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탑/16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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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二十萬圓의 債權

『자아, 그럼 이번에는 송춘식이에 대한 이야기를 어서 좀 들려 주시요.』

하고 봉룡은 박돌을 재촉하였다.

『예, 송춘식으로 말하면 아니, 송춘식이의 과거를 아는 사람은 하나도 없지요. 그의 과거에는 그어떤 이상야릇한 비밀이 숨어 있는것 같습니다만 그 비밀이 무엇인지를 좀처럼 알아볼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표면에 나타난 대강한 경력 같은 것이야 모를 리가 있겠소?』

『네, 그것은 알수 있지요. 송춘식은 장현도 보다도 좀더 먼저 만주인가 북지인가로 건너가서, 바람결에 들려오는 소식을 주어모아 보면은, 어떤 때는 해외에 있는 조국의 혁명투사(革命鬪士)의 일원으로서 활동한다는 말도 간혹 들은것 같고, 또 어떤 때에는 중국 국민당(國民黨)에 속해 있다는 말도 들렸고 또 어떤 때는 일본 관동군에서 일을 본다는 말도 들은것 같고요. 도무지 정체를 것잡을 수가 없을 만큼 그의 과거는 그어떤 비밀에 싸이여 있었답니다.』

「이야기가 점점 가경으로 들어가는걸!」

박돌이의 입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송춘식의 과거야말로 봉룡이에게 있어서는 하나의 커다란 신비(神祕)가 아닐수 없었다.

『그러는 동안에 송춘식의 손에는 점점 돈이 모여든 모양인데...... 그가 국내로 돌아오기 바루 직전에는 상해에 있는 조선인 거부(巨富)로서 유명한 강병호(姜秉浩)씨의 앞에서 일을 보고 있었지요. 강병호씨로 말하면 해외에 있는 우리동포들을 위하여 많은 사회사업을 하신 분이지요. 아시다 싶이 강병호씨는 암살을 당하였습니다. 그런데 강병호씨는 죽기 전에 송춘식이의 공로를 표창하기 위하여 막대한 금액을 남겨 주었지요. 송춘식은 그 돈을 가지고 돌아와 지금은 가회동 호화로운 저택에서 총독 부럽지 않게 산답니다.』

봉룡은 모든것이 꿈과 같았다.

『그래 저...... 저 계옥분은 어떻게 됐나요? 봉룡이가 그처럼 사랑하던 계옥분...... 행방불명이 됐다던가 안됐다던가 하는 계옥분.......』

『행방불명이라고요? 하하하.......』

『그럼 옥분이도 한재산 만들었는가요?』

『지금은 서울서도 굉장한 귀부인이 됐답니다.』

『귀부인이라구요?』

『말씀 마십쇼. 옥분이두 처음에는 봉룡이를 잃어 버리고 무척 울었지요. 그러나 아모리 기다려도 돌아오지 않는 봉룡이를 一년반 동안이나 기다리는 동안에 만주로 건너갔던 송춘식이가 돌아 왔었지요. 송춘식이로 말하면 옥분이에게는 봉룡이 다음에는 이 세상에서 제일 믿고 사랑할수 있는 사람이었지요. 봉룡이를 죽은줄로 안 옥분이는 그해 五월에 송춘식과 결혼을 하였습니다. 송춘식은 행복하였지요. 그러나 항상 봉룡이가 돌아올것을 무척 무서워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옥분이를 다리고 출세의 지반을 닦아놓은 만주로 건너 갔습니다.』

『그러면 그후 옥분이를 못 만나보았습니까?』

『장춘(長春)서 한번 만나 봤었지요. 그때는 벌써 일곱살 먹는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때 옥분이는 열심히 아들의 교육을 시키고 있었지요.』

『아들의 교육을 시킨다고요? 봉룡이의 말을 들으면 옥분이는 아모것도 모르는 어부의 딸이었다고 하던데요?』

『천만에! 그것은 봉룡이가 아직 옥분일 잘 몰라본 때문이지요. 옥분이는 송춘식과 결혼한 후 자기의 행운이 점점 커감에 따라 음악과 회화(繪畵)를 비롯하여 모든것을 배웠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옥분인 행복한 사람이 못 되지요. 옥분이가 봉룡이를 전혀 잊어버릴 수가 있다면 모르지요만 그렇지 못하다면.......』

