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류/제19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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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序曲)[편집]

초봉이는 동생이 하도 황망히 달려들면서 겸하여 사뭇 자지러져 찾는 소리에 저 애가 일 저지른 걸 벌써 다 알고 이러지를 않나 싶어 깜짝 놀랐으나, 이어 곧 무슨 그럴 리가 있을까 보냐고, 미심은 미심대로 한옆에 젖혀 둔 채 얼굴을 천연스럽게 가지려고 했다.

그러나 마루로 뛰어올라 문턱을 디디고 서는 계봉이의 (긴장한 거동이 종시 예사롭질 않았지만 그것보다도) 가뜩 더 간절하게, 언니이! 부르는 소리가 어떻게도 정이 넘치는지, 그런데 또 눈에서는 눈물이 글썽글썽 솟아 흐르고…… 초봉이는 제법 침착하자고 마음 도사려먹었던 것은 그만 파그르르 스러지고, 마주 눈물이 방울방울 떨어져 내린다.

그것은 사람의 육친의 동기간 사이에서만 우러날 수 있는 극진한 애정에서 초봉이는 순간 아무것도 다 잊어버리고 아프리만큼 감격을 느꼈다. 그는 뒷일이야 어찌 되든지 설사 계봉이가 말려서 시방 최후의 요긴한 한 가지 일인 자결을 뜻대로 이루질 못하게 될 값에 그렇더라도 이렇게 다시 한번 동생을 상면하는 것이 크고, 그러므로 기다리고 있었던 게 잘한 노릇이고 하다 싶어 더욱이 기뻐해 마지않는다.

계봉이는 형이 무사히 있음을 보고서 와락 반가움에 지쳐 눈물까지는 나왔어도, 그 다음 다른 것은 암만해야 머루 먹은 속같이 얼떨떨하니 가늠을 할 수가 없었다.

가만히 한 발걸음 방 안으로 계봉이는 형의 기색과 동정을 살피면서, 또 한 걸음 떼어 놓고는 둘레둘레하다가,

"언니이!"

조르듯 응석을 하듯 다뿍 성화가 난 소리다. 왜 그다지 성화에 겨웠느냐고 물으면 저도 섬뻑 대답은 못 할 테면서, 그러나 단단히 걱정스럽기는 걱정스러웠다.

초봉이는 눈에 눈물을 담은 채 아낌없이 가만히 웃으면서,

"지끔 오니?"

하고 근경 있이 대답을 해준다.

경황중에도 계봉이는 참으로 아직껏 형의 웃는 입가는 이쁘다고 좋아했다.

잠깐 서로 말이 없이 보고만 섰다.

계봉이는 자꾸만 궁금해 못 견디겠는데, 그러면서도 어리뚜웅해서 무슨 소리를 무어라고 물어 보고 이야기하고 할지를 몰랐다. 하다가 언뜻 승재와 같이서 온 생각이 생각났다.

별반 이 장면의 이 공기에 긴급한 테마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또 생각이 난 것을 말 않고 가만히 있을 것도 없는 것이라,

"남서방두 왔는데……."

"머어?"

초봉이가 호들갑스럽게 놀라는데 마침 뚜벅뚜벅 마당으로 승재가 들어서고 있다.

초봉이는 반사적으로 몸이 앞 미닫이께로 와락 쏠리다가 마당 가운데 쭈쩍 멈춰 서는 승재와 얼굴이 마주치자 꺾이듯 고개가 깊이 떨어진다.

계봉이도 형의 어깨 너머로 내다보고, 그러나 불빛이 희미해서 피차에 얼굴의 변화는 세 사람이 다 같이 알아보지 못했다.

승재는 둘레둘레 망설이고 섰다가 그로서는 좀 대담하리만큼 대뜰로 해서 마루로 성큼 올라선다.

건넌방의 아우 형제는 시방 승재가 그리로 들어올 줄 기다리고 있는데, 승재는 마루에서 잠깐 머뭇거리더니 쿵쿵 발소리를 내면서 안방께로 가고 있다.

계봉이도 의아했지만, 초봉이는 숙였던 고개를 번쩍 소스라치게 놀라서,

"아이머니 저이가!"

