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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극장/2권/6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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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전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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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미에를 노린 것이 비록 조국을 위한 수단이기는 했다. 그러나 목석(木石)이 아닌 이상 철(鐵)의 심장을 소유하지 않은 이상 생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나 나미에의 불 붙는 정염(情炎)을 완전히 무시할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그렇기 때문에 그처럼도 호탕한 성격의 소유자인 장 일수로서도 이렇다 할 대꾸 한 마디를 변변히 입에 담지 못했다. 더구나 나미에가 이처음 순정과 솔직과 대담성을 가지고 정면으로 부닥처 올 줄은 정말 장 일수로서 뜻밖의 일이었다. 감정과 이성, 개체와의 경중(輕重)을 저울질 해 볼 여유도 없이 일순간은 나미에의 정열의 불길 속에서 벙어리처럼 입을 담을 수 밖에 없었다.

「유에링, 용서해요!」

간신히 배앝은 한 마디는 결국 이것이었다.

「당연하지, 용서는 또 무슨 용서야요? 그만 했음 알대로 다 알았으니 그만 둬요. 님에게 조국이 있담 나미에게도 조국이 있을 상 싶어요.」

「하는 수 없는 일이요. 운명이니 단념할 수 밖에 별 도리가 없소. 거대한 한 민족이 존망(存亡)의 위기에 처해 있는 이 엄숙한 마당에서 개체(個體)의 주장과 의욕이 그대로 허용될 수는 없는 일이요. 민족의 생리와 개인의 생리, 민족의 운명과 개인의 운명이 결코 별개의 것이 아니요. 나에게 조국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렇소! 그대에게도 훌륭한 조국이 있을 것이요.」

그 굳세인 한 마디가 장 일수 입에서 떨어지자 나미에는 오싹하고 달려드는 몸서림을 전신에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몸서림 이유 모를 그 격렬한 전률이야말로 그렇다, 그것이 바로 조국애라는 것이다. 아니, 조국애의 인식(認識)이었다.

「위, 감사합니다! 하마트면 잃어 버릴번 했던 귀중한 조국을 님은 저에게 다시 찾아 주었어요. 그리고 그 감사한 은인이 바로 저의 조국의 적(敵)이라는 사실도 분명히 발견했어요!」

사랑에 눈이 어두워 조국을 망각하려던 여간첩 하세가와· 나미에가 비로소 「야마도· 나테시꼬(大和撫字[대화무자])」로서의 자기 자신을 발견하는 순간이었다.

「민족의 운명이니 하는 수 없는 일이요. 그러나 여기서 한 마디 특별히 말해 두겠오. 그대가 그의 조국을 위하여 일하는 것은 좋소. 그러나 그대는 또한 그대의 조국이 현재 걷고 있는 길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할 것이요.」

「무슨 뜻이야요?」

「그대의 조국의 정책을 비판할 줄 알아야 하오. 약육강식(弱肉强食)을 일삼는 일본 제국주의의 생리를 알아야 하오. 한일합병(韓日合倂)의 역사를 알아야 하오. 만주가 어째서 만주국이 되었으며 국력(國力)이 모자라는 장개석 정부가 나는 새도 떨어 뜨린다는 관동군(關東軍)과 싸우지 않고는 견데 배길 수 없었는가를 잘 생각해 보시요.」

「그런 귀찮은 건 난 몰라요. 일본은 지금 대동아 공영권을 형성하기 위하여 장 개석 정부와 그것을 원조하는 미· 영 뿔럭과 싸우고 있어요. ─ 하여튼 쨩위, 나는 이 순간에 있어서 나를 낳아 준 내 조국 일본의 은혜를 느꼈어요. 그리고 또 이 순간에 있어서는 그것을, 아니 그것만을 느끼면 그만 이예요.」

「좋소. 그러나 유에링, 한 가지 특별한 청이 있소.」

「무어야요?」

「오늘 밤만은 나를 무사히 돌려 보내 주시요. 멀리 조국 땅으로부터 나를 찾아 온 한 여인의 용껀을 들어 보게 하여 주시요. 청입니다. 특별한 청입니다!」

「용껀은 여기서라도 물으실 수 있잖어요?」

「그러나 여기선……」

「꼭 모시고 가야겠어요?」

「그런 것도 아니지만 하여튼 오늘 밤만은……」

「오· 케!」

「감사하오.」

「인사는 천천히 해요.」

그러면서 나미에는 춤추며 지나가는 한 사람의 땐써의 가슴에 핀 새빨간 장미꽃 한 송이를 뺐어 자기의 가슴에다 꽂으며

「파이란(白蘭[백란]), 어린 것이 무슨 장미꽃이야? 파이란은 릴리(白合花[백합화])가 어울려.」

「아이, 마담두! 오늘 밤 무척 기분을 내시네.」

하면서, 지나가 버렸다.

「어때요, 쨩위. 역시 유에링에겐 장미가 어울리죠? 빨갛게 펴 오르는 이화관은 나의 하 ─ 트, 님에게 향하는 나의 뜨거운 심장의 빛갈 ─ 그리고 이 수많은 가시는……?」

「그 수많은 가시는‥‥?」

「님에게로 향하는 나의 싸늘한 적의(敵意)!」

춤이 또 한차레 끝났다.

