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극장/2권/50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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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교실[편집]

1[편집]

「그것이 뭡니까? 마치 소학생의 산술 문제 같은……」

기무라는 눈이 둥그레지며 무척 놀랜다.

「쉬이!」

영민은 기무라의 음성이 약간 높은 것을 손으로 제지하면서

「음성이 너무 높아요. 만일 이것이 지휘관의 눈에 띠이는 날이면 우리의 운명은 최후가 될 것이요.」

「그러나 작자가 보았댔자 이것이 뭔지 어떻게 알아요?」

「그러니까 이것이 무슨 의미인지 자기네가 알 때까지 우리는 무서운 고문을 받을 것이니 말이요.」

「음 ─」

기무라의 얼굴이 무섭게 긴장을 하였다.

영민은 편전지를 신문지와 겹쳐 쥐고 옆에서 보면 마치 신문이나 읽고 있는 것처럼, 그러한 자세를 취하면서 들창 가에 바싹 다가 앉아서 슬그머니 기무라에게 보였다.

「모르겠지요?」

영민은 물었다.

「모르겠읍니다. 바로 심술궂은 교사가 출제(出題)한 소학생의 산술 문제가 아니예요?」

「그렇습니다. 얼핏 보면 산술 문제가 여섯 개지요. 그러나 이것은 훌륭한 암호 기호(記號)예요.」

「헤에……」

기무라는 혀를 찬다.

이러한 암호로 된 기호를 그처럼 단시간에 써 보낼 수 있는 영민을 기무라는 적지 않은 경이의 념을 품고 쳐다보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암호문을 상대편이 알아 볼 수 있을는지, 그것이 문제가 아닙니까?」

「알아 볼 수가 있읍니다.」

「그래요?」

기무라의 그 거무티티한 얼굴이 연방 놀래고 연방 감탄하기에 겨를이 없다.

「그러나 상대편 이외의 사람은 절대로 모르겠지요.」

「그래요? 어째서요?……이런 종류의 암호가 있다는 것을 미리부터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절대로 없읍니다. 이 암호가 실지로 사용되는 것이 이번이 처음이니까요.」

「처음이라구요?」

「네.」

「아니, 그러면 이 암호는 이미 세상에서 사용되고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닌가요?」

「아닙니다. 이 암호가 발명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七[칠], 八[팔]년 전의 일이지만 이것이 실지로 사용되는 것은 오늘이 처음이지요.」

「그러나 이 암호를 발명한 사람이 지금까지 한번도 사용하지 않고 있다고는 단정할 수 없지 않읍니까?」

「단정할 수가 있읍니다.」

「어째서요?」

「이 암호는 내가 발명하였읍니다.」

「헤에? ─」

기무라의 놀램은 이번에는 정말로 컸다.

「형, 그것이 사실이요?」

「사실입니다.그리고 이 암호의 원리(原理)를 알고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나까지 세 사람밖에 없지요.」

「그러면 이 편지를 받는 그 북경 친구라는 사람이 그 중의 하나 인가요?」

「그렇습니다. 그리고 또 한 사람은 지금 국내에서 소설을 쓰고 있는 내 친구지요.」

「그런 훌륭한 통신 방법이 있으면서 왜 그걸 미처 못 생각한단 말이요?」

「나도 그만 깜박 잊어 먹었지요. 벌써 七[칠], 八[팔]년전, 중학 시절의 일이었으니까요.」

2[편집]

「참말로 사람의 일이란 모를 것이예요. 무엇이 어떤 때 자기를 이롭게 하고 무엇이 어떤 때 자기를 해롭게 할는지 모를 일이지요.」

그러면서 영민은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기무라에게 설명하였다.

영민이가 중학 三[삼]학년 때였다. 그즈음 대판 외국어 학교를 갓 나온 다츠노구찌 라는 스마 ─ 트한 영어 교사가 있었다. 어딘가 아메리카 풍이 풍긴 그의 스마 ─ 트한 자태며 영어의 발음도 일인들의 그 곧은 혀로 하는

「잇또」「잣또」식이 아니고 중학생들의 귀에는 아주 양행이나 하고 온 것 같은 유창한 발음이기 때문에 학생 간에는 인기가 있었다.

그 다츠노구찌 선생이 수업 시간을 절반쯤 잘라 먹고는 곧잘 이야기를 하여 주곤 한 것이 더 한층 인기였다. 그리고 그 이야기란 대개가 태서 명작에 대한 내용 소개였고 그 중에서도 즐겨 이야기해 준 것은 탐정소설이었다.

