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극장/3권/10장
야마모도 부대장의 전사
[편집]1
[편집]가와노 분대장이 지휘하는 북문쪽이 전투는 가장 심한 듯싶었다. 성문에는 이중의 철문이 완강히 잠겨져 있었기 때문에 병사들은 모두 성벽 위로 올라가서 응전하고 있었다.
「가와노 분대장!」
야마모도 부대장은 가와노를 불렀다.
「핫, 부대장님!」
망루 옆에서 응전을 하고 있던 가와노가 부대장 옆으로 기어 왔다.
「적군의 병력이 얼마나 되는가!」
「이 북문쪽만 약 천여 명 가량으로 추산 됩니다.」
「정보는 七[칠]만으로 되어 있는데……」
「후방의 병력은 자세히 알 수 없읍니다만 전선의 병력은 그 이상을 계산하지 못하겠읍니다.」
「음 ─」
야마모도 부대장은 권총을 들고 성벽 위에 우뚝우뚝 솟은 사각형 벽돌 기둥에 몸을 의지하여
「정보원이 수상하다!」
하고 중얼거렸다.
그 말을 듣자 바로 옆에 업디어 있던 영민은 중국군의 수효가 그처럼 많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불과 四十[사십]명이 지키고 있는 회양성 하나를 공격하고 저 七[칠]만의 병력을 사용할 필요가 어디 있으랴?…… 그러니까 그 중국인 정보원의 정보가 확실하지 못하든가, 그렇지 않으면 그 정보원은 역(逆) 스파이 일는지 몰랐다.
소총알이 비오듯이 머리 위를 스치고 지나 갔다. 돌 기둥이나 성벽 기슭에 맞아서 새파란 불똥을 내면서 튀어 나가는 놈도 많았다.
북문의 수비군은 기관총 일 문 뿐, 모두가 소총과 수류탄이었다. 일어서든가 머리를 내밀든가 하면 위험했기 때문에 소총으로는 성벽 밑에 있는 적군을 사격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수비군은 대개가 수류탄을 썼다.
「탕……」
「탕……」
수류탄은 내려도 갔지만 수비군의 머리 위로 올라도 왔다.
「사다리를 타고 기어 올라 오는 놈을 주의 하라!」
가와노 분대장의 벽력같은 호령이다.
「따다다닥, 따다다닥……」
기관총 소리가 귀 밑을 스친다. 소총이나 기관총은 그리 무섭지가 않았다.
모두가 납작 업드려진 병사이기 때문에 대부분은 머리 위로 날아가 버렸다.
위험율이 많은 것은 수류탄이다.
「탕 ─」
「탕 ─」
망루 우익에서 수류탄 던지는 소리가 들렸다. 부상자가 생긴 모양이다.
「식카리 · 시로! 식카리 · 시로! (정신을 차려!) ─」
하는 동료의 격려하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 왔다.
「죽을지도 모른다!」
그렇다. 수류탄이 자기 머리 위에 떨어지기만 한다면 영민은 죽는 것이다.
영민은 문득 지나간 소년시절에 도라지탑 앞에서 준길이에게 깔리워 넘어졌던 생각이 났다. 준길이가 자기 배 위에 말 타듯이 올라 타고 어른의 주먹만한 차돌멩이로 자기 얼굴을 내려 갈기려고 했을 때도 영민은
「죽을지도 모른다!」
는, 생각을 하였던 것이다.
「외잉 ─ 외잉 ─」
소총알이 두 개 또 귀 밑을 스치고 지나갔다. 영민은 아직 소총도 수류탄도 던지지 않고 있었다. 어둠속이라 총을 쏘지 않아도 보는 이가 없다. 인원이 부족하여 독전대(督戰隊)가 없었기 때문에 말썽을 일으키는 자도 없었다.
「한 걸음도 물러 서서는 아니 된다! 우리는 이 성벽과 운명을 같이 해야만 된다! 성벽이 쓰러질때 우리도 쓰러지는 것이다!」
야마모도 부대장의 우렁찬 명령이었다. 그순간, 영민은 중학 시절에 있어서의 야마모도 선생을 생각하였다. 완력과 의지력을 아울러 지닌 국수주의자인 야마모도 교사의 젊은 모습이 후딱 머릿속에 떠 올랐다.
