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녀성/제5장
싹트는사랑
[편집]一
[편집]『참말 세월두 빠르다. 네가 벌서 거상을 벗는구나』
한림의 길제사를지낸 이튼날 어머니가 천담복을 벗고 화복 으로 갈어입는 딸을 바라보며 감회 깊이하는 말이었다.
『어쨌 무색옷이 전엔 안입어 보든것처럼 얼리질 않어요』
하며 인숙은 남끝동을단 옥색저고리의 섶을 여미연서 혼잣 말하듯한다.
탈상을 하는것이, 아버지가 돌아가섰다는 표적과도 영영 이별을하는것 같아서 새삼스러히 망극하였다.
인숙은 옷을 다 갈어입고나서 낮으막하게 한숨을 쉬고 어 머니곁에 앉었다.
어머니는 옷보재기에다 딸의 벗은 옷을 싸면서
『그래 오늘 들어가련?』
하고 이마의 주름살을 잡으며 정기없는 눈으로 딸을 쳐다 본다.
『그럼 가여조. 내일이 생일이 아니야요?』
『오-참 내일이 봉환이 생일이로구나. 온 장모라구 올해는 더군다나 버선 한켜레 못허니 사위래두 볼나치없다. 이렇게 손이 붉고 어떻게 산다니』
『어머닌 정말 망녕이 나섰구려. 내가 다 좋도록 헐테야요.
누가 어머니더러 그런걱정 허시라우』
하고 인순은 어머니를 위로하며 일어설 차비를 차린다.
인숙의 시집에서 멀지않은 삼청동(三淸洞)막바지 다쓸어저 가는 초가집으로 인숙은 아버지의 길제 참사를하러 왔든것 이다.
지나간 삼년동안 한림의 집은 부지깽이하나 남기지않고 씻 은듯 부신듯이 파산을 당하였다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경직 이 때문에 한림이생전에 고리대금업자에게 여러차레 얻어쓴 빚을기한이 지나도록 정장을 못하고 내어버려두어서 전장은 물론 들어있는 집과 세간까지 차압을 당하였다. 쪽찌를 불 인지 불과며칠에 경매를당하고 말었다. 허다못해 한림의 손 때가 묻은 문갑과 책권까지도 모조리 빼았기고 불을 부친젓 처럼 검불하나 건지지못하고 빈손만 톡톡털고 일어섰다. 그 러고보니 늙고 병이 들어 골골하는 어머니는 몸부칠곳이 없 었다.
경직의 댁은 시아버지의 졸곡이 지나자마자
『이 어린거나 길러줍소』
하고 딸을 떠맡기고는 다시 친청으로 갔다. 이화저화로 성 미만 거칠이가는 남편의 구박이 날로 자심해서 박여날수도 없거니와, 결기가 대단한 친정오라비되는 사람이 매부의 태 도에 분개해서
『수건을 쓰고 공장에라두 다녀라. 집에 와있으면 설마 너 하나야 굶기겠니』
하고 경직과 대판으로 담판을 한뒤에 누의를 앞세우고 갔 든것이다.
그래서 경직은 몸도 잘 추슬르지 못하는 늙은 어머니와 바 로 보기도 싫어하든 딸을 맡을 수밖에 없었다. 문안에서 데 리고 사는 계집이
『당신허구 안살면 안살었지 난 싫여요. 팔자에 없는 시어 머닌 왼일이구 어미없는 자식을 어쩌자구 나게다 처맡긴단 말요』
하고 악을악을 쓰며 봇짐을 싸는것을
『그러지 말어. 인제 좀 심평만 피면 어머니는 따로 보실 테니 그저 몇달만 고생을 해달라니까……다 돌아가신 어머 니야 몇해나 사실라구』
하고 몇칠을 두고 애걸복걸을 하다싶이해서 간신이 신신치 않은 허락을 받았든것이다.
그러나 백판 맨손만 부비고 앉인 경직의 식구의 입에 저절 로 밥덩이가 굴러 들어 갈리는 없었다. 열푼 없앨궁리는 있 어도 한푼 벌어들일 재조는 없는데 친구를 뜯는것도 한두번 이요 일가집으로 찾아다니며 설궁을 피는것도 나종에는 얼 굴이 뜨거웠다. 그래서 경직의 식구는 끼니를 잊지못한다는 때가 많었다.
늙은 어머니는 주린 창자를 움켜쥐고 누었든데 철없는 손 녀는 무말랭이처럼 말러서 꺼풀만남은 알머니의 젖꼭지를 쥐어뜯고 목이 쉬도록 울면서 먹을것을 조르며 밤을 새우는 것이 하로걸러 큼씩은 되었다.
계집의 옷가지까지 모조리 잡혀먹은 경직은 그꼴을 보다못 해서
『오늘은 돈 변통을 해가지고 들어오겠다』
고 흘적 나거면 의레「마적」판에서 밤을 밝히고 들어오거 나 공복에 술이 곤죽같이 취해서 들어와 이튼날 오정때까지 아랫묵에 누어서 딩구는것이었다.
그러자 사돈의집이 터문이도 없이 결단이 났다는 소문이 윤자작의 귀에까지 들렸다. 어느날 자작은 며느리를 불러 친정 형편을 듣고
『가난구제는 나라에서두 못하느니라 허나 네 어른신 네의 조석상식을 궐해서야 내가 밥을 먹기가 미안적다』
하고 그후로 다달이 식양을 대어 주었다. 삼청동의 오막살 이도 그가 사주어 들게된것이었다.
二
[편집]인숙은 저녁뒤에 시집으로 갔다.
『새언니, 왜이렇게 늦게 오우. 아주 새색시가 됐구려』
하고 내달어 여전히 반기는 사람은 봉희였다. 봉희는 벌서 보통학교 사년급이 되었는데 학기마다 우등을 하였다. 공부 는 별로 하지않고 집에서는 말괄냥이 노릇을하며 말만 일리 는데도 학교 성적은 좋았다. 얼굴은 함박꽃같이 피고 키는 날신하게 커서 벌서 여학교의 꼴이박였다. 그저 인숙과는 한방을 쓰는데, 원체 선선하고 너름새가 있어서 올케의 속 을 태워주기는커녕, 인숙은 아버지 생각을하고 친정을 못잊 어 하다가도 언제나 시누의 애교때문에 옷게되었다.
인숙이가 친상을 당한뒤에 정성껏 위로를 해준것도 봉희 요, 어른에게 걱정을 듣거나 집안식구에게 오해를 받을일이 있드래도 앞을서서 변호해주는것도 봉희였다.
더구나 지난해 여름에 봉희가 장감에 걸려서 두달동안이나 사경에서 헤매일때는 인숙이가 병원에까지 따러가서 진심으 로 간호를 해준것을 어린 생각에도 무한히 감사하게 생각하 였든것이다.
혹시 어른들이 우슴엣말로
『넌 어디로 시집을갈년?』
하면 봉희는
『난 시집안가. 새언니허구만 살테야』
하고 하나에도 새언니요 둘에도 새언니였다. 그래서 형이 없는 봉희와, 아우가 없는 인숙은 친형제보다도 서로 위해 주고 따르고 하였다.
인숙이가 이야기책을 잘보는것은 소문이난지 오래지만 쉬 운 한문글자까지 알어보는줄은 아는 사람이없었다. 그러나 봉희가 복습을 하다가 글자를 깜박잊어버리고 상막해서 애 쓰면
『그게 XX자가않유?』
하고 똥겨주었다. 그러면 봉희는
『어쩌면 한문까지 언제 그렇게 뱄수』
하고 놀랐다. 그러고는
『우리 학교서 배는걸 같이 배웁시다』
하고 약속을 하고는 산술이고 어학이고 한문을 봉희가 배 워오는대로 밤이면 같이 복습을하였다
『남 배우는걸 못 배울게 어디있어. 꼭 학교엘 댕겨야만허 나』
하고 인숙은 봉희가 잠이든뒤에도 조름을 참고 밤중까지 자습서와 씨름을하였다. 원악 총명한 인숙은 꾀꾀름름이 아 무도 모르게 자습을 하는것이었지만 무슨 학과든지 봉희보 다도 빨리 터득을 하였다. 그래서 근자에는 시험때면
『새언니 이 문제좀 풀어주』
하고 봉희가 도리어 묻는 때까지 있었다.
