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탑/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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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海棠花


태양환의 선장이 된다. 그리운 아버지를 뵙는다. 사랑하는 옥분이와 멀지 않어 결혼을 한다— 아아 그것은 생각만하여도 가슴이 오주주하니 떨리는 커다란 행복이 아닐 수 없었다.

봉룡은 발바닥이 땅에 붙을 사이도 없는 듯이 아버지의 처소를 향하여 어린애 처럼 줄다름을 쳤다. 七十이 넘은 봉룡의 늙은 아버지는 비석리(碑石里) 어떤 오막사리 한간을 얻어 가지고 손수 끼니를 끄려 먹고 있었다.

『아버지!』

하고 불으짖으며 고루쇠가 떠러저 나갈 듯이 방문을 열어 제치고 뛰여 들어 간 봉룡의 눈 앞에는 지금 수수죽 한 그릇을 앞에 놓고 간신이 목숨을 유지하려는 늙은 아버지의 처참한 자태가 버려저 있었다.

노인은 수저를 든채 잘 보이지 않는 눈을 더듬어 꿈결처럼 아들을 멍하니 바라보고 앉었다.

『아버지! 접니다! 봉룡입니다!』

그러면서 봉룡은 아버지의 해골 같이 쇠약한 몸둥이를 끌어 안았다.

『오오, 봉룡이가 돌아 왔구나!』

그때야 노인은 그것이 자기 아들인 줄을 비로서 깨다른것 처럼

『이번에는...... 이번에는 꼭 널 다시 만나 보지 못하구 죽는 줄로만 알았더니.......』

『아버지, 왜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인제부터 우리는 행복한 살림을 하게 된답니다.』

『행복하게 된다구?...... 다시는 바다에 않 나간다는 말이냐? 네가 내 옆에서 떠나지 않는다는 말이냐?』

『아닙니다 아버지. 바다엔 또 나가지만...... 저 김선장이 돌아 가셨답니다. 그래서 제가...... 제가 선장이 될것 같습니다. 그렇게만 되면 월급은 千냥(百圓)이나 되구 또 리익배당두 있구...... 아버지, 기뻐 하세요 네!』

『음...... 그러나 운이 너무 좋은 것두 좋지 않은 일이야.』

그때야 비로서 봉룡은 아버지 앞에 놓인 수수죽 그릇을 보았다.

『아버지, 그런데 수수죽은 왜 잡수십니까? 저번 제가 떠날 때에 석달분 식찬 값을 드리구 갔었는데요.』

『음, 그러나 방세를 자꾸만 재촉을 해서 그 돈으루.......』

『아아, 아버지!』

봉룡은 가슴이 터질것 같았다.

『그러면 방 세를 제하고 석달 동안에 단돈 쉰쉰냥(六圓) 가지고 살으셨다는 말씀입니까?』

『내야 무슨 그리 많은 돈이 필요하느냐?』

『아버지, 용서하십시요!』

『아무 것두 생각 말구, 인제부터 네가 잘 된대니 그것만 생각하기루 하자.』

『그렇습니다. 아버지! 인제는 제게두 히망이 있습니다. 그리구 얼마간 돈두 생겼습니다. 자아, 이것으로 무엇이던지 아버지 사시구 싶은 걸 사십시요.』

그러면서 봉룡은 주머니에서 석달분 월급을 고스란이 내놨다.

『그것이 누구 것인고?』

노인은 놀랜다.

『제 것입니다! 아버지 것입니다! 아니 우리 두 사람의 것입니다!』

『오오!』

노인의 얼굴에는 생기가 돌았다.

그때 이집 주인 박돌(朴乭)이가 들어 왔다. 박돌이는 밖앝채 구멍가개에서 조그만 미천으로 천장사를 하는 상인이었다.

『아, 이거 봉룡이가 아닌가?』

장사아치는 언제던지 인사가 깍득한 법이다. 그러나 봉룡은 대답이 없었다. 그동안을 참지 못하여 석달 동안 자기 아버지에게 수수죽을 먹인 박돌이 아닌가!

