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천하/제6장
관전기(觀戰記)
[편집]고씨는 그리하여, 그처럼 오랫동안 생수절을 하고 살아오다가 마침내 단산(斷産)할 나이에 이르렀습니다. 여자 아닌 여자로 변하는 때지요.
이때를 당하면 항용의 좋은 부부생활을 해오던 여자라도 히스테리라든지 하는 이상야릇한 병증이 생기는 수가 많답니다. 그런 걸 고씨로 말하면, 이십오 년 청춘을 홀로 늙히다가, 이제 바야흐로 여자로서의 인생을 오늘 내일이면 작별하게 되었은즉, 가령 히스테리를 젖혀 놓고 보더라도 마음이 안존할 리가 없을 건 당연한 노릇이겠지요. 윤직원 영감의 걸찍한 입잣대로 하면, 오두가 나는 것도 그러므로 무리가 아닐 겝니다.
그러한데다가, 자아, 집안 살림을 맡아서 하니 그 재미를 봅니까. 자식들이라야 다 장성해서 뿔뿔이 흩어져 살고 어미는 생각도 않지요.
손자 경손이놈은 귀엽기는커녕 까불고 앙똥해서 얄밉지요. 남편이라야 남이 아니면 원수지요. 시아버지라는 영감은 괜히 못 먹어서 으르렁으르렁하고, 걸핏하면 짝 찢을 년이네, 오두가 나서 그러네 하고 군욕질이지요.
그러니 고씨로 앉아서 당하고 보면 심술에다가 악밖에 날 게 더 있겠습니까.
그래도 작년 정월 시어머니 오씨가 살아 있을 때까지는 삼십 년 눌려서 살아온 타성으로, 고양이 앞에 쥐같이 찍소리도 못 하고 마음으로만 앓고 살았지만, 이제는 그 폭군이 하루 아침에 없고 보매 기는 탁 펴지는데, 그러나 세상은 여전히 뜻과 같지 않으니, 불평은 할 수 없이 악으로 변해 버리게만 되었던 것입니다.
시어머니가 죽고 없은 뒤로는 집안에서 어른이라면 시아버지 윤직원 영감 하나뿐이요, 그 밖에는 죄다 재하자들입니다.
한데, 그는 윤직원 영감쯤 망령난 동네 영감태기 푼수로나 보이지, 결단코 시아버지요, 위하고 어려워할 생각은 털끝만큼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그는 집안의 어른이고 아이고 간에 트집거리만 있으면 상관없이 들이대고 싸웁니다.
시방 오늘 저녁만 하더라도, 아까 쪽대문을 열어 놓았다고 윤직원 영감이 군욕질을 했대서 그 원혐으로다가 기어코 한바탕 화룡도를 내고라야 말 작정으로 그렇게 벼르고 있는 참입니다.
하기야 쪽대문을 열어 놓은 것도 실상 알고 보면, 우정 그런 것이지요. 윤직원 영감이 보고서 속 좀 상하라고. 그리고 그 끝에 무어라고 욕이나 하게 되면 싸움거리나 장만할 양으로…… 용 못 된 이무기 심술만 남더라고, 앉아서 심술이나 부려야 속이나 시원하지요.
어쨌든, 그러니 속이 후련하도록 싸움을 대판거리로 한바탕 해대야만 할 텐데, 이건 암만 도사리고 앉아 들어야 영감태기가 음충맞게시리 어린 손자며느리들더러 보리밥을 먹으면 애기 밴다는 소리나 하고 있지, 종시 이리로 대고는 무어라고 그 더러운 구습(口習)을 놀리는 것 같지가 않습니다.
그렇다고 그냥 참고 말잔즉 더 부아가 나기도 할 뿐더러, 대체 무엇이 대끼며 뉘 코 무서운 사람이 있다고, 그 부아를 참거나 조심을 할 며리도 없는 것이고 해서, 시방 두 볼이 아무튼 상말로 오뉴월 무엇처럼 추욱 처져 가지고는 숨길이 씨근버근, 코가 벌씸벌씸, 입이 삐쭉삐쭉, 깍지손으로 무르팍을 안았다 놓았다, 담배를 비벼 껐다 도로 붙였다, 사뭇 부지를 못 합니다. 미상불 사람이란 건 싸우고 싶은 때 못 싸우면 더 부아가 나는 법이니까요.
