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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동염사/강남덕의 모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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江南德 (강남덕)母親 (모친)

강남덕(江南德)이라 하면 이름부터 이상스럽게 생각할 것입니다. 이 강남덕이란 여자의 어머니는 선조대왕 때(宣祖大王時) 서울의 서강(西江)에서 뱃사공 노릇을 하던 황봉(黃鳳)이란 사람의 처입니다. 그들 부부는 원래에 정의가 남 유달리 좋아서 항상 서로 떨어지기가 어려웠지마는 가세가 빈한한 까닭에 잠실(蠶室)이란 동리에 살면서 항상 해상으로 다니며 소금(鹽)과 어물 장사를 하여 생활을 유지하였읍니다. 한번은 생선 배를 타고 서해 바다로 가다가 중도에서 폭풍을 만나 여러 배가 모두 전복되고 그의 배도 또한 행방이 불명하니 그의 처는 그가 꼭 바다에 빠져 죽은 줄만 알고 극히 애통을 하며 그날부터 상복을 입고 삼년 동안을 지성스럽게 조석상식을 받들었읍니다. 웬만한 여자 같으면 삼년상도 치르기 전에 다른 곳으로 개가를 하여 가겠지마는 평소부터 절개가 놀라운 그 여자는 삼년상을 치른 뒤에도 굳세게 절개를 지키고 광주리 장사를 하여 그날 그날의 생활을 하였읍니다. 그렇게 몇 해를 지냈더니 하루는 뜻밖에 어떤 사람이 찾아왔는데 그는 무슨 일로 중국(中國)에 갔다가 우연히 황봉(黃鳳)이를 만나서 오는 길에 그의 편지를 가지고 왔다 하고 품속에서 편지 한 장을 전하여 주었읍니다. 그 여자는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을 잘못하고 반갑게 그 편지를 뜯어보니 그 편지는 과연 자기 남편 황봉의 편지인데 모년 모월 모일에 바다에서 폭풍을 만나 모진 풍랑에 한없이 떠나가다가 우연히 중국 모 지방에 닿게 되어 다행히 죽지 않고 남의 집에 가서 고용살이를 하고 있다고 하였읍니다. 그 여자는 처음에 그 남편이 죽은 줄만 알고 애통을 하다가 그러한 편지를 보니 그 얼마나 반가웠겠읍니까? 당장에 맹서하기를 내가 비록 거지가 되어 빌어먹으며 가다가 중도에서 거꾸러져 죽을지라도 반드시 남편을 찾아가겠다고 하니 동리 사람들이 모두 말리기를 중국이 조선에서 거리도 멀거니와 국경의 경계가 심하여 그렇게 용이하게 가기가 어려울 뿐 아니라 언어와 인정 풍속이 다 다른 만리타국에 연약한 여자의 몸으로 혼자 간다면 여러 가지가 모두 위험하여 그릇을 이루지도 못하고 잘못하면 노상에서 남모르는 죽음을 하기가 쉬울 터이니 부디부디 가지 말라고 하였읍니다. 그러나 그는 도무지 듣지 않고 혈혈단신으로 주야 도보를 하여 의주(義州)까지 가 가지고 다시 밤을 타서 남모르게 압록강(鴨綠江)을 건너 갔읍니다. 하루 이틀 내지 몇 달을 걸어서 가며 혹은 거지 노릇도 하고 혹은 과객 노릇도 하니 그 고생된 일이야 어찌 형언할 수가 있겠읍니까 발바닥은 모두 부릍어서 열 발가락이 마치 콩과질 모양으로 부풀고 의복은 남루하여 어찌 보면 귀신같이도 보게 되었읍니다. 그러나 그는 조금도 곤난한 것을 생각지 않고 만리부인 연하사오 삼종의중 일신경—萬里婦人 緣何事오 三從義重 一身輕—이란 옛 시 그대로 천신만고를 다 참으며 그여히 자기 남편이 있는 강남의 어느 지방까지 갔었읍니다. 그리하여 그곳에서 자기 남편을 반가히 만나보고 같이 손목을 잡고 고국으로 돌아오게 되었읍니다. 그들 부부는 그렇게 돌아오는 길에 중도에서 아이를 배어 가지고 자기의 집으로 돌아오자 얼마 아니하여 옥녀를 낳았읍니다. 그 여자는 그 아이를 자기가 남편을 찾아 강남까지 간 덕분에 낳았다고 하여 이름짓기를 강남덕이라고 하니 그때 그 동리 사람들은 그의 열렬한 절개를 경복하여 이름도 부르지 않고 그저 강남덕의 어머니라고 하였읍니다. 그는 비록 무식한 뱃사공의 아내이나마 그 얼마나 열렬하고 갸륵합니까. 지금 세상에 소위 교육을 받은 여성이니 무슨 주의를 가진 여자이니 또는 신성한 동지의 연애결혼이니 하고 평소에 뒤떠들다가 자기 남편이 생활이 다소 곤난하거나 또는 무슨 사건으로 잠시 유치장에만 들어가도 벌써 다른 남자에게 정을 옮기고 이혼문제를 일으키는 여자에 비한다면 참으로 하늘과 땅의 차이와 같아서 가히 비하여 말할 여지도 없읍니다. (於于野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