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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탑/18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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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復讐의 盟誓

깊은 재밤중 아버지가 방에다 잠을쇠를 잠그고 유서를 쓰고 있을 때, 문밖에서는 딸 인애와 어머니가 날이 밝도록 문틈으로 방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날 밤은 무사히 지났다.

날이 밝았다. 二十만원의 수형을 지불하지 않으면 아니될 약속의 날 九월五일 아침이었다. 이날 오전 열한 시 정각에 저 상해교역은행의 사원이 모영택씨를 찾아올 것이다.

그날아침 모영택씨는 전과 다름없이 침착한 태도로 아침 식사를 마치고 다시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린지 얼마후, 어떤 보지못하던 사나이 한사람이 인애에게 편지 한장을 갖고 왔다.

『저, 모영택씨의 따님이신가요?』

『네, 그렇습니다.』

『이 편지를 읽어보십시요.』

그러면서 사나이는 손에 쥐었던 편지를 인애에게 내주면서

『속히 읽어보십시요. 당신의 부친의 운명에 관한 중대한 일입니다.』

그 말을 들은 인애는 곧 봉투를 뜯었다.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글월이 적혀 있었다.

「이 글월을 보시는대로 곧 비석리(碑石里) 十五번지로 가서 그집 안방에 사는 관리인(管理人)으로부터 열쇠를 달래가지고 잠을쇠를 잠거놓은 뜰아래방을 열고 들어가면 그방 선반위에 수박색 모본단 지갑이 하나 놓여 있을터이니, 그것을 부친께 갖다 드리도록 하시요. 갖다 드리되 어떤 일이 있을지라도 오늘 열한시 전에 갖다 드려야만 될것이요. 그리고 그대는 맹목적으로 소생의 명령에 복종하기를 약속한 사람이라는것을 잊어서는 아니되오.」

인애는 편지에서 눈을 들고 이 이상한 편지를 갖고 온 사나이를 찾았으나 그때는 벌써 그 사나이는 어디론가 자최를 감추어버린 후였다.

인애는 무슨 영문인지를 몰랐으나 그러나 그어떤 헤아릴수 없는 하나의 커다란 기적이 자기네 집안을 찾아 온것이 아닌가 하였다.

인애는 시계를 쳐다보았다.

『아홉시 十五분! 그렇다, 열한시 까지는 아직 한시간하고 四十五 분이 남았다!』

그렇게 부르짖으며 소녀는 불이낳게 외출복으로 갈아입고 집을 뛰처 나갔다.

인애가 불이낳게 집을 뛰처나간지 조금후, 평양 의학전문학교에 다니는 인애의 오빠 인규(仁奎)가 조그만 손가방을 들고 헐레벌떡 들어섰다.

『아 인규야!』

모부인은 달려가자 아들의 몸둥이를 부여잡았다.

『어머니! 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편지에 씨인것이 모두 사실입니까?』

아들은 눈물어린 어머니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렇다. 모든것이 사실이다. 오늘 열한시까지 二十만원을 지불하지 못하면 아버지께서는 파산선고를 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그러나 어머니, 집의 사정이 이처럼 절박한 줄도 모르고...... 저는, 그저 학교만 제일이라고.......』

아들은 그때야 비로소 자기집 경제상태가 어떻게 절박된 것인지를 알았다.

『아버지!』

하고 부르짖으며 아버지의 방으로 뛰여들어간 아들은, 그순간 아버지의 손에 쥐여진 한자루의 권총을 발견하고 놀랐다.

『오오, 인규냐!』

모영택씨는 들었던 권총을 천천이 내리웠다.