그중에는 「하무렡」이나 「레 · 미제라블」같은 이야기도 끼어 있었으나 그 태반은 「코난 · 도일」을 위시하여 「알란 · 포오」의 탐정소설이었다. 일본의 「에도가와 · 람보오」라는 탐정소설의 이름이 「에드가 · 알란 · 포오」에서 땄다는 이야기를 하여 준 것도 그 선생이었다.

그런데 그 다츠노구찌 선생이 「포오」의 「골드 · 벅」(黃金蟲[황금충])이라는, 암호를 테 ─ 마로 한 소설을 이야기하여 준 적이 있었다. ─ 이야긴 즉, 옛날 어떤 해적이 아메리카 서해안에 있는 어떤 섬에다 금은 보배를 감추어 놓고 그 감추어 둔 장소를 암호로 기록하여 두고 죽었다. 본편의 주인공이 와신상담(臥薪嘗膽),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여 그 암호를 풀어 수많은 금은 보배를 찾아 낸다는, 다시 말하면 사건의 「트러불」이란 별반 없고 순전히 암호를 푸는데 주력을 둔 소위 암호소설(暗號小說)의 한 대표적 작품이었다.

다른 학생들은 그 이야기를 무척 흥미있게 듣고 있었으나 영민은 「포오」가 창작한 그 암호라는 것이 대단히 유치할 뿐만 아니라, 원리원측(原理 原測)이 없는 잡연(雜然)하고도 무질서한 것임을 내심 얏잡아 보고 있었다.

「뭐야! 그것이 세계 명작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워지는 작품에 사용된 암호야? 그것은 암호가 아니고 일종의 약속이다!」

시간이 끝난 후, 영민은 대통령과 콘사이스를 상대로 그런 기염을 토했다.

「포오의 암호는 훌륭한 암호라고 볼 수는 없다. 3은 g을 대표하고 5는 a를 대표하고 퀘스천 · 마 ─ 크(?)는 u를 대표하고 사각형(□)은 또 무엇을 대표하고……이것은 누구나가 다 할수 있는 일종의 약속이 아닌가! 여기에는 원칙이 없다. 오랜 시간을 허비하여 이것 저것 맞추어 보느라면 누구나가 다 풀수 있는 것이다. 훌륭한 암호에는 원리원칙이 있어야 하고 계통(系統)의 흐름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명민한 두뇌의 소유자면 단시일에 그 원리원칙을 발견할 수 있도록, 그러한 과학적인 근거가 있어야 할 것이다.」

중학생 백 영민은 아주 흥분하며 「포오」의 이 암호 문에는 과학적인 근거, 현대의 온갖 과학에서 볼 수 있는 조직과 계통이 없다는 것을 통절히 공격하였다.

그때 콘사이스가 불쑥 나서며

「그만 둬! 남의 일은 다 쉬운것 같애 보이지만 제가 하면 되지 않은 거야 뽐만 내면 제일이야 . ? 우리에게도 「알파벹」보다 못지 않은 훌륭한 글이 있어. 훈민정음(訓民正音) 스물 넉자를 가지고 꼬마가 한번 훌륭한 암호 기호를 만들어 보겠지, 흥!

하였다.

「만들랴면 만들지, 못 만들것 같애? 포오는 하루에 여섯 끼 밥을 먹었나?

저두 세 끼, 나두 세끼야.」

「흥, 먹는 건 세 끼씩 같을지 모르지만 머리가 달라, 머리가!」

「머리가 무엇이 달라? 포오의 두개골(頭蓋骨) 속에는 뇌수가 천「그람」이 들었다는 말이야, 만「그람」이 들었다는 말이야?」

「흥, 「그람」 문제가 아니구 질(質) 문제야. 쿠얼리티이, 쿠얼리티이!」

말투마다 영어를 쓰기 좋아하는 콘사이스의 비웃음이 영민의 자존심을 극도로 자극하였다.

「음, 쿠얼리티이(질)다! 그러나 콘사이스, 내일 아침 내가 만들어 가지고 오는 암호를 보아라!」

그때 콘사이스는 머리를 극히 완만하게 끄덕거리며

「어디 내일 아침 두고 보세나!」

하였다. 그날 밤, 영민은 책상에 들어 붙어서 훈민정음 스물 넉자를 가지고 씨름을 하기 시작하였다.

3[편집]

이튿 날, 대수(代數) 시간에 영민은 다음과 같은 산술 문제를 적은 쪽지를 콘사이스에게 던져 주었다.

「너의 무조직한 단순한 머리로는 대수의 복잡성을 감히 당해 내지 못할 것 같기에 다음과 같은 풀기 쉬운 소학생들의 산술 문제나 풀어 보는 것이 여하여 하오(如何如何乎)?」

이런 농담이 쪽지 맨 서두에 씌어 있었고 산술 문제는 이러 하였다.

