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탑/6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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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假面의 惡魔

태양환의 일등운전사 이봉룡은 마침내 검사대리 유동운 앞에 섰다. 아니, 개인의 힘으로서는 어찌할수 없는 하나의 강력하고 음찬한 권력 앞에 섰는 자신을 봉룡은 불현듯 깨닫지 않을 수 없었다.

『직업과 성명은?』

유동운은 봉룡이에 대한 일건서류를 뒤적거리면서 표정없는 질문을 시작하였다.

리몽룡이라고 불읍니다. 그리고 직업은 모상회 소유인 태양환의 일등운전사입니다.』

『연령은?』

『열 아홉살입니다.』

『체포당시에는 어데서 뭘하고 있었나?』

『장래 내 안해가 될 사람과의 약혼을 기념하는 조그만 주석에 있었습니다.』

『응? 약혼을 기념하는 주석에 있었다고?』

검사대리는 놀랬다. 그것은 자기의 입장과 너무나 똑같은 환경이었기 때문이다.

『예, 제게는 삼년전부터 서루 사랑하는 처녀가 한사람 있었습니다.』

『음—』

유동운은 적지잖은 동정의 념을 금치못하면서 다시 물었다.

『군의 정치적 의견은?』

『정치적 의견이라고요?』

『말하자면 일본의 조선통치에 대한 군의 의견은 어떤가 말이야?』

『아아, 이야기하기도 부끄럽습니다만 저는 지금까지 의견이라는것을 갖어본적이 없습니다. 제가 혹시 의견이라는것을 갖어본 적이 있다면 그건 정치적인것이 아니고 저의 일개인의 의견이지요. 말하자면 저는 늙은 홀아버지를 사랑하고 모영택씨를 존경하고 계옥분을 귀여워한것—이 세 가지밖에는 없습니다.』

청년이라기 보다도 아직 소년에서 발을 채 뽑지못한 이 나어린 피고의 입으로부터 이처럼 순진하고 소박한 진술을 듣는 순간, 유동운은 적지잖게 기분이 명랑해 졌다. 될수있는대로 관대한 처분을 해달라는 정숙의 청을 충분히 들어줄수 있는것 같애서 유동운은 무척 행복스러웠다.

『그런데 군은 적(敵)을 가진 적이 있는가? 원수를.......』

『적이라고요? 원수라고요? 없습니다. 저 같은 미천한 사람을 누가 적으로, 원수로 생각하겠습니까?』

『그러나 열아홉살에 선장이 되고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한다는것은 이 세상에서 결코 적은 행복은 아니니까...... 그러한 행복을 질투하는 사람은 없는가 말이야?』

『그러나 검사 나리, 설사 그런 사람이 실상 있더래도 그것을 알아서 무슨 필요가 있겠습니까? 모르고 지나는것이 제게는 한칭더 행복이 올시다.』

『음, 군은 보건대 훌륭한 청년인것 같애. 그래서 재판소의 규칙에는 어그러지지만 군이 어째서 체포를 당했는지 그 이유를 알려주마.』

그러면서 유동운은 주머니에서 고솟장을 끄내여 봉룡이 앞에 노았다. 봉룡은 묵묵히 고솟장을 읽는다.

『그래 군은 그 필적이 누구의 것인지 알지 못하겠나?』

『전연 알수 없습니다. 그러나 어쩌면 이처럼 대담한 글을 썼을까요?』

봉룡은 한편 놀래며 한편으론 무척 세상을 두려워 하지 않을수 없었다.

『자아, 그러면 내가 묻는 말에 대하여 솔직히 대답을 해야 될텐데, 말하자면 재판관으로서가 아니라, 친구로서의 입장에서 묻는것이니까.』

『고맙습니다. 제가아는것은 숨기지 않고 대답하겠습니다.』

『그러면 이 고솟장에 대해서 군이 알고있는 사실을 숨김없이 말해보라.』

『네, 실상은 이렇게 된것입니다. 대련을 떠난 지 얼마 않되여서 김선장이 뇌막염에 걸려서 돌아가시기 직전에 저를 불러서 하시는 말씀이, 「군의 명예를 걸어서 실행하여 줘야할 중대한 일이 한가지 있다」고 하시면서 「내가 죽으면 이 태양환의 모든 지휘는 군이 하야만 된다. 그런데 군은 배를 상해에다 갖다대고 이 편지와 봇다리를 상해 부두에서 안도산 선생에게 수교하라. 그러면 선생께서도 군에게 무슨 편지 같은것을 줄테니, 거기 대한 사명은 내 대신 군이 잘 이행하여 주기 바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 군은 어떻게 했는가?』