그러나 인숙이가 시누이와 같이 공부를 하든것은 절대 비 밀이었기 때문에 봉환이도 까맣게 몰랐다.
그 반면에 봉환은 성적이 나뻤다. 금년에 어느 사립고등보 통학교에 입학을 하였건만 그것은 시험을 치러서 뽑힌것이 아니라 자작이 좌청우청을 해서 간신히 보결생으로 들어간 것이었다. 그래서
『옵바는 낙지국만 먹는담』
하고 봉희는 오라비를 없수히 여기며 들까불었다.
그러나 봉환에게는 특재라고 할만한것이 있었다. 학교에 다녀와서는 책보도 끌으지 않으면서 그림 한가지는 곳잘 그 렸다. 도화 한 과목만은 언제든지 갑(甲)을 받었다.
집에 와서는 벽이나 담에다가 분필로 사람도 그리고 소다 개같은 동물을 그렸다. 그린다느니 보다는 아무렇게나 낙서 하듯이 환을 치는것이었만 제법 물체를 으수하게 그렸다.
어느때는 큰 사랑 마진짝의 화초담에다가 뚱뚱한 배불뚜기 를 분필로 그려놓고는 기다란 채수염에 장죽을 몰고 뒷짐을 지고선 늙은이를 커다랗게 그렸다. 그것은 여불없는 저의 아버지의 화상이었다. 자작은 그것을 보고
『저게다 무슨 작난이냐. 어서 지워 버려』
하면서도
『저자식은 환쟁이가 되려나 학교 공부는 못하는 녀석이 그림 그리는 눈설미 하나는 있거든』
하고 웃으며 칭찬 비슷이 할때도 있었다.
三
[편집]인숙의 나이도 어느듯 열일곱 연연한 꽃봉오리가 아침 이 슬을 먹음고 바야흐로 방그시 피어 올으려할때다. 기다리지 않어도 나비가 고흔 날개를 펼치며 날러와앉고 향기를 놓지 않어도 꿀벌이 찾어들어 그 아름다운 화판에 입술을 꼬질 시절이다.
인숙의 젖가슴은 저고리속에서「소다」로 반족한 힌떡덩이 처럼 부풀어 올랐다. 사기공기를 엎어논것만치나 봉듯이 내 밀어 따로 감각이나 있는 샘물처럼 먼저 처녀의 부끄러움을 탔다. 동시에 살결이 매끄럽도록 윤택해지고 삼년동안에 키 도 상당히 자랐다.
새깜안 두 눈동자는 무엇을 찾는듯 부질없이 허공을 더듬 고 매끈한 사지는 의지할것을 찾는 듯 밤이면 살그머니 이 불자락을 꺼안고 저혼자 올굴을 붉힐때도 있다.
『너 그저 합례를 안시키든?』
『요새두 시뉘허구만 한방을 쓰니?』
하고 어머니는 어느날 친정에온 딸을보고 슬그머니 물어보 았다. 인숙인
『어머님 별걸 다 물으시는구려』
하고 얼굴에 살작 혈조(血潮)를 띠우면서도 가벼히 머리를 끄덕였다.
『온 혼인헌지가 삼년이 돼도 어째 입때꺼정 방을 따로따 로 쓰게허시는지 몰라요. 새서방님도 인젠 색시위헐줄을 알 떼가 됐는데……』
하는것은 유모의 불평이었다. 어쩌면은 인숙의 불평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육체보다도 감정이 조속한 인숙은 봉환이가 제남편 이 아니요, 꼭 사내동생만 같았다 남자는 여자보다 발육이 더디 되는데다가 봉환이가 두살이나 손알에지만 행동거지가 철없는 어린애만 같어 보였다. 어찌 선악한지 새총으로 사 람을 쏘고 종아리를 맛기, 낮잠자는 상노의 귀에다 뜨거운 속융을 부어 입원까지 시키기가 일수였다. 요새 동무들과 떼를 지어가지고 몰녀다니며 과일가개와 과자집의 외상지는 수단이 늘어서, 하로 걸러큼 걱정을 들었다.
명색만은 그저 가정교사를 두었지만 학교에서 돌아오면 붙 들어 앉처도 제성미만나면 안하에 무인이라 선생의 말을 듣 기는커녕 걸핏하면
『난 일없어 글 안뱉테야』
하고 선생에게 주먹질을 하지까지 하였다. 그래서
『쇠귀에 경을 읽지 봉환이 공부는 시킬수없오』
하고 선생이 세사람이나 갈어들었다.
마음을 잡고 공부를 한다는것은 여기저기 환을 치는것이 다. 어른들이
『그림 재주 하나는 있어』
하고 칭찬을 허는데 억갯바람이 나서 갑비싼 그림제구를 사들려다가 방안으로 하나를 버려놓고 도배장판만 버려놓는 것이 큰일이었다.
인숙은 봉환이가 주책없는 작난을 헐때마다 어른에게 꾸증 을 들을때마다 제얼굴이 확근거렸다.
(좀 지각이 났으면……) (나이가 더두말고 나허고 동갑만 됐섰드면……) 하였다.
(나이가 지긋이 들고 사람이 엄전해서 저를 안어주고 사랑 해 줄줄 알었으면)-- 하는것이 가장 큰 소원이었다.
그렇것만 아직도 향기를 마틀줄 모르는 나비는 길가의 잡 초와 히롱할줄은 알어도 화단에 곱다케 핀 꽃송이가 저를 기다리는줄은 몰랐다. 벌은 벌이 매 틀님없것만 부-ㅇ 부- ㅇ 하고 제결으로 돌아만 다니면서 아람이 번 밤송이를 탁 쏘아 떨어트릴줄도 몰랐다.
어느때는 (대체 나를 무엇으로 아는 셈일까) 하고 남편을 물끄럼히 볼때도 있었다. 인숙은 벌서부터 봉 환의 옷뒤를 거두었다. 사흘에 한벌씻 휘질러놓는 옷을 빨 어 다듬어서 꼬매어 대기는 수월치 않으일이었다. 남편옷뒤 에만 매달려서 다른일은 헐사이가 없었다. 침모가 몇식되것 만 손끗하나 꼼작도 아니하고 곤때만 뭇으면 버서내놓는 여 러식구의 힌옷을 대기에 헤어나지를 못하기 때문에 볼가불 인숙이가「바누질 잘한다고 소문이 난 값을하는것이었다.
봉환은「나 옷주」한 이후에 옷을 갈어 입으로 제아에 들 어올때면 인숙에게 람을 건냈다. 인숙은 곁에 사람이 없어 야 입속으로만 「녜」할뿐이었다.
그러다가 어느날은 밤을 새우며 단둘이서 말을 주고받은 일이 생겼다.
四
[편집]뒷겻 화단에 주먹덩이만치나 탐스럽게 열린석류가 빨갛게 익어가는 여름 방학때였다. 학기 시험이 끝나고 방학식을 하는날 봉환은, 저녁때가 되여도 집에 돌아오지 않었다. 동 무들을 데리고 와서 놀기는해도 나가서 늦게까지 놀시는 못 하게하여왔는데 더구나 그날은 오전에 방학식 이 끝났을터인데 어둑어둑 할때까지 봉환은 돌아오지 않았다.
