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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동염사/고려태조 왕후 유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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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麗 (고려) 太祖 (태조) 王后 (왕후) 柳氏 (유씨)

고려 태조의 왕후 신혜왕후 유씨(高麗 太祖의 王后 神惠王后 柳氏)는 정주 부호 유천궁(貞州 富豪 柳天弓)의 딸이다. 태조가 일찌기 남정(南征)을 하러 가는 길에 정주(貞州=今 豊德)에 이르니 때는 마침 여름철이라 일기가 매우 더우므로 태조가 길가의 수양버들에다 말을 매어놓고 잠시 땀을 드리고 있었더니 마침 어떤 처녀가 그 버드나무 밑 우물에 와서 물을 길고 있는데 인물이 매우 비범하였다. 태조는 일방으로 호기심도 있고 또 목도 마르고 하여 그 처녀에게 물을 한 그릇 청하니 그녀는 물 길던 바가지를 깨끗이 씻어서 물을 한 박 가득히 뜨더니 그 위에다 다시 버들잎을 따서 넣고 공손히 갖다가 주었다. 태조는 목이 마른 판에 그 물 한 박을 시원하게 다 받아 마셨다. 처음에는 아무 생각이 없이 그저 감사하다는 마음만 가지고 물을 마셨으나 나중에 물을 다 마시고 생각하니 그 처녀가 물박에다 버들잎을 넣어주는 것이 퍽 괴이하여 그 뜻을 물었다.

『녜 황송합니다 그것은 다른 까닭이 아니올시다 잠깐 뵈온 즉 장군께서 이 더운 때에 말을 타시고 먼 곳을 달려오신 모양이온데 급하게 물을 잡수면 혹여 더위가 드실가 염려하여 일부러 물에다 버들잎을 띄워 그 잎새를 입으로 부르시는 동안에 다소간 숨을 쉬시도록 하라고 그리하였읍니다』

태조는 그 처녀의 말을 듣고 기특히 여겨 누구의 딸인 것을 물으니 그는 그곳에서 부호로 유명한 유천궁의 딸이라 하고 자기의 집에 가서 잠시 쉬어가기를 청한다. 태조는 그 처녀를 따라서 그 집에 들어가 하루밤을 자고 갔다. 그 뒤에 태조는 군무(軍務)에 분주한 탓으로 그 처녀의 집을 다시 한 번도 가지 못하였으나 그 처녀는 태조를 잊어버리지 않고 부모가 다른 곳으로 시집을 보내려 하여도 엄절히 거절하고 머리를 깎고 여승(女僧)이 되니 태조가 그의 소문을 듣고 크게 가상하게 생각하여 불러들여 부인을 삼으니 그가 곧 뒷날에 신혜왕후(神惠王后)다. 그 뒤에 태조는 태봉왕 궁예(泰封王 弓裔)의 부하로서 군마의 중직(軍馬 重職)을 맡고 있었는데 궁예의 정치가 날로 굴러가고 하는 일이 모두 횡포 무도하니 인심이 궁예를 떠나서 태조에게로 돌아오게 되었다. 그때에 배현경 홍유(裵玄慶, 洪儒) 등 여러 사람이 궁예에게 반기를 들고 장차 태조를 추대하려고 태조를 찾아가서 그 계획을 비밀히 의논하고저 할 때 그 부인이 있는 것을 보고 기피하여 말을 잘못하니 태조가 그 부인을 눈찟하여 뒷밭에 가서 참외(眞)를 따오게 하였다. 그러나 그 눈치를 먼저 알아차린 그 부인은 여러 사람 보기에 참외 따러 밖으로 나가는 척하고 방장 뒤에 숨어서 그들의 하는 이야기를 엿듣다가 태조가 여러 사람의 추대하는 것을 굳이 거절하는 것을 보고 돌연히 뛰어나와서 말하되 자고로 의기를 들어서 포악한 것을 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지금에 여러 장군이 의논하는 말을 들으면 나와 같은 무식한 여자라도 오히려 용기가 나고 분발하겠거던 하물며 대장부로 그같이 사양할 것이 무엇 있으리오 인심의 돌아가는 곳은 천심의 돌아가는 곳이니 어기지 못할 일이라 하고 자기의 손으로 갑옷을 들어서 태조를 입히고 즉시 거사하기를 청하니 여러 사람들이 모두 놀라면서도 그의 용기와 기개에 탄복하여 그 자리에서 태조를 왕으로 추대하고 궁예를 드리쳐서 고려국 창건(高麗 創建)의 대사업을 이루었다. 왕건 태조가 고려를 창건한 것은 다른 이의 공도 많지마는 그의 내조한 공이 더욱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