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이동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1955년)/달을 쏘다

위키문헌 ― 우리 모두의 도서관.

달을 쏘다


번거롭던 四圍가 잠잠해 지고 時計소리가 또렷하나 보니 밤은 저윽히 깊을대로 깊은 모양이다. 보든 冊子를 冊床 머리에 밀어놓고 잠자리를 수습한 다음 잠옷을 걸치는 것이다. 「딱」 스윗치 소리와 함께 電燈을 끄고 窓역의 寢臺에 드러누으니 이때까지 밖은 휘양찬 달밤이었든 것을 感覺치 못하였었다. 이것도 밝은 電燈의 惠澤이었을가.

나의 陋醜한 房이 달빛에 잠겨 아름다운 그림이 된다는 것보담도 오히려 슬픈 船艙이 되는 것이다. 창살이 이마로부터 코마루, 입술, 이렇게 하얀 가슴에 여민 손등에까지 어른거려 나의 마음을 간지르는 것이다. 옆에 누은 분의 숨소리에 房은 무시무시해 진다. 아이처럼 황황해지는 가슴에 눈을 치떠서 밖을 내다보니 가을하늘은 역시 맑고 우거진 松林은 한폭의 墨畵다. 달빛은 솔가지에 솔가지에 쏟아져 바람인양 솨— 소리가 날듯하다. 들리는 것은 時計소리와 숨소리와 귀또리울음뿐 벅쩍 고딘 寄宿舍도 절깐보다 더 한층 고요한 것이 아니냐?

나는 깊은 思念에 잠기우기 한창이다. 따는 사랑스런 아가씨를 私有할수 있는 아름다운 想華도 좋고, 어린쩍 未練을 두고 온 故鄕에의 鄕愁도 좋거니와 그보담 손쉽게 表現못할 深刻한 그 무엇이 있다.

바다를 건너 온 H君의 편지사연을 곰곰 생각할수록 사람과 사람사이의 感情이란 微妙한 것이다. 感傷的인 그에게도 必然코 가을은 왔나 보다.

편지는 너무나 지나치지 않았던가. 그中 한토막,

「君아 나는 지금 울며울며 이 글을 쓴다. 이 밤도 달이 뜨고, 바람이 불고, 人間인 까닭에 가을이란 흙냄새도 안다. 情의 눈물, 따뜻한 藝術學徒였던 情의 눈물도 이 밤이 마지막이다.」

또 마지막 켠으로 이런 句節이 있다.

「당신은 나를 永遠히 쫓아버리는 것이 正直할 것이오.」

나는 이 글의 뉴안쓰를 解得할수 있다. 그러나 事實 나는 그에게 아픈 소리 한 마디 한 일이 없고 설은 글 한쪽 보낸 일이 없지 아니한가. 생각컨대 이 罪는 다만 가을에게 지워 보낼수 밖에 없다.

紅顔書生으로 이런 斷案을 나리는 것은 외람한 일이나 동무란 한낱 괴로운 存在요 友情이란 진정코 위태로운 잔에 떠 놓은 물이다. 이 말을 反對할者 누구랴. 그러나 知己 하나 얻기 힘든다 하거늘 알뜰한 동무 하나 잃어버린다는 것이 살을 베어내는 아픔이다.

나는 나를 庭園에서 發見하고 窓을 넘어 나왔다든가 房門을 열고 나왔다든가 왜 나왔느냐 하는 어리석은 생각에 頭腦를 괴롭게 할 必要는 없는 것이다. 다만 귀뜨람이 울음에도 수집어지는 코쓰모쓰 앞에 그윽히 서서 딱터·삐링스의 銅像 그림자처럼 슬퍼지면 그만이다. 나는 이 마음을 아무에게나 轉嫁시킬 심보는 없다. 옷깃은 敏感이어서 달빛에도 싸늘히 추어지고 가을 이슬이란 선득선득하여서 설은 사나이의 눈물인 것이다.

발걸음은 몸둥이를 옮겨 못가에 세워줄때 못속에도 역시 가을이 있고, 三更이 있고, 나무가 있고, 달이 있다.

그 刹那 가을이 怨望스럽고 달이 미워진다. 더듬어 돌을 찾어 달을 向하야 죽어라고 팔매질을 하였다. 痛快! 달은 散散히 부서지고 말았다. 그러나 놀랏든 물결이 자자들때 오래잖아 달은 도로 살아난 것이 아니냐, 문득 하늘을 쳐다보니 얄미운 달은 머리우에서 빈정대는 것을………

나는 곳곳한 나무가지를 고나 띠를 째서 줄을 메워 훌륭한 활을 만들었다. 그리고 좀 탄탄한 갈대로 화살을 삼아 武士의 마음을 먹고 달을 쏘다.

一九三八•一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