봉희는 오정전에 까치처럼 깡충거리며 뛰어 들어오더니
『나 또 우등했다우. 이번엔 첫지야 첫지』
하고 엄지손가락을 내돌렀다. 통신부를 페들고 다니며
『이것봐, 말장 갑(甲)이지 새대가리(乙이 란뜻)는 하나두 없어』
하고 안팍으로 뛰어다니며 자랑을 한다.
『어머니 이번엔 「쪼꺼럿」사줘야 해요. 안사주면 담 학 기버텀 공부 않헐테야』
하고 어머니를 졸라서 상급으로 과자며 색상자에다 공책이 며 연필을 한아 가득이탔다.
『새언니허구 같이 공부를해서 첫지를 했으니깐 우리논아 먹어야 옳지』
하고 오라범댁의 입을 어기듯하고 크림을 넣은 맛있는
「쪼코렛」하나를 껍데기채 들어넣었다.
인숙이도 기뻤다. 제가 첫재를 한것이나 달음없이 기뻐서 봉희를 얼싸안으며
『이번 시험은 참 잘봤구려. 난 산술이 어떨가 했더니……
인전 이학기두 첫지를 빼끼지 않도록합시다』
하고 저도 상급이나 탄듯이 「쪼꼬렛」을 맛있게 먹었다.
그러는 한편으로 (나두 학교에나 다녀봤드면…… 아버지가 그저 생존해계서 서 저렇게 우등첫재나 한번 해가지고 들어와 봤드면) 하고 조와서 어쩔줄 모르는 봉희가 어찌나 부러운지 몰랐다.
그러는 한편으로 봉환이가 그저 돌아오지 않는것이 여간 걱정이 되지않었다.
(임때꺼정 어디가 뭘 하구있을까) (또 상없이 작난을 하다가 다치지나 않었을까) 하고 염려가 되여 별별 생각이 다 났다. 그것도 누의가 철 없는 동생에게나 대하는 감정입에 틀님없었다.
『그애가 왜그저 안온다니?』
하고 싀어머니는 저녁상을 받으면서야 걱정을 하였다. 집 이 넓으니까 혹시 들어와있는것을 모르고 있지나 않는가하 고 지밀로 별당으로 큰 사랑 작은사랑으로 찾어다니다 못해 서 행낭까지 사람을 내보내보아도 새서방님을 보았다는 사 람이 없다.
반주가 얼근히 취한 자작은 화를 더럭내며
『그애허구 얼녀다니는 동무가 있겠지. 그집으로 찾어들 가봐라』
하고 꾸중까지 들었다. 그러고는 일변 청직이를 시켜서 학 교로 전화를 거어보았다.
『방학식은 오전 열시에 파했는데 그저 안갔을리가 있 오?』
하고 드립따 묻는것은 숙직을하는 선생의 대답이었다.
근처 동무의집으로 급히 다녀온 하인들은
『오늘은 새서방님이 오시지 않았답니다. 그댁 학교도련님 은 집에 계시든걸입쇼』
하고 보고를 한다.
『그럼 그애가 대체 어딜갔단말이냐』
하고 자작은 한증 더 역정을 내며 평생 들여다 보지도 않 든 며누리 방에까지 들어와
『아침에 네게다 무슨 눈치를 보이드냐』
하고 묻는다. 인숙은
『오늘 아침엔 별당에서 불으서서 학교에 가는것도 못봤읍 니다』
하고는 고개를 숙였다. 실상 인숙은 싀부모보다도 더걱정 이 되여서 저녁상도 아니받고 조바심을 하며 (어딜가 있는지 아모일이나 없었으면) 하고 속으로 빌었다.
그통에 봉희의 흥은 무참히도 깨젔다. 우등첫재 바람에 곤 대짓을 하든 목이쏙 옴지러 들었다
『그럼 내가 아는 동무의집엘 가볼가』
하고 봉희가 교복으로 갈어입고 일어서는데
『계집애가 가긴어딜가』
하고 아버지는 딸에게다 화풀이나 하듯이 소리를 질렀다.
五
[편집]『파출소로 가 물어봐라. 혹시나 그애를 보았나. 못봤더래 두 좀 찾어달라구 내가 그런다구 말해라』
대감은 청직이 하나를 파출소로 내보냈다. 파출소순사는무 슨때면 불려와 대접도 받었고 또는 귀족의집에서 생긴일이 라 순사 둘이서 번차레로 관내를 수색하듯 하였다. 그러나 봉환의 종적은 여전히 묘연하였다. 순사는
『미안헙니다. 인젠 본서로나 조회를 해볼수밖에 없읍니 다』
하고 일부러 들어와서 자작에게 경례를 부치고 나갔다.
아홉시가 지나고 열시가 가까워왔다. 그때까지 봉환의 소 식은 감감하다. 경철서에서도
『시내 각서에까지 조회를 해보았으나 그런 학교를 보호한 일 없다』는 통지가 왔다.
『이거 큰일났구나. 온 형놈들까지 어디가서 입때들 안들 어온단 말이냐』
하고 자작 내외는 생떼같은 아들이 비명에 죽기나 헌것처 럼 안절부절을 못한다. 그동안 신문사에 관계를 하게된 큰 아들은 교제를 합네하고 밤마다 요릿집 출입을 하느라고 부 자간에 이틀사흘씩 대면을 못하는때가 많었다.
인숙은 저녁을 굶었것만 배고픈줄을 몰랐다. 속으로 어찌 나 염려가 되는지 입살이 타들어가고 나종에는 앞머리가 쑤 시는듯이 아펏다.
원체 봉환은 작난이 선악할뿐아니라 저밖에는 아무도 없다 는듯이 사람을 껄보는터이라 다른 동내의 아이들이 저의집 행랑애들처럼 문문한줄 알고 덤벼들었다가 사매로 막 얻어 맞고 으슥한 구석에 쓰러박혀있지나 않을가 인숙은 바로 일 전에도 한강에서 학생들이 헤염을 치다가 둘이나 빠저 죽었 다는 신문기사를 본 생각을 하였다. 무참히 빠저죽은 학교 와 애통하는 가족의 사진까지 난것이 눈앞에 떠올랐다. 신 문에 났던 학교의 사진이 눈앞에서 봉환의 얼굴로 변하기도 하야서 인숙은 질겁을 해서 눈을 꽉감고 손으로 얼굴을 가 렸다.
(나두 사내로나 태났더면 누가서 돌아다니면서 속시원하게 찾어나 보렸만) 하고 새삼스러히 여자로 태어낸 슬픔을 느끼며 저의 방으 로 지밀도 종종 걸음을쳤다.
온진안 사람이 총동원이되여서 먼 일가집으로까지 사람을 보내고 골목마다 수사망을 느리다 싶이하는 법석을 한지도 두어시간이나 되었것만 봉환의 그림자는 여전히 나타나지 않는다.
집안식구는 얼골이 흙빛이되여 이리저리 몰려다니는데 사 랑 대청에 달린 전화통의 신호가 따르르……하고 요란히 울 렸다.
『냉큼 받어라』
대감은 소리를 질렀다. 청직이는 전화통앞으로 달려가서 수화기를 떼며
『어디요?』
하고 황급히 묻고는
『그렇습니다. 네 네』
하다가 청직이의 대답은
『응 응 웨그럼 인제야 전화를 걸어』
하고 반말로 꾸짖듯한다.
『어디야? 어디서 왔느냐』
자작은 전화통 곁으로 바싹닥어와서 조급히 묻는다. 청직 이는 왼손으로 전화통를 막으며
『새서방님이 대관원에 계시는 모서가랍니다』
하는데 전호는 딱끓졌다.
