우침도 섞인듯.

『염려 말어요. 난 입때꺼정 남의말을 해본적이 없으니깐.

그렇지만 그대신 밖에 재미있는 소식이 있으면 들려줘야 해 요』

하고 인숙은 안채로거너갔다.

복순이가 무슨 회에를 다니는지 궁금도 하고「동지」란 말 도 처음 들었기 때문에 동무를 동지라고도 불르나 보다하고 인숙은

『동지 동지?』

하고 입속으로 외이면서 저의 방으로 들어갔다.

사실 복순은 여자 사상당체의 대표 기관이라고 할만한 XX 회의 간부요, 서무부의 책임자였다. 어제까지 무슨일이 생길 때마다 앞장을 서왔다. 남보기에 생색이 나는 일은 사교부 나 교양부의 사회적으로 일흠이난 여자들이 하것만 복순은 일테면 그회의 부억떼기 노릇을 해왔다. 남이 먹을 음식을 만들어 주면서도 제 몸은 부억속에다 숨기고, 다른 사람이 먹고 난 뒷 설거지를 해주는것 같은 허드레 일을 해주는것 이었다. 그런일을 삼년동안이나 아모 불평이없이 충실하게 하여왔다.

아모리 모양을 내지않는 주의자라도 용모와 체격이 아름답 지못한 저 자신을 잘아는터이라 번접하게 나다니며 여러사 람앞에 제 꼴을 보이고 싶어도 않거니와 실상 저보다 공부 를 많이하고 외국까지 다녀와서 사교술이 능난하고 수완이 있는 지도자들의 앞에서는 머리가 들려지지 않었든것이다.

또 한편으로 다소 인숙의 싀어머니의 도음이 있었다 하드 래도 낮에는 책이나 화장품을 팔러 소갈데 말걸데없시 길거 리로 쏘다니고 그것도 셈이자라지 않으니까 나종에는 남의 빨래까지 해주고 학비를 얻어, 간신 간신 이 공부를 하였다.

그 회에서 경영하는 강습소에서 중학교과정까지 기를 쓰고 마첬든것이다.

그러나 그 회의 비밀한 일이나 중요한 문서는 복순을 신용 하고 맡기는 터이라 회관에서 숙직을하고 있으면 무상시로 여간 귀찮게 구는것이 아니어서 아모도 모르는곳에 몸을 숨 기고 있을데를 찾어다녔다. 그러다가 마침 인숙의 싀어머니 에게 청하다싶어 해서 윤자작의 집에다 은신을 하게 된것이다.

또는 귀족의 집에 가정교사로 들어갔다는것도 어느정도 까 지는 방패막이도 되였든것이다. 그래서 가정교사라느니 보 다는 흖해서 지천을하는 이입의 밥을 얻어먹어가면서 일종 의 호신술(護身術)로 당분간 ○○궁에 숨어있었기로 한것이다.

사실 그회의 회원들중에 참정말 빈한하고 미천한 계급에서 나타난 여자로는 복순이가 대표자 였다.

『박복순이야 말로 알토란같은 우리의 동지야』

『어쩌면 그렇게 고생을 많이했것만 누구헌테나 조금두 굽 히지를 않거든 우리 회에 꼭있어야 할 진실한 일꾼이지』

하는것은 남자 욋딴치게 농갈치기로 유명한 그회의 위원장 이 복순을 어루만지는 말이었다.

그 바람에 복순은 걸핏하면 며칠식 공밥을 먹고 나오는것 을 자랑삼어 지내왔다.

十一[편집]

어느듯 가을이 되였다. 삼방으로 피접을 갔든 봉환의 자근 형이 돌아온지도 오래요, 자근동서는 또 아들을 낳어가지고 와서 집안을 떠들석하게했다.

그래서 싀부모가 자근 며누리를 위해받치는 품이 대단하것 만 인숙은 저혼자 쓸쓸하였다.

아침 저녁으로 겨드랑이로 숨여드는 바람이 쌀쌀해서 새정 신이 돌고 뒷겻 화단의 국화나무며 장독대 뒤의고목들은 잎 사귀가 누-렇게 바래서 며칠아니면 우수수하고 마당가득이 떨어질것같다.

담밑에 욱어젔든 풀닢이 시납없이 시들어가는것을 볼때마 다 인숙의 마음은 서글폈다.

인숙은 뛸안으로 통한쌍창에 기대어 날로 소조해가는 밖았 을 내어다보며

『아아 얼마 않었으면 저나무들이 가지만 앙상하게 남겠구 나』

하고 처량하고 외로운 생각이 들어서 눈을 나려감으며 나 즉이 한숨을 쉬었다.

저혼자 의지할곳이 없는것 같어서 하염없는 눈물이 핑돌기 도 여러번 하였다.

