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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야담 사화 전집 (차상찬)/급수기와 박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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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수기(汲水妓)와 박어사(朴御史)

어사(御史)로서 많은 일화(逸話)를 남겨 놓은 사람 중에서 영성군(靈城君) 박문수(朴文秀)같은 이가 없고, 일화 가운데에도 통쾌하고 의분에 불타는 일을 한 사람이 박문수 아니고는 또 없었다.

그는 인정(人情)이 많은 사람이었으며 의분(義憤)에 넘쳐 흐르는 사람인 까닭에 그가 우연한 일로 진주(晋州)에서 겪은 전후 사실(前後事實)이 공교롭게도 우리가 자랑하는 춘향전(春香傳)의 내용과도 똑 같으므로 여기에 춘향의 사실과 비슷한 원홍장(元洪裝) 이야기를 소개하는 김에 그 내용을 기록하여 여러분과 더불어 실컷 웃어나 볼가 한다.

그가 열일곱 살 되었을 때 그의 외삼촌이 진주부사(晋州府使)로 있었다. 그는 외삼촌이 있는 진주로 찾아 내려가서 얼마동안 지낸 일이 있었다.

부사의 생질(甥姪)이요 나이 열일곱의 소년으로 글 잘하고 얼굴이 잘났으니 그의 뒤에 어찌 아기자기한 로맨스가 없었으랴.

그는 당시 진주(晋州)의 일색(一色)으로 소문이 난 소천금(笑千金)이란 어리고 어여쁜 기생을 알게 되어 그와 함께 꽃피는 아침과 달 뜨는 저녁을 기쁨과 사랑으로 지내며 백년을 같이 살다가 한날 한시에 이 세상을 떠나자고까지 하면서 깊고 굳은 맹서(盟誓)를 하였다.

그러나 화류계(花柳界)의 환락(歡樂)의 꿈이 긴 법은 없으니 박문수와 소천금의 이 꿈도 그렇게 오래 끌지는 못하였다. 얼마를 지낸 뒤에 박문수가 서울로 올라오게 되어 마침내 두 사람은 서로 이별을 하게 되니 단장(斷膓)의 한토막 비극(悲劇)이 박문수로 하여금 소매에 뜨거운 눈물을 뿌리게까지 하였다.

이 두 사람이 물불을 가리지 않고 서로 사랑을 속삭이면서 한날 한시에 서로 죽기까지를 맹서하였으니 이와 같은 이별을 하는 마당에서 어찌 뒷날에 만날 언약(言約)인들 없었으랴!

『서방님 언제나 그럼 나를 만나시려우?』

치마자락으로 두 눈에서 흐르는 눈물을 씻으며 박문수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우는 소천금의 사정 얘기에 박문수는

『오냐 걱정 말어라. 내가 서울가서 공부하여 대과급제(大科及第)해서 환로(宦路=벼슬길)에 오르면 제일 첫번으로 너를 찾지, 내가 어찌 잊을 수 있겠느냐 잠시도 떨어져 있는 것을 내가 어찌 좋아 하겠느냐. 만서도 나 역시 시하(侍下)에 있는 몸이라 어찌 모든 일을 내 마음대로 하겠느냐. 내 생각에 너무 마음을 상치 말고 얼마 동안만 기다리면 만날 날이 있으니 그리 알고 몸성히 잘 있거라.』

이렇게 위안을 시킨 뒤에 박문수는 서울로 올라왔었다.

그런데 박문수가 진주 있을 때에 또 한 가지 조그마한 염문(艶聞)이 있었으니 그것은 어느 해 그가 서실(書室)에서 몇몇 동무와 같이 앉어 춘일영시(春日詠詩)로 그날을 보내고 있던 차에 마침 그 방 앞으로 어떤 젊은 여자 하나가 물동이를 이고 지나갔었다.

이것을 본 여러 사람들은 낄낄 웃으며

『아 ─ 저게 급수기(汲水妓) 춘심(春心)이 아니냐. 원 저게 저것도 죽기 전에 서방을 얻을 수 있을까?』

『여보게 저까짓 걸 누가 데리고 가까이 하겠나? 그 못난 것을!』

『여보게 말도 말게 말만 들어도 지긋지긋하여 꿈에 볼가 봐 걱정일세.』

『계집이 못생기고 인물이 없다 하더래도 원 저다지도 끔찍할까?』

『그러기에 나이 스물이 넘어 설흔이 가까워도 누가 손목 한번 안 만저 주지 않나?』

『그런데 참 저런 것하고 한번 가까이 하고 놀며는 그야말로 적선(積善)이 될 것일세.』

이렇게 몇몇 사람은 춘심이가 지내가는 것을 보고 쓸데 없는 소리를 주고 받고 하였다.

박문수는 일찌기 춘심이를 본일도 없고 그의 이름조차 물어본 적이 없으며 그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알지 못하고 그가 처녀로서 나이 스물인 혼기(婚期)을 넘고 설흔이 가깝도록 까닭 없는 남자들에게까지 놀림을 받는 것에 분연히 그 여자에게 동정의 마음이 쏠리었다.

그는 속으로

『아 ─ 가엾은 여자로군, 내 자신이 그에게 동정이나 해줄 무슨 좋은 기회는 없을까?』

하는 생각을 하여 보았다.

이것은 실로 일시적인 호기심(好奇心)에서 나온 동정이었을 것이다.

