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탑/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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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商船 · 太陽

때는 기미(己未)년 二월 二十七일― 인제 이틀만 무사히 지나면 이천만 한국 민중이 자주 독립을 위하여 일제이 일어설 三월一일 전전날 아침이었다.

그날 아침 서선(西鮮)의 유일한 항구 남포(南浦) 부두에는 태양환(太陽丸)이라는 기빨을 펄펄 휘날리며 한척의 상선이 천천이 입항(入港)하였다.

언제나 배가 항구로 들어올 때면 해상에선 보지 못하던 활기를 띠우건만 그러나 이 태양환만은 어째 그런지 배 전체가 깊은 우수(憂愁)에 잠겨 있었다. 아마도 무슨 말못할 불길을 싣고 온 모양이다.

태양환의 배임자 모영택(毛榮澤)씨는 아까부터 부두에 서서 무슨 불길을 싣고 온듯 한 태양환이 어서 들어 오기를 목을 늘여 기다리다가 배가 닫자마자

『봉룡이, 어째 그리 풀들이 죽었나? 무슨 일이 생겼는가?』

하고 맨먼저 배에서 뛰여 내린 한 사람의 젊은이를 향하여 걸어 갔다.

아직 연세는 스물이 될락말락한 젊은이었으나 태양환의 일등운전사(一等運轉士)인 이봉룡(李鳳龍)은 미목이 수려하고 체구가 바위처럼 건강한 청년이었다.

『주인님, 불행한 일이 한가지 생겼습니다. 대련(大連)을 출발한 지 열두시간 만에 김선장(金船長)이 뇌막염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김선장이 세상을 떠났다?』

『네―』

이봉룡은 그리고 뱃사람들을 향하여

『돗을 내리고 닷을 주어라!』

하고 커다란 소리로 명령을 하였다. 선원들은 곧 봉룡의 명령에 복종을 한다. 김선장을 잃은 이 태양환의 선원들이 아직 갓스물도 못된 이봉룡의 명령을 추호도 거역하지 않고 순순히 복종하는 것을 본 모영택 선주(船主)의 얼굴에는 적지 않은 만족의 빛이 떠돌았다.

『봉룡이, 그래 장례식은 정중이 했는가?』

『네, 전과 같이 머리와 발에다 서른 여섯근짜리 추를 달아서 수장(水葬)을 했습니다. 그러나 생각하면 그처럼 용감하시던 선장이 그렇게 갑자기 돌아가실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음, 그러나 늙은이가 젊은이 보다 먼저 죽는 것은 인간의 상도(常道)거든. 그래야 후배에게도 승진(昇進)의 길이 열릴께 아닌가.― 그래 짐은 무사한가?』

『네, 짐은 조금도 손상 없이 무사히 싣고 왔습니다. 아 장현도(張鉉道)씨가 지금 배에서 내려옵니다. 자세한 말씀을 주인님께 들려줄 것입니다. 그럼 전 잠깐 배에 올라가서 선원들을 감독하고 오겠습니다.』

이봉룡은 다시 배로 뛰어 올라 갔다. 그리고 그와 어바꾸어 이 태양환에서 회계사무(會計事務)를 맡아 보는 장현도가 모선주(毛船主) 앞으로 다가왔다.

여기 새로이 등장한 장현도로 말하면 나이 스물 대여슷, 어딘가 음침한 얼굴의 소유자로서 아랫사람에게는 뽐내기를 좋와하고 윗사람에게 아첨을 잘하는 인물이었다. 선원들이 가장 싫어하는 회계사무를 맡아보는 탓도 있겠지만, 이봉룡이가 선원들에게 사랑을 받는 것과는 정반대로 그는 배에서도 그리 평판이 좋지를 못했다. 장현도는 굽실하고 절을하며