더군다나 깊어가는 밤 창밖에서 뒤설레는 바람소리를 들으 며 흘로 앉어서 바누질을 하려면 고단한 생각이 온몬을 엄 습해서 몸써리가 처젔다.

불을 끄고 누으면 으스름한 달빛에 실녀 담을 넘어 들어오 는 이옷집의 다듬이 소리가 바람결을 따러 어렴푸시 또는 똑똑이 벼갯머리에 돌닌다.

인숙은 그 소리가 듣기싫어서 손가랄으로 두귀를 막어도 본다. 그러나 이번에는 한층더 견디기 어려운 외로운 감정 이 마음속에서 분수(噴水)처럼 솟아 올르는거야 어찌하랴

『남편이라고 근처도 솜오게 하고 밤낮 싀뉘하고만 살라구 싀집엘 왔나』

하다가 (저렇게 아모 생각두 없이 씩씩 잠이나 잤으면) 하고 봉희가 부러웠다.

몸을 엎치락 뒤치락하고 잠을 못일우다가 발닥 일어나서 불을키고 복순에게 빌려온 책을 들여다 보기도한다. 그러나 다른 생각이 앞을 가려서 글자는 눈에 들어가지 않었다. 그 래서 몇번이나 불을 켰다. 누었다 일어났다 다시 누었다 하 였다. 그래도 야속하게도 잠은 와주지 않었다.

인숙은 판에 박은듯이 변화가없는 단조로운 생활에 그만 넌덜머리가 났다. 아모리 참고 지내려고 애를써도 가슴속의 그 무엇이 버지지처럼 꿈틀거리는것을 억지로 눌리기에도 인제는 힘이 지첬든것이다.

그럴때면 인숙은 우밤중이라도 복순의 방으로 갔다. 복순 이도 그때까지 잠을 자지않고 책을보거나 그렇지않으면 밤 기운이 쌀쌀하것만 툇마루 끝에가 귀신처럼 쯔그리고 앉어 서 무슨 생각을하다가

『그저 안잤구려』

하고 서로 인사를 하는것이었다.

복순은 인숙을 곁에앉치고 세상 형편이며 제가 믿어오고 저한몸을 받치랴는 주의에관한 설명을 알어듣기 쉽게해서 들여주었다. 연애나 결혼문제 같은것도 가끔 끄집어 내였다.

제가 책을서 보고 남에게서 들은대로 되풀이 하듯 하기로 하고 어떤때는「인형의집」이라는 연극 이야기도 해서 들려 주었다. 때로는「에렌?케이」란 서양여자의 사상이 어떻다 는 것도 어려운 시체 문자를써가며 열심으로 강의를 하듯하 였다.

그러나 인숙은 은연 중에 복순의 감화를 받어가는것이 사 실이면서도 복순의 이야기를 알어듣고 이해하기는 어려웠 다. 귀여운 자식을 셋이나 버리고 다러난「노라」의 심리를 알수 없어서

『그런 매정한 어미가 어디있담. 줌생두 제 색기를 귀여허 는데』

하고 돌이어 남편되는「헬머」를 동정하였다. 인숙은 무엇 보다도 봉환이가 근자에는 무엇에 반한 사람처럼 제방에도 잘 들어오지않고 저와도 서름서름 해 가는것이 걱정이었다.

봉환이가 가을 학기에 남들과같이 새바람이 나서 학교에도 못다니는것이 여간 분허지가 않은 데 제게 조차 냉정해 가 는것을 볼때 모든것이 설고 야속 허기만 하였다.

(왜 나허고도 틀렸을까?) 하고 곰곰 생각을 해보아도 도모지 그까닭을 알수없었다.

그러나 어느날 저녁때였다. 봉희가 뛰어 들어오더니

『아 옵바가 산정 다락속에가 갔첬구려』

하고 눈동자를 굴니며 수선을 부린다.

十二[편집]

『아 왜?』

하고 인숙이도 눈을 희동구렇게 뜨고 물었다. 그러나 봉희는

『누가 아우. 또 밤중에 담을 뛰어 넘다가 들킨게지 어머 닌 화가 잔뜩나서서 아무 말슴두 안허시구 다락엔 근처두 못가게 하십디다. 아마 아버진 모르시나봐』

『그럼 다락에가 가친줄은 어떻게 알었수?』

『침모가 날보구 귓속을 허겠지』

『그럼 점심두 굶으섰겠구려?』

『배두 좀 고파봐야지 학교에두 안댕기구 그렇게 밤낮 작 난만 허구서 걸핏하면 날만 으박질르다간 가처두 싸지 뭘』

하고 입을 삣죽거리는것이 돌이어 고소하게 여기는 눈치다.

