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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극장/3권/28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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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잔 푸른 술에 정열을 적시어 보며

[편집]

……(전략) ─ 그런즉 모든 것을 일시적 액운이라 생각하고 과도히 상심하지 말기를 바라며 춘부장 건(件)에 관해서는 최군이 선처할 줄로 믿으니 방심해도 좋을 것이며 최후로 유경이 건에 관해서는 할 말이 많은 것 같기도 하고 또한 할 말이 없는 것 같기도 하기에 여기서 언급하지 않기로 하니 양찰하기 바라며 또한 이문제에 관해서는 조급히 결정을 지을 성질의 것이 아닌 것 같기에 서로 잘 생각해 보고 선처하는 것이 양가의 명예와 복리를 위해서도 좋을 것 같고 또는 백군이 생각하는 바와 유경이가 생각하는 바가 서로 합치되지 않는 이상 누구가 누구의 의사를 꺾고 누구가 누구의 의사에 꺾기울 수도 없는 바이나 각자의 생각대로 각자의 인생을 걸어 나갈 수 밖에 별 도리가 없을 것이요 ─ (후략)……

이튼날 아침, 백 초시는 아들을 사랑방으로 불러 내다가 오 창윤에게서 온 편지를 보인 후에

「어떡할 작정인고? ─」

하였다.

「이삼 일 후에 서울로 올라가 보겠읍니다.」

「음, 그럴 수 밖에 도리가 없을 것 같애. 벌써부터 나는 운옥을 내 딸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 날 오후, 삼룡이 내외는 뒷치닥거리로 며칠 동안 더 머물러 있게 되어 최 달근과 춘심은 먼저 서울로 올라가게 되었다.

영민은 버스 길까지 나가 두 사람을 전송하였다.

버스를 기다리면서 영민은

「신군이 쓰고 있다는 걸작은 아직도 멀었읍니까?」

「밤낮 책상머리에 들어붙어 있긴 하지만, 걸작인지 무슨 작인지 누가 알아 줘야죠?」

춘심은 그러면서 약간 입을 삐쭉해 보였다.

「이제 다 알 때가 오겠지요. 걸작이 그리 쉽게 됩니까?」

「나 거 참, 소설 쓴다는 사람은 왜들 다 그래요?」

「왜 뭣이 어쨌어?」

옆에 섰던 최 달근이가 불쑥 뛰어 들었다.

「쓸데없는 자존심만 많구…… 제가 못하는 건 못한다구 그러지 않구 안 한다구 그러구…… 저 보다 좀 잘 사는 사람이나 돈 있는 사람 보구는 공연히 얕잡아 보구, 뭐 속인(俗人)이라나?…… 그러면서두 돈에는 제일 비굴하구, 약하구…… 내일 끊일 끼니가 없어두 누구가 먹을 걸 갖다 주겠거니, 하구 번등번등 누워만 있구…… 원고가 팔리지 않는다구 사회만 욕하구……

좋을 땐 살이라두 베어 먹일 것 같이 굴다가두 쌀쌀할 땐 정이 똑똑 떨어지게 굴구……」

「허어! 이러다간 오 선생의 논법이 맞아 들어갈 것 같은데……」

「영감이 뭐라구 그래요?」

춘심은 핼끗 달근을 쳐다 본다.

「꽃 구경이 싫어지면 떡 먹으러 올께라구, 그 때를 서둘지 않고 영감님이 기다리신다구 ─」

「흥, 누구가!」

「거 누구 아나? 어슬렁어슬렁 또 찾아 들어갈지 누가 알어? ─」

「흥, 춘심이가 그렇게두 썩어 빠졌나?」

그러는데 버스가 왔다. 춘심은 버스에 오르면서

「작은 백 초시 어른, 너무 비싸게 굴지 말아요!」

했다.

이윽고 화려한 얼굴이 버스와 함께 영민의 몽롱한 시야에서 쑤욱 흘러가 버렸다.

탑골동 앞에서 탈 때는 그렇지가 않았으나 주재소 앞을 지나고 국수장을 지나고 하는 사이에 버스는 초만원을 이루어 입추의 여유도 없었다.

