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극장/2권/5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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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명의 과정[편집]

1[편집]

대수 시간이 끝나고 점심 시간이다.

셋은 점심을 먹고 뒷산 잔디 밭 위에 번뜻 나가자빠져서 창공의 푸름을 우러러 보며 킥킥킥킥 웃어대고 있었다.

「소레 · 난노 · 단스다이?(그게 무슨 땐스야?) ─」

묻는 것은 콘사이스다.

「단스쟈 · 나인데쓰(땐스가 아닙니다) ─」

대답하는 것은 영민이었다.

「꼬마!」

그때 대통령이 벌떡 몸을 일으키며 주머니에서 종이 쪽지를 꺼냈다.

「이게 정말 암호냐?」

「그렇다.」

「정말이냐?」

「정말이다.」

그때 콘사이스가 싱글벙글 하면서

「대통령, 자네는 사람 된 품이 좀 단순해. 꼬마한테 속지 말어.」

그 말에 영민도 빙그레 웃으면서

「콘사이스, 너는 너의 조상과 함께 사대사상(事大思想)의 전형적 포로(捕虜)다.」

「허어, 문제가 약간 커지는 모양인데……」

「큰 것 만이 위대하고 작은 것은 아무 가치도 없고, 먼 것 만을 존경하고 가까운 것은 경멸하고…」

「또 무어 없는가?」

「또 있지. 보이지 않는 것은 그 어떤 신비감으로서 숭배를 하고 눈 앞에 보이는 것은 천박한 인식(認識)을 가지고 얏잡아 보고……」

「허어, 그럴듯도 하이. 그런데 꼬마 선생, 이 산술 문제나 한번 풀어 보시지요.」

「그대들이 그처럼 머리를 숙이고 앙청(仰請)하는 것을 어찌 하교(下敎)의 번거로움 만을 고집 하리요. 에헴 ─」

영민은 턱을 쓸어 내리었다.

그 순간까지도 콘사이스와 대통령은 무의미한 숫자를 늘어 놓아 자기들을 번롱하고 있는 줄로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차츰차츰 영민의 설명을 들어 보니 그것은 실로 무질서한 충당기호(充當記號)의 나열로 형성된 「포오」의 암호문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이로정연 (理路整然)한 과학적 체계 위에서 형성된 경이적(驚異的)인 창작이었다.

세종대왕(世宗大王)의 가장 과학적인 두뇌에서 창시된 훈민정음 스물 넉자가 그 체계상 만방에 자랑할 만한 위대한 발명이라는 것은 세상이 주지하는 바이지만 그 스물 넉 자를 기초로 하여 창작된 이 기호도 그 논리적 조직과 간명한 수법에 있어서 실로 경탄적인 발명이 아닐 수 없었던 것이니, 이제 그 대요를 기술하여 보면 다음과 같았다.

먼저 자음(子音) 열 넉 자에다 번호를 맥이면 ─ ㄱ(1), ㄴ(2), ㄷ(3), ㄹ(4), ㅁ(5), ㅂ(9), ㅅ(7), ㅇ(8), ㅈ(9), ㅊ(10), ㅋ(11), ㅌ(12), ㅍ(13), ㅎ (14) 다음 모음(母音) 열 자에다 번호를 맥이면 ─ ㅏ(1), ㅑ(2), ㅓ(3), ㅕ(4), ㅗ(5), ㅛ(9), ㅜ(7), ㅠ(8), ㅡ(9), ㅣ(10) 여기서 자음과 모음을 적당히 배합(配合)하여 한글자를 만들 때, 거기에 사용하는 부호(符號)로서 영민은 아주 간단한 방법을 채택하였다.

그것은 소위 분수(分數)의 기호로서 이 암호 기호의 전 생명을 좌우하는 중요한 「키이·포인트」이다.

즉, 자음을 분자(分子)로 하고 모음을 분모(分母)로 하면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보면 「가」는 이요, 「나」는 「다」는 이요, 「라」는 이다. 「고」는 이요, 「두」는 이요, 「버」는 이요, 「버」는 요, 「므」는 요, 「시」는 이다.

이것으로서 위선 「받침」과 「된소리」와 「이」(ㅣ)를 제외한 모든 음이 간단하게 형성되는 것이다.

2[편집]

다음은 「된소리」다. 그러나 이것도 똑 같은 원측으로서 용이하게 형성된다 된소리 는 자음으로서 . 「 」 표시하는 것이니 분자에다 「된소리」를 하나 곱해 주면 되는 것이다.

예를 들면 「까」는 이요, 「따」는 요, 「뽀」는 이요, 「쑤」는 이요, 「찌」는 이다.

다음은 「이」(ㅣ)다. 이것도 마찬가지다. 「이」는 모음으로서 표시하는 것이니까 분모에다 「이」를 하나 곱해 주면 된다.