봉희의 태도가 그처럼 냉정하니 종아리를 마질때처럼 구원 을 청할수가없어 인숙은 어찌했으면 좋을지 몰랐다. 잘잘못 간에 남편이 진종일 다락속에가 감금을 당하고 있다는데 모 른체하고 있을수는 없지 않은가.

(또 누구허구 상없이 쌈을허다가 상처를 냈나?) (복순이 허구 그-예 드잡이가 났나? 복순이가 지각없이 마 조 대들진 않었을텐데……) (노 어어 하고 아들을 떠받들기만 허시는 어머님이 여간해 서는 그렇게 화를 내시지 않으실테데……) 하다가 (어쨌던 산정으로 가서 눈치나 봐야지) 하고 일어섰다. 남편이 가끔 벌을 당하는것은 오히려 다행 이 생각도 되지만 점심을 굶은것이 가엾었든것이다. 그러나 맨손으로 가기가 무엇해서 봉환의 솜두루막이 하든것을 싸 들고 될수있는 태연한 걸음거리로 갔다.

시어머니는 양미간에 내천(川)잣를 쓰고 앉어서 자기앞으로 지내가는 며느리를 흘깃보고는 담배통이 욱으러저라하고 잿털이를 뚜드리며 다시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

인숙은 버선등만 나려다보며 기다란 난간을 휘돌아아래채 로 나려갔다. 누마루를 지나갈때 등뒤에서 창살을 똑똑 뚜 드리며

『문 좀 열어주』

하고 봉환의 목소리가 들리는듯해서 잠시 발을 멈추며 다 락편을 흠끔돌아다 보았다. 그러나 굵다란 덧문창살이 촘촘 이 꽂인 다락편에서는 인기척이 없다.

『고만 허기가 저서 지처 늘어젔나보다』

하니 시어머니의 허는일이 너무 가혹한것 같았다.

인숙은 침모의 방문을 열고 들어서며

『저-서방님 다녀 나가섰나?』

하고 넌짓이 침모에게 물었다.

복순은 돌아앉어 편지를 쓰기에 골목해서 돌려다보지도 않 는다.

솜반을 짓고 있든 침모는 인숙의 치삼자락을 잡어다리며 복순의 편으로 눈하나를 찌긋해보인다.

『앗불사 복순이는 모르는 모양인데』

하고 인숙은 침모의 눈치를 채었으나 한번 입밖에 떠러트 린 말을 주서 담을수가없어서

『뭘 그렇게 정신없이 쓰구있어요?』

하고 말끝을 돌렸다. 복순은 그제야 잠간 고개를 돌리며

『참 오늘은 온종일 봉환씨를 구경두 헐수가 없으니 왼일 이야요? 밖에꼭 나가봐야 헐일이 있는데……』

하고 복순은 아무것도 모르는듯 봉환이가 들어오지 않는까 닭을 묻는다.

『글세』

하고 인숙은 사색도 보이지않고 미닫이를 닫고 나왔다. 조 금있자 침모가 따라나오더니 인숙에게 눈짓을 해보이며 세 간만 넣어두는 다음방으로 들어간다. 인숙은 그뒤를 따러 들어섰다. 인숙은 잠자코 침모의 입만 쳐다보았다. 그입에서 무슨 말이 떠러질는지 몰라서 가슴이 두그거렸다.

『마님께서 오늘 수복이네식구를 쫓아내신줄을 여태 모르 세요?』

『몰랐어』

인숙은 머리를 흔들었다.

『새서방민이 저 누마루다락에 가치신줄 두요?』

『입때 방 구석에서 바느질만헌 사람이 알긴 뭘알어. 아- 니 대체 왼일야?』

인숙은 침모에게 달려들듯하며 조급히 묻는다. 침모는 목 소리를 더 낮후며

『나헌테서 들으섰단 말슴은 마세요』

하고 침모는 손을 내젔더니

『아 새서방님이 벌서 얼마전 버텀 수복이네 행랑방에가 사시다 싶이 허섰는데……』

하고 수다스럽게 서두를 늘어놓는데 갑갑중이 나서 인숙은

『그래서?』

하고 재촉알았 하는데 복순이가 문을 펄석 열고 머리를쑥 드리밀며

『무슨 얘기들이야요? 나두좀 들읍시다』

하더니

『참 저길 좀 가보세요. 아까 버텀 쿵쿵허구 마루청을 굴 르는 소리가 자꾸만 나요』

하고 독개비가 작난이나 하는줄 아는지 누마루편을 가르친다.

세사람은 소리가난다는 편짝을 올려다 보았다. 무슨 소리 가 나는듯 허다가 다시 잠잠해지더니 창살에 발는 창호지를 부-ㄱ하고 찍어내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그사이로 댓줄기같 이 뻗치는 하얀 줄기가 폭포수처럼 좔좔 쏟아저 나린다.

