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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야담 사화 전집 (차상찬)/상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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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사사(相思蛇)

동물 중에 뱀(蛇[사])이란 이야기만 하여도 징글징글 하여 누구나 듣기를 재미스럽지 못하게 여긴다.

그러나 내가 이야기 하려고 하는 것은 보통의 뱀이 아니요 괴담 중에도 괴담인 「상사뱀」의 이야기 이다.

상사뱀 이란 옛부터 누구나 큰 의문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옛날 일은 그만 두고 과학이 발달 되었다는 오늘에 있어도 신문지상에 가끔 「상사뱀」 이야기가 나는 것을 보면 필경은 과학으로 해석하지 못할 그 무슨 불가사의(不可思議)의 일이 있는 것이다. 나는 거기에 대한 특별한 연구가 없기 때문에 가부간 단안은 내리지 못하지만 다만 옛사람의 기록에 있는 그 사실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이야기 할려는 것은 소위 도청 도설의 근거없는 황당한 말이 아니요 이조초(李朝初)에 문장으로 유명한 성현(成俔)씨의 저술한 용재총화(傭齋叢話)에 기록되어 있는 사실을 그대로 이야기하는 것이니 사실은 비록 허탄한듯 하나 그의 기록에 의하면 당시의 실제 인물이 친히 당한 일을 그대로 기록한 것이었다는 것인 즉이것이 보통 전설보다는 비교적 확실성이 있는 사실담이라 할 수 있다.

다만 한가지 유감된 것은 그것이 요새 일이 아니요 몇백 년전의 이야기인 것이다.

이조 세조 시대(李朝世祖時代) 재상(宰相)중 홍씨(洪氏)라는 분이 있었는데 그가 아직 벼슬도 못하고 미천하게 지내던 때의 이야기다.

어떤 곳을 여행하다가 소낙비를 맞나 비를 피하여 한 동리(洞里)안으로 들어가니 산밑에 작은 암자가 있음을 반갑게 여겨 그곳을 찾아간즉 그 암자는 인적이 아주 고요하고 다만 십칠팔세쯤 된 젊은 여승(女僧)이 하나 있는데 얼굴이 천하의 절색이었다.

그는 이상하게 여겨 그에게 물어 말하되

『이와같은 산중에 어찌하여 젊은 여승만이 혼자 있소.』

한즉 그 여승은 대답하기를

『나는 본래 어떤 양가집 딸로서 불행히 과부가 되어 이 암자에서 승이 되어 동무 여승 세 사람과 같이 있는 중인데 먹을것이 넉넉지 못하여 동무승 두 사람은 촌으로 동냥을 하러가고 자기만 혼자 집을 지키고 있나이다.』

하고 말하였다.

말이 오고 가는 사이에 두 청춘 남녀의 사이에는 사랑의 불꽃이 타오르기 시작하여 바로 그날밤에 아름다운 인연을 맺었다.

그 이튿날이 되어 홍씨가 되 떠나게 되매 그는 그 여승에게 약속하기를 모년 모월에 반드시 너를 데려다가 자기집에 두겠다하니 그 여승은 그 말을 철석 같이 믿고 밤낮으로 날자를 꼽아가며 그가 돌아 오길 기다렸다.

그러나 변하기 쉬운 것은 남자의 마음이라 그 당시 그 여자에게 굳은 약속을 하였지만 자연 날이 지나고 보니 어찌 그대로 실행할 수 있으리요. 태연무심하고 그 약속한 날자에 가지를 않았다.

그러나 여승은 날마다 홍씨가 오기를 기다리다가 마침내 오지 않으므로 생각다 못해 나중에는 상사병이 들어서 만고의 원한을 품고 애달픈 청춘의 몸으로 가련하게 죽고 말았다.

홍씨는 그 여승이 죽은 줄도 모르고 있다가 그 뒤 남방절도사(南方節度使)가 되어 임지(任地)에 가서 있었는데 하루는 잠을 자려니까 별안간 도마뱀 같은 적은 뱀이 요(褥) 속으로 들어오므로 통인에게 명하여 밖으로 내다 버리게 하였더니 통인이 잘못하여 그만 죽여 버렸다.

그 이튿날 그보다 큰 뱀이 또 들어오므로 통인이 역시 잡아 죽였더니 그 다음 날부터는 난데없는 뱀들이 잇달아 자꾸 들어와서 잡아 죽여도 또 있고 자꾸 죽여도 또 있으므로 홍씨는 그제야 그것이 전날 관계한 여승의 저주인 줄 깨달았다.

그는 더욱 무서워하여 좌우에다 무사를 위시하여 땅군을 두고 뱀이 들어오는 족족 모두 잡아 죽이니 그 뱀은 죽을수록 더 생기고 날마다 커서 처음엔 손가락같이 가늘던 뱀이 나중에는 기둥과 같이 커져서 아무리 칼과 창으로 막아도 틈을 타서 자꾸 가까이 들어왔다.

