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탑/7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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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海上監獄

자기 일신의 행복과 영달을 위하여 한사람의 무고한 청년 이봉룡을 영원히 이 세상에서 장사시키려하는 검사대리 유동운이었다.

그러하거늘, 그런줄은 꿈에도 모르는 불상한 이봉룡은 컴컴한 유치장 한모퉁이에서 저 고마운 검사대리로부터 언제나 다사로운 구원의 손이 뻗처질까를 어린애처럼 목을 늘여 기다리었다.

그날밤, 열시가 가까웠을 무렵에, 칼과 권총을 찬 네사람의 헌병이 유치장 앞에 나타났다. 봉룡은 감격하여

『아, 저, 절 대리러 오셨습니까?』

『그렇다.』

『저, 검사대리가 불렀었습니까?』

『아마, 그런것 같다.』

『네, 가겠습니다. 검사대리의 말슴이라면 가겠습니다!』

아아, 그것이 지옥으로부터 염마대왕이 불으는 무서운 사자인줄은 꿈에도 모르는 봉룡은 저 인자하고 고마운 검사대리가 자기를 도루 광명의 사파(娑婆)로 불러내려는 아름다운 천사만 같이 보이었던 것이니, 이윽코 봉룡이가 문밖에서 기다리고있는 경부와 함께 한대의 호송마차(護送馬車)에 올라탈 때도 마음은 공중을 날아다니는 종달새처럼 가벼웠다.

캄캄한 밤 하늘에 잔별이 유난히 아름답다. 옥분이가 사는 억낭틀을 멀리 바른편으로 바라보고 불상한 아버지가 계시는 비석리를 의인편쪽으로 우러러 보면서 무기미한 호송마차는 이윽고 쓸쓸한 해안통을 지나고 캄캄한 축항(築港)을 지나서 바루 비발도 등대 앞에서 멎었다.

『내려라. 그리고 저 배를 타라!』

비발도 바위 옆에 조그만 전마선(傳馬船)이 한척 대기하고 있었다.

『절, 절 어데루 데리고 가시는 것입니까?』

그어떤 불안이 갑자기 순진한 봉룡의 가슴을 무겁게 덮어 눌렀다.

『잔말 말고 어서 타! 알 때가 오겠지.』

그러면서 헌병 한사람이 등을 힘껏 떠밀었다. 그바람에 봉룡은 바위위를 미침질 하듯이 미끄러저 내려오면서 배안에 쓰러젔다.

쓰러지면서 봉룡은 저 무서운 이름— 편지의 수신인 유민세라는 이름만 입밖에 내지 않는 한, 조금도 염려할것이 없다고 말한 검사대리, 그리고 그 위험한 증거물인 편지를 자기 눈앞에서 불살려버린 친절하고도 고마운 검사대리를 머리에 그림그려 보았다.

전마선은 물결을 헤치며 컴컴한 어구로 자꾸만 저어 나간다.

『여보세요. 저를 어디로 더리고 가는지 알려 주세요. 아모것도 모르는 제가 반역자라고 고소되었다는데, 저는, 저는 선량한 시민입니다. 저는 태양환의 충실한 선원입니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봉룡은 헌병들에게 애소하기를 마지 않었다. 그때 헌병 한사람이 빙글거리며

『그렇게 알고 싶거던 지금 저기 저 어구에 마성(魔城)처럼 솟아있는 해상감옥(海上監獄)을 바라보아라!』

『엣?...... 해상감옥이라고요?......』

봉룡은 기절이나 할듯이 놀랐다.

기암절벽으로 된 조그만 섬— 그 섬에는 음참과 공포를 한아름 지닌 해상감옥이 마치 악마의 성곽인 양 바다 위에 시컴하ㅎ게 솟아 있는것을 선원인 봉룡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것은 사상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다시는 세상 구경을 하지 못할 중죄범인(重罪犯人)들을 수용하는 무서운 감옥이다. 옥문이 한번 열려 그 안으로 들어간 죄인으로서 이 세상에 다시 나왔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듣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였다. 봉룡은 다음 순간 헌병의 손을 잡으며

『오오, 해상감옥! 나리! 그러면 저를 저 해상감옥에 잡아넣을려구 더리고 가는것입니까?』

『아마 그런 모양이네.』

『그러면 검사대리의 약속은 대관절 어떻게 되는것입니까?』

『무슨 약속이 있었는지, 우리는 알수 없다. 우리가 알구있는것은 다만 너를 해상감옥으로 더리구 간다는 사실뿐이다. 아, 아, 아, 이놈 봐! 이놈이.......』

그 순간, 비조처럼 물속으로 뛰여들어가는 봉룡의 뒷다리를 헌병들이 꽉 붙잡었던 것이다.