그날 밤 초저녁이었다.

박문수의 방 앞을 지나가던 그 못난이 여자 춘심이는 뜻밖에도 박문수의 방에 들어가게 되었으니 이것은 박문수가 아까 여러 사람들에게서 춘심의 내력을 잘 듣고 그를 한번 보려고 하던 차에 그를 불러 들이게 된 것이 었다.

그 이튿날 날이 밝아서 춘심은 박문수 방문을 열고 나왔다.

물론 그 뒤에 이 두 남녀가 서로 만났을 리도 만무하였다.

춘심이 얼굴이 너무도 지나치게 못나서 다시는 박문수의 부름을 받지 못하였으니 따라서 박문수는 그의 머리 속에서 아주 춘심을 잊어버리게 되었고 이와 반대로 춘심은 일편단심(一片丹心)으로 박문수를 가슴 깊이 연모(戀慕)하고 상사(相思) 하였다.

박문수가 서울로 올라온지 어언간 십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십년 동안 글공부의 최종 목적은 대과급제(大科及第)하여 입신양명(立身揚名)하여 가문(家門)을 빛내고 국사(國事)에 몸을 받치는 것이 남아장부의 먹은 바 큰 마음이거니와 그가 가지고 있는 또 한가지 욕망은 어떻게 하든지 대과에 올라 수의어사(繡衣御史)가 되어 밤낮으로 그립던 소천금(笑千金)을 만나 끊어졌던 남은 연분을 이어 보려는 것이었다.

과연 그의 희망은 헛되지 아니하여 십년이 되던 해 이른 봄 과거(科擧)에 장원급제(壯元及第)가 되어 암행(暗行)의 어명(御名)을 받아 영남(嶺南)으로 내려오게 되었다.

박문수는 폐포파립(弊布破笠)으로 이 마을에서 저 마을로 마을마다 구걸을 하여다니며 여러 날 산천(山川)은 예나 이제나 변함이 없이 맞아 주는 듯 하였지만 아침 저녁으로 변하기 짝이 없는 인심(人心)은 그가 누구인지 알아 주는 사람이 없었다.

남모르게 애를 태우면서 기다리며 사모하던 소천금을 그리던 박어사는 재빠른 걸음으로 그 집을 찾아 갔었다.

그가 봉명사신(奉命使臣)의 몸인만큼 쉽사리 그의 행색(行色)을 남이 알까 두려워 하여 조심스러이 그집 문앞에 당도하여 걸인(乞人) 행색으로 밥을 달라고 간청하였다.

『밥좀 주십시요, 녜? 지나가는 사람에게 밥 한술만 선심하십시요.』

하고 능청스러운 거짓 문자를 쓰며 이집의 변한 옛 모습을 찾아보려고 애를 썼다.

얼마를 지난 뒤였다.

안으로부터 늙은 노파(老婆) 하나가 나왔다.

그 얼굴을 보니 그는 분명히 소천금의 친 어머니었다.

옳지 그저 이집에서 모녀(母女)가 아직 살고 있구나 하고 우선 마음을 놓고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하고 뒷공작(工作)을 하고 서 있었다.

『아니 어떤 거지가 이렇게도 끈적끈적해, 밥이 없어 못준다는데 가지 않고 이렇게 섰어.』

하고 소천금의 어머니는 옛날에 쓰고 남았던 그 수선을 그대로 떨면서 신발을 찍찍 끌며 중문을 지나 대문 안까지 나와 섰다.

『배가 고프니까 그렇지 거지인들 그만한 인사야 못치를 리가 있겠읍니까. 그러지 마시고 마님 어서 한술 주십시오.』

하고 고개를 번쩍 들며 박어사는 마누라를 치어다 보고 허리를 굽실거렸다.

쫓아 나와서 대문턱에 우뚝 서있던 소천금의 어머니는 대단히 놀라는 표정을 하더니 의아한 눈치로 한참 동안 박어사를 바라보고 나서

『아니 이상도 하다 내 눈이 잘못인가? 분명히 그런데…… 아니 당신이 전 전등내(等內) 박서방(朴書房)님이 아니시우?』

하고 묻는다.

『야 이것 바라 옳게 알어 보는구나!』

하고 속으로 놀란 박어사는

『녜 과연 그렀습니다.』

하고 이제는 아주 할 수 없는 가엾은 거지 형용을 하며 연거푸 허리를 꾸부리며

『아이구 대관절 여러 날 굶어서 죽을 지경이니 찬밥이라도 있거던 한술 요기를 시켜 주오.』

하고 더한층 수선을 떨었다.

『아니 그러기로서니 이게 웬일이시우? 서방님이 어쩌다 이모양이 되었소?』

소천금의 어머니는 딱하고 가엾다는 표정으로 동정의 감탄사를 되풀이 하면서 무던히 애를 썼다.

『허 별 수 있읍디까? 서울 가서 외방오입 좀 하다가 있는 돈푼을 다 없애고 외가(外家)에서 쫓겨나서 공부도 못하고 벼슬도 못하고 보니 갈데없이 이 모양 요 꼴로 거지노릇이지 무엇입니까? 그래도 옛정을 생각해서 이 마을 저 마을로 걸식을 하며 이곳까지 왔는데 그리 푸대접을 아니해 주니 이런 고마울 데가 어디 있겠소. 그야말로 감격의 눈물이 저절로 나오.』

하며 소천금의 에미의 심금(心琴)을 건드려 놓았다.

