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耶今京山玄碧珍小伽耶今固城又本朝史略云。太祖天福五年庚子改五伽耶名。一金官為金海府二古寧為加利縣三非大今昌寧恐高靈之訛餘二阿羅星山同前星山或作碧珍伽耶 |
北扶餘 |
북부여 |
古記云。前漢書宣帝神爵三年壬戌四月八日。天帝降于訖升骨城在大遼醫州界乘五龍車。立都稱王。國號北扶餘。自稱名解慕漱。生子名扶婁。以解為氏焉。王後因上帝之命。移都于東扶餘。東明帝繼北扶餘而興。立都于卒本州。為卒本扶餘。即高句麗之始祖。 |
《고기(古記)》에 이르기를, 전한(前漢) 선제(宣帝) 신작(神爵) 3년 임술(壬戌)년(기원전 59년) 4월 8일에 천제(天帝)가 흘승골성(訖升骨城)대요(大遼) 의주(醫州) 경계에 있다에 오룡거(五龍車)를 타고 내려왔다. 그 곳에 도읍을 정하여 왕이라 일컫고 국호를 북부여(北扶餘)라 하고, 스스로 이름을 해모수(解慕漱)[2]라 하였다. 아들을 낳아 이름을 부루(扶婁)[3]라 하고 해(解)를 성(姓)으로 삼았다. 왕(해부루)은 후에 상제(上帝)의 명령으로 동부여(東扶餘)로 도읍을 옮겼다. 동명제는 북부여를 이어받아 졸본주(卒本州)에 도읍을 정하고 졸본부여(卒本扶餘)를 이룩하니, 곧 고구려의 시조이다. |
東扶餘 |
동부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