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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동염사/가실 처 설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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嘉實 (가실) () 薛氏 (설씨)

신라 진평왕(眞平王) 때에 율리(栗里)라는 동리에 사는 빈한한 설(薛)씨의 집에 한 처녀가 있었으니 그는 집안은 비록 가난하고 천하여도 얼굴이 아름답고 단정하므로 보는 이마다 그를 칭탄ㅎ지 아니하는 이가 없었다.

그때 그의 늙은 아버지 설노인은 정곡(正谷)이란 곳으로 수자리를 살러 가야만 하게 되었다. 그러나 딸은 참아 늙고 병든 아버지를 멀리 보내드리기가 어려웠다.

더구나 여자의 몸이라 함께 모시고 갈 수도 없으므로 혼자 어쩔 줄 모르고 조그마한 어린 가슴을 태우고 있었다.

이 소문을 들은 사람들 중에 가실(嘉實)이라는 젊은 사나이가 있었으니 그는 차량부(沙梁部)에 사는 총각으로 일찍부터 이 설처녀를 몹시도 사랑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가실은 노인의 집을 찾아가서 자기가 자리를 대신 가겠노라고 말하였다.

이 한마디에 설처녀는 무론 노인도 기쁨을 참지 못하였다. 그래서 설노인은 가실에게 돌아오는 날에는 자기 딸로써 짝을 지어 주겠다고 약속하였다.

설처녀는 가실에게 무한한 감사의 말을 하며 거울 하나를 가져다 두 조각에 내어 한쪽은 자기 품에 넣고 다른 한 조각은 가실에게 주면서 다시 말을 하되

『이것으로 언약의 표를 삼아 뒷날 만나는 때에 서로 맞추어 보기로 합시다』 하였다.

가실은 한 손으로 거울 쪽을 받아 넣으며 한 손으로 타고 왔던 말(馬)을 설처녀에게 주며

『이 말은 천하의 양마(良馬)라 이후에 반드시 쓰일 날이 있을 것이요. 지금은 내가 걸어갈 테니 그동안 이 말을 잘 먹여 주오』

하고는 서로 작별하였다.

이렇게 두 사람이 나누인 뒤로 기약한 三년 세월은 어느덧 다 지나고 또 삼년이 더 지나도록 와야 할 가실은 돌아오지 아니한다.

그동안에 설처녀는 그 가슴이 얼마나 탔으랴. 그러나 그는 조금도 그 뜻을 변하지 않고 언제까지든 돌아오기를 기다리려 하였다.

그러나 그 아버지는 돌아오지 않는 가실을 기다려서 자기 딸을 헛되히 늙히고 싶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여나 강제로 다른 곳에 시집 보내기로 결정하였다.

새로 정한 그 잔치날은 왔다. 설처녀는 울음과 말로 몇 十번이나 그 아버지에게 간청하였으나 일이 필경 이렇게 되고 말므로 할 수 없이 도망이나 해 나가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것도 뜻을 이루기가 어려워 애끊이는 아픔을 참지 못하여 뒷곁에 있는 마구로 갔다. 가실의 맡겨 두고 간 말을 쓰다듬으며

『이놈아 네 주인은 어이하여 못 오느냐』

하고 눈물을 흘리며 울었다

이때 문안으로 어떠한 사나이가 하나 뛰어 들어왔다. 그의 옷은 모두 해어졌다. 그 얼굴은 몹시도 여위었다. 다른 사람들도 그가 누군지 알아볼 수가 없을 뿐 아니라 처녀도 역시 알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가실이었다. 수자리 六년에 갖은 풍상을 겪고 돌아온 가실이었다.

『나를 모르오? 나는 가실이요. 정곡으로 수자리 살러 갔던 가실이요』

하면서 떠나던 날 정표로 갈라 가졌던 거울 쪽을 내어 설처녀에게 준다.

설처녀는 그 거울을 받아 쥐고 너무나 기쁘고 놀라 소리치며 서로 붙들고 어쩔 줄을 몰랐다.

설노인도 면목은 없는 채로 반가히 맞아들이고 다시 좋은 날을 가려 언약한 두 사람의 잔치를 이루었다.

뒷날 역사상에 이름난 여러 사람들이 다 이 설씨 처녀의 신의 있는 사랑을 칭송하였다. 특히 고려 이규보(李奎報) 선생의 파경합(破境合)이란 긴 시는 세상에 유명한 것이다. —(東國通鑑)—[1]

  1. 삼국사기에도 실려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