이 말에 크게 감동하여 노파는 박어사를 끌고 빈방에 들어 앉히고 그는 부엌으로 내려가서 밥을 차리고 있었다.

『여보 대관절 소천금이는 어디 갔소?』

하고 방안에 앉은 방어사의 묻는 말에

『녜, 본부(本府)의 청기장번(廳妓長番)이 되어 요새는 집에 나오지도 못한답니다.』

하며 스스로 딸에 대한 사랑하는 마음과 애착심을 나타내었다.

조금 후였다. 박어사의 마음은 매우 궁금하였다.

『아, 내가 주야로 보고 싶던 소천금을 만나보지 못하게 되나보다. 천행으로 지금이라도 잠시나마 집으로 나왔으면 그립던 그의 얼굴을 만나 볼 수 있겠다만서도…….』

이런 생각을 하면서 빈 방안에서 홀로 앉은 박어사는 소용도 없는 이런 공상(空想)을 되풀이 하고 있었다.

문밖에서 신을 끌고 들어 오는 소리가 나더니 이윽고 부엌에서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과연 젊은 여자의 말소리가 분명하였다.

박어사를 얼른 귀를 부엌 쪽으로 바싹 대고 그 소리를 놓치지 않으려고 했다.

『얘, 그런데 말이다. 그런데 너와 백년을 언약해둔 박서방님이 오셨다. 지금 방에 앉어 계시다.』

『아니 언제 왔소. 무슨 일로 왔대요?』

분명히 모녀의 문답이었다.

『그런데 폐포파립에 그 모양이란 참말 가엾기가 한량이 없더라, 거지가 되어 왔더구나! 그래서 그 곡절을 물었더니 무엇인가 잘못해서 외가(外家)에서 쫓겨나 지금은 마을마다 돌아다니며 문전걸식을 하고 다니다가 그래도 이전에 알고 친하던 이속(吏屬)들에게 돈푼이나 얻고저 여기 왔다는 구나. 참말 사람팔자란 그렇게 무서우며 알 수 없구나, 너무나 가엾어서 볼 수가 없어서 방에 들어 앉히고 지금 밥을 짓는 중이란다.』

하고 그 에미가 이런 얘기를 하니 그의 말 소천금은 화를 벌컥 내어 소리를 지르며

『왜 그런 말씀을 날 보고 하세요. 내가 그런 말을 듣자고 나왔어요?』

하고 알지 못하는 사람의 이야기는 듣기도 싫다는 듯이 잡아 떼었다.

『얘야, 그게 무슨 말이냐, 너를 꼭 만나 볼려고 왔단다. 사람이 그럴 수가 있느냐? 고와도 옛정이요, 미워도 옛사랑이란다. 그러지 말고 어서 들어가서 멀리서 온 손님이니 위안의 이야기라도 한마디 하고 좋은 낯으로 보내야 한다.』

하고 그의 에미는 무수히 달래고 타일렀다.

『싫어요. 그런 거지를 만나보면 무엇이 시원해요. 그따위 인간은 난 보기 싫소. 내일 병사또(兵使道) 생신에 촉석루(矗石樓)에 잔치를 벌리고 각읍 수령(各邑守令)이 많이 모인다는데 본부(本府)에서 기생들에게 갖은 의복(衣服)을 깨끗이 입고 나오라고 엄한 명령이 내려서 옷장 속의 새옷을 가질러 나왔으니 어서 어머니가 들어 가셔서 옷이나 꺼내다 주시오. 나는 그런 꼴은 보기도 싫소.』

하고 소천금은 그의 에미를 조르는 모양이었다.

『얘, 그러지 말어라. 내가 어느 것이 맞는 옷인줄 아니, 네가 들어가서 꺼내든지 말든지 하려므나.』

하고 그만 그 에미는 잡아떼어 버렸다.

그제야 하는 수 없던지 소천금은 바시시 문을 열고 안방으로 들어섰다.

박어사는 지금까지 부엌에서 그 모녀간의 이야기를 다 들었기 때문에 가슴이 여간 울분치 않았으나 태연한 낯으로 들어서는 소천금의 치맛자락을 넌지시 붙잡으며

『아 ─ 소천이냐? 나는 박서방이다.』

하고 오래간 만에 만나는 반가움에 어쩔줄을 몰라 했다.

『몰라요. 난 박서방이 누구인지 알지 못해요.』

하며 잡힌 치맛자락을 뿌리치며 두 눈을 실쭉거리며 박어사를 흘겨보며 웃목 구석에 있는 옷장 앞에 가서 무엇인가 몇 가지 옷을 꺼내가지고 그만 쌀쌀하게 문을 박차고 나가 버렸다.

『고약한 년! 이럴 수가 있느냐! 인정없는 년! 어디보자!』

박어사는 불유쾌한 감정을 억제하다 못하여 마침내 그 노파가

『다된 밥이니 먹고나 가시우.』

하면서 부디 붓잡는 것도 뿌리치고 그 집 대문 밖을 나왔다.

『아 ─ 세상은 이렇구나 내가 만일 훌륭한 지위나 훌륭한 차림을 차리고 이년앞에 나타났더라면 이년이 나를 이렇게까지 괄세를 안했을 거지.』

짤막한 한토막의 인생철학(人生哲學)을 생각하며 그는 내키는 발길로 지향없이 걸어갔다.

