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극장/2권/6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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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떨기 추상의 꽃이[편집]

1[편집]

장 욱이가 아니, 장 일수가 저윽이 긴장한 표정으로 모리손· 대가(王府井大街[왕부정대가]) 어떤 공중 전화통 속에서 튀여 나온 것은 한시가 거의 가까운 무렵이었다.

「운옥씨가…… 운옥씨가 나를 찾아 왔다?─」

꿈 같은 이야기가 아닌가! 정녕 그것은 장 일수에게 있어서는 몽혼(夢魂)에서만 있을 수 있는 한폭의 아름다운 꿈이었으며 「안데르센」이나 「그림」의 동화에서나 찾아 볼 수 있는 한 토막의 어여쁜 신화(神話)와도 같았다.

「운옥씨가 이 북경엘 왔다! 나를 찾아 용궁엘 왔다!」

아니, 꿈과 같은 것은 비단 허 운옥의 출현만이 아니다. 꼬마 신랑 영민의 돌연한 서신도 역시 마찬가지의 일이다.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이 두 사람의 소식이 어쩌면 이처럼 때와 장소를 같이하여 자기를 찾아 왔는지, 기적 과도 같이 장 일수는 신기하다.

화려한 모리슨 거리를 장 일수의 발걸음은 저도 모르는 사이에 용궁· 홀이 있는 동장안가를 향하여 허둥지둥 거닐고 있었다. 지남철에 끌려 드는 쇠붙이처럼 그의 발걸음은 온갖 위험을 망각하고 자꾸만 자꾸만 조무장 용궁을 향하여 한 걸음 두 걸음 옮겨지고 있었다.

꼬마가 갑자기 무슨 「 소식을 전해 왔을까? 어째서 운옥씨가 갑자기 북경엘 나타났을까?─」

아무리 생각하여도 장 일수로는 알 길이 막연했다.

장 일수는 문득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것은 고급 양복지가 호화롭게 축축 느러진 어떤 양복점 진렬장 앞이다. 그는 무엇을 생각했는지, 진열장 유리에 어렴풋이 비치는 자기 모습을 물끄러미 들여다 보면서 오른 손으로 자기의 외인편 가슴을 양복 위로 꽉 눌러 보았다.

그러나 그것은 자기의 심장의 고동을 측량하려는 갸륵한 거동은 아니었다.

그때 그의 손바닥에 탐탁히 잡힌 것은 양복 안주머니에 있는 돈지갑이었다.

「흐흥 ─」

긴장했던 표정이 탁 풀리면서 그의 얼굴에는 한 떨기 추상(追想)의 꽃이 활짝 펴 있었다.

그는 안주머니에서 지갑을 끄집어 냈다. 지갑 속에는 수십 장의 지표와 함께 조그만 조약돌 하나가 달랑 들어 있었다. 손때가 묻어서 반들반들 닳아진 조약돌이다.

그는 조약돌을 끄내서 한 번 정성껏 어루만져 보았다.

「나를 사지에서 건저 준 이 신령한 조약돌!」

그는 다시금 지갑 다른 간에서 흰종이 조각을 하나 끄집어 냈다. 거기에는 연필로 다음과 같은 간단한 글이 적혀 있었다.

「─ 장 일수씨, 빨리 몸을 피하시요. 현관 문은 위험합니다. 다른데로 피하시요 ─ 」

장 일수는 다시금 종이 조각을 지갑에 거두어 넣고 걸음을 옮겨 놓았다.

운옥씨, 나는 다시금 거치러운 생활 속으로 뛰어들어 가렵니다. 나에게는 안일한 생활이라는 것이 격에 맞지를 않읍니다. 육체적으로는 상처를 받은 몸이었읍니다만 돌아보면 즐거운 한 달 동안이었읍니다. 그리고 그것은 말하자면 괴로운 즐거움이었습니다. 즐거운 괴로움이기도 하였습니다.

나는 운옥씨에게 기념물 같은 것을 하나 남겨 두고 싶었읍니다만 그것은 결국 운옥씨를 학대하는 결과를 맺을 것 같아서 그만 두고 떠납니다. 그러나 나에게는 운옥씨를 생각하지 않으면 아니될 때가 항상 있을 것 같아서 운옥씨가 저에게 주신 귀중한 선물을 하나 갖고 갑니다. 종이 조각에 싼 조약돌 한 개! 이 조그만 조약돌을 들여다 볼 때마다 나는 한 사람의 고귀한 여인의 동지애(同志愛)를 느끼고 자신을 편달하고자 합니다. 분망하여 김준혁 박사의 후의에 대하여 따로이 쓰지 못하오니 부디 치사의 말씀을 전해 주십시요.

─ 장 일수 올림 ─ 추신 ─ 혹시 북쪽으로 여행을 오실 때가 계시거든 북경 정양문 앞거리에 있는 캬바레 ─ 용궁을 찾아 주시요.

이것이 지나간 날 파출부 허 운옥에게 남겨 놓고 바람처럼 조국 땅을 떠나 버린 풍운아 장 일수의 고달픈 심정이었다.

