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극장/2권/5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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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무장 · 「용궁」의 밤은 깊어서[편집]

1[편집]

조무장(跳舞場) 「용궁」의 밤은 화려한 「일루미네이슌」이 물결처럼 흐르는 사랑의 전당(殿堂)이며 七[칠]색의 찬연한 무지개인 양 가지각색의 사랑이 매매되고 있는 연애시장이다. 정조의 가치 보다도 정조에 이르기 까지의 「찡 · 칵텔」과도 같은 강렬하고도 감미로운 연애의 과정(過程)이 좀 더 값 비싸게 사고 팔리는 사랑의 산매시장(散賣市場)이다.

연애직업선수(戀愛職業選手)인 땐서 ─ 들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상품을 처음으로 들고 나와서 값을 저울질 해 보는 수즙은 처녀들이며 곰팡이가 쓸도록 낡아 빠진 정조를 새로이 세탁하여 그럴듯 하니 다리미 질을 해 갖고 나온 유한 마담들의 그 새빨간 「루 ─ 즈」가 마치 백일홍의 화판처럼 꽃 웃음을 짓는 「용궁」의 밤이다.

그러나 그 무한히 매혹적인 빨간 입술들은 사랑만을 속삭이지는 않았다.

화려한 야회복 속에 탐스럽게 감추어 진 젖 가슴 밑에는 조국의 운명을 걸머지고 건곤일척(乾坤一擲), 먹느냐 먹히느냐의 조국애에 불타는 새빨간 심장이 무섭게 뛰놀고 있기도 하였다.

이리하여 오늘도 조무장 「용궁」의 밤은 작열된 정열 속에서 저으기 깊으려 한다.

고도(古都) 북경의 밤 거리에 요염하게 핀 한 떨기 다채로운 야화(夜花) 방 월령 ─ 그 방 월령이 「용궁」을 확장하여 정양문 밖에서 성내 동 장안가(東長安街)로 옮아 온 것은 벌써 약 반 년전의 일이다.

감미롭게 무르익은 음률의 흐름과 황홀찬란한 샨데리 ─ 의 빛깔과 오관 (五官)을 마비시키는 지분의 냄새와 「칵테일」잔에 둥실 뜬 앵도알 같은 새빨간 입술과 이상야릇한 추파의 물결과 속삭임과, 「베 ─제」와 포옹과 ─ 그렇다, 타오르는 정열에 파동치는 육체의 수풀이 어지럽게 흐느적거리는 관능(官能)의 세계, 환락의 밤이다.

「나의 정열이 그대를 불살릴 때……」

사나이는 계집의 귀에다 입을 대고 힘 있게 말한다.

「그대의 품 안에서 이 한 몸이 타고 또 타서 한 줌 까만 재가 되어 봤음!」

계집은 사나이의 턱 밑에서 눈을 사르르 감고 잠고대처럼 중얼거린다.

「워 ─ 디 · 유에링(나의 월령)!」

「워 ─ 디 · 위이(나의 욱이)!」

방 월령의 허리에 둘린 장 욱의 손아귀에 무심중 힘이 주어 지는 순간, 장욱의 어깨 위에 올려 놓은 월령의 손가락이 장 욱의 장대한 육체를 다정하게 학대를 했다.

「아아, 오늘 밤의 유에링은 무척 행복해요!」

「그 어떤 명배우의 대사와도 같구려.」

「위이!」

「응……」

「나 정말로 명배우 같애?」

「그레타 · 갈보가 아니면 마르네 · 딧드릿히!」

「흥, 암만 생각해두 서글픈 일이야. 「용궁」의 마담은 섣불리 연애도 못 하랬나 나의 심장은 이처럼도 ? 사랑의 불길로 터질것 같것만 사랑의 이리(狼)들은 모두가 다 나를 가르켜 명배우라 했어. 서글픈 아아, 한없이 서글픈 그대 유에링의 가엾은 모습!」

홀에 나서기 전에 몇 잔 드리킨 「찡 · 칵테일」이 방월령의 아니, 일본의 여간첩 나미에의 전신을 황홀하게 감도는 것이다.

2[편집]

「나 갈보는 싫어. 나 딧드릿히가 좋아! 오오, 샹하이 · 릴리 ─ , 샹하이 · 릴리 ─ !」

「샹하이 · 릴리 ─」(상해의 백합화)는 딧드릿히 주연의 아메리카 영화다.