목란은 마담의 가슴에 핀 장미화를 바라보자 二九五○[이구오공]번에 전화를 걸 셈으로 바텐더 ─ 를 향하여 다람쥐처럼 걸어 갔다.

나미에는 목란의 뒷모양을 멀리 바라보며

「이층에서 손님이 장 선생님을 기다리고 있어요. 제가 인도해 드릴테니 따라 올라 오세요.」

그리고는 앞장을 서서 식탁과 식탁 사이를 꿰어 층층대를 향하여 총총히 걸어 갔다.

장 욱은 서너 걸음 나미에의 뒤를 따라 가다가 멈칫하고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 어떤 것잡을 수 없는 위험을 장 일수는 전신에 느꼈던 때문이다.

염녀마시고 따라 올라 「 가세요. 지배인 문 정우는 아침에 외출하여 아직도 돌아오지 않는 것 만은 확실합니다.」

동지 박 성국(朴成國)의 낯익은 목소리가 귀 옆을 지나 간다.

장 일수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면서 얼굴을 돌리지 않고 극히 빠른 말씨로 명령을 하였다.

「이층에는 발코니 ─ 로 해서 행길로 빠저 나갈 수 있는 좁다란 층층대가 있다. 만일 문 정우가 돌아오는 경우가 있을 때는 군은 그의 얼굴을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니까 서슴치 말고 정확한 사격(射擊)을 하여라.」

「네.」

「그와 동시에 송(宋)군으로 하여금 스윗치를 꺼서 용궁을 암흑으로 만들어라. 스윗치는 바텐더 ─ 가서 있는 바로 뒤, 술병이 진렬되어 있는 선반 옆에 달려 있다.」

「그리고는……?」

「강 시후 노인은?」

「명령대로 명령한 장소를 수비하고 있읍니다.」

「음, 빨리 저리 물러가!」

그것은 실로 일찰나의 대화였다. 목란은 전화통에 매달려 있었고 나미에는 돌아보지 않은채 층층대에 발을 올려 놓고 있었다.

「마담, 좀 친절히 사람을 안내하는 예의는 모르십니까?」

장 일수는 빠른 걸음걸이로 나미에의 뒤를 따라가면서 비로소 여유 있는 한 마디를 던져 보았다.

「어린애가 아닌 이상 손목을 잡아 드릴 의무는 갖지 않아요.」

「마담의 마음의 약간 어지러워졌나 보오. 소생이 마담의 팔을 부축해 드리지요.」

그러면서 장 일수는 층계를 두단씩 한꺼번에 뛰어 올라 가서 나미에의 팔을 붙잡았다.

「새삼스러운 친절, 두었다 이층에 올라 가서 하세요. 귀여운 아가씨가 그대의 친절을 하루 종일 기다리고 있답니다.」

「서운한 말이요. 듣기에 지극히 송구합니다.」

말은 비록 나미에를 향하고 있으나 마음은 왼통 돌연히 나타난 허 운옥의 신변으로 다름박질을 치고 있는 장 일수였다.

허 운옥이가 자기를 찾아 올 하등의 이유가 거기에 있을것 같지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하여도 이것은 나미에의 속임수에 넘어가는 것이 아닌가 하였다.

이윽고 나미에는 자기 방문 앞에서 걸음을 멈추며 위 나를 한 번 「 , 안아 줘요. 이 문이 열리기 전에 유에링을 힘껏 한 번 안아 줘요!」

나미에의 이 돌연한 의욕의 근원이 장 일수에게는 분명치가 않았다. 단지 무엇이 있구나, 하는 제 육감만이 착잡한 머릿속을 샛별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유에링, 무슨 뜻이요?」

「이유는 묻지 말구!」

「유에링!」

장 일수는 허둥지둥 나미에의 요구를 들을 수 밖에 없었다. 감정이 따르지 않는 이 장 일수의 포옹 속에서 나미에는 행복스럽게 눈을 감으며

「행복이란 끝이 있는 거죠?」

「응?……」

「님이여, 몸조심 하세요.」

「…………?」

「이 무기 잘 건사 하세요.」

「응?……」

장 일수는 후딱 주위를 돌아다 보았다.

「유에링, 무엇이 있는 거요?」

「무엇이 있긴……」

「허 운옥이라는 여인이 나를 기다린다고 한 것도 나를 유인하려는 그대의 함정이 아니요?」

「응?……」

「내가 오늘 밤 무사히 돌아갈 수 있는 거냐, 없는 거냐? ─ 분명히 대답을 해요!」

「호호호호……」

장 일수의 품 안에서 몸을 빼며 나미에는 유쾌한 듯이 한바탕 웃어댄 후에

「그건 아까 홀에서 분명히 대답하지 않았던가요? 오· 케!」

다음 순간, 나미에는 손잡이를 쥐자 휙하고 문을 열어 재끼며

「아가씨, 오랫동안 기다리시게 하여서 대단히 민망스럽습니다. 고대하시던 장 선생을 인제서야 간신히 모셔 왔답니다.」

「아, 운옥씨!」

「장 선생님!」

반가움과 놀라움에 찬 두 사람의 부르짖음을 유쾌히 누비듯이 나미에의 그칠 줄 모르는 웃음 소리가 미친 것처럼 흘러 나오고 있었다.

「호호호호, 호호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