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동염사/암야의 소복 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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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女 性 怪 談—
暗夜 (암야)素服 (소복) 美人 (미인)

—片戀處女의 哀話—

지금으로부터 약 수백 년 전 강원도 횡성(江原道 橫城) 땅에는 백인옥(白仁玉)이라는 한 청년이 있었다. 그는 성명이 백인옥인 동시에 얼굴도 백옥 같고 마음도 또한 백옥 같이 고결한 청년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재조가 비상하여 무슨 글을 읽든지 일람첩기하여 불과 二十 세에 문장재사(文章才士)라는 칭찬을 듣게 되었다. 그러나 집이 빈한한 까닭에 서울에서 김판서(金判書)라는 어떤 재상의 집의 서생(書生)이 되었다. 그 김판서는 역시 백인옥의 얼굴과 재조를 기특히 여기고 매우 사랑하였다. 그럭저럭 수년을 지내서 다행이라 할지 불행이라 할지 그 판서의 집 이웃에는 황별감(黃別監)이란 사람이 새로 이사를 왔는데 당년 二八의 가인(佳人)인 외딸이 있었다. 그 처자의 있는 방은 바로 김판서 사랑과 마주 향해 서 있었다. 그 여자는 심심하면 담 구멍으로 김판서의 집을 보던 중 한번은 우연히 백인옥의 얼굴이 그 처녀의 눈에 비치었다. 그 처녀는 백씨를 한 번 보고 나매 흠모하는 생각이 자연히 솟아나와 날마다 밥 먹고 잠자는 때만 빼놓고는 담에 의지하여 백씨의 얼굴만 엿보기를 일삼았다. 그러나 진소위 외기러기 짝사랑으로 백인옥이야 어찌 그러한 사정을 알았으리요. 다만 그 처녀 혼자서만 청춘의 떠오르는 사랑의 불길을 태울 따름이었다. 원래에 짝사랑이 극도에 달하면 병도 나는 법이다. 그녀는 하루 이틀 갈쑤록 음식 맛이 없어지고 잠만 들면 백인옥의 용모, 풍채가 꿈속에서 왔다 갔다 하였다. 그리하여 몸이 점점 파리해지고 병이 들어 버렸다. 그 처녀의 부모는 그 사정은 알지도 못하고 다만 보통의 병으로만 알고 여러 가지 약을 썼으나 시속 노래에 『임 그리워 생긴 병은 임 보기 전에 못 낫는다』는 말과 같이 그녀의 병은 약만 가지고서는 치료하기가 도저히 어려워 날이 갈쑤록 병은 더욱 침중하여 회생할 가망이 없게 되었다. 그의 부모는 크게 걱정을 하는 중에도 그의 병세가 다른 병과는 다른 것을 보고 이상히 여겨서 최후로 자기 딸에게 그 자세한 말을 물어 보았드니 그 처녀도 처음에는 부끄러운 생각이 있는 까닭에 아무 말도 못하였지만 이렇게 죽게 된 경우에 이르러서는 부끄럼도 어디로 가고 솔직하게 사정을 말하였다. 그의 아버지는 무엇보다도 자기 사랑하는 딸의 생명을 위하여는 염치도 다 불고하고 김판서의 집을 찾아가서 백씨를 보고 그런 사정을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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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원래에 성질이 고결한 백인옥은 그의 말을 듣지 안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꾸짖고 책망하되

「편발의 처녀로 남자를 엿보고 병까지 나는 그런 비열한 여자는 같이 말하기도 더럽다」 하고 그대로 쫓아 보냈다. 그의 아버지는 낙심천만하여 어찌할 줄을 모르다가 다시 김판서의 집 어떤 문객(門客)에게 전후사정을 말하고 백씨를 권유ㅎ게 하였다. 그러나 백씨는 절대로 거절하였다. 그의 아버지는 할 수 없이 집으로 그냥 돌아가서 그 말을 전하였다.

병상에 누워서 긔식이 음음한 그 처녀는 비록 죽을찌라도 백씨를 한 번만 보았으면 여한(餘恨)이 없을 듯이 생각하고 자기의 부친이 백씨와 같이 오기만 고대다가 그의 부친이 그대로 와서 전하는 말을 듣고는 아주 낙망하여 한숨을 한참이나 쉬더니 만(萬古)의 원한(怨恨)을 품고 가련히도 그대로 죽어버렸다. 그의 부모는 애통에 애통을 더하여 일방으로 백인옥의 무정한 것을 원망하였다. 그러자— 그런 말이 어느덧 굴러서 김판서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김판서는 평소에 백인옥을 비록 사랑하였으나 그 말을 듣고 나서는 매우 좋지 않게 생각하고 백인옥을 불러 사실을 자서히 물어본 뒤에 크게 책망하되