집 안은 안방에서 윤직원 영감이 태식을 데리고 앉아서 저녁을 먹으면서 잔소리를 씹느라고 웅얼거리는 소리, 태식이 딸그락딸그락 째금째금 하는 소리, 그 외에는 누구 하나 기침 한 번 크게 하는 사람 없고, 모두 조심을 하느라 죽은 듯 조용합니다.
바깥은 황혼이 또한 소리 없이 짙어 가고, 으슴푸레하던 방 안에는 깜박 생각이 난 듯이 전등이 반짝 켜집니다.
마침 이 전등불을 신호삼듯, 집 안의 조심스런 침정을 깨뜨리고 별안간 투덕투덕 구둣발 소리가 안중문께서 요란하더니, 경손이가 안마당으로 들어섭니다.
교복 정모에 책가방을 걸멘 것이 학교로부터 지금이야 돌아오는 길인가 본데, 이 애가 섬뻑 그렇게 들어서다 말고 대뜰에 저의 증조부의 신발이 놓인 걸 힐끔 넘겨다보더니, 고개를 움칠 혓바닥을 날름하면서 발길을 돌려 살금살금 뒤채께로 피해 가고 있습니다.
눈에 띄었자 상 탈 일 없고, 잘못하면 사날 전에 태식을 골탕먹여 울린 죄상으로 욕이나 먹기 십상일 테라, 아예 몸조심을 하던 것입니다.
저는 아무도 안 보거니 했는데, 그러나 조모 고씨가 빤히 내다보고 있었습니다. 실상 고씨가 본댔자 영감태기한테야 혓바닥을 내미는 것말고 그보다 더한 주먹질을 해도 상관할 바 아니지만, 그러니까 그걸 가려 어쩌자는 게 아닙니다. 그 애를 통해 생트집을 잡자는 모양이지요.
"네 이놈, 경손아!"
유리쪽으로 내다보고 있던 미닫이를 냅다 벼락치듯 와르르 따악 열어 젖히면서, 집 안이 온통 떠나가게 왜장을 칩니다. 온 집안이 모두 놀란 건 물론이지만, 경손은 그만 잘겁을 했습니다. 그 애는, 증조부 윤직원 영감이 아니고 아무 상관도 없는 조모가 그렇게 내닫는 게 뜻밖이어서 더욱 놀랐습니다.
그러나 놀란 것은 순간이요 이내 침착하여 천천히 돌아서면서,
"네에?"
하고 의젓이 마주 올려다봅니다.
이편은 살기가 사뭇 뚝뚝 듣는데, 저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시침을 뚜욱 따고 서서 도무지 눈도 한번 깜짝 않는 양이라니, 앙똥하기 아니할말로 까죽이고 싶게 밉살머리스럽습니다.
고씨는 영영 시아버지와 싸움거리가 생기지를 않으니까, 아무고 걸리는 대로 붙잡고 큰소리를 내서 시아버지의 비위를 건드려서, 그래서 욕이 나오면 언덕이야 트집을 잡아 가지고 싸움을 하쟀던 것인데, 그놈 경손이놈이 하는 양이 우선 비위에 거슬리고 본즉, 가뜩이나 부아가 더 치밀고, 그렇지만 이판에 부아를 돋우어 주는 거리면 차라리 해롭잖을 판속입니다.
이편, 경손더러 그러나 바른 대로 말을 하라면, 집안이 제한테는 모두 어른이건만 하나도 사람 같은 건 없고, 그래서 누가 무어라고 하건 죄끔도 무섭지가 않습니다.
