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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제까지의 수많은 테러방지법안은 이러한 조건에 대해서 아무런 설득력 있는 근거를 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기구의 창설 혹은 조직의 개편에 대해서 반드시 뒤따라야 할 합리적 정당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설명도 없이 초간단한 입법의 취지나 이유에서는 물론 테러의 개념 규정이 모호하고 추상적으로 규정돼 있다든지 테러대응기구의 설계가 단지 지휘체계의 통합에만 집중되어 있다든지 하는 등의 규정방식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테러의 위협에 대한 구체적이고 증명할 수 있는 인식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는 만큼 그에 대한 대응에서도 날림식의 대안만을 제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테러 개념에 대한 문제도 있습니다. 테러방지법안의 테러 개념은 기존의 국내법상의 범죄와 대비되는 개념으로서의 테러를 특정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는 단순히 국제법상에서 특별히 규제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이들을 하나의 개념으로 통합하고자 하는 우를 범하고 있습니다.
앞서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현재 항공기 납치나 민간항공에 대한 불법적 행위, 국제적 보호인물에 대한 범죄, 인질, 핵물질, 항해 및 해상플랫폼의 안전, 폭탄테러행위 등은 모두 국내법으로 처벌할 수 있는 범죄입니다.
그렇다면 법안에서 새로운 대테러대책을 확립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기존의 국내법과 구별되는 별도의 테러 유형, 그 행위태양의 특수성, 범죄 결과의 중대성, 대응방식의 전문성 등이 최소한 일반적 수준에서라도 제시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제까지 그러한 테러방지법안은 존재하지 않고 있습니다.
오늘 발의된 이철우 의원안에도 기존의 국내법으로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라고 하는 별도의 테러 유형이라든가 행위의 특수성이라든가 범죄결과의 중대성이라든가 대응방식의 전문성 등은 나열되어 있지 않습니다.
설령 테러방지법안이 기존의 범죄 중에서 특별히 국제적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것을 테러로 규정하고자 한 의도에서 입안되었다라고 하더라도 사정은 마찬가지입니다.
이 경우에는 법안이 필수적으로 제시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국제적 관심과 더불어서 그 국제적 우려가 우리나라에서 현실화할 가능성이 있는지에 대한 인식과 그 중대성, 지속성, 반복성에 대한 입증입니다.
국제적 우려의 존재와 국제적 위험의 존재는 문언 그대로 상호 다른 영역에 존재합니다. 국내법의 제정에 필요한 조건은 국제적 우려가 아니라 바로 국내적 위험의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테러방지법안은 테러를 규정하면서도 그것을 내국인 범죄, 외국인 범죄의 구분은 물론 개인적․개별적 수준의 범죄, 조직적․집단적 범죄의 구분조차도 제대로 행하지 않고 있습니다.
예컨대 인질 억류는 제삼자, 즉 국가나 정부간 국제기구, 자연인, 법인 또는 집단에 대해서 인질 석방을 위한 명시적 또는 묵시적 조건으로서 어떠한 작위 또는 부작위를 강요할 목적으로 타인을 억류 또는 감금하여 살해․상해 또는 계속 감금하겠다고 협박하는 행위입니다. 이 경우에 그 반인륜적 해악을 별론으로 하면 그것이 개인적 차원에서 발생하는 경우와 조직적․집단적 차원에서 발생하는 경우는 분명 사회질서와 국가안보의 측면에서는 상당한 차이를 가진다고 할 것입니다.
핵물질의 절도, 민간항공의 안전에 대한 불법적 행위, 예컨대 국제 민간항공에 사용되는 공항에 소재한 자에 대하여 중대한 상해나 사망을 야기하거나 야기할 가능성이 있는 폭력행위를 행한 경우 또는 항해의 안전에 대한 불법행위 등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런데도 테러방지법안은 개인적 수준에서 우발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범죄와 조직적 차원에서 계획적으로 이루어지는 범죄의 차이가 엄청남에도 불구하고 이를 제대로 구분하고 있지 않습니다. 즉 관련한 국제협약이 관심을 갖는 범죄의 특성이나 행위태양에 대한 인식을 구체화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국가안보 또는 공공의 안녕을 위태롭게 하는 행위라는 규정으로 처리하고자 합니다. 여기에서 공공의 안녕, 공공의 안전이라는 개념은 모든 범죄의 무가치성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존재하는 것인 만큼 별다른 제약규정이 되지 못한다고 하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입니다. 그것 자체가 추상적인 개념입니다. 공공의 안전은 모든 형법 규정의 궁극적인 목적일 뿐입니다. 그것으로부터 법 규정의 적용범위를 구체화하기는 힘듭니다.
처음 이병석 의원 외 일흔세 분이 발의하셨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