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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극장/3권/36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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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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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성호가 안개 낀 밤 항구의 하룻밤을 헤매이고 있을 무렵, 춘심은 종로 뒷골목 어떤 은근자 집에서 최 달근을 상대로 밤샛껏 술 추념을 하고 있었다.

춘심이가 한강 다릿목에서 강물을 내려다 보며, 죽음을 생각한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절박한 마음에서가 아니고 어딘가 여유를 가진, 말하자면 하나의 투신 자살자로서 서글픈 감상(感傷)에 젖어 보았을 따름이다.

「나는 죽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함으로서 맛볼 수 있는 하나의 가상적(假想的)인 비극의 주인공이 되어 보았던 것이다. 마치 소설이나 연극의 주인공들처럼 한 개 허구(虛構) 위에 부설된 비극적인 인생 가운데서 자기 자신을 강물 속에 내던져 보는 것이었다. 그러한 심리(心理)의 포로가 된 춘심이에게 있어서 인력거꾼 박 서방은 말하자면 훌륭한 한 사람의 관객을 의미하였다.

춘심은 그러한 허구적인 죽음을 그리워하며, 그리고 그 그리워 하는 태도를 관객인 박 서방에게 아주 절실히 느껴지도록 진박성(眞迫性)을 가지고 표시하면서 경성 역에서 인력거를 버렸다. 관객인 박서방은 신 성호에게 달려가서 춘심이의 태도가 수상하다는 것을 전할 것이 아닌가. 그러면 신 성호는 과연 저번처럼 헐레벌떡 인천 월미도로 달려 갈지도 모른다. 죽겠으면 죽으라고 그대로 내버려 둘지도 모른다.

춘심은 내심 성호가 허벙지벙 달려와 주기를 은근히 바라며 차표를 살려고 구내로 들어가는 도중에서 최 달근을 만난 것이다.

「오오, 너 잘 만났다.」

「무어가 잘 만나요?」

「돈이 생겼다. 한바탕 먹자.」

「거 과히 나쁘지는 않구려!」

「그래 왜 그처럼 풀끼가 없어?」

「죽으러 가는 사람이 풀끼가 있었단, 죽나.」

「허어! 거 너무 야속한 말 하지 말아, 얘. 그래 이 최 달근을 남겨 두구 혼자만 죽어?……」

「그럼 같이 동부인 해서 죽어 봅시다 그려.」

「그런 걸 정사(情死)라구 하는 거야. ── 자아, 가자! 오늘 밤 어디 실컨 마시고 너 하구 한번 동부인 해서 죽어 보자!」

「그럽시다 그려.」

그래서 두 사람은 전차를 타고 이 종로 뒷 골목으로 오게 된 것이다.

두 사람은 술이 잔뜩 취해서

「춘심이두 인제 늙었나 봐.」

「왜요?」

「이전엔 눈도 들떠 보지 않던 최 달근이를 따라왔으니까 말이다.」

「철이 들었나 부지.」

「떡두 먹어 보구……」

「꽃두 따 보구……」

「영감 살림두 해 보구……」

「남비 밥두 끓여 보구……」

「이젠 좀 정신을 차려라, 얘.」

「정신이 약간 드는것 같기두 해.」

「네 나이가 벌써 몇이냐?」

「화류계엔 나이가 없다우.」

「그만 둬. 화류계에서 스물 다섯만 넘겨 봐라. 인생의 쓰레기통 밖에 되는 것이 없어 인젠 그만 줏어 먹고, 적당한 자리에 들어 앉아 봐.」

「적당한 자리가 여기야?」

그러면서 춘심은 최 달근의 장대한 가슴패기를 어루만져 보았다.

이 최 달근이를 얕잡아 「 보면 안 된다. 허영의 껍질을 뒤집어 쓴 네 눈에는 아직 차지 않을런지 모르지만……그러나 이 최 달근의 인생에는 심지(.

[예])가 있다. 심지가! 일개 화류계 매춘부를 五[오]년 동안이나 손 한번 대지 않고 꾹 참아 온 이 최 달근의 인생에는 꿋꿋한 심지가 있는 거야. 겉만 보아선 모른다. 미남자가 그렇게 좋아?…… 오 창윤 영감의 돈이 그렇게 좋아…… 허영의 꿈은 인제 그만 먹고 참다운 현실 속에 인간이 돼야 해.

적당히 떡을 먹고 적당히 꽃을 딸 데를 골라라.」

「크구 단 참외야?」

「농담은 그만 두구……그러기 이 최 달근의 인생이 일단 비약하는 날에는 크구 단 참외가 될런지도 모른다. 기회는 좋다. 그것을 네게 강요하지는 않겠다! 그러나 한 마디 분명히 말해 둘 것은 만일 네가 이 기회를 놓치는 날에는 너는 영원히 인생의 쓰레기 통이 될 수 밖에 별 도리가 없는 거야!」

「…………」

「화류계에서 잘 되면 몇푼어치나 잘 된다는 말이야? ── 콘사이스는 청춘의 발을 들여 놓자마자, 다시 말하자면 인생의 배필로서 선택의 여유를 갖지 못한채 너를 만난 것이다. 모르긴 모르지만두 콘사이스의 인생의 배우자로서 너를 생각할 때 반듯이 불만을 가질 것이다.