「이거 뜻하지 않은 향연(饗宴)인 걸!」

찻간 맨 뒤, 조그만 틈사리에서 최 달근과 박 춘심은 몸둥이가 보스라져 나갈 것 같은 밀착감을 느끼면서 꼭 끼어 앉아 있었다.

「무엇이? ─」

춘심이의 입김이 달근의 귀 밑에 저으기 간지럽다. 춘심의 유달리 탄력성을 가진 몽굴거리는 몸둥이가 버스의 동요와 함께 달근의 신경을 점점 긁어 주기 시작하였다.

「암만해두 뜻하지 않은, 호화로운 육체의 향연이야!」

「아이, 싱거워! 좀 저리 비켜요!」

「나두 동방의 예의를 알아 못 보는 사람은 아니지만두, 이런 때 공자님은 어떻게 처신을 하였을까말이야?」

「웃기지 말아요. 사람들이 듣겠소.」

「지분 냄새 그윽히 코 밑을 기어들고, 파 ─ 마의 한 오락 두 오락이 귀 밑에 간지럽다. 그대의 입김은 향수처럼 흘러서, 피부를 하염없이 적시건만, 이 몸이 아직도 철없지 않아, 홀로 꿈만 꾸노라 ─」

「시인이야! 소설가 이상이야!」

춘심은 거짓없이 감탄을 하였다.

「암, 콘사이스 이상이지. 또 할까?」

「또 해요.」

달근은 다시금 춘심의 귀에다 가만히 입을 갖다대고

「처음에는 농이었으되 두고 보니 참이었더라. 이 영감 저 놈팽이가 마구 따는 꽃일진대 이 몸은 어이하여 아직 못 따 하느뇨 ─」

「흐, 흥, 제법 귀엽게 놀아요!」

춘심은 달근의 옆구리를 손으로 한번 꼬집어 주었다. 달근은 그러는 춘심의 손까락을 가만히 잡아 보았다. 그 전처럼 뿌리치지를 않고, 응하여 왔다.

「평양서 하룻밤 놀구 가지?」

「옥상(부인)한데 혼은 누구가 나구?」

「흥, 콘사이스가 무섭다는 말이지?」

「그런 순정은 인젠 없어! 옥상이 무서운 모양이구료?」

「게다짝 냄새에는 인젠 구역이 나! 처음에는 그렇지도 않았지만 인젠 정말 기가 탁탁 막혀서 견딜 수가 없어. 하얀 버선에다 흰 고무신을 신은 발 모양만 보아도 끝없는 향수(鄕愁)를 느끼곤 해.」

「철이 드나 보구려.」

「응, 춘심이처럼 철이 드나 봐.」

「내가 뭐 어째서요?」

「떡에 체해두 보구, 꽃 냄새에 골치두 알아 보구 ─」

「흥, 남 불행해지는 걸 당신은 바라구 있는 구려.」

불행해 져야만 내 「 차례가 돌아오지, 행복만 해지면 언제 차례가 오나?」

「그래 차례가 오기를 멍하니 기다리고만 있었수?」

「하는 수 없지. 오 창윤처럼 돈이 많나? 콘사이스처럼 미남자가 되나? ─ 내 세울건 뱃장 하나 밖에 없는 최 달근이야! 이거 봐.」

「누구가 안 보기에?」

「돈이란 있다가두 없구 없다가두 생기는 법이구, 또 여자란 일생을 두구 사나이의 뻔들뻔들한 낯짝만 바라보구 살 수 있는 것두 아니야. 오 창윤 영감에게서 행복을 못 느낀 춘심이의 심정과 소설가 콘사이스에게서도 행복을 찾지 못한 박 분이의 심정을 내가 모를 리 없어. 너무 산판만 튀길 것두 아니고 지나치게 꿈만 꾸어도 아니 되는 법이야.「우시 우 시ㆍ즈레쟈」(소 새끼는 소새끼 끼리야). 놀음군 삼룡이의 딸로서는 소대가리를 까던 백정의 아들이 젤루 격에 맞을꺼야.」

「누구가 소대가리를 깟게?」

「춘심이의 영원의 남편 최 달근 선생의 춘부장께서 ─」

「………」

「왜 눈이 그래졌어? 소대가리를 까던 시아버지는 못 모시겠어?」

「그런 것두 아니지만, 하여튼 그만했음 뱃장두 무던해!」

「뱃장 하나가 미천이래두 그래?」

평양서 밤차를 타려던 최 달근과 박 춘심은 역전 어떤 여관방에서 발차의 기적 소리를 빤히 들으면서 술추념을 하고 있었다.