『아아, 하마트면 이놈을 놓칠번 했었다. 어데 한번만 더 요동을 해 봐라. 이 권총알이 튀여 나갈것이다!』

하고 따귀가 날아나게 연거퍼 내갈겼다. 칼자루로 봉룡의 어깨를 내어 갈긴다. 봉룡은 쓰러젔다.

얼마후 배는 험준한 바위섬에 도착하였다. 그리고 한참동안 바위를 올라가노라니까, 해상감옥의 무시무시한 옥문이 눈앞에 나타났다.

이윽고 육중한 돌문이 열리며 봉룡은 안으로 끌려 들어갔다. 그리고 한 사람의 옥정(獄丁)의 안내를 받아 냉기가 심한 무서운 감방에 수용되었다. 비분의 눈물이 비오듯이 하로 밤새도록 봉룡의 얼굴을 적시었다.

『아아, 옥분이, 사랑하는 옥분이! 아버지. 불상하신 아버지!』

봉룡은 미친듯이 그렇게 부르짖으며 안타까워서 가슴을 쥐여 뜯고 넙적다리를 손톱으로 꼬집어 냈다.

『전옥(典獄)을 만나게 해 다고! 할말이 있으니 제발 전옥을 만나게 해 다고!』

봉룡은 끼니를 가지고 오는 옥정을 볼때마다 미친듯이 애원을 하였으나 애원은 언제든지 애원만으로 끝칠 따름이었다.

『이거 봐, 젊은이. 너무 그러다가는 저 늙은 중처럼 정말 미쳐버리구 마는거야! 자기를 놔주면 백만원을 주겠다고 야단을 치는 늙은 중이 바루 이 방에 있었다는 말이야.』

『그래 그 늙은 중은 지금은 자유로운 몸이 되여 세상으로 놰 나갔다는 말이요?』

『놰 나갔느냐구?...... 흐흐흥...... 밤낮을 구별할수 없는 컴컴한 지굴감방(地屈監房)으로 옮아 갔어. 그러니까 젊은이두 지굴속 방으로 옮아가지 않으려면 좀 얌전하게 하구 있으라는 말이야.』

몇일후 봉룡은 옥정을 붙잡고 이런 말을 하였다.

『언제 남포에 갈 일이 있으면, 억낭틀 옥분이에게 편지 한장만 전해 주소. 그러면 삼백원을 드리리다.』

그러나 옥정은 머리를 흔들었다.

『않돼! 않돼! 삼백원 벌을려다가 내가 감옥사리를 하게되면 셈이 않돼!』

그때 봉룡은 눈을 부릅 뜨고

『어디, 그럼 두구 봐라! 네가 내말을 들어주지 않는 한 나는 네가 끼니를 가지고 들어올 때 이 문틈에 숨었다가 이 두 손으로 네 목을 눌러 죽이고 말테다!』

그말을 듣고있던 옥정은 눈이 둥그래지며 한걸음 뒤로 물러서면서

『이 자식두 또 미첬군! 어쩌면 이 방에 들어오는 자식은 모두가 똑 가치 미처버릴까?』

그런 일이 있은지 몇일만에 봉룡은 전옥의 명령이라 해서 컴컴한 지굴속 감방으로 옮아가는 몸이 되었다.

봉룡은 이번엔 정말로 미칠것 같았다. 습기로 말미아마 미끈적 거리는 담벼락을 소경처럼 손으로 더듬으면서 지옥처럼 캄캄하고 무시무시한 방안을 하로 종일 미친듯이 뺑뺑 돌았다.

한편 봉룡을 이 무서운 해상감옥으로 보낸 검사대리 유동운은 그길로 아직 약혼식이 채 끝나지 않은 동명관으로 돌아오자 장인이 될 오붕서를 별실로 모시고 가서

『아버지, 실로 중대한 사건이 생겨서 오늘밤 급행차로 서울로 곧 다녀 와야겠습니다. 그런데 지방의 명망가이신 아버지의 소개장을 한장 얻어가지고 가야겠는데요.......』

『소갯장이라구?』

『예, 총독각하께 면회를 할수있는 소갯장을 한장 써주십시요.』

『음, 쓰래면 쓰기도 하겠지만 그러나 무슨 중대한 보고라면 상관을 통해서 하는것이 순서가 아닌가?』

『그렇나 아버지, 그렇게 되면 사건에 대한 공은 모두 상관이 차지하구, 제게 돌아오는것은 말하자면 먹다남은 찌꺽이밖에 않남지요. 그러니까 제가 직접 총독각하를 만나뵙고 제가 제손으로 제 공을 세우겠습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아버지, 제 일생은 넉넉히 보장이 되고도 남을것입니다. 따라서 제 안해가 될 정숙씨의 일생도.......』

사위의 일생보다도 딸의 일생이 보장된다는 이 한마디에 오붕서는 더욱 마음이 흡족하였다.