증조부 윤직원 영감이 그렇고, 대고모 서울아씨가 그렇고, 대부 태식이는 문제도 안 되고, 제 부친 종수나 숙모 조씨가 그렇고, 조부 윤주사의 첩들이 그렇고, 해서 열이면 아홉은 다 시쁘고 깔보이기만 합니다.
그래 시방도 속으로는,
'흥! 누구 말마따나 오두가 났나? 왜 저 모양인구……? 암만 그래 보지? 내가 애먼 화풀이를 받아 주나…….'
하면서 제 염량 다 수습하고 있습니다.
고씨는 당장 무슨 거조를 낼 듯이 연하여 높은 소리로,
"네 이놈!"
하고 한번 더 을러댑니다. 그러나 이놈 이놈, 두 번이나 고함만 쳤지, 그 다음은 무어라고 나무랄 건덕지가 없습니다.
하기야 시아버지가 진짓상을 받고 계신데, 며느리 된 자 어디라고 무엄스럽게 문소리 목소리를 크게 내서 어른을 불안케 했은즉, 응당 영감태기로부터, 어허 그 며느리 대단 괘씸쿠나! 하여 필연 응전포고가 올 것이고, 그 응전포고만 오고 보면 목적한 바는 올바로 들어맞는 켯속이니 그만일 텁니다. 그러나 지금 당장은 저기 저놈 경손이놈이 사람 여남은 집어삼킨 능청맞은 얼굴을 얄밉살스럽게시리 되들고 서서, 그래 무엇이 어쨌다고 소리나 꽥꽥 지르고 저 모양인고! 할 말 있거든 해보아요? 내 참 별꼴 다 보겠네……! 이렇게 속으로 빈정대는 게 아주 번연하니, 썩 발칙스럽기도 하려니와 일변 어째 그랬든 한 번 개두를 한 이상 뒷갈무리를 못 해서야 어른의 위신과 체모가 아니던 것입니다.
"이놈, 너넌 어디 가서 무얼 허니라구 인자사 이러구 오냐?"
고씨는 겨우 꾸짖는다는 게 이겝니다.
거상에 손자놈이 학교를 잘 다니건 말건, 공부를 착실히 하건 말건, 통히 알은체도 안 해오던 터에, 오늘 밤이야 말고서 갑작스레 그런 소리를 하는 게 다 속 앗길 짓이기는 하지만, 다급한 판이니 옹색한 대로 둘러댈 수밖에 없던 것입니다.
"전람회 준비 했어요! 그러느라구 학교서 늦었어요!"
경손은 고씨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다뿍 시뻐하는 소리로 대답을 해줍니다. 그때 마침 그 애의 모친 박씨가 당황히 안방에서 나오더니 조용조용,
"너는 학교서 파하거던 일찍일찍 오지는 않구서 무슨 해망을 허느라구 이렇게 저물구…… 할머니 걱정허시게 허구, 그래!"
하고 며느리답게 시어머니를 대접하느라 아들놈을 나무랍니다.
"어머닌 또 무얼 안다구 그래요?"
경손은 버럭, 미어다부듯듯 제 모친을 지천을 하는데, 그야 물론 조모 고씨더러 배채이란 속이지요.
"……전람회 준비 때문에 학교서 늦었단밖에 어쩌라구 그래요? 왜 속두 몰라 가지구들 그래요?"
"아, 저놈이!"
"가만있어요, 어머닐랑…… 대체 집에 들앉은 부인네들이 무얼 안다구 그래요……? 내가 이 집에선 제일 어리니깐 만만헌 줄 알구, 그저 속상헌 일만 있으면 내게다가 화풀일 허려 들어! 왜 그래요? 왜……? 괜히 나인 어려두 인제 이 집안에선 매앤 어룬 될 사람이라우, 나두…… 왜 걸핏하면 날 잡두리우? 잡두리가…… 어림없이!"
한마디 거칠 것 없이, 굽힐 것 없이, 퀄퀄히 멋스려 댑니다.
"아, 이 녀석이!"