十三[편집]

그것을 보자 인숙은 얼굴을 돌렸다. 금세로 그 얼골은 새 빨개젔다. 다락 창살틈에서 쏟아저나리는것은 봉환이가 온 종일 참다참다 못해서 부끄러운 생각도없이 나려대고 깔기 는 오좀 줄기였든것이다.

인숙은 한참이나 잠자코 머리를 숙이고 섰다가 세간방에서 나왔다. 수복이네 식구까지 쫓겨나갔다는 말에 마음속으로 약간 짐작되는것이 없지는 않으나 복순이가 듣는데 침모에 게 그이상더 자서한것을묻고 싶지가않었다. 복순이와는 배 속까지 뒤집어 보일만치 친숙해지고 서로 비밀한 이야기까 지 숨김없이 해오는사이가 되었지만 그럴사록 제남편의 추 태를 보이기는 싫였다. 그러지 않어도 복순이가 제남편을 우습게여기고 알부량자 처럼 다르는것이 속으로는 여간 분 하지가 않은데 게다가 더 없수히 보고 우슴꺼리까지 작만해 주고 싶지는 않었다.

인숙은

『있다가라도 조용히 물어보면 알겠지』

하고는 복도로 나갔다. 복순도 무엇을 짐작하고 무색한듯 이 제방으로 들어가더니 문을 닫어버린다. 인순은 침모에게

『있다 좀 건너와』

하고 넌짓이 일르고 나서 머리를 푹 숙으리고 복도를 걸었 다. 걷기는 하면서 발길을 어느편으로 띠여 놓아야알지 몰 랐다.

(오죽이나 급해야 그랬을까) (진종일 가첬으니 얼마나 시장할가) 하고 생각할 사록 남편이 가엾었다. 무슨 잘못을 했든지 어떠한 죄를젔든지 간에 가엾은 생각이 앞을섰다. 종일 군 입을 놀리면서도 밥때가 조금만 늦으면 허숫증이난 늙으니 처럼 반비다치를 몰아대는 사람이 아닌가 인숙은 다락을 쳐다 보았다. 그리고 (내가 아니면 누가 사정을 알어주랴) 하고 어른에게 걱정을 들을 각오를 하고 마루 앞으로 바싹 닥어서 걸었다. 마음이 끌리는 대로 자연히 다리도 끌려간 것이다. 그러나 제가 바로 다락밑에 와 선것을 창살틈으로 라도 마침 내여다보면 모르지만 턱밑에까지와도 감감 한 것 을 보고는 언듯 한 꾀를 내였다.

『여봐 침모 그건 오늘 다 꾀매 놔야 해』

하고 일부러 목소리를 높았다. 뜰아랫방에서

『네-』

하고 긴대답하는 소리가 들리자 아니나 다를가 창살을 드- ㄱ 긁는 소리와 함께

『여보 여보!』

하고 황급히 부르는 소리가 바로 인숙의 머리우에서 들렸 다. 봉환은 오줌을 누든 구녕에다 입을 대다싶이 하고

『배고파 죽겠수. 어서 먹을것좀……』

한다. 그 목소리는 사실 허기가 심해서 목구녕속으로 기어 들어가는 소리다.

인숙은 고개를 속인채 우에 들릴만큼

『네』

하고는 급히 뜰안을 돌아 지밀로 들어갔다. 먹을것을 들여 밀다가 시어머니에게 들키는 날이면 큰일이 나겠어서 미리 부터 조마조마한데 과일이나 과자는 요기가 될상부르지 않 고 그렇다고 밥을 갖다 줄수도 없다.

(무얼 갖다 줄가) 하고 찬마루에서 사방을 둘러보아도 마땅한것이 없다 인숙 은 생각다 못해서 제방으로 들어가돈 십오전을 끄내가지고 나와서 동자치에게

『설고 하나만 사와. 얼핏』

하고 돈을 손에다 던저주었다. 동자치는 한다름에 뛰여나 가 설고를 사서 행주치마속에 감추어 가지고 들어왔다. 인 숙은 그것을 받어 기다란 치맛자락에 휩싸서 쥐고는 뒤를 흘깃흘깃 돌아다 보며 산정채로 갔다.

(걱정을 들으면 대사냐. 종일 굶은 사람도 있는데) 하고 발자국소리르 죽이며 뜰안으로 살금 살금 돌아가는데

『에헴 에헴』

하고 사랑에서 들어오는 시아버지의 기침소리가 들렸다.

인숙은 잔지러지게 놀라 허리를 꼬부리고 앙금쌀쌀 기어서 누마루 뒤로 돌아갔다.

