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동염사/안평대군 십궁희
- 安平大君의 十宮姬
이조 력대의 왕족 중에 제일 풍류 대군이요 제일의 호강한 분은 안평대군 이용(安平大君 李瑢)일 것이다. 그는 세종대왕의 제삼 왕자로 인물이 잘나고 풍채도 좋거니와 시문서화와 음악(詩文 書畵 音樂)을 능통치 못한 것이 없었다. 그는 나히 十三세부터 인왕산(仁旺山) 밑에 있는 수성궁(壽聖宮)에 거처하며 가진 호강을 다 하고 북문 밖에는 한적한 곳을 가려 정한 집 수십 간을 지여 놓고 무이정사(武夷精舍)라 이름하고 그 사랑을 비해당(匪懈堂)이라 하며 (이로 인하야 호도 비해당이라 하였다) 그 옆에는 단을 쌓고 이름하되 시단(詩壇)이라 하고 남호(南湖)에는 담담정(淡淡亭)이란 정자를 지여 놓고 그 정자에는 수만 권의 서적을 장치하야 날마다 명유 명사들과 교유하니 그의 이름이 건국을 풍미하였다.
그는 팔자가 그렇게 좋고 호강을 하느니만치 희첩이 퍽 많었는데 그중 저명한 것은 소위 수성궁 십궁희(壽聖宮 十宮姬)라 하는 소옥(小玉), 부용(芙蓉), 비취(翡翠), 옥녀(玉女), 금련(金蓮), 은섬(銀蟾), 비경(飛瓊), 자란(紫鸞), 운영(雲英), 보련(寶蓮) 등이였다. 그들은 얼굴도 모도 절대의 가인이어니와 궁에 들어온 뒤로 대군이 특별히 글공부를 시켜서 사서삼경이며 백가제자를 모도 능통하였었다. 하루는 안평대군이 여러 문사들을 모화 가지고 연회를 하는 중에 우연이 본즉 한 줄기의 푸른 연기(一縷靑姻)가 궁 안 나무(宮樹)에 둘려있다가 다시 흐터지며 일변성첩을 에워도 싸고 또 한편으로는 산비탈로 빗껴 그 형상이 하도 기이하고 좋와 뵘으로 그 연기를 두고 오언시 한 수(五言詩 一首)를 지여 여러 명사에게 화답하라 하였으나 모도 자기 뜻에 맞지 아니함으로 궁에 돌아와서 십궁희를 불러놓고 각각 한 수씩을 짓게 하였으니 이것이 유명한 소위 십궁희의 연시(十宮姬 姻詩)라는 것이다. 이것을 차례로 소개한다면
- 其一 小玉
和雨纖如織, 隨風繞入門, 依微深復淺, 不覺近黃昏
- 비올 때는 가는 깁 짠듯 하더니
- 바람 따러 문으로 돌아 드누나
- 깊었다 옅었다 아른거리니
- 어느듯 황혼이 가차워 온 듯
- 其二 芙蓉
飛空遙帶雨, 落地復爲雲, 近夕山光暗, 幽思問楚君
- 공중에 멀이 날어 비 띠우더니
- 땅으로 되떠러저 구름이 되네
- 저녁이 가차우자 산빛 어두니
- 초왕님 그리워 홀로 생각네
- —楚君은 楚懷王이니 陽臺에서 朝爲雲暮爲雨한다는 巫山仙女와 놀던 古事를 이름이다—
- 其三 翡翠
羃花蜂失路, 籠竹島迷巢, 黃昏成小雨, 窓外更蕭蕭
- 꽃 가리니 벌들은 길을 잃었고
- 대를 싸니 새들도 집 못 찾는다
- 황혼에 또다시 이슬비 되야
- 소르륵 소르륵 창밖에 온다
- 其四 玉女
蔽月輕紈細, 橫山翠帶長, 微風吹漸散, 猶濕小池塘
- 달빛을 가릴 때엔 고흔 깁 같고
- 산허리 뻐처서는 푸른 띠 되네
- 바람에 불리워서 헤젔다가도
- 또 다시 연못 우로 사리 우노나
- 其五 金蓮
山下寒烟積, 橫飛宮樹邊, 風吹自不定, 斜日滿蒼天
- 산 아래 차운 연기 쌓여 있더니
- 대궐 안 나무 개로 비껴 날는다
- 바람에 정처 없이 흔날리다가
- 석양에 왼 하늘을 다 덮는구나
- 其六 銀蟾
山谷繁陰起, 池塘繡影沈, 飛蹤無處覓, 落葉露珠留
- 산골엔 좋은 그늘 새로 생기고
- 연못엔 곤 그림자 잠겨 있구나
- 날은 자취 찾을 곳 바이 없고서
- 구슬 같은 이슬만 연잎에 있네
- 其七 飛瓊
小杏難成眼, 孤篁獨保魂, 輕陰暫見重, 日暮又黃昏
—(或書에는 孤篁獨保靑이라 하였으나 昏字와靑字는 韻이 틀닌다)
- 조고만 살구 낭건 눈을 못떠도
- 외로운 푸른 대습 넉 안 잃는다
- 가볍던 그늘도 묵어어 뵈니
- 잠간 새 날 저믄 황혼이 된다
- 其八 紫鸞
低向東門暗, 橫連高樹迷, 須臾急飛起, 後岳與前溪
- 낮게 가니 동문이 아득하더니
- 빗계 뜨니 큰 나무 히미하구나
- 잠간 새 빨르게 또 날아가니
- 뒷山이 아니면 앞개울일세
- 其九 雲英
遠望靑烟細, 佳人罷織紈, 臨風獨怊悵, 飛去落巫山
- 푸른 연기 멀리 보기 하도 고와서
- 비단 짜던 이뿐 여자 손을 떼누나
- 무심하게 또 날어서 무산을 가니
- 바람결에 홀로 있어 한심만 짓네
- 其十 寶蓮
短壑淸陰裏, 長堤流水中, 獨令人世上, 忽作珠翠宮
- 쩌른 골은 새 맑은 그늘 속 되고
- 긴 언덕은 흘으는 물 복판일세
- 우리의 살고 있는 이 세상에다
- 홀연히 좋은 궁궐 지여 놓왔네
안평대군은 이상의 열 글을 보고 평하되 부용(芙蓉)의 시에 유사문초군(幽思問楚君)이란 구절이 제일 가상하다 하고 그 다음에 비취(翡翠)의 시는 옛날 소아(騷雅)에 비할 만하고 셋째 소옥(小玉)의 시는 의사가 표현하고 끝구가 여운이 있으니 두 시가 장원이라 하고 또 자란(紫鸞)의 시도 의사가 심원하고 그 외 다른 시도 험절이 없으나 유독 운영(雲英)의 시만이 사람을 생각하는 뜻이 있으니 당연이 죄를 줄 것이나 그 재조를 악게 용서한다고 하였다 한다. 그때에 문신으로 유명하던 성삼문(成三問)도 또한 그 시를 극구 층찬하며 여러 가지로 평한 일이 있었다.
─(雲英傳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