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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소학생 74호.pdf/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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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조약은 누가 먼저 체결했나?

오 경석(吳慶錫) 선생

조 용 만

우리 나라가 외국과 처음으로 조약(條約)을 맺은 것은 지금부터 60년 전의 일입니다. 그전까지는 쇄국(鎖國)이라고 해서 남의 나라와는 일체 왕래라든지 교섭을 끊고 좁은 우리 나라 속에 그냥 틀어박혀서 우물 안 개고리 모양으로 제가 제일 장한 것 같이 살아왔던 것입니다.

고종 13년(병자(丙子)=서력기원으로 1876년) 정월에 일본 군함이 인천(仁川)에 와서 우리 나라와 나라끼리의 교제를 터서, 서로 왕래하고, 또 물건들을 서로 사고 파는 통상을 하자고 졸랐읍니다.

그 때, 우리 나라 정부에서는 물론 이것을 반대하여 일본이고 어떤 나라이고 간에 외교관계를 맺을 필요가 없다고 떠들어댔읍니다.

그러나, 세계의 대세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들 개인끼리도 혼자서는 살 수 없고, 이웃끼리 왕래하여, 물건을 서로 바꾸어야 살수 있는 것과 같이, 나라끼리도 서로 왕래하고 교섭하여야 살 수 있지, 혼자서는 도저히 살 수 없읍니다. 이미 세계각국이 외교와 통상을 시작하여 서로들 없는 것을 주고 받고, 또 남의 장점을 배워 와서 자기 나라의 부강(富强)을 도모하고 있었읍니다. 이것을 먼저 깨달은 어른이 오경석(吳慶錫)선생이었읍니다.

선생은 일찍부터 나라 일로 북경(北京)에 왕래하게 되어, 그 때 이미 (淸)나라에서 외국과 조약을 맺고, 외교, 통상 관계를 시작하여 오던 것을 몸소 보아왔고, 또 북경에서 여러 가지 서양의 선진국가에 대한 책들을 보아왔으므로, 우리 나라도 이렇게 있어서는 안될 것을 깊이 깨달았읍니다. 그러나 혼자의 힘으로는 도저히 조정에 가득찬 완고한 대신들의 생각을 돌아서게 할 수는 없었읍니다.

이리하여 우의정(右議政)이던 박 규수(朴珪壽)에게 여러 가지로 잘 설명하여, 드디어 이 박 규수의 찬성으로 정부에서는 나라가 생긴 이래 처음으로, 다른 나라와 외교조약을 맺기로 결정하여, 일본과 수호(修好)조약을 맺는데 찬성하게 되었읍니다.

★세계 명작 소년 소설★
十五少年(십 오 소 년) {전후합편}
주울스 베르느지음 ・ 이 경열 번역

"十五少年"이 얼마나 재미있는 소설인지는 읽어보지 못한 분은 짐작도 못할 것입니다. 전에 발행했을 때 사지 못하고 찾는 분이 많아서 이번에 전후편 합본으로 다시 재판 하였읍니다.


책값・370원 서울 천문사 발행


・ 전에 건민문화사에서 전편, 후편으로 낸 것을 합본한 것입니다.

・ 책사마다 팔고 있으니 누구나 한권씩 꼭 가지십시다.

그때 우리 나라 대표로서는 접견대신(接見大臣) 신헌(申櫶)과 부관(副官) 윤 자승(尹滋承)이 있었으나, 이들이 물론, 외국과의 조약맺는 절차라든지, 방식을 알 까닭이 없었으므로, 북경에서 이런데 대한 견문과 지식을 가지고 나온 오 경석 선생이 실상은 이 일을 도맡아 보게 되었읍니다.

이리하여 여러 차례 교섭을 거듭한 결과, 드디어 그 해 2월 2일에 강화(江華)에서 조약이 체결되었읍니다. 이 조약을 강화조약이라고 부릅니다.

이렇게 되어서 국제정세에 밝은 오 선생이 있었던 까닭으로, 우리 나라도 남보다 늦으나마 외국과 통상, 수호의 조약을 맺어 개명한 나라 행세를 할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 후 선생은 외교관계의 모든 일을 맡아 보아, 우리 나라를 개화시키는데 큰 공로를 세웠읍니다. 아호(雅號)를 역매(亦梅)라고 하여 글씨와 그림에도 뛰어나는 재주를 갖고 있었읍니다.

아뭏든 우리 나라의 선각자로 잊지 못할 어른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