『선장의 명령대로 복종하였습니다. 더구나 임종시의 유언은 더한칭 신성합니다. 그뿐 아니라 우리들 해원(海員)들에게 있어서는 윗사람의 명령은 절대로 복종하지 않으면 않됩니다. 그래서 저 봇따리와 편지를 상해부두에서 안선생께 드리고 다시 안선생으로부터 서울 가는 그어떤 편지를 부탁 받았습니다. 저는 오늘밤 그 편지를 가지고 서울로 갈려고 하든 중에 체포를 당한것입니다.』

『음, 모두가 사실 같이 생각된다. 만일 군에게 죄가 있다면 그것은 주의가 부족한 때문에 생긴 죄일 뿐이다. 그리고 그 부주의로 말하더래도 선장의 명령으로해서 정당화(正當化)할 수 있는것이니까,...... 자아, 그러면 안선생에게서 받은 편지를 날 주고 군은 돌아가도 좋다. 물론 호출이 있으면 곧 출정해야 되지만.......』

『그러면 전 인젠 자유로운 몸이 되었습니까?』

봉룡은 기뻐서 날뛰며 부르짖었다.

『음, 물론 자유다! 그러나 그 편질랑 이리 내주어야만 된다.』

『그건 지금 나리앞에 있는 서류 속에 들어있지 않습니까? 아까 전부 압수를 당했습니다.』

『아, 그런가. 그래 서울 누구한테 가는 편진가?』

그러면서 유동운은 책상위에 있는 일건서류를 뒤저 보았다.

『서울 안국동 유민세(劉民世)씹니다.』

『뭐? 유민세......?』

그렇게 부르짖으면서 검사대리는 의자에서 벌떡 몸을 일으키었다. 그어떤 강렬한 공포로 말미아마 그의 얼굴은 새파랗게 변해졌다. 그는 손을 뻗처 일건서류 속에서 한장의 봉투를 뽑아들면서

『안국정 十三번지, 유민세 전!』

하고 꿈결처럼 중얼거렸다.

『그렇습니다. 그이를 아십니까?』

봉룡은 놀래면서 물었다.

『모른다! 정부에 충성을 다하는 한 사람의 사법관이 이런 반역자와 무슨 관계가 있다는말인가?』

『반역자라고요?』

봉룡은 그순간 눈앞이 캄캄해 졌다.

『아까두 말씀드렸습니다만, 전 정말 그편지의 내용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음, 그러나 군은 이 편지의 수신인(受信人)의 이름을 알고있지 않는가?』

『그건 이 편지를 전할려면 할수 없는 일이 아니오니까?』

『그래 군은 이 편지를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었는가?』

그러면서 편지를 읽는 유동운의 얼굴빛은 한층 더 종이짱처럼 핏기를 잃어가는 것이었다.

『맹세합니다! 누구에게도 보히지 않었습니다!』

『그래 군도 편지의 내용을 전연 모른다는것이 사실인가?』

『사실입니다! 신명에 맹세합니다...... 그런데 왜 그러십니까? 안색이 대단히 나쁘신것 같은데, 어데가 편찮으십니까? 몸이 대단히 괴로우시면 사람을 불러드릴까요?』

『않된다! 군은 입을 꼭 다물고 잠잣고 있으면 그만이다. 잠깐 현기ᄶᅳᆼ이 났을 따름이니까.......』

엄숙한 어조로 명령하였다. 그리고 만일 이 편지 겉봉에 씨인 유민세씨가 바루 자기 아버지라는 사실이 세상에 알려진다면 아아, 그것은 너무나 무서운 일이었다. 자기의 양양한 전도는 그 당장에 파멸될것이 아닌가!

그 순간, 유동운은 그무엇을 결심한 사람처럼 엄숙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군을 곧 자유로운 몸으로 돌려보내 줄려던 나의 호의를 실행하지 못하게 된것을 나는 유감히 생각한다. 사건은 대단히 중대하다! 나는 예심판사의 의향을 들어보지 않고는 마음대로 군을 돌려보낼수는 없다.— 그런데 될수만 있으면 나는 나의 힘 자라는데까지 군을 위하여 노력하고저 한다는것을 알아주기 바란다.』

『오오, 나리! 나리는 제게 있어서 재판관이기 보다도 저를 끝없이 생각하여 주시는 친구 올시다!』

『그러면 군은 얼마동안 이곳에 머물러있지 않으면 않되게 될텐데, 나로서는 최선의 노력을 다하여 그 기한을 짧게 하도록 힘을 쓸터이다. 그런데 군에 대한 중요한 물적증거는 이 편지다. 자아, 이렇게 불을 살라버릴테니 보게!』

유동운은 문제의 편지를 봉룡의 눈앞에 있는 「스토—브」속에 집어넣어 불살려 버렸다.

