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흥분 끝에 고개를 떨어뜨리고 잠자코 걸으니까 규상이가 앞질러 대꾸를 하였다.
"무얼 저 혼자 가라지."
수건 쓴 밑에서 빛나는 그 어질어 보이는 눈길이 규상이와 또 한번 마주쳤다. 입가에는 약간 웃음빛도 어리어 보였다. 땀에 걸은 샤쓰에 노닥노닥 기운 누런 잠방이를 입은 자식과, 어느댁 도련님인지 모르는 해사한 소년을 나란히 세워 놓고 보고는 자식이 불쌍하고 부끄럽기도 하였으나, 그런 조촐한 아이와 우연히 동무가 되어서 손길을 맞잡고 오는 양이 마음에 좋기도 하여서, 저절로 웃음이 떠올려 오는 것이었다.
"눈알이 벌겋구, 열이 있는 게로구나?. 어서 가서 누었거라."
어머니는 조약돌이 수북히 싸인데까지 와서 거기 던져놓은 대패밥 모자를 집어주며, 아들의 이마를 잠간 짚어 보더니 눈쌀을 찌푸리며,
"감기로구나 집에 가거던 한데(窓外) 눕지 말구 들어가 누웠거라."
하고 자상히 가만가만 일른다.
규상이는 이 아이의 모친이 아들의 머리를 짚어보아 주는 것을 보고 외면을 하였다. 마치 완식이가 규상이의 구두를 바라 보다가는 외면을 하듯이 부러웠던 것이다.
"어머니. 그럼 오늘은 웬만큼 하시구 일찍 오세요."
"염려마라 네 몫까지 마자 끝을 내자면 좀 늦을지 모르니, 누이 들어오거던 저녁 지으라구 해라."
완식이 어머니는 다시 규상이를 치어다보며,
"저 학생은 노지두 못하구, 데려다 줄 것은 뭐 있어. 혼자 가라지."
하고 이번에는 인사성으로 정말 웃는다. 까맣게 탄 주름살 진 얼굴에 하얀 잇발이 유난히 반짝하고 내다 보인다. 누렁 몸베 이에 찌들은 적삼을 입고 뚫어진 운동화짝을 신은 이 아낙네는 촌 구석에서 늙은 농사꾼의 여편네로 밖에 안보이나 가까이 자세 보면 그 가냘픈 몸매라든지, 매디는 굵고 거칠어도 갸름한 조고만 손이라든지가, 도저히 이런 억센 일을 해낼 노동부인같지도 않거니와, 어린 규상이의 눈에도 그 고생에 찌들은 얼굴에서 어딘지 모르게 행세하는 집 아낙네 같은 기품이 있어 보이는 것이었다.
"아녜요. 염려 마세요."
규상이는 모자까지 벗어 인사를 하고 돌쳐서면서도, 어떠면 젊어서 공부한 여자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여 보고는 어쩌다 그렇게 되었을까 하고, 까닭없이 가슴이 찌르를 한 것을 깨달았다.
3
"더우니, 빙수나 한그릇 먹구가자."
서너시 되었겠지마는, 인가의 거리는 아직도 무덥다.
"싫어."
잠자코 타달 타달 걷는 완식이는 고개를 내둘렀다. 메리야쯔 등에는 땀 자국에 먼지가 까맣게 앉아서 내천자(川字)를 그리고, 울이 돌은 고무신에서는 발을 떼어 놀때마다, 빈대약통처럼 펄석 펄석 먼지를 뿜어 내었다. 그러나 대패밥 모자를 머리에 얹은 조그만 뒷모양은 잉증한 땅딸보였다.
"그러지 말구, 여기 들어가 보자꾸나."
빙수집 앞에서 규상이는 발을 멈추며 또한번 끌어보았다.
"싫다. 너나 먹구 오렴, 난 빙수란 먹어 본 일두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