『주인님, 안녕하셨습니까? 김선장이 돌아가섰다는 말을 들으섰지요?』

『들었소. 그처럼 용감하던 선장이.......』

『참으로 천만 뜻밖입니다. 우리 모상회(毛商會)에는 없어선 않될 인물이었는데요.』

『그러나 그대신 봉룡이가 있으니까 일에는 별로 지장이 없을 것이요. 보시요. 저처럼 자기의 일을 누구헌테 묻지 않고 척척 해나가고 있으니까.』

『네―』

하고 장현도는 그때 그 어떤 증오의 눈초리로 배위의 봉룡을 한번 힐끗 바라보고 나서

『그러나 아직도 좀 나이 어렸어요. 김선장이 돌아가시기가 바뿌게, 벌서 자기가 선장이나 된것 처럼.......』

『그러나 그것은 일등운전사로서의 책임이 있으니까 그랬겠지요. 그리고 사실말이지, 나이는 좀 어리다구 해도 일에 있어서는 죽은 선장에게 지지 않을 것이요. 나이 어리다고해서 선장이 되지 말라는 법은 없으니까.......』

그순간 장현도의 얼굴에는 한점의 검은 구름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리구 대련을 출발하여 곧장 남포로 돌아오는 것이 아니고 상해(上海)에 들러 왔답니다. 그래서 사흘이나 늦어 졌습니다. 도모지 하는 일이 어디 마음이 뇌야지요.』

『상해에 들러 왔다구? 그건 또 무슨 이유로?』

『내야 압니까? 봉룡이 선장더러 물어 보시구려.』

『봉룡이, 이리 좀 내려오게.』

모영택 씨는 봉룡일 불러 내렸다. 장현도는 서너 걸음 물러서서 봉룡이에게 자리를 내여 주었다.

『불르셨습니까. 주인님?』

『음, 한가지 물어볼 말이 있는데,...... 자네는 무슨 이유로 상해에 들러 왔는가?』

『그것은 저도 모릅니다. 저는 다만 선장의 최후의 명령을 지켰을 따름입니다. 김선장은 돌아가실때 제게 조그만 봇다리를 한개 주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二월二十四일 오후 일곱시쯤 해서 상해부두에 도산선생(島山先生)이 뵈일테니 틀림없이 봇다리를 전하라구 하셨습니다.』

그때 모영택씨는 눈을 둥그랗게 뜨고 사방을 한번 돌아본 후에 낮으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저 안도산(安島山)선생 말인가?』

『네.』

『음!―』

하고 감개무량한 듯이 한번 깊은 신음을 하면서

『그래, 안선생께서 안녕하시드냐?』

『네.』

『봇다리를 드렸는가?』

『네. 드렸더니 안선생께서 제 손을 꽉 부여잡고 김선장이 돌아가신 것을 애석히 생각하며, 먼 길에 수고가 많았소! 하고 말씀 하시였습니다.』

『음!』

『그리고 이 배는 누구 배냐고 물으시길 래 진남포 모상회의 주인 모영택씨의 배라고 대답하였더니 안선생께서는 아, 그런가! 그의 부친과는 동향이었어 잘 아신다고 하면서 돌아가거던 주인님께 인사를 여쭈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음, 뜻도 하지 않은 자네의 입에서 안선생의 안부를 들을 줄은 꿈밖이었네! 안선생은 내 돌아가신 가친과는 절친한 사이였네.』

하고 모영택씨는 봉룡의 손을 잡으며

『자네는 훌륭한 일을 하였네! 그러나 안선생과 만났었다는 말을 절대로 입 밖에 냈어는 아니돼! 위험한 일이니까.......』

『어째서 제 몸이 위험합니까? 저는 그 봇다리 속에 무엇이 들었는지도 모르는데요. 아, 세관에서 관리들이 나왔습니다. 잠깐 실례하겠습니다.』

봉룡은 관리들 옆으로 달려가고 장현도는 모영택씨 옆으로 다가 왔다.

『어떻습니까, 주인님? 상해에 들러온데 대해서 무슨 훌륭한 이유가 있습니까?』

『훌륭한 이유가 있소. 봉룡은 다만 김선장의 명령을 복종했을 따름이요.』

『아, 김선장의 말이 났으니 말이지, 선장으로부터 주인님께 보내는 편지를 갖구 오지 않었습디까?』

『누구가?』

『봉룡이가 말입니다. 선장이 봉룡이에게 무슨 봇다리 하나와 편지 한장을 주는 것을 선장실 앞으로 지나가다가 얼핏 본상 싶었었는데...... 그럼 내가 아마 잘못 봤나 봅니다. 봉룡이에게는 그런 말씀을 하지 마십시요. 제가 잘못 본것 같으니까요.』

『그래, 봉룡인 그 봇다리를 어떻겠는지 장군은 모르오?』

『상해 부두에서 어떤 점잖은 신사에게 주는 것을.......』

그말을 들은 순간, 모영택 씨는 마음으로 저윽이 당황해 하면서 대답하였다.