「왜 「간첩 · × · 二十七[이십칠]호」는 나쁜가?」

「간첩 · × · 二十七[이십칠]호」도 딧드릿히 주연의 유명한 스파이 영화다. 제 일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여간첩으로서 활동하는 동안 연합군의 군사행동을 세밀히 조사하여 베를린 정보국으로 암호타전(暗號打電)한 유명한 여간첩 × · 二十七[이십칠]호로 불리워 지던 「마타 · 할리」를 「모델」로 한 영화다.

「간첩 · × · 二十七[이십칠]호」라는 한 마디가 장 욱의 입에서 떨어지는 순간, 심장의 고동이 일 찰라 정지하리만큼 방 월령은 당황하였다. 그 당황함이 숨길 수 없는 표정으로 나타났다. 사라지는 일순간을 장 욱은 분명히 방 월령의 얼굴 위에 보았다.

장 욱은 방 월령의 어깨 위에서 허공을 향하여 빙그레 웃음을 지으며

「딧드릿히의 샹하이 · 릴리 ─ 보다야 딧드릿히의 마타 · 할리가 그럴듯 하지.」

「마타· 할리, 마타 · 할리!」

월령은 장 욱의 품 안에 얼굴의 표정을 파묻으며 신음하듯이 중얼거렸다.

「왜 마타 · 할리가 싫어요?」

「싫긴…… 마타 · 할리, 무척 좋아 해요. 불꽃같은 사랑과 엄숙한 임무와 ─ 그 격렬한 「딜렘마」속에서 딩굴며 웃고 울고 노래하고 눈물 짓는 사랑의 탄츠(探子[탐자] ─ 간첩) 마타 · 할리!」

마타 · 할리를 찬미하는 월령의 목소리는 그 어떤 정체 모를 흥분 속에서 가느다랗게 떨리고 있었다.

「마타 · 할리도 유에링과 같은 땐서 ─ 였다지 않아요?」

응 땐서 「 , ─ ! 파리 암흑가에 악화(惡化)처럼 피었다 사라진 마타 · 할리! 봔싼느(마타 · 할리가 총살 당한 파리의 교외) 수풀 속에서 한 방울 이슬같이 사라진 오오, 위대한 여간첩 마타 · 할리의 비장한 최후여!」

자기 자신을 끝없이 비웃는 것같은 방 월령의 서글픈 독백(獨白)이다.

각각 조국을 달리하는 간첩과 간첩이 그의 엄숙한 임무를 이행하기 위하여 사랑이라는 허울좋은 가면을 쓰고 나타난 장 일수와 나미에였다.

누구가 먹느냐, 누구가 먹히느냐? ─ 간첩에게는 진정한 사랑은 절대로 금물이다. 사랑의 가면을 최후까지 뒤집어 쓸 수 있는 명배우래야 최후의 승리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만일 극장 무대 위에서 한 개 허구(虛構)로 된 인생을 재현(再現)하는 단순한 예술가로서의 사명에 그친다면 무엇이 그리 두려우랴만 그러나 그들 간첩이야 말로 조국의 운명을 좌우하는 하나의 활무대(活舞臺) 위에서 웃고 울고 노래하고 눈물 지어야만 하는, 하나의 엄숙한 사명을 띠고 자기의 생명을 티끌처럼 불살러 버릴 수 있는 위대한 배우래야만 하였다.

하세가와 · 나미에가 아니, 여간첩 방 월령이 봔산느 수풀 속에서 총살을 당하여 이슬처럼 사라진 세계적 여간첩 마타 · 할리 ─ 의 불쌍한 최후를 이처럼 애끓는 감정으로서 조상하는 것을 보는 순간, 장 일수는 회심의 웃음을 빙그레 입 가에 지었다. 방 월령의 이 비장한 연애극(戀愛劇)에 있어서는 자기 편이 확실히 승리의 길을 걷고 있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기 때문이다.

사랑과 조국의 틈사리에 끼어서 무서운 고민으로 말미암아 몸부림을 치고 있는 방 월령을 장 일수는 분명히 보았던 것이다.

3[편집]

「유에링, 종루(鐘樓)에 달이 떴소. 밖으로 나가서 소풍이나 합시다.」

장 욱은 월령을 이끌고 홀을 나섰다. 二[이]층 발코니 ─ 에 한월(寒月)이 비끼고 멀리 바라보이는 고루(高樓)와 종루의 우뚝우뚝 선 검은 자태가 차디찬 달빛 속에서 옛날의 영화를 속삭여준다.