「二十[이십] 세기의 동화다. 군은 귀신이 밥 먹구 애 낳구 하는 걸 보았나?」
하던 야마모도 교사와 오늘의 야마모도 부대장은 과연 어느 것이 참된 야마모도 인지 영민은 알 길이 없었다.
그때였다 시꺼먼 그림자 . 하나가 쑥 성벽 위로 올라 온 것을 영민이가 발견한 것은 바로 그때였던 것이다.
시꺼먼 그림자가 위치하고 있는 장소로 말하면 영민과 야마모도 부대장이 엎드려 있는 약 중간 쯤이었다. 그림자는 확실히 권총을 발사하고 있는 야마모도 부대장 쪽을 노리고 있지를 않는가!
2
[편집]그러나 야마모도 부대장은 망루 쪽에 주의를 보내고 있었기 때문에 외인편으로 약 일 미터 ─ 의 거리를 두고 불쑥 나타난 검은 그림자의 돌연한 출현을 전연 모르고 있지는 않는가!
그림자는 손을 들었다.
「앗, 수류탄이다!」
영민은 본능적으로 방아쇠를 당겼다.
「땅 ─」
그러나 다음 순간 아니, 그와 거의 동시에 그 보다도 좀더 넓이를 가진 폭발 소리가 영민의 귀 밑에서 작렬되었다.
「타앙 ─」
「앗!」
영민은 도깨비 불빛같은 새파란 인광의 불똥을 망막속에 의식하는 순간, 의식을 찾지 못하고 그만 땅 위에 얼굴을 박아 버리고 말았다.
얼마나 지났는지 모른다. 영민은 지독한 화약 냄새를 의식하였다.
「이게 무슨 냄샐까?…… 나는 지금 마악 준길이 자식의 돌맹이로 머리를 얻어 맞고 죽었던 사람인데……」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게 무슨 소릴까?……따다다닥, 따다다닥……아, 그렇다. 나는 지금 전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영민은 후딱 정신을 차렸다. 그러나
「외잉 ─」
「따다다닥 ─」
「탕 ─」
「따다다닥 ─」
하고 고막을 찢는 것처럼 들리던 총성이 머나먼 나라의 동화(童話)처럼 희미하다 그처럼 우렁차던 . 총소리, 수류탄 소리가 마치 모기소리 모양으로 가까스로 들릴 뿐이다.
「어찌된 노릇인고? ─」
영민은 땅에 파묻었던 얼굴을 들고 두서너 번 머리를 흔들어 보았다. 그러나 모기소리같은 총성은 좀처럼 커지질 않는다. 귓속이 화끈화끈 단다. 영민은 손으로 오른편 귀를 만져 보았다.
「아, 피다!」
영민은 다시 외인편 귀를 만져 보았다. 역시 피가 흐른다.
「아, 그렇다. 나는 수류탄을 맞은 것이다!」
수류탄의 폭풍이 영민의 양편 고막을 파손 시켰던 것이다.
그때야 비로소 영민은 시꺼먼 그림자를 쓰러뜨린 사실을 생각해 냈고 그리고 나중에는 야마모도 부대장과 자기의 거리가 불과 다섯 자 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던 사실을 생각해 낼 수가 있었다.
「아, 그럼 야마모도 부대장은?……」
영민은 정신이 퍼뜩 들었다. 벌떡 영민은 몸을 일으키었다.
「부대장님!」
그러나 영민은 두 걸음도 걸어 가지 못하고 쓸어지고 말았다.
「아, 눈이…… 눈이 보이지 않는구나!」
캄캄한 밤이 되어서 그런 줄만 알았던 영민이었다. 눈에 손을 대 보았다.
양 편에서 다 무슨 액체가 흐르고 있었다.
「피다!」
영민은 다시금 벌떡 일어 났다.
「부대장님!」
영민 자신은 만신의 기력을 다하여 고함을 쳐 보았으나 그러나 그것이 자기 귀에는 모기소리처럼 밖엔 더 들리지가 않았다. 영민은 두 걸음도 못 가서 또 쓰러졌다. 오른편 넙적다리가 확확 달아 온다.
손을 대 보았다. 거기도 피다.
3
[편집]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는다. 영민은 벌벌 기어서 부대장이 엎디어 있던 장소까지 다달았을 때 움직일 줄 모르는 사람의 몸뚱이 하나가 영민의 발에 걷어 채었다.