十四[편집]

인숙은 누마루 돌기둥에 은신하고 있다가 시아버지의 알엣 두리가 댓돌우로 올라가는것을보고나서 다락문을 똑똑 뚜드 렸다. 거의 동시에 찢어논 창살틈으로 설고를 틀처 넣고는 다름 질을해서 침모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동안 불과 몇분 동안밖에 아니되것만 인숙은 크나큰 모험이나 한듯 상기가 되고 다리가 떨리고 숨까지갓볏다. 자칫하면 시부모의 큰 꾸지람이 나릴것이겁이 더럭나것만 감금을 당한 남편을 위 하야서는 그보다 더한일이라도 할만한 용기가 났든것이다.

그동안 복순은 밖으로 나가고 없었다. 인숙은 그제야 안심 을하고

『글세 이게 완일이야? 뭘잘못허구 저지경을 당하섰어?』

하고 침모에게 채우처 물었다. 침모는 입이 궁금해 죽을번 했다느 듯이

『나두 수복어멈이 아까 들어와서 울고 불고 하는것만 들 었지 내눈으로 보지는 못헌일이지만』

하고 이야기의 뿌리를 따기에도 한참이나 걸린다.

『아 어서 무슨 까닭인지 그것버텀 말을해. 온 각갑해 죽 겠네』

하고 인숙은 짜증을 더럭냈다.

『새서방님이 수복이란 녀석허구 밤낮 얼려 댕기지 않으서 요?』

『그래?』

『요새 수복이가 없는데두 줄창 행낭엘 드나드시는게 수상 쩍다고 행낭것들이 숙덕거린진 벌서 오랩죠. 수복어멈은 드 난을 사는사람이 제방에 부터있을때가 있나요』

침모가 여전히 복판은 건드리지도 않고 변죽만 울리는데 열이나서 인숙은 성미를 벌근내며

『아 그래 행남방엘 놀러 다닌다구 가두섰단 말야?』

하고 새되게 뭇는다.

『아이 새아씨두 퍽두 급허신가베. 글세 들어 보세요. 접때 는 수복 어멈이 저녁 설거지를 다헌뒤에 나가서 제 방의 문 을 열려니까 문고리가 안으로 걸렸드래요. 그래 문열라고 잡어흔드니까 한참만에야 문을 여는데 아 새서방님이 어떤 계집애 허구……』

『뭐야?』

인숙은 제발등에 무엇이 철석하고 떨어지는 순간 처럼 눈 과 입을 동시에 커다랗게 벌리며

『그래 그 계집애가 누구야?』

하고 침모의 멱살이나 잡어 다릴듯이 달려든다.

『왜 대문밖에서 밤낮 뚱 땅 거리구 장구를 치는 소리가 나지 않어요? 그 무당인지 삼팬지 모르는 계집이 데리고 들 어온 이붓 딸이래요. 뭐 일흠은 도화라든가요. 열여덜살이나 먹은 계집애가 입때 머리를 땋고 다니는걸 나두 여러번 봤 에요. 제 어멈이 기생조합에다 박어서 치맛자락을 휩싸끌고 는 방둥이를 내젔고다니는 거름거리가 벌서 탈이나도 여러 번날 계빈애야요』

침모의 수다는 풀려 나오기 시작을 하는데 인숙은 몸이 빳 빳이 구든것처럼 말을 더 뭇지도못하고 대답도 못한다. 얼 골빚은 붉다못해 햇숙해지고 입살은 폭양에 바랜 꽃닢같이 허얘젔다

『그게 한번도 아니고 벌서 여러번째래요. 그렇지만 새서 방님이 수복 어멈의 말을 들으시나요 그빤들빤들하게 기름때가 무든 계집애년이 겁이 있나요.

여우처럼 꼬리를 흔드니까 숫백이 서방님이 홀리실수밖에 요. 그날은 아마 수복이란 놈이 파수를 보다가 어딜갔든지 요』

인숙은 여전히 말이없다. 온뭄을 오들오들 떨고 새근새근 하고 숨소리만 높아 간다.

『기왕 그렇거들랑 아무도 모르게 쉬-쉬-했드면 좋을걸 수 복어멈이 제자식을 복패듯하고 아단법석을 하는통에 말전수 잘허는 동자치가 보고들어와서 섭기는체하고 그예 마님헌테 까지 고자질을 해바친 모양이야요. 그러니 아모리 무심하신 마님이시기로 그런말을 들으시고 가만이 계시겠어요? 고년 이 원체 간에가붙고 천엽에가붙고 하는년이거든요』

하고 침모가 신이야 넉시야하고 넉두리 하듯하는데 인숙은 파랗게 질린 입살을 발발떨며

『듣기 싫여!』

하고 한마디를 톡 쏘더니 그자리에가 기절할듯 펄석 주저 앉었다. 흑 흑 느껴 울기를 시작한다.