예를 들면 「개」는 이요, 「대」는 , 「베」는 이요, 「위」는 이다.

다음은 「받침」이다. 「받침」은 자음이나 모음이나에 개별적으로 붙는 것이 아니고 자음과 모음이 합해서 형성되는 하나의 종합체인 음(音)에 붙는 것이기 때문에 논리상 분자나 혹은 분모로서 표시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종합체인 음 자체에다 「받침」의 자음을 곱하면 된다.

예를 들면 「갈」은 요, 「돈」은 요, 「꽃」은 요, 「낮」은 요, 「숲」은 이요, 「팥」은 이다.

그리고 「쌍받침」은 소수점(小數點)으로 표시를 한다.

예를 들면 「있」은 이요, 「밝」은 이요, 「돐」은 이요, 「꺽는다」의 「꺽」은 이요, 「넋」은 이다.

「이상으로 이 암호의 원리는 충분한 설명을 본 것이다. 「꽹가리」의 「꽹」같은 자는 이상의 뭇 요소를 포함한 글자로서 이제 이 자를 기호로 쓰면 이다.」

거기서 영민이가 일단 말을 끊었을 때, 대통령과 콘사이스의 입으로부터 튀어 나온 한 마디는 이러하였다.

「실로 경이적인 발명이다!」

「위대한 창작이다!」

영민은 득의만면한 얼굴로 다시 계속하였다.

「그런데 여기서 글자와 글자를 연결하는 표로서 나는 제일 간단한 「풀러스」를 사용하였다. 이것으로서 우리는 단지 숫자 열 넉 자를 가지고 어떠한 복잡한 문장일지라도 발음 하나 틀리지 않고 정확하게 표현할 수가 있는 것이다.」

「음 ─」

「음 ─」

그 어떤 위대한 인물을 눈 앞에 보는 것같은 표정으로 두 소년은 영민의 얼굴과 종이 쪽지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래 이것을 어제 하루 밤에 생각해 냈는가?」

「그렇다. 콘사이스의 사대주의를 꺾어 버리기 위해서 나는 하룻밤을 꼬박 새웠다. 그러나 자네들이 그처럼 눈이 둥그래 지도록 놀랄 것은 없었다. 자음과 모음을 분수의 분자와 분모로 쓴다는, 이 키이 · 포인트만을 붙잡으면 다른 것은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제일 어려웠으니까!」

「음, 꼬마, 자네 상당 하이!」

그러면서 대통령은 아까 그 쪽지를 펴 들고 영민이의 본을 따라 콘사이스와 함께 기호를 풀기 시작하였다.

「처음엔 좀 서툴지만 자음과 모음이 번호만 외이면 대단히 쉬운 것이다.」

「음 ─」

이윽고 두 소년이 이마를 서로 부딪치면서 풀어놓은 암호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1) = 사대주의를 청산하고 마음을 맑게 가져라.

(2) = 맑은 심경(心鏡)에 진리(眞理)는 비친다.

「으와 하하하핫, 하하핫……」

세 소년은 지극히 유쾌한 웃음을 창공을 우러러 힘차게 퍼뜨렸다.

그러기를 얼마 동안 계속하다가 그때 대통령은 무엇을 생각했는지 갑자기 몸을 벌떡 일으키면서

「그렇다, 이것을……이것을 실지로 사용할 때가 반드시 올 것이다!」

그리고는 흥분한 어조로

「꼬마, 그리고 콘사이즈!」

하고 힘차게 불렀다.

「응? ─」

「이 암호의 원리를 절대로 입 밖에 내지 않을 것을 이 자리에서 맹세해 주게!」

「응, 맹세 하마!」

두 소년은 대통령의 그 무서운 기세에 압력을 느끼면서 그것을 분명히 맹세하였다.

「고마우이, 제군!」

소년 장 일수는 두 어깨를 한번 추켜 올리고 나서 아주 으시대는 목소리로 변사처럼 외쳤다.

「제군, 두고 보라. 내 귀여운 꼬마의 이 위대한 발명은 저 머나먼 북쪽 하늘 밑, 눈 보라 휘날리는 삭풍 속에서 조국의 광복을 위한 하나의 빛나는 무기로서 사용될 날을 오오, 꼬마여, 콘사이스여, 두고 보아라!」

「주여, 두고 보겠읍니다. 아 ─ 멘!」

콘사이스의 유 ─ 모러스한 장단이다.

3[편집]

그것이 벌써 八[팔]년 전 일이다. 그 지나간 날의 추억 많은 소년 시절의 한 토막을 회상하며 영민의 암호의 성립 과정만을 간단히 추려서 기무라에게 설명하였을 때, 기무라도 역시 八[팔]년 전 콘사이스와 대통령이 하듯이 감탄사를 연발하며

「훌륭합니다! 이 암호의 발명이야 말로 우리의 국보적 가치를 가진 것입니다!」

하였다.