『내게는 아모런 편지도 없었소.』

『네네, 그렇습니까. 암만 생각해도 제가 잘못 봤습니다.』

그러면서 장현도는 저편으로 가 버리고 말었다. 그때 세관 관리들과 사무를 끝마치고온 봉룡이에게

『봉룡이, 인젠 일이 다 끝난것 같으니 가치 가서 점심이나 할까?』

『고맙습니다. 그러나 주인님, 제게는 제가 바다에서 돌아 오기를 하늘처럼 기다리는 늙은 아버지가 게십니다. 용서하십쇼.』

『아, 참말 내가 깜짝 잊었군. 자네는 남포 바닥에서 둘도 없는 효자였었겠다! 그럼 먼저 아버지를 만나 보고 그 담엔 내 집으로 좀 와 주겠나?』

『주인님, 또 한가지 청이 있습니다. 아버지보다 못지 않게 저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또 한 사람 있습니다.』

『아, 참 그렇군! 태양환의 소식이 궁금해서 세번식이나 나를 찾아온 옥분이― 해변에 핀 한떨기 해당화 처럼 어여쁜 계옥분(桂玉粉)! 봉룡이, 자네는 행복한 사람일세!...... 아 그리구 돈이 필요하거든 좀 갖다 쓰게.』

『괜찮습니다. 제게는 아직 석달분 월급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자네는 언제 봐야 착실한 절약가거든.』

『주인님, 제게는 가난한 아버지가 있지 않습니까?』

『음, 자네는 정말 효잘세.― 그런데 저 김선장이 세상을 하직할 때 내게 무슨 편지 같은 것을 전하지 않던가?』

『없습니다. 원체 갑자기 돌아 가셔서...... 아, 정말 생각난 김에 지금 말씀 드립니다 만 한 열흘동안 제게 휴가를 주실 수 없을까요?』

『아, 그동안 옥분이와 결혼식을 거행할 셈인가?』

『네, 그렇습니다. 그리고 서울엘 잠깐 다녀 올 셈으로.......』

『어서 맘대루 쉬게나. 선장이 없는 태양환이 어떻게 출범(出帆)을 하겠나?』

『선장이라구요?』

봉룡은 꿈이나 아닌가고 펄떡 뛰면서

『주인님 말씀이 정말이십니까? 절 정말 태양환의 선장을 시켜주실 셈입니까?』

『자넬 선장을 시켜서 않된다는 법은 없지 않은가?』

『아아 주인님!』

봉룡은 눈물을 글성글성하면서

『감사합니다!』

『정직한 사람은 하늘이 돕는 법이다. 자아, 어서 가서 아버지를 만나 뵙고 옥분일 만나 보고 그리구 그 담엔 나한테 와 주게.』

『고맙습니다. 주인님!』

『그런데 봉룡이.』

『네?』

『만일 자네가 선장이 된다면 저 장현도를 그대루 두워 줄텐가?』

『장현도씨와는 언젠가 한번 쌈을 한댐 부터는 사이가 좀 멀어 졌습니다만 주인님께서 신용하는 사람이라면 저는 절대로 존경을 하겠습니다.』

『음, 자네는 아모리 봐야 정직한 청년이야. 자아, 그럼 어서 다녀 오게.』

『그럼 다녀 오겠습니다.』

태양환의 선주 모영택씨는 만족한 얼굴로 멀리 감실감실 사라지는 봉룡이의 행복스런 뒷모양을 언제까지나 바라보고 섰을 때, 거기서 얼마 떠러지지 않은 장소에서 역시 봉룡의 뒷모양을 물끄럼이 바라보고 섰는 사나이가 한사람 있었으니, 그는 지금 악마와 손을 잡고 한사람의 무고한 젊은이를 행복의 꼭대기에서 절망의 구렁지 속으로 떨어 뜨리기를 마음 깊이 음모하고 있는 태양환의 회계 장현도 그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