『그렇게 좋은 일이라면 쓰지. 소갯장을 쓰마!』

이리하여 총독면회에 있어서 모든 번거러운 수속을 밟지않고도 신속히 면회할수 있는 간곡하고도 정중한 한장의 소갯장이 유동운의 손에 쥐여젓다.

『아버지, 그럼 다녀 오겠습니다. 날짜는 분명치 않으오나 수일내에 이땅 전체가 진동할만한 중대사건이 일어날것만은 이자리에서 여쭐수 있겠습니다.』

『음, 다녀오게.』

그때 장래의 안해가 될 정숙이가 들어왔다.

『아, 정숙씨, 좀 긴급한 사정이 생겨서 이번 급행차로 서울을 다녀 와야겠소.』

『아니, 기다기 무슨 그런 긴급한 일이 생겼어요?』

『그건 재판상의 비밀로 되여 있으니, 자세한것은 다녀와서 이야기 하겠소.』

정숙은 어지간히 불만한 표정으로 뛰여나가는 남편의 뒷모양을 물끄럼이 바라 보았다.

이리하여 출세와 영달에 눈이 어두운 젊은 검사대리 유동운이 재판소 옆에 있는 사택으로 가서 간단한 여행의 준비를 채릴려고 료정 동명관을 뛰여 나왔을 바루 그때 저편 전선때 뒤에서 그 누구를 기갑자고 있는듯 한 어여쁜 얼굴을 가진 한사람의 소녀가 뛰처나왔던것이니, 그것은 조금전에 억낭틀 자기 집에서 봉룡이가 경관에 부뜰리여 갔다는 박돌이의 이야기를 듣고 미친듯이 뛰쳐나온 계옥분이었다.

『여보시요, 잠깐만...... 저 실례이지만 검사대리신가요?』

『예, 제가 유동운이요. 그런데 당신은 누군데?』

그러나 유동운은 벌서 그 어여쁜 소녀가 누군지를 알아 채렸던 것이다. 아까 자기가 취조를 한 봉룡이의 약혼자인것을 짐작하지 못할 유동운은 아니었다.

『저 아까 경관에게 부뜰려 간 이봉룡이란 사람은 어떻게 됐나요?』

『아, 그렇소? 잘 알았소. 그러나 그 사람은 중대한 죄인이요. 내 힘으론 도저이 어떻걸수가 없는 사람이요.』

유동운의 대답은 몹시 거칠고 무척 차다.

옥분은 두손으로 얼굴을 가리우고 흐득흐득 느껴울기 시작하였다. 울면서 유동운이가 그대로 지나갈려는것을 한번 더 불렀다.

『저...... 저...... 어델 가면 그분의 생사를 알수가 있을까요?』

『나도 알수 없소. 벌서 사건은 내 손에서 떠나 버렸으니까요.』

그 차디찬 한마디를 남겨놓고 유동운은 마치 자기편이 죄인인것 처럼 소녀의 눈앞에서 총총히 사라지고 말었다.

『아아!』

비탄과 절망의 구렁지로 휩슬려 들어가면서 옥분은 쓸어질려는 몸을 비틀비틀 전선때에 기대였다.

『아, 옥분이.......』

낯익은 목소리가 그때 옥분의 등뒤에서 들렸다. 그것은 억낭틀에서부터 옥분의 뒤를 따라 온 악마 송춘식 이었다.

『이거 봐, 옥분이! 울면 뭘 하니? 어서 나하구 가치 집에 가.』

춘식은 옥분이의 어깨를 부드럽게 흔들었다.

그날밤, 그렇다. 그것은 二월 二十八일 날 밤이었다. 불상한 계집애 계옥분은 방등불의 기름이 다 쫄아들 때까지 하로밤을 울어 새웠고, 그 옆에서 송춘식은 침이 마르도록 옥분을 달래 새웠고 그리고 검사대리 유동운은 경성행 급행열차 속에서 커—다란 야망에 가슴을 조리면서 뜬 눈으로 하로밤을 새웠던 것이니, 아아, 마침내 왔다!

세계의 역사를 찬란하게 장식하는 기미년 三월 一일의 빛나는 아침은 마침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