소천금의 에미의 만류를 뿌리치고 문밖으로 나선 박어사는 그길로 춘심(春心)의 집으로 향하였다.

춘심으로 말하자면 예나 지금이나 다름 없이 물긷는 것이 그의 맡은 일이었으므로 이날도 저녁때가 되어 그는 물통을 이고 부지런히 물을 이어 날르고 있었다.

물을 이고 오던 춘심이가 한참동안 박어사의 모양을 바라보더니

『이상도 하다, 괴상도 하다.』

하며 혼자서 혀을 끌끌차며 무엇인가 무척 이상하다는 표정을 하고 멈추고 서 있었다.

그 모양을 본 박어사는 은근히 속으로 웃음이 나서 바싹 춘심의 곁으로 다가서며

『무슨 까닭으로 남의 남자를 보고 이상하니 괴상하니 하느냐?』

하고 마치 시비하는 모양으로 질문을 하니

『아니에요. 손님 모습이 똑 요전번에 이 고을에 오셨던 사또의 책방(冊房) 박서방(朴書房)과 같은데 이런 모양을 하시고 계시므로 마음이 이상하여 그러합니다.』

하고 말을 하니 박어사는 얼른

『옳다, 내가 그때 책방 박서방이다.』

하고 대답 하였더니 춘심은 그만 머리에 이고 있던 물동이를 땅 바닥에 내던지고 왈칵 달려들면서 박어사를 붙잡고 울며 하는 말이

『서방님 이게 웬일이십니까………. 어쩌다가 이 모양이 되셨읍니까? 저의 집이 여기서 멀지 아니하오니 저하고 같이 가십시다.』

하고 감격할만치 다정스럽게 이끌었다. 아까 소천금을 대하던 그때와는 너무도 딴판이며 말할 수 없이 마음이 설레었다.

박어사는 그를 따라서 그의 집을 찾아가 보니 그야말로 두칸 두옥(斗屋)이었다.

그가 권하는 대로 방 아랫목에 앉으니 춘심은 다시금 눈물을 흘리며

『서방님 무슨 연유로 이렇게 이 모양을 하시고 오셨읍니까?』

하고 묻는다. 박어사는 속으로 혼자서 웃으며

『그럴 수밖에, 글공부를 못했으니 과거(科擧)를 못하였고 주색에 덤벙대어 가지고 있던 돈냥을 다 없애고 나니, 외가에서 미움을 사서 마침내 쫓기고 보니 이모양이 되었네그려. 이 꼴로 말하면 기왕 내가 책방에 있을 적에 이속(吏屬) 들에게 안면이 없지 않으므로 돈푼이나 얻을까 하고 체면을 돌보지 않고 이곳까지 왔네, 그동안 자네가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도 하여 지나가는 길에 들린 것일세.』

하고 처량스러운 어조로 그럴듯하게 대답을 하였다.

이 소리를 들은 춘심은 다시 눈물을 주루룩 흘리더니

『저는 그때 서방님을 보낸 뒤로 밤낮으로 축원이 서방님 잘 되시기만 바랐더니 하늘도 무심하시지 어찌 이지경이 될줄이야 꿈엔들 생각하였겠읍니까? 날씨도 저물고 가신들 어디를 가시겠읍니까? 날씨도 저물고 가신들 어디를 가시겠읍니까, 집이 누추하오나 이 밤을 새우시고 내일 볼 일을 보십시오.』

하며 돌아 앉아서 구석에 놓인 더러운 상자 속에서 명주옷 한 벌을 꺼내더니 박어사 앞에 내놓으며

『서방님 의복이 저렇게 남루해서 얼마나 괴로우시겠읍니까, 어서 이 옷을 갈아 입으십시오.』

한다. 박어사는 깜짝 놀라면서

『아니 이 옷은 어디서 났나?』

하고 물으니 춘심은 대단히 부끄러운 태도를 하면서

『이것은 제가 여러 해를 두고 물을 길어들이면서 푼푼이 받아 모은 품삯으로 지어 두었던 옷인데, 다행히 이생에 다시 한 번 서방님을 만나 뵈오면 변변치 못한 이것이나마 올리어 옛정을 표하려고 두었던 것입니다.』

하고 너무나 감격스럽게 얘기를 하였다.

박어사는 한참 동안 눈을 감고 앉었다가 앞에 놓인 옷 보따리를 스르르 내밀며

『고맙네, 그처럼 나를 생각하고 있었던가? 그런데 내가 지금 이런 거지 같은 옷을 입고 왔다가 급작스럽게 이런 깨끗한 새 옷을 입고 나서면 누구든지 매우 수상하게 생각할 것이 아닌가? 끝내 가서는 내가 입을 터이니 아직 상자 속에 넣어 두게.』

하였다.

춘심은 그 옷을 받아 다시 상자 속에 넣어 놓고

『그럼 제가 부엌에 내려가서 진지를 지어 올릴 터이니 서방님 피곤하실 터인데 그럼 좀 아랫목에 편히 누워 계십시요.』

하고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박어사는 아까 소천금(笑千金)이 하던 태도와 지금 춘심의 그 다정스러운 정성을 가지고 비교해 보면서 감격해 마지 않었다.