「나오늘 밤 술 한잔 실컨 먹어 볼테야.」

「좋아요! 그만하면 차례를 기다린 보람이 있어!」

「징그런 소릴랑 작작하구, 어서 술이나 들어요!」

「좋아! 한잔 푸른 술에 하룻밤의 정열을 적시어보자!」

복숭아꽃처럼 화려하게 펴 오른 춘심이의 연분홍 얼굴이 달근의 정열을 흐뭇하니 적시기 시작한다.

「춘심이?」

「왜 그래?」

「그 얼굴, 호화판이야!」

「헌병 오장 쯤에겐 약간 아깝지?」

「무슨 소리를…… 내 달에는 군조(軍曹) 나리야.」

「그런데 이거 봐요.」

「누구가 안 보나?」

「기생이란 하는 수 없나 봐요.」

「무슨 소린데?……」

「옛날의 의기(義妓)처럼 꼼두락해서 영감의 품안에서 뛰쳐 나오긴 했지만 두 행복이란 그리 쉽사리 찾아지는 것이 아닌 상싶어.」

「왜 싸움을 했나?」

「싸움이야 밤낮 하지.」

「뭣 때문에 싸우는 거야? 콘사이스가 외도를 하는 건가?」

「그건 없어. 외도두 돈이 있구야 하지.」

「돈 때문에 싸움인가?」

「그것두 있지만……」

「대체 뭔데 그래?」

「한 마디루 말하면 내 성의를 몰라 주는 거야. 영감을 버리구 제게로 옮아 간 내 성의를 통 몰라 주잖어?」

「성의라…… 애정이 아니구? ─」

「애정두 있지만 말이야. 누구 누구와 관계가 있었느냐구, 영감의 품안이 어떻드냐구, 쩍하면 그런거만 파고 드니, 견데 배길 수가 있어요? 기생과 살림을 할래면 그런 것 쯤 눈감아 줘야 하잖어요? 그런 쾨쾨한 소리만 살살 빗꼬아서 해대니 진절미가 나지 않구 뭘해요? 그래서 밤낮 쌈하지 뭐야요.

쌈을 하고 홧김에 집을 뛰쳐 나가서 안들어가면 이건 또 눈물을 졸졸 흘리면서 이틀이구 사흘이구 나를 찾아 거리바닥을 헤메이니, 창피두하구 귀엽기두 해서 내버려 둘 수도 없구……」

그러면서 춘심은 컾 술을 자꾸만 마셔 댄다.

「나 취해두 몰라!」

「내가 알지! 이리 와!」

달근은 갑자기 춘심의 손목을 홱 잡아 당겨 춘심의 술취한 얼굴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힘차게 말했다.

「행복이라는 것은 평범한 곳에 있는 거야. 오 창윤이도 그렇고 콘사이스도 그렇고 모두가 다 춘심에게는 평범한 인물이 아니야. 그러니까 춘심이두 너무 뾰쭉하게 굴지 말구, 최 달근의 이 평범한 애무를 솔직하게 받아 들이는 것이 좋아.」

「이야기가 구수한 걸! 그럴듯 해요. 사실이지, 영감의 품안에선 신 성호를 생각했고 신 성호의 품안에선 영감을 생각해요.」

그것이 불행의 원인이야 「 . 생활의 균형이 잡히지 않는 탓이야. 극단에서 극단으로 흘러간 죄야.」

최 달근은 그 유들유들한 정열이 춘심의 마음을 사로잡을 듯이

「그래 최 달근은 어때?」

「아주 잘 났어!」

「요것이, 아직두……」

「잘 났다는 밖에……」

「네게는 그저 내가 꼭 알맞느니라!」

「그래, 그래! 안성맞침이래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