『남자가 되어 일부러 오입도 하거든 한번만 몸을 허락하면 남의 생명을 구할 것을 무슨 지조가 그다지 장해서 앞길이 구만리 같은 청춘 처녀를 죽게 하였단 말인가 그대와 같은 사람은 인정이 없고 장래가 좋지 못한 사람이니까 나의 집에는 있지 말고 다른 곳으로 가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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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옥은 원래에 아무 죄 없고 마음이 고결한 터인 고로 비록 김판서에게 큰 책망을 듣고 축출을 당하였으나 조금도 양심에 부끄러움이 없이 마음이 태연자약(泰然自若)하여 그날로 그 집을 표연히 떠났다. 원래에 빈한한 백인옥은 나중에 노자 한 푼이 없으므로 이 집 저 집으로 돌아다니며 과객(過客) 노릇을 하였다. 그러나 괴상한 일은 그가 밥을 먹든지 잠을 자든지 할 때에는 공중에서 무슨 애원성(哀怨聲) 같은 소리가 들려서 밥도 잘 먹을 수 없고 잠도 잘 수가 없었다.

그 애원성은 물론 황씨 처녀의 죽은 원혼귀(怨魂鬼)의 소리다. 그것은 백씨(白氏)도 이미 짐작한 까닭에 그 소리를 들을 적마다 온몸에 소름이 끼치며 정신이 불쾌하였다. 그리하여 자연 몸도 파리해지고 잘못하면 병까지 날 지경에 이르렀다. 백인옥은 이리 생각 저리 생각하다가 최후에 결심하기를 에—라 강원도의 금강산은 천하명산으로 백귀(百鬼)가 감히 침입을 못한다 하니 그곳으로나 한 번 가서 죽든지 살든지 지내보겠다 하고 죽장망혜 단표자로 천리의 길을 멀다 아니하고 금강산을 찾아가서 유점사(楡岾寺)라는 유명한 절에서 유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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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은 과연 산수경치(山水景致)도 천하절승(天下絶勝)이거니와 승려(僧侶)가 또한 많아서 고적한 생각이 조금도 없고 전일에 매일 들리던 처녀귀(處女鬼)의 애원성(哀怨聲)도 없어지고 말았다. 그는 마음에 크게 기뻐하여 밥도 잘 먹고 잠도 잘 자며 날마다 글 읽기로 세월을 보냈다.

그 다음해 모춘 삼월(暮春 三月) 중순경이었다. 일란풍화(日暖風和)하여 만산에 두견화가 만발하고 이 산 저 산에서 접둥새가 구슬피 울어 여인 고객(旅人 弧客)의 만단수회(萬端愁懷)를 자아내는데 그는 홀연히 울적한 회포가 봄풀과 같이 일어나서 어찌할 줄을 모르다가 어떠한 젊은 승려와 같이 꽃구경을 나갔다. 이럭저럭 비로봉(毘盧峰) 꼭대기까지 발길이 이르러 두 사람은 바위에 앉아서 꽃도 보고 새소리도 들으며 자기의 신세타령(身勢打鈴)이 나오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백씨는 자기가 금강산까지 온 경로를 말하고 또 그 승려에게 중이 된 내력을 물어보았다. 그 중은 대답하기를

『저는 본래에 서울 어떤 양반의 집 상로(床奴)로 하루는 그 집 주인의 딸이 후원에서 꽃구경하는 것을 보고 하도 어여쁘기에 겁탈을 하려고 한 즉 그 처녀가 반항하고 듣지 아니하므로 그것이 발각되면 내가 죄를 질까 겁이 나서 그녀를 앵도 나무에다 목을 매어 죽이고는 도망을 하여 이곳까지 왔다가 중이 되었노라』

고 하였다.

백인옥은 그 말을 듣자 일시에 분심이 나서 에—라 이놈아 너 같은 놈은 의리도 염치도 없는 죽일 놈이라 하고 날랜 발길로 탁 차서 천장 만장(千丈 萬丈)이나 되는 구렁에다 떨어뜨려서 죽였다. 조금 있드니 공중에서 난데없는 처녀 머리가 하나 떨어지고 곡성이 진동하며 낭랑한 여자의 목소리로 현연히 말을 하되

「나는 서울 사는 어떤 양반의 집 처녀로 불행히 악마와 같은 상놈의 손에 죽은 뒤로 그 원수를 갚으려고 이곳까지 왔으나 어찌 갚을 도리가 없었드니 당신이 오늘 나의 원수를 갚아 주시니 천만 감사하거니와 당신은 천하에 의리(義理)가 크고 지조(志操)가 장한 양반임을 불구하고 요매의 황가 처녀가 당신을 연모(戀慕)하다가 자기가 비열하게 죽고는 도리어 당신을 원한(怨恨)하여 항상 당신을 괴롭게 하는 고로 내가 당신의 은혜를 갚기 위하여 그 처녀의 목을 베어 버렸으니 이후부터는 아무 걱정 말고 안심하기를 바란다』