부엌에서 춘심이가 밥짓는 소리가 들리고 먼곳에서 개짓는 소리가 들려 왔다. 아마 어느덧 해가 진지도 오래된 것 같았다.

이윽고 밥상이 들어왔다.

곁에는 춘심이가 공손히 앉아서 반찬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하였다.

비록 식성(食性)에 썩 맞지는 않았으나 박어사는 한그릇 밥을 달게 다 먹었다. 밥상은 나갔다. 어떤집 다듬이 소리가 멀리 바람을 타고 흘러온다.

옳지 벌써 이 밤도 황혼이 지난 모양이로구나

박어사는 담뱃대를 물고 앉아서 내일 촉석루(矗石樓)를 습격할 작전계획(作戰計劃)을 세우고 있었다.

그의 머리 속에 문득 소천금의 얼굴이 나타나며

『아이구 이 거지야 뭘 하러 이곳까지 빌어 먹으로 왔어!』

하고 그 비웃는 입술과 찡그리는 모양이 보였다.

『에이 괘씸한 년 같으니, 요년, 어디 좀 보아라…….』

박어사는 이런 속말을 커다랗게 질르며 대통으로 재떨이를 딱딱 뚜드렸다.

밤은 완전히 초경(初更)이 깊었었다.

벌써 안팎은 고요하고, 들려오던 다듬이 소리도 점점 멈춰 없어졌다. 무엇인가 뒷 뜰에서 나무라듯이 커다란 소리가 들려왔다. 분명히 춘심의 말소리였다. 처음에는 잘 알아 들을 수 없을 정도의 나지막한 소리더니 차차 그 소리가 커졌다.

박어사의 귀는 자연히 그 소리 나는 대로 기울어져 갔다. 계속하여 무슨 그릇을 깨뜨리는 듯하는 와지끈 와지끈 하는 요란한 소리가 났다. 여기에도 춘심의 성난 소리가 섞여 나왔다. 여러 가지 소리 중에

『에끼, 이것도 오늘이 마지막이다. 무슨 영검이 있나? 십년 적공(積功)이 이 모양이니,』

하니 소리가 분명히 박어사의 귀를 울리고 지나갔다.

박어사는 매우 궁금하였다.

그런지 얼마 아니하여 춘심은 부엌을 다녀서 방으로 들어왔다.

촛불을 사이에 두고 두 사람은 마주 앉았다. 박어사는

『아니 그런데 지금 뒷곁에서 무슨 그릇을 깨뜨리는 듯한 소리가 나던데 그것은 무슨 까닭이야.』

하고 물었다.

춘심은 아직도 화가 안 풀렸다는 표정을 하며

『글쎄 서방님께서 이 고을을 떠나신 그날부터 소녀가 후원에 단(壇)을 뫃아놓고 아침 저녁으로 비옵기를 서방님께서 아무쪼록 몸성이 하시어 공부 잘하셔서 대과급제 하시와 입신양명(立身揚名) 하시라고 이날 이때까지 마음을 다하여 치성을 올리었는데 십년이 지난 오늘에 와서 서방님께서 이 모양을 하시고 오셨으니 어찌 귀신(鬼神)에겐들 빌고 바란 영검이 있읍니까. 그래서 아까 위하던 신(神)도 불질러 버리고 그릇 등속을 전부 다 깨뜨려 버렸읍니다.』

하고 말을 체 맺지도 못하고 춘심은 그만 치마자락으로 두 눈에서 흐르는 눈물을 씻었다.

박어사는 웃으며

『그래 귀신이 어디 양반을 도와줄 힘이 있나? 그러니까 아무 영검이 없지…….』

하고

『그러기로 위하던 것을 그렇게 부실 거야 무엇이 있나? 또 울기는 왜 울어? 걱정 말게. 난들 언제나 이 꼴 요 모양으로 거지 노릇만 하다 죽겠나? 자네 정성으로 앞으론 잘 되겠지. 울지 말게. 밤도 깊고하니 어서 나는 자야겠네.』

박어사는 자리에 누웠다.

이제는 밤도 깊어 삼경(三更)이 된 모양이다.

그야말로 만뢰(萬籟)는 죽은 듯이 소리가 없어 사방은 고요한 장막 속에 쌓이었다.

박어사는 눈을 감고 아까 뒷곁에서 춘심이가 위하던 신단(神檀)을 부수던 광경과 그가 십년 동안을 자기를 위하여 조석으로 정성을 들여준 일을 생각하여 보았다.

감사하며 또 감격할 뿐이었다.

순정(純情)이란 실로 이런 못난 여성(女性)에게만 고이 담기어 있는 것이로구나.

자기의 오늘날 이 영달(榮達)도 아마 반은 춘심이가 이렇게 애쓴 정성의 보람이 있어서 성취된 것이로구나 하면서 혼자서 다시금 감동하였다.

소천금의 그 요염하고 악독한 그 마음과 춘심의 그 임 향한 일편 단심(一片丹心)과를 비교하면 이렇게 차이가 있구나! 아 고맙다, 착하고 귀여운 나의 마음속 깊이 숨겨 놓고 사랑하는 애인 춘심이여… 박어사는 이렇게 혼자서 감복 하였다.

그밤은 온갖 축복(祝福)과 감사 속에서 밝았다. 춘심은 조반상을 물러냈다.