『인제 부두엘 나갔다가 저 장현도를 만났더니, 아 봉룡이가 태양환의 선장이 된다질 않겠습니까? 아 어찌나 기뿐지 글세 남의 일 같지가 않습니다 그려.』

『고마우오. 우리 집안 일을 그처럼 친절히 생각해 주시니.......』

아들 대신 노인이 대답을 하였다. 박돌이는 그순간 약간 얼굴을 붉히며

『봉룡이가 선장이 된다는 말을 들으면 저 옥분이두 기뻐할 것이요.』

그때 봉룡은 비로서 생각이 난듯이

『아 아버지, 저 잠깐 억낭틀(億兩機里)에 다녀 오겠습니다.』

『오냐, 어서 다녀 오너라. 네 안해가 얼마나 기뻐하겠니?』

이 말을 들은 박돌이는 비웃는 어조로

『안해라구요? 아니 옥분이가 벌서 봉룡이의 안해가 됐었던가요?』

『아직 된 것은 아닙니다만 아마 十중八九 내 안해가 될 것입니다.』

하고 봉룡은 자신있는 대답을 하였다.

『글세 그건 두구 봐야 알지만....... 하여튼 예쁜 꽃에는 나비들이 자꾸만 히롱하는 법이라네. 그러니까 그만큼 주의를 않하면 때워 버리기가 일수거든.』

『그러나 옥분이 만은 그런 여자가 아닙니다! 나는 그것을 믿습니다!』

『암 그래야지. 안해를 얻을 땐 믿는 것이 젤 맘 편한 일일 밖에...... 자아, 어서 다녀 오게.』

『그럼 아버지, 다녀오겠습니다.』

봉룡은 헤아릴 수 없는 그어떤 불안을 느끼면서 밖으로 뛰여 나갔다.

이윽고 박돌이도 노인네 방에서 나왔다. 그리고 그 길로 박돌이는 저편 골목 전선때 뒤에서 기다리고 있는 장현도를 만났다.

『박돌이 그래 봉룡일 만나 봤나?』

『음, 지금 만나고 오는 길인데, 봉룡이가 선장이 되는건 기정사실인 모양이데. 그렇게만 되면 봉룡이 녀석두 인젠 팔자를 고친 셈이 아닌가! 적어두 남포 바닥에서 손을 꼽는 태양환의 선장이야, 선장님.』

『흥! 돼 봐야 알지 뭘그래? 내가 손꼬락 하나만 달싹하면 극락세계로부터 지옥으로 떨어져, 지옥으루.』

『뭐라구? 지옥이라구?』

『아무것두 아닐세. 나 혼잣 말이네.— 그래 봉룡이 녀석은 여전히 억낭틀 옥분이한테 반했던가?』

『아 반하구 말구, 두말 할것 있겠나? 지금두 옥분일 만난다고 뛰여 나갔는데.— 그러나 잘못하다가는 때우기가 십상필구지.』

『때우다니? 아, 여보게 박돌이, 좀 자세한 이야길 알려 주게나!』

장현도는 귀밑이 으쓱 해지며 바싹 박돌이에게 달려 붙었다.

『나두 자세한 건 모르지만 옥분이가 억낭틀 해변까에 조개를 주려 나오면 그뒤로 어떤 남자가 한사람 꼭 따라 다니는 걸 봤어.』

『음, 옥분일 손아귀에 널 셈인가?』

『나이가 스물 한두살쯤 되여 보이는 젊은인데, 잘못하다가는 그녀석한테 때우기가 쉬울껄.』

『음, 잘 알았네! 봉룡인 이재 억낭틀로 갔었대지?』

『응, 나보다 한 걸음 먼저 집을 나왔으니까—』

『그럼 박돌이, 우리도 그리로 가 보세. 길거리 주막에 들러서 한잔 먹세나. 한잔 먹으면서 기다리노라면 봉룡이 녀석이 돌아올 것이 아닌가? 그리구 그 녀석의 얼굴만 보면 일이 어느 정도루 진행되는지 대개는 짐작할테니까.』

『그래 가 보세. 그러나 술 값은 자네가 내야 하네.』

『염려 말래두 그래.』

이리하여 장현도와 박돌이는 억낭틀 행길까 어떤 주막으로 들어 가서 술상을 펴 놓고 봉룡이가 옥분이의 집으로부터 돌아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보다 약 한시간 전—

뒷뜰이자 곧 해변까인 억낭틀 옥분이의 집에서는 그때 한사람의 젊은이가 타오르는 듯한 정열을 가지고 금년 열 일곱살인 옥분을 달래고 있었던 것이니 젊은이의 이름을 송춘식(宋春植)이라고 불렀다.