두 사람은 난간에 비스틈이 몸을 의지하고 깊고깊은 안식의 나라로 찾아 드는, 이 낡은 도읍의 평화로운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내가 당신을 처음으로 만난 것도 오늘과 같이 조각 달이 종루에 걸리던 밤이었죠.」

그러면서 월령은 장 욱의 팔을 정답게 끼고 동안 스 「 ─ 쟝(東安市場[동안시장]) 뒷 골목에서 불한당의 습격을 받고 있던 순간, 중세기의 기사(騎士)와도 같이 용감히 뛰어 나와 나를 구해 준 젊은 영웅 ─ 그것이 바루 미스터 ─ · 쨩위, 당신이었죠.」

「유에링은 늙었나 보오. 왜 장래를 못 생각하고 과거만을 생각하오?」

「나에겐 어여쁜 과거가 있을 따름, 장래는 없어요.」

「무슨 뜻이요, 유에링?」

장 욱은 월령의 어깨 위에 손을 얹어 포옹의 자세를 취하며

「유에링의 그 빨간 입술이 한없이 그리운 밤, 나는 창 밖의 두견새와 밤새도록 이야기를 하지요.」

「거짓 말! 북경 시내에 두견새가 어디 있담!」

「아니요. 유에링은 아마 사랑의 특징을 모르나 보오. 창 밖의 까마귀 울음도 두견새 처럼 들리는 밤, 나의 사랑은 천마(天馬)를 타고 선녀(仙女)의 입술을 그리며 창공을 달리지요.」

「흐응, 말재주가 무척 늘었구려.」

「아아, 이 평화스런 밤! 있는 것은 오직 우리 두 사람의 불타는 사랑 뿐─ 인류여, 온갖 갈등과 싸움을 멈추고 우리의 이 성스러운 사랑을 위하여 평화를 건설하라! 대동아에 여명이 온다. 소리를 높여 평화의 노래를 부르 자꾸나! 우리의 위대한 지도자 왕 정위 선생은 대동아 공영권(共榮圈)에 평화를 가져 오려는 거룩한 사도, 중국 四[사]억의 민중이 전쟁의 도탄 속에서 무한한 신음을 계속하고 있는 이때, 중경 정부는 어이하여 아직도 각성을 못하고 항일(抗日)의 무모(無謀)함을 감행하는고? ─ 오오, 그립다, 평화여! 내 사랑 유에링을 위하여!」

무대에 선 배우처럼 도도히 흘러 나오는 명대사(明臺詞) ─ 월령의 앞에서는 언제든지 일본의 괴뢰정부 왕 정권을 열렬히 지지하는 혁명가로 변해 버리는 장 욱이었다.

「당신은 정말 참다운 우국지사(憂國之士), 진정한 구안(具眼)의 선비! 아아, 당신은 내 사랑을 송두리채 빼앗어 버린 그리운 사람!」

월령은 그렇게 외치면서 장 욱의 품에다 얼굴을 깊이 파묻고 나어린 소녀처럼 사랑의 몸부림을 쳤다.

그러나 몸부림을 치면서 월령의 손가락은 재빨리 장 욱의 양복 주머니를 뒤지기 시작하였다.

「그대가 가까이 하고 있는 장 욱이라는 청년은 중경의 밀정인 혐의가 농후하니 각별 주의를 하라 ─」

나미에가 이러한 경고를 상부로부터 받은 것은 벌써 오래 전 일이다. 그러나 아무리 경계의 눈동자로 유심히 보아도 언제나 남경 정부 지지파의 열렬한 우국 청년이라는 이외에는 의심쩍은 점은 보이지 않고 도리어 장 욱의 그 호탕한 남성적 성격에 온 정열을 퍼부어 온 나미에였다.

그러던 것이 사흘 전 나미에는 , 또다시 상부로부터 다음과 같은 지령을 받았다.

「장 욱은 저 암흑의 대통령의 끄나풀일는지도 모른다. 그대는 온갖 수단을 다하여 그의 몸을 뒤지는 기회를 가져라. 그리고 만일 그의 몸에서 소학생의 산수 문제와 같은 숫자(數字)의 나열로 된 암호 기호를 발견한다면 그것은 우리에게 있어서 무척 다행한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