十五[편집]

인숙은 참으래야 참을수없이 분하였다. 봉환이가 도화란 계집애를 얼싸안고 끼고노든 장면을 눈앞에 그려볼사록 분 이 적덩이처럼 치밀어 올라서 당장에 버선발로 쫓아나가

『너 이년 네가 내남편을 아직 한벙에도 들어 보지못한 내 남편을……이 죽일년 같으니』

하고 머릿채를 잡어 낙구어 엎어놓고는 꼬집고 쥐어뜻고 제남편과 마조대고 부비든 그계집애의 살살 물어 뜯어도 시 원치가 않을것 같았다.

인숙은 생후 처음으로 그런 경우를 당하지만, 전신의 뜨거 운 피가 왔작머릿 속으로 각구로 흘러들어 지글지글 끌것같 은 질투를 느껴보기도 처음이었다. 질투는 칼로 가슴 한복 판을 갈러 버리거나 제몸을 싯벌건 불길속에 던저 형용도 없이 자최도없이 활활 태워버리고 싶도록 감정이 흥분되여 보기도 또한 처음이었다. 침모는

『이를 어쩨. 내가괜이 여러말을 했구나』

하고 후회를 하며

『새아씨 이러지 마세요. 분허기야 허시겠지만 양반님네들 이 젊어한때는 행낭오입을 허시는게 례산걸요. 전에 우리댁 서방님은 행냥게집애헌테 첩장가를 다드섰드람니다』

하고 인숙의 어깨를 가벼히 흔들며 위로한다. 그말은 일숙 의 가슴속에 불은 불길에 부채질을 더해줄뿐.

『례사는 뭐 례사야. 수복어멈을 불러다 줘. 어서』

하고 소리를 지르며 전에없는 포달을 부린다.

『고만 두세요. 내가 그럴말을 헌게 불찰이지. 아씨는 그저 잠자쿠 있서야 험넨다. 더러운건 들출수록 냄새가 난다구 아씨가 그렇게 강짜를 허시고 떠드시면 소문새만 더 사납게 날걸요. 그저 아씰랑은 점잖게 꾹 참으세요. 서방님두 저렇 게 단단이혼이 나시니까 다시는 안그러실걸요』

하며 침모는 지궁스러히 인숙의 마음을 갈어앉어 줄여고 애를 쓴다.

『다 듣기 싫여. 난 이집에서 안 살테야. 누가 그꼴을 보고 산담』

하고 인숙은 발딱 일어나앉이며 손가락으로 갈퀴질을하듯 앞머리를 긁어올린다. 눈동자에는 핏발이 서고입살은 독쌀 스럽게도 꼭 다물려젔다. 이제까지 그다지도 상양스럽고 양 순하든 인숙의 얼굴에서 지금처럼 독살스럽다고 할만치 험 상스러워진 표정을 본사람은 없었스리라 숨까지 학딱학딱쉬 고 앉었는것이 참새를 잡으려고 발톱자국까지 내놓고 노처 버린 새매와 같다고나 할만치 표독해 보였다.

그러자 산정에서 시아버지의 큰소리가 두어번 나더니 발에 밟히도록 옹구바지를 입은 봉환이가 댓돌을 나려서 어깨를 축 늘어트리고 담밑으로 비슬비슬 피해서 안채를 들어간다.

인숙은 봉환을 쏘듯이 바라다 보았다. 보다가는 더러운것 과나 눈이 맞오친듯이 고개를 홱돌렸다.

『저게 입대까지 내가 위해 바치든 남편이람. 모든걸 참고 지내오든 보림없이 그래 나를 이러게 욕을베야 옳담』

하고 뾰족이 내밀었든 입살을 앙물었다.

제 남편인 봉환이가 그다지 맞오 건더다 보기도 싫고 근처 도 가기 싫도록 미워지기도 또한 처음이다.

(요새 그따위 짓을 허느라구 나는 본체만체 했군. 그년헌테 홀려서 더 정신없이 지냈군) 하다가

『한 열흘 굶어도 싸지. 굶어 죽어도 누가 알어』

하고 그다지 가슴을 조리며 설고를 사다가 준것까지 후회 를 하였다.

그날저녁 인숙의 자최는 ○○궁안에서 찾일수가 없었다.

十六[편집]

봉환은 활동사진 구경을 다니기전까지는 남녀의 관계를 잘 알지 못하였었다. 저보다 나이가 많은 동무들의 꼬임도 받 았고 수청방이나 자근 사랑에서, 할일이 없어서 몸을 비비 꼬는 청직이나 놀러오는 사람들의 잡담을 하는 소리를들었 고 색시를 다르는 법은 어떻다느니 노는 계집과 상관을 하 는데는 어떻게 해야 한다느니 하고 짓거리는 음탕한 이야기 를 여러 번이나 듣기는 들었다. 그러나 봉환은 나이도 있거 니와 아직도 숫백이라 그런데 눈을 뜰줄몰랐다. 그러다가 우미관에를 다니기 시작하면서 부터 생각이 달러졌다.