「…………」

「그러나 나는 다르다! 인생의 시궁창 속에서 이것 저것을 다 줏어 먹고 난 나다. 그러한 내가 최후의 발판으로서 너를 택한 것이다! 평양 기생 박 춘심이의 성격을, 그리고 인생을 가장 잘 이해하고 가장 잘 살릴 수 있는 사람을 백 영민이도 아니고, 오 창윤이도 아니다, 신 성호도 아니다! 나다!

이 최 달근이다!」

그러면서 최 달근은 가장 엄숙하고 가장 성실한 마음씨로 춘심을 안았다.

울고 있는 춘심을 가만히 안아 주었다.

바다 위에서 훤하니 밝아 오는 안개 속을 헤쳐 신 성호와 허 운옥은 정거장으로 나가 기차를 탔다. 단벌 새 옷이 흠뻑 물에 젖었기 때문에 한층 더 허수름한 채림채림을 하고 있었다. 그것이 또한 사람의 눈을 피하는 데도 도움이 되었다.

경성 역에 내린 것은 아침 일곱 시였다. 성호는 정거장에서 전화로 김 준혁 박사를 불러 냈다 백 . 영민이가 상경하여 변호사 견습을 하고 있다는 말을 기찻간에서 하였을 때 운옥은 무척 놀라면서

「신 선생, 제발 그 분에게 제 소식을 알리지 말아주세요!」

하고 애원을 하였다. 그렇다. 운옥이가 영민이의 눈에 나타나는 것은 곧 영민의 행복을 파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영민에게 불행이 있다면 그것은 곧 허 운옥이의 돌연한 출연 때문이 아니었던가.

「그렇습니다. 백 영민은 운옥씨의 낡은 생명체의 기억일 뿐이지요. 오늘의 새로운 운옥씨의 기억에는 백 영민이가 있어서는 아니 됩니다.」

이윽고 김 준혁이가 정거장으로 뛰어 나왔다. 신 성호는 준혁을 한편으로 끌고 가서 사연을 쭉 이야기 하였을 때 준혁은 펄떡 놀랐다. 운옥이가 고향에서 준길을 죽였다는 말은 최 달근 오 창윤 내외분의 입으로서 듣기는 하였지만, 그 운옥이가 마침내 자살을 기도하였다……

「제 힘으로서는 운옥씨의 일신을 안전하게 보호하여 줄만한 장소도 마땅치 않고 또 경제적 여유도 없고…… 그래서 김 선생님의 적당한 보호가 필요해서요. 언젠가 장 일수군을 숨기어 두었던 청량리 밖 그 집이 적당하지 않을까요?」

「그렇습니다. 거기면 염려는 없읍니다.」

거기서 좀더 자세히 전후책을 강구한 후에 신 성호는 준혁을 이끌고 대합실 한편 모퉁이에서 우두커니 서 있는 운옥이 앞으로 걸어 갔다.

「아, 운옥씨!」

지나간 날 매화 한 분을 최후의 선물로 남겨 놓고 바람처럼 사라져 버렸던 바로 그 운옥이가 아닌가! 스러지려던 준혁의 연정 아니, 스려지지 않더라도 억지로라도 스러져 버리도록 노력해 오던 옛날의 그 애달프던 연정이 김준혁 박사의 정열을 다시금 불사르기 시작하였다.

「선생님!」

은옥은 운다. 자꾸만 운다.

자동차를 타고도 은옥은 그저 자꾸만 운다. 운옥의 그 처량한 모습을 바라보며 준혁은 말없이 가만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혼자서 마음 속으로 조용히 중얼거리려는 것이다.

「운옥이가 왔다! 운옥씨가 다시금 내 눈 앞에서 나타났다!」

이 마당에 있어서의 준혁의 심경으로는 감개무량 하다는 말이 통 어울리지가 않았다.

「기적이다! 하나의 커다란 기적이 지금 내 눈 앞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준혁은 좀처럼 눈을 뜨지 않았다.

나를 지옥으로부터 「 구해 준 여인! 그리고 다시금 나를 지옥으로 쓸어 넣은 여인이 지금 내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자칫하면 중대한 하나의 위기가 준혁의 인생을 찾을는지도 모른다.

「그럼 김 선생.」

하는 소리에 준혁은 눈을 번쩍 떴다. 종로 네 거리다.