『이거 봐, 옥분아! 내일모레가 三월 초하루— 삼월삼질에는 강남 갔던 제비도 돌아 온다는데, 옥분이의 마음은 언제나 내게로 돌아 온다는 말인가? 지나간 十년 동안, 나는 네가 어서어서 커 주기만 바라구....... 그리고 이 춘식이의 색시가 돼 줄것으루만 믿구.......』

『누가 저한테 시집가겠다고 그랬었나 뭐? 그저 오랫동안 한 동리에서 살구, 어머니가 살아 있을 적부터 가까이 지내구 그래서, 난...... 난 정말 절 오라버니 같이 생각하구 있었는데...... 자꾸만 날보구 그런 소리만 하믄 어떻게요?』

바위에 부디치는 거센 파도소리 때문에 두 젊은이의 이야기는 가끔 가다 끊어저 버리기가 일수였다.

『그래두 너, 너이 어머니꺼정 허락해 준 우리들의 사이를...... 꼭 네 맘 하나 때문에...... 이거봐, 옥분아, 우리들 처럼 고기 잡이를 해서 먹구 사는 어부들은 옛적부터 다른데 시집 장갈 가지 않구, 우리들끼리 혼인을 해 내려온 것을 넌 설마 잊지는 않았겠지?』

『그건 오라버니가 잘못 생각하는거지 뭐야요? 옛적부터 그렇다구 꼭 그래야만 된다는 법이 있어요? 자꾸만 그러믄 난 싫어요!』

옥분이는 바위에 비스름이 몸을 기대며 자주 갑사 댕기를 잴긴잴긴 깨문다.

춘식이의 얼굴에는 점점 질투의 빛이 떠 돌기 시작하였다.

『잘 알았다. 네 맘을 잘 알았다! 나도 저 봉룡이처럼 화륜선(火輪船)을 타고 중국으로 장사를 댕기는 선부가 되면 그만 아닌가!』

그 말을 듣는 순간 옥분이의 초롱 같은 두 눈동자가 반짝 빛났다.

『난 오라버닐 좋은 사람으로 생각했더니...... 그런 줄 알면서...... 그런 줄 알면서 왜 자꾸만 못 살게 굴어요? 아아, 저 무서운 눈초리!』

옥분이는 무서워서 기대였던 바위에서 몸을 일으켰다. 증오에 불타는 춘식이의 두 눈이 옥분이의 코 앞에서 번쩍 빛났다. 춘식이의 허리띠에 찬 장두칼— 농어의 배를 째고 상어의 배를 갈으던 장두칼이 옥분이의 눈에는 끝 없이 무섭게 보혓다.

『아아, 저 무서운 얼굴! 오라버닌 지금 무서운 생각을 하고 있지 않어요? 그이를...... 그이를 그 장두칼로.......』

『그렇다! 그것이 우리 어부들의 최후의 해결책이다!』

『안됩니다. 안되요!』

옥분은 눈물을 흘리면서 춘식이의 결심을 만류하였다.

『오라버닌, 이 세상에서 그일 내놓군, 제일 내가 믿구 따르는 사람인데....』

『흥, 그이를 내놓구 말인가? 옥분아, 한번더 내 귓밑에 똑똑히 말해 봐라!』

『몇번이던...... 몇번이던 말할테예요. 그인...... 그인 내 남편이 될 사람이예요!』

『그래 언제던지 변하지 않구 봉룡일 자랑할 수가 있다는 말인가?』

『내 목숨이 끊길 때까지!』

『만일 봉룡이가 바다에서 죽고 돌아 오지 않는다면 어떻걸 셈이야?』

『나두...... 나두 죽어버릴테예요!』

『만일 봉룡이가 널 버린다면.......』

『그럴 리는...... 그럴 리는 절대루 없어요. 하늘이 무너지구 땅이 꺼저두 그런 일은 없어요!』

그때 앞뜰에서

『옥분이, 옥분이!』

하고 불으는 소리가 들렸다.

『아, 저것은 봉룡이의 목소리가 아냐요?』

아아, 그 순간에있어서의 옥분이의 얼굴— 그것은 이 세상이 가질 수 있는 가장 크고 가장 행복에 넘치는 기쁨을 내포하고 있는 얼굴이었다.

『보세요! 그이는...... 그이는 하늘이 무너저두 날 잊어 버리지는 않아요!』

그 한마디를 남겨 놓고 뛰여 들어가는 옥분이의, 나풀거리는 자주 갑사 댕기가 춘식이의 눈에는 세상에서 가장 밉고 가장 예뻐 보였다.

어느새 춘식이의 손은 허리띠에 찬 장두칼을 꽉 부여잡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