박어사는 여전한 거지 복색을 하고 춘심의 집문 밖을 나서면서

『어쩌면 오늘 저녁에 또 자네들 만날 듯하니 어디 가지 말고 집에 들어 앉아 있게.』

하는 부탁의 말을 남기고 춘심도 모르는 어느 곳인지를 향하여 그는 힘차게 걸어 갔다.

이날의 진주읍 날씨는 유난히도 우울하였다.

마치 무슨 불길한 예감이나 있는듯 하였다.

춘심의 방에서 나온 박어사는 그길로 촉석루(矗石樓)로 향하여 갔다.

그는 가는 길가에서 늘 데리고 다니는 역졸(驛卒) 몇몇을 만나 대개 오늘 촉석루에서 일어날 사건(事件)의 대강을 말한 뒤에 자기가 눈치를 보이거든 이렇게 이렇게 하라고 일러 두었다.

물론 역졸들도 이날이 진주병사의 생일날인 것을 알았으므로 혹시나 이 자리에서 무슨 일이나 일어나지 않을까 하여 어사또의 신변을 호위하고서 만 전의 주의를 하고 있었다.

박어사가 촉석루 밑에 이르렀을 때는 인제 겨우 아침 햇빛이 솟아 올라 왔을 때였다.

그는 그 모양없는 차림을 더한층 보기 싫고 더럽게 하기 위하여 입은 옷 꼴이든지 갓(笠)이며 얼골 모양을 더한층 흉칙스럽게 만들어 놓았다.

늦은 조반(朝飯)때가 지나서 각방(各房)의 관속이며 하예(下隸)들이 수없이 몰려 나오더니, 촉석루 안팎을 깨끗이 치운 다음에 다락위에 자리를 깔고 상(床)을 늘어 놓았다 온갖 야단법석을 한 뒤에 이윽고 병사가 나오고 본관(本官)이 나타나더니 그 뒤를 이어서 인읍(隣邑)의 수령(守命) 십여명이 차례로 뫃여 들었다.

본읍의 문무관장(文武官長)이며 각읍의 수령이 한자리에 뫃였으니 이것만으로도 으리으리하려니와 좌석의 설비라든지 사령(使命) 하인들의 웅성대는 모양은 실로 어마어마하고 그 자리 한구석에 자리를 같이 하고저 덤비기가 아닌 게 아니라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만일 박문수가 이때에 소천금(笑千金)의 눈에 보인 거와 같이 참말 더럽고 꾀죄죄한 더러운 옷차림의 거지었더라면 그는 감히 이자리에 참석도 못하였을 것이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강력(强力)한 위엄을 삼고 있는 마패(馬牌)가 있었으므로 이들이 웅성대는 것은 조금도 염두에 두지를 않었다.

박어사는 북쪽 누상(樓上)으로 올라가서 병사(兵使)를 바라보며

『여보시오, 병사또 지나가던 관객이 오늘 이 성연(盛宴)에 한번 참례하려고 왔으니 한쪽 구석에라도 앉혀 주시겠읍니까.』

하고 허락도 받기 전에 여러 사람 앞에 털썩 앉어 버렸다.

그의 모양은 실로 그가 말하는 어조(語調)와 어울리지 않었다.

분명히 거지임은 틀림 없는데 말하는 버릇은 아주 건방져서 마치 병사에게 시비(是非)나 걸려고 하는 것 같었다. 병사는 그 과객의 언행이 대단히 못마땅하였으나 이날은 마침 자기에게 기쁜 생일 날이기 대문에 그런 것에는 조금도 마음을 두지 않고

『한쪽 구석에 앉아서 구경이나 하고 가구려.』

하고 그들은 자기네끼리 할 말 못할 말 함부로 떠들고 있었다.

이러는 동안 때는 벌써 정오(正午)가 가까워 왔다. 좌중에는 갖은 음식과 금준미주(金樽美酒)가 벌어져서 갑자기 웃음바다로 변하여졌고 이 구석 저 구석에서는 갖은 음률(音律)로 주악(奏樂)을 하면서 루상(樓上) 루하(樓下)가 마치 음악의 전당으로 변한 것 같았다.

술잔이 이리 오고 저리 갈려고 할 때 수청 관기(守廳官妓)들이 이틈 저틈으로 끼어 들었다.

바로 이 때였다.

소천금은 본관(本官) 등뒤에가 서서 있었다. 그의 얼굴이 원래 진주에서는 일색인만큼 담장소안(淡粧素顏)도 충분히 사람의 눈을 놀라게 하였거니와 하물며 오늘같이 그 찬란한 옷에 갖은 화장을 한 화용월태(花容月態)이니 좌중의 시선(視線)은 금시에 그로 향하여 쏠리었다.

과연 미인이었다.

더구나 그의 요염스러운 추파(秋波)의 눈초리, 반수반소(半羞半笑)의 그의 독특한 교태(嬌態)는 오히려 이 좌중의 인기(人氣)를 독차지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이때 병사가 허허허 웃으며 본관을 돌아보고

『근일 본관이 소천금에게 반해서 신색이 요전만 못하시군.』

하니 본관이 그 흉칙스러운 표정을 하며

『그럴 리가 있읍니까? 그저 명색뿐이지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고 슬며시 격에 맞지 않는 변명을 하였다.