『아버지, 집의 사정을 왜 좀더 미리 저에게 알리어 주시지를 않으셨습니까? 원망스럽습니다!』

『음...... 인규야, 면목 없는 일이다! 모상회의 모영택은 三十년 동안, 단 한번도 사람과의 약속을 저바린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번만은 어쩌는 수가 없게 되었다. 나의 피는 나의 신용을 영원히 보장할 것이다! 인규야!』

『네?』

『아버지의 말을 알아 듣겠느냐?』

『아버지, 잘 알아 모셨습니다!』

『그러면 그대는 아버지가 죽은 후, 어린 동생과 어머니를 모시고 아버지 대신 힘껏 일을 해야만 한다!』

『아버지, 염녀 마십시요! 三十년 동안 지니고오신 아버지의 명예를 훼손치 않도록 노력할 결심이오니, 아버지, 안심하시고 세상을 하직 하십시요!』

아아, 이 아버지에 이 아들이 있음이 어찌 우연한 일일것이랴!

꽉 다문 청년의 입술에는 무서운 결심의 빛이 알알이 떠올랐다. 그는 그때까지 손에 들었던 사각모에서 모표(帽標)를 떼여 버렸다.

『아버지, 오늘부터 저는 학생의 몸이 아니 올시다!』

모영택씨는 그러한 아들을 미듬직히 바라보고 섰다가 이윽고 아들의 손을꽉 잡으며

『과연 모영택의 아들이로다!』

『아버지, 안심하고 돌아 가십시요!』

아버지와 아들의 손과 손이 꽉 잡힌채 언제까지나 언제까지나 떨어질 줄을 몰랐다.

『그러면 아버지, 최후로 제게 남겨 노실 말씀은 없으십니까?』

『한가지 있다.』

『그것을 말씀하여 주십시요.』

『음, 그것은 다른것이 아니라, 상해교역은행이 단 한집, 무슨 이유에선지는 몰라도 二十만원의 지불기한을 석달 동안이나 연기하여 주었다. 그 사나이가 오늘 열한시― 아아, 十분밖에는 남지 않었구나! 열한시 정각에 그 사나이가 올터이니 집에 있는 돈을 모주리 걷우어 모아서 그이에게 지불을 하여라. 그리고 그 사람에게는 이 아버지를 대신하여 잘 치사를 하여라.』

『네!』

시계의 바늘은 쉬임없이 정각 열한시를 향하여 걸어가고 있다.

『자아, 그러면 너는 저편 방으로 건너 가거라.』

『아니올시다! 저는 여기서 아버지가 세상을 하직하시는 그훌륭하신 광경을 보겠습니다!』

『음, 훌륭한 내 아들이다!』

모영택씨는 한참동안 아들의 얼굴을 뚫어질듯이 바라보고 있다가 이윽코 권총을 들어 바른편 이마 위를 겨누었다.

『인규야!』

『네?』

『상해교역은행의 사원이 문밖에 찾아오는 그 순간이 아버지가 세상을 하직하는 순간인 줄로 알라!』

『네!』

모영택씨는 머리에 권총을 갖다댄채 조용히 눈을 감고 상해교역은행의 사원의 발자욱 소리가 문밖에서 들리기를 가만히 기다리는 것이었다.

무심한 시계는 일초 일초 정각 열한시를 향하여 걸어가고 있다. 그리고 열한시까지는 남어지 二분!

바루 그때였다. 문밖에 사람의 발자욱 소리가 요란스럽게 나면서

『아버지, 아버지!』

하고 부르짖으며 뛰여 들어온 것은 한손에 수박색 모본단 지갑을 든 딸 인애였다. 인애는 권총을 든 아버지를 보자

『앗, 아버지! 안됩니다! 이것을 보십시요! 이 지갑 속의 수형을 보십시요! 금강석을 보십시요!』

『뭐 금강석?......』

아버지와 아들은 이구동성으로 그렇게 부르짖지 않을수 없었다.

이윽코 딸의 손에서 지갑을 받아쥔 모영택씨는 그것이 옛날 자기가 갖고있던 지갑인것을 발견하고 놀랬다. 그리고 그 지갑에는 벌써 다 지불된 二十만원의 수형과 대추알만한 한개의 휘황찬란한 금강석이 들어 있었고 그 보석을 싼 흰 양피지(羊皮紙)에는 「인애양의 결혼비용」이라는 여덟자가 기록되여 있었다.