처음에는 말을타고 달리고 총을놓고 하는 활극이나 정탐극 같은 것이 어깻바람이 나도록 신이나고 아기자기하게 재미 가나서 손벽을치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던것이 차차 변해서 연애극에 착심을 하게되었다. 히 멀금한 살이 내비치도록 얄따란 옷을입은 서양여자를 끼고 춤을 추는 징글징글한 장면을 보았다. 그들이 서로 껴안고 살을 부비며 입을 마추는것을 눈녁여 보았다.

그런장면의「필립」이 끓겨서 불이 끔벅하고 꺼지면 아래 층에서는

『불켜라 불켜』

하고 저만큼씩한 학생들이 소리를 질른다. 발을 굴르며 휘 파람을 분다. 무대우로 귤껍데기나 심하면 라무네병이나 모 자까지 집어던진다.

봉환이도 다른 아이들이 하는대로 흉내를 내였다. 그러다 가는 서양사람들이 술을 마시며 질탕이 노는것과 남녀가 만 나기만하면 연애를 하는것도 구경만 하는것이 싱거워졌다.

그네들이하는대로 실제를 해보고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런 것을 보면 누구든지 다 좋아 하지않는가. 우층에 버티고서 구경을하는 아버지같고 형님같은 점잖은 사람들도 연애하는 장면만 보면 손벽을 치지않는가 (나두 한번 해볼가) (그렇지만 누구허구 그래볼가) 하고 길에서나 집에와서나 활동사진에서 본대로 실습을 해 볼 상대자를 상상해보았다.

『얘 우리두 한번 그렇게 놀아 보잤구나』

하고 행랑방에서 수복이 하고도 여러번 공론을 해보았다.

봉환의 눈앞에 맨 처음 그 상대자로 나타난것은 인숙이었 다. 누구보다도 저에게 친절하고 싹히하고 어여쁜 제색씨였다.

사실 봉환은 제색씨와 가까히하고 싶었다. 한방에서 자고 도 싶었다. 무슨일이든지 청하는대로 들어주는 제색씨가 제 가 허자는대로 아니 할리가없다. 그래서 색씨방에 들어가

『난 여기서 잘테야』

하고 일부러 졸린체도 해보았던것이다. 그러나 어머니는

『너 그방에서 자조 드나들면 못쓴다』

하고 몇번이나 걱정을하지 않었든가.

『일즉암치 들어와 자거라. 공부도 꼭 자근 사랑에서 허 구』

하면서 인숙의 방에서는 놀지도 못하게하고 좀 오래만 앉 었어도 큰일이나 날듯이 불러 들이는 사람은 별당 할머니가 아니었든가.

그러나 봄을 알기 시작한 봉환은 보드라운 바람의 유혹을 받지않을수 없었다. 바윗돌이라도 뚫고나올듯한 본능(本能) 의 싻을 억지로막어 낼수가 없었다.

그러든 차에 이옷에 살어 아침저녁 만나는 관계로 수복이 를 이따금 찾어오는 도화를 알게 되었다. 봉환이보다 나이 가 세살이나 더먹능 도화는 귀공자요 해발하게 생긴봉환을 놓칠리가 없었다. 두 남녀는 나날이 친해갔다. 하-모니카도 불고 서로 유행창가도 하며 놀다가 집안 사람의 눈을 피해 서 활동사진 구경까지 가치 다녔다.

수복의 부모는 새서방님이 누추한 행랑방에 나와 노는것을 영광으로 아는지 처음에는 자리를 비켜 주기까지 하였다.

수복이는 뚜쟁이처럼 두 남녀를 불러다 부처놓고는 댓문깐 에서 망을 보았다.

그래서 봉환과 도화는 마음을 놓고 활동사진에서 본대로 흉내를 낼수있었다. 성(性)에 눈을 뜬지 오래인 도화는 살결 보드라운 봉환이가 제가 경험한 나이 많은 사내보다 녹녹하 였고 어딘지 모르게 거북해서 인숙에게는 손을 대기가 어려 웠던 봉환은 제가 허자기도 전에 착착휘감기고 애교를 똑똑 떨며 부리는 도화가 그런식을 하기에 만만하였던것이었다.

十七[편집]

시부모의 허락도 없이 인숙이가 친정으로 가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봉희에게만

『어머님께서 찾으시거던 집에 급헌일이 생겼다구 부르러 와서 갔다구 여쭈어주』

하고 어둡기를 기다려 계집애 하나도 데리지않고 뒷문으로 빠저서 삼청동집으로 갔다.

그런일을 당한것이 너무나 설통해서 잠시도 시집에는 있기 가 싫였다. 유모하고나 가치 있었으면 의fp 앞을 세우고 갔 을것이지만 유모는 아들이 모군을 서다가 다섯길이나 되는 비계 우에서 떨어저서 졸연히 갈수가 없다는대서 편지가 온 지도 얼마 아니되었다. 그래서 인숙은 유모의 정경이 하도 가엾어서 두번이나 돈을 부처 주었다.

