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今日, 咸鏡北道의 邊境一帶에 居住하는, 所謂 在家僧은 一便 僧侶로 行世를하면서 一便 俗人과같은 生活을 營爲하며, 蓄妻鞠子한다는 것은 周知하는바이어니와, 李能和氏는 朝鮮佛敎通史에서 在家僧에 對하여, 다음과같이 말하엿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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今日, 咸鏡北道의 邊境一帶에 居住하는, 所謂 在家僧은 一便 僧侶로 行世를하면서 一便 俗人과같은 生活을 營爲하며, 蓄妻鞠子한다는 것은 周知하는바이어니와, 李能和氏는 朝鮮佛敎通史에서 在家僧에 對하여, 다음과같이 말하엿다—
   
 
『海東僧史, 有一奇事, 卽 北邊之在家僧是, 蓄妻食肉, 俱爲無碍, 可謂朝鮮之眞宗也, 咸鏡北道慶興, 慶源, 會寧, 富寧, 鏡城, 穩城等沿邊各郡, 特有一種僧侶, 群聚居生于山谷中, 自成村落, 其所居村落名山門, 必有公共佛殿一處, 婚喪之禮, 行於寺, 號曰在家僧, 血脈法脈, 兩俱相續, 以別良俗, 不令雜處, 劃定村落, 使有增殖……』이라 하여 大略 在家僧에 對하여 論述하엿고, 그由來에 對하여는 高麗圖經의 所說에 左袒하엿다. 그러나, 이由來問題에 對하여는 學界에잇어서는 尙今그結論을 얻지못하엿고 各其蓋然的所見을 披瀝하는 程度를 지나치지못하고잇는現狀이다. 從來로 이由來問題에對하여는 大體로 三說이流布되고잇으니 그것은 奴隸說(僧軍說), 僧侶說, 藩胡說인것이다. 勿論 主從을 달리하는程度에 지나지못하고 그根本問題인 種族問題에對하여는 女眞族에大體로歸一하는듯도하나 然이나 各其所說의根據가 薄弱하야信憑할만한決論을 얻기에는 아직前途遼遠이라 아니할수없다. 只今左<ref>원문은 세로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쓰여 있다.</ref>에 各說을紹介檢討하고저한다.
 
『海東僧史, 有一奇事, 卽 北邊之在家僧是, 蓄妻食肉, 俱爲無碍, 可謂朝鮮之眞宗也, 咸鏡北道慶興, 慶源, 會寧, 富寧, 鏡城, 穩城等沿邊各郡, 特有一種僧侶, 群聚居生于山谷中, 自成村落, 其所居村落名山門, 必有公共佛殿一處, 婚喪之禮, 行於寺, 號曰在家僧, 血脈法脈, 兩俱相續, 以別良俗, 不令雜處, 劃定村落, 使有增殖……』이라 하여 大略 在家僧에 對하여 論述하엿고, 그由來에 對하여는 高麗圖經의 所說에 左袒하엿다. 그러나, 이由來問題에 對하여는 學界에잇어서는 尙今그結論을 얻지못하엿고 各其蓋然的所見을 披瀝하는 程度를 지나치지못하고잇는現狀이다. 從來로 이由來問題에對하여는 大體로 三說이流布되고잇으니 그것은 奴隸說(僧軍說), 僧侶說, 藩胡說인것이다. 勿論 主從을 달리하는程度에 지나지못하고 그根本問題인 種族問題에對하여는 女眞族에大體로歸一하는듯도하나 然이나 各其所說의根據가 薄弱하야信憑할만한決論을 얻기에는 아직前途遼遠이라 아니할수없다. 只今左<ref>원문은 세로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쓰여 있다.</ref>에 各說을紹介檢討하고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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