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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탑/19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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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眞珠島 主人

「자아, 인제부터는 복수다! 나의 청춘을 저 캄캄한 해상감옥의 지굴감방 속으로 장사시킨 악마 장현도, 송춘식, 유동운이여!」

침몰되었다던 태양환이 다시 푸른 물결을 힘차게 헤치며 남포 항구로 입항(入港)하던 날, 흥분된 부두의 군중속 한편 구석에서 복수귀 이봉룡이가 이렇게 혼잣 말로 중얼거린지도 어언간 七년이 되였던것이니, 아아, 그 七년동안을 봉룡은 대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으며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계획하고 있었던고?

그렇다. 봉룡은 다만 하나의 자연스러운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을 따름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기회는 왔다! 이제부터 복수귀 이봉룡이― 아니, 백진주선생(白眞珠先生)이라고 부르는 한사람의 이상한 인물이 서울 장안에 나타나서, 권력가요 금만가인 세 사람의 악마― 장현도와 송춘식과 유동운을 상대로하여 전개시키는 한폭의 황홀 찬란한 복수도(復讐圖)를 여러분께 소개하고저 한다.

세상 사람들이 백진주 선생이라고, 반다시 선생의 존칭으로 부르는, 四十의 고개를 한두살 넘어섰는듯 한 한사람의 이상한 인물이, 서울 장안에 나타나서 장안의 인끼를 독차지하게 되었던것이니, 마치 여자의 이름과도 같은 성명삼짜를 가진 백진주 선생이라는 인물이 서울장안 상류계급에 나타나게 된 동기부터 이야기하지 않으면 아니될 필요를 느끼는 바이다.

그것은 一九四○년 경진(庚辰) 초겨울의 일이었다. 다시 말하면 시국적(時局的)으로는 구라파에서 제二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이듬 해였고 동아에서 미일전쟁이 이러난 바로 전 해였다.

서울 장안에서도 상류계급에 속하는 두 사람의 청년 송준호(宋準豪)와 그의 학우 신영철(申永撤)은 그해 크리스마스의 하루밤을 호화로운 국제도시 상해에서 보내기로 약속을 하였다.

그러나 성탄(聖誕祭)까지는 아직 한달이나 남았기 때문에 여행을 좋아하는 송준호 청년은 만주와 북지를 거처서 성탄제 전날밤 상해 『카세이 • 호텔』에서 신영철과 만나기로 약속을 하고 먼저 여정(旅程)에 올은것은 벌써 한달전의 일이었다.

송준호― 그렇다. 이 송준호야말로 이제부터 전개될 이 황홀찬란한 이야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인물중의 한사람― 진남포 억낭틀에서 고기잡이를 하던 송춘식이를 아버지라고 부르고 계옥분을 어머니라고 부르는 청년이었다.

그리고 그의 친구 신영철로 말하면 저 기미년 만세 직전에 동지를 배반했다는 이유로 그어떤 혁명 투사의 손에 걸려 암살을 당한 신상욱(申象旭) 판사의 아들이라는 사실만을 잠깐 말하여두고 다음 이야기로 총총히 붓끝을 옮기려 한다.

스포—츠를 좋아하는 신영철― 스포—츠 가운데서도 특히 사냥을 즐겨하는 신영철 청년은 눈이 내리자 노루 사냥, 멧돼지 사냥을 싸돌아 다니다가 성탄제를 한주일 앞두고 렵총을 어깨에 멘채 인천서 조그만 상선 진주환(眞珠丸)을 탔다.