하고 또 이어 말하되

『미구에 서울에서 과거(科擧)를 보일 터인즉 이곳에 있지 말고 속히 서울로 가는 것이 좋겠다』고 하며 또 경계하기를

『중로에서 소복한 여자를 만나거던 각별히 조심하라』

고 하였다. 백인옥은 일변으로 놀라기도 하고 일변으로 이상하게 생각하여 그 길로 절에 와서 행장을 수습한 뒤 서울을 향하여 길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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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럭저럭 며칠을 가다가 하루는 어떤 곳을 당도하니 해는 벌써 저물어서 넘어가고 가마귀 떼는 제 집을 찾아서 한 마리씩 두 마리씩 까르륵 까르륵 하고 날아든다. 일모도궁(日暮道窮)에 잘곳을 알지 못하여 길가에서 머뭇머뭇하고 있으려니까 건너편 산모루 조그마한 초가집 굴뚝에서 모룩모룩 나는 연기가 보였다. 그는 불청객이 자래격으로 그 집을 찾아갔었다. 그 집에는 아무도 없고 다만 소복담장한 미인 하나만 있어서 저녁밥을 짓고 있다.

그는 그 여자에게 하룻밤 자고가기를 청한즉 그 여자는 조금도 주저하는 기색이 없이 쾌히 승낙하였다. 그 집에는 방이라고는 다만 안방 한 간 뿐이었다. 그 여자는 白氏를 안방으로 인도한 후 저녁 밥상을 들여왔다. 두 사람은 한방에서 밥을 같이 먹었다. 비록 낯모르는 손이라도 그 여자는 퍽도 친절히 굴었다. 아무리 마음이 철석같이 굳다고 하던 백씨라도 거기에는 감복하지 아니할 수 없고 또 마음이 동하지 아니할 수 없었다. 그 여자는 저녁을 먹은 뒤에 반딧불 같은 등잔 앞에 앉아서 바느질을 하고 있었다. 그의 자태(變態)는 참으로 어여쁘다. 가을 물에 피인 부용(芙蓉)도 같고 봄바람에 웃는 모단과도 같았다. 아무리 먼 길에 피곤했던 몸이나 피곤한 것을 조금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그 여자를 한번 바라보고 또 한 번 바라볼쑤록 사랑의 불길이 가슴에서 타오르기를 시작하였다. 전일에 백옥 같은 그 고결한 마음도 고만 다 어디로 사라저 버리고 말았다. 그는 그 여자가 소년 과부인 줄은 알았다. 아무리 마음을 억제하려고 하여도 억제를 못하고 사마상여(司馬相如)가 탁문군(貞文君)을 검은고 곡조로 달래고 꾀이듯이 여러 가지의 감언이설(甘言利說)을 다하여 일야의 가연을 맺기를 청하였다. 그 여자는 절대로 거절하였다. 그러다가 최후에 그 여자는 지필을 가지고 약결연어금야(若結緣於今夜)—만일에 오늘밤에 인연을 맺으면—라는 여섯 자 글귀 하나를 써서 놓고 말하기를 당신이 이 글의 짝을 채우면 백년을 같이 해로하겠노라고 하였다. 백씨는 원래 문장재사인 까닭에 그것은 용이한 일이라 생각하고 즉시 짝을 채워 주었다. 그러나 몇 번째 짝을 채워도 모두가 맞지 않는다하고 최후로 말하되 당신이 만일 더 채울 수 없으면 내가 채울 터이니 다시는 내게 무슨 말을 하지 말라 하고 즉시에 쓰되 고랑곡어황천(故郞哭於黃線)—죽은 낭군이 황천에서 곡을 하리라—이라고 하였다. 백인옥은 그 글을 보고 크게 놀라고 마음이 일시에 회심이 되어 다시는 아무 말도 못 하고 그날 밤을 지내고 이튿날 아침에 떠났다. 그는 도중에서도 그 여자의 자태를 생각하고 또 그 여자의 굳은 정조를 탄복하여 머릿속에 깊이 인상이 박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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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지 며칠 뒤에 그는 서울에 도착하였다. 무엇보다도 이왕 자기가 있던 김판서 집을 먼저 찾아가보고 싶었다. 급기야에 찾아가서 본즉 불과 몇 해 지간의 일이지만 전일과는 아주 상전벽해로 변하였다. 그 즐비하던 가옥은 모두 헐어져서 퇴창파벽이 되고 득실득실하던 사람은 간곳이 없이 종용하며 다만 새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그는 만단 의아를 품고 사랑 대청으로 들어가 본즉 전일에 자기가 있던 방문도 적적히 닫쳐 있었다. 그는 늙은 하인에게 그 집 소식을 물은 하인은 울면서 말하기를

