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이동

페이지:소학생 74호.pdf/19

위키문헌 ― 우리 모두의 도서관.
이 페이지는 아직 교정을 보지 않았습니다

두산 천지에서 천녀(女女)가 셋이서 목욕하고 있다가 그중의 하'나인 불고룬(佛庫倫)이란 천녀가 붉은 산실과를 먹고 애기를 배서 낳은 것이 그 시조인 불고리(佛庫里)라고 했다. 그러나 이것은 옛날부터 만주에서 전해 내려온 우리 역사의 고구려의 시조 전설을 끌어낸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는데, 이러한 전설을 메어다가 붙이기 까지는 청나라가 역시 하늘이 내린 왕을 떠 받들고 있다는 존엄을 보이기 위한 것이라 할 것이다. 그러고 청나라에서는 그 뒤에 대단히 훌륭한 임금이었던 강희제(康熙帝)는 친히 만주를 시찰할 때 지금 길림(吉林)에까지 와서 직접 백두산의 산신을 "장백산지신"(長白山之神)을 신당에 모시고 제사를 지내고, 백두산을 만주의 산이라고 보다도 중국 본토의 산과 맥락을 같이 한 것이라 했다. 이것은 단순히 산을 위한다는 것만이 아니라 산줄기 뻗친 땅이 통털어 청나라의 땅이요, 그 안에 사는 백성은 모두 청나라를 따르게 하려는 생각을 품은 것임을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설날

尹 石重 詩
尹 克榮 曲


  \layout {
    #(width 400px)
  }
  \relative es' {
    \key es \major \time 2/4
    es8 es8 f8 es8 bes'4. ( c8) bes4. c8 bes8 g16 (f16) es8 f8 g4 r4 \break
    bes8 g8 f8 es8 f4. ( g8) f4. g8 bes8 g8 f8 g8 es4 r4 \break
    c'8. c16 aes8 r8 f8 f8 bes8 bes8 c8. (c16) aes4 f8 (f8) bes4 (bes4) r4 \break
    c8 bes8 g8 f16 (g16) bes8. c16 bes8 r8 es4. c8 bes8. g16 f8. g16 es4 r4 \bar "|."
   }

   \addlyrics {
     설 이 되 면 햇- 님 도 한 살- 더 먹 고
     설 이 되 면 달- 님 도 한 살 더 먹 고
     얘 들 아 나 오 너 라 키- 를 대보 자-
     누 가 먼 저- 자 라 나 내 기 해 - 보 - 자
   }
   \addlyrics {
     설 이 되 면 동해 물 도 한 살- 더 먹 고
     설 이 되 면 백두 산 도 한 살 더 먹 고
     얘 들 아 나 오 너 라 달음 질 하- 자-
     누 가 먼 저- 달 리 나 내 기 해 - 보 - 자
   }

이렇게 만주조선땅의 여러 족속과 나라가 옛날 옛적부터 산을 위하되 그중 높고 큰 산인 백두산에 그 마음을 모으고 있었다는 것은, 백두산 하나가 귀하다느니 보다도 한종족이 발전해 나갈 근본인 자기의 국토를 애끼고 숭상하는 굳은 신념을 표시한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즉 누구나 사람마다 조상을 모시고 일가 친척이 부접해서 살던 동리인 고향을 가지듯이 민족과 국가는 영원한 고향인 그 국토를 떠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그 나라의 훌륭한 산은 그 민족에게 그 국토의 주장되는 목표로 생각하게 된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 마치 의지에 나갔다가 고향에 돌아갈 때 동리 앞산이나 뒷산을 멀리 바라보며 반가운 느낌이 더 간절해지는 것에 비길 수 있는 것이다.

백두산 산마루에서 천지를 바라보는 감격에 잠겼던 우리는 그날밤은 산상에 천막을 치고 자기로 하고 모든 준비를 하게 되었는데, 산상에 까지 일행의 짐을 저올려오기 위해서 나는 다시 한번 산밑으로 내려갔었다. 말하자면 나는 그 때문에 하로에 백두산을 두번 오른 셈이었다. 대단히 고달프기는 했으나, 저녁을 치르고 천막 속에 들어갔을 때 동천에 솟는 달빛조차 은은하여 우리 민족의 신령한 산, 대 백두산 품속에 안긴 기분이 더욱 정신하고 숭엄해질 때는 하루에 두번 오른 백두산이 더욱 정답고 믿어워졌던 것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