2[편집]

「위험 천만.」

다자꾸 용궁을 향하여 옮겨지는 걸음걸이를 무서운 의지력을 가지고 억제할 수 있으리 만큼 풍부한 경험을 장 일수는 가졌다.

그렇다. 이유는 어쨌던 캬바레 ─ 용궁은 샹하이· 도라의 본거지가 아닌가.

장 욱의 정체가 나미에에게 알려진 오늘날 아무리 나미에의 마음을 붙잡은 장 일수랄지라도 무장(武裝) 없이 호혈(虎穴)을 찾을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그것도 일 개 모험가의 「아반출」이라면 모르거니와 적어도 조국의 광복(光復)을 일신에 걸머진 한 사람의 혁명가로서 어찌 단신 무비(單身無備)로 적진을 찾을 수가 있으랴.

장 일수의 발걸음은 무서운 속도로 외인편 등시구(燈市口) 거리로 홱 빠져 들어가 남대가(南大街)를 향하여 총총히 걸어 갔다. 걸어 가면서 장 일수는 자기에 향한 나미에의 애정을 면밀히 계산해 보는 것이다.

수화기에서 흘러 나온 나미에의 명랑한 어감 속에 전혀 하나의 공교로운 함정이 감추어져 있지 않다고 난정할 수는 없지 않는가.

「나미에는 과연 사랑을 위해서 조국을 팔 수 있을 것인가? 나미에는 과연 조국을 위해서 사랑을 팔 수 있을 것인가?─ 아니, 나에 대한 나미에의 사랑이 과연 순수한 것일까? 조국을 팔 수 있도록 그처럼 깊이와 넓이를 가진 애정일 것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의심쩍은 일이었다. 그러나 장 일수에게는 결코 적지 않은 자신이 있었다. 나미에의 감정을 충분히 농락할 수 있는 자신을 장 일 수는 가지는 것이다.

「그렇다. 적어도 내가 전화를 걸었을 순간까지는 순수한 나미에였다. 아무런 함정도 만들어 놓지 않은 나미에였다.」

장 일수는 그렇게 단정하였다. 그러나 앞 일을 누가 알 수 있으랴.

장 일수는 결코 준비없이 홀을 방문할 수는 도저히 없었다.

이윽고 남대가로 나선 장 일수는 오른편으로 꺾어져 동단패루(東單牌樓)를 향하여 쏜살같이 들어갔다.

동단패루 뒷거리에는 그들의 비밀 연락소 만만정(滿滿亭)이 있었다.

대중식당 만만정은 언제든지 만원의 성황이다. 장 일수는 곧 식당 저편에서 손님들에게 호궁을 켜 주고 섰는 강 시후 노인의 뒷모양을 발견하고 회심의 웃음을 빙그레 입가에 지으면서 한편 구석에 자리를 잡고 간단한 식사를 주문하였다. 그리고는 곧 수첩을 한 장 찢어가지고 거기에다가 예의 그 암호 기호를 깨알처럼 기입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담배 꼬치 모양으로 딸딸 말아서 먹다 남은 담배갑 속에다 함께 쓰러 넣었다.

식사가 왔다. 그리고 조금 후에 식사를 하고 있는 장 일수 앞에 호궁을 든 강 시후 노인이 나타났다.

「한 푼 주십쇼.」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한 후에 노인은 호궁을 켜기 시작하였다. 장 일수는 귀찮다는 듯이 힐끗 한 번 노인을 쳐다본 후에 식탁에 놓인 담배 갑에서 담배를 몇 꼬치 뽑아 주었다.

「둬쎄, 둬쎄!」

노인은 또 허리를 굽히면서 다음 손님 한테로 걸어 갔다.

이윽고 만만정에서 빠져 나온 강 시후 노인은 좀더 깊숙히 골목 안으로 걸어 들어 가면서 주머니에서 담배 꼬치 몇 개를 끄집어 냈다. 그러다가 그중 한 개를 골라 쥐자 부리나케 그것을 펼쳐 보았다. 노인은 그 암호기호를 당장에 해독할 수 있는 훈련을 쌓아 온 위인이다.

一[일], 오늘 저녁 용궁 방문은 밤 아홉 시에 하되 호궁은 켜지 말고 저격(狙擊)의 태세를 취하고 대기할것.

二[이], 동지 박군으로 하여금 목란에게 전화를 걸어 허 운옥이라는 한국 여성이 용궁에 왔는지 안 왔는지를 조사케할것.

三[삼], 오늘 밤 용궁 홀에 동지 두 사람을 배치하되 반드시 무기를 휴대할 것. 이상의 복명(復命)은 오후 다섯 시까지.

「음, 마침내 때는 왔구나!」

노인의 얼굴이 무섭게 긴장을 한다.

이윽고 오후 다섯 시 ─ 강 시후 노인의 복명은 이러 하였다.

一[일], 명령대로 二[이], 성함은 분명치 않으나 오늘 정오 트렁크를 든 한국 여성 한 사람이 확실히 용궁을 찾아와 지금 이층 마담의 방에 동거 三[삼 ], 명령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