하면서 기색할 듯 목소리를 짓누른다.

그러나, 승재는 벌써 미닫이를 뒤로 닫고 들어갔고, 계봉이는 비로소 번개같이 머리에 떠오르는 게 있어 눈이 휘둥그래지더니 형더러 무슨 말을 할 듯하다가 우루루 마루로 달려나간다.

초봉이는 일순간의 격동 끝에 어깨를 추욱 처트리고 넋없이 서서 있고, 계봉이는 한걸음에 마루를 지나 안방 미닫이를 와락 열어 젖힌다.

생각한 바와 같았는데 놀람은 놀람대로 커서,

"악!"

조심스러우나 무거운 부르짖음이 쏠려 오른다.

"문 닫구 절러루 가서 있어요!"

처네를 걷어 치우고 형보의 시신을 손목 짚어 맥을 보던 승재가 얼굴을 들지 않은 채 계봉이를 나무란다.

계봉이는 더 오래 정신없이 섰을 것을 승재의 주의에, 기계적으로 미닫이를 닫고, 역시 기계적으로 한 걸음 두 걸음 건넌방을 향해 걸어온다.

초봉이는 동생과 얼굴이 마주치자 힘없이 고개를 떨어트린다.

계봉이는 형의 앞에까지 와서 조용히 선다. 말은 없고 형의 숙인 이마를 보던 눈을 책상 위의 약병 ×××으로 돌렸다가 도로 형을 본다. 이때는 놀랐던 기색이 벌써 다 가시고 슬픔이 가득히 얼굴로 갈려들었다.

저 사약이 말을 하는 죽음이 아니면, 법이 주는 형벌, 일순간 후에는 반드시 오고야 말 형의 절박한 운명의 아픔을 시방 계봉이는 독립한 딴 개체의 것으로가 아니요, 바로 제 살〔內體〕속에서 감각하고 있는 것이다.

"언니!"

들이 몸부림이 치일 직전의 무의식한 호흡 같고, 부르는 소리도 목이 메어 목에서 걸린다.

초봉이는 순순히 고개를 들어 웃으려고 한다. 조용히 단념을 하는 미소, 하니 그것은 웃음이기보다 울음에 가깝겠지만, 그거나마 동생의 너무도 슬픈 얼굴 앞에서는 이내 스러져 버리고 만다. 하고서 방금 울음이 터져 오를 듯 입이 비죽비죽,

"계봉아!"

"언니!"

계봉이는 와락 쏠려들어 형의 아랫도리를 얼싸안고 접질리고, 초봉이는 그대로 주저앉으면서 동생의 어깨에다가 고개를 파묻는다.

두 울음 소리가 동생은 높게 형은 가늘게 서로 뒤섞여 호젓이 떨린다.

"죄꼼만 더 참던 않구! 죄꼼만……."

갑자기 계봉이가 얼굴을 쳐들면서 어깨를 쌀쌀, 안타까이 부르짖는다.

"……죄꼼만 참았으믄 남서방이 나서서 언닐 구해 내 주구, 다아 그러기루 했는데!…… 죄꼼만 더 참지! 이 일을 어떻게 해애! 언니 언니!"

계봉이는 도로 형의 무릎에 가 엎드러진다. 폭폭하다 못해 하는 소리요, 말하는 그대로지, 말 이외에 다른 의미는 없던 것이다.

그러나 듣는 초봉이에게는 그렇게 단순하게만 들리진 않았다.

초봉이는 가슴속이 용솟음을 치는 채, 울던 것도 잊어버리고 벙벙하니 앉아 있다.

승재가 나서서 나를 구해 내 주고 그리고 다 그러기로 했다구?…… 옳아! 시방도 그러니까 나를 사랑하고, 그래서 다시 거둬 주려고…….

이렇게 생각할 때에 초봉이는 금시로 몸에 날개가 돋치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 다음 순간,

'정말 그랬구나. 그래서 저렇게 찾아온 것이고…… 그런 것을 아뿔싸! 정말 죄꼼만 참았더라면, 한 시간만 참았어도…….'