『뭐 대관원에 있어? 누가 걸었드냐』
『여기 노댕기는 청인이 걸었읍니다』
『그럼 인력거를 보내라. 어서 어서』
하째 자작은 그제야 조금 안심이되여 호령하듯한다. 이집 에서 노 요리를 시켜다먹는「대관원」이란 청요리집에서
『당신집이 아들 올리집왔어. 술 자꾸먹구 잤어 잤어 아이 거 어떡해』
하고 뽀이가 전화를 걸었던것이다.
인숙은 봉희와 함께 안중문깐에서 오들오들 떨며 기다리는 데 인력거가 간지도 한참만에야 대문깐이 떠들석하더니 휘 장을씨운 인력거가 굴러 들어왔다.
六
[편집]의사는 봉환을 간단히 진찰해보고 나서
『알콜 기운에 전신이 마비된게니까 잘 안정만 시키면 조 금도 염려하실게 없읍니다. 한숨 자고나면 정신을 차리겠지 요』
하고 가방을 들고 일어서며
『비위를 갈어앉힐 약이나 지어 보내겠읍니다』
하고 나갔다.
집안식구들도 그제야 마음을 놓고 다 각지 제방으로 돌아 갔다. 시어머니도 일어서며
『자식을 여럿을 길르니까 별일을 다 당허는구나. 자지를 말구 약을 가적오거든 먹여라』
하고 딸과 며누리에게 일르고 입맛을 쩍쩍다시며 산정으로 건너갔다.
한시간쯤뒤에 약을 가져왔다. 봉희가
『옵바 옵바』
하고 오라비의 어깨를 흔들며 깨다못해서 가루약을 물에다 타서 둘이서 숫가락으로 떠넣었다. 봉환은 껄덕껄덕 하고 약을 넘기더니 일변 코를골기 시작하였다.
얼마있자 봉희는 꼬박꼬박 졸더니 오라비의 발치에가 쓰러 졌다.
방안은 고요해졌다. 사방탁자우에 유리시계가 새로한시를 가르쳤다. 인숙은 봉환의 머리맡에 앉아서 태극선으로 술술 부채질을 해주며 언제까지나 남편 의 햇숙한 얼골을 들여다 보았다. 갓브게 쉬는 숨소리는 유 난히 크게 들렸다.
(무슨 까닭으로 저렇게 죽도록 술을 마셨을가) (어느새 술을 저렇게 먹어서 어떡하나) 하고 가엾은 생각도 들고 한편으로는 딱하기도 하였다. 외 국으로 도망을 가기전까지는 밀밭만 지나가도 취할듯이 술 이란 한방울도 마시지 않던 경직이가 패가를 한뒤에도 술때 문에 정신을못차리고 근자에는 아조 파락호가 되여서 다 돌 아가신 어머니의 속을 썩여드리는 생각을 하면 지금 봉환의 입에서 물큰 물큰 끼치는 술냄새가 지긋지긋이 싫였다. 얼 골을 가까히 돌려다 보다가도 숨을 내쉴때면 얼골을 돌렸다.
봉환의 이마에는 이슬같은 땀이 송송 내배었다. 인숙이가 수건으로 가만가만 눌러서 땀을 씻어주고 이마를 짚어보려 니까
『끄응』
하더니 돌아 눕는다.
(이불이 더운가 보다) 하고 인숙은 모시겹 이불을 벗겼다. 그저 교복을 입은채 누인것이 퍽 거북할듯해서 양복저고리 단추를 끌르고 간신 히 두팔을 빼었다. 바지를 벗기고는 싶으나 참아 손을 대지 못하고 혁대나 끌러주려고 몸을 조금 떠밀며 허리로 손을 돌리다가 바지뒷 주머니의 삐죽이 내면 종이 쪽이 눈에 띠 었다. 인숙은 (이제 뭘가?) 하고 꾸기 꾸기해서 틀어넣은 종이를 끄내여 전등불에 비 최어 보았다. 그것은 그날 받어서넣은 통신부였다. 인숙은 (참 오늘이 방학날이었지) 하고 그제야 봉희가 첫재를 했다고 자랑을 하던 생각이 다 시 났다.
(또 성적이 시원치 못하든게로군) 하고 인숙은 통신부의 구김살을 펴면서 일학기의 성적을 보았다.
도화 한과목만 갑(甲)이요 그 남어지는 병(丙)이 아니면 정 (丁)인데 맨끝에 떨어질락(落)자가 씨워 있는데는 놀라지 않 을수 없었다.
(설마 또 낙제야 했을라구) 하고 제눈을 의심하며 가까히 들여다 볼사록 [落]자가 또 렷한거야 어찌하랴.
(오-ㄹ치. 그러면 통신부를 가지고 집에 들어와서 어른들 에게 보였다가는 대통혼이 날테니깐……) 하고 인숙은 고개를 비꼬며 생각해보다가 (그래서 돌아다니다가 나쁜 동무를 만나서 권하는대로 독 한술을 대중없이 먹고 쓰러 젔엇군) 하고 저혼자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인숙의 추축과 틀림없 었다. 봉환은 통신부를 받고나서 사무실로 불려들어가 담임 선생에게
『중학교에 들어 오자마자 첫학기에 낙제를 하면 앞으로도 승급할 가망이 없으니 아버지를 찾어가뵙고 주의를 시키겠 다』
는 꾸지람을 톡톡이 들었던것이다. 봉환이가 울며 집에도 못가는것을 본 불량한 상급생과 저처럼 낙제를한 동무가 봉 환을 꾀여 외상을 주는줄아는 청요릿집으로 끌고갔다. 배갈 을 두곱보나 먹여 봉환을 까므러치게 한뒤에 그자들은 요리 를 실컨 먹고는 뿔뿔리 빠저 달어났던것이다.
봉환은 조갈이 나는듯이
『물 물』
하고 더듬다가 얼덜김에 머리맡에 앉은 인숙의 손을쥐고 흔들었다.
七
[편집]『물 여기 있어요』
하고 인숙은 잡힌손을 살그머니 빼어낸뒤에 자리끼사발의 뚜껑을 벗겨 봉환의 입에다 물을 대어주었다.
폭양에 사막을 걸어가든 약대와 같다고할가, 봉환은 업드 리여 목을 느리고 냉수 한사발을 뻘떡뻘떡 드리켰다.
『후-』
하고 한숨을 길게 내쉬고 나더니 그제야 제정신이 도는듯 (여기가 어디야) 는듯이 눈을 거슴츠레하게 뜨고 고치(蘭)를 짓는 누에처럼 머리를 돌려 사방을 살펴본다. 그려다가 인숙의 얼골이 바 로 제머리우에서 나려다보는것을 보고 또다시 (이게 누군가) 하는듯 물끄럼이 처다본다. 무한히 가엾어 하는 인숙의 표 정이 크로스, 업(大寫)이되여 제 눈동자속으로 가까히 들어 오자 바로 쳐다보기가 부끄러운듯 이벼개에다 얼골을 파묻 는다.
『그저 속이 거북하서요?』
인숙은 벼개를 바로 비어주며 나즉이 물었다. 봉환은 신음 하는 소리만 하면서 인숙의 묻는말을 못들은체하고 있더니
『난 죽어. 난 죽을테야』
하고자 홀쩍훌쩍 울기를 시작한다.
『그 그게 무슨 말슴야요?』
하고 인숙은 닥어앉이며 봉환의 머리를 얼싸않었다.
학교에서 낙제를 한것이 부끄러워서 또는 그지경을 하고 들어와서 어른들께 걱정 들을것이 겁이나서「난 죽을테야」
하는 봉환의 속이 안타깝게도 동경이되였다.
눈물을 흘여가며 진심으로 뉘우치고 제앞에서도 부끄러워 머리를 들지 못하는것이 애처롭기도하였다.
그러나 무어라고 위로를 해주었으면 좋을지 몰라서
『아까는 어디로 가신줄을 몰라서 퍽들 걱정은 하섰지만, 벌서 다들 가서 주무세요. 아무 생각도 마시고 편안이 주무 시기나 하서요』
하고 그다지 걱정 할것이 없다는 뜻으로 위선 안심을 시켰다.