영민은 얼굴이 간지럽다는 듯이 싱긋이 미소를 지으며

「그것은 과찬이지만요, 하여튼 열 네개의 숫자를 가지고 우리의 온갖 의사를 표시할 수가 있읍니다.」

그순간 기무라는 후딱 목소리를 낮추어 가지고 영민의 귓밑에다 입을 가까이 가져다 댔다.

「이 암호는 이제부터 우리에게도 필요할는지 모릅니다. 제 일선에 나가서 서로 연락이 잘 안되는 경우에는 이 암호로 적당히 통신을 교환할 수가 있으니까요. 더구나 저네들은 우리의 말을 통 모르니까 암호 해독에 능숙한 자가 있다손 치더라도 이것 만은 절대로 풀지 못할 것이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절대 안전하지요.」

「그러면 이 편지의 내용을 한번 쭈욱 풀어 볼까요?」

「아, 이것을 풀면 이와 같은 말이 되지요.」

영민은 그러면서 다른 종이 조각에다 장 일수에게하는 편지의 내용을 적어 보이었다.

(1) = 나는 본의 아닌 학병으로 출정을 한다 (2) = 지금 제남(濟南)을 지나 진포선(津浦線)을 남으로 달리고 있다 (3) = 용산(龍山) 제 二十五[이십오]부대에 입영하였던 학병 五十[오십] 명이다(4) = 어디로 가는지 목적지는 모른다 (5) = 나는 탈주를 계획하고 있다 (6) = 특히 한 가지 말해 둘 것은 군이 가까이 하는 용궁(龍宮)의 매담 방 월령은 일본군의 스파이 하세가와 나미에다 ─ 꼬마 ─

「아, 일군의 스파이와 가까이 하는 친굽니까?」

기무라는 긴장한 표정으로 묻는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그런 소문을 들었지요. 그럼요 다음 서주(徐州) 역에서 이 편지를 좀 띠워 주시요.」

「염려 마시요.」

영민은 기호로 된 편지를 봉투에 넣고 겉봉을 썼다.

「北京正陽門外大街[북경정양문외대가], 跳舞場[도무장] 「龍宮」[용궁]內 [내], 張旭大兄[장욱대형](북경 정양문외 대가, 카바레 ─ , 용궁내, 장 욱 대형) ─ 於徐州驛[어서주역], 孤馬[고마](서주 역에서, 꼬마) ─ 그런데 이 꼬마가 뭡니까?」

「꼬마란 내 별명입니다.」

「아, 그래요? ─ 그러면 장 욱이란 사람은 그 여자와 같이 있읍니까?」

「같이 있는지 어쩐지는 모르지만 하여튼 그리로 보내면 받는다고 했으니까요. 그건 지금부터 일 년 전의 일이지만 그후 약 반년 전에 그 여자가 일본의 여간첩인 사실을 알았읍니다.」

「음, 적지 않게 위험한 걸요.」

그리고 영민은 다시 아버지에게 드리는 문안 편지(아버지와의 약속대로 누런 봉투를 사용했다)와 오창윤씨에게 보내는 간단한 편지 두 장을 더 써서

「함께 좀 띠워 주시요.」

하고 기무라에게 주었다.

「네」

기무라는 서슴치 않고 석 장의 봉투를 받아 깊숙히 주머니에 넣었다.

오 창윤씨에게 하는 편지에는 다음과 같은 한 구절이 적혀 있었다.

「……그러니까 유경씨는 분명히 서울에 있읍니다. 정거장에서 저는 어린애를 붙안고 있는 유경씨를 확실히 보았읍니다. 서울 장안을 한집한집 뒤져서라도 꼭 유경씨를 찾아서 선생님의 간곡한 설유와 함께 제가 다시 돌아가 뵈올 때까지 적당한 보호를 베풀어 주시기 바라오며……」

그리고 아버지에게 하는 편지 가운데 한 구절은 이러 하였다.

「……아버님, 소자는 서울을 떠날 임시에 운옥을 군중 속에서 먼 발로 보았읍니다. 불쌍한 운옥을 만나 소자의 온갖 회포(懷抱)를 피력하여 운옥의 가엾은 신세의 만분지 일이라도 보답하려고 하였을 때는 벌써 기차는 움직이고 있었읍니다. 운옥은 소자의 아내는 아닐지 모르오나 아버님과 어머님의 며느리임에는 틀림 없사오니, 혹시 아버님께서 오 선생을 보시려 상경하시는 일이 계시거든 아버님의 힘 자라시는 대로 운옥의 행방을 더듬어 주시기 간절히 바라오며……」

그날 저녁 무렵 열차가 서주에 도착하였을 때, 기무라는 무난히 석 장의 편지를 「포옴」우체통에 쓰러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