병사는 좌중을 한번 돌아 보면서

『자 소천금에게 술 한 잔 받아 먹읍시다.』

하니 좌중의 일동이

『녜 그것 참 좋으신 제안이십니다.』

하고 모두 손벽을 치며 좋아하였다.

『얘, 어서 나와서 여러분께 술을 권해라.』

하는 병사의 명령에 소천금은 그 애교가 넘치는 자태로 연회석 한가운데를 마치 봄 물결에 잠자리 다니듯이 요리 조리로 행주순방(行酒巡訪)을 하였다.

그의 자태는 마침내 한구석에 모양 없이 앉은 박어사 앞에 나타났다.

박어사는 소천금이가 자기 근처로 오게 되자 얼른 손을 들어 병사에게 청하기를

『여보 병사또 이 사람도 술잔이나 먹을 줄 아는데 어디 한잔 받아 먹을 수 없을까요?』

하니, 병사또도 거절을 못하고 소천금을 향하여

『얘, 그 손에게도 한잔 딸어라.』

하고 일렀다.

이때에 소천금이 조금이라도 철이 있는 계집 같으면 전날 지내던 일도 생각하여 남의 술일망정 한잔 두둑히 딸아서 따뜻하게 권했으련만 원체 몰인정한 계집이라 끝끝내 거지인 박서방만이 더럽게 생각되어 그렇게 하였는지 병사의 명령에 마지 못하여 술 한 잔을 딸어 가지고 얼른 지인(智印)을 주며

『여보 저이에게 좀 권해요.』

하고 아주 쌀쌀하고 치가 떨릴 정도로 냉대하였다.

아닌게 아니라 박어사가 실로 보통 거지였고 그가 봉명사신(奉命使臣)이 아니었던들 이 자리 그 경우에 소천금을 그대로 두지 아니하였을 것이다.

박어사는 다시금 손을 들어 병사를 부르며 허허허 웃고 나서

『여보 나도 사내 대장부인데 어찌 기생 손에 술 한 잔 못얻어 먹겠오? 나는 지인이 권하는 술은 먹기가 싫으니 술을 딸어주는 기생이 권주가를 부르면서 권해야 받어 먹겠오.』

하고 떼를 썼다. 병사와 본관이 약간 얼굴 빛을 변하더니

『여보, 술이란 마시면 그만이지 하필 기생 손으로 권하는 것이 좋을 것이 무엇이 있겠오.』

하고 마시기를 권하였다.

그 술을 마지 못하여 받어 마시고 나니 이어서 잔치 음식상이 들어왔다.

병사 본관과 각읍 수령은 물론 그 이하의 사람들까지가 모두 옥반진수(玉盤珍羞)로 갖은 음식이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그 넓은 상이 좁을 만치 그득 차려 놓았는데 오직 박어사 음식상에 한하여 조그만 소반위에 몇 접시 밖에 안 되는 먹을 것조차 없는 변변치 못한 음식이 놓여 들어왔다.

박어사는 그 상을 발길로 와락 밀어 박차며 좌중을 둘러보고 커다란 목소리로

『여보들 이럴 수가 있오? 당신네도 양반(兩班)이요 나도 양반인데 음식에 어찌 이렇게도 칭하가 있오?』

하고 호령을 하며 야단을 치니 본관이 그만 화를 벌컥 내면서

『웃 어른들 모인 자리에 왜 이렇게 시끄럽게 구는거냐, 무엇이라도 좀 받아서 얻어 먹었으면 빨리 갈 것이지 왜 이다지도 몹쓸 행세를 하느냐, 잔말 말고 어서 먹고 내려 가라!』

하고 호령 비슷이 야단을 쳤다.

박어사도 목소리를 높이어

『아니 나는 어른이 아니란 말이냐? 나도 계집 자식이 있고 수염이 시커먼 어른인데 그래 나를 아이로 보는 놈이 있어?』

하고 그제는 본관 앞으로 가서 버쩍 대들었다.

이 지경이 되고 보니 본관도 역정이 안날 리가 만무하였다.

본관은 그만 화가 상투 끝까지 치밀어 올라서 씨근 벌떡 거리며

『여봐라 이놈들 다 어디 갔느냐, 이 미친 과객놈을 어서 잡아 내라.』

하고 호령 호령하였다.

촉석루 밑에 웅기웅기 서있던 각방 하인들은 눈이 둥그래져서

『어서 내려와요. 큰일 나우.』

하고 손짓을 한다. 본관은 더욱 화가 나서 박어사를 떠밀며

『어서 내려가!』

하고 야단을 쳤다.

그래도 박어사는 점점 밉상을 부리며

『허 내가 왜 내려가. 본관이나 어서 내려 가게.』

하고 어린아이 나무라듯이 꾸짖었다.

일이 이지경이 되고, 본관과 과객이 서로 밀며

『내려가라.』

하고 다투고 있으니 연회장이 그대로 온전할 리가 없었다.

한쪽 구석에서부터 사람들이 일어나서

『아 어떤 과객놈이 이렇게 무례(無禮)하게 군담.』

하면서 그야말로 난장판이 되어 버리었다.

본관은 그대로 펄펄 뛰며 하인들을 보고

『어서 이놈 잡아 내려라.』

하고 추상같은 호령을 내렸다.

곁에 서있던 지인(知印) 놈들이 박어사 등을 밀치며

『어서 내려 가라.』

하니 박어사는 여전히 소리를 지르며

『이놈들 왜 날더러만 가라는 거냐? 어서 너희들이나 내려 가려므나.』

하고 큰소리로 호령을 하였다.