『아버진?』
하고 봉환은 여전히 업드린채 묻는다. 안하부인인 봉환이 었만 그래도 이집에서 제일 무서운 사람은 아버지였다.
『아버님께서도 벌서 산정에서 주무세요. 래일 일어나시거 든 나쁜 동무들 헌테 속아서 그랬다고 엿줍기만하면 고만일 걸요 뭘』
동정에 겨운 인숙의 목소리는 명지고름같이 보드러웠다.
봉환은 매우 마음을 논듯 조금 머리를 처들며
『나 인제 학교에 안갈테요』
하고는 다시 머리를 떨어트린다. 벼갯머리에는 눈물이 떨 어저 돈짝만큼씩 얼누기가 젔다.
인숙의 눈에도 어느 겨를에 눈물이 괴였다. 봉환은 눈물을 부비면서 울음석근 목소리로
『저-』
하고는 말을 더듬다가
『아무 한테두 말허지 말우 응』
하고 뒤를 다진뒤에 몸을 뒤를더니 바지꽁문이를 더듬어 손을 넣는다.
인숙은 (통신부를 찾나보다) 하고 요밑에 넣었든 통신부를 얼는끄내서
『여기 뭬 빠젔에요』
하고 봉환의 손에다 쥐어주었다. 제가 먼저 끄내보았다는 말을 할수없었든것이다.
봉환은 통신부를 인숙에게 보여주려고 내밀다 말고 벌떡 일어나더니 뻣뻣한 조히를 북북찌저서 방바닥에다 끼언젔 다. 그러고는 참아 낙제를 했다는 말을 배아터 낼 용기가 없는듯
『저거 태버류』
한다. 그러더니 눈살을 찌프리며
『아이 머리 아퍼』
하고 인숙의 치마에 푹 업들어진다.
『네 걱정 마서요』
하고 인숙은 한손으로 조회쪽을 긁어모며 제 무릎에 봉환 의 머리를 비어주었다.
八
[편집]봉환은 다시 잠이 들었다. 밤은 새로 두시나 되여 방안은 더한층 조용해젔다.
사방탁자 우의 유리시계가 유난히 크게 잭각잭각 하면서 방안의 적막을 좀썰뿐.
인숙은 봉환의 머리 무게에 다리가 제리다 못해 감각을 잃 을 지경이요, 저녁을 굶어서 허기가 심하것만 제무릎헤서 봉환의 머리를 나려노려고 하지않었다.
질거우나 괴로우나 저와 한평생을 같이 살아나갈 남편되는 사람의 자는 얼굴을 들여다보고 그숨소리를 직히는것이 안 해로서의 신성한 의무인것처럼--.
전등불이 즉접으로 봉환의 얼골을 나려쏘아서 (불을 좀 가렸으면) 하면서도 봉환의 잠이 깨잀가보아 몸을 움즉일수없었다.
발치에 쓸어진채 팔을비고 자는 봉희를 잊어버리고 있었든 것처럼
『저렇게 베개도 안비고 자서』
하고 자리를 나려서 깔어는 주고 싶것만 (하로저녁쯤 어떨라구) 하고 다시금 봉환의 얼골로 뻑뻑한 시선을 떨어틀였다.
졸닌 고비를 넘기니까 정신은 또랑또랑 해젔다. 허기가 심 하든것도 때를 지내니까 아무러치도 않은것같다. 그러나 눈 이 깔딱하게 매어달니고 전신의 힘줄이 가닥가닥 풀어지는 것은 어쩔수없다.
그렇것만 인숙은 친정을 생각하였다.
(어머니는 요새는 근력을 좀 차리시나) (그 여펀네가 어머니헌테 과히 불공스럽게 굴지나안나) 하다가 돌아가신 아버지의 생각이 불현듯이 났다. 임종도 못하든것과 초종을 치르든 기억이 바 로 어제같이 나는데 벌서 삼년상도 다 치르고 지금은 분홍 치마를 입고 앉인 생각을 하니 (아아 세월도 빠르다) 하는 말이 가벼운 탄식과 함께 입을 새어나왔다.
그러다가 봉환의 얼골을 다시 나려다보고 (사위가 이만큼 큰것도 못보시고……남들처럼 가끔 데려다 자미를 보지도 못하시고 우리들이 나라니 가서 단 며칠식이 라도 양위분을 모시고 있다가 왔으면 좀 든든하고 대견하게 아섰을가. 이렇게 어수선한 집을 떠나서 조용한 과천집 건 넌방에서 정말 첫날 저녁을 치르듯 벼개를 나라니하고 누어 속은속은 이야기나 정답게 했으면 좀 좋왔을가) (요새같은 여름철이면 앞논에서 개고리가 울겠지. 지금도 울렸다. 우리집이 떠난뒤에 다른사람이 들었다지. 아아 정든 우리집! 뒷동산에서 밤이면 청승마께 울든 부엉새는 주인이 갈녔다고 울지 않을리야 있나. 오늘 저녁에도 부엉부엉하고 울는지 모르지) 인숙의 공상은 꼬리를 물고 끗날줄 몰랐다. 추억의 날개는 고향의 산천을 더듬었다. 그러나그 산천은 거츨었다. 꿈을 꾸어도 저의집은 삼청동의 오막살이가 아니요, 집웅에풀이 난과천의기와집이었다. 축동의 대추나무와 감나무가 선 그 동내! 점녜와 각시노름을 하든 양지발른 장독대와 봄이면 샛노란 휘장을 둘른듯 하든 개나리 울타리! 그 어느것이 그 립지않은것이 없다. 보고싶지 않은것이 없다.
인숙은 어느겨를에 눈두덩이 뜨끈해젔다.
(참 점녜는 싀집을 가더니 아이를 뱃다지. 첫아들이나날까.
낳거든 한번 안어나봤으면) 하다가 (그런데 유모는 벌서 간지가 언젠데 왜 그저 안올가) 하고 두달전에 손주며누리를 본다고 저의 집으로간 유모의 소식이 궁금하였다.
인숙은 다시금 제무릎을 벼개로 알고 씨근씨근 숨결거칠게 자는 봉환을 나려다본다. 아직도햇슥한 얼골은 갑싼 거울에 비최여 보는것처럼 어른어른 해보인다. 인숙의 속눈섭에 매 첬든 눈물한방울이 바로 봉환의 이마에 가똑 떠러젔다. 인 숙은 (이를 어쩌나) 하고 놀래며 소매로 눈물을 닥거주는데 봉환이가 흐릿하게 눈을 떳다. 머리를 들고 입맛을 쩍쩍 다시며 마른침을 삼키 더니
『나 물좀』
한다. 빈속에 냉수만 과히 마시면 해로울상 시퍼서 인숙은 문을 가만히 열고 발자국 소리를 죽이며 찬말루도 나가서 제사때에 쓰려고둔 커다란 배하나를 끄내다 주었다.
봉환은 배를 보자 눈이 번쩍 띠웠다. 두손으로 빼앗듯 해 가지고 껍줄채 어석어석 소리를 내며 탐스럽게 비어 문다.
뱃속까지 쭉쭉 빨고 나서는
『어이 시원해』
하고 인숙을 물끄럼이 치어다 보더니
『입대 안잤우? 그럼 여기서 자우』
하고 제 겨틀 가르치고는 인숙의 치맛자락을 잡어다렸다.
九
[편집]『어서 주무서요. 얼마아니면 날이 밝을걸요』
하고 인숙은 벼개를 밀어놓며 조금 떨어저 앉었다.