저의 모친 박씨가 목소리를 짓눌러 가면서 나무라다 못해 때려라도 주려고 달려 내려올 듯이 벼르는 것을, 그러나 경손은 본체만체 쾅당쾅당 요란스럽게 발을 구르면서 뒤꼍으로 들어갑니다.
"흥! 잘은 되야 먹는다, 이놈의 집구석……."
고씨는 차라리 어처구니가 없다고 혀를 끌끄을 차다가, 미닫이를 도로 타악 닫으면서 구느름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잘 되야 먹어! 이마빡으 피두 안 마른 것두 으런이 무어라구 나무래먼 천장만장 떠받구 나서기버텀 허구……! 흥! 뉘 놈의 집구석 씨알머리라구, 워너니 사람 같은 종자가 생길라더냐!"
이 쓸어 넣고 들먹거려 하는 욕이 고씨의 입으로부터 떨어지자마자, 마침내 농성(籠城)코 나지 않던 적(敵)은, 드디어 성문을 좌우로 크게 열고(가 아니라) 안방 미닫이를 벼락치듯 열어 젖히고, 일원 대장이 투구철갑에 장창을 비껴 들고(가 아니라) 성이 치달은 윤직원 영감이, 필경 싸움을 걸어 맡고 나서는 것입니다.
실상 윤직원 영감은 저편이 싸움을 돕는 줄을 몰랐던 건 아닙니다. 다 알고서도, 어디 얼마나 하나 보자고 넌지시 늦추 잡도리를 하느라, 고씨가 처음 꽥소리를 칠 때도 손자며느리와 딸을 건너다보면서,
"저, 짝 찢을 년은 왜 또 지랄이 나서 저런다냐!"
하고 입만 삐죽거렸습니다.
서울아씨는 친정아버지를 따라 입을 삐죽거리고, 두 손자며느리는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박씨만 조심조심 경손을 나무라느라고 마루로 나오고, 경손이가 온 줄 안 태식은 미닫이의 유리로 밖을 내다보다가 도로 오더니,
"아빠 아빠, 저 경존이 잉? 깍쟁이 자직야, 잉? 아주 옘병헐 자직이야!"
하고 떠듬떠듬 말재주를 부리고 했습니다.
"아서라! 어디서 그런……."
"잉? 아빠, 경존이 깍쟁이 자직야. 도족놈의 자직야, 잉? 아빠, 그치?"
"아서어! 그런 욕 허면 못쓴다!"
윤직원 영감은 이 육중한 막내둥이를 나무란다고 하기보다도, 말재주가 늘어 가는 게 신통하대서 빙그레 웃고 있었습니다.
두 번째 건넌방에서 고씨의 큰소리가 들렸을 때도 윤직원 영감은 딸과 작은손자며느리를 번갈아 건너다보면서 혼자말을 하듯이, 저년이 또 오두가 나서 저러느니, 서방한테 소박을 맞고 지랄이 나서 저러느니, 원체 쌍놈 아전의 자식이요, 보고 배운 데가 없어 저러느니 하고, 고씨더러 노상 두고 하는 욕을 강하듯 내씹고 있었습니다.
하다가 필경 전기(戰機)는 익어, 마침내 고씨의 입으로부터 집안이 어떻다는 둥, 뉘 놈의 씨알머리가 어떻다는 둥, 가로로는 온 집안을, 세로로는 신주 밑구멍까지 들먹거리면서 군욕질이 쏟아져 나왔고, 그리하여 윤직원 영감은 기왕 받아 주는 싸움에 이런 고패를 그대로 넘길 며리가 없는 것이라, 드디어 결전을 각오했던 것입니다.
"아―니, 야―야?"
미닫이를 타앙 열어 젖히고 다가앉는 윤직원 영감은 그러기 전에 벌써 밥 먹던 숟갈은 밥상 귀퉁이에다가 내동댕이를 쳤고요.
"……너, 잘 허넝 건 무엇이냐? 너, 잘 허넝 건 대체 무엇이여? 어디 입이 꽝지리(꽝우리) 구녁 같거던, 말 좀 히여 부아라? 말 좀 히여 부아?"