생각이 이에 미치자 그만 상성이라도 할 듯 후울훌 뛰고 싶게 안타까웠다.

이 정당한 오해는 물론 계봉이의 고의도 아니요, 초봉이의 잘못도 아닌 것이다.

초봉이는 동생의 등 위에 또다시 엎드려 애가 끊이게 운다.

승재가 아직도 나를 사랑하고 있었구나 하면 이다지도 기쁜 노릇은 생후 처음이다. 그러나 시방은 일을 저지른 뒤다. 부질없이 큰 기쁨이 순간의 어긋남으로 해서 내 것이 아니고 말았으니 세상에도 이런 야속한 노릇이 있을 수가 없다.

그래도 승재가 이제껏 나를 사랑하는 것은 반갑지 않으냐?…… 그렇지만 반가우면 무얼 하나. 인제 죽고 말 테면서. 아니 그래도…… 글쎄…… 어떡허나! 어떻게…….

이렇게 되풀이를 하는 동안 초봉이는 일이 기쁜지 슬픈지 마침내 분간을 하지 못하고 울기만 한다.

이윽고 승재가 안방으로부터 건너와서 우두커니 문치에 가 선다.

승재가 건너온 기척을 알고 초봉이가 먼저 몸을 일으켜 도사리고 앉으면서 숙인 얼굴을 두 손으로 싼다. 뒤미처 계봉이도 얼굴을 들어 옆에 섰는 승재게로 토옹통 부은 눈을 돌린다. 승재는 그 뜻을 알아차리고 도리질을 한다. 형보는 아주 치명상으로 절명이 되었던 것이다.

승재가 몸 주체를 못 하고 섰는 것을 계봉이가 눈짓을 해서 그 자리에 편안찮이 앉고, 세 사람은 초봉이가 따암땀 가늘게 느껴 울 뿐 다 같이 말이 없이 한동안 잠잠하다.

"언니이?"

침착을 회복하여 곰곰이 생각을 하고 있던 계봉이는 얼마 만에야 목소리를 가다듬어 형을 부르면서 바투 더 다가앉는다. 초봉이는 대답 대신 얼굴의 손만 떼었다가 도로 가린다.

"저어, 응? 언니이……."

"……"

"저어, 응?…… 저어, 경찰서루 가서 응? 자현을 허우, 응?…… 그걸 차마……."

말을 채 못 하고서 계봉이는 한숨을 내쉰다. 초봉이는 움칫 놀라 얼굴을 들고 동생을 바라다본다. 무어라고 할 수 없는 착잡한 표정이 퍼뜩퍼뜩 갈려든다.

동생의 말은 선뜻 반가운 소리였었다. 그러나 야속스런 훈수였었다.

"자현?…… 자현을 하다니!"

우두커니 동생의 얼굴을 건너다보고 앉았던 초봉이의 입에서, 그것은 누구더러 하는 말이라기보다도, 자탄에 겨운 넋두리가 흘러져 나온다.

"……자현을 하믄 징역을 살라구? 사형이라믄 차라리 좋지만, 징역을 살다니…… 인전 하다하다 못해서 징역까지 살아? 그 몹쓸 경난을 다아 겪구두 남은 고생이 있어서 징역까지 살아?…… 못 하겠다! 난 기왕 죽자구 하던 노릇이니 죽구 말겠다! 죽구 말지 징역이라니!…… 내가 무얼 잘못했길래? 응? 내가 무얼 잘못했어? 장형보 그까짓 파리 목숨 하나만두 못한 생명. 파리 목숨이라믄 남한테 해나 없지. 천하에 몹쓸 악당. 그놈을 죽였다구 그게, 그게 죄란 말이냐? 어쩌니 그게 죄냐? 미친개는 때려죽이면 잘했다구 추앙하지? 미친개보담두 더한 걸 죽였는데 어째서 죄란 말이냐?…… 난 억울해서 징역 못 살겠다!…… 왜, 왜 내가 징역을 사니? 인전 두 다리 쭈욱 뻗구서 편안히 죽을 것을, 왜 일부러 고생을 사서 하니? 응? 응?"