이와 같이 서로 호령을 하고 모두 일어서서 복작거리는 순간에 문밖에서부터

난데 없는 역졸(驛卒)들이 육모방맹이로 닥치는 대로 함부로 부수면서

『어사 출도!』

하고 큰 고함을 외치면서 쳐들어 왔다. 연회장속은 갑자기 쥐죽은 듯이 고요해지고 병사와 본관 각읍 수령은 갑자기 얼굴이 흙빛이 되어 하나 둘씩 말없이 슬그머니 밖으로 도망을 쳐 버렸다.

그제야 박어사가 넌지시 병사 자리에 올라가 앉으며 빙그레 웃고 나서

『그럴 것이지, 진작 나가라 그럴 때 나갈 것이 아닌가.』

하며 출도한 어사의 염연한 본색을 나타내었다.

콩볶듯 하던 역졸들의 출도풍경(出道風景)은 그만 잠잠 하여졌다.

박어사가 병사가 앉았던 자리에 올라가 앉으니 병사와 본관을 비롯하여

이날 이 자리에 모였던 각읍 수령이 모두 모대(帽帶)를 갖추고 앞으로 나와 현알(現謁)을 하였다.

어사또는 출도절차를 다 치른 뒤에 형리(刑吏)에게 누하(樓下) 뜰 앞에 형구(刑具)을 갖다 노라고 명령하고 이어서 소천금과 그의 에미를 잡아 들이라고 일렀다.

이윽고 소천금은 뜰 앞에 잡히어 와서 꿇어 앉았다.

박어사는 추상(秋霜)같은 목소리로

『네 듣거라, 이년! 너는 전에 나와 같이 정답게 지내던 일을 그렇게도 잊어 버리었으냐? 그때 무엇이라고 했느냐? 남강(南江)이 말라 육지가 되더라도 너와 나와의 정은 변치 말자고 했지, 그래 내가 이모양을 차리고 왔다고 그렇게도 모르는 체를 하느냐? 네가 참다운 사람이라면 이 모양을 차린 옛날 정든 님을 가엾게 생각하여 좋은 말로 위안을 시키는 것이 도리어 옳을 것이어늘, 무슨 원수가 졌다고 그렇게 역중을 내며 화를 내느냐, 속담에 동냥은 아니주고 쪽박을 깨뜨리는 셈이 너를 두고 말하는 말이로구나, 너같이 인정을 모르고 의리를 모르는 년을 그냥 두어서는 앞으로 강기(綱紀)에 악습(惡習)이 남을 것이니 한번 맛을 보아라.』

하고 형리에게 분부하여 태장(苔杖) 설흔 번을 치라고 명령하였다.

그다음 소천금의 에미를 불러들여 세워놓고 박어사는 감격한 어조로

『너로 말하면 여간 인사를 잘하는 여자였다. 만일 네가 아니었으면 오늘 이 자리에서 너의 딸년을 즉석에서 때려죽였을 건인데 너의 정다운 대우로 말미암아 나로 하여금 인명(人命)을 줄이지 않게 하였으니 그아니 가상타 하겠느냐?』

많은 찬사(讃辭)를 하면서 높이 칭송한 뒤에 곧 호방(戶榜)에게 분부하여 미육(米肉)을 주라고 일렀다.

박어사는 그다음 높은 자리에서 내려 앉더니 통인(通引)에게 무슨 쪽지를 주었다.

이윽고 쉬 ─ 소리가 나더니 여러 하인들이 어떤 여자 하나를 호위하고 들어 왔다.

주위에 서있던 사람들은 그가 누구인가 하고 앞을 다투어 내다 보았다.

그 여자가 앞에 나아가자 박어사는 얼른 일어서서 그여자의 손목을 꼭 잡고 끌어 올리면서 자기 곁에 앉혔다. 그제서야 그가 이 고을에서 물을 긷는 기생으로 못생기기로 유명한 춘심(春心)이란 것을 알고 사람들은 모두 깜짝 놀래었다. 박어사는 곁에 앉은 춘심의 등을 뚝뚝 두드리며 여러 사람과 소천금을 향하여

『참말 유정(有情)한 여자는 이 사람이다.』

하며 그가 자기를 처음 맞어준 이야기와 그가 옷을 장만하였다가 내놓던 이야기며 뒷 뜰에 제단(祭壇)을 뫃아놓고 기도를 드리던 전후 이야기를 하였다.

이런 말을 들은 모든 사람들은 다시금 춘심을 칭찬 안하는 사람이 없었다.

박어사는 다시 이방(吏房)을 불러

『내가 응당 춘심을 데려가야 도리에 옳은 일이지만 봉명사신(奉命使臣)의 몸으로 그러기는 어려운 일이니 특히 이곳에 남겨 두고 가거니와 춘심이는 승차를 시켜 행수(行首)를 맡기고 소천금은 강급을 시키어 춘심이가 하던 물긷는 일을 맡어 하여라.』

하여 기적(妓籍)에 분명히 올리게 하고 다시 호방에 명하여 특상으로 춘심에게 돈 삼백 냥을 내리었다.

박어사도 그 밤은 춘심이와 같이 자고 이튿날 다시 거지 복색을 하고 어디론지 가 버렸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