집안이 떠나가게 소리가 큽니다. 몸집이 크니까 소리도 클 거야 당연하지요.
이렇게 되고 보면 고씨야 기다리고 있던 판이니 어련하겠습니까.
"나넌 아무껏두 잘못헌 것 읎어라우! 파리 족통만치두 잘못헌 것 읎어라우! 팔자가 기구히여서 이런 징글징글헌 집으루 시집온 죄밲으넌 아무 죄두 읎어라우! 왜, 걸신허먼 날 못 잡어먹어서 응을거리여? 삼십 년 두구 종질히여 준 보갚음으루 그런대여? 머 내가 살이 이렇게 쪘으닝개루, 소징(素症)이 나서 괴기라두 뜯어 먹을라구? 에이! 지긋지긋히라! 에이 숭악히라."
신사(또는 숙녀)적으로 하는 파인 플레이라 그런지 어쩐지 몰라도, 하나가 말을 하는 동안 하나가 나서서 가로막는 법이 없고, 한바탕 끝이 난 뒤라야 하나가 나서곤 합니다.
"옳다! 참 잘 헌다! 참 잘 히여. 워너니 그게 명색 며누리 체것이 시애비더러 허넌 소리구만? 저두 그래, 메누리 자식을 둘썩이나 읃어다 놓고, 손자자식이 쉬옘이 나게 생깄으먼서, 그래, 그게 잘 허넌 짓이여?"
"그러닝개루 징손주까지 본 이가 그래, 손자까지 본 메누리년더러 육장 짝 찢을 년이네, 오두가 나서 싸돌아댕기네 허구, 구십을 놀리너만? 그건 잘 허넌 짓이구만? 똥 묻은 개가 저(겨) 묻는 개 나무래지!"
"쌍년이라 헐 수 읎어! 천하 쌍놈, 우리게 판백이 아전 고준평이 딸자식이, 워너니 그렇지 별수 있겄냐!"
"아이구! 그, 드럽구 칙살스런 양반! 그런 알량헌 양반허구넌 안 바꾸어…… 양반, 흥……! 양반이 어디 가서 모다 급살맞어 죽구 읎덩갑만…… 대체 은제 적버텀 그렇게 도도헌 양반인고? 읍내 아전덜한티 잽혀가서 볼기 맞이먼서 소인 살려 줍시사 허던 건 누군고? 그게 양반이여? 그 밑구녁 들칠수룩 구린내만 나너만?"
아무리 아귓심이 세다 해도 본시 남자란 여자의 입심을 못 당하는 법인데, 가뜩이나 이렇게 맹렬한 육탄(아닌 언탄)을 맞고 보니, 윤직원 영감으로는 총퇴각이 아니면, 달리 기습(奇襲)이나 게릴라전술을 쓸 수밖엔 별 도리가 없습니다.
사실 오늘의 이 싸움에 있어선, 자기 딴은 입이 광주리 구멍 같아도 고씨가 그쯤들이 폭로를 시키는 데야 꼼짝못하고 되잡히게만 경우가 되어 먹었습니다.
그러니 가장 좋은 도리는, 전자에 그의 부인 오씨가 하던 법식으로 냅다 달려들어 며느리의 머리끄덩이를 잡아 엎지르고, 방치 같은 걸로 능장질을 했으면야 효과가 훌륭하겠지요.
그러나 그 시어머니라는 머자와 시아버니라는 버자가 획 하나 덜하고 더하고 한 걸로, 시아버니는 시어머니처럼 며느리를 때려 주지는 못하게 마련이니, 그 법을 그다지 야속스럽게 구별해 논 자 삼대를 빌어먹을 자라고, 윤직원 영감으로는 저주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야, 이놈 경손아!"
육집이 큰 보람도 없이 뾰족하니 몰린 윤직원 영감은 마침내 마루로 쿵 하고 나서면서 뒤채로 대고 소리를 지릅니다.