「부대장님! 야마모도 부대장님!」
영민은 길게 뻗은 몸뚱이를 부둥켜 안았다. 그러나 전연 움직이지 않는 몸뚱이도 아니었다. 몸뚱이는 독수리처럼 날카로운 손가락으로 영민의 팔을 긁어 당겼다.
「선생님! 접니다! 백 영민입니다!」
몸뚱이도 얼굴도 온통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부대장은 뭐라고 중얼거리는 것 같았으나 영민에게는 통 들리지 않았다.
영민은 만신의 기력을 다하여 야마모도 부대장을 등에 업었다. 그리고는 한 걸음 두 걸음 성벽을 내려오기 시작하였다. 내려 오면서 영민은 목구멍이 찢어질 듯이 고함을 쳤다.
「가와노 분대장아앙 ─」
내려 오다가 구덩이 같은 데 빠져서 여러번 딩굴었다. 딩굴면서
「가와노 분대장아앙 ─」
을 수없이 영민은 불렀다.
흙으로 돋구어 놓은 경사면을 다 내려와 성벽 밑까지 다달았을 때 헐레벌떡 가와노 분대장이 달려왔다.
「아, 부대장님!」
가와노의 부르짖는 목소리가 영민에게도 가늘게 들렸다.
「아, 기미와 · 시로까!(아, 너는 백가!) ─」
그런 소리도 가까스로 들렸다. 시로라는 말이 없었던들 그것이 가와노 분대장인지 누군지를 목소리로서는 능히 알아 볼 수 없는 영민이었다.
「어떻게 된 일이야?」
가와노는 야마모도 부대장의 몸뚱이를 영민의 등에서 받아 안으면서 물었다. 그러나 그때는 긴장했던 정신이 탁 풀리면서 다시금 영민은 정신을 잃어 버리고 말았을 때였다.
「아, 시로모 · 후쇼오오 · 시도루!(아, 백두 부상을 당했구나!) ─」
영민의 넙적다리에서 흘러 나오는 피를 가와노는 손을 뻗쳐 어루만져 보았다.
「부대장님, 정신을 차리시요!」
가와노는 야마모도 부대장의 귀에다 입을 대고 고함을 쳤다.
「가와노입니다! 정신을 차라시요!」
「오오, 가……가와노까?…… 보꾸니 · 가왔데 · 시끼오 · 시데 · 구레!(오오, 가와논가? 내 대신 지휘를 하여다고!) ─」
「염려 마십시오, 부대장님!」
「백 영민은 어디를……어디를 갔나?」
「여기 있읍니다. 그도 부상을 당했읍니다!」
「아, 백군도……」
야마모도 부대장은 다시 정신을 잃은것 같더니 이윽고
「어, 머, 니……」
하고 어머니를 찾았다.
「부대장님! 무슨 남겨 노실 말씀은 없으십니까?」
임종이었다. 가와노는 야마모도 부대장의 어깨를 흔들면서 커다란 목소리로 불렀다.
「……헤이까! 유루세데……유…유루시데 · 이다다끼 · 마쓰!……와……
와다구시와…… (……페하! 용서하여……용…용서하여 주십시요!……
저……저는……) ─」
그리고는 최후의 기력을 다하여
「헤이까 · 반…반자이!(폐하! 만……만세!) ─」를 불렀다. 그뿐이었다.
가와노의 품에서 꿈틀거리던 야마모도 부대장의 몸뚱이는 조용해 졌다.
이윽고 네 사람의 보안대원이 병졸 한 명의 지휘를 받아 부대장의 시체와 영민을 담가에 담아 붕대소(繃帶所)로 실어 갔다.
영민은 그냥 깊은 혼수 상태에 빠져 있었다. 담가에 실려 붕대소로 가면서 영민은 잠꼬대처럼 때때로 어머니를 불렀다.
「어머니, 준길이 자식이……차돌멩이로 내 머리를 갈겼어요……」
그런 말도 나왔다.
「운옥이는 불쌍하지요……불쌍해요……」
그런 말도 나왔다.
그러나 영민이가 제일 많이 찾은 것은 유경이었다.
「유경인 나빠요……유경인 나를 버리고 도망을 갔지요……먼 데루……먼 데루 도망을 가 버렸지요. 영영 돌아 오지 않는대요……」
그러다가는 또
「……제가 가면 어딜 갈라구요?……서울에……서울에 있는 걸요…… 어머니, 유경일 꼭…… 유경일 꼭 찾아 주세요 네!……네, 네……어머니, 꼭 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