『자아, 이만했으면 군을 무서운 범죄자로 만들어버릴 중요한 물적증거품은 없어지고 말았다! 군, 안심해도 좋와!』

『오오, 나리! 나리는 인간 이상의 참다운 분이올시다! 은혜는 일생을 두고, 아니 백골이 되도록 잊을수 없습니다!』

봉룡은 폭풍우와 같은 감격에 휩쓸려 전신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러면 군은 나를 신용할 인간이라고 생각하는가?』

『네 네! 무엇이던지 명령해 주십시요. 나리의 명령이라면 무엇이던지 복종하겠습니다!』

『아니, 내가 군에게 명령하는것이 아니라 군을 위하여 충고하는 것이니까.』

『네, 잘 알겠습니다! 무엇이던지 명령하신것과 마찬가지로 복종하겠습니다!』

『그러면 내말을 잘 들어두게. 나 대신 다른 사람이 군을 심문할지도 모를테니까, 그때는 모든것을 솔직히 이야기하되, 단 한가지 인제 불에 태운 편지에 대한 이야기만은 절대로 비밀히 해야만 한다! 알겠나?』

『알겠습니다!』

『맹세를 하겠나?』

『맹세합니다!』

재판관이 도리어 피고에게 애원하는것 같은 한 장면이었다.

『자아, 그러면 편지가 이세상에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군과 나 두사람 뿐이다. 다시는 군의 눈앞에 그 무서운 편지가 나타나지 않을테니, 군은 어디까지던 모른다고 부인하면 된다. 극력 부인만 하면 군은 무죄방면이 될것이다!』

『부인하겠습니다! 어데까지던지 부인하겠습니다!』

그때 유동운은 초인종을 불러 경부를 불러드렸다. 그리고 경부에게 몇마디 입속말을 하고 나서 봉룡이에게

『경부를 따라 나가라!』

하고 명령을 하였다.

경부의 뒤를 따라 나가면서 고개를 돌려 봉룡은 다시한번 깊은 감사의 눈동자를 검사에게 던졌다.

『오오!』

봉룡이가 눈앞에서 사라지자 유동운은 기절이나 할듯이 팔거리 의자에 펄석 주저 앉으면서 괴롭게 신음을 하였다.

「아아, 사람의 운명이란 실로 헤아릴수 없다! 만일 일본인 검사가 출장을 않갔었다면, 그리고 자기 대신 예심판사가 이 사건에 손을 대었다면 벌서 나는...... 이 유동운의 일생은 파멸되였을 것이다! 편지! 아버지의 이름이 씨여져있는 그 무서운 편지는 나를 영원히 락오자의 무리로 쓰러넣고 말었을 것이 아닌가! 아아 아버지, 아버지! 당신은 언제까지나 나의 행복과 출세를 방해하려는 것입니까? 그러나 그것은 너무나 무서운 편집니다! 삼천만 민중이 일시에 일어선다는 무서운 내용을 가진 편지! 그러나 날짜는 대체 언젠고? 이천만 민중이 자주독립을 부르짖으며 일제히 일어서는 그 날짜가 씨이지 않었다!...... 가만 있자. 오늘이 몇일인고?...... 二월 二十八일!」

그때 유동운은 무엇을 생각했는지 벌떡 의자에서 다시금 몸을일으켰다.

「그렇다! 하마트면 나를 파멸의 구렁지 속으로 스러넣을번한 이 편지가 도리여 나를 행복의 세계로 끌어올릴 다시없는 실마리가 될수도 있지 않은가! 그렇다! 검사대리 유동운이여! 너는 언제까지나 이 조그마한 항구처에서 썩어버릴 그런 인물은 아닐것이 아닌가! 자아, 출마(出馬)다! 검사대리 유동운이의 출세의 기회는 왔다!」

야망에 불타는 검사대리의 입까에는 그 순간 악마와도 같은 회심의 웃음이 빙그레 지어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