『인젠 속이 좀 편하서요』
하니까 봉환은 고개만 끄덕이더니
『아주 혼났수. 인젠 다시 술 안먹을테야』
하고 한숨을 내뿜더니 제자리우에가 불김을 쏘인 촛까락처 럼 쓸어진다. 머리맡에 쌍창사이로 숨여드는 새벽바람이 선 선해서 인숙을 미닫이를 여미고 이불을 덮어주고는
『동무들이 나쁘죠. 어쨌든 술을 또 입에다 대섰다가는 아 버님께 정말 걱정을 단단히 들으셔게요』
하고 빗대어놓고 다시는 술을 먹지 말라는 충고를 하였다.
봉환은 잘 알어들었다는듯이
『응』
하고 유순하게 대답을 하더니 눈시울을 찦으리고 전등을 쳐다보며
『아이 눈 부셔』
한다. 인숙은 일어나서 전등의 손잡이를 비틀었다. 금세 방 이 어두어지자 동창이 훤하게 밝어새벽빛이 창호지에 뿌유 스름하게 배여 들어온다. 인숙은 봉희의 곁으로 가서 벼개 를 비여주고이불을 더듬어 나려서 덮어주었다. 봉환이가
『여기서 자우』
하고 끌어다리기 까지 하는것이 여간 정답고 고맙지않건만 아무리 남편되는 사람의 곁이라고 한자리를 깔고 벼갤르 같 이비고 누을수는 없었다.
이번에는 봉희의 곁에가 쪼크리고 앉으며 저혼자 부끄러운 생각에 어둠속에서 얼골을 붉혔다
『왜 안자우? 벌서 몇신데』
하고 봉환은 벌떡 일어나더니 발치를 더듬더듬해서 인숙의 팔을 끌어다 제곁에 눕힌다. 인숙은
『여기서 잘테야요』
하면서도 잡힌손을 마조잡어 다릴수가 없어서 마지못하는 척하고 끌려가 봉환의 곁에 비스듬이 누었다.
봉환은 이제까지 인숙에게 대해서 별다른 감정을 느끼지못 하고 그저 막연하게
『저건 내 색시거니』
하야 왔으나 오늘저녁에 제 색시가 진심으로 저를 간호해 주고 그저 잠도 안자고 머리맡에서 앉은채로 밤을 밝히는것 이 고마울뿐 아니라 여간 미안하지가 않었다. 낙제를 한것 을 알듯한데도 조금도 어떳듯한 눈치를 보이지않고 술을먹 어 정신을 잃은것도 나쁜 동무에게만 잘못을 돌니는 것이니 속으로는 무한이 고마웠다.
(누가 날 이렇게 위해줄까. 어머니도 별당 할머니도 저를 내버려두고 벌서들 주무시지 않는가. 우리 색시가 없었드면 어쩔번했나) 하고 생각하니 (정말 나를 위해주는 사람은 이사람밖에 없구나) 하는 관념이 저절로 들었다. 그러나 봉환은 그 고마운 마 음과 미안한 생각을 말로나 행동으로 표현할줄 몰랐다. 바 로쳐다 볼수가없이 부끄러우면서도「여기서 자우」하고 손 을 끌어다린것이 고작가는 신뢰(信賴)와 애정의 표시었다.
그러나 그것은 어린동생이 나이가 듬쓱한 누이에게 엉석하 듯 잘못을 용서하여달라고 품에 안기는것과 거리가 멀지않 은 감정이었다. 한걸음 나아가 봉환이가 인숙에게 대하는것 은 치지한 안해가 점잖은 남편의 가슴에 품기려든것과나 방 불하다고 할가 인숙은 살그머니 치마를 벗어서 개켜놓고는 새우처럼 허리를 꼬부리고 봉환의 곁에 누었 다. 형용하기 어려운 야릇한 기대(期待와 이제까지 경험치못 하였든 불안으로 가슴이 두근거린다.
(봉환의 손이 제몸에 와닷지나 않을가. 자기 곁으로 끌어다 리지나 않을가 그러고는……) 하고 상상하자 인숙의 뺨은 확근하고 달었다. 그와동시에 그뺨을 해끔한 봉환의 얼골에다 대고부비고 싶은 충동을 느 꼈다.
(아이 망측해라 내가 왜이런 생각을 헐가) 하고 인숙은 두손을 두근거리는 젖가슴에다 대고 몸을 더 오그렸다.
연분홍 치마빛과같은 흥분과 자릿자릿한 부끄러움이 소름 이 끼치는듯 전신을 옷삭지나갔다.
十
[편집]새벽기운이 돌아 방안은 선선하건만 인숙은 열병이나 앓는 시초처럼 몸이 후끈거리고 갑갑증이나서 가만히 일어나 버 선을벗고 누었다. 비록 어둠속이었만 아무에게도 보이지않 은 하얗고 조금만 발이 혹시 봉환의 눈에나 띠울가하야 발 끝을 요밑에다 감추었다.
인숙은 숨을 죽이고 누어서 실눈을 덨다 감었다 하며 곁에 누은 봉환의 동정을 살폈다.
동창이 우유빛으로 밝어올사록 인숙의 편으로모로 누은 봉 환의 얼골이며 몸의 윤곽이 차츰차츰 히유스럼하게 들어난 다. 그렇건만 그 몸둥이는 화석(化石)이 된것처럼 인숙의 곁 으로는 더가까히 닥어오지는 않는다. 가만히 귀를 기우리니 씨근씨근 하는것이 자는 숨소리가 분명하다.
(또 잠이 들었나 보다) 하고 인숙은 마음이 놓이면서도 (아무리 몸이 거북하기로서니!) 하고 봉환이가 기냥 그대로 잠이든것이 서운하였다.
(내곁으로 더 가까히 와서 두팔로 꼭 안어주었으면) 하든 기대가 어그러진것이 불만도 스러웠다. 그러나 또 한 편으로는 (엇저녁에 그지경을 하고 들어 왔었는데 몸을 움직이지말 고 편안히 쉬어야지) 하고 봉환이가 다시 혼곤하게 잠이 든것이 다행하기도 하 였다.
인숙은 조금 내켜 누었다가 (참 아침에 옷을 갈어 입을텐데) 하고 일어나 새 고이적삼 한벌을 끄내서 봉환의 머리맡에 놓고 다시 누었다. 봉환의 숨소리를 숭내내듯하며 잠을 청 하였다.
날개를 다처가지고 들어온 어린나비는 꽃에서 푸대접을 한 것은 아니었만 그 꽃을 곁에두고 잎에서 잣다. 지척에서 향 기를 맡으면서도 취할줄 모르고 연연한 꽃송이가 방그시 화 판을 버리것만 그빛을 탐내일줄 몰랐다.
밝는날 아침 봉환은 인숙을 보기가 부끄럽고 열적은듯 어 느 겨를에 옷을 주서입고는 지밀로 튀어나갔다. 어디가 숨 어 앉었는지 인숙의 눈에는 띠우지도 않었다. 제방에서 봉 희의 머리를 빗겨주려니까
『새언니』
하고 봉희는 잠을 못자서 핏기가 없는 올케의 얼골을 거울 속으로 비최어 보며 생글생글 웃는다.
『엇저녁에 옵바허구 잣지? 나 얘기허는 소리 다 들었다- 누』
하고 한눈을 찌긋하며 놀린다. 인숙은 빗질하는 손을 멈추며
『얘긴 무슨 얘길 했단말요』
하고 얼골을 살짝 붉혔다.
『새언니두 가짓말허네. 날 이불을 덮어줄때 깨섰는데 옵 바가 자꾸만「여기와 자라구」허지 않었수? 그러니깐!
……』
하는데 인숙은 봉희의 말을 가로막으며
『그런소리 허면 머리 안빗겨 줄테요. 말을 시켜서 대답을 헌게 무에 숭이요?』
하고 얼레빗을 방바닥에다 던지며 조금 성을 내어보였다.
