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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동염사/가산의기 연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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嘉山 (가산) 義妓 (의기) 蓮紅 (연홍)

연홍(蓮紅)은 순조 때(純祖時) 가산관기(嘉山官妓)였다. 처음 이름은 운랑(雲娘)이니 일찌기 군수 정긔(郡守 鄭蓍)의 사랑을 받아서 항상 군아(郡衙)에 출입을 하였다.

그러자 순조 신미년 겨울에(純祖 辛未年 冬) 홍경래(洪景來)의 난리가 일어나 홍군이 장차 밤을 타서 군아를 습격하려고 계획을 하고 있었으나 관군 측에서 아직도 그 사실을 알지 못하고 그대로 있었다. 연홍은 어느 편으로 그 음모 계획을 알고 비밀히 군아에 들어가서 정군수에게 고하니 군수는 연홍더러 말하되 나는 나라의 사명을 가지고 있은 즉 이곳에 있다가 죽는 것이 당연하나 너는 부질없이 죽을 필요가 없은즉 속히 피하여 가라 하고 연홍을 재촉하여 보낸 뒤에 관군을 데리고 홍군을 방비하다가 세궁역진하여 정군수와 그 의 부친 정로(父親 鄭魯), 그의 아우 정신(鄭藎)이 일시에 홍군에게 피패하였다. 그때에 연홍의 집은 군아와 겨우 한 울타리를 격하여 가까이 있었다. 일반의 인민들은 모두 도망하여 피난을 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대개가 홍군에게 가담하고 군수 부자의 시체는 수습할 사람조차 없는데 유독 연홍만은 그렇지 않고 홀로 집을 지키고 있다가 밤중에 홍군이 물러간 틈을 타서 군아로 달려가 본즉 군수의 아우는 비록 중상을 당했으나 아직까지 생명이 남아 있어서 신음하고 있었다. 연홍은 자기의 손으로 유혈이 낭자하는 그를 업어다가 집에 뉘우고 친절히 간호하여 생명을 건지고 또 아인 박씨(衙人 朴氏)와 같이 자기 집 가산을 다 털어서 결사대(決死隊)를 모와 그 집을 지키게 하고 정군수 부자의 시체를 수습하여 매장하였다.

그런지 얼마 뒤에 관군이 와서 그들의 호상을 하여 서울로 돌아오니 연홍은 그의 상례를 따라서 평양 대동강까지 와서 크게 통곡을 하고 돌아가니 그때 조정에서 크게 가상히 여겨 그를 기적에서 제면하고 전토(田土)를 주어 그 몸을 속신하였다. 그때 정원용(鄭相 元容)은 연홍을 위하여 시(詩)를 지어주니 당시 사대부 중에 그 시를 화답하여 지은 것이 상자에 가득할 만치 많았다. 그 뒤 헌종 병오년(憲宗 丙午)에 연홍이 노병으로 죽으니 평양의 부로들은 그의 의리를 생각하고 계월향의 사당인 의렬사(桂月香 祠堂 義烈祠)에다 영정을 같이 배설(配設)하자고 발론까지 하였다. (兩枕談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