(1)

(2)

「자식이 사람을 가지고 막 놀려 먹는다.」

자기 바로 등 뒤에 앉은 영민을 힐끗 한번 돌아다보며 콘사이스는 소녀처럼 예쁜 얼굴로 생긋이 웃어보였다.

그러는 콘사이스의 옆구리를 한번 쿡 찔러 주며 영민은 속삭이듯이

「그래 대수에는 낙젯국을 먹을 망정 소학생의 산술 문제두 못 풀겠어?」

하고 빙글빙글 웃었다.

「그래 것이 네가 만든 그 훌륭한 암호란 말이냐?」

「글세 풀어만 봐요. 답이 무어라고 나오나?」

「흥, 누가 너한테 넘을 줄 알구?」

그러면서도 콘사이스는 대수는 집어 치우고 이 대단히 귀찮은 산술 문제를 풀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아무리 운산(運算)을 해 보아도 신통한 답은 나오지 않았다. 더구나 「」이라던가 「」라던가 하는, 분모(分母)가 「1」자로 된 이런 분수(分數)를 콘사이스는 아직까지 본 일이 없다.

「이게 정말 무슨 암호가 아닌가?」

그렇게 중얼거리다가 콘사이스는 마침내 펜을 내던지고 이 쪽지를 딸딸 말아서 외인편으로 한 줄 건너서 앉아 있는 대통령의 책상 위로 휙 던지면서

「풀어 봐.」

하였다.

자기가 한참 동안 골탕을 먹은 복수를 콘사이스는 대통령에게 해볼 심산이다.

영민이가 가만히 바라보니 대통령도 그 축농증이 심한 코 구멍을 쿵쿵쿵하고 벌룩거리며 쪽지에 기록된 산술 문제를 한참 동안 풀어 보는것 같더니 그도 마침내 귀찮다는 듯이 펜을 던지고 영민을 후딱 바라보며 한 쪽 눈을 싱긋이 감아 보였다.

그것은 대통령의 기분이 무척 유쾌할 때 하는 독특한 버릇이다.

그래서 영민도 기분이 흐뭇하여 똑같이 한 쪽 눈을 싱긋이 감아 주었더니 대통령은 심히 유쾌하다는 표정을 보이기 위하여 그가 늘상 하는 버릇으로 그의 독특한

「하, 하, 핫, 하하핫……」

하는 삼 박자의 호걸풍의 三[ ] 웃음을 소리는 내지 않고 웃는 것으로 그 강대한 두 어깨를 아래 위로 한참동안이나 신이 나서 들썩거리고 있는데 칠판을 향하여 대수를 풀고 있던 다니오까라는 선생이 후딱 뒤를 돌아 보았다.

그런 줄도 모르고 대통령은 영민을 바라보면서 싱글벙글 어깨를 들썩거리고 있었다.

「쉬이, 쉬이!」

영민은 그렇게 눈짓으로 신호를 해 주었으나 대통령은 그것이 자기 어깨춤에 장단을 맞추어 주는 신혼줄로만 생각했는지, 더한층 기세를 올려 한 자폭이나 될만한 넓이를 가지고 어깨를 연방 들썩거리고 있었다.

「소레 · 난노 · 단스다?(그게 무슨 댄스야?) ─」

하는 소리에 대통령은 후닥닥 놀래서 칠판을 향하였다.

학생들이 와아 ─ 하고 웃었다.

「다까라 · 기미와 · 다이승아 · 다메나노쟈(그러니까 너는 대수를 못하는 것이야) ─」

「하핫 ─」

대통령은 벅작벅작, 머리를 긁었다.

「잇데미로 · 소레 · 난노 · 단스다?(말해 봐. 그게 무슨 땐스야?) ─ 」

「단스쟈 · 나인데쓰(땐스가 아닙니다) ─」

「쟈· 난다?(그럼 무어냐?) ─」

「잇슈노 · 와라이데쓰(일종의 웃음입니다.) ─」

「와라이(웃음?) ─」

「하 ─」

「손나 · 와라이까다가 · 아루까(그런 웃음이 어디있어?) ─」

「아룬데쓰(있읍니다) ─」

「가다데 · 와라우까 · 기미과? (어깨로 웃느냐, 너는?) ─」

「센세이노 · 이나이 · 도끼니와 · 구찌데모 · 와라이마쓰(선생님이 없을 때는 입으로도 웃습니다) ─」

「으와 ─」

하고 학생들은 발을 궁굴면서 웃어 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