가슴을 쥐어뜯고 몸부림을 치게 애달픈 것을 못 하고서 다시 손으로 얼굴을 싸고 운다. 손가락 사이로 눈물이 줄줄이 흘러내린다.

승재가 눈에 눈물이 가득, 코를 벌심벌심, 황소같이 식식거리고 앉았다.

참혹한 살상에 대한 불쾌했던 인상이 스러지는 반면 그 살상을 저지른 초봉이의 정상에 오히려 동감이 되면서, 일변 '독초'와 독초 그것을 가꾸는 '육법전서'에의 울분이 치달아오르던 것이다. 그는 시방 가슴에 불이 치미는 깐으로는 단박 ×이라도 뽑아 들고 거리로 뛰쳐나갈 것 같은 것을, 그러고서는 막상 어디 가서 누구를 행실을 낼 바를 몰라 그것이 답답했다.

"어떻게 해요! 응?"

계봉이가 고개를 돌리고 조르듯 성화를 한다. 승재는 그 말은 대답을 못하고,

"빌어먹을 놈의……!"

볼먹은 소리로 두런두런, 주먹으로 눈물을 씻다가, 그 다음에는 이라도 갈 듯,

"……어디 보자!"

하면서 허공을 눈 부릅뜬다.

"뚱딴지네!"

계봉이는 승재한테 눈을 흘기면서 입안엣말로 쫑알거리다가 형을 부여잡는다.

"언니?"

"계봉아……!"

초봉이는 부지를 못해 동생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엎드려서 울음 소리 섞어섞어 하소를 한다.

"……계봉아! 이 노릇을 어떡허니? 어떡허믄 졸 거나? 응? 죽자구 해두 죽을 수두 없구…… 살자구 해두 살 수두 없구…… 이 노릇을 어떡허믄 좋단 말이냐? 에구 계봉아!"

"언니? 언니! 헐 수 있수? 정상이 정상이구, 또 자술 했으니깐 형벌이 그대지 중하던 않을 테지…… 다직 한 십 년, 아니 한 오륙 년밖엔 안 될지두 모르니, 그것만 치르구 나오믄 고만 아니우? 그 댐엔 다아 좋잖우? 송흰 그새 동안 아무 걱정 할라 말구…… 그저 몇 해 동안만…… 그렇지만, 그렇지만 언니가 그 짓을 어떻게! 징역살이를 어떻게 허우!…… 아이구 이 일을 어째애!"

달랜다는 것이 마지막 가서는 같이서 울고 만다.

막혔던 봇둑을 터뜨린 듯 형제가 도로 어우러져 울고 있고, 승재는 고개를 깊이 숙이고 앉았고 하기를 한 식경이나 지나간 뒤다.

초봉이는 불시로 눈물을 거두고 얼굴을 들어 승재게로 돌린다. 승재도 마침 울음 소리 끊긴 데 주의가 가서 고개를 들다가 초봉이와 눈이 마주친다.

초봉이는 무엇인지 간절함이 어리어 있는 눈동자로 무엇인지를 승재의 얼굴에서 찾으려는 듯 한참이나 보고 있다가 이윽고 목멘 소리로,

"그렇게 하까요? 하라구 허시믄 하겠어요! 징역이라두 살구 오겠어요!"

하면서 조르듯 묻는다. 의외요, 그러나 침착한 태도였었다.

승재는 그렇듯 어떤 새로운 긴장을 띤 초봉이의 그 눈이 무엇을 말하며, 하는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를 잘 알 수가 있었다.

알고 나니 대답이 막히기는 했으나 그는 시방 이 자리에서 초봉이가 애원하는 그 '명일의 언약'을 거절하는 눈치를 보일 용기는 도저히 나질 못했다.

"뒷일은 아무것두 염려 마시구, 다녀오십시오!"

승재의 음성은 다정했다. 초봉이는 저도 모르게 한숨을, 안도의 산숨을 내쉬면서,

"네에."

고즈넉이 대답하고, 숙였던 얼굴을 한번 더 들어 승재를 본다. 그 얼굴이 지극히 슬프면서도 그러나 웃을 듯 빛남을 승재는 보지 않지 못했다.

제18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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