『김판서 댁은 수년 전에 악병이 유행할 때에 전 가족이 함몰하다시피 다 죽고 다만 늙은 김판서와 과부 며누님만 있으며 재산도 역시 탕진하였읍니다』

고 한다. 그도 역시 비창함을 이기지 못하여 눈물을 흘리며 사랑으로 들어가서 김판서를 만나 보았다. 김판서는 적적히 혼자 지내던 중에 전일에 자기의 아들과 같이 사랑하던 백인옥을 보더니 한편으로는 반가우며 한편으로는 자기 아들 생각이 나서 또한 눈물을 흘리고 울었다. 하인도 울고 주인도 울고 손도 울어 온 집안이 모두 눈물의 바다로 변하였다. 그는 그날 밤에 그 김판서 집에서 자게 되었다. 침방도 바로 김판서의 아들과 자기와 같이 글 읽던 방이었다. 그 방은 먼지가 케케 앉고 서적들이 이 구석 저 구석으로 산란하게 놓여있다. 참으로 나간 사람의 집과 같았다. 그 적적한 방에 홀로 앉았으매 여러 가지의 생각이 머릿속으로 떠올랐다. 전일에 주인의 집에서 쫓겨나던 생각과 황 처녀의 죽던 생각 자기가 금강산에 가 있던 생각 비로봉에서 귀신이 곡하던 생각 중로에서 소복담장한 여자의 집에서 자던 생각이 일시에 다 났다. 이 생각 저 생각 하다가 다시 책을 들고 보고 앉았다. 밤중쯤 되니까 안방 문이 사르르 열리며 어떤 소복단장한 미인이 그의 침방으로 들어왔다. 그는 주인 김판서(金判書)의 과부 며느리였다. 그는 여러 해 동안을 적적한 공방에서 가련한 생활을 하다가 자기 남편의 친구이든 백인옥이가 왔다는 말을 듣고 사라졌던 설음이 새로 솟아나서 전전불매하고 있다가 최후에 결심을 다하고 백씨 있는 방으로 들어온 것이었다. 그 여자는 백씨를 보고 눈물을 흘리면서 자기의 설은 사정을 말하며 자기와 백년의 가약을 맺기를 애걸하였다. 백인옥은 원래에 고결한 사람인 데다가 금강산에서 귀신이 젊은 여자를 조심하라던 말과 또 중로에서 소복담장한 미인을 만나서 글 짓던 생각이 문뜩 났다. 그리하여 그는 자기가 중로에서 소복한 여자가 자기에게 하던 그대로 그 과부에게 말하되

『당신이 만일 내가 지은 글을 짝 채워주면 내가 같이 살겠다』

하고 『만일 오늘밤에 인연을 맺으면(若結緣於今夜)』이라는 글을 부른즉 그 과부는 이리 대답 저리 대답하되 맞지 아니하므로 백인옥은 최후에 자기가

『옛 낭군이 황천에서 곡을 한다(故郞哭於黃泉)』

고 짝을 채웠다. 과부는 그 글귀를 보고는 그만 긴 한숨을 쉬고 땅에 엎드렸다. 그때는 그만 마침 삼월 중순경이었다. 달빛이 창에 가득히 비치었는데 김판서는 백인옥을 만나본 뒤에는 더욱 심회가 불평하여 잠도 잘 자지 못하고 사랑 앞으로 신보를 하다가 백인옥의 침방서 자기의 과부 며느리 목소리가 나는 것을 듣고는 깜작 놀라서 혼자말로

『인제 우리 집안이 아주 망했구나. 이놈이 내 자식의 친구로서 나의 과부 며느리를 꾀어내는구나. 만일에 약차하게 되면 두 년놈을 한 칼에 쳐 죽이리라』

하고 칼을 가지고 창밖에서 엿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백씨의 그와 같은 태도를 보고는 크게 감복하여 또 혼자말로

『이러한 사람은 세상에 또다시 없다』

하고 문을 열고 백인옥을 끌어 안으며 통곡을 하고 인하여 말하되 내가 그대와 같은 고결한 사람을 알지 못하고 전일에 내 집에서 쫓아낸 까닭에 아마 우리 집이 이와 같이 망한 것이라고 하며 다시 그 백씨에 손을 잡고 부탁하되 나는 노래에 일점혈육도 없고 다만 과부 며느리뿐인즉 그대가 나의 수양아들이 되고 또 과부 며느리와 결혼을 하여 영구히 잘 살라 하고 자기 재산까지도 다 상속을 시켜주었다. 백인옥은 비록 마음은 고결하나 그 노인의 부탁을 저바리지 못하고 그 과부와 서로 결혼하고 그 뒤에 또 장원급제하여 벼슬도 잘하고 자미스럽게 잘 살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