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이동

한국 야담 사화 전집 (차상찬)/안평대군의 실연

위키문헌 ― 우리 모두의 도서관.
안평대군(安平大君)의 실연(失戀)

안평대군(安平大君)은 세종대왕(世宗大王)의 셋째 아들이오, 별호(別號)를 비해당(匪懈堂)이라 하였다.

용모 풍채가 일세를 압도함은 물론이고 풍류 호방한 중에도 명필(名筆)로 세상에 들리어 당시에 서로 교류하는 이가 일대 명사 아닌 이가 없었다.

때마침 평양(平壤)에 기생(妓生) 하나가 있는데 선연한 태도라든가 아리따운 얼굴이 물색으로 제일 치는 평양에서 둘도 없을 만하고 겸하여 가곡(歌曲)에 능난한 것이며 시문서화(詩文書畵)에 뛰어나는 재주가 있어 뭇 남자가 한 번만 대하면 모두 실혼락백(失魂落魄)을 할 만하였다.

천성이 너무 교만하여 어떤 남자에게든지 몸을 허락하지 않으며 감사 병사 수령(守令)들의 권세(權勢)로도 그 기생의 잡은 바 뜻을 빼앗지를 못하였다.

그때에 안평대군이 그 기생의 이름을 듣고 한번 평양에 가서 연광정(練光亭) 구경도 하고 부벽루(浮碧樓) 놀이도 하여 우리나라 제일 강산의 구경을 샅샅히 하고자 별렀으니, 그것은 평양 구경보다도 그 핑계로 그 기생을 보고자 하는 생각이 더욱 간절한 탓이다.

하루는 문밖에 최서방(崔[최])이란 사람이 와 명함을 드리고 뵈옵기를 청하였다.

안평대군은 들어오라 하여 서로 상면하니 나이 스물이 될락 말락하고 용모도 단아하며 행동도 얌전하여 여러모로 뜯어 보아도 참 깎은 선비였다.

안평대군은 매우 기특히 여기어 서로 수작이 오고 가게 되었다.

최서방은

『대감의 필명(筆名)을 우뢰 같이 들은지 오래오니 한번 뵈옵고저 합니다.』

고 청한다.

안평대군은 청지기를 시켜 문갑 속에 두었던 간지 두루마리 한 축을 내다놓고 글씨를 몇 줄을 쓴 후

『그대가 이미 글씨의 잘되고 못됨을 아는 모양이니 한번 써보게.』

하고 최서방에게 말했다.

『잘 쓰지를 못합니다.』

하고 몇 줄을 써놓았다.

글씨의 획은 매우 단정하나 별 맛은 없다.

그러자 최서방은 하직하고 물러 갔는데 대군이 다시 써보려고 최서방이 써 놓은 종이를 떼어 놓으니 그 밑에 폭에도 글자 획과 글자 모양이 써진 폭과 같이 뚜렷하게 있어 사오폭을 연하여 떼어도 한판에 박은 것 같다.

대군은 비로소 신필(神筆)인 줄 알고 깜짝 놀랐다.

수일이 지나 최서방은 안평대군을 다시 찾아 왔거늘 대군은 반가이 마루 아래까지 내려가 맞이하여 손을 잡고

『그대는 참 천하 명필일세, 내가 그대에게 배우기를 청하네.』

하였다.

최서방은

『대감, 당세에 생이 어찌 글을 쓴다는 말을 들을 수 있겠읍니까. 근일 듣자온즉 대감께서 장차 평양 구경을 하신다 하오니 생도 뒤를 쫓아 구경을 하였으면 좋겠읍니다.』

하고 청한다.

안평대군은

『그러세!』

하고 좋은 낯으로 허락하고 곧 나귀 한 필을 구하여서 최서방을 주고 떠나려 한즉 최서방은 사양하고 집신을 신고 지팽이 하나만 벗하여 따라 갔다.

혹 앞서기도 하고 뒤서기도 하나 밤이면 반드시 한 사처에 들어 글이나 글씨 이야기도 하고 산천경개의 좋고 그른 것과 옛과 이제의 인물도 평론하며 서로 여행의 고달픔을 잊을 수가 있었다.

평양감영에 이르고 보니 감히 누구의 행차라고 감사의 거행이 범연할수 있으랴!

큰 잔치(宴會[연회])를 연광정에 떡 버러지게 차리고 평안도에 수령들이란 모조리 모였으며 자기 고을에 있는 얼굴 곱고 소리 잘하는 기생은 하나도 빼지 않고 데리고 와서 넓으나 넓은 연광정이 꽃 속에 쌓인 듯하였다. 원래 풍채 좋은 안평대군이 그날 그 자리에서 더욱 모양을 냈고 더욱 풍류의 취미를 돋우니 엄전하고도 아리따운 태도며 재미스럽고도 무거운 말씨와 웃음이 온 좌석을 압도하여 모인 수령 백방이며 기생들까지도 모두 안평대군께로 눈동자가 몰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평일에 안평대군이 보고저 하여 찾아온 기생만이 별 차이 없는 듯이 단정히 앉아 별로 말도 안 하고 별로 웃지도 않으며 박은 듯이 앉은 자리에 앉았을 뿐이었다.

