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동염사/영오랑과 세오랑
- 迎烏郞과 細烏娘
- —慶北 延日 烏山洞과 日月池의 傳說—
경상북도 영일읍(慶北 迎日邑)에서 동쪽으로 한참 가면 오산동(烏山洞)이라는 한 동리가 있으니 그 동리 이름을 오산동이라고 짓게 된 유래에 있어서는 참으로 자미스러운 옛이야기가 있다. 옛날 신라의 아달라왕 시대였다(新羅 阿達羅王 時代). 영일군 바다가에는 영오랑(迎烏郞)이란 남자와 세오랑(細烏娘)이란 여자의 한 부부가 있었으니 그 부부는 아주 남유달리 정답게 사랑하여 일년 열두 달을 한날 한시같이 자미스럽게 지내었다. 하루는 그 남편 되는 영오랑이 바다에 가서 적은 배를 타고 말(藻)을 따더니 돌연히 폭풍이 불어서 그 험하고 사나운 물결이 잎새 같은 적은 배를 몰아가지고 창파 만리로 한없이 떠나가다가 일본(日本)의 어떤 섬으로 표착하게 되었다. 그의 부인 세오랑은 자기의 남편이 풍랑에 빠져서 죽은 줄만 알고 눈물을 흘리며 애통하더니 사흘 만에 어떤 사람에게 들은즉 그 남편은 다행히 죽지 않고 일본 어떤 섬에 가서 임금이 되었다고 한다. 그는 퍽이나 반가워 하여 자기의 몸이 약한 것도 생각지 않고 만리 창해에 머나먼 길을 지척 같이 여기고 일엽편주를 젖고 저어서 그 남편이 있다는 섬나라에 가서 두 사람이 반갑게 만났다. 그러나 그때 신라(新羅)에는 이상하게도 그날부터 별안간 일월이 무광하고 천지가 암흑하여 참으로 견딜 수가 없게 되었다. 신라의 왕은 그것을 크게 걱정하여 지금으로 치면 측후소장(測候所長)과 같은 관상감(觀象監)의 천문학자를 불러다가 물어보았더니 그 천문학자는 한참이나 눈을 감고 깊이깊이 생각하다가 다시 눈을 뜨고 말을 여쭈우되 영오와 세오 부부는 원래 일월의 정기로 태어난 사람이온대 지금에 그들 부부가 모두 일본의 섬나라로 가서 있게 되기 때문에 일월의 정기가 없어져서 일월의 빛이 없게 되었다고 하였다.
신라왕은 그 말을 듣고 말씀하되 이것은 무엇보다도 국가 인민에 막대한 관계가 있는 것인즉 무슨 방법으로든지 그 두 부부를 다시 찾아오지 않으면 아니 되겠다 하고 즉시 사신을 보내서 그 두 부부를 속히 귀국하라고 권유하였다. 그러나 영오랑은 돌아오지 않고 사신에게 사례하여 말하되 왕께서 우리 부부를 그와 같이 생각하시고 귀국하라 명하심은 그 은혜가 태산같이 크지마는 내가 여기에 온 것도 또한 천명인즉 다시 갈 수는 없고 다만 왕의 은혜와 고국의 정의를 잊지 못하여 일월의 빛을 전과 같이 비치게 하여 주마 하고 자기의 부인 세오가 짠(織) 비단 한 필을 주며 그것을 가지고 신라에 가서 하늘에 제사를 지내면 다지 일월에 빛이 있으리라 하였다. 사신은 할 수 없이 그 비단만 가지고 돌아와서 왕께 그 자서한 사실을 상주하니 왕은 그 말을 신기히 여기고 그 비단을 가지고 못(池)에 가서 하늘에 제사 지내니 과연 이상하게도 그날부터 일월이 다시 전과 같이 빛났다. 그때에 신라 왕은 일월을 보고 크게 기뻐하여 그 연못을 일월지(日月池)라 이름 짓고 또 군명(郡名)도 연일이라고 지었으며 그들 부부가 살던 동리는 또 오산동(烏山洞)이라고 일컬어서 지금까지 전해 내려왔다고 한다.