경손은 제 방에서 감감하게 대답을 하나, 윤직원 영감은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연해 소리소리 외칩니다.
한참 만에야 경손이가 양복 고의 바람으로 가만가만 나와서 한옆으로 비껴섭니다.
"너 이놈, 시방 당장 가서 네 할애비 불러 오니라. 당장 불러 와!"
"네에."
"요새 시체넌 거, 이혼이란 것 잘덜 헌다더라, 이혼…… 이놈, 오널 저녁으루 담박 제 지집을 이혼을 안 히였다 부아라! 이놈을 내가……."
과부댁 종놈은 왕방울로 행세한다더니, 윤직원 영감은 며느리 고씨와 싸우다가 몰리면 이혼하라고 할 테라고, 아들 창식을 불러 오라는 게 유세통입니다.
그러나 부르러 간 놈한테 미리 소식 다 듣는 윤주사는, 따고 안 오기가 일쑤요, 몇 번 만에 한번 불려 와선, 네에 내일 수속하지요 하고 시원히 대답은 해도, 그 자리만 일어서면 죄다 잊어버려 버립니다. 그래도 좋게시리 윤직원 영감은 그 이튿날이고 이혼수속 재촉을 하는 법이 없으니까요.
"아 이놈, 넹금 가서 불러 오던 않구, 무얼 뻐언허구 섰어?"
윤직원 영감은 주춤거리고 섰는 경손이더러 호통을 합니다.
경손은 그제야 대답을 하고 옷을 입으러 가는 체 뒤꼍으로 들어갑니다. 눈치 보아 가면서 밖으로 나갔다가 들어오든지, 무엇하면 그냥 잠자코 있다가 넌지시 입을 씻고 말든지, 없어서 못 데리고 왔다고 하든지 할 요량만 대고 있으니까 별로 힘들잘 것도 없는 노릇입니다.
"두구 보자!"
윤직원 영감은 마루가 꺼져라고 굴러 디디면서 대뜰로 내려섭니다.
"……두구 부아, 어디…… 내가 그새까지넌 말루만 그맀지만, 인지 두구 부아라. 저허구 나허구 애비자식 천륜을 끊든지, 지집을 이혼을 허든지 좌우양단간 오널 저녁 안으루 요정을 내구래야 말 티닝개루…… 두구 부아!"
윤직원 영감은 으르면서 구르면서 사랑으로 나가고, 고씨는 그 뒤꼭지에다 대고 제―발 좀 그럽시사고, 이혼을 한다면 누가 무서워서 서얼설 기고 어엉엉 울 줄 아느냐고 퀄퀄스럽게 받아넘깁니다.
이래서 시초 없는 싸움은 또한 끝도 없이 휴전이 되고, 각기 장수가 진지(陣地)로부터 퇴각을 하자, 집안은 다시 평화가 회복되었습니다.
모두들 태평합니다.
계집종인 삼월이는 부엌에서 행랑어멈과 같이서 얼추 설거지를 하고 있고, 행랑아범은 안팎 아궁이를 찾아다니면서 군불을 조금씩 지피고, 그 나머지 식구들은 고씨만 빼놓고 다 안방으로 모여 저녁밥을 시작합니다.
서울아씨, 두 동서, 경손이, 태식이, 전주댁 이렇습니다. 그들은 아무도 방금 일어났던 풍파를 심려한다든가 윤직원 영감이 저녁밥을 중판멘 것을 걱정한다든가, 고씨가 밥상을 도로 쫓은 걸 민망히 여긴다든가 할 사람은 하나도 없고, 따라서 아무도 입맛이 없어 밥 생각이 안 날 사람도 없습니다.
다만, 먼저의 싸움의 입가심같이 그 다음엔 조그마한 싸움 하나가 벌어집니다.
태식이가 구경에 세마리가 팔렸다가 싸움이 끝이 나니까 다시 밥 시작을 하는데, 마침 경손이가 툭 튀어들더니, 윤직원 영감이 앉았던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서는, 두말 않고 그 숟갈로 그 밥을 퍼먹습니다.