둘이서 이야기를 한것은 시인(是認) 하면서도 그말을 다른 사람에게는 허지말라고 겁나지 않을 정도로 시누의에게 엄 포를 한것이다.
『새언니 성냈수? 그럼 내 그런말 안헐께』
하고 봉희는 무색한듯이 고개를 숙였다.
아침뒤에 봉환은 큰 사랑으로 불려나갔다. 아버지에게 꾸 지람을 톡톡이 듣는 모양이다. 아들의 낙제를 해서 자기체 면까지 사나운것은 둘재요 머리에 피도 말르지 않은것이 벌 서 부터 나쁜 동무와 얼려다니며 술을 먹은것이 큰일날 장 본이라고 아버지는 이번 기회에 아들을 단단히 징계하려는 것이다.
『종아리채 해 오너라』
하는 대감의 호령이 안채에 까지 들렸다. 조금있자 상노가 들어오더니 마당구석에선 싸리비를 풀어서 들고나갔다. 그 것을 본 인숙은 매를마지려고 종아리를 걷고선 봉환이 만치 나 겁이났다 다리가 부들부들 떨렸다.
인숙은 지밀로 급히 들어가 봉희를 찾아 어깨를 끄러 안으며
『이를 어쩌우. 옵바가 큰 사랑에서 종아리를 맞는데 어서 좀 나가보우』
하고 봉희의 등을 밀었다. 봉희는 눈이 똥그래지더니 금방 울상이되어서 신을 짝짝이로 꾀고 뛰어나갔다.
十一
[편집]봉희는 종아리채를 잡은 아버지의 팔에 매어달렸다.
『이년 물러서라』
하는 호령도 못들은체 하고 매가 돌아가는데로 사매로 얻 어 맞어가며
『오빠 달어나우 어서 달어나!』
하고 기를 쓰고 말렸다.
오라비의 앞을 이리 막어서고 저리 막어 서다가
『이년 냉큼 물러나거라』
하는 아버지의 호통과 함께 넘겨치는 휘청휘청한 댑싸리끝 에 봉희는 눈두덩을 맞었다. 봉희는
『애고머니!』
하고 폭 엎드러지며 방 바닥에가 때굴때굴 굴른다.
그다지 아프지는 않것만 당장 눈이나 멀게된것처럼 암살을 하며 엉엉 울었다.
아버지는 눈이 휘등그래서 종아리채를 던지며
『글세 이년이 왜 달녀들어서……』
하고는 (눈을 다첬으면 어쩌나) 하고 얼골을 가리고 엎드린 딸의 손을 버리고 눈두덩을 부 벼준다. 그 서슬에 봉환은
『옳다꾸나』
하고 맨발로 뛰여 안으로 들어갔다.
봉희는 오라비가 도망간 낌새를 채고 발딱 일어서더니
『제가 대신 맞었으니깐 이제 오빠를 때리지마세요 네 아 버지』
하고는 눈을 싹싹 부비며 앵금질을 하듯이 깡충깡충뛰어 안으로 들어갔다. 아버지는 딸의 눈이 과히 다치지 않은것 만 다행해서
『온 고년 억척스럽거든』
하고 장죽에 담배를 담는다. 오라비를 빼어돌린 막내딸이 귀엽기도 해서
『남매간 우애는 제법이야』
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화를 풀었다.
제방으로 피해 들어와 골방속에가 숨어 앉었든 봉환은 그 제야 안심을 하고 나와서 누의의 어깨를 두들여주며
『얘 너 아녔드면 여기서 아주 피가 낤번했다』
하고 종아리를 가르치더니 슬금슬금 찬마루로 나가서 과일 이며 마른실과를 한아름이나 훔처가지고 들어왔다.
『이러다가 이번엔 어머니헌테 매를 마질라우』
하면서도 봉희는
『이까짓게 대신 매마진갑신가』
하고 왜귤을 까는데 인숙이가 문을 살그머니 열고 들어왔 다. 인숙은 봉환이와 얼골이 맞오치면 무안해 할가보아 제 방에를 들어오지 않으려다가 불가불 가지고 나갈것이있어 들어왔다. 들어와서도 남편이 종아리를 마진것을 않는 눈치 는 보이지 않고 도로 나가려는데
『정말은 새언니가 오빠가 매를 맞는다구 얼핏나가 보라구 날막 떠다밀어서 나갔섰다우. 그러니깐 이건 새언닐 줘야지 않우「고맙습니다」허구 절이나 한번해요』
하고 봉희는 왜귤 하나를 집어서 오라비의 손에다 공처럼 던진다.
인숙은
『아이 자근아씨두. 난 알지두 못했우』
하고 눈을 알에로 깔고 문을 열고 나가려는데 봉환은 얼굴 을 조금 붉혀가지고 머뭇 머뭇하더니 인숙이 앞을 가로막으 며 마조 처다보지도 못하고
『었우』
하고 봉희에게서 받은 왜귤을 전한다. 지난 저녁이래로 인 숙에게 거듭 고마운 생각은 마음속에 가득하나「고맙소」하 고 치사를 한수도 없든차에 누의의 심부름인 척하고 귤을 불쑥 내민것이다 인숙은
『이건 제사에 쓸건데……』
하면서 머처럼 보이는 남편의 호의를 거절할수없어 두손을 조금 앞으로 내밀었다.
『그건 꼭 오빠 앞에서 먹구 나가야 허우』
하고 봉희가 치맛자락을 끄러나려 앉지려니까 인숙은 입모 습에다 가느다랗게 우슴을 띠우며
『있다 같이 먹읍시다』
하고 탁자우에다 그 귤을 조심스럽게 올려놓고 나갔다.
十二
[편집]그후로 봉환은 전보다도 더 인숙의 방에를 자조 드나 들었 다. 옷은 물론 제방에서 갈어입지만 군것질하는것도 즉접으 로 인숙을 졸르고 그림을 그리는것이나 작난감까지도 제댁 의 방으로 끌고 들어와서 비나 오는날이면 온송을 나가지를 않었다.
인숙이가 아무말없이 무슨 심부름이든지 영등같이 해주는 데 자미가 나고 조금이라도 잘못하는 일이 있으면
『그러지 마세요. 걱정들으시면 어떡해요』
하고 말시보드랍게 타일르듯 할뿐이오 일을 저질러도 감추 고 싸돌려서 어른들에게 걱정을 듣지 않게 할뿐아니라 인숙 은 봉희와 입을 모아가지고 사무송하도록 꾀를 내여주기 때 문이다. 그래서 봉환은 이집의 누나보다도 인숙을 믿게되였 고 제댁의 방이 어른의 눈을 피하는 유일한 피난소였든것이다.
그래서 요사이는 환등을 놀린다고 기구를 사가지고 들어와 벽에다 힌 조이쪽을 부치고 전등을 끄고는 봉희와 둘이 법 석을 해가면서 초저녁부터 부산을 떤다.
낙제를 아니했드래도 방학때니까 학교에는 가지 안치만 당 초에 책을 떠들어볼 생의도 아니한다.
(저렇게 공부를 않어다가 오는 학기에 또 창피를 당하면 어떡하나) (자근아씨까지 번번히 우등을 허는데 무엇이 부족해서 남 에게 빠질가. 종아리까지 맛고도 왜 정신을 못차릴가) (그날 지낸일은 잊어버린것처럼 부끄러운줄도 모르고 저렇 게 작난만 헐가) 하고 인국은 딱하고 분하고 답답해서 말없이 봉환의 얼굴 을 불끄럼이 볼때도 많었다.
(어떻게든지 내가 꼭 붓잡고 공부에 자미를 부치게 해야지) 하고 결심도 해보았다. 그러나 어른들처럼 공부를 아니한 다고 잔소리를 하면 돌이어 봉환의 반심을사서 간신히 제품 으로 기어든 파랑새를 노질것만같었다.