홍씨는 다시 뜰에다 큰 화로불을 놓고 뱀이 오는 족족 모두 태워 죽여도 자꾸 오는지라 하루는 자기 속옷을 벗어서 던지니 그뱀은 슬며시 들어가므로 그는 그것을 독 속에다 넣어두고 밤이면 침실로 끌어들이고 낮이면 벽장 속에다 넣어두며, 지방으로 출장 갈 때에는 그것을 독에다 넣고 하인에게 짊어지고 따라다니게 하니 세상사람들이 모두 이상하게 여겼다.

그러나 그는 날이 갈수록 정신이 점점 소모되고 얼굴이 자꾸 말라 얼마 안 가서 필경은 병이 들어 죽고 말았다.

그것 뿐만 아니라 그와 비슷한 사실이 또하나 있으니 그것은 바로 충청도 임천(忠淸道林川)에서 생긴 일이다.

충청남도 임천(忠南林川) 땅에는 성주산(聖住山)이라고 하는 명산이 있고, 그 산에는 또 보광사(普光寺)라는 옛절이 있으니 수석이 기려하고 경개가 절승(絶勝)하여 충남의 명승지로 이름이 났었다.

사시에 구경하러 오는 사람이 많은 것은 물론이요 공부하는 승려(僧侶)도 또한 많았다.

지금으로부터 백년 전에 그 절에는 어떤 도승(道僧) 하나가 있었는데 그 도승은 공부도 상당하거니와 재산도 많아서 수령방백(守令方伯) 과도 친밀한 관계가 많았다.

그러한 세력을 믿고 중의 자유가 조금도 없는 그 시대이건만 마음대로 먹고 계집질도 하였다.

하루는 촌가를 지나가다가 어떤 양가(良家)집 처녀의 아름다움을 보고 욕심이 불같이 나서 백방으로 운동을 하여 자기의 처를 삼았었다.

그러나 아무리 세력이 있을지라도 세상 사람의 이목이 무서웠으므로 낮에는 못가다가 밤에만 꼭 갔었다.

몇달을 지나니 비록 승속은 다를지라도 소위 연애에는 차별이 없으므로 피차에 정이 깊이 들어서 일년 동안을 하루같이 따뜻한 사랑속에서 지냈다.

그러나 호사다마라고 그 중은 우연히 병이 들어 신음하다가 이 세상을 영원히 이별하고 정계(淨界)로 돌아갔었다.

그리한 후 그 여자는 자기가 사랑하던 중이 죽으매 식음을 전폐하고 그 시체 앞에 눈물을 흘리며 애통하였다.

그렇게 여러 날을 밤낮으로 지내고 있던 중 별안간 그 중의 죽은 시체가 꿈틀 하더니 커다란 뱀이 되었다.

그 여자는 깜짝 놀라 도망하려고 하니까 그 뱀은 다정스럽게 그 여자의 품속으로 들어왔다.

그리하여 그 여자는 역시 그 뱀을 사랑하기를 중과 같이 하여 밥도 주고 물도 주며 낮이면 항아리 속에다 넣어두고 밤이면 이불속에다 넣고 같이 잤었다. 그 뱀은 대가리를 항상 그 여자의 가슴에다 대고 있고 꽁지는 허리에 칭칭 감고 조금도 떨어지지 않았다.

이와같이 하루 이틀 지내니 그 소문이 차차 전파되어 그 고을 군수까지 알게 되었다.

그때 그 고을의 군수는 바로 용재총화(慵齋叢話)를 지은 성현(成俔)씨의 장인되던 안모(安某)라 하는데 본래 그 중과 친한 사람이었다.

그러하다는 말을 듣고 퍽도 이상히 여기고 또 요괴(妖怪)한 일이라 생각하고 즉시 사람을 보내어 그 여자로 하여금 그 뱀 담은 항아리를 가지고 오게 하였었다.

군수의 명령을 어기지 못하여 그 뱀 담은 항아리를 머리에 이고 왔다.

군수는 소리를 질러 꾸짖어 말하되

『도승으로 일개 여자에게 반하여 뱀이 되는 것이 어찌 도승에게 당한 일이냐.』

고 하니 그 뱀은 대단히 무서워하는 듯이 머리를 숙이고 항아리 속으로 들어갔다.

군수는 이에 관속으로 하여금 슬며시 조그만 함을 만들게 하고 그 여자를 시켜서 말하되

『사또께서 대사를 위하여 새 함을 만들어 놓았으니 그 속으로 들어가서 편히 있으라.』

하고 치마자락을 뜯어서 함 속에 깔으니 그 뱀은 스스로 함 속으로 기어 들어갔다.

군수는 즉시 힘이 센 관속을 불러 그 함 뚜껑을 닫고 못으로 꽝꽝 치니 함속에 있는 뱀이 한참 동안 껑충껑충 뛰다가 그만 죽어 버렸다.

군수는 다시 명정(銘旌)을 만들어 그 중의 이름을 쓰고 그 중이 있던 보광사(普光寺)의 승려 수십여인으로 하여금 북과 꽹쇠를 치며 염불을 하며 뒤를 따르게 하고 강물 속에다 던져 버렸다.

그 뒤에 그 여자도 또한 아무리 병없이 잘 살다가 늙어 죽었다고 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