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극장/2권/17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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굵다란 인생관[편집]

1[편집]

오 창윤은 돈뭉치를 영민의 무릎 앞으로 밀어 놓으며

「암말 말구 넣어 두시요. 남은 돈이오.」

「그러나 장차 선생님께서 저를 귀해 주실 참되신 뜻이 계시다면 그것을 도로 거두어 주십시요. 아직 제게는 타인의 원조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보시는 바와 같이 저는 건강한 체구를 가졌읍다.」

「음, 알겠소! 거듭 권하지 않겠소.」

오 창윤은 다시 돈 뭉치를 가방에 넣었다.

「그러나 한 가지 청이 있소.」

「말씀 하십시요.」

「소화 제빵소를 한번 구경 가고 싶은데……」

「그럴 필요가 어디 있읍니까?」

「그러나 내가 제빵소 구경을 하겠다는 것은 군에 대한 원조를 의미하는 행동이 아닌만큼 청을 들어 주어도 무방하지 않겠소?」

「원하신다면 안내해 드리겠읍니다.」

이윽고 두 사람은 하숙을 나섰다.

이른 아침이다.

「도츠카」 학생 거리는 아직도 움직일 줄 모르는 휴식의 순간이다. 「와세다」대학 교사 위로 「오오구마」 강당의 자유의 기념탑이 자욱한 매연 속에서 고고(孤高)히 솟아 있다.

오 창윤은 만족한 얼굴로 영민의 뒤를 따라 나서며

「고 년이 정말 사람을 잘못 보지는 않았었구나!」

하고, 중얼거리면서 유경의 총명함을 결정적으로 시인하였다.

고 년이 어린앤 「 줄만 알았더니 제법 사람 고르는 법이 됐어!」

이윽고 두 사람은 「다까다노바바」역 근처에 있는 제빵소에 다달았다.

주인 마누라와 인사를 바꾼 오 창윤은 뒷 마루에 걸터앉아 마누라가 내 놓은 차를 마시고 있었다.

영민은 저고리를 벗고 「합삐」로 바꾸어 입은 후에 문 밖에 세워 놓은 자전거에 다 빵 궤짝을 차근차근 쌓아 올리고 있었다.

「몇 집이나 배달하면 되는가요?」

오 창윤은 마누라에게 물었다.

「한 三十[삼십]여 집 되는데 대여섯 번 댕겨야 끝난답니다.」

「시간은 얼마나 걸리지요?……」

「서너 너덧 시간 잘 걸려요.」

「음 ──」

그러는데 짐을 다 실은 영민은

「그럼 다녀 오겠읍니다. 선생님, 좀 더 앉아 계시겠읍니까?」

「다녀 오시요. 좀 더 앉아 있겠소.」

마누라가 따라 나가며

「고꾸로사마·데스와네(수고합니다).」

하였다.

오 창윤은 극히 만족한 얼굴로 조그맣게 사라지는 자전거의 뒷모양을 멍하니 바라보고 앉았다가

「부인, 저 학생의 보수는 얼마나 되는가요?」

「아, 그것이 말씀입니다. 견실한걸 봐서는 좀더 생각하고 싶지 마는 보시는 바와 같이 원체 빈약한 데가 되어서요. 일당 二[이]원인데 보통 학생 같으면 담배 값도 못되지요. 부끄럽습니다.」

「천만의 말씀이요.」

「몇 달만 더 있으면 변호사 어른이 될 훌륭한 분인데, 참 가엾어요.」

「부인, 한 가지 청이 있읍니다.」

「네?……」

오 창윤은 가방에서 아까 그 지폐 뭉치를 꺼내 부인에게 주면서

「미안하지만 이걸 좀 맡아 두실 수 없을까요? 맡아 두셨다가 봉급을 지불하실 때, 이 돈으로 일당 十[십]원 가량으로 지불을 하여 주십시요.」

「아이머니나!」

마누라는 눈을 동그랗게 뜬다.

「그리고 남은 돈은 …………… 부인께서 좀 맡아 두셨다가 뜻하지 않은 돈이 필요할 때 혹시 , 병이 난다든가 그 밖의 그런 급한 돈이 학생에게 필요할 때는 부인께서 돌려주는 양으로 이 돈을 사용하여 주시면 고맙겠읍니다.」

「그럼 이 돈의 출처는 말하지 말란 말씀입니까?」

「그렇습니다. 모든 것은 부인 혼자의 생각으로 하시는 것처럼 선처하여 주시면 감사하겠읍니다.」

「자세한 사정은 모르오나 말씀 대로는 꼭 이행하겠읍니다.」

「그럼 그쯤 부탁하고 실례하겠읍니다.」

「안녕히 가십시요.」

오 창윤은 제빵소를 나왔다.

그날 영민은 학교에서 저녁 무렵에야 하숙으로 돌아 왔다.

책상 위에 봉투가 한 장 놓여 있었다. 보니 오 창윤씨의 간단한 편지였다.

백군.

나는 오늘 낮 차로 귀국하오. 운명은 재천이니 유경의 명도 하늘에 있을 것이요. 인간이 서둘렀댔자 어쩌는 수 없는 일이요.

없어진 딸을 생각하고 슬퍼하는 시간에 뜻하지 않고 생긴 한 사람의 아들을 생각하고 스스로를 위로 하겠소. 백군, 자중하시요.

오 창 윤

「…………」

영민은 묵묵히 편지를 들여다 보면서 오 창윤씨의 그 굵다란 선(線)을 가진 인생관과 우뚝 마주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