봉룡은 잠깐동안 눈을 살그머니 감았다가 다시 뜨면서

『그러면 저 유동운씨는 그후 어떻게 되었나요?』

『그이는 내 동무가 아니니까 잘 알수 없지요. 그저 듣건대 봉룡이가 체포를 당해간지 얼마 후에, 오붕서씨의 딸과 결혼을 해 가지고 곧 진남포를 떠나 뭐 해주로 갔다던가요? 자세히는 모르지만두 아마 무척 행복한 몸이 되었겠지요. 결국 나 혼자만이 이처럼 때국이 조르르 흐르는 살림살이를 하고 있습지요. 사람이 정직하다는 것은 확실히 하나의 죄악일수 밖에 없을 줄 압니다.』

『절대로 그렇게 생각해서는 안되지요. 하늘은 꼭 선과 악의 구별을 할것이요.』

그러면서 봉룡은 주머니에서 아까 그 금강석을 끄내어 박돌이에게 주면서

『자아, 이 금강석을 받으시우. 이것은 당신의 것이요.』

『엣, 나 혼자의 것이라고요?』

『그렇소.』

『농담이시겠지요?』

『농담이 아니요. 이것은 봉룡이의 친구들이 나노아 가질 성질의 것입니다만 지금 말씀한 것을 들어보니 봉룡이에게는 단 한사람 밖에는 친구가 없다는것을 알았소. 그러니까 이것을 나눌 필요는 없습니다. 자아, 이 금강석을 갖고가서 팔면 적어도 五만원은 될것이니, 그만했으면 당신도 하늘의 도움을 받으신 분이요.』

『오오, 당신은...... 나중에 이르러서 농담을 삼을려는 것이 아니오니까?』

『나는 승려의 몸이요. 더구나 지금은 농담을 할 때가 아닙니다. 자아, 어서 받아 두시요.』

봉룡은 입가에 미소를 띠우면서

『그대신 모영택씨가 봉룡의아버지의 방에 놓아두고 간 그 수박색 모본단 지갑을 나에게 줄 수 없을까요?』

『아, 그까짓것 쯤이야.......』

박돌은 안으로 들어 가서 절반 이상이나 퇴색한 비단 지갑을 갖고 왔다.

『이것입니다.』

『그러면 이것을랑 나를 주시요.』

『네네, 드리고 말굽쇼.』

『그러면 나는 이만하고 가겠소. 그 금강석이 당신의 살림살이를 조금이라도 돕는다면 그이상 더 큰 기쁨은 없는 것이요.』

그러면서 봉룡은 아니, 승려 국보는 밖으로 나와 박돌이의 수없이 숙이는 인사를 간단히 받아넘기는 것이였다.

박돌은 멀리 손님의 뒷그림자가 사라질 무렵까지 멍하니 바라보다가

『여보!』

하고 안해를 불렀다.

『나 이 길로 남포로 가서 이 금강석이 진짠지 가짠지 한번 알아 보구 오리다. 五만원! 五만원! 이게 원 꿈이 아닌가?......』

그러면서 박돌은 모자를 뒤집어 쓰고 당황한 걸음으로 정거장을 향하여 거닐고 있었다.

그 이튼날 봉룡은 모영택씨의 채권자(債權者)의 한사람인 최성문(崔盛文)이라는 사람을 남포로 찾아 갔다.

이 최성문이라는 사람으로 말하면 언젠가 봉룡이가 해상감옥 지굴감방에 있을 때 찾아왔던 형무검찰관(刑務檢察官)으로서 봉룡을 위하여 감옥의 기록을 조사하여준 비교적 선량한 관리였다.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이러한 사람입니다.』

봉룡은 그러면서 한장의 명함을 끄내 최성문씨에게 주었다. 거기에는 「상해교역은행(上海交易銀行)의 사원 허달준(許達俊)」이라고 씨여 있었다.