바로 그때 벽에 걸린 시계가 땡땡 열한시를 쳤다.

『아니 이것이 대체 어떻게 된 노릇이냐? 인애야, 빨리 이야기를 하여라!』

모영택씨는 자기가 지금 허황한 꿈속에서 헤매이는것 같은 하나의 기적을 눈앞에 보고 그렇게 외쳤다.

인애는 전후사연을 아버지께 찬찬히 이야기한 후에 비석리 十五 번지 오막사리 초가집 뜰아랫 방 선반 위에서 이 지갑을 가저왔다는 말을 하였을 바루 그때, 또한가지의 커다란 기적이 모영택씨를 찾아왔던 것이니, 그것은 지금 문밖에서

『태양환이다! 태양환이다! 바닷속에 까라앉았던 태양환이 돌아 왔습니다!』

하고 부르짖는 사람들의 목소리였다.

『뭐. 태양환이?......』

모영택씨는 미친듯이 외치며 행길로 뛰여 나갔다. 그 뒤를 따라 나가는 아들과 딸과 부인과―.

그것은 실로 모영택씨 뿐만 아니라 남포 부두에 일어난 이야기꺼리와도 같은 커다란 기적이 아닐수 없었다.

보라! 남지나해 깊은 바닷속에 까라앉았다던 태양환이 태산같은 물건을 한뱃짐 싣고 지금 남포 항구에 푸른 물결을 헤치면서 천천이 입항을 하지 안는가!

『으와, 으와, 태양환이다!』

『그렇다! 틀림 없는 태양환이다!』

태양환이 침몰하였다는 소식을 들은 부두의 상인들은 저마다 손을 내저으며 부르짖기를 마지 않었다.

석달 전에 어디론가 뿔뿔이 헤여졌던 선원들이 그대로 고스란히 태양환 갑판위에서 두손을 미친듯이 흔들고 있었다. 그리고 뱃머리에 우뚝 서서 사람들의 환호성(歡呼聲)에 답례를 하듯이 두손을 번쩍 쳐든것은 충실한 늙은 선원 광삼이 노인이었다.

『오오, 하늘이시여! 하늘은 이 모영택을 정말로 도우시려는 겁니까? 그렇지 않다면 어찌 바닷속에 까라앉은 태양환을 다시 저의 손으로 돌려보내시나이까? 꿈이올시다!』

모영택씨가 그러면서 부들부들 떨리는 몸둥이를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내 맡긴채, 멍하니 태양환을 맞이하고 있을 때, 저편 창고 뒤에 몸을 숨기고 이 감격에 찬 광경을 물끄럼이 바라보고 섰는 점잖은 신사가 한사람 있었던것이니, 그 신사야말로 여러분도 이미 짐작할수 있는 이봉룡 그 사람이었다.

석달동안에 봉룡은 늙은 선원 광삼이 노인을 시켜서 파선된 태양환과 꼭 같은 배를 짓게하였을뿐 아니라 실었던 짐까지도 꼭같은 물건을 새로이 사서 싣게 함으로써 옛날의 은인 모영택씨로 하여금 오늘의 기적을 갖도록 하였던 것이다.

『고매한 정신의 소유자 모선생이여! 사랑하는 아들 딸을 다리시고 행복하소서. 선생의 음덕(陰德)이 세상에 나타나지 않은것과 마찬가지로 오늘날의 소생의 사소한 감사의 마음도 표면에 나타나지 않기를 비노이다!』

혼잣 말로 그렇게 중얼거리는 봉룡의 얼굴에는 한량 없는 기쁨과 비길데 없는 행복이 가득 차 있었다.

그러나 다음순간 봉룡의 입으로부터 흘러나온 한마디는 이러하였다.

『자아, 인제부터는 복수! 복수! 복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