신영철이가 인천서 상해로 직항(直航)하는 정기항로(定期航路)를 취하지않고 진주환이라는 조그만 상선을 탄데는 한가지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인천 부두 근방에 있는 어떤 주막에서 우연히 진주환의 선장이라는 사람을 만나서 한잔 두잔 술잔이 왔다갔다 하는 사이에

『아, 상해로 가신다면 우리 진주환으로 가시지요. 도중에 진주섬에나 들려서 노루 사냥이나 좀 하시고.』

하는 바람에 신영철은 홀딱 반해서

『진주섬에는 그처럼 노루가 많은가요?』

『아, 많구 말고요. 하루쯤 노루 사냥을 하신대두 성탄제 전날까지는 넉넉히 상해에 가 닿습니다.』

그래서 진주환을 타고 진주섬을 향하여 어제 아침 인천을 떠난 신영철이었다.

『저기 지금 불빛이 보이는 데가 진주섬입니다.』

캄캄한 밤이었다.

『아니, 선장. 진주섬은 무인도라는데 불빛이 보이는 것은 웬 일이요?』

『그렇지만 때로는 해적이라던가 혹은 밀수입을 하는 사람들의 피난소로 될적도 없지 않지요.』

『뭐 해적이라구?』

신영철은 놀래지 않을 수 없었다. 떠나기 전에 그런 이야기를 들었더면 이런 위험한 장소에 올 리도 만무했었지만― 그러나 신영철은 모험을 즐겨하는 일면을 가진 용감한 청년이기도 하였다.

『왜, 무서워서 그러십니까?』

『아, 아니.......』

『해적은 사람이 아닌가요? 해적이라고 함부로 사람을 해치지는 않습니다.』

『아, 지금 생각하니...... 이 진주환과 저 진주섬과는 무슨 관계가 있는것이 아니요?』

『천만에요. 우연히 이름이 같다 뿐이지...... 무슨 그런 해적선은 아니지요. 하하하...... 그러나 어떻겁니까? 먹고 살을려니까 때때로 조금씩 밀수입을 합지요.』

『음!』

하고 신음을 하며 용감한 청년 신영철은 어깨에 메었던 렵총을 내리어 겨드랑이에다 꼈다.

『하하하...... 그러나 과히 염녀하실 것은 없습니다. 우리들의 수령은 약한 자를 위하여 강한 자를 치고 정의를 위하여 불의를 물리치는 현대의 홍길동(洪吉童)이 올시다!』

『현대의 홍길동?』

『그러나 혹시 노형이 마음이 놓이질 않아서 노루 사냥을 단념 하시고 곧장 상해로 가시겠다면 이 배는 구태여 진주섬에 들르지 않아도 무방합지요.』

선장이 배앝은 이 한마디가 자기를 비겁한 자라고 비웃는것 같아서 그말에 반항이나 하듯이

『노루 사냥도 사냥이지만 어디 현대의 홍길동 선생을 한번 뵙구 가기로 합시다!』

하고 용감히 부르짖었다.

그러는 동안에 배는 캄캄한 진주섬에 도착하였다. 그리고 거기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저편 해안선에 장작을 구비는 불빛이 보이고 그 불빛을 둘러쌓고 돌아앉은 몇사람의 검은 그림자가 희미하게 바라다 보였다.

『그럼 잠깐 기다려 주십시요. 수령께 여쭈어 보고 오겠습니다.』

그러면서 선장은 배에서 내렸다.

신영철은 무시무시하였다. 그러나 또한편 가만히 생각하니 적어도 선장의 말이 어느 정도 믿을 수 있는 이야기라면 지금 자기 주머니에 있는 三만원의 돈― 상해서 송준호와 함께 하루밤의 성탄제를 즐기려하는 三만원의 돈을 현대의 홍길동이라는 인물이 강탈할것 같지는 또한 않았다. 아니, 설사 그런 일이 있을지라도 이 모험만은 일생의 기념사업으로서 몸소 꼭 경험하리라 결심하였다. 뿐만 아니라 자기에게도 한자루의 총이 있지 않은가!

이윽코 선장이 돌아왔다.