태식은, 이 깍쟁이요 도적놈인 경손이가 아빠의 숟갈로 아빠의 밥을 먹어 대는 게 밉기도 하려니와, 또 맛있는 반찬을 뺏길 테니, 그래저래 심술이 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히잉, 우리 아빠 밥야!"
태식은 밥숟갈을 둘러메는 것이나, 경손은 거듭떠보지도 않고서,
"왜 이 모양야! 밥그릇에다가 문패 써붙였나?"
하고 놀려 줍니다.
"히잉, 깍쟁이!"
"무어 어째……? 잠자꾸 있어, 괜―히……."
"히잉, 도족놈!"
"아, 요게! 병신이 지랄해요! 대갈쟁이가……."
"깍쟁이! 도족놈!"
"가만 둬두니깐……! 저거 봐요! 숟갈을 둘러메믄 제가 누굴 때릴 텐가? 요것 하나 먹구퍼? 요것……."
"저 애가……! 경손아!"
경손이가 주먹을 쥐어 밥상 너머로 을러대는 걸, 마침 저의 모친 박씨가 들어서다가 보고 깜짝 놀라던 것입니다.
"병신이 괜히 지랄허니깐, 나두 그리지……! 내 이름이 깍쟁이구 도독놈이구, 그런가? 머……."
"아따, 그런 소리 좀 들으믄 어떠냐? 잠자꾸 밥이나 먹으려무나."
"이 병신, 다시 그따위 소릴 해봐? 죽여 놀 테니깐……."
"저 녀석이 말래두, 아니 듣구서……! 너 그리다간 큰사랑 할아버지께 또 꾸중 듣는다?"
"피이! 무섭잖아."
"허는 소리마다. 너 그렇게 버릇없이 굴믄 귀양 간다! 귀양……."
"곤충 채집허구, 수영허구, 등산허구 실컷 놀다가 도루 오지, 무슨 걱정이우?"
서울아씨가 손을 씻으면서 방으로 들어오다가 태식이가 여태 밥상을 차고 앉아, 그러나마 먹지도 않고 이짐이 나서 엿가래 같은 코를 훌쩍거리고 있는 것을 보고는 상을 잔뜩 찌푸립니다.
"누―나!"
"왜 그래?"
역성이나 들어줄 줄 알고 불러 본 것이, 대고 쏘아 버리니, 이제는 울기라도 해서 아빠를 불러 대는 수밖에 없습니다.
과연 태식은 입이 비죽비죽, 얼굴이 움질움질하는 게 방금 아앙 하고 울음이 터질 시초를 잡습니다.
만약 태식을 울려 놓고 보면 큰일입니다. 약간 아까, 고씨와 싸우던 그따위 풍파가 아니고, 온통 집이 한 귀퉁이 무너나게시리 벼락이 내릴 판이니까요. 윤직원 영감은 다른 잘못도 잘 용서를 않지만, 그 중에도 누구든지 태식을 울린다든가 하는 죄는 단연 용서를 하지 않던 것입니다.
"어서 밥 먹어라. 밥 먹다가 이짐 쓰구 그러면 못써요!"
서울아씨가 할 수 없이 목소리를 눅여 살살 달랩니다. 박씨도 코를 씻어 주면서 경손이더러 눈을 끔적끔적합니다.
"대부 할아버지?"
경손은 눈치를 채고서, 빈들빈들, 버엉떼엥, 엎어 삶느라고,
"……어서 진지 잡수! 그리구 대부 덕분에 손자두 이런 존 반찬 좀 얻어 먹어예지, 응? 할아버지…… 우리 대부가 참 착해, 그렇지 대부……."
파계를 따지자면, 열다섯 살 먹은 경손은, 같은 열다섯 살 먹은 태식의 손자요, 태식은 경손의 할아버지가 갈데없습니다. 일가 망한 건 항렬만 높단 말로, 눙치고 넘기자니, 차라리 이 조손관계(祖孫關係)는 비극이라 함이 옳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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