(슬금 슬금 달래고 타일르듯하다가 저절로 지각이 나서 공 부에 착심을 하도록 해야지. 지금비위를 거슬렸다는 안돼) 하고 무슨 말이든지 싹싹하게 듣고 어떠한 심부름이든지 고분고분이 해주는것이었다. 그러다가 정으로 사랑으로 굴 레를 씨워놓고 정성껏 지도를 해보리라하고 제법 어른처럼 궁리를 허다가도
『난 뭘 아나 나버텀 아모것도 모르면서』
하고 반성도 해보았다. 그러다가도 (어쨋든 첫재 맘을 잡게 해줘야지. 공부에 자미를 부치게 해주기만허면) 하었다. 생각다 못하야 나하고 한방이나 썼으면 하고 공상 도 해보았다. 그것은 무슨 다른 생각으로가 아니라 봉환과 한방에서 기거를하면 식전아니 잘때만 이라도 복습을 시켜 줄수가 있을가하고 생각한것이다.
그러나 싀조모나 싀어머니는 잘때쯤 되면 안잠자기나 침모 를 시켜 봉환을 불러냈다.
『아이 졸려 나 여기서 잘테야』
하고 봉환은 하품을 하면서 인숙의 요미를 쑤시고 들어 갈 때도 있고 봉희가 여럿이 자는것만 좋와서
『우리 셋이 같이 잡시다 공집기해서 수밀로 사다먹을가』
하고 오라비의 소매를 끌때도 있건만 봉환은 반드시 별당 으로 가서 자야만한다.
『철없는것이 제 방엘 자조 들어가 버릇하면 못쓴다』
하고 할머니는 손자가 손부의방에서 늦도록 노는것까지 맏 당치 않게 녁였다. 그뿐만아니라 싀어머리도 곁에 사람들이
『서방님이 저만큼 점잔어지섰는데 고만 합레를 시키시죠 새아씬 벌서 어른이 다되섰는뎁쇼』
하고 저의가 걱정이나 되는듯 권하면
『온 별소리 다 허네. 자근 서방님을 못 보나?』
하고 핀잔을 준다. 둘재 아들이 연골에 제색시를 넘우 받 지다가 보족증으로 보약을 수십제나 먹어도 얼굴에 노랑꽃이 핀채로 있어 금년에도 삼방약수포 로 피접을 보냇는데 그것을 못보았느냐는 말이었다.
그러나 봉환은 제색시방에서 못자게 하는것이 불평인듯 근 자에는 하로 걸러큼씩 저녁만 먹으면 어디론지 종적을 감추 었다. 몰래 빠저나가기만 하면 자정때가 되여두 들어 올줄 몰랐다.
十三
[편집]봉환의 다니는곳을 몰라서 인숙은 적지아니 걱정이되였다.
그래서 인숙은 몰래 봉환의 뒤를밟었다. 어느날은 봉환이가 급한볼일이나 있는것처럼 허둥지둥 저녁을 먹고는 별당뒷문 을 빠저나가는것을 담모통이에 숨어서서 보았다.
인숙은 봉희더러
『옵바가 요새 어딜갔다가 늦게야 돌아온다우?』
하고 슬그머니 물어보았다.
봉희는
『난 몰루. 나헌텐 어디간다구 그러구 나가나. 언니가 옵바 더러 물어보구려』
한다. 어떤때는 싹싹하게 굴다가도 조금만 비위가 틀니면 만만한 저만 들복고 구박을하는 오라비가 나가고 없는것이 과제장을 하는데도 방해되지 않었다. 그래서 봉희는 오라비 가 밤마다 나가노는것을 돌이어 다행이 역이는 눈치다.
『또 나쁜 동무들 허구 얼켜 다니다가 술이나 취해들어나 오면 어쩌우?』
하고 한 걱정을하면
『어쩌긴 어쩌우. 이번엔 아주 혼나지』
『그래두 걱정을 들으면 안됐으니 아무 헌테두 말허지 마 우』
하고 인숙은 싀누의에게 말조심을 시킨다. 「아무헌테두 말마우」하는것은 셋이 돌려가면서 암호처럼 쓰는문자였다.
할머니나 어머니가 가끔 가다가 큰 사랑에서 봉환을 찾는 때도 있건만 원체 집이 넓어서 밤이면 순경까지 도는터이라 어느방에가 있는지 찾기가 힘이 들었다. 산정에서는 별당에 가 자거니하고 별당에서는 제방이 아니면 자근 사랑에서 노 는줄만 안다. 그래서 서로 신지무의 하고 찾지않는것을 기 회로 봉환은 거의 저녁마다 나가는것이엇다. 나제는 인숙의 곁을 비슬비슬 피해다니며 제방에도 잘들어오지 않는다.
인숙은 하도 궁금하고 걱정이 되여서
『양말이 해젔는데 옵바더러 들어와 갈어신으시라구 그러 우』
하고 봉희는 시켜서 봉환을 제방으로 불러 들였다.
봉환은 들어와서 인숙은 처다보지도 않고 빵꾸난 양말을 훌떡 버서 던진다.
인숙은 새양말을 끄내놓며
『어쩌녁에 퍽 늦게 들어와 주무섰죠?』
하고 슬그머니 물어보았다.
『아-니』
하고 봉환은 새양말을 뀌며 머리를 흔든다.
『열두시까지 별당엔 안계시든데요』
봉환은 머뭇머뭇 하다가
『저 자근 사랑에서 수복이허구 환등 놀렸수』
한다. 인숙은 봉환의 얼굴을 똑바로 보며
『환등요? 환등 놀니는 기구는 그저 저밑에 있는데요』
하고 머릿장 밑에 감추어둔 둑거운 마분지 상자를 가르쳤다.
봉환은 뒷생각없이 한일이 외착이나니까 대님을 아무렇게 나 매고 벌떡 일어서더니 무색한듯 뒷통수를 긁으며
『아무 헌테두 말허지 마우』
하고는 문을 거더차고 나가 버린다.
인숙은 쫒어 나가며 더 추궁하려고는 들지 않었다. 물어 본대짜 거짓말밖에 나올것이 없는게 빤하였든것이다.
그러나 (어째서 나헌테까지 바른대로 말을 허지 않을까) 하니 이제까지 공들여 쌓어 올니든 탑이 탈싹 문허진듯 여 간 섭섭허지 않었다. 다른사람에게 몰라도 저헌테만은 바른 대로 말을 해줄줄 믿었든 것이다.
(이래선 안되겠어. 다시 빗뇌이면 큰일이야) (어디로 든지 들어 오는걸 꼭 붙잡고야말걸) 하고 인숙은 단단히 결심을 하였다. 그러나 나갈때에는 별 당뒷문으로 빠저 나가는것을 보았지만 열시만되면 안밖의 대문을 죄다 닫어거는데 어디로 들어올가. 담이 높아서 길 반이나 되는데 어떻게 넘어 들어올까---그것이 의문이었다.
인숙은 봉희에게 귓속을 한후 수복이를 불러세우고
『너 저녁먹구나서 뒷겻 담밖에 가 숨어 있다가 새서방님 이 나가시거든 어디로 가시나 따러갔다 온. 내 이거죽게 아 무헌테두 말허지마라 응』
하고 신신 당부를 허며 봉희가 십전짜리 한푼을 쥐어주었 다. 수복이는
『들키면 경치게요』
하면서도 허리춤에 돈을 감취느라고 병신성스럽게 바지를 추켜 입으며 나갔다.
그러나 봉환의 뒤를 따러나간 수복이는 함흥차사다. 열한 시나 되여 인숙은 눈이 깜아케 기다리다 못해서 봉희가 잠 든것을 보고 일어났다. 살그머니 문을 열고 발끝으로 걸어 별당뒤로 돌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