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극장/2권/1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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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적 맞은 입술[편집]

1[편집]

그날 저녁 무렵, 영민을 동반하고 오 창윤이가 효자동 집을 뚜벅뚜벅 들어섰을 때, 춘심은 마루에서 영감의 저녁 상을 오순도순 차리고 있었다.

춘심은 영감의 뒤로 기운없이 따라 들어오는 백 영민의 자태를 발견하자 총에 맞은 사슴처럼 호닥닥 상 앞에서 몸을 일으키었다.

「올 것이 마침내 왔구나!」

춘심은 마음속으로 그렇게 종알거리면서 심상치 않은 영감의 얼굴과 맥이 탁 풀린 영민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며 이 뜻하지 않았던 손님을 맞이하였다.

「아이, 영민씨, 언제 오셨나요? 어서 올라 오셔요.」

그러나 영민은 대답이 없이 춘심의 다리아인 양 화려한 얼굴을 댓돌 위에 선 채 묵묵히 바라다 볼 뿐이다.

그 순간, 마루로 올라선 오 창윤의 손바닥이 다짜고짜로 날아 가며

「찰싹!」

하고, 춘심의 저녁 화장을 한 볼을 한번 보기 좋게 내갈겼다.

「아얏!」

춘심은 얻어맞은 볼을 양손으로 움켜쥐고 약이 받친 고양이처럼 영감의 얼굴을 무섭게 쏘아보았다.

「선생님, 이게 무슨 짓입니까?」

영민은 뛰어 올라 가서 오 창윤을 막았다.

「내가 그처럼 귀여워하던 그대의 볼을 갈겼다! 이유는 말하지 않아도 그대 자신이 잘 짐작 할줄로 믿고 설명은 그만 둔다.」

그때, 돌연 춘심의 입으로부터

「하하하핫, 하하하핫……」

하는 히스테리칼한 웃음이 날카롭게 흘러나왔다.

춘심은 찍하고 성냥을 그어 담배를 붙여물고 삼면경 앞에 놓인 걸상에 털썩 걸터앉으며

「영감님, 바람은 지금 어느 쪽으로 불고 있는 거유?」

「어쨌다구?……」

「동풍이요? 서풍이요?」

「무슨 뜻이야?」

「평양 기생 춘심이가 아직두 딸만 못해? 아주 기특하구료! 아주 양심적이야. 왜 오른편 볼이 또 하나 남아 있는데 마자 갈겨 못 보시우?」

「뭣이?……」

오 창윤은 이번엔 외인편 손으로 춘심이의 남은 뺨을 또 후려 갈겼다.

후려 갈기는 바람에 춘심이의 몸뚱이가 걸상과 함께 옆에 서 있는 영민의 품안으로 쓰러져 들어왔다.

영민은 자기 품안으로 쓰러져 들어오는 춘심이의 풍만한 육체를 두 손으로 받았다. 받아서 일으키었다.

아니, 받아서 일으키려는 바로 그 순간이었다. 춘심은 영감을 위하여 저녁 화장을 한 호화로운 얼굴을 홱 돌리며 두 팔로 영민의 목을 휘감아 끌어 안자 마자 앵도알처럼 빨갛게 젖은 자기 입술로 재빨리 영민의 입술 위에다 도장을 찍어 버렸다.

「영민씨 미안합니다. 한번두 아니구 두 번씩이나…」

그렇다. 두 번씩이나 영민의 입술을 도적질한 춘심이었다.

영민은 기가 막혔다.

화를 내야만 할는지 웃어버려야만 할는지를 영민은 몰랐다.

춘심은 그러한 영민을 내버려 두고 옷 단장을 하고 나서 다시금 걸상에 걸터앉으며

「오 선생, 미안했읍니다. 춘심이가 그만 잠간동안 외도를 했구먼요 글쎄!」

그러면서 춘심은 흩으러진 머리카락을 추켜 올렸다.

「으, 음 ──」

오 창윤은 괘씸한 듯이 온 몸을 부들부들 떨 뿐, 좀처럼 말을 잇지 못한다.

「오늘 오 선생님이 그처럼 보기 싫다고 후려 갈겨 주신 춘심이의 볼을 후일 다시 이쁘다고 어루만져 주지는 마세요.」

그것은 실로 공교로운 애욕의 조발(挑發)이었다. 오 창윤의 마음의 비밀을 시시골골히 들여다보고 있는 애욕의 철학자인 박 춘심이가 아니고는 도저히 입에 담기 어려운 한 마디였다.

그 후추알같은 한 마디가 후일에 있어서의 오 창윤의 생활에 과연 어떠한 음영(蔭影)을 던질 것인지 그것은 물론 두고 보아야만 알 지극히 흥미로운 숙제였다.

「거 참 가관이로구려! 커다란 사내가 둘이 씩씩거리면서 들어 와서, 그래 겨우 한다는 것이 여자 뺨갈기기야?」

그러다가 힐끔 영민을 쳐다보며

「영민씬 또 왜 머저리처럼 이런 델 따라 다니는거요? 왜 따라 온 바에야 춘심의 뺨 한번 못갈기구 멍청허니 섰기만 허우? 오 선생께서 딸 생각하누라구 갈긴 뺨을 그래 영민씬 애인을 위해서두 못 갈기겠어?」

「분이는……」

「분이는 또 어느 썩어 빠진년의 이름이야?」

「당신의 장난이 너무 잔인했소!」

「걱정들 말아요. 자살할 양반이 옷가질 뒤져 가구 피아놀 팔아 가요? 다저 볼 장은 보구 있는 거야. 실연을 해서 자살할 사람은 그런 준비성 있는 양반이 아니구…… 볼래? ──」

춘심은 허리춤에서 장두칼을 쭉 뽑아쥐고 발딱 일어서며

「백 영민이 앞에서 춘심이가 가슴을 찌르는 걸 한 번 구경해 볼래? ── 」

「앗!」

하고, 오 창윤과 백 영민이가 달려 들려고 했을 때

「하, 하, 핫…… 하하핫……」

하고, 춘심은 천장을 우러러 유쾌히 웃어대며

「걱정들 말아요! 하하핫, 하하핫…… 아이, 참 사람 웃기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