안평대군의 마음이야 다른 기생에게로 갈 수 있으랴!

뭇기생의 노래가 그처럼 질탕하고 뭇기생의 춤이 그처럼 번화하나 이 기생이 아무 말도 없고 아무 짓도 않는 데는 대군의 마음이 도리어 놀이에 흥을 붙이지 않고 가깝한 생각이 안 날 수 없었다.

자주 그 기생에게 눈 주며 정을 보내 보려고 하나 그 기생은 종시 시침을 떼고 여전히 박은 듯이 앉았을 뿐이니 자리에 가득한 사람이 다 무색하고 다 흥이 깨어질 지경이었다.

때에 노래는 지나고 모인 손들이 글귀를 지어 보려고 서로 읊조리고 서로 무릎을 치는 판이다.

안평대군과 동행하여온 최서방은 그때야 여러 날 행역에 다 낡은 웃옷 자락을 거듬거듬 집어들고 연광정 위로 성큼성큼 올라온다.

대군은 갑자기 일어나 최서방의 손을 잡고

『여기 모인 여러분이 마침 글지은 것이 있으니 그대도 또 한 차운(次韻)하는 것이 좋지 않는가』하고 청하였다.

최서방은 대군의 청을 듣자 좌중을 썩 ─ 한번 살피고 시축을 집어다 모조리 한번 읊더니 붓을 잡고 생각도 없이 일필 휘지하여

옥자골청추입죽 미인장습우과화
(玉子骨淸秋入竹 美人粧濕雨過花)

란 한 연구(聯句)를 써 놓았다.

말도 없고 웃지도 않아 안평대군의 마음을 조리던 기생이 최서방의 쓰는 글을 살짝 보더니 곧 자리를 옮겨 최서방 곁으로 와서 먹을 갈며 그제야 대군께

『이 소년 서방님의 글재주가 이렇듯 높으심을 뵈오니 음율(音律)에도 응당 생소치 않으실지라 첩과 한번 화답하여 부르기를 허락하여 주시면 좋겠읍니다』 하고 청한다.

대군은 좋다고 허락하였다.

다른 손들은 일변 의심하며 재미 없이 여기었다.

그 기생은 옥같은 손을 놀리어 장단을 치며 노래를 부르고 최서방도 또한 사양없이 거문고를 당기어 화답한다.

노래소리는 애원(哀怨)하여 하소연하는 듯하고 거문고 소리는 청아(淸雅)하여 반기듯 하였다.

두 소리가 합하여 가던 구름을 머무르는 듯하고, 다만 나머지 소리가 대들보에 오래도록 들리어 있으니 듣는 사람들이 넋을 잃어 쳐다보고 얼굴 빛이 도리어 없다.

최서방은 여러 손들의 얼굴 빛이 좋지 않음을 살피고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생이 여기까지 대감을 모시고 따라온 것은 평양경치를 두루 보고 연광정 노래나 한번 질탕히 할랴고 한 것인데 이미 평생의 생각하던바 원을 다 이루었으니 대감의 신세가 적지 않습니다. 돌아 갈길이 바빠 돌아가실 때 모시고 갈 수 없으니 먼저 물러 가기를 청하나이다.』

하고 뒤도 안돌아보고 도로 성큼성큼 연광정 아래로 내려갔다.

뒤 미쳐 그 기생도 이내 일어나 상을 찡그리며

『첩이 그전부터 심복의 병이 있사온데 오래 찬 마루에 모시고 앉았더니 그 병이 다시 발작하여 몸이 심히 불편하오므로 먼저 대단 황송하오나 물러가고자 하옵니다.』

하고 안평대군께 하직하고 급한 걸음으로 치맛자락을 걷어쥐고 최서방의 뒤를 총총히 따랐다. 평생에 그 기생과 한번 즐겨보려고 오백 오십리를 멀다 안 하고 평양까지 와서 전후 기구를 다 부르고 노리를 차린 안평대군이 생각하였던 기생이 딴 사람에게 정이 끌리어 따라감을 보고 형용키 어려운 생각이 가슴속에 안 돌 수 없었다.

대군은 얼굴을 붉으락 푸르락하고 기생과 최서방이 가는 곳만 바라보고 있었다. 최서방의 발자국이 부벽루 위까지 오르자 홀연 사라져 다시 보이지 않고 그 기생은 거기까지 앞서 온 최서방의 자취를 찾다 찾을 수 없으니까 부벽루 밑 층암절벽에 몸을 굴리어 고만 세상을 등졌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