『수령께 말씀을 드렸더니 먼 길에 수고로이 오셨다고 하시면서, 변변치는 않으나 만찬이라도 같이 하시자고 하십니다.』

『아, 그래요?』

『그러나 한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조건이라고요?』

『그렇습니다. 수령의 댁으로 갈때까지 수건으로 두 눈을 가리우고 가셔야겠습니다.』

『눈을 가리우고?......』

신영철은 잠깐 생각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러면 수령의 집이 이 섬에 있다는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듣건대 진시황이 장생불사하자던 아방궁보다도 더 훌륭한 지하궁전(地下宮殿)이 있다고 합니다.』

『지하궁전이라고요?...... 아아, 실로 꿈과 같은 이야기가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홍길동이가 현대에 살아있을 리가 없는것과 같이 꿈같은 이야기지요. 그러나 나 역시 그 지하궁전에는 들어가 보지 못했지요. 거저 사람들의 말을 들었을 따름입니다. 아, 저기 노형을 그 찬란한 궁전으로 인도해줄 안내인이 옵니다.』

캄캄해서 잘 보이지는 않었으나 한사람의 안내인이 신영철의 앞으로 와서

『수령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빨리 손수건으로 눈을 가리워 주십시요.』

하고 아주 겸손한 태도로 말을 하였다. 인제는 물러갈래야 물러갈수 없는 처지에 선 자기를 깨닫고 신영철은 손수건을 끄내 자기 눈을 가리우고 안내인의 뒤를 따라 갔다.

꿈길을 걷는것 같았다. 소년시절에 꿈을 꾸던 「알리바바」의 동굴속으로 들어가는것 같았다.

『그런데 당신네 수령이라는 사람은 대관절 어떤 사람이요? 저 진주환의 선장처럼 역시 밀수입을 하는 사람입니까?』

하고 신영철은 물었다. 그랬더니 배성칠(裴性七)이라는 안내인은 천만뜻밖이라는 듯이

『밀수입자라고요?...... 천만에요! 홍길동이두 옛날에 밀수입을 했었던가요?』

『홍길동이라구요?』

『수령은 二十세기의 홍길동이지요. 그리구 가난한 홍길동이가 아니구, 아주 돈이 많은 홍길동! 황금탑, 진주탑 위에 올라 앉으신 홍길동이지요.』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한 十五분쯤 걸었을까?......

『수고로이 오셨습니다. 손수건을 푸르시지요!』

하는 굵다란 위엄있는 목소리가 들렸다. 신영철은 손수건을 벗었다.

그 순간, 신영철은 자기 눈앞에 우뚝 서있는 한사람의 四十객을 보았다.

비록 핏기없는 창백한 얼굴이었으나 고대 그리샤의 조각처럼 단려한 용모의 소유자! 사람의 마음을 꿰뚤러 보는것 같은 광채있는 눈동자와 깜한 수염과 백진주처럼 흰 치아(齒牙)를 가진 사나이였다.

아니, 그보다도 한층더 신영철을 놀라게 한것은 고대 중국의 대궐같이 훌륭한 방안이었다. 호화로운 현대적 장식을 아낌 없이 베푸른 휘황찬란한 아방궁의 재현(再現)이여!

『오오!』

하고 신영철은 자기가 정말 「아라비안 • 나이트」의 주인공이나 된것처럼 감탄을 하면서 방안을 둘러보았다.

『자아, 이리 들어 오십시요. 식당에는 만찬이 준비되여 있습니다.』

그러면서 주인은 손님을 식당으로 안내하였다.

『아아, 진수성찬이란 말은 이를 두고 말하는것이 아니옵니까!』

『오신다는 말씀을 미리 들었더라면 좀더 맛난 음식을 준비하였을것을.......』

주인은 그러면서 일국의 왕자의 만찬보다도 더 훌륭한 산해의 진미를 젊은 손님에게 권하였던것이니, 현대의 홍길동이라고 불리워지는 이 진주섬의 주인이야 말로 후일에 이르러 백진주 선생이라는 인물로서 서울 장안에 나타나는 복수귀 이봉룡 그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