『오늘 찾아온 것은 다름이 아니라, 우리 상해교역은행과 다년간 거래가 있는 모상회(毛商會)가 요지음 파산상태에 이르렀다고 하는데 그것이 사실인지 어떤지 좀 정확한 것을 알아볼 셈으로요.』

그랬더니 최성문씨는 절망의 표정을 얼굴에 지으며

『사실입니다. 나는 사재 약 二十만원의 채권을 갖고 있는데, 이것이 돌아오지 않으면 나의 앞길은 암흑입니다. 모상회에는 지금 태양환이라는 배가 단 한척밖에는 남지 않았지요. 두 주일 동안에 태양환이 돌아오지 않으면 모상회는 파산입니다. 그렇게 되면 아마도 그처럼 청렴결백한 모영택씨는 자살을 할는지도 모르지요.』

『잘 알겠습니다. 그러면 당신이 갖구 계시는 二十만원의 채권을 내가 사겠습니다.』

『뭐요? 당신이.......』

최성문은 극도로 놀래면서도 한편 무척 기뻐하였다.

『그렇습니다.』

그러면서 봉룡은 주머니에서 지폐뭉치를 끄내 놓았다.

『그러나 당신이 이 채권을 사신대도 그 절반이나 당신의 손으로 돌아가면 다행일 것입니다. 그것을 미리 짐작하여 주십시요.』

『그것은 우리 상해교역은행의 문제지요. 저는 다만 한사람의 사원으로서 현금을 가지고 모상회의 채권을 사들이면 그만이니까요. 그러나 수수료만은 주서야겠습니다.』

『아, 수수료야 두말할것 있겠습니까? 할인(割引)도 없는 현금지불이신데.......』

『그런데 제가 여기서 수수료라는 것은 다른것이 아니고 형무검찰관이신 당신이 갖고 계시는 감옥의 수인명부(囚人名簿)를 좀 보여주시면 좋겠습니다. 실은 나를 어렸을 적부터 길러 주신 우월대사라는 중이 해상감옥에서 죽었다고 하는데...... 거기 대해서 좀 자세한 것을 알았으면 하고요.』

『아, 저 미치광이 중 말씀입니까? 가만 계십시요. 내 일건서류를 갖고 오겠습니다.』

최성문씨는 받지 못할줄 알았던 二十만원의 돈이 현금으로 자기 수중에 돌아올수 있는 기쁨에 곧 뛰여나가 서재로부터 일건서류를 갖고 들어 왔다. 그리고 이봉룡이라는 과격한 사상범이 우월대사의 시체대신 포대속에 들어가 교묘하게 해상감옥을 탈출한 사실을 쭉 이야기한 후에

『그러나 그 봉룡이라는 자는 해상감옥의 무덤이 수십길 수백길이나 되는 바다 속인 줄은 꿈에도 몰랐었지요. 그는 발목에 설흔여섯 근이나 되는 철추를 달고 바닷밑으로 끌리어 들어가서 고기 밥이 되여버리고 말았습니다.』

형무검찰관의 입으로부터 그런 말을 들으면서 봉룡은 우월대사의 기록이 씨여져 있는 페이지를 펼쳤다.

그러나 봉룡의 목적은 우월대사가 아니였다. 그는 그 서류 가운데서 자기의 성명삼자(姓名三字)를 발견하려는것이 목적이었다.

『아, 이 사람이 바루 그 물고기 밥이 된 사람이로군요!』

그러면서 봉룡은 자기에 관한 일건서류를 심심풀이인 듯이 펼처 보았다.

거기에는 고소장(告訴狀), 신문서(訊問書), 모영택의 신청서(申請書), 유동운 검사대리의 의견서(意見書) 등이 있었다. 그리고 맨 마즈막 장에 다음과 같은 글이 씨여 있었다.

이봉룡―과격한 독립단원. 三一만세 소동에 있어서 상해 가정부와 사이에 연락을 도모한 자. 엄중한 감시하에 극비밀히 감금할것.

그것은 틀림 없는 유동운의 필적이었다.

봉룡은 그이상 더 이 서류를 필요로 하지 않었다. 최성문씨가 二十만원의 지폐를 세이고 있는 사이에 봉룡은 자기가 경관에게 체포되기 바루 전날―즉 기미년 二월 二十七일 저녁, 억낭틀 행길가 주막에서 장현도의 손으로 된 이 고소장을 슬그머니 자기 주머니에 쓰러넣는 것을 이집 주인은 알 리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