「저는 잠깐 집에 들렸다 가겠읍니다. 집에서 기다릴 것 같아서……」

「그래요? ── 그럼 후에 다시……」

성호는 화신 앞에서 내리고 차는 준혁과 운옥을 실은채 일로 청량리를 향하여 달려갔다. 날이 차다. 지붕에 서리가 내려 있었다.

신 성호가 대문을 들어 섰을 때 춘심은 툇마루 위에서 오순도순 아침 상을 채리고 있다.

「어딜 갔었어요?」

춘심은 기선을 제할 셈으로 먼저 입을 열었다.

「남 밤 새도록 기다리는 줄을 모르구……」

「…………」

아, 그랬던가! 춘심은 역시 어젯밤으로 돌아 와 있었던가!

「뭐, 인천?」

그러면서 춘심은 손으로 입을 막고

「후후훗 ──」

하고 웃음을 깨물었다.

「어서 세수하구 들어 와서 조반 자세요. 사시미가 없어서 뎀뿌라 사 왔어요.」

그리고는 또

「후후훗 ──」

하고 입을 막았다.

「무어가 우스워?………」

성호는 화가 났다.

죽지 않고 돌아와 있는 것 만은 기뻤으나 성호는 마음이 편하지가 않다.

하룻밤 고생한 생각을 하니 괘씸하기 짝이 없다.

세수를 하고 들어가 아랫목에 번뜻 누웠더니 춘심이가 조반상을 차려 가지고 들어 왔다.

「화났어?」

행주치마에 손을 씻으면서 춘심은 성호의 얼굴을 들여다 보았다.

「정말 인천 갔었수?」

「누구가 인천을 가?」

「후후훗 ──」

「뭐가 그리 우스워?」

「우스운 걸 그럼 어떻거우?」

그러는데

「찰싹!」

하고 성호의 손길이 갔다.

춘심은 손으로 얻어 맞은 볼을 가리우고 오뚜기처럼 눈이 올롱 해서 호의 성 옆 얼굴을 뚫어지게 쏘아 보았다.

「왜 때려? ──」

그래도 큰 마음을 먹고 새벽 일찌기 최 달근의 품에서 빠져 나온 춘심이가 아닌가. 소주 한병에 뎀뿌라까지 춘심은 사 들고 왔다.

「왜 때려?」

성난 고양이처럼 춘심은 대든다.

「때리고 싶어서 ──」

성호는 후우 하고 천정에 담배 연기를 뿜었다.

「그렇게 보기 싫음 죽임 되잖어?」

「죽일지두 모르지!」

「죽여! 어서 죽여!」

「손이 더러워 질까봐 안 죽인다.」

「아이구, 예편네 팔아 먹으면서 큰 소리는 왜 해?」

「무엇이?」

성호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 났다.

「그렇지 않구 뭐야?……누구가 나가구 싶어서 나가나? 목구멍에 거미줄 쓸가 봐 나가지!」

「왜 인천은 못 갔어? 왜 한강까지 갔다가 죽지 못하구 왔어? 구멍에 거미줄이 쓸기 전에 죽어 버리면 되지 않어?」

「그렇게두 죽기를 바래는 거야?」

춘심이가 홱 몸을 일으키었다. 일으키면서 툇마루에 놓인 식칼을 들고 들어 왔다.

「자아, 죽여라, 죽여! 이걸루 내 가슴을 찔러라, 찔러!」

그러다가 춘심은 마침내

「으흐흑……」

하고 무섭게 느껴 울며 방바닥에 엎드러지고 말았다.

성호도 눈물이 글썽글썽 해지며 춘심이의 느껴 우는 모양을 오랫동안 묵묵히 바라보고 앉았다가 밥상에 받쳐 들어 온 술 주전자를 들어 꿀꺽꿀꺽 몇 모금을 들이키고 나서

「자아, 울지 말고 한잔 들어 봐.」

그러면서 춘심이의 등을 어루만져 주었다.

「내가 잘못 했다! 용서 해!」

「몰라, 몰라!」

춘심은 미친듯이 머리를 흔들며

「나두 사람이야! 나두 남과 같이 먹고 싶구, 남과 같이 입구 싶어!」

「그렇다! 참으로 그렇다! 춘심이가 고생을 함으로써 내가 행복을 느끼던가, 그렇지 않으면 내가 고생을 함으로써 춘심이가 행복을 느끼던가 ── 그 둘 중에 하나만이라도 있어야겠는데……」

성호는 춘심이를 끌어 안으며

「울지마! 술이나 먹어! 밥 벌이도 못하는 녀석이 주제 넘는 계집을 탐내가지구……」

「아니야, 아니야, 그것두 아니야! 당신은 내가 냄새가 난 것이지 뭐야?

다 알아? 나두 다 알아! 난 처녀가 아니야! 난 기생이야! 나는 당신의 영원한 아내가 될 자격이 없어……」

「…………」

성호는 대꾸를 못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