그래서 어머니에게 실컨 하소연이나 해보려고 나섰던것이다.

경직은 또 어디로 갔는지 집에없고 경직의 첩은 무엇을 나 어놀는지도 모르면서 첫아들을 배었다고 유세가 대단해서 웬만한 사람이 오면 내다보지도 않는다.

건넌방에는 불도아니 때었는지 어머니는 찬기운이 도는 방 바닥에 얄다란 요하나만깔고 누이서 손자를 재우다가

『네가 웬일이냐 응? 무슨일이 생겼늬?』

하고 심상치않는 딸의 눈치를 흐릿한 눈으로 살펴본다. 인 숙은 아무말도 없이 어머니앞에 펄석 주저앉으며

『난 인제 안갈테야요』

하고는 어깨를 떨며 소리를 죽여운다.

『그게 모슨 소리냐. 너 뭘 잘못허구 쫓겨 왔구나. 사람하 나두 못데리구서』

하고 떨리는 손으로 딸의 손을 쥐고 끌어다린다. 어머니의 목소리도 기신없이 떨려나온다.

인숙은 울음을 섞여가며 눈물을 씻어가며 자초지종을 좍 이야기하였다. 어머니의 얼굴의 주름쌀은 점점 펴졌다. 딸의 이야기를 듣자 대사롭지 않은일인듯이 차차 안심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고개만 조금씩 끄덕이며 잠자고 딸의말 을 듣고만 앉었다가

『난 무슨 큰일을 저질는줄알구 가슴이 덜컥 나려앉었다.

온 그만 일을 가지구 시부모에게 여쭙지도 않고 온단말이 냐』

하고 딸을 나무려듯 한다.

인숙은 어머니까지 제속을 몰라주는것이 더 한층 야속해서

『어째 분허질 않어요? 벌서 서방이 몇씩 되는지 모르는 계집애년 헌테………뺐겼으니 어느 여편넨분허지 않겠어요?

그래 어머니가 그런일을 당하면 참으시겠어요?』

하고 어머니가 어쩌기나 한것처럼 폭 폭 대든다.

『나두 참었다. 못 참을일두 많이 참었느니라. 넌 지금 첨 덩허는 일이니까 분허기두 허리라만 안직 경력이 적어 그러 니라』

『그럼 어머닌 절더러 자꾸 그런 일을 당허란 말슴이야 요?』

인숙은 어머니에게 질문하듯 한다.

『그럼 여편네가 참지 어떡허느냐. 더군다나 양반의집 여 편네란 그런데 시기를 해서는 못쓴다 너의 어른신네가 좀 얌전 허섰늬? 남의 여편네란 거들떠 보지두 않으시는 양반 이 젊으섰을 땐 내속을 무던히 태섰느니라. 행낭 계집애나 같으면 괜찮게……』

하고는 눈을 나려감고 아득히 지나간 옛날의 기억을 더듬 더니

『그까짓 지난일을 다 이야기해 뭘허겠늬 마는 그저참어라 참는수밖에 없느니라. 시쳇말로 여편네의 강짜란 못쓰는거 다. 그저 으장 빠진 사람처럼 모르는 체하고 있으면 사내의 맘이란 그래두 귓머리 마조 푼 사람헌테로 돌아오는 법이니 라. 실컨 오입을 해보다가는 지각이나면 조강지처가 소중헌 줄 알어지는 법이거든』

하고 콜룩 콜룩 기침을 해가면서 순순이 타일는다.

그러나 어머니의 타일르는 말쯤으로 인숙의 분은가러 앉지 않었다. 어머니가 덮어놓고 참기만허라는 말이 너무나 억지 읫 말이요 억울하기만 하였다.

『그럼 남편의 젋어선 다른 계집헌테 실컨 외입을 허다가 실증이 나서 다 늙거 의지 할데가 없어서 기어들어도 좋다 는 말슴이야요? 죽기전에 남편이 맘을 잡은거나 감지덕지 허린 말슴야요?』

『그렇지. 우리같은 여편네 들은 다 그렇게 참구 지내왔다.

그려길레 옛날버텀 행여 여자의 몸으로 태어나지 마라 평생 의 고락이 남의 손에 달렀다는 말이 있지 않으냐』

하고 어머니는 긴 한숨을 시름없이 내쉰다.

인숙은 뒤로 도라 앉으며

『난 죽으면 죽었지 그런 여편넨 되기 싫어요! 그런 꼴까 지 보면서 구차허게 살 까닭이 어디 있어요!』

하는 목소